나/나의 이야기

뚝배기

그랑블루08 2012. 11. 13. 17:51

 

 

 

나는 아주 느린 사람이다.

참 느리다.

한 번 이것이다 싶으면, 잘 변하지 않는다.

한 번 좋아하면, 아주 아주 오래간다.

아주 아주 징하게 이어간다.

 

급하게 확확 변해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렇게 느린 것 역시 내 스타일이니까,

그러한 대로 살까 한다.

아니, 그러한 대로 살고 있다.

느리게, 느릿느릿, 그렇게 변하지 않고, 늘 그곳에, 그렇게 그러한 대로 살아간다.

 

내 이야기들도 그렇다.

느릿느릿 이어간다.

느리게 이어간다.

내 글 속에 숨쉬는 인물들도 느리다.

나를 닮아서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자신의 감정을 아는 것도 느리고, 그렇게 느릿느릿 움직이며, 주저 주저해 하며, 그렇게 천천히 한 걸음씩 뗀다.

그러나, 적어도 이것이다 싶은 순간,

그렇게 느린 걸음으로 걸어가서 알게 된 순간,

그 순간 이후로는 절대 흔들리지 않는다.

 

어쩌면 내가 그리는 인물들은 다 그러하다.

잘 변하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다.

변화에 민감하지만, 사람에 대해서만은 움직이지 않고, 그 믿음을, 그 신뢰를 멈추지 않는다.

내가 좋아한 인물들은 다 그런 것 같다.

변하지 않는 사람, 한 번 이것이다 하면, 목숨 걸고 그 길로 가는 사람,

여자든, 남자든 그런 사람을 좋아한다.

의리를 목숨처럼 생각하는 사람, 한 번 길이다 싶으면 멈추지 않고, 돌아보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최선을 다해서 걸어가는 사람.

그런 사람을 좋아한다.

그래서 그런 사람을 그리고 싶다.

 

내가 그린 인물들은 그런 사람들이었다.

 

가락국의 창휘도, 이녹이도, 신우이야기의 신우도 미녀도, 그리고 당기못의 은시경도 공주님도

또 강철의 인물들도

두 그런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 사람들 이야기를 쓰는 것이 좋았다.

 

제일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나는 이야기들을 끌고 간다.

여전히 나는 그 이야기들을 좋아한다.

몇 년이 흘렀고 간에, 나는 이 인물들이 좋다.

그들이 숨쉬고 있는 것 같고, 이야기를 다시 읽어볼 때마다 살아나는 그들이 있어서 좋다.

마치 나와 함께 살고 있는, 정말 마치 내가 창조한 인물 같아서 좋다.

그들의 고통에 동참하고, 그들과 함께 성장하고, 그들 때문에 아파하고, 그렇게 살고 있다.

 

나는 그 인물들을 통해서 나 자신도 성장하고 있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글을 써야 한다고, 그래서 내가 좋으면 되는 거라고, 그렇게 생각한다.

왜냐하면, 끝까지 남아서 이 글을 좋아해줄 단 한 사람은, 바로 나니까.

몇 년이 지나서 다시 읽더라도, 내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그 이야기여야 하니까.

내가 읽었을 때, 심장이 두근거리지 않는다면, 그 이야기는 죽은 이야기니까.

몇 년이 지나고나서도 이 사람 때문에 두근두근대기를 바란다.

 

나는 뚝배기 같은 사람일까.

너무 느린 걸까.

나는 지금도 여전히 창휘에게 두근거린다. 이녹이 때문에 눈물을 흘린다.

허접한 글이지만, 그래도 그 속에서 내 심장을 두드리는 무언가가 있다.

신우와 미녀의 아픔 속에서 같이 앓아 눕기도 한다.

그것이 나다.

 

이야기를 처음 썼던 이유는, 내가 읽고 싶은 걸 읽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가장 최초의 내 결심은 이것이었다.

소통? 중요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나' 자신이었다.

내가 읽고 싶은 이야기를, 실컷 읽자는, 그런 심정이었다.

내 마음에 드는 주인공으로, 내 심장을 뛰게 하고, 내 가슴을 설레게 하는 인물을 그려서,

주구장창 읽자고, 읽고 또 읽으면서 설레하자고,

몇 년 후 또 읽어도 심장이 두근두근거릴 수 있는, 그런 이야기를 읽고 싶어서

내가 쓰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는, 내가 쓸 수밖에 없으니까.

여전히 그렇다.

내 취향에 맞춘, 몇 년 후 읽더라도 여전히 두근대는, 오로지 내 취향이 그대로 드러난 이야기들.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여전히 그렇다.

 

놀라운 건, 여전히....이 오래된 글들에서 두근거린다.

아, 정말 내 취향이구나....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전문 이야기꾼이 아니다. 전문 글쟁이가 아니다.

어쩌면, 마지막 남은 단 한 명의 독자인 나 자신을 위해서 글을 쓰고 있다.

그리고 계속 쓸 것이다.

 

몇 년을 쓰고 있어도, 나는 이 인물들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손이 근질근질한다.

심장이 자글자글한다.

이것이 내가 글을 쓰고 싶은 이유다.

 

나는 아마 끝까지 갈 것이다.

아주 오랫동안, 뚝배기처럼 절대로 식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나를 안다.

나는 한 번 이것이다, 싶으면 놓지 않는다.

아주 오래 오래, 그렇게 아끼면서 보듬으면서, 그렇게 아주 오래오래 이야기를 써나갈 것이다.

 

왜?

내가 좋으니까.

내가 이 아이들 때문에 가슴이 두근거리니까.

내가 또 읽고 싶으니까.

내가 설레니까.

 

그러니.......누가 뭐래도, 이 이야기들의 인물들에 대해서, 끝까지 남을 사람은 바로 나다.

 

난.....뚝배기다.

절대, 식지 않는다.

 

여전히 뜨겁고, 은근하고, 오래 가는, 두고 두고 자꾸 곱씹어 보고 싶고, 설레는,

그렇게 두근대게 하고, 성장하게 하고, 눈물 짓게 하는,

그런 뚝배기 같은 글을 쓰고 싶다.

그래서 그 뚝배기 같은 글을 아주 오래오래, 어마어마하게 오랫동안, 읽고 싶다.

 

나는 뚝배기다.

그리고 이 뚝배기 같은 이 아이들이 좋다.

나는, 절대 식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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