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킹투하츠와 은신상플/(은신) 당신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은신상플) 당신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20

그랑블루08 2012. 12. 10. 06:13

 

<당신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20

 

 

 

 

 

 

 

 

 

 

 

 

 

 

<꼭 배경음악을 틀고 봐주세요>

 

1. 포맨 - Say I love you

 

입을 맞춰도 불안하고 품에 안아도 초조하고

잠이 들 때도 꿈처럼 사라질까 밤새 뒤척이고

보면 볼수록 겁이 나고 겁이 날수록 더 보고 싶고

사랑할수록 니가 날 떠날까봐 두려워지나봐

 

사랑을 다 줘도 불안한건 남자야

넌 너무 모르지 남자의 사랑을

 

사랑할수록 더 보고 싶고 보면 볼수록 더 안달 나고

평생 내 여자로 만들고픈 조급한 마음인 걸

평생 내 여자로 살아줄래 나 말곤 없다고 말해줄래

 

조금도 불안해하지 않게 한 번 더 말해줄래

Say I love you.

 

사랑할수록 닮아가고 날이 갈수록 더 좋아져

함께 할수록 나 너 없인 못 살아 너 책임져

 

사랑을 다줘도 불안한건 남자야

넌 너무 모르지 남자의 사랑을

 

사랑할수록 더 보고 싶고 보면 볼수록 더 안달 나고

평생 내 여자로 만들고픈 조급한 마음인 걸

평생 내 여자로 살아줄래 나 말곤 없다고 말해줄래

 

조금도 불안해하지 않게 한 번 더 말해줄래

Say I love you.

Say I love you. Say I love you.

 

약속해줘 You are the only my love..

한 여자만을 사랑하니까 내겐 그 여잔 너 하나니까

자꾸만 니 사랑을 보채도 날 미워하지는 마

평생 내 여자로 살아줄래 나 말곤 없다고 말해줄래

 

조금도 불안해하지 않게 한 번 더 말해줄래

Say I love you..

 

 

2. Dana Winner - In love with you

 

 

In love with you, no one but you

Can't live without you I just need to be with you

 

Just one more time We'll make it right

You are the only one I care for

 

To feel your arms around me

To know your loves around me

I'll give all you need

I'm so in love with you

 

Your are for me my destiny

We've got to work it out

It's only you and me

 

Don't let me down

Don't play around

I only want you to be with me

 

To feel your arms around me

To know your loves around me

I'll give all you need

 

I'm so in love with you

I'm so in love in love with you

Can't live without you

 

I just need to be with you so in love

No one but you

Can't live without you

I just need to be with you

In love with you

 

 

 

 

1

 

 

 

 

궁인들이 대비마마를 모시는 사이, 시경은 공주님 쪽으로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너무 많이 우셨는데, 몸은 괜찮으실지, 안아서 방으로 옮겨드려야겠다고 마음먹으며 몇 발짝 떼는데 전하께서 부르셨다.

 

“은시경, 당장 나 따라 들어와.”

 

“예?”

 

“지금 당장!”

 

재하의 목소리가 단호했다.

그래도 미련이 남는 듯, 궁인들과 근위대원들이 공주님을 모시는 걸 몇 번이나 돌아보다가 결국 재하의 부릅뜬 눈에 고개를 숙이고 따라 들어갔다.

 

 

“몸은?”

 

“괜찮습니다.”

 

“팔 걷어봐.”

 

“예? 예.”

 

시경이 양팔을 걷자 팔뚝에 멍이 퍼렇다 못해 이제 보랏빛을 띠고 있었다.

그걸 보던 재하의 얼굴이 찌푸려진다.

저 놈 저거 분명 지 몸은 안 챙겼겠지. 저, 미련한 놈!

 

“왕실 주치의 불러놨으니까 일단 검사받아봐.

재신이 보고나서 근위대장 집무실로 오라고 해놨으니까.”

 

“아닙니다. 전하, 전 괜찮습니다.”

 

“난 안 괜찮거든?”

 

“예?”

 

“너, 내가 너 살리려고 돈을 얼마 쓴 줄 아냐?

니 몸은 이제 내 거야, 니 게 아니라.

니 맘대로 함부로 굴릴 생각 하지 마!

내가 투자한 돈 다 뽑을 때까지 죽도록 굴릴 테니까 각오하고 있어!”

 

“예.”

 

시경은 뭔가 뭉클해진다.

지금 재하는 친구로, 그리고 가장 아끼는 부하로 자신을 대하고 있었다.

다치면 가만 두지 않겠다던 전하의 말씀이 떠올라 자꾸 울컥해지기도 한다.

 

“야, 근데 말이야, 내가 이상~ 한 보고를 받았는데 말이야.”

 

“예?”

 

시경은 마른침을 삼켰다.

전하는 보통 눈치가 빠른 분이 아니시다.

 

“너, 비행기에서 재신이랑 안고 자고 있었다며?”

 

“예? 예?”

 

시경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

흥~ 뭔가 있긴 있군.

 

“상황을 뭔가 내게 보고해야 될 것 같은데......”

 

“아.....저....그게....”

 

“거짓말할 생각 하지 마.

궁중실장에게 직접 들은 거니까.

궁의 모든 일은 내게 통하는 거 몰라?”

 

“.................”

 

어쭈, 이젠 묵비권이다 이거냐?

 

“제주도에서 테러범이 큐피트라도 돼준 거야?”

 

한숨을 쉬던 시경은 결국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공주님께서 한 달간 만나보자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남자 대 여자로 만나 보겠다?”

 

“.........예.”

 

대답을 하면서 시경의 얼굴이 붉어진다.

그런 시경을 바라보는 재하의 얼굴은 과히 밝지가 않았다.

아니, 도리어 착잡해보였다.

 

“걔가 뭐래?

그럼 한 달 동안은 진짜 애인처럼 지낸다는 거야?”

 

“..........예.”

 

“그래서?”

 

“예?”

 

“결론은 한 달간 계약연애를 하겠다는 거네.”

 

“기억을, 찾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그걸 왜 오케이한 거야?”

 

“예?”

 

“재신이가 한 달이라도 만나자고 하니까 이게 웬 떡인가 싶어서 덥썩 문 거야?

그래서 그 한 달간은 진짜 애인이 되는 거야?

어디까지 가능한 건데?”

 

“전하!!”

 

“넌 바보냐?

그걸 왜 오케이 해?

한 달 후에는 어쩔 건데?

그 다음에는 서로 쏘쿨하게 빠이빠이 하고 헤어지는 거냐?

엔조이냐?

그렇게 잠깐 만나고 이젠 됐다 하고 끝내는 거냐?”

 

“전하! 전, 진심입니다.

단 한 번도 진심이 아닌 적, 없었습니다.”

 

“그래서 뭐?

넌 진심이지. 근데 재신이는?

그래, 재신이도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거야.

그런데 재신이가 지금 미안해서 그런 거라면 어쩔 건데?

기억 못하는 게 미안해서, 죽다 살아온 놈이 안 돼 보여서 그래서 잠깐 만나주는 거면 어쩔 거냐고?”

 

재하의 말에 시경은 충격을 받은 듯, 미간만 찌푸린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기억? 그래 찾으면 뭐? 기억 찾으면, 널 다시 좋아할 거라고 어떻게 확신해?

어차피 과거 일이야.

과거는 엄연히 다른 일이고 다른 사람이야.

늘 변하는 게 사람 마음이야.”

 

“저...전...”

 

“재신이가 한 달 후에 넌 아니다, 라고 하면 넌 어쩔 건데?”

 

“!!!!!!!!!!”

 

“아니라고 하면 어쩔 거냐고!

만나보니 아니더라, 그땐 내가 많이 안 좋았을 때라서 마음이 약했었다.

상우가 좋다.....뭐 이러면 어쩔 거냐고?”

 

시경의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재하의 말이 마치 칼날처럼 날아와서 시경의 심장을 도려내는 것 같다.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애써 생각지 않으려는 것을,

재하는 날카롭게 드러내고 있었다.

 

“확실하지도 않는데, 왜 받아준 거냐고?

너만 다칠 수도 있어!

너 견딜 수 있겠냐?

정신 차려. 너 버리면 어떡할 거야?

재신이 저게 지금, 미안해서 저러는 거라면 어떡할 거냐고?

바보같이 왜 마음 다치는 일을 선택해?

뭔가 확실하면 하든가.”

 

“.....................”

 

이 놈이 아무 말이 없다.

바보 같은 놈.

 

“야!! 은시경!”

 

“.......괜찮습니다.”

 

“뭐?”

 

“공주님께서 한 달 후에 저란 놈은 아니라고 하셔도 괜찮습니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공주님께서 제게 왜 그 말씀을 하셨는지.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고 계시는 거지요, 저 때문에......

예전 공주님 스스로의 마음에 대해서 예의를 지키시고 계시는 거라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은시경!!”

 

“그래도 괜찮습니다.

적어도 한 달은 공주님께서 제 여자가 되시는 겁니다.

제 마음을 표현해도 되고, 공주님 곁에 서 있어도 됩니다.

정말 연인인 것처럼 그렇게 곁에 있어도 됩니다.

그걸로 충분합니다.

제게 오지 못할 시간이었습니다.

한 달은 제게 평생 가져갈 선물 같은 겁니다.”

 

“넌 바보냐?

그게 어떻게 괜찮아?

너만 상처받는다고!!!!”

 

“아무 것도 못하고 있어도, 지켜보기만 하는 것도 상첩니다.

다른 남자를 만나시는 걸 보는 것도 상첩니다.

적어도 한 달은 공주님께서 저만 보실 거니까 괜찮습니다.

계약연애라 하셨습니까?

다른 누구에게 그리 보여도, 공주님조차 그리 생각하신다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전 아니니까요.

전 진심이니까요.”

 

“그래서, 견딜 수 있다고? 그걸 견디겠다고?”

 

“아까 전하께서 그러셨죠.

왜 마음 다치는 일을 선택했느냐고.

뭔가 확실하면 하든가라고...하셨죠.”

 

“근데?”

 

“그랬었습니다.

예전에 그러다가 이렇게 됐습니다.

순간입니다.

이 순간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재하는 아무 말도 못한다.

시경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토록 주저하던 저 놈을 알고 있다.

재신이를 사랑하면서도, 내가 만나보라고 말하고 나서야,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도 되느냐고, 그제야 물어보던 놈이었다.

지 감정은 절대로 내놓아서는 안 된다고, 자신은 절대로 재신이를 넘보면 안 된다고 생각하던 그렇게 곧이곧대로의 놈이었다.

그런데 그 놈이 이제는 안 그러겠다고 한다.

 

“전하, 전 후회하지 않습니다.

사실 제게 이 시간이 주어졌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습니다.

공주님께서 저를 향해 웃어주시는 것만으로도 전 너무나 벅찹니다.

공주님께.....제 마음을 보여드려도 된다는 것이,

공주님께서 절 바라봐주시는 것이, 전 너무나 행복합니다.

이 기억만 가지고 평생 가도 전 상관없습니다.

평생 행복해 하며 살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 한 달은 제게 축복 같은 시간입니다.

어쩌면, 하늘이 절 불쌍하게 생각해서 선물처럼 준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 진짜 기가 막힌다!!

야!! 이! 아우~~! 이 바보 같은 놈!!”

 

재하는 혼자 열을 내다가 결국 참았던 말을 터뜨렸다.

 

“솔직하게 딱 깨놓고 얘기할게.

남자 대 남자로 말하자면 그냥 자빠뜨리라고 하고 싶다.

그런데, 그 놈, 내 동생이다.

그러니까 그 말도 못한다고!!”

 

“걱정 마세요. 전하.

걱정하시는 일 없습니다.”

 

“어휴~~ 그래, 그래서 더 속 터진다고!

은시경이니까!!! 니 놈이 은시경이니까!!!

정말 속 터진다!!”

 

재하는 비아냥거리듯이 말하고 있지만, 가슴이 저릿해 온다.

어떻게 저렇게 한 길만 가고 있는지, 어떻게 저렇게 한 곳만 볼 수 있는지.......

그러나 그 마음을 또한 이해하고도 남았다.

나 역시 그러지 않았을까.......

처음으로 사랑이란 걸 알게 되었을 때, 그걸 느끼게 해 준 그 여자 때문에, 나 역시 그랬을 것 같았다.

그 여자를 가지기 위해서, 어쩌면 이 자리조차 내놓을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 여자가 지금 내 곁에 없었다면, 그 여자가 지금 이곳에 내 곁에 있지 않았다면, 나 역시 그랬지 않았을까.

중국으로 항아를 찾아갔을 때, 내 눈 앞에서 항아가 총을 맞고 쓰러지는 걸 봤을 때, 그 심장의 떨림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래서 재하는 더 어떤 말도 할 수가 없다.

 

“앞으로 재신이, 할 일 많을 거야.

이번에 국제적으로 워낙 이미지를 잘 만들어놔서, 재신이가 나서야 할 일이 많을 거야.

그러니까......니가 재신이....지켜.”

 

“걱정 마세요. 전하. 공주님 제가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그래, 저 놈보다 재신이를 더 잘 지킬 놈은 세상에 없다.

그걸 누구보다도 재하는 잘 알고 있었다.

 

“야, 은시경!”

 

목례를 하고 나가려는 은시경을, 재하는 다시 불러 세웠다.

 

“야, 너 솔직히 말해.

너 위대한 왕실을 모시는 거 어쩌고 저쩌고 한 거, 나 아니지?

뭐, 가장 위대한 곳에, 가장 위대한 분을 모셔?

내가 암만 생각해봐도 이건 내가 아니야.

너, 재신이 꼬시려고 그런 거 아니야?”

 

그 말에 시경은, 마음대로 생각하세요, 라고 단칼에 재하의 뒤통수를 때린 후, 나가버린다.

시경의 뒤로, “야!! 은시경, 너 죽을래!!”라며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는 재하의 목소리가 울려대고 있었다.

 

 

 

 

2

 

 

 

 

 

 

재하의 집무실을 나선, 시경의 마음은 그러나 무겁게 가라앉고 있었다.

두려움이 숨도 쉴 수 없을 정도로 밀려오고 있었다.

그녀 없이 살 수 있나.......

그녀가 떠나면 살 수 있나.......

호기롭게 외쳤지만, 그 생각만으로도 두려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알고 있었다.

자신은 한 달이라는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된 것과 같다는 것을.

그래도 시경은 이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다. 이런 기회를 주셨다는 것도 자신에게는 과분하다.

그러나 궁으로 돌아와 보니 현실이 어떤지 확연히 느껴지기도 했다.

제주도에서의 일도, 비행기 안에서도, 그리고 차안에서도,

모두 꿈을 꾼 것만 같았다.

 

차안에서만 해도 자신은 착각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정말로 내 여자가 된 양, 1달이라는 시한부는 없는 양, 그렇게 착각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차안에서 자신이 왜 그랬는지, 무슨 정신으로 그랬는지.

다시 그 순간을 떠올리기만 해도 얼굴에 열이 올라온다.

 

뒷자리에 같이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떨려왔다.

공주님께서 자신에게 마음을 비추어주시는 것 같아서,

곁에 있으라고 하신 것 같아서 그래서 좋았다.

그때까지는 정말 좋았다.

공주님께 전화가 걸려오면서부터는 순식간에 불안함이 몰려오고 말았다.

 

그 남자였다.

그녀의 첫사랑.

여전히 그녀를 사랑한다고 고백하던 그 남자.

그녀 앞에서 무릎을 꿇던 그 남자.

자신의 모든 것을 이용해도 좋다고,

자신의 것을 모두 그녀에게 내놓고 싶다던 그 남자.

 

불안해졌다.

마음이 조급해지고 있었다.

공주님의 목소리에 반가움이 느껴지는 것 같아서, 순간 내 존재를 잊으실까 겁이 났다.

그 남자의 이름이 불리는 순간, 나도 모르게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당황하는 듯한 내 모습을 그녀에게 들켜버렸다.

황급히 고개를 돌렸지만, 가슴은 진정되지가 않았다.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이 감정에 나 자신도 놀라고 있었다.

내가 뭐라고, 내가 공주님께 감히 뭐라고 이런 마음이 드는 건지.

그러나 이 분노를, 이 질투를 멈출 수가 없었다.

 

그녀는 단지 1달간 만나보자고 했을 뿐이다.

내가 그녀의 진짜 남자가 된 것도 아니다.

그러나 내 마음은 달랐다.

그녀는 내 거라고, 그렇게 외쳐대고 있었다.

전화를 던져버리고 싶었다.

다시는 그 남자와 전화도 하지 말라고, 만나지도 말라고, 그 남자의 이름도 부르지 말라고 말하고 싶었다.

 

이런 내 자신이 내 스스로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내가 이토록 소유욕이 강했던가.

내가 이렇게 감정적이었던가.

아무리 이성으로 제어해보려고 해도

아무리 이를 악물고 주먹을 쥐어보아도 참아지지가 않았다.

 

그렇게 나는 그녀의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그 순간 돌아버릴 것만 같았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그녀의 손에 깍지를 낀 채 잡으며,

나를 좀 봐달라고, 내가 여기 있다고

내 마음을 손에 담아 그녀에게 전했다.

그녀가 놀란 듯 나를 보고 있는 걸 알았지만, 고개를 돌릴 수가 없었다.

짐승 같은 이 마음을 들켜 버릴까봐,

집착처럼 나오는 이 마음을 들켜 버릴까봐,

그녀의 눈을 바라볼 자신이 없었다.

그저 내가 여기 있다고, 흔들리지 말아달라고, 다른 남자는 보지 말라고

내 온 마음을 담아 그녀의 손을 잡고 있을 뿐이었다.

 

내 마음의 불안을 아셨던 걸까.

공주님은 곧 전화를 끊으셨다.

그리고는 뭔가 어색하신 듯, 손을 빼려고 하셨다..

그러나 나는 놓아줄 수가 없었다.

자꾸만 불안함이 내 마음을 잠식하고 있었다.

그녀의 손이라도 잡고, 그녀를 그리고 나 자신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녀가 손을 빼려고 힘을 줄수록 나는 그녀의 손을 더 강하게 붙잡았다.

그 순간이었다.

내 어깨 위에 그녀가 기대왔다.

향긋한 그녀만의 향이 코끝을 간질이며 저 가슴 안까지 들어와 간질거리게 한다.

그녀의 작은 행동은 단숨에 나를 불안에서 설렘으로 바꿔놓았다.

감정이란 놈은 어떻게 이렇게 변화무쌍할 수 있는지, 아까까지 그토록 고통스러웠던 심장은 이제 지독한 설렘 때문에 숨을 쉴 수조차 어려웠다.

 

어깨에 내려앉은 무게만큼 내 불안은 가라앉고 있었다.

그 자리를 설렘이 대신하고 있었다.

두근대는 심장이 내게 용기를 주고 있었다.

그녀의 어깨를 한 팔로 감싸며, 그녀를 내 여자인 양, 내 품 안으로 가득 안아왔다.

그녀는 작은 새처럼 내게 안겨왔다.

동하가 운전을 하다 놀란 듯 룸미러로 보고 있었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마치 내 여자인 양, 그 순간 그곳에는 그녀와 나 외에는 없었다.

그녀의 팔을 천천히 쓸었다.

부드러운 블라우스 아래에 그녀의 살결이 마치 느껴지는 것 같았다.

이곳이 마치 차안이 아닌 듯, 그녀와 나밖에 없는 공간인 듯 느껴졌다.

불안이 물러간 자리에, 나른하면서도 따뜻한 두근댐만이 공기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무슨 용기에서일까.

그녀의 어깨를, 그녀의 팔을 쓰다듬던 내 손이 그녀의 목으로 어깨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순간 파르르 떠는 그녀의 몸이 느껴졌다.

나도 모르겠다.

내가 왜 그랬는지, 어떻게 감히 공주님께 손을 댈 수 있었는지....

나도 알 수가 없다.

마치 내가 아닌 것처럼, 내 안의 알 수 없는 욕망에 나 자신도 이끌린 듯, 내 손은 그녀의 매끈한 목을 어깨를 천천히 쓸어내리고 있었다.

한 번 손댄 금기는, 내 속의 욕망을 불타오르게 하고 있었다.

너무나 부드러웠다.

손가락 끝에 느껴지는 부드러움은, 심장이 터질 듯이 뛰게 만들고 있었다.

온 몸의 피가 끓고 있었다.

그녀의 부드러운 목선이, 그녀의 쇄골을 따라 흐르던 아름다운 선이 자꾸만 욕심나게 만든다.

 

내가 이런 인간이었나.....싶을 만큼........

 

하루 종일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렇게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또다시 두려움이 엄습하고 있었다.

 

보고 싶다는 마음과 그래도 되는가 하는 마음이 자꾸만 싸워대고 있었다.

손을 펴본다.

그 손에 느껴지던 부드러움이 떠올라, 눈을 감고 말았다.

눈을 감고 있어도, 그녀의 향기가, 그녀의 살결이 느껴지는 듯해서 숨을 쉴 수가 없다.

 

이럴 거면서, 이러고 있을 거면서, 전하께는 괜찮다고, 참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괜찮으실까.......

몇 번이나 휴대폰을 열어보다가 다시 놓기를 수십 번도 더하고 있다.

 

그렇게 나는 또, 그곳에 서 있었다.

그녀와 마지막을 나누었던 그곳에 또 서 있다.

보고 싶다고, 내가 이렇게 다가가도 되는 거냐고,

2년 전 그녀에게 말을 건네고 있다.

 

당신에게 가도 되는지, 이렇게 막무가내로 다가가도 되는 건지,

내 마음이 이렇게 혼자서 달려 나가도 되는 건지,

당신을 힘들게 만들고 있는 건 아닌지,

2년 전 그녀에게 묻고 있었다.

 

2년 전 그녀라면 뭐라고 하실까.

이곳에서 울고 계셨던 그녀라면, 내 위로에 진심으로 울음을 터뜨리셨던 그녀라면,

내 말에 수줍게 고개 끄덕여주던 그녀라면,

내 볼에 입맞춰주던 그녀라면,

그녀라면, 괜찮다고 해주실까.

 

오늘따라........너무나 보고 싶다.

2년 전 그녀가, 나를 기억하고, 나를 사랑해주던 그녀가.....너무나 그립고 보고 싶다.

자꾸만 착각하고 싶은데, 지금 공주님이 바로 그녀라고, 2년 전 나를 따뜻하게 바라봐주시던 그녀라고,

착각하고 싶은데, 그러면 안 되는데, 너무나 그리워서 자꾸만 울컥하게 된다.

 

“왜, 여기 있어요?”

 

그 순간이었다.

목소리만으로도 내 심장이 울렁대고 있었다.

눈부시게 아름답게 웃고 계시는, 나의....그녀가 그곳에 서 있었다.

 

나보다도 먼저 내 사랑이 툭하고 앞으로 나가 버린다.

감정이라는 놈이 먼저 달려 나가서 그녀에게 다가가 버린다.

 

그녀는 마치 2년 전 그 때처럼 나를 향해서 웃고 계신다.

그때처럼 따뜻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계신다.

착각하고 싶어진다.

2년 전 그녀라고.....나를 사랑하던 그녀라고.......

나를 바라봐주시던 그녀라고......

착각하고 싶어진다.

 

그래서 무서웠다.

마음이 바뀐 거냐고, 공주 명령이라서 들은 거냐고, 싫으면 물러도 된다는 그 말씀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혹시, 공주님 마음이 바뀌신 건지.......

두려웠다.

나도 모르게 강하게 말하고 있었다.

절대로 안 된다고, 그럴 수 없다고, 공주님께서 약속하신 게 아니냐고......

 

“무르는 건, 절대로 안 됩니다.

제가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공주님, 이제 돌이키실 수 없다고 말입니다.”

 

“누가 무른대요?”

 

“그러면 왜...그런 말씀을......?”

 

“은시경 씨가 싫으면 그러라는 거죠.”

 

“전, 절대로 그럴 수가 없다는 거, 아시지 않습니까? 공주님.

제 마음이 어떤지, 이미 다 아시지 않습니까?”

 

그녀가 그런 일 없다고 얘기하셔도 놀란 가슴은 진정되지 않는다.

두려웠다.

무른다는 말씀만으로도 너무나 두려웠다.

 

너무나 보고 싶었다.

나를 기억해주시는 공주님이, 2년 전 그녀가 너무나 보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 이곳에서 그녀를 보면서 난 내가 그리워하는 사람이 누군지 정확하게 알게 되었다.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이 사람이었다.

늘 변함없이 이 사람이었다.

2년 전 그녀가 그리웠던 것은, 오로지 내 두려움 때문이었다.

난 두려워하고 있었다.

기억 속에서 나를 좋아했던, 나를 바라봐주셨던 그 기억을 찾아내시면,

그래도 나를 지금 봐주시지 않으실까....그런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힘든 시간을 다 겪어내시고, 이렇게 예전 모습을 찾으신, 아니 더 용감하고 아름답고 기품이 넘치시는 공주님으로 돌아오시고 나서도,

나라는 놈이 눈에 들어오실지,

난 두려운 것이다.

 

나를...다시 바라봐주실까......

나를...다시 사랑해주실까......

 

그래서 그 기억이라는 것을 붙들고 싶었던 모양이다.

전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난 정면승부를 하고 있지 못했던 거다.

이렇게 자꾸만 과거에 의지하고 싶은 내 나약한 마음은, 기억에 매달리고만 싶다.

공주님께서 기억을 찾으셔서, 나를 다시 봐주시길......

그게 아니면, 자신이 없는 것이다.

지금, 내 눈 앞에 계신 공주님은, 사고가 나시기 전보다도 더 아름답고, 더 성숙하고, 더 빛이 나셨다.

 

보고 싶어서 이곳에 있었다는 말에 공주님은 왜 연락을 하지 않으셨냐고 물으신다.

 

“그래도 됩니까?”

 

“네? 뭐가요?”

 

“제가......공주님께 연락드려도....괜찮은 겁니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공주님께 연락해도 괜찮은 건지, 이렇게 내 마음을 보여도 괜찮은 건지, 나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아, 진짜 이 남자 봐.

아까까지...나한테....한 건 뭐고, 지금 이 컨셉은 뭐예요?”

 

공주님은 이런 내가 이해가 안 되실지도 몰랐다.

어쩌면 전하의 말씀이 자꾸만 내게 남아 있는지도 몰랐다.

 

“사실.....오늘은 꿈을 꾸는 것 같습니다.

제주도에서, 비행기 안에서, 꿈을 꾼 것 같습니다.

마치 제가 꿈꿔서는 안 되는 걸, 꿈꾼 것 같아서, 돌아와 보니, 명확하게 보입니다.

 

공주님께서 제게 왜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

도대체 무슨 의미로 말씀하신 걸까......

 

공주님의 마음은......아닌데, 저만 이렇게 다가가는 것이, 공주님을 힘들게 해드리는 게 아닐까.

제가 지금 너무 나가고 있는 게 아닐까 싶고,

제 마음을 이토록 다 보여드려도 되는 건지......

그래서 공주님을 두렵게 만들고 있는 건 아닌지.....

자꾸만 걱정이 됩니다.”

 

이런 내 마음을 보여도 될 지 여전히 겁이 나지만, 공주님께 정직하게 내 마음을 보여드리고 싶었다.

 

“열두 번도 더 마음이 바뀝니다.

미친 듯이 공주님께 다가갔다가, 이렇게 내 마음 내키는 대로, 내 욕심대로 공주님께 다가가면 안 된다고,

제 안의 제가 저를 막습니다.

그런데....아무리 막으려도 해도, 막아지지 않는, 그런 마음도 있습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안 된다고 아무리 머리로 막아보려고 해도, 안 돼서, 자꾸만 공주님을 힘들게 해 드리는 제 안의 제가.....있습니다.”

 

공주님께서 아무 말씀이 없으시다.

실망....하셨겠지.

이런 내가.......마음에 안 드실지도 모른다.

초조함이 두려움으로 바뀔 때쯤, 그녀가 입을 뗐다.

 

“........힘들지...않아요.”

 

“예?”

 

“힘들지 않다구요. 나.”

 

“공주님.......”

 

“한 가지는 말할 수 있어요.

나,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이런 제안 하지 않아요.

아니, 사실 이런 제안을 한 것도 처음이구요.

이런 말할 수 있었던 것도, 은시경씨니까, 은시경씨라서 할 수 있었어요.

과거에 당신이 내게 어떤 존재였는지, 적어도 조금은 알게 되었으니까......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는 몰라요.

도대체 이게 무슨 마음인지도 몰라요.

그래도, 나 이렇게라도 당신을 잡고 싶었어요.”

 

나를 붙잡고 싶다고 하셨다.

힘들지 않다고.....그렇게 말씀해 주셨다.

가슴이 자꾸만 뭉클해진다. 심장이 정말 터질 것만 같다.

 

“더, 솔직하게 말할게요.

당신이....내게서 멀어지는 것 같아서.....무서웠어요.

그게 싫었어요.

당신을 잡고 싶었어요.”

 

“저를....잡으신 겁니까.......”

 

“응. 그랬어요. 잡고 싶었어요. 당신, 내게서 멀리 떠나지 않게......

그러니까...지금처럼 그렇게 다가와줘요.

나도......조금씩 다가갈게요.

조금 더디더라도, 기다려줘요.

느려도, 한 발 한 발, 나 열심히 당신에게 가고 있어요.”

 

느려도 한 발 한 발 내게 오고 계신다고, 공주님은 정직하게 말씀해주셨다.

나를 잡고 싶으셨다는 말씀......

그 말씀만으로 충분했다.

아니다. 충분한 것이 아니라 설레다 못해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 남자 때문에 오해해서 내가 떠날까봐 무서웠다는 말씀에

그래서 잡고 싶었다는 말씀에

그 남자보다 내가 더 신경 쓰이셔서 잠도 못 주무셨다는 말씀에,

그때까지 겨우 잡고 있던 내 이성의 끈이 끊어지고 말았다.

 

내 감정이 이끄는 대로, 내 심장이 시키는 대로,

내 손으로 그녀의 이마를, 눈썹을, 부드러운 볼을, 그리고 늘 설레게 하는 그녀의 입술을 더듬고 있었다.

손끝의 감각은 심장 저 안까지 내려와 그나마도 있던 이성을 완전히 몰아내고 말았다.

2년 전 그녀가 마치 지금 이곳에 있는 것처럼,

마치 우리가 2년 전으로 돌아간 것처럼,

그녀가 나를 바라봐주고, 사랑해주고 있는 것처럼,

나는 착각 속에 빠지고 만다.

아니, 착각이 아니라 믿고 싶다.

한 걸음씩 다가오는 그녀가, 곧 내게 와 주실 거라고, 그렇게 믿고만 싶어진다.

 

내가 다가가자 그녀가 눈을 감는다.

그녀의 감은 눈이 파르르 떨리는 게 보인다.

내 입술은 어느새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을 훔치고 있었다.

그녀의 입술은.......가질 때마다 사람을 미치게 한다.

저 속에서 자꾸만 내 욕망이 꿈틀대고 만다.

더 가지고 싶다고, 더 다가가고 싶다고, 그녀를 온전히 가지고 싶다고......

미친듯이 아우성을 쳐댄다.

그녀에게 다가가고픈 내 입술과 미친듯이 싸워댄다.

천천히 가야 한다고, 이러면 안 된다고, 그녀가 겁낼지도 모른다고, 끊임없이 나 자신과 싸우면서, 그렇게 나 자신에 지면서도, 또다시 그녀에게 다가가는 내가 한심하기만 하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그녀의 향기가, 그녀의 숨결이, 그녀의 입술이, 그녀의 혀가,

심장을 저릿하다 못해, 숨도 쉬지 못하도록 몰아붙이고 있었다.

 

“참으려고 했는데, 참아지지가 않습니다. 공주님.”

 

키스의 여운이 남아있는 그녀의 모습은 너무나 황홀했다.

마치 내 여자인 듯한 착각마저 들게 한다.

붉게 물든 양볼에, 수줍은 듯 내려앉는 눈빛도, 조금은 가쁜 듯 숨을 내쉬는 그녀의 입술도,

안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었다.

 

“....후우...그러게요. 우리 오늘 첫날인데....벌써 3번째예요.

은시경 씨, 너무 빠른 거 아니에요?”

 

“빠르지 않습니다.

제게는 2년이나 참고......또 참은......시간입니다.”

 

2년.....그랬다.

내 2년은 돌아오기 위한 2년이었고,

그녀를 그리워하다 못해 내 심장을 찢어내었던 2년이었다.

그녀는 모를 것이다.

내가 어떠한 마음으로 하루 하루를 참아내었는지,

내가 어떠한 마음으로 그녀를 그리워하고 있었는지,

그녀는 절대로 모를 것이다.

 

그 순간, 그녀가 내 품으로 안겨 들어왔다.

심장이 그대로 내려앉아버린다.

 

“그러니까........이제 안 참아도 돼요.

내가.....당신의 2년, 다 보상해줄게요.

그러니까.....이제는 참지 말아요. 은시경 씨.”

 

그녀가 지금 무슨 말을 한 것인지 알고 있을까.

내게 무슨 말씀을 하신 것인지.......

참지 말라고.....내게 내 2년을 보상해주시겠다고.....

그런 말씀을 하신다.

목울대가 얼얼하다.

 

“공주님, 사실은 네 번쨉니다.”

 

“응?”

 

내게 의아한 듯 묻는 그녀에게 다시 다가가 그녀의 입술을 아까보다도 더 강하게 훔쳤다.

내 마음을 온전히 담아, 미친 듯이 아우성치는 내 욕망을 담아, 그리고 그보다도 더 오래 참았던 내 2년의 그리움을 담아,

그녀의 입술에 매달렸다.

 

내게 와달라고.....

다시 나를 봐달라고.....

그리고 다시 나를 사랑해 달라고......

나는 그녀의 입술에 매달려, 또다시 그녀의 향기에 취해들고만 있다.

 

 

 

 

 

3

 

 

 

 

똑똑

 

“들어와.”

 

“저.......”

 

다음 날 자신의 집무실에서 밀린 서류를 보고 있던 시경이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 동하가 새장을 들고 서 있었다.

 

“뭐야?”

 

“이거....돌려드릴 때가 된 듯해서........”

 

동하가 내미는 새장 안에는 그 어느 날 샀던 앵무새가 들어 있었다.

 

어! 이거!!

 

그 순간 앵무새가 입을 열었다.

 

“은시경! 은시경! 은시경!”

 

그 소리에 동하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정말 신기합니다.

사실 처음엔 한동안 근위대장님과 공주님 부르긴 했지만

요즘은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이 새가 기억하는가 봅니다.”

 

“어떻게 된 거야?

이게 왜 동하 너한테 간 거야?”

 

“그게.....

사실 전하께서 공주님 기억 잃으시고 나서 전부 치우시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새는 도저히 다른 데 가져다 줄 수가 없어서

제가 맡아두고 있었습니다.”

 

“이걸 니가 집에서 키웠다고?

집에 들어가는 날이 거의 없었잖아?”

 

“그래서 제 동생에게 맡겼습니다.”

 

시경은 동하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다.

분명 애완동물숍으로 보내버려도 됐을 텐데, 동하는 시경을 생각해서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랬군. 고맙다.

동생분과도 정이 많이 들었을 텐데...

굳이 안 가져 와도 됐는데....”

 

“동생이 근위대장님 살아 돌아오신 걸 알게 되면서부터

계속 갖다드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왜 이제....?”

 

“......아무래도 이 새 보시면 힘들어 하실 것 같아서 도저히.....”

 

“그러면 지금은 왜 가져온 거야?”

 

“......그건 근위대장님께서 더 잘 아실 것 같습니다.”

 

“!!!!!!!!!”

 

동하는, 어쩌면 뭔가 눈치채고 있는지도 몰랐다.

차 안에서, 이미 동하는 눈치를 챘는지 모른다.

 

“공주님 가져다 드리십시오.”

 

시경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생이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 새가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거 같다고 말입니다.“

 

그리움이라.......

 

내가 그리움을 품고 사는 동안, 이 새도, 그 그리움을 품고 살았나보다.

 

너도.....공주님이 그리웠던 거겠지.....

 

 

 

 

4

 

 

 

하루하루 공주님을, 서서히 생기를 잃어 가시는 공주님을 곁에서 지켜본다는 것이 내겐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었다.

오로지 그 때는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예전 환하게 웃던 공주님으로 돌아올 수 있으시길...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랐다.

늘 내 머리속엔 한 가지 생각밖에 없었다.

어떻게 하면 공주님께서 웃으실까.

성곽에서 그토록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시던 공주님을 어떻게 하면 다시 뵐 수 있을까.

 

오랜만에 사저로 갔다가 집 앞 애완동물숍을 보게 됐다.

늘 있었겠지만 단 한 번도 눈에 들어왔던 적은 없었다.

윈도우 앞에 아름다운 작은 새가 절뚝거리고 있었다.

그녀 같았다.

다리를 절고 있는 아름다운 새.

그러나 여전히 기품이 있는 새.

 

그렇게 나는 그 새를 보러 매일 그 숍으로 출근을 하다시피 했다.

놀라운 건 그 새가 매일매일 달라지기 시작했다는 거다.

열심히 걷고 열심히 날고 열심히 먹고

하루하루 그 새는 달라지고 있었다.

 

처음 그 새에 관심을 가졌을 때 주인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퉁명스럽게 말했었다.

 

그 다리 병신 새를 사서 뭘 하겠느냐고.

이런 걸 자기한테 팔았다고 역정을 내던 주인은 원래 판 사람에게 돌려주고 환불받겠다며 열을 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주인조차 놀라고 있었다.

이 새가 이렇지 않았는데...갑자기 왜 이렇게 달라지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매일 저를 쳐다봐 주는 사람이 있어서 그러나?”라고 주인은 지나가는 듯한 말을 툭 던졌다.

 

모르겠다. 그 말에 덜컥 이 새를 사버렸다.

아직 다리가 성치도 않은 새를, 그 비싼 값에 사는 걸 가게주인조차 의아해했지만 난, 사지 않을 수 없었다.

 

근위대원들 중에 내가 이 새를 샀다는 걸 알았다면, 다 미쳤다고 했을 것이다.

내 월급으로 사기에는 어마어마하게 비싼 새였다.

그러나 사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도리어 싸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런 기품 있는 새를 사는데, 이 정도 돈은 당연한 거라고, 그래도 내 월급으로 살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그런 생각을 했었다.

 

조금씩 좋아지고는 있다고 해도,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가 없어서 동물병원에 데리고 갔다.

괜찮은지 물어보는 내게 의사는 굉장히 좋아지고 있다고 안심해도 된다고 말해주었다.

 

“계속 지금처럼 해주시면 돼요.”

 

“예?”

 

“이렇게 좋아진 건, 분명 주인의 힘이죠. 그러니까 지금처럼 계속 그렇게 해주시면 금방 회복될 겁니다.”

 

“저, 사실 제가 뭘 어떻게 했는지 잘 몰라서.

사실 이 새를 어제 산 거라......”

 

“어? 그래요? 진짜 신기하네. 어제 샀는데, 어떻게 이 새가 주인을 이렇게 따르죠?

마치 오랫동안 믿고 의지해온 분위기던데......”

 

“저, 그게, 제가 사실 애완동물 숍에서 이 새를 보고, 거의 매일 들려서 확인했습니다.

한 이 주 정도 된 듯합니다.”

 

“아....그거네요. 그거. 이 새가 알고 있었네요. 자신을 아껴주고 지켜봐주는 사람이 있다는 걸.

그거 아세요? 사실 동물도 사람도 똑같다는 거?

사랑하고 아껴주고 관심 가져주는 거, 그것보다 더 큰 건 없답니다.

사랑의 힘이, 그 관심의 힘이 일어서는 힘을 주는 거죠. 이렇게요.”

 

내가 했던 건 아무 것도 없었다.

그저 지켜보는 것밖에 없었다.

오늘은 괜찮은가, 오늘은 조금 나았나, 조금 일어서 있고, 먹이를 잘 먹고 있으면, 그게 기뻤고, 새가 고개를 숙이고 있고 다리를 절면 가슴이 아팠고....

그것밖에 없었다.

내가 한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러나 수의사는 말했다. 지켜봐주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힘이라고......

 

그것이 내게 용기를 주었다.

공주님께 이 새를 드리고 싶다고.......

그렇게 내 마음을 전해 드리고 싶다고.......

 

공주님을 웃겨드리고 싶어서, 말도 안 되는 ‘달려라 하니’ 노래를 매일 가르치면서,

이 놈은 토실토실 살도 찌고, 이젠 아무렇지도 않게 걷기도 하고, 힘차게 날개를 푸드득 거리기도 했다.

이 녀석이 힘을 낼수록, 희망이 가까워지는 듯했다.

마치 공주님을 보는 것 같았다.

공주님도 반드시 저렇게 날개를 펴고 날아오르실 거라고, 그런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가져다 드렸던 날....

공주님의 하얀 다리가 침대 밖으로 내려와 있었던 그 날......

내가 조심 조심 이불을 가지고 당겨다 하얀 다리를 덮어드렸던 그 날......

공주님은 불같이 화를 내셨다.

그러나 모르셨을 것이다.

그녀의 하얀 다리를 덮을 수밖에 없었던 나를.......

그녀의 하얀 다리 앞에서 두근대던 나를.......

 

공주님의 자존심을 건드렸는지도 모른다.

니까짓 놈이 뭐라고 여기 와서 이러는 거냐고, 화를 내고 계셨다.

단 한 가지 생각밖에 없었다.

이 새를 전해드리고 싶다고.......

내 마음을 오해하지 말아 달라고......

그러나 공주님께 내 마음은 보이지 않았다.

상처 입은 아름다운 새가 내 앞에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등에 식은땀이 흐르고, 주먹 쥔 손에 땀이 찼지만,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병신, 병신, 다리 병신.”

 

정적이 흘렀다.

새는 자신이 들었던 말을 읊었다.

그토록 노래를 부르라며, 옆에서 달려라 하니를 불러도 끄덕도 않던 새가,

예전 주인이 자신을 부르던 그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그녀 앞에서 툭하고 뱉어내고 말았다.

그 순간 눈앞이 하얘졌다.

 

그녀가 상처받았을까봐, 그녀의 마음이 다쳤을까봐........

내가 미쳤구나, 왜 이걸 가져와서....

오로지 그 생각만 했었다.

 

그때였다.

 

“이리 가져와 봐요.”

 

그녀의 목소리가 젖어 있었다.

그녀의 눈도 젖어 있었다.

내 손에 올라탄 새를 그녀의 손에 건네주며, 그녀의 손에 닿았다.

차가웠던 그녀의 말과는 달리, 그녀의 손은 따뜻했다.

그리고 그 따뜻한 온기는, 자꾸 심장으로 내려와 서걱거리게 만들었다.

 

새를 보며, 다리 병신이라고 부르더냐며, 마치 자신을 보는 듯이 새를 보듬던 그녀가, 자꾸만 심장을 아프게 건드렸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녀의 입술은 웃고 있었지만, 그녀의 눈엔 눈물이 맺혀 있었다.

저 새가 조금은 위로가 되시는 걸까.......

그럴 수 있기를......

새를 쓰다듬는 손길에, 새를 향해 따뜻한 미소를 보여주시는 모습에,

이상하게 안심이 되었다.

마치 내 마음을 받아주신 것처럼, 그렇게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늘......데리고 다니셨다.

그녀의 곁에 항상 머물고 있는 새를 보며, 나는 왠지 안심이 되고는 했다.

그 새가 뭐라고...마치 내 마음이 여전히 그녀의 곁에 머물고 있는 것처럼,

아직은 내 마음을 내치지 않은 것인 양, 그렇게 안심하고는 했었다.

 

 

 

지금 나는 또다시 그 새를 들고 그녀 앞으로 왔다.

 

“어, 이거 뭐예요? 어어? 새다!!!”

 

내가 새를 가지고 나타나자, 공주님은 갑자기 무슨 일인가 싶어 놀라신 눈치였다.

 

“공주님, 공주님, 공주님!”

 

그때였다. 새가 공주님을 부르기 시작했다.

정말 놀라웠다.

나를 보고서는 “은시경”을 외치던 새가, 공주님을 보더니, 이젠 “공주님”이라고 외치고 있었다.

 

“우와~ 이거 뭐야? 어머, 너 내가 공주인지 어떻게 알았어?”

 

새장에서 조심스럽게 꺼내어 그녀의 손으로 내밀자, 새는 기다렸다는 듯이 공주님의 손으로 옮겨가 공주님 얼굴에 자신의 머리를 비벼댔다.

 

“어.....너, 나 알아? 와...신기해라.

너, 진짜 이쁘구나.”

 

이렇게 저렇게 살펴보던 공주님의 표정이 뭔가 미묘해졌다.

 

“은시경 씨, 혹시......”

 

“예?”

 

“이 새, 예전에 내가 가지고 있지 않았어요?”

 

공주님께서 기억하시는 것일까....

두근두근 심장이 뛰어대기 시작했다.

 

“제가, 선물로 드렸던 겁니다.”

 

“그랬구나........”

 

“기억....나십니까?”

 

그녀가 고개를 흔든다.

 

“근데, 나 악몽을 꿀 때가 있어요.”

 

“예?!!!”

 

아마.....그 중 한번이 내가 봤던 그 순간이었던 것 같다.

 

“저번에 은시경 씨도 봤었죠?

그 꿈 꿀 때, 옆에서 이 새가 푸드득거리고 있었어요.

생각해보니, 그 때 이 새가 “은시경”이라고 부르고 있었네요.”

 

그랬다.

그 날, 꿈 속에서 봤던 그 장면.......

그의 품에 안겨서 기억인지, 꿈인지 모를 한 장면이 떠올랐을 때,

그 때 이 새가 그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마치 내 마음을 대변하듯이 이 새는 내 곁에서 그를 불렀나 보다.

 

그는 늘....이렇게 나를 보고 있었나 보다.

늘 한결같이, 같은 모습으로, 같은 마음으로 나를 보고 있었나 보다.

 

“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말씀하세요.”

 

“그날 있죠. 내가 악몽 꾼 날......

그날 나, 잠들었을 때, 뭐...하려고 했어요?”

 

“예..예?”

 

시경의 목소리가 떨리더니, 심하게 당황하고 있었다.

재신은 그런 시경을 보니 더 놀려주고 싶기도 하다.

 

“깨어...계셨습니까?”

 

“자고 있었는데, 누가 깨웠잖아요.

이곳 저곳 막 만지면서......”

 

재신이 예쁘게 흘겨보자 시경의 얼굴이 눈에 띄게 붉어진다.

 

“그날.........”

 

“네?”

 

“공주님께 키스.....할 뻔 했습니다.”

 

시경이 정말 그렇게 대답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당황하는 그 모습이 재미있어서 놀려주려 했던 건데, 시경은 또 곧이곧대로 대답을 하고 있었다.

뭐야, 이 남자, 싶어서 그를 쳐다보다가, 도리어 재신이 당황하고 말았다.

 

그의 눈이 깊어지고 있었다.

그 눈빛을 알고 있다.

자신을 보는 눈빛. 검게 깊게 가라앉는 눈빛.

얼굴이 점점 뜨거워지는 것 같다.

 

재신은 급히 일어나서 부산스럽게 협탁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러더니 협탁 옆 의자에 앉았다.

 

“저, 은시경 씨, 이리로 와봐요.”

 

시경이 다가가자, 앉으라며 권한다.

시경의 앞에는 스케줄표가 하나 놓여 있었다.

 

“뭡니까?”

 

“음.....이재신, 은시경의 스케줄표....”

 

“예?”

 

“제대로 봐요.”

 

여러 가지가 적혀있었다.

매일매일 들어가 있는 재활운동에, 각종 행사에, 밤 운동까지 어마어마한 일과가 적혀 있었다.

그걸 보던 시경의 미간이 점점 찌푸려진다.

 

“공주님, 설마 이대로 하시겠다는 겁니까?”

 

“응. 그럴려구요.”

 

“안 됩니다!!!”

 

“에? 왜 안 돼요?”

 

“이렇게 무리하시면, 탈나실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아침, 저녁으로 재활 훈련이라니, 이건 장정들도 힘듭니다.

왜 갑자기 이렇게 무리해서 하시려는 겁니까?”

 

“여튼 난 할 거니까 뭐라고 그러지 말아요.

그리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게 아니라, 이거예요. 이거!!”

 

공주님이 스케줄표에서 어느 부분을 손가락으로 짚으신다.

그곳에는 <기억 찾기 프로젝트 1>이라고 빨갛게 쓰여 있었다.

 

“이게 뭡니까?”

 

“음....이게 은시경 씨가 나랑 할 거예요.

이재신의 기억 찾기 프로젝트 no. 1”

 

“예?”

 

“내가 말했었잖아요. 기억 찾고 싶다고.....

그럼, 노력을 해야죠. 가만히 있다고 되나?

그래서 생각해봤는데, 우리 처음부터 다시 해보는 거예요.

은시경 씨랑 나랑 처음 만났을 때부터....하나하나 다시......

그러다 보면, 나, 생각나지 않을까요?”

 

“공주님 이렇게까지 안 하셔도......”

 

“아뇨. 이렇게까지 해야 해요.”

 

재신의 목소리가 단호하다.

 

“공주님.......”

 

“만약에 말이에요.

정말 만약이에요.

혹시나 기억이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무리하시지 마세요.”

 

“아니, 최선을 다해서 노력할 거예요.

그래도 기억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이렇게 만들어 가면 되는 거잖아요.”

 

“예?”

 

“은시경 씨와 나의 시간들을, 기억 속에 묻어둔 그 시간들을,

지금, 이곳에서 다시 만들어 가면 되잖아요.

과거의 시간이 아니라, 현재의 시간으로, 만들어 가면 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이건 기억 찾기이기도 하지만, 기억 만들기이기도 해요.”

 

“공주님.......”

 

공주님은 지금 자신을 위해서, 이토록 애를 쓰시고 계셨다.

기억이 돌아오시지 않으실 수도 있다.

그건 자신도, 공주님도 모두 알고 있다.

그런데 공주님은, 그 상황까지도 아시면서 또 다른 계획을 잡고 계셨다.

새로운 기억을 만들기 위해서......

과거의 시간을 현재의 시간으로 바꾸어주는 그런 계획을.....

자신을 위해서 만들고 계셨다.

그것이 뭉클하게 했다.

자신이 뭐라고, 뭐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라고, 그녀가 이렇게까지 하시는 걸까.

그것이 미안하고, 감사하고, 또 설렜다.

 

그의 눈빛이 진해지자, 재신이 다시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아, 그래요. 오늘 저녁에 우리 첫 번째 만났던 곳으로 가봐요.

나, 일단 바쁘니까, 어서 가요.

나중에 저녁 때 보는 거예요?”

 

공주님은 무엇이 그리도 급하신지, 시경을 거의 쫓아내다시피 하시면서 문밖으로 내보냈다.

 

시경이 나가고 나자 재신은 그제서야 한숨을 내쉰다.

자신이 지금 왜 이러는 건지, 자신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의 진한 눈빛, 검다 못해 깊게 내려앉는 그 눈을 보고 있으니, 자꾸만 심장이 심하게 뛰어댄다.

그 눈빛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잠시 진정됐던 심장이 다시 뛰어댄다.

 

정말....나 왜 이럴까.......

재신은 자신의 심장을 손으로 꾹 눌러본다.

 

나, 미쳤나봐......

 

 

 

 

5

 

 

 

 

“여기예요? 진짜?”

 

시경은 재신을 태우고 홍대클럽으로 왔다.

처음 만난 곳으로 가보자는 말씀에 그녀를 데리고 왔더니, 재신은 황당하다는 표정이다.

 

“와~~ 왠지 은시경 씨와의 첫만남, 뭔가 드라마틱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여기였다고?”

 

그러더니 웃기 시작하신다.

 

“왜, 웃으십니까?”

 

“아니, 그냥, 생각하니 넘 웃겨서.

왠지 은시경 씨, 처음 나 봤을 때, 기가 막혔을 거 같아서.

여기면, 우리 아지튼데, 아마 내가 여기서 펄펄 날았을 것 같은데요?

아마 야한 옷 입고, 가발 쓰고 내가 난리도 아니었을 거야.

큭큭큭...근데 내가 아는 은시경 씨는 그런 모습 기겁을 했을 텐데.....

아, 왜 이리 웃기지? 큭큭큭.....”

 

“공주님!”

 

공주님께서 자꾸 웃으시자, 시경은 자꾸만 난처해진다.

 

“솔직히 말해봐요.

음...그 비디오에선, 나 처음 봤을 때부터 좋아했다고 말했지만,

그거, 거짓말이죠? 첨엔 재수 없었던 거죠? 그죠?”

 

그녀가 묻고 있었다.

처음부터 좋아했던 게 맞느냐고.....

재수 없었던 게 아니냐고......

사실은 둘 다 맞는 말이다.

재수 없었던 것도 맞았고, 처음부터 반했던 것도 맞고......

그 때의 그녀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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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은 처음부터 일진이 좋지 않았다.

아니, 아버지와 식사를 하지 않았다면, 그렇게까지 날이 서진 않았을지도 모른다.

왕제님은 끊임없이 김항아님을 꼬셨다며 의심하시다 못해, 계속해서 시비를 걸고 계셨고, 아버지는 사시를 다시 준비하라며 압박을 하고 계셨다.

 

왕제님 뒤치다꺼리 좀 그렇다는 말씀은, 아무래도 아들이 왕족의 심부름이나 하고 있는 모습이 못마땅하시다는 거였다.

아버지는 내가 군인인 게 못마땅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내겐 군인이 적성이었다.

아버지께서 여전히 못 받아들이고 계셨지만, 나는 이 일을 그만 둘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러나 그런 대화를 나누고 나니, 그렇게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그 와중에 공주님은 몰래 궁인들만 보내고 다른 비행기를 타시고는 일찍 도착하셨다고 했다.

뭔가 처음부터 꼬이고 있었다.

왕제님도, 공주님도, 왜 이렇게 제 멋대로 행동하시는지......

 

핸드폰 추적 결과 도착한 곳은 홍대 어느 클럽이었다.

 

정말 여기가 확실한 건지, 대한민국의 유일한 공주님이 이곳에 계신다는 것이 정말 맞는 건지, 의심이 될 지경이었다.

그러나 GPS로 확인했다는 말에 일단 들어가 보기로 했다.

 

화려한 조명에 시끄러운 음악에, 그야말로 한심할 뿐이었다.

한숨을 쉬며, 부하들에게 지배인 찾고, 공주님 찾아보라며 명령을 내리고는 나도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이 스테이지를 보며 환호하고 있었다.

얼핏 오른쪽 스테이지 쪽을 보니 노란 가발을 쓰고 빨간 자켓을 입은 여자가 마이크를 잡고 있었다.

다시 군중 안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맑은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안녕하세요?”

 

그러자 관중들이 모두 “이재신”이라고 외쳐대고 있었다.

순간 멈칫했다.

공주님의 이름을, 왜?

 

“공주님이랑 너무 닮았어요.”

 

누군가 그 여자에게 공주님과 닮았다고 외쳐대고 있었다.

 

순간 천천히 그녀를 향해 얼굴을 돌렸다.

 

“궁에서 드레스 입고 품만 잡는 그 계집애?”

 

그 여자의 말에 시경은 놀란 듯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공주님과 닮았다고?

게다가 공주님 모독까지?

 

뭐 저런 여자가 다 있지, 하는 마음으로 바라본 그녀의 무대는 그야말로 파워풀했다.

야한 옷을 입고, 무대에서 방방 뛰며 부르는 그 여자의 노래는, 저 속까지 뻥 뚫리게 만들고 있었다.

 

“내 맘대로 할 거야. 내 인생이니까.”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는 화려한 몸짓과, 사람을 끄는 마력을 지닌 여자였다.

요염한 자세로 관중들을 홀리고 있었다.

뭐지...하며 보면서도, 시경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자신의 지금 이 마음이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여자를 데려오라고 부하에게 시키면서도, 뭔가 이상한 마음이었다.

공주님과 닮은 여자가, 저렇게 야한 옷을 입고 노래 부르는 여자가,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클럽 안 방에서 근위대장님과 전화를 하고 있는 사이, 근위대원들이 그 여자를 데려왔다.

 

“여기 장난 아닙니다. 전국에 있는 양아치들이 다 모였어요.

방금전에도......”

 

그 여자가 시경을 보며 손으로 브이를 그린다.

 

“어떤 여자가 사람들 앞에서 공주님 모욕까지 했습니다.

근데 최종 발신지가 정말 여기 맞습니까?”

 

그 순간이었다.

 

“예? 새로 발신지가 떠요? 어딘데요?”

 

“여기?”

 

그 여자가 시경을 향해서 전화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공주님 휴대폰이었다.

순간 시경은 그 여자의 왼쪽 팔을 꺾고, 휴대폰을 낚아챘다.

 

“이거 어디서 났어? 바른 대로 말해!”

 

“아우, 좀 놔요!!”

 

그녀는 공주님을 닮은 사람이 아니라, 공주님이었다.

 

 

 

 

 

 

 

 

 

 

 

 

옷을 갈아입은 공주님께서 방 안으로 들어오셨다.

아까와 똑같은 사람이었지만, 다른 사람이었다.

정말 아까 스테이지 위에서 그렇게 뛰면서 노래부르던 그 사람과 동일인물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다른 모습이었다.

 

“와~ 이 사람들 진짜.......

막 입으면 공주가 아니고, 차려 입으면 공주야?”

 

그 말을 하면서 공주님은 내 앞에 바로 섰다.

그녀 앞에서 점점 경직되어가고 있었다.

미간이 심하게 찌푸려진다.

 

그런 나를 보던 공주님의 눈이 내 가슴 쪽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내 가슴을 더듬으며, 자켓의 버튼을 열려고 하셨다.

순간 나는 주먹쥔 손으로 자켓 여밈 부분을 잡아 열지 못하도록 했다.

그러면서 공주님의 손이 내 손목에 닿고 말았다.

 

 

 

 

 

 

 

 

 

 

“손 올리죠? 나 아직 경례 다 안 받았는데?”

 

내가 주저하다 다시 손을 올리자, 공주님은 내 자켓의 버튼을 열고 왼쪽 오른쪽 안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하셨다.

그녀의 손길이 느껴지자, 당황되기 시작했다.

자꾸 뒷골이 당기고, 등으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도 같았다.

왜 이러시는 건지, 지금 뭘 하고 계시는 건지, 얇은 와이셔츠 사이로 그녀의 손길이 느껴져 자꾸 머리가 쭈뼛쭈뼛 서고 있었다.

그러면서 뭔가를 찾고 있는 그녀의 얼굴을 훔쳐보았다.

그녀의 반짝이는 큰 눈을, 오똑한 콧날을, 하얗다 못해 투명해 보이는 볼을, 그리고 붉고 촉촉해 보이는 입술을, 훔쳐보고야 말았다.

또 다시 저 안 어디에선가 쿵...하고 무언가가 내려앉는 것 같았다.

 

“왕실 근위대 제2중대장 은시경 씨?

내가 분명히 아무도 보내지 말라고 했죠?”

 

“하지만 근위대장님께서....”

 

“아, 나보다 근위대장이 먼저다?”

 

순간 공주님은 한발 앞으로 다가와 내 가슴에 닿을 듯이 가까이 오셨다.

불경스럽게도 그 순간 나는 그녀의 눈을 바라보고야 말았다.

그 짧은 순간, 그녀의 큰 눈을, 그리고 그녀의 촉촉해 보이는 붉은 입술을 또다시 훔쳐보고야 말았다.

 

 

 

 

 

 

 

 

 

“그럼 나보다 근위대장을 호위했어야죠.”

 

그녀의 큰 눈이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그녀의 눈이 정말 크다고, 그러면서 정말 아름답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택시타고 가겠다는 거 빈말 같았어요?

왜 마음대로 판단해요?

허락도 없이 남의 휴대폰 위치 파악하고, 유머에 풍자도 모르고

그 정도 융통성도 없으면서 숨은 어떻게 쉬어지나

뭣보다 사람 외모로 판단하는 그 못된 버릇들은 어디서 배운 거예요?

당신들의 그 꽉 막힌 우월의식 때문에 우리 왕실이 욕 먹는 거 알아요? 몰라요?”

 

“하지만 공주님도 그다지 품위는 없으셨습니다.”

 

그녀의 말에 점점 열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녀는 지금 우리를 오해하고 있다.

아니, 그녀 자신이 우리를 어떻게 대했는지 아실까.

그녀를 찾아서 이리저리 헤매고 다닌 우리의 일을 아실까.

게다가 우리 모두를, 아니 나를 융통성도 없고,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는 이상한 인간으로 보고 계셨다..

그게 화가 났다.

그래서 앞뒤 재지 않고 말해버렸다.

그다지 품위가 없으셨다고......

또한 그것은 내 진심이기도 했다.

공주님은 아름다우셨지만, 그리고 또 야했지만, 품위는 없으셨다. 분명.

 

“와~! 품위?

옷만 치렁치렁 비단 몇 겹 휘감으면 그게 품위야?

어서 오시오. 반갑구려~.

요래야 우아한 거냐구?”

 

공주님께서는 화가 나셨는지, 조금은 아이처럼 반응하시기 시작하셨다.

심지어 왼손을 올리고 제스츄어까지 취하시면서 이야기를 하시는데 그 와중에 귀엽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저는 최소한의 품위를 말하는 거였습니다.”

 

그러나 내 입에서 나가는 말은 이런 거였다.

공주님은 내 말에 와아, 하며 감탄사를 연발하시다가, 내 오른쪽 가슴 부분을 툭툭 치시면서 “와, 이 사람 진짜 재미없다.”며 황당해 하셨다.

화가 나신지도 몰랐다. 나라는 놈에게 짜증이 나셨을 수도 있다.

 

“기다려요. 오랜만에 애들이랑 얘기 좀 하다 갈 거니까.”

 

그렇게 걸어 나가시다가 다시 돌아서셨다.

순간 팔을 내리던 우리는 멍하게 그녀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아직 나 경례 다 안 받았어요.”

 

다시 각 잡힌 채 경례를 붙이자, 그녀는 돌아서서 나가셨다.

 

그녀가 나가시고 나서도, 한참을 그녀의 뒷모습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서 있었다.

뭔지 알 수 없는 이 감정.

자신도 이해할 수가 없는,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감정이었다.

기분 나쁜 듯하면서도, 뭔가 심장은 튀어나올 듯이 뛰어대는 이 감정은 도대체 무엇인지.

지금 왜 이렇게 놀라고 있는지, 왜 이렇게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지,

내 스스로도 알 수가 없었다.

 

왕제님께 5보 앞으로를 외칠 때도, 왕제님께서 쏘신 총에 맞을 뻔한 순간도,

이렇게 놀라지는 않았다.

단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이 감정은 도대체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신나게 노래를 부르던, 가슴을 뻥 뚫리게 만들던 그 여자의 목소리.

게다가 공주님을 닮은 듯 화려하면서도 너무나 반짝이며 아름다웠던 그 여자.

그 순간 어! 라는 반응이 가슴에서 나왔었다.

공주님을 감히 모욕하다니 싶었지만,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그런데 그 여자가 공주님이셨다.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냐며, 나를 다그치며, 내 가슴을 더듬던 손길.

내 눈 앞에서 큰 눈으로 나를 똑바로 바라보던 그 반짝임.

그리고 나를 질책하던 아름답던 붉은 입술.

그 모든 것들이 저 심장 아래까지 뒤흔들고 가버렸다.

 

도대체 지금 이 상황은 무엇인지.

지금....뭐지? 하는 그런 느낌이 들 뿐이었다.

누군가에게 내 머리를 강하게 렌치당한 그런 느낌이었다.

이런 느낌은 생에 처음이었다.

무언지 알 수 없는 어마어마한 감정의 충격이 휩쓸고 지나갔다.

감정이 이성을 압도하는, 도대체 이 상황은 무엇인지....

지금 왜 심장이 이토록 뛰는지, 그리고 왜 지금 자신은 왜 이토록 안타깝고, 아쉬운 건지,

그 때는 몰랐다.

 

그저 황망하게, 알 수 없는 바람에 흔들리는 자신의 마음에 그저 놀라고 있을 뿐이었다.

성큼성큼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와서

자신의 심장을 헤집어 놓고는, 또 살랑거리며 가슴을 설레게 했다 떠나버려서 엄청난 상실감을 주는 바람처럼,

그렇게 무장해제되어 버린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 때는 몰랐다.

그저 혼란스러웠던 감정만을 가지고, 그 자리에서, 지금...난...뭐지? 라는 기분으로 멍하니 서 있기만 했었다.

 

그때의 그 마음을 알기까지 꽤 시간이 필요했었다.

완전히 알게 되었던 것은 바로 성곽이었다.

그 날이 되어서야, 왜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 그토록 가슴이 답답했었는지, 왜 그렇게 황망히 멍하게 서있을 수밖에 없었는지, 그제야 알게 되었다.

 

무장해제된 채, 그 풀린 옷 사이로, 미친 듯이 뛰어대는 심장과 이성이 마비된 듯이 멍한 기분, 흐트러진 옷매무새는, 그리고 열려서 아무렇게나 풀어헤쳐진 자켓은

그날 이미 공주님께 마음을 빼앗겨 버린 한 남자를 오롯이 보여주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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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라구요? 내가 여기서 은시경 씨 가슴 막 더듬고 했다구요? 자켓 단추까지 열고?”

 

“예.”

 

“에이...은시경 씨. 내가 아무리 기억 못한다고, 막 지어내면 안 되죠.

아무리 그래도 나, 공준데, 내가 그랬다고? 처음 보는 남자 옷 막 열고, 가슴 막 만졌다고?”

 

“정말...그러셨습니다.”

 

말도 안 돼!!!

재신은 시경의 말을 들으면서도, 설마 설마 하며 믿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저 남자가 거짓말을 할 사람도 아닌데.....

정말 내가 미친 건가.......

 

재신은 시경의 부축을 받으며, 시경의 앞에 섰다.

그의 자켓 앞 섶을 쥐고는 서서, 설마 자신이 그랬을까 계속 의심하고 있었다.

내가, 이랬다고? 처음 보는 남자한테?

 

“은시경 씨, 나, 그런 여자 아니에요.”

 

“예?”

 

갑작스런 재신의 말에 시경은 의아할 뿐이었다.

 

“나 솔직히 도저히 내가 이해가 안 돼요. 왜 그랬는지.....

아무리 화가 났다고 해도, 그건 좀 아니잖아. 에효....

어쨌든, 나 남자 가슴 막 더듬고, 옷 막 열고...그런 여자 아니라구요.

그러니까 오해하지 마요.”

 

변명을 하는 그녀가, 쑥스러운 듯 자신의 눈을 피하면서 뭐라고 꽁알꽁알 이야기해대는 그녀가 너무나 사랑스럽다.

 

정말 내가 왜 그랬지? 나 진짜 이상해. 그때 진짜 정신 나갔나봐. 술 마신 건가....어쩌고 하면서 재신은 계속 상념에 빠져 있었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시경의 눈이 자꾸만 깊어진다.

재신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머리만 굴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재신의 시선이 작게 열려 있는 문틈으로 향했다.

 

“In love with you네. 저 노래 알아요?

내가 좋아하는 곡인데.....여기선 꼭 블루스 타임 때 저 곡 틀어요.

Dana Winner란 가수가 부르는 건데, 내가 추천해 준 이후론 계속 저 곡 틀더라구요.

노래 좋죠?”

 

그녀의 시선은 틈 사이로 보이는 스테이지를 향해 있었다.

그곳에는 수많은 남녀들이 서로를 안고 춤을 추고 있었다.

 

그때였다.

시경이 옆에 있던 의자에 그녀를 앉혔다.

 

“어?”

 

그리고는 자신의 수트의 버튼을 하나씩 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자켓을 벗어서 탁자 위에 올려둔다.

재신은 지금 이 남자가 뭘 하는 걸까 싶어 놀란 듯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더니 천천히 재신의 앞에 와서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재신과 눈높이를 맞춘다.

 

헉!

 

그런데 그의 손이 재신에게 다가와 재신의 자켓의 단추를 하나하나 열기 시작했다.

 

지금 뭐하는 거냐고, 물어야 하는데, 재신은 입을 열 수가 없다.

알 수 없는 분위기가, 알 수 없는 미묘한 정적이, 그와 그녀 사이에 흐르고 있었다.

하나 하나 열려 갈 때마다 재신의 심장은 터질 듯이 뛰어대고 있었다.

마치 그가 내 옷을 벗기는 듯한, 안에 아무 것도 안 입은 나체가 되는 듯한, 그런 말하기도 힘든 미묘한 분위기.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것도 같다.

재신은 그를 쳐다볼 수가 없다.

뭐 하느냐고 물어볼 수도 없다.

그가 하는 대로 그저 내맡기면서, 조금씩 바들바들 떨리는 몸을 어떻게든 진정해 보려 주먹을 쥐는 수밖에 다른 어떤 행동도 할 수 없었다.

그의 손이 마지막 단추를 열고 다시 그녀의 어깨 위로 올라왔다.

그의 시선이 그녀를 붙들고 있었다.

다른 곳으로 피하고 싶지만, 그의 눈은 그녀를 붙들고, 자신을 바라보라며 무언의 압박을 하고 있었다.

그의 깊고 깊은 눈이, 그녀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어깨 위에서 스르륵 자켓이 내려가고 있었다.

조금은 차가운 기운이 느껴져 얇은 블라우스만 입은 재신의 어깨를 떨리게 했다.

한기 때문인지, 아니면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남자 때문인지, 재신은 가늠하기 어려웠다.

재신은 시경이 자신의 겉옷을 탁자에 올려두는 것을 그저 지켜보고만 있었다.

 

도대체 뭘 하려는 걸까.

알 수는 없지만, 재신의 심장은 자꾸만 쿵쿵 소리를 내며 뛰고 있었다.

 

재신의 앞에 선 시경이 자신의 구두를 벗었다.

그러더니 재신의 앞에 몸을 굽혔다.

 

어!

 

그가 내 발목을 잡고 구두를 벗기고 있었다.

양쪽 구두를 벗겨내고, 그의 발 위에 내 발을 올리고 있었다.

 

“은시경 씨...지금 뭐하는 거예요?”

 

그의 손이 재신의 허리를 휘감고 그의 몸으로 바짝 안아왔다.

재신은 균형을 잡으려 그의 가슴 위에 손을 어정쩡하게 올리고 있었다.

그의 단단한 가슴이 만져지자, 재신은 얼굴이 뭔가 홧홧하게 열이 올라오는 듯하다.

 

“은시경 씨.......”

 

“아까 보고 계셨잖아요.”

 

“뭘?”

 

그는 아무 말 없이 발을 떼며 천천히 원을 그리듯이 움직였다.

그가.....춤을 추고 있는 건가!!!

 

재신은 황당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이게 뭔가 싶다.

 

“설마, 지금.....춤 추는 거예요?”

 

“예.”

 

아까까지 뭔가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줄이 느슨하게 풀어지는 느낌이었다.

이 남자가 춤을 춘단다. 세상에.....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굽히질 못해서 부러질 것만 같은 이 사람이 자신을 안고 춤이라는 걸 추고 있다니, 재신은 눈으로, 아니 몸으로 느끼고 있으면서도 믿겨지지가 않았다.

자꾸 웃음이 나올 것 같은데, 그의 얼굴이 너무 진지해서 대놓고 웃을 수도 없었다.

 

“세상에, 은시경 씨, 춤도 출 줄 안다는 거예요?”

 

조금씩 움직이고는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상하지도 않았다.

그는 자연스럽게 그녀를 리드하고 있었다.

아니다. 재신의 발은 시경의 발 위에 있으니, 그를 따라 재신도 춤을 추는 모양새를 띠고 있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열려진 문의 틈 사이로 플로어의 음악이 감미롭게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재신은 시경의 목 뒤를 두 팔로 감싸 안았다.

시경이 순간 움찔하는 듯도 하지만, 재신은 그런 시경을 향해서 살풋 웃어준다.

그 모습에 시경은 또다시 빠질 듯이 재신의 눈만 바라보고 있다.

 

“이런 건, 어떻게 알아요?

왕년에, 블루스 좀 땡겼구나~”

 

“흠흠....굳이 직접 하지 않아도, 보면 할 수 있습니다.”

 

“응? 뭘 봐요? 그럼, 춰본 적 없단 말이에요?”

 

“예.”

 

“근데, 어떻게 춰요? 지금도 리듬은 맞는데?”

 

“영화 같은 데서 본 걸, 대충 흉내내는 겁니다.”

 

“은시경 씨는 마음만 먹으면 뭐든 할 수 있구나....”

 

“예?”

 

“풋~ 놀리는 거 아니에요. 칭찬이에요. 칭찬!”

 

 

 

In love with you / Dana Winner

 

In love with you, no one but you

Can't live without you I just need to be with you

 

Just one more time We'll make it right

You are the only one I care for

 

To feel your arms around me

To know your loves around me

I'll give all you need

I'm so in love with you

 

Your are for me my destiny

We've got to work it out

It's only you and me

 

Don't let me down

Don't play around

I only want you to be with me

 

To feel your arms around me

To know your loves around me

I'll give all you need

 

I'm so in love with you

I'm so in love in love with you

Can't live without you

 

I just need to be with you so in love

No one but you

Can't live without you

I just need to be with you

In love with you

 

 

사랑에 빠진 여자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노래 속에서 그와 그녀는 서로를 안고 춤을 추고 있었다.

서로를 품에 안고,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그렇게 서로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재신은 그의 목에 두 손을 감은 채,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단단한 그의 가슴이 느껴졌다.

얇은 셔츠 사이로 그의 심장 소리가 느껴졌다.

얇은 옷 사이로 서로의 심장이, 서로의 가슴이 맞닿고 있었다.

 

그렇게 영원히 이어질 것만 같던 시간이 멈췄다.

시경이 멈춰 서 있었다.

 

“은시경 씨?”

 

그가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왜?”

 

“다른 데 보지 마세요. 공주님.”

 

“네? 갑자기?”

 

“다른 남자 보시는 거 안 됩니다. 저만...보세요.”

 

나....미쳤나봐..........

그의 말을 들으며, 재신의 심장은 그야말로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그의 말이 자꾸만 두근거리게 만들고 있었다.

 

“저만 보세요.”

 

“은시경 씨......”

 

“다른 남자도 보시지 마시고 저만 보세요.

저. 소유욕도 질투도 심합니다.

오로지 저만 보셔야 합니다.”

 

재신의 심장이 자꾸만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가 들을까 겁이 날 정도로 자꾸만 뛰어대고 있었다.

 

“한 가지 말씀 안 드린 게 있습니다.”

 

“응?”

 

“그 때, 공주님 입술만...보였습니다.

지금도 공주님 입술만 보입니다.”

 

그의 눈이 타들어가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내 입술에 머물고 있었다.

 

“공주님의 눈도, 손도, 입술도

모두 제겁니다.

이것도 한 달간 제 겁니다.”

 

그렇게 그의 입술이 조금은 강하게 다가왔다.

달콤하게, 때로는 가슴을 떨리게 그렇게 내려앉았다.

자연스럽게 내 벌어진 입술 사이로 들어와 마치 자신의 것인 양, 그는 내 혀를 건드렸다.

얽혀들고, 쓰다듬으며, 자꾸만 헐떡이게 만들고 있었다.

그의 단단한 팔에, 그의 단단한 가슴에 안겨 있는 이 순간, 그의 심장 소리를 느끼며, 그의 입술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의 입술은 야했다.

자꾸만 내게서 신음 소리를 내게 만들었다.

내 입술과 혀를 섬세하게 쓰다듬으며, 그는 이 모든 것이 자신의 것이라는 듯, 자꾸만 소유욕을 드러내고 있었다.

 

 

 

In love with you, no one but you

Can't live without you I just need to be with you

 

Just one more time We'll make it right

You are the only one I care for

 

To feel your arms around me

To know your loves around me

I'll give all you need

I'm so in love with you

 

 

사랑에 빠진 여자가 부르는 아름다운 노래가 흐르고 있었다.

그의 팔에 안겨, 그의 사랑에 빠져 허덕이는 한 여자도 노래처럼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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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너무 오래 걸렸습니다.

늦어서 너무 죄송합니다. 용서하시길.....

49장이니, 그걸로 조금이라도 봐주시길......

 

1

 

이번 회는 복습이 필요한 회라서, 몇 번이나 돌려 보며, 거의 나노로 분석해보았습니다.

특히 클럽씬은 정말 초단위로 끊어서 표정을 살피고, 대사를 치고, 진짜 몇 번을 복습했는지 모른답니다.

<내가 좋아하는 은시경2>에 이미 분석해 놓기도 했지만,

또다시 보고 다시 복습하고, 한 장면 한 장면마다 미묘한 변화들을 글로 다시 옮기고 하느라

의외로 시간이 너무 많이 들었답니다.

그리고 이 내용은, 비디오에 은시경이 스스로 밝혔던 “처음부터 좋아했습니다.”라는 발언에서 시작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은시경 스스로 말했답니다. 처음 봤을 때부터 좋아했다고.

그래서 도대체 어느 시점일까,...은시경 스스로의 말을 빌려 찾아보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표정이 참 다양하더라구요.

황망하기도 했고, 분명 화를 내는 표정이 나올 줄 알았는데, 의외로 미간이 찌푸려지지 않기도 했고....

이건 정말 천 가지 얼굴, 만 가지 감성, 조배우라 가능한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제 이야기라는 것을 밝혀 드립니다.

이 글은 상플이니, 그것도 일차적으로는 제 힐링을 위한 상플이니, fiction임을 감안하고 봐주시길.......

 

2

 

아마, 조금은 눈치채셨을 겁니다.

왜 공주님께서 기억을 찾지 못하셨는지....

1, 2부 진행되어 오면서, 많은 분들의 원망?을 들었습니다.

당장 공주님 기억을 찾게 하라고....

심지어 어떤 분은 계단에서 밀어라, 머리를 망치로 강타해라...등등 다양한 의견들도 많으셨습니다. ㆅㆅ

그러나 여튼 전 어떤 상황에서도 꿋꿋하게 견디며 공주님의 기억은 늘 답보 상태로 만들었다지요.

그건, 이 3부를 위해서였습니다.

은시경의 눈으로 재해석해 보고 싶은 제 욕심 때문이기도 했다지요.

물론 공주님께서 3부까지 기억을 못 찾으시는 데는 중요한 이유가 있기는 합니다만,

지금 말씀드린 이 이유 역시 무시 못 할 이유입니다.

두 사람은 이제 2년 전 과거를 현재로 만들어오는 작업을 함께 하게 되겠지요.

그래서 과거를 현재로 가져오는 법을 서로가 알게 되겠지요.

당.기.못에서 “기억”은 키워드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정말 중요한 키워드이자, 동시에, 중요한 키워드가 아니기도 하지요.

 

3

 

제가 그 사이에 슬럼프의 구덩 속을 헤매다가 나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너무 늦었지요.

죄송합니다.

그리고 위로와 격려, 너무나 따뜻하게 받았습니다.

울컥대기도 했다지요.

초심으로 돌아가겠다고 말씀드리면서 3부를 새로 정리했었습니다.

그러면서 조금씩 슬럼프를 벗어난 듯합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초심으로 돌아갈까 합니다.

맨처음 제가 이 상플을 시작한 이유로 돌아가서, 제 마음의 치유를 위해, 제 힐링을 위해 행복한 글쓰기로 돌아갈까 합니다.

말씀드렸다시피, 당.기.못의 은시경은 제 로망의 결정체가 될 듯합니다.

처음부터 더킹의 은시경은 제 로망이기도 했습니다.

수많은 은시경의 모습 가운데, 특히 제 로망의 부분을 극대화시켜 보여드리게 될 듯합니다.

일단 제 스스로는 시놉을 보는 것만으로도 혼자 좋아서 히죽히죽대고 있습니다.

빨리 쓰고 싶지만, 전 연말까지 죽음이라서뤼.....

또 기약 없는 다음 편이 되고 마네요.

그래도 절대 중단은 없다는 거.

전 아직 힐링이 되지 못했다는 거.

제 스스로가 힐링이 될 때까지 아마 쭈욱~!! 계속 될 거라는 거.

말씀드리고 싶네요.

 

4

 

참, 35만 힛 때 드리기로 한 단편요. ㅠㅠㅠㅠㅠ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ㅠㅠㅠㅠㅠ

이번에 일이랑 슬럼프랑 겹쳐서 도저히 쓰질 못했답니다. 용서를.....

 

그리고 포맨 노래는 젬마님께서 보내주셨다지요. 정말 감사합니다.

너무나 큰 위로와 격려를 받았답니다. (__)

이 노래를 들으며 20회의 얼개가 완전히 잡힐 수 있었답니다.^^

 

또 In love with you는 허브향기님께서 추천해주셨어요.

음방처럼 제게 많은 노래를 소개해주셔서 늘 감사할 따름입니다.

이 노래는 홍대 클럽씬에서 꼭 들어주시길.....

 

그 외에도 많은 댓글로 저를 격려해주시는 많은 님들...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제가 요즘 바쁘다는 핑계로 답글도 제대로 못 드리고 있는데도

이리 의리있게 찾아와주시고 토닥토닥해주셔서 진정 감사합니다.

아무리 늦어도 꼭 답글 달겠습니다.

 

늘 감사드립니다.

여전히 이 징한 글, 이 지루한 글, 계속해서 기다려주시고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이번 주도 희망차게 시작하시길.....(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