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 연합뉴스>
대한민국에 태어나줘서 고맙고 미안한 사람이 두 사람이 있다.
한 사람이 김연아 선수,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이 <무한도전>의 김태호 피디.
이 둘에게는 그저 고맙고 미안하다.
이 나라에 태어나줘서, 그리고 이렇게 동시대에 있어줘서, 살아가는 힘을 줘서 너무나 고맙고 미안하다.
이 나라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훨씬 더 쉽게 날아오를 수 있는 사람들일 텐데,
그 어려운 환경을 잘 이겨내주고, 또 이 척박한 땅에서 수많은 의미있는 일들을 해줘서 고맙고 미안할 따름이다.
당기못을 쓰면서 연아의 경기를 지켜봤다.
쇼트도, 프리도, 모두 지켜보면서, 빙상 위에 서 있는 연아를 보면서, 왠지 자꾸만 뭉클해졌다.
7살 때부터 지금까지 그렇게 혼자만의 싸움으로 올라 온 이 자리.
게다가 밴쿠버 올림픽을 목표로 달려왔다가 그 모든 목적을 이룬 후, 허망해졌을 연아.
다 이루고 났을 때의 허망함은 겪어본 사람만이 알 것 같다.
목표가 사라졌을 때, 모든 것을 이루었을 때, 그것도 20대의 초반에 그 어린 나이에 세계 최고가 되어버렸을 때,
그 누구나 공황상태가 될 것 같다.
연아가 걸어온 길은 대한민국의 피겨의 역사다.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낸 길. 스스로 만들어낸 역사.
그리고 연아는 또다른 역사를 쓰고 있다.
그것이 내게는 감동이다.
다 이루었는데, 또다른 도전을 시작하는 연아 때문에 정말 뭉클했다.
연아의 프리 경기를 보고 나서, 남편과 함께 밴쿠버 올림픽 프리 경기 영상을 다시 봤다.
클린 경기 후, 눈물을 흘리던 연아를 보며, 나는 또다시 눈물을 흘렸다.
저 아이의 눈물이 무슨 의미인지 알 것만 같았다.
너무나 성실하게 자신의 길을 온 사람만이 흘릴 수 있는 눈물인 것 같았다.
그랬던 연아가 또 다시 빙상 위에 섰다.
다시 돌아오지 않아도 되는, 이제 내려가는 길밖에 없다고 말하는 그 길,
잘 해도 제자리 걸음으로밖에 되지 못하고, 냄비 근성의 국민들은 또다시 저울질 해댈 것이며,
조금이라도 못하면, 마음가짐이 안 되니 어쩌니 하면서 안티로 돌아설 그 수많은 악플러들.
이 아이가 걸어온 길에 대한 생각보다는, 그저 순간의 감상에 휘둘리고, 마치 이 아이를 민족주의의 희생양으로 삼는 사람들.
그러나 그보다도 더 더 많은 사람들이 연아를 응원한다.
그래도 연아는 고맙고 미안한 존재다.
이런 나라에, 아무 것도 해주지 못하는 약소국에 태어나줘서 너무나 미안하고,
아무 것도 도움이 돼주지 못해서 미안한데, 심지어 국가적인 민족주의적인 무게감까지 얹어서 이 아이의 목을 죄고 있어서 미안하고,
그러나 스스로의 힘으로, 자기 자신을 이기는 그 엄청난 정신력으로 이겨내줘서, 그렇게 당당하게 길을 열어줘서 너무나 고마운 존재다.
지금도 그렇다.
연아는 지금 메달을 따기 위해서, 최고의 자리에 다시 앉기 위해서 저 자리에 서 있는 게 아니다.
연아는 새로운 도전을 하고 있는 중이다.
최고의 자리에 앉고 나서도, 스케이팅을 할 수 있는 법을,
자라나는 후배들에게 또 다른 기회를 주기 위해서, 그 어려운 길 위에 다시 서려고 한다.
피를 깎는 고통 속에서 다시 근육을 만들어, 그 자리에 서 있는 연아를 보고 있으니,
그 도전 때문에, 감동이 된다.
연아의 도전은 메달이 아니었다.
지금 이 순간.
엄청난 부담감을 이겨내고, 스스로 스케이팅을 다시 하려는 그 정신력 자체가 어마어마한 도전이다.
그저 빙상 위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감동이다.
연아는 묵묵한 도전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1등이 목표가 아니기에 더 힘들고 외로운 그 도전에 존경을 표한다.
안도현 씨의 시처럼 "외롭고 높고 쓸쓸한".....그러나 그래서 더 아름답고 고귀한 도전.
연아 때문에 힘을 얻는다.
생의 도전을 어떻게 해나가야 하는지, 또 배우고 있다.
그 자리를 지켜주고, 묵묵히 견뎌주고, 성실하게 이어가는 그 자세를,
연아를 통해 배우고 있다.
묵묵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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