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나의 이야기

벽 쌓기

그랑블루08 2012. 12. 17. 15:39

 

 

 

 

요즘 내 컨셉은 벽쌓기.

나 자신을 내 안에 가두어 놓기.

그런 것인 듯하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 되어 있고, 내가 하고 싶은 건 너무 많을 때,

나는 리스트를 작성해 본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

내가 지금 끝내야 하는 일은 무엇인가.

그러다 보면, 답이 나온다.

 

시간은 너무나 한정적이니, 그 시간 안에 내가 꼭 하고 싶고, 해야 하는 일들을 정리해본다.

그러고나면, 늘 답이 나왔다.

하나를 하기 위해서,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

쓰고 싶다면, 그 쓰는 것을 위해서, 내 다른 즐거움을 포기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쓰기 위해, 읽는 즐거움을 포기했다.

두 가지를 다 할 수는 없었다.

지금 내 스케줄에, 지금 내 업무에, 두 가지를 다 할 수는 없었다.

써야 할 시간이 없다면, 써야 할 시간을 확보해야만 했다.

 

그래서 나는 놀고 싶어하는, 읽고 싶어하는 나 자신에게 벽을 쌓았다.

벽 안에 꽁꽁 넣어두었다.

그 속에서 나는 일을 하고, 때로는 글을 쓰고, 또 때로는 글적대는 내 잡소리도 올리고는 한다.

왜냐하면, 숨이 막히니까, 계속 일만 할 수는 없으니까,

그렇게 블록이라는 내 대나무 숲에 이렇게 뭐라고 끄적끄적, 군시렁군시렁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야기가 하고 싶어서, 또는 일하다가 머리가 터지겠다 싶을 때는,

주신 댓글에 답글을 단다.

바빠서 달지 못했던 글에 답글을 달면서, 나는 또다시 힘을 얻고 소통을 한다.

물론 그 댓글이 2~3달 전에 주신 댓글이라는 것이 함정이다.

아마 쓰신 분들은 기억 못하실 거다.

그래도 나는 그 댓글에 답글을 단다.

 

원래 글을 쓸 때, 답글은 늘 그 다음 회를 올리고 나서 달고 있다.

답글을 달다 보면, 스포가 나오기도 하고 해서

결국 그 다음 회를 올린 후, 그 전 회의 답글을 다는 것이 훨씬 이야기할 수 있는 반경이 넓었다.

그래서 오랫동안 이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이렇게 몇 달씩 밀리기도 하는 것 같다.

 

일을 하다가도, 쉬는 시간을 정해놓고, 규칙적으로 놀고는 한다.

좀 더 생산적으로 놀기 위해서, 내 블록 안에서 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커뮤니티는 내가 감당할 수가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다 끊어내고,

이제 내 블록 하나라도 제대로 관리하기 위해서,

이 쉬는 시간에, 이렇게 여기서 수다 떨면서, 또 글을 올리면서, 또는 답글을 달면서

이렇게 시간을 사용하고 있다.

 

외로울 때도 있다.

조금은 갇혀진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그래도 감수해야 할 부분이란 생각도 든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너무나 한정적이다.

이 주어진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서는,

내 마음이, 내 글이 발산되지 않도록 나를 다잡아야 한다.

내 안으로 집어 넣고, 또 집어 넣어, 수렴되어야지만 글이 나온다.

발산되는 순간, 결국 흩어지고 만다.

그것 때문에 읽는 즐거움을 버렸다.

 

모 작가님께서 내게 말씀해주셨다.

글은 나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철저하게 외로워져서 철저하게 싸워내는 싸움이라고......

철저하게 외롭게 세상과 싸워내 보라고....

그것은 혼자만의 싸움이라고......

그걸 이겨내야 글을 쓸 수 있다고 말이다.

 

그 분은 정신적인 상황을 말씀하신 것이겠지만, 나는 물리적인 상황을 그렇게 만들었다.

 

결국 그러고나니, 그 와중에도 시간이 나오긴 했다.

모든 걸 끊어내고, 나를 벽 안에 가두고 나니까, 시간이라는 것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럴 때마다, 힘들 때마다, 또는 외로워질 때마다 자투리로 글을 썼다.

시간이 없다는 건 변명일 뿐이니까,

자기 전에도 아이패드에 글을 쓰기도 했고,

자투리 시간에 손으로 메모하며 쓰기도 했다.

시간은 내가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단지 그것은 내가 시간을 지배하느냐, 아니면 시간에 지배당하느냐의 문제였다.

 

그렇게 일만 하다가 머리가 터질 때쯤, 블록에 글도 올리고,

또 주신 댓글에 답을 달았다.

아주 천천히.......

몇 개씩만....

그렇게 아주 오랜 시간을 들여 답글을 달았다.

마치 한 분 한 분과 직접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몇 번이나 주신 댓글을 곱씹어보며,

작지만 나도 답글을 달아보며,

그렇게 큰 힘과 격려를 얻었다.

 

나는, 외로움이라는 녀석과 아주 처절하게 대면하고 있는 중이다.

그 외로움은 내 스스로 만든 놈이다.

내 스스로 벽을 쌓고, 내 스스로 내 안으로 수렴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다.

그러다 문득 숨이 막혀올 때쯤,

시간의 대화를 나누듯이 답글을 달며, 그렇게 다시 숨을 쉬고는 한다.

 

어쩌면 이것이

내가 아직도, 블로그를 운영할 수 있는 힘인 것 같다.

아주 천천히 느리게 그러나 오랫동안 갈 수 있는 힘.

 

생은 마라톤이고,

글도 마라톤이다.

마라톤처럼 달려갈 뿐이다.

조금은 느린 듯, 조금은 천천히, 그러나 변함없이......

그렇게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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