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과 삶/시와 풍경

광야

그랑블루08 2012. 12. 29. 16:38

 

<사진출처 : http://cafe.daum.net/ljk3830/5tAf/633?docid=tFez|5tAf|633|20091208060441&srchid=IIMelY8K200#A1575A90F4B095286314D6B&srchid=IIMelY8K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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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 - 이육사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나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눈이 내린다.

광야 같이 얼어붙은 이곳에

어마어마한 양의 폭설이 내린다.

 

이 눈들은

겨우내 억지로 고개를 내밀고 있던 새싹을 덮어버리고

꽃피우려던 봉우리를 가둬버리고

무서운 기세로

이 세상을 얼려버린다.

 

그러나 이 광야에서

씨를 뿌리는 사람이 되어,

육사의 말처럼,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

 

나를 다스리고,

내 주변을 다스리고,

그리하여 이 광야를 다스릴 수 있도록,

상처받고 아픈 마음을 동여맬 수 있도록,

 

고통스러워도 절망하지 않는 용기를,

무너뜨려도 다시 일어서는 믿음을,

가두어져 있어도 길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배우려 한다.

 

 

하얗게 내린 눈 위로,

이제 길은 보이지 않는다.

루쉰의 말처럼,

처음 딛는 대로 길이 된다.

누군가 따라올 수 있도록, 그런 길을 갈 수 있도록,

신중하게, 정직하게, 진실되게

한 걸음 떼어야 한다.

 

또 눈이 내린다고 한다.

 

그러나 길은

그것을 덮는 자의 것이 아니라,

그 길을 내는 자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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