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과 삶/시와 풍경

말하지 않아야 할 때

그랑블루08 2011. 7. 20. 04:30

 

 

 

빛을 모아들이는 것, 이것이 사랑이다

동전만한 잎사귀의 멍들, 그곳에 각자의 원을 그려대는 것

 이 동작의, 복습의 유희성

화법을 배워라 누군가 말했지, 장기를 둘 땐 장기를 말하지 않는다

사랑할 땐 사랑이란 말 절대 하지 마

 

- 고종렬의 <광합성에 대한 긍정의 시> -

 

 

 

장기를 둘 땐 장기를 말하지 않는다.

사랑할 땐 사랑이란 말을 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삶을 살고 있는 지금, 삶을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

 

장기를 둘 땐 장기를 말하지 않고,

운전을 할 땐 운전을 말하지 않고,

일을 할 때는 일을 말하지 않고,

글을 쓸 때는 글을 말하지 않고,

삶을 억척같이 살고 있을 때는 삶을 말하지 않고,

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는 노래를 말하지 않고,

 

가장 큰 문제는 말이 먼저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미친 듯이 그 속에 빠져 있으면,

그것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 내가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뭔가를 말해보고 싶어하는 것은

내가 아직 그 속에 완전히 최선을 다해 매몰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를 재워놓고, 청소를 시작했다.

마치고 씻고 나오니 새벽이 오려 한다.

삶을 구성하는 참 많은 것들이 있다.

적어도 오늘 나는 네 시간에 걸쳐 이 밤에 청소를 해댔다.

그래도 그 네 시간 동안 나는 청소를 말하지 않았다.

 

나의 일도, 나의 삶도, 나의 글도

그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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