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킹투하츠와 은신상플/(은신) 단편·조각

(은신/단편) Cherry blossoms ending 벚꽃 엔딩

그랑블루08 2013. 3. 21. 14:07

 

(은신/단편) Cherry blossoms ending 벚꽃 엔딩

 

 

 

 

<예전에 조정석 갤러리에서 주운 하늘만큼님이 만드신 짤입니다. 혹시 문제되면 알려주세요. 자삭할게요. 근데 느무느무 이뻐서 이렇게 빌려서 올려봅니다. (__)>

 

 

 

 

* 이 이야기는 <더킹투하츠>에서 재강전하내외가 안면도로 휴가를 떠나시던 그 부분입니다.

공주님이 장을 보시고 혼자 차를 몰고 휴가 장소로 가던 그 때.

은시경에 전화해서 같이 가자고 말하던 그 때,

그 때의 이야기입니다.

김봉구의 테러도, 은규태의 실수도 없는.......

오로지 그들만이 있는 은신의 세계입니다.

 

 

* 배경음악에서 벚꽃엔딩 반복을 눌러주시고 이 글을 읽어 주세요.

(반복을 누르시면, 계속 반복해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벚꽃 엔딩 - 버스커 버스커

 

그대여 그대여 그대여 그대여 그대여

 

오늘은 우리 같이 걸어요 이 거리를

밤에 들려오는 자장노래 어떤가요 오예

몰랐던 그대와 단 둘이 손 잡고

알 수 없는 이 떨림과 둘이 걸어요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우우 둘이 걸어요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우우 둘이 걸어요

 

 

그대여 우리 이제 손 잡아요 이 거리에

마침 들려오는 사랑 노래 어떤가요 오예

사랑하는 그대와 단 둘이 손잡고

알 수 없는 이 거리를 둘이 걸어요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우우 둘이 걸어요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우우 둘이 걸어요

 

바람 불면 울렁이는 기분 탓에 나도 모르게

바람 불면 저편에서 그대여 니 모습이 자꾸 겹쳐

오 또 울렁이는 기분 탓에 나도 모르게

바람 불면 저편에서 그대여 니 모습이 자꾸 겹쳐

 

사랑하는 연인들이 많군요 알 수 없는 친구들이 많아요

흩날리는 벚꽃 잎이 많군요 좋아요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우우 둘이 걸어요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우우 둘이 걸어요 오예

 

그대여 그대여 그대여 그대여

 

 

 

 

 

 

1

 

 

 

 

 

 

 

 

 

 

 

오면 될 것을.....

참 누가 군인남자 아니랄까봐.....

 

재신은 전화를 끊으며, 한숨을 쉬었다.

 

그러다 문득 생각한다.

 

웃었나?

 

문득 귀에 남아 있는 잔상을 따라 가보니, 그의 웃음이 담겨 있는 듯도 하다.

정말 웃었을까.......

이런 기회 없다는 말에......대한민국 국왕전하께 잘 보일 수 있는 기회 흔치 않다는 말에......

그가, 피식, 웃음을 지었던 걸까.

 

나도 참, 별 웃기는 생각을 다하네.

 

재신은 머리를 세게 흔들었다.

복잡한 생각들은 가라~~~

영국 유학하며 자신을 즐겁게 해준 무한도전의 노라처럼 혼자서 목소리 흉내까지 내어본다.

애써 운전에 집중해 보려 한다.

 

 

 

 

 

 

 

 

“야, 재신아, 너 진짜 많이 늘었다?”

 

“우리 아가씨, 어머님 닮아서 원래 요리 실력 대단하셨는데, 당신은 새삼스럽게.......”

 

“참, 그랬지? 우리 재신이.......”

 

아빠 같은 큰오빠도, 늘 재신에 대해서는 우쭈쭈 모드인 새언니도 재신의 음식에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의외로 재신은 조용하다.

뭔가 딴 생각에 빠진 듯한 재신이 조금은 이상한 재강은 슬쩍 운을 떼 본다.

 

“우리 공주님, 뭐, 고민 있니?”

 

“어? 고민은 무슨...그런 거 없어.”

 

재신은 당황할 때면, 사람 눈을 바로 보지 못하고, 빗겨서는 버릇이 있다.

지금도 눈도 못 마주친 채, 빗겨 선다.

 

“논문 때문에 걱정이야?”

 

“어휴......그렇지. 논문....으으으으~~ 괴롭다 정말......”

 

정말 논문 때문인지 머리를 쥐어뜯는다.

그러나 상황을 봐서는 방금 생각난 듯한 태도였다.

분명 다른 일이 있다.

재신의 일이라면 모든 레이더가 총동원되는 재강인지라, 재신의 작은 변화도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뭔데?”

 

“있지. 오빠.......도대체 남자들.....왜 그런 거야?”

 

오호...남자라......재강의 눈빛이 반짝인다.

재강이 보기에 재신은 남자에게 관심이 없었다.

귀찮아 한다는 것이 맞았다.

그도 그럴 것이 어려서부터 늘 관심의 중심이었다.

많은 남자들이 재신을 좋아했지만, 재신은 늘 시큰둥했다.

사랑받는 데 익숙한지도 몰랐다.

아니면, 자신의 조건 때문에 다가온다고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재신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남자들에 대해 귀찮아서 괴로워했지, 구체적으로 어떤 남자에 대해 관심을 나타낸 적은 없었다.

 

우리 막내가 연애를 하려는 건가...드디어.....

 

“뭐가?”

 

“도저히 이해가 안 돼서 말이야.

내 눈을 잘 못 쳐다봐. 그런데 내가 안 보고 있으면, 또 나만 보고 있어.

그러다가 말이야. 나랑 눈이 마주치면, 얼굴이 빨개져.

그런데 있잖아. 내가 어떻게 하자고 말하면, 또 절대로 안 들어주고 자기가 맞다 싶은 대로 다 행동하고......

막 까칠하고.....

왜 그러는 거야?

나, 싫어하는 거야?”

 

“음....재신아......너, 그 남자한테 관심 있는 거야?”

 

“관심은 무슨? 아니야, 그런 거.

오빠도 알잖아. 나, 남자 귀찮아 하는 거.

솔직히 말하면, 좀....존심 상하는 것도 있어.

흠흠......대한민국 유일한 공준데, 내 말이 안 먹히니까....

내가 작정하고 웃으면, 다 뻑이 가는데 말이야.

나......공부하느라 늙었나? 그래?”

 

“아유~ 아가씨,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이렇게 이쁜 아가씨가 늙긴 뭘 늙어요.

그런 말씀은 아예 하질 마세요.”

 

그때까지 둘의 이야기를 웃으며 듣고 있던 현주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끼어든다.

 

“아니에요. 언니나 오빠니까 그렇게 말해주는 거죠. 흑...나 늙었어.

요즘 주름도 늘었다고.......

미모를 위해선 공부를 접어야 하는 걸까......에휴......”

 

“도대체 누군데? 영국에서 만난 사람이야?”

 

재강은 막내 동생이 얘기하는 그 남자가 누군지 궁금하기만 하다.

이 녀석이 정말 연애를 하려는 건지.....

자기 스스로는 지금 모르고 있지만, 분명 재신이는 관심이 있는 거다.

오빠로서의 직감이었다.

 

“....음음......대충 그렇게만 알아 두세요.

여튼 오빠, 오빠는 남자니까...빨리 대답해봐.

그 남자 도대체 뭐야? 왜 그러는 거야?

얼굴은 왜 빨개지고, 또 눈은 왜 피해? 그러면서 왜 까칠한 건데?”

 

“음......그 남자는 니가 공주라는 거, 아는 거니?”

 

“응. 알지. 당연~. 대한민국 공주님을 모르다니~~ 간첩이지. 그건.”

 

“공주라서 그런 거지. 부담스러운 거 아닐까?

아무리 같이 유학하며 공부하고 있다고 해도, 넌 공주니까.....

로열 패밀리가 신기한 걸 수도 있고.......”

 

“흐음....그래, 그런 거 같애. 칫~

나, 이제 한물 갔나 봐. 오빠.......

어떻게 내가 웃어주는데도 아무렇지 않을 수가 있어? 응? 큰오빠?”

 

“그러니까, 이제 아무나한테 웃어주지 말고, 오빠한테나 웃어줘라.”

 

“칫칫~~!!”

 

오빠의 말을 듣고 보니 그런 것 같았다.

자신을 계속 지켜보는 것은 직업이니 그런 것이고, 눈을 마주치면 피하는 것도 사실 왕족을 빤히 보는 건 불경이기도 하니까....

그 남자는......뼛속까지 충성스러운 군인이니까.....

에휴......

뭔가 속이 막힌 듯, 답답하다.

 

 

 

 

 

2

 

 

 

 

 

 

 

“문자 왔숑~ 문자 왔숑~”

 

재신의 휴대폰에서 문자음이 울렸다.

시경이었다.

 

<밖에서 대기하고 있습니다. 편하실 때 나오시면 됩니다-제2중대장 은시경 드림>

 

뭐야, 문자조차 이렇게 딱딱해.

 

재신이 입을 갑자기 삐죽대자, 재강은 무슨 일인가 물어본다.

은시경이 밖에서 대기하고 있다고 하자, 재강은 무슨 생각인지 같이 나가자고 한다.

그러면서 재신이에게도 더 늦기 전에 가라고 난리다.

 

“아, 전하! 충.성!”

 

“충성. 은시경 대위, 온다고 수고 많았어요.

우리 휴가에 은시경 대위가 수고가 많군요.”

 

“아, 아닙니다. 당연히 제가 할 일입니다.”

 

시경은 이렇게 빨리 공주님께서 나오실 줄은 몰랐다.

또 전하내외분까지 같이 나오시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늘 그렇듯이, 따뜻하게, 그러나 사람 속까지 뚫어보는 눈으로 살펴보신다.

그래서 시경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킨다.

 

“우리 아가씨, 조심해서 잘 모셔다 드려요. 부탁드려요.”

 

현주가 옆에서 한 마디 거들자, 시경은 연신 고개를 숙였다.

 

“아, 이제 들어가. 두 사람 다.

어서어서~ 신혼 느낌을 되새기세요.

대한민국은 잊으시고.......”

 

“그래, 재신이 너도 은시경 대위 차 타고 가.

차는 놔두고......”

 

“알았고, 내가 알아서 합니다~~~ 들어가세요. 얼른 얼른~~”

 

재신은 오빠내외를 등을 떠밀다시피 해서 별장 안으로 밀어 넣는다.

그렇게 인사를 하는 사이, 시경은 무전기로 근위대원들의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그래, 다들 경계 신경 쓰고. 외부인 접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막도록 해.

30분 간격으로 주변 순찰 하는 거, 잊지 말고.”

 

명령을 내리고 있는 시경을 재신은 물끄러미 바라본다.

일하는 남자. 뭔가 명령을 내리는 남자. 일에 집중하는 남자.

미간이 좁혀져 있다.

재신의 시선을 느꼈는지, 시경이 돌아보다가 재신의 눈과 마주치고 말았다.

마주쳤다고 생각하던 그 순간, 시경은 얼굴을 바로 돌렸다.

그러나 그 짧은 순간, 재신은 시경의 시선을 느꼈다.

자신의 저 안 깊숙이 들어와 앉던 시경의 시선을.....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검은 눈동자가 마치 재신의 가슴 저 안까지 닿은 느낌이다.

 

“제 차로 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공주님 차는 근위대원들에게 가져오라고 하겠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던 재신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공주님.”

 

“내가 가져갈래요.”

 

“이미 해가 진데다 밤인데, 운전하시기 힘드십니다.”

 

“싫어. 가져가야 돼요. 내일 차 써야 한다구요.”

 

“근위대원들에게 일찍 갖다 놓으라고 하겠습니다.”

 

그 말을 듣던 재신이 또 고개를 흔든다.

 

“내가 일부러 가지고 온 차예요. 근위대원들도 할 일 많은데, 그런 것까지 시키고 싶지 않아요.”

 

“그러면 제가 공주님 차를 운전해서 가겠습니다.”

 

“에에? 은시경 씨도 차 쓸 일 있을 텐데 귀찮아지잖아요.

올 때도 내가 운전했는데, 갈 때도 내가 하면 돼요.”

 

공주님은 말린다고 들으시는 분이 아니셨다.

본인이 그렇다고 생각하면, 밀고 나가버리신다.

왕제님과 성격이 똑같으시다.

시경은 한숨이 절로 나온다.

 

“정, 그러시면, 제가 뒤를 따르겠습니다.

중간에 피곤하시면, 언제든지 말씀하세요.”

 

재신은 그 말에 방긋 웃는다.

결국 내가 이겼다.

참 별 것 아닌 일에 이렇게 좋아할 일인가 싶지만,

왠지 이 남자는 늘 내가 말하는 것에 반대하고 시작하니까, 이렇게 한 걸음 물러서주는 것이 좋았다.

 

자신도 모르게 아름답게 지어진 미소에, 시경의 얼굴이 붉어졌다는 것을....재신은 미처 보지 못했다.

 

 

 

고속도로는 평일이라 한적했다.

어두운 고속도로에서 뒤로 차 한 대가 호위하듯이 따라왔다.

룸미러로 보면, 그의 실루엣이 보이는 듯도 했다.

심심하고 외로울 뻔한 길인데, 마치 그가 내 뒤를 따라서 같이 걸어오는 것 같기도 했다.

늘 그는 내 뒤에 서 있었다.

없는 듯, 있는 듯........

 

어!!!

 

아까 낮에도 어떤 차가 저렇게 따라왔었다.

한국인들은 정말 레이서들이었다.

고속도로에서 정속도를 지키고 가는 것이 느리게 느껴질 만큼 주변 차들은 미친 듯이 달렸다.

내가 느리게 가는 것도 아닌데 그들은 쌩쌩 추월해서 달려가고는 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내 뒤의 차는 참 신사적이다 싶었다.

정확하게 간격을 지키면서, 내 뒤를 따라왔다.

그 차 때문에 빵빵대는 차는 없었다.

 

의외로 나같은 사람이 또 있네.

 

별 생각 없이, 요리의 레시피를 생각하며, 그렇게 안면도에 도착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지금.....나를 따르는 저 차가 딱 낮에 내 뒤를 따르던 차 같았다.

같은 속도로, 내 뒤를 지키며 따르는 차.

 

아까도....이 남자였구나.

나를 혼자 보내기가......걱정이 됐었나.

그는 나 몰래, 나를 지키고 있었다.

부담스럽지 않게, 그러나 또 잘 보일 수 있는 기회는 거절하면서, 자신의 할 일을 하고 있었다.

과도한 충성심일까....배려일까.....

 

각자 차를 몰고 텅 빈 어두운 고속도로를 달려가고 있었지만, 마치 같이 가는 느낌이었다.

따뜻하게 보호받는 느낌이었다.

 

따뜻한 봄이다.

따뜻한 바람이 가슴 저 안까지 불어온다.

 

재신은 음성인식으로 전화를 건다.

 

“답.답.이!”

 

 

 

 

3

 

 

 

 

“예. 공주님.”

 

“바로 휴게소 나오니까, 거기 들어갔다가 가요.”

 

“뭐, 불편하십니까?”

 

조금은 걱정스러운 목소리....였다.

 

“아뇨. 그냥...좀 쉬다가 가자구요.

날도 따뜻하고, 봄인 것 같아서.....

오다가 보니까, 꽃도 핀 것도 같고....

와~~~진짜 저쪽으로는 벚꽃이 폈어요. 어두워서 몰랐는데......”

 

“공주님......”

 

“우리, 커피 한 잔 할까요?”

 

우리, 커피 한 잔 할까요......

 

그 말이 자꾸만 가슴 저 안까지 내려앉아 울렁이게 한다.

 

우리, 커피 한 잔 할까요.......

 

 

 

공주님의 차가 휴게소 쪽으로 들어간다.

시경도 공주님의 차에 바짝 붙여서 따라갔다.

주차장 쪽으로 가는 공주님의 차가 뭔가 불안해보였다.

 

어...어......!!!

 

펑!

 

타이어 터지는 소리.....

시경은 대충 주차를 해놓고 바로 내려서는 공주님께 뛰어갔다.

 

“공주님! 괜찮으십니까?”

 

“아...진짜......한국은 뭐가 이렇게 좁아......”

 

“공주님!”

 

“그, 공주님 소리 그만해요. 다들 몰려오겠네.”

 

“죄송합니다.”

 

시경은 운전석 문을 열어서 재신의 팔을 잡고 나오도록 받쳐준다.

그리고는 자신이 운전석에 앉아서, 화단 쪽으로 올라간 차를 내려서 다시 주차선 안으로 주차시켰다.

내려서 꼼꼼히 살펴보던 시경이 트렁크를 열어보더니, 이내 얼굴이 어두워진다.

 

“왜 그래요?”

 

“스페어 타이어가 없습니다.”

 

“스페어 타이어? 아, 맞다!!! 나 얼마 전에 타이어 바꾸면서 다시 안 넣어놨어요.

그럼, 어쩌지.....? 보험 회사에 전화해야 하나......?”

 

“그건 아무래도.......좀......

근위대원들에게 연락하는 게 낫겠습니다.

아니면 왕실 렉카를 불러야 할 것 같기도 합니다.”

 

“왜요?”

 

“공주님 차가 아무래도 외제차다 보니, 타이어 교체하기도 애매합니다.

또 공주님께서 여기 계시는 거 알려지는 것도 전하께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진 않습니다.”

 

“아, 그래요?”

 

시경의 말을 듣던 재신의 표정이 이내 체념한 듯 변한다.

 

“뭐, 할 수 없죠.

그럼, 왕실 렉카를 부르든 어쨌든, 기다려야 되는 거죠?

이왕 기다릴 거면, 여기서 구경이나 하고 쉬고 있죠. 뭐.”

 

“혹시....공주님, 아까 화단을 못 보셨습니까?”

 

“어? 어? 아....그게...보긴 봤는데.......

아니, 그러게 왜 그렇게 블록이 저렇게 뾰족한 거예요?

뾰족하니까 타이어가 터지지.......”

 

“저건 터진 게 아니라, 찢어진 겁니다.

보도 블록을 정확하게 올라가셨으면, 차라리 타이어가 터진 거라 땜질을 하면 되지만,

지금 공주님은 옆으로 빗기면서 올라가셔서, 타이어 옆이 찢어졌습니다.

이런 경우엔 교체하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시경은 또 따박따박 재신의 잘못을 낱낱이 정확하게 읊고 있다.

저 성질......

그러든가 말든가.....재신은 고개를 흔들며, 휴게소 안으로 들어가려다 시경을 부른다.

 

“밖은 어두워서 괜찮은데, 안엔.....좀 밝아서.....

내가 누군지 알지도 모르니까.....은시경 씨가 커피 좀 사다줘요.”

 

“뭐, 드시겠습니까?”

 

“그냥.....아메리카노......no sugar.....”

 

재신을 밖에 혼자 두고 들어가는 것이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공주님을 저 공개적인 장소에 발을 들이게 할 수도 없었다.

 

시경이 커피 두 잔을 사들고 나와 보니, 재신이 보이질 않는다.

갑자기 두려움이 몰려온다.

어두운 밤인데......

아무래도 휴게소다 보니 위험한 인물들이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공주님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데......

이리저리 찾는 중에, 자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은시경 씨, 여기예요. 여기!”

 

휴게실 뒤쪽에서 재신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재신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공주님, 밤이라서 위험합니다. 이렇게 뒤편에 계시면, 위험......”

 

“은시경 씨! 여기 아무래도 남쪽이라서 그런가 꽃 폈어요.

저기 봐요.”

 

재신이 가리키는 곳엔 정말 벚꽃이 펴 있었다.

꽃망울만 맺은 다른 벚꽃나무들과는 달리, 혼자서 유독 활짝 펴 있었다.

 

“가볼래.”

 

“공주님, 위험합니다.”

 

재신은 이미 휴게실 뒤쪽으로 이어진 산 쪽으로 올라가려 발을 내딛고 있었다.

오늘 공주님은 뭔가 위태해 보인다.

원래 그런 경향이 있으시긴 하셨지만, 오늘은 좀 더 즉흥적이고, 감정적이셨다.

 

산 속에 휴게소를 짓다보니, 휴게소 주변도 산세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완만해 보여도 산은 산이었다.

휴게소 뒤편은 말 그대로 산이었다.

 

어!

 

벚꽃을 가까이 가서 보겠다는 재신은 돌부리에 걸렸는지 비틀댄다.

시경은 커피를 벤치 위에 올려놓고, 뛰어올라가서 비틀대는 재신의 팔을 잡았다.

 

“공주님, 괜찮으세요?”

 

비틀대던 공주님이 발이라도 접질린 건 아닌지 걱정이 된다.

그런 시경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재신은 쑥스럽다는 듯이 또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그런 미소를 짓고 있다.

 

하아.......

 

시경의 입에서 한숨이 나온다.

 

“은시경 씨.”

 

“예. 공주님.”

 

“나 좀, 잡아줘요.”

 

공주님이 자신에게 왼손을 내밀고 있다.

지금.....뭘 해달라고 말씀하시는 건지........알 수가 없다.

분명 알 수가 없는데, 심장이 미친 듯이 뛰어댄다.

쿵..쿵..쿵..쿵.........

 

“사실....나....와인...아주 쪼금~~진짜 쪼~~금 했거든요. 헤헤......”

 

“예? 그럼, 음주운전을 하셨다는 말씀입니까!!!”

 

또다시 시경의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아니 진짜 쪼금 마셨다구요. 반 잔도 아니야, 반의 반 잔~~!!

그건 마신 것도 아니라구요.”

 

억울해 하는 재신에게 시경은 예의 그 경직된 훈련 조교처럼 야단을 쳐댄다.

 

“공주님, 음주 운전의 정의는, 취했다, 안 취했다가 아닙니다.

음주는 그야말로 입에 술을 댔다,는 겁니다.

단 한 모금이라도 술을 입에 대셨으면, 공주님은 지금 음주운전을 하신 겁니다.

만약 이 사실이 국민들에게 알려지면 어떻게 될 거 같습니까!

이건 대한민국 왕실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를 져버리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공주님은......!!!!!!!!!!!!!!!!”

 

단호하게 말을 이어가던 시경은 순간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아니, 심장이 멈추었다.

자신의 손에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졌다.

공주님이, 시경의 오른손을, 잡고, 있었다.

상황을 인지하자, 쿵 하고 떨어져 내렸던 심장이 미친 듯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지금 이렇게 공주님의 손을 잡고 있어도 되는 건지,

정말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머리 속이 하얗게 변해 갔다.

모든 판단이 정지된 상태에서, 오로지 손의 감각만이 살아났다.

자신의 손 안에 느껴지는, 부드러움.

작고 따뜻한 그녀의 부드러운 손.

 

“공....공주님........”

 

겨우 공주님을 부르는데, 그것도 목소리가 내 목소리가 아닌 양, 뭔가 껄끄럽게 나오는데,

그녀는 나를 보며 미소를 짓는다.

 

왜.......제게 그런 미소를 보여주십니까......

왜 제게.......

 

시경의 심장은 떨리는 건지, 아픈 건지 분간이 되지 않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에, 벚꽃잎이 눈처럼 까만 밤하늘 아래에 흩날린다.

그녀의 머리 위로 엷고 여린 꽃잎이 조용히 떨어져 내렸다.

 

그녀에게 잡히지 않은 손으로, 아니 그녀의 손을 잡지 않은 손으로,

그녀의 머리 위에 앉은 꽃잎을 걷어낸다.

그 짧은 시간, 숨이 훅하고 멈춘다.

 

“흠흠......이제 잔소리는 끝~~!!!

봐, 이렇게 꽃잎까지 날리잖아.

저~기까지 가봐요. 우리.”

 

꽃잎은 떨어지고, 밤의 눈처럼 하얗게 땅위로 쌓여간다.

두근두근.......

재신은 시경의 손을 잡지 않은 오른손으로 자신의 심장을 가만히 눌러본다.

슬쩍 그를 쳐다보니, 재신의 반대편을 바라보며 걷고 있다.

아니 의식적으로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는 제스츄어인가.

 

그는 여전히 내 눈을 피한다.

그러나 그는 분명 알고 있다.

내가 그를 보고 있다는 것을.......

잡지 않은 손으로 흠흠하며 목을 가다듬고 있다는 것을.......의식하고 있다는 것을.....

나 역시 알고 있다.

그의 얼굴이 아까보다 붉어졌다는 것도 알고 있다.

처음 자신이 그의 손을 잡았을 때, 이 남자가 손을 뿌려치지 않을까 싶어서 은근히 긴장을 했다.

그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서이기도 했고, 그의 손을 잡고 좀 이른 벚꽃길을 걷고 싶기도 했다.

물론 내게 관심 없는 남자지만, 조금은....꼬시고 싶은 승부욕을 발동시키는 남자지만......

뭐, 그런 꼬시고 싶은 마음이 아예 없었다고 한다면 거짓말이다.

그런 마음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그래도 걷고 싶었다.

따뜻한 봄의 자락에서 때 이르게 핀 저 벚꽃길 아래를 한 번 걸어보고 싶었다.

비록 아직 완전히 다 피지 못했지만, 또 뭔가 근사한 벚꽃길도 아니지만,

그래도 이 산 속......고속도로 옆, 휴게소라는 아주 낭만과는 거리가 있는 곳이라 하더라도,

제법 밤은 아름다웠고, 별은 빛났고, 하얀 벚꽃은 바람을 타고 내리고 있었다.

그는....내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

사실 언덕부분에, 또 돌부리가 많은 곳에서만 잡고 갈 생각이었다.

벚꽃 나무 아래에서까지 잡고 있을 생각은 아니었다.

그런데.....그는 내 손을 여전히 잡고 있었다.

아주 잠깐 손을 빼려 조금 힘을 준 순간, 그의 손이 도리어 더 강하게 내 손을 잡았다.

 

바람이 불고, 꽃잎이 날리고, 별이 내려앉을 듯이 가까이 있는 그곳에서,

그와 손을 잡고 걸었다.

별인지, 꽃잎인지 알 수 없는 반짝이는 무언가들이 우리에게 끊임없이 내려앉았다.

 

 

밤하늘을, 반짝이는 별을, 흩날리는 꽃잎을 느끼며 눈을 감고 있는 그녀를.......

시경은 훔쳐본다.

손을 잡고 있지 않다면, 마치 그녀가 날아가버릴 것만 같아, 자꾸만 불안해진다.

그래서 그녀의 손을 잡은 손에 더 힘을 주어 본다.

그녀의 입술에 미소가 맺힌다.

아름답다.

밤하늘이, 별이, 꽃잎이, 그리고 내 곁에 서 있는.......그녀가........가슴이 시리도록 아름답다.

 

 

 

 

4

 

 

 

 

재신이 갑자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으으~~그래도 여전히 겨울이 끝나지 않았나봐.

춥긴 춥네요.”

 

“차에서 기다리시죠.”

 

재신은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댄다.

내려가는 길.......시경은 여전히 재신의 손을 잡고 넘어질새라, 끊임없이 그녀를 살핀다.

 

그런 그를 지켜보는 재신의 마음은 복잡하다.

 

지금 이 남자는....직업 의식일까.

이 남자가.....연애를 할 땐 어떤 모습일까.

지금처럼 이렇게 세심하게 살펴줄까.

아니면 내가 지켜야 할 공주니까, 업무처럼 하는 걸까.

 

생각을 하면 할수록, 가슴이 조금씩 답답해 온다.

 

언덕을 내려와, 주차장을 가로질러 걸어가면서도 시경은 재신의 손을 여전히 잡고 있다.

재신은 그가 하는 대로 내버려두고 있지만, 머리로는 점점 더 복잡해질 뿐이다.

 

이 남자는.....자꾸....착각하게 만든다.

 

시경의 차에 탈 때까지 그의 손은 재신의 손을 놓지 않았다.

그것이 자꾸만 재신을 착각하고 싶게, 오해하고 싶게 만들고 있었다.

혹시 이 무덤덤해 보이는 남자가, 그래도 나를 여자로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기대를 자꾸 올려놓게 한다.

 

차 안. 둘만 앉아 있는 공간이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

재신은 음악이나 듣자며, 오디오 전원을 켜는데, 익숙한 음악이 흘러나왔다.

 

“어? 우리 음악 들어요?”

 

“아...저...그게.......”

 

음악이 흘러나오자, 시경이 눈에 띄게 당황한다.

 

“와~ 은시경 씨,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우리 음악이 취향이었어요?”

 

“취향은...아닙니다.”

 

“그런데요? 그런데 왜 들어요?

나 솔직히 은시경 씨 싫어하는 듯해서 안 줬는데....줄 걸 그랬나? 풋....”

 

그랬다. 시경도 알고 있었다.

재신이 동하와 몇몇 근접 경호를 하던 근위대원들에게 앨범을 선물했다는 것을.

공주님이 클럽에서 노래를 부른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기는 했지만, 실제로 음반까지 내고 계신 걸 아는 대원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일종의 입막음이자, 고마움의 표시였다.

그런데 근접 경호를 한 근위대원들 중 시경 자신만 받지 못했다.

 

 

 

---------------------------------------------

 

“염동하, 요즘 이런 음악 들어?”

 

외부 업무를 나가느라 동하가 운전을 하고 시경이 그 옆에 타서 가는데, 동하가 틀어놓은 음악이 언젠가 클럽에서 들었던 음악 같았다.

공주님께서 부르셨던 그 곡.

 

“어? 이거, 공주님 음반이지 않습니까?”

 

“뭐? 공주님 음반? 산 거야? 직접?”

 

“예에? 중대장님, 못 받으셨습니까?

공주님께서 미안하고 고맙다시며, 저희한테 돌리셨는데요.

김동욱 중위, 이진석 소위도 다 받았던데요?”

 

“.................................”

 

그때부터 시경의 기분은 완전히 바닥에 깔렸다.

자신만 제외되었다.

뭔가 알 수 없는......화가 올라왔다.

아니다. 그것을 화라고 표현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실망과 질투 같은....그런 감정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도 시경은 인터넷 음악 사이트에 들어가서 공주님의 음반을 구입하고 있었다.

 

 

 

------------------------------

 

 

 

“주세요.”

 

“네?”

 

입을 다물고 있던 시경이 갑자기 달라고 하자, 재신은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저도.....주세요.”

 

“뭘, 줘요?”

 

“다음에 음반 내시면........공주님.....앨범......”

 

“어? 진짜? 진짜 줘요?”

 

“예.”

 

“전국의 양아치 다 모였다더니.....웬일이에요?"

 

“장소와 음악은 적어도, 분리할 줄 압니다.”

 

역시 할 말은 확실하게 하는...정말 까칠한 남자다. 이 남자.

그래도 음반을 자신도 달라는 말에, 조금은 마음이 풀린다.

우리가 하는 음악을....인정해주는 것 같아서....

품위 없는 공주로만 생각하는 건 아닌 것 같아서....

재신은 알 수 없는 안도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이런 말도 할 수 있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나 있죠.....

아까 은시경 씨가 내 뒤로 따라올 때......되게 든든했어요.”

 

“예?”

 

대답을 하는 시경의 목소리가 당황한 듯 떨린다.

재신은 그런 시경의 목소리도 좋다.

 

“내가 앞에서 운전하고, 은시경 씨가 계속 내 뒤를 따라오니까......막 보호받는 느낌이랄까?”

 

“아...저......”

 

“풋...나중에......이렇게 여자 꼬시면 되겠다.....

음...좀 해본 솜씨 아니에요? 은시경 씨?”

 

“........공주님, 저 그런 적 없습니다.”

 

장난스럽게 던진 재신의 질문에, 이 남자의 대답은 몹시 진지하다.

이 남자는 뭐가 이리도 심각할까.

 

“응? 여자 꼬신 적 없다구요?”

 

“예? 하아......그러니까.....일부러 여자 꼬시려고.....아 , 저.....”

 

“큭큭큭.......됐어요 됐어.

알았어요. 없는 셈 쳐요. 풋~”

 

“근위대원이 왕실직계가족을 지키는 것은 당연한 겁니다.

게다가 공주님께서 직접 운전을 하시니, 당연히 그 뒤를 지키며 가는 것도 당연한.......”

 

“풋...알았어요. 알았다구요.

음...그럼 말을 바꿔서......

그럼, 내가 은시경 씨 꼬시는 걸로 해요. 그냥.”

 

“예?”

 

“내가 은시경 씨 지금 꼬시고 있다구요.”

 

그녀의 눈이, 아름답게 휘어진다.

그녀가 웃을 때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정말.....숨이 막힌다.

 

아 그런데 뭐라고 하신 거지?

날...꼬신다고? 갑자기 무슨!

 

“어어? 그래도 안 넘어가네?

나 눈웃음 지으면 남자들 다 넘어가는데?

은시경 씨는, 남자가 아닌가 봐요.”

 

장난처럼 느껴지는 그녀의 말에 점점 시경의 얼굴은 굳어진다.

지금......공주님은 자신을 놀리고 계셨다.

속이 타들어간다.

내가....그렇게 바보 같아 보이는 걸까......

그녀에게는 우스운 존재일까......

 

그러면서도 심장은 자꾸만 정신 없이 뛰어대어서, 그녀에게 소리가 들릴까봐 걱정이 될 지경이다.

그녀의 눈이 반짝인다.

뭔가 위험하다.....

 

“왜 나 보면 눈 피해요?”

 

“예? 예?”

 

“그리고...또 눈 마주치면 얼굴 빨개지고...왜 그래요?

내가 안 보면, 나 빤히 보고...”

 

“그..그건..근위대원으로서 당연한...”

 

시경은 대답을 하면서도 자신이 바보 같이 느껴졌다.

말을 더듬으면서, 벌써 얼굴이 뜨거워지고 있었다.

공주님께서 바보 같다고 생각하실까봐, 걱정이 된다.

 

“얼굴 빨개지는 건...왜 그래요?

내가 공주라서?”

 

시경은 침을 삼켰다.

뭐라고 말해야 하는데, 적당한 말이 없다.

머릿속이 하얗다.

 

재신은 장난이라도 치듯이....그의 얼굴 가까이 다가온다.

그가 물러서자, 재신은 그의 넥타이를 잡아당겨서 물러서지 못하게 한다.

재신은 여자다. 물리적 완력으로만 본다면 당연히 시경이 거부하려면 얼마든지 거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시경은 그러지 못했다.

그녀가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것을.......시경은 거부할 수가 없었다.

애가 탄다.

그녀의 눈은 여전히 웃고 있다.

 

“나....좋아해요?”

 

심장이 정말로 쿵....소리를 내며 저 아래로 떨어져내렸다.

 

시경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아니라고...말해야 한다.

 

입을 달싹거리려는데...입은 대뇌의 명령과는 달리 조금의 소리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왜...대답을 못해요?

나 좋아하냐니까?

아니야?”

 

“.................”

 

시경은 여전히 마른 침만 삼키고 있을 뿐이었다.

 

“아니라고 하면, 은시경 씨, 거짓말하는 건데.....거짓말.....원래 잘 해요?”

 

시경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녀가......눈치 채신 걸까......그런 걸까....들켜...버린 걸까.....

 

“말해 봐요.

나....좋아해요?”

 

하아........

 

억지로 참아둔 시경의 입에서 한숨이 기어코 새어나오고야 말았다.

 

그때였다.

 

재신의 입술이 시경의 볼에 닿았다 떨어졌다.

 

...지금...뭐지?

지금....공주님이.......공주님이...내 뺨에.......

왜........

 

시경의 심장이 터질 듯이 뛰어댄다.

아무 말도 못하고 얼어붙은 시경을 보던 재신이 픽...웃는다.

 

“은시경 씨....지금.....얼었어요?”

 

“....왜.....제게.........”

 

경직된 채 묻는 시경에게 재신은 풋하며 또 웃음을 짓는다.

예의 그 아름다운 미소를 잔인하게 짓고 계셨다.

또 그 미소만큼 시경의 가슴은 깊은 구렁텅이 아래로 떨어져내릴 뿐이었다.

 

“큭큭....이재신...이제 진짜 내리막길인가 봐.

아무리 꼬셔도 안 넘어오네.

은시경 Win~~~!!!

당신이 이겼어요.

어휴~ 와인 마신 공주가 취기에 그냥 헛짓했다고 생각해요. 그냥....

그래도 공주 뽀뽀 받기 힘든 거 알아요?”

 

재신은......아닌 척, 장난인 척, 가볍게 말을 이었다.

그냥....술김이었어. 장난이었어.

그러니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라고....그렇게 말하며, 상처받은 자존심을 조금은 세워보려 했다.

 

그런데 시경의 미간이 점점 일그러진다.

화가....난 것 같았다. 이 남자........

 

놀린 거 아닌데....정말 그런 거...아닌데........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는데......

술김에 이 남자 흔들어보고 싶었다고...애써 아무 일도 아니라고, 다독이고 있는데,

이 남자 화가 났다.

어떡하지......

 

“저...가지고 노신 겁니까?”

 

무서웠다.

그의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얼마나 그가 화가 났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그...그런 거....아니에요.”

 

경직되고 무거운 그의 목소리 앞에서 재신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러면 뭡니까?

왜 제게.....좋아하느냐고, 물으신 겁니까?

그리고 왜 제게....하아....제 볼에......그런.......장난....치신 겁니까?

사람이....우습게 보이세요? 공주님은......제가...그렇게.....”

 

“그..런거...정말 아니에요. 장난...친 거...아니에요.”

 

“그러면 뭡니까?

모두가 공주님을 좋아하니까......공주님께서 웃으시면,...하아.....심장이 떨리니까......

너무 아름다우셔서, 공주님을 한 번 보면.......다....마음을 빼앗기니까.....

그래서 사람 마음 가지고....장난치셨습니까?”

 

“그게 무슨 말......”

 

“어떻게 웃으면...남자들이 정신을 잃는지 다 아시니까......

그렇게 웃으신 겁니까....그렇게 사람을 미쳐버리게 만드신 겁니까?

마치 제게만 그런 미소를 지어주시는 것처럼, 그렇게 착각하게 만들어놓으시고는......

다른 남자들에게도.....늘 같은 미소를 지으셨죠.

저는.....그저......그런 남자들 중 하나였을 뿐일 테니까요.”

 

“은...시경 씨......”

 

“절더러...어쩌란 말입니까.....

좋아하느냐구요?

하아.........대답해드리죠. 공주님.....공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답.....”

 

두려운 듯 떨고 있는 그녀를 향해서 시경은 그대로 내리달아, 그녀의 목을 감싸쥐고, 그녀의 입술을 탐욕스럽게 빼앗았다.

키스가 아니었다.

그녀의 입술을 그야말로 빼앗는 것이었다.

자기의 것이라 낙인을 찍으며, 절대로 빼앗길 수 없다는 듯이, 그녀의 입술을 취했다.

두려운 듯 떨리는 그녀의 여린 입술 사이로 거침없이 들어가, 그녀의 혀를 가졌다.

죽을 것처럼 부드러워서, 더 미쳐버릴 것 같았다.

거칠게 거칠게, 자신의 마음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서, 자꾸만 거칠게 그녀의 혀를 입술을 가졌다.

화가 났느냐고...그래. 맞다. 화가 났다.

그러나...그보다도 더....그녀의 입술이...이성을 놓을 만큼 탐이 났다.

아니, 갖지 못하면 죽을 것 같았다.

지금 이 일 때문에 어떤 일이 발생할지 뻔히 알면서도, 지금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을, 혀를 핥지 않으면 정말로 죽을 것 같았다.

 

하아...하아...은시경 씨.....

 

그녀가 시경을 밀어낸다.

그러나 아직 놓아줄 수가 없다.

아직....이 시간을 끝낼 수가 없다.

조금만, 조금만 더......그녀를 갖고 싶다.

 

볼에 뜨거운 물기가 느껴졌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순간 그녀의 입술을 놓았다.

아니....자신도 모르게 정신을 차린지도 모른다.

그녀의 눈에서...눈물이 흘렀다.

놀라셨겠지.......치한 같은 자신 때문에.....무서우셨겠지......

 

죄송하다고 말씀드려야 하는데, 그 말을 하기도 전에, 이성의 통제를 잃은 내 손은 그녀의 볼을 훑고 있었다.

그녀의 눈물이 손에 맺힌다.

그녀의 눈물 위에 다시 입술을 놓았다.

늘 자신의 심장을 쿵 떨어지게 만드는 그녀의 아름답고 큰 눈에서 자꾸만 두려움이 맺힌다.

그것이 또 가슴을 비수로 찌르는 듯 아프게 한다.

 

나는 지금 무슨 짓을 한 것일까.

무엇 때문에 이토록 화를 낸 것일까.

아니다. 화가 아니었다.

그녀가.....갖고 싶었다.

어떤 변명을 해서라도, 그녀를 갖고 싶었다.

 

 

 

그가 화가 났다.

무서웠다.

내 입술을 핥고, 내 혀를 휘감는 그가 무서웠다.

거칠었다.

짜릿하면서도 거칠었다.

그는.......화가 나서 내게 그러는 거였다.

내 도발에 화가 나서.......자신을 놀린 대가로 지금 이렇게 입술을 맞춰오는 거다.

 

이재신..너..뭐하는 짓이니....

 

그의 입술 앞에서..더 또렷하게 자신이 보인다.

비참하다.

이렇게라도 그의 입술을 가져서 좋아?

이렇게 구걸하듯이 그에게 매달리니까 좋아?

 

눈물이 나왔다.

오죽 했으면, 이 남자가 이럴까 싶어서......가슴이 아파온다.

 

미안하다고 말해야 하는데, 미안하다는 것도 사실은 거짓이다.

상처받은 건 난데.......

미안하다는 건, 아까 그 말이 진심이 아니라서 그러는 거니까...

미안하다는 말도 할 수가 없는데.......

 

내 눈물 앞에서 그가 내 입술을 놓아 주었다.

미안하다고 말할까, 아니면, 실수였다고 말할까.

어떤 말을 듣더라도 비참한 건 똑같은데......

그는 아무 말이 없다.

그저.....나를 바라본다.

그의 표정은....모르겠다. 나도 정말 모르겠다.

아파.....보인다.

왜....그가 아파보일까....

나 때문일까.

공주라는 작자가 자신을 가지고 놀았다고 생각한 걸까.

그래서 화가 나서 그러는 걸까....

 

그런데, 그는 멀어지지도, 내게 사과하지도 않았다.

그저.....그 아픈 표정으로 내 눈물을 닦는다.

손으로 닦던 눈물을.....그는 입술로 다시금 훔쳐낸다.

왜....왜 이렇게 부드럽게......왜 이렇게...따뜻하게 이러는 건지....

왜 이렇게 마음 아프게.......

 

“울지....마세요...공주님.....”

 

낮게 갈라지는 그의 목소리가 아프다.

 

“제가...잘못했습니다......공주님...그러니까...울지 마세요......”

 

그의 눈이, 그의 목소리가 아프다.

 

왜..그가 아플까.

눈물이 흐르는 건 난데, 왜 그가 울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까.

 

그의 입술이 천천히 다시 내 입술로 다가왔다.

아주 천천히 입술을 핥았다.

아까와는 달리, 너무나 부드러웠다.

떨어졌다가....또 다가오고, 또 떨어졌다가 다가오고.....

그는 마치 자신도 어떻게 할 수 없다는 듯이, 내 입술로 다가왔다.

도저히 놓을 수 없다는 듯이, 자꾸만 다시 내 입술을 가지고 또 가졌다.

 

여전히 입술을 마주한 채로, 자꾸만 입을 맞추는 채로, 그는 한숨을 쉬듯 낮게 말했다.

 

“좋아...하느냐고....물으셨습니까?”

 

“............”

 

“아닙니다.”

 

가슴이 쿵하고 떨어진다.

 

아니었구나....그래...아니었어.

바보 같이 이재신......

 

“그런......마음으로는.......다......표현 못합니다. 공주님....

제 마음은......그 말로는 부족합니다.”

 

뭐?

 

“왜.......눈을 못 마주치냐고 하셨습니까?

눈을 마주치면, 심장이 떨려서.....죽을 것만 같습니다.

왜 얼굴이 붉어지냐고요?

공주님께서 너무 아름다우시니까요......

가슴이 아플 만큼.......아름다우시니까요.......

제가 감히....하아...넘보면 안 되는데, 제 눈을, 제 마음을 가득 채우실 만큼, 아름다우시니까요.

미소라도 지으시면, 정말로....심장이 찢어질 만큼.......제 마음을 가져가 버리시니까요.”

 

“은...시경.......”

 

“저도 압니다.

공주님의 그 미소를...저만 받는 게 아니라는 걸.....

공주님은...누구에게나......사람의 심장을 가져가버리는 미소를 지으시죠.

정말...남자를 미치게 만들어버리시죠, 공주님은....

남자라면, 공주님께 빠져들 수밖에 없도록....그렇게 공주님은.....잔인하시니까요.

마음을....주시지도 않으시면서.......

관심도 없으시면서......그냥 그런 남자들 중.........하나면서......

공주님은 자꾸.......공주님만 바라보게 하시니까요.”

 

그의, 고백...일까?

뭘까....그는 내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 걸까......

 

재신은 들어야만 했다.

그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그의 입으로 분명하게 들어야 했다.

 

“나...좋아해요?”

 

“하아......공주님....도대체......절....죽이시고 싶으십니까?”

 

“말해 봐요. 나..........좋아해요? 은시경 씨?”

 

“...........하아..........”

 

그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마치 심장을 긁는 듯한 한숨이었다.

그는.....고통 중에 있었다.

그의 고백은....고통과 함께 던져졌다.

 

“.........사랑...합니다. 공주님.......저는.......사랑합니다. 그래서......미칠 것 같습니다.

이제.......후련....하십니까?”

 

고통스럽다.

그녀는 잔인하다.

다 아시면서, 지금 내가 어떤지, 어떤 마음인지 다 아시면서, 잔인하게 물어보신다.

좋아하느냐고.......

어떻게......그것을 물어보시는가......

돌려주실 마음도 없으시면서, 남자의 마음을 빼앗아버리신다.

 

“왜 안 물어봐요?”

 

“무얼.....말씀입니까?”

 

“내가 왜 은시경 씨에게 이러는지, 왜 안 물어봐요?”

 

“...............하아......”

 

“은시경 씨........”

 

“저...는.....저는.........공주님께 물어볼 수가 없습니다.”

 

“왜요?”

 

“.......하아......겁이 나니까요.”

 

“물어봐요. 나한테.....”

 

“공주님......”

 

“어서요.”

 

잔인한 그녀의 강요. 그러나 나는 또한 거부할 수가 없다.

 

“.........제게.....하아......왜 이러시는 겁니까.......”

 

어쩌면 내 물음은, 왜 이렇게 내게 잔인하게 이러시는지를 묻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그만하시라고...충분히....지금 죽을 것 같다고, 이제 그만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장난치시지 마시라고....그렇게 묻고 있었다.

 

“나도........당신과 같으니까.....”

 

“예?”

 

공주님께서 또 자신을 놀리신다.

 

“공주님, 그만 놀리.......”

 

“좋아해요.”

 

“................!!!!!!!!”

 

“답답하고 재미없는 일개 근위대원을 좋아한다구요. 내가.....”

 

“공...공...주님!”

 

“내가, 은시경 씨, 좋아한다구요.”

 

“.............”

 

“나...진짜로.....흡!!!”

 

그의 입술이 또다시 다가왔다.

강하게, 그러나 부드럽고 깊게.......

마치 안 놓아줄 것처럼, 깊게 깊게 들어왔다.

 

아......난 정말....이 남자 꼬시고 싶었나 보다.

그가 내게 미치게 하고 싶었나 보다.

지금처럼.......고통스러운 듯이 내 입술을 빼앗는 이 남자를 보고 싶었나 보다.

그가 미치고 있었다.

아니 나 역시 그에게 미치고 있었다.

서로의 혀를 섞으며, 핥으며, 얽히며, 저 안에서 가르릉 소리를 내는 이 감각들의 향연 안에서

서로에게 점점 더 깊이 빠져들고 있었다.

 

하아...하아......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내 입술을 놓아주지 않던 그가 여전히 내 입술에 입을 맞춘 채로 말을 건넸다.

아니.....내게...강요했다.

 

“공주님.......이제.....장난이시더라도, 저 안 놓아드립니다.”

 

“은..시경......”

 

“분명히....절...좋아하신다고 하셨으니....이젠 못 무르십니다.”

 

하아.....

그의 입술이 야하게 내 안으로 자꾸만 들어온다.

간지럽다.

가슴이 자꾸만 울렁댄다.

 

“공주님, 실수하셨습니다.

이제 공주님은 제게서 못 벗어나십니다.

전....절대로....공주님.....안 놓아드릴 겁니다. 아니 못 놓아드립니다.

전, 제 거, 절대로 뺏기지 않습니다.”

 

누가 놓아주길 원한다고 그런 말을 하냐며 뭐라고 한 마디 하고 싶은데,

그는 집요하게 내 입술을 놓치 않는다.

나는 온 몸으로, 그의 소유욕을 느끼고 있었다.

짜릿하고 감각적인, 내 모든 감각을 일깨우는 그의 소유욕을, 그는 내게 낙인을 찍고 있었다.

내가...그의 여자라는 것을......

 

 

 

 

 

 

 

 

 

 

 

------------

 

 

중대장님, 제발 전화 좀 받으십시오.

도대체 어디 계신 겁니까?

어휴~~~

 

동하가 휴게소에 도착해서 30분 넘게 전화를 해도 받지 않으셨다는 것.

왕실 렉카를 끌고 온 동하의 속은 터져갔다는 것.

그래서 동하는 열이 뻗쳤다는 것.

 

어쩌겠는가.....

 

따뜻한 바람이 부는 어느 이른 봄날,

때 이르게 핀 벚꽃이 눈처럼 내리던 날,

어느 밤, 반짝이는 별보다도 더 반짝이는 공주님을,

가슴 저리게 짝사랑하던....근위대원의 사랑 이야기.......

 

Cherry blossoms ending.......

 

벚꽃 엔딩.......

 

 

 

 

 

5

 

 

 

 

“그런데, 은시경 씨, 근데 정말 나한테 왜 그렇게 딱딱하게 그랬어요?”

 

“저도.......공주님.......꼬셨습니다.”

 

“어? 뭐라구요?”

 

“공주님께서 제게.....관심을 가지셨으면 좋겠다고......”

 

“진짜?”

 

“예..........”

 

 

 

 

-----------------------------------------------------

 

 

 

“염동하, 뭐 하나 물어 보자.”

 

“예. 무슨 일이십니까?”

 

“흠흠....내....동기가 물어오길래.....”

 

“예. 말씀하십시오.”

 

“인기가 많은 여자를 좋아하는데, 어떻게 하면 그 여자가 자기를 좋아하게 만들 수 있을까..고민하던데.....”

 

“인기가 많다면, 엄청 이쁘겠지 말입니다.”

 

“흠흠....그...그렇겠지.”

 

“그런 여자는 말입니다. 무조건 무관심입니다.”

 

“어?”

 

“잘해주면 절~~대로 안 됩니다.”

 

“그래?”

 

“주변에서 절절매는 남자들이 득시글거릴 텐데, 비슷하게 그러다가는 차이기 십상이지 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거야?”

 

“무조건 무관심한 척 해야 합니다.

표정도 딱딱하게, 시크하게....관심 없는 척.

그리고 절대로 마음을 내비치시면 안 됩니다. 그러면 바~~로 게임 아웃~~~”

 

 

무관심하게.....딱딱하게.....관심 없는 척.....

그게 될지.......

 

 

 

 

 

 

 

 

 

 

 

 

 

 

 

---------------------------------------------------------

 

 

 

1.

이 글을 쓰게 된 배경은 세 가지.......

 

아직 꽃망울만 맺혀 있는 나무들 사이로, 혼자 탐스럽게 피어 있는 벚꽃을 보고.....

공주님의 봄을 그려보고 싶어서.......안면도에서 별일이 없었다면, 둘은 어땠을까....

내가 운전하는 차를 따라오며, 뒤를 지켜줄 때......

공주님께서 운전해서 가셨으니, 돌아오실 때도 운전하시지 않으셨을까.

시경도 차를 가져갔을 텐데......

그러면 각자 운전을 해왔을 수도 있겠다 싶더라구요.

 

 

2

봄에 만난 황소자리의 남자가 있었더랬죠.

제가 좋아하던 스타일이 아니었답니다.

성실하고 착하고 세심한 그런 스타일이었지요.

그 땐 제가 무척 외로울 때였다지요.

언니와 오빠네는 모두 외국에 살고 있었고, 부모님마저 1년 동안 외국에 가계시는 바람에

저 혼자 집을 지키고 있었답니다.

일 때문에 갈 수도 없고........외롭고 허전할 때, 그 남자를 만났다지요.

 

아는 사람의 소개로 만났는데, 그 남자가 아무 소식이 없는 겁니다.

은근 존심이 상하더군요.

예전 같으면, 내가 상대도 안 했을 텐데....뭐 이러면서, 혼자 열이 좀 받았다지요.

뭐지? 내가 이제 늙었나? 한물 갔나?

뭐 이런 생각을 하던 중에 제가 먼저 안부 메일을 슬쩍 보냈다지요.

그랬더니, 며칠 후에 전화가 왔다지요.

주말에 보자구요.

after를 거의 일주일만에 하더군요.

역시 열이 채였답니다.

그때 아마 승부욕에 불타서 나갔다지요.

좋다, 뻑이 가게 해주마~~~

그 땐.....젊을 때라....(뭐 지금도 젊습니다.ㆅ) 뭔가 존심이 단단히 상했나봐요.

 

그 남자는.......다른 도시에서 일하고 있어서, 일주일에 한 번씩 부모님이 계신 이곳에 왔었어요.

그래서 주말에만 볼 수 있었다지요.

그때도 좋아서? 뭐 그런 감정보다는.....그냥......만나는...그런 마음이었다지요.

그 남자의 집은 우리집과는 완전히 반대편이었다지요.

각자 차가 있어서, 데이트 후에 그냥 헤어지면 되는데, 그 남자는.....내가 운전하는 차를 따라서 뒤를 지키며 와줬었다지요.

그게....참...많이 든든했다지요.

 

그 이후로도 워낙 느려터진 저는 그 남자 속을 휘딱 뒤집기도 하고, 마음을 몰라서 속상하게 만들기도 했다지요.

어쨌든....그 남자의 사소한 행동들이 절 조금씩 움직여가기도 한 듯합니다.

 

그리고....동하가 말한 저 이야기......

그 남자에게 직접 들은 이야깁니다.

아, 물론 제가 인기 있었다는 건 아니구요. 그것만 빼고는 맞습니다. ㆅㆅ

주변에서 조언을 했답니다.

처음 보고나서 마음에 든다고 했더니.....

절대로 먼저 연락하지 마라.

바로 연락하지 마라.

시크하게 있어라....뭐 그런....훈수를....

 

그리고 정확하게 들어맞았다지요.

아마 바로 애프터가 들어왔다면, 글쎄......그다지...관심이 가지 않았을 수도......

 

어쨌든......참....오래 전 이야깁니다.

 

 

벚꽃 엔딩을 들으니, 예전 어느 봄날이 생각이 나서......

이렇게 올려봅니다.

 

 

3

사실 이 글은 화요일에 거의 다 잡아놨는데, 결국 올리는 건 지금이네요.

점심시간에도 좀 정리를 더 했는데, 마음에 안 들어서......

뭔가....마음에 안 들지만......

그냥 노래에 묻어갈까 합니다.

울렁대는 마음...설레는 마음....봄날, 벚꽃이 휘날리는, 어느 날......

공주님을 사랑한 어느 기사의 이야기.......

 

4

참, 근데 현실은 다르죠.

그 옛날 뒤를 지켜주며 든든하게 해주던 그 남자는....지금......

저와 레이스를 즐기고 있다는......

차 두 대로 움직여야 할 땐........서로 추월하며, 레이스를 한다는.....ㅠㅠㅠㅠㅠㅠㅠㅠ

 

5

참, 저 아프다고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바로 나았습니다. 괜히 걱정만 시켜드렸다능요....

그래서 죄송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해서, 글적글적 이렇게 써봤는데,

이 글, 재미도 없고, 마음에 안 드셔도,

벚꽃 엔딩을 듣는다, 정도로 너그러이 생각해 주시길.....

 

오늘이.....<더킹투하츠> 1주년이네요.

작년 오늘......이었네요.

그리고 여전히......빠져 있네요. 두 사람에게.......

 

 

+6.

많은 분들이 은시경 때문에 많이 놀라셔서 조금 더 사족을 붙여봅니다.

은시경이 그렇게 연기력이 좋았을까....그런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여전히 얼굴 빨개지고 눈 피하고 그러다 들키고 했겠지요.

단 원래 성격이 딱딱하니, 연기를 하지 않아도, 까칠해 보이지 않았을까 싶어요. ㅎㅎㅎㅎ

뭐, 약간은 그래도 공주님께 좋아한다는 티 내지 않으려 노력은 했을 듯합니다.

그러니 그토록 공주님이 헷갈리지 않으셨을까.....싶어요.

여튼 처음부터 은시경 자체가 공주님의 운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