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킹투하츠와 은신상플/(은신) 단편·조각

(은신/단편) 축제 上

그랑블루08 2013. 5. 25. 02:11

 

(은신/단편) 축제 上

 

 

 

written by 그랑블루

 

 

 

 

벚꽃이 날리던 그 봄을 기억한다.

떠들썩하던 소리들과 주막마다 풍겨 나오던 파전 내음과 그 속에서 부르던 청춘의 노래를......

무엇이 그토록 힘들었는지, 작은 일에도 울음을 삭혀야만 했던 그 날들을......

그 축제의 날들 속에서

왜 그리 가슴은 뛰었는지,

그리고 왜 그리도 가슴은 아팠는지......

 

아픔과 함께 찾아온 <청춘의 설렘>에 대해 지금부터 시작합니다.

 

 

 

 

 

 

97

 


I'm In Love (Piano RMX) - Ra.D

verse1

사실은 첨봤을 때부터 그댈 좋아했다고
말하기가 내겐 참 어려웠던거죠
먼저 다가서지않으면 그댈 놓칠까봐
편지를 쓰고 또 작은 선물을 준비했죠
깊어지면 상처뿐일거라는 생각에
두려움이 앞선건 사실이지만
간절한 맘으로 기도하고 바랬던 사람이
그대라고 난 믿어


hook

Oh~ I`m in love Oh~ I`m fall in love
어쩔수 없네요 내맘을 숨기기엔
그대는 너무 아름답죠


verse2

I thought I never gonna fall in love
But I'm in love
Cuz I wanna love you baby
사실은 처음 봤을때부터
내 맘 속으로부터
그댄 파도처럼 밀려들어
온통 하루종일 그대만 떠올라
I can be a good lover
wanna be a 네잎 클로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로 만들어 줄게요
그댄 gotta believe me
make it never gonna leave me
약속따윈 안 할래요
그냥 보여줄게요


hook

Oh~ I`m in love Oh~ I`m fall in love
어쩔수 없네요 내맘을 숨기기엔
그대는 너무 아름답죠


Oh~ I`m in love I`m so deep in love Oh~ I`m fall in love
어쩔수가 없네요 내맘을 숨기기엔
그대는 너무 아름답죠

그대는 너무 아름답죠

가사 출처 : Daum뮤직

 

 

 

 

 

1

 

 

 

끙끙대며 박스를 옮기는데, 누군가가 들고 있는 박스를 확 들어올렸다.

 

“어, 시경 선배!”

 

그는 아무 말 없이 묵묵히 박스를 천막 쪽으로 옮겨갔다.

 

“저, 제가 해도 되는데요. 저 힘도 세고.....괜찮은데....”

 

재신은 뭔가 불편한 마음에 종종 걸음으로 따라가 보지만, 시경은 그 말에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재신이 옮겨야 할 박스들을 옮기고 있었다.

 

“선배.....”

 

“이것도 다 옮겨야 되는 거지?”

 

밀가루 박스며, 일회용 접시 등등 잡동사니 박스들을 눈으로 흘낏 보며 시경이 물었다.

재신은 약간 얼떨떨해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경이 밀가루 박스를 들자, 재신도 조금은 가벼운 박스를 들었다.

 

“놔둬, 내가 하면 돼.”

 

“저, 힘 세요. 이런 것도 못 들면, 나가 죽어야죠.”

 

피식......

 

재신은 순간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내가 지금 본 게 정말 맞는 건가.....

이제 헛 게 보이나......

 

도저히 자신이 본 걸 믿을 수가 없었다.

아, 이거 애들한테 얘기해줘야 되는데......

은시경 선배가 웃다니....세상에 세상에......

민경이가 들었으면, 땅을 치고 원통해 할 일이었다.

 

이 기집애는 있어야 할 때는 없고...어휴...답답해서......

 

아까까지 있던 민경이가 없어졌다.

시경 선배가 주막으로 올 거라고는 아마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1학년 들어오면서부터 군에서 잠깐 휴가 나온 시경 선배를 본 이후, 민경이는 사랑에 빠졌다.

그 선배가 아니면 안 된다고 울기도 몇 차례.....

자신을 좋아하는 남자들을 만나서도 굳건하게 그 마음을 지켜오고 있었다.

그런데 이 기집애가 술 먹더니 사라졌다.

걱정이다. 정말....

그래도 일편단심 정훈이가 곁에 있으니.....뭔 일이야 있겠냐마는, 이런 평생에 한번 올까 말까한 상황에 없어지다니......

이것도 니 운이다, 어쩔 수 없지......

 

 

“다른 애들은.......?”

 

박스를 다 옮기고, 불판 앞에서 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는 재신에게 시경은 물어왔다.

 

“아시다시피.....다들 나가 떨어졌네요.”

 

재신의 시선을 따라가본 곳에는 동아리 임원진들이 군데군데 쓰러져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예 주정을 하며 소리까지 고래고래 지르는 놈들도 있었다.

 

재신이 그 모습을 보더니, 부랴부랴 정리하고 있는 1학년 남학생들을 불렀다.

 

“너희는, 가서 쟤 좀 말려라. 이거 완전, 동아리 망신도 이런 동아리 망신이 없어.”

 

이래저래 정신 없는 애들 챙겨가며, 재워가며, 재신은 계속 들이닥치는 졸업한 선배들 뒤치다꺼리 하는 것도 보통일이 아니었다.

아까도 파전을 굽다 말고, 밀가루가 떨어져서 천막 곁 쌓아둔 재료들을 들고 오던 참이었다.

 

사실 과주막이었다면, 1학년들이 음식을 다 담당해야 하겠지만, 재신이 있는 곳은 동아리 주막이었다.

역사와 전통으로 치면, 이 학교와 함께 흘러온 유서 깊은 동아리다 보니, 축제 기간 주막을 여는 몇 안 되는 동아리 주막이었다.

1학년들은 대부분 자신의 과에서 붙잡혀서 음식을 해대고 있는 판국이니, 2학년인 재신이가 동아리 음식을 총괄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작년에도 올해도, 여전히 재신은 일만 할 수밖에 없었다.

1학년들 중에서는 과를 버리고 동아리 쪽으로 와서 일하는 애들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그 수가 적을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이 동아리가 워낙 유서가 깊다보니, 워낙 대선배님들도 찾아오시고는 했다. 8자를 단 학번들, 9자를 단 학번들....

심지어 교수님들 중에도 우리 동아리 출신이 계셨다.

그 당시에는 민주화를 위해서 가장 앞에서 일하셨던 분들이셨으니,

그 끈끈함이란, 정말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지금은 그저 문화행사 같은 전통 놀이 동아리 같이 되어버렸지만, 예전........그 어느 시대에는

그야말로 이 나라를 위해서 선봉에 서셨던 선배님들도 계셨다.

가끔......전설 같은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을 때면, 정말이지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했다.

 

어쩌면 재신이 굳이 여기에서 파전을 굽고 있지 않아도 되었을 수도 있다.

임원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재신의 의지로 이렇게 주모처럼 있는 것이기도 했다.

선배들은, 재신을 보러 오는 경우가 많았다.

털털한 재신이 귀여워서, 동아리 모임이면, 무조건 찾아와서 술을 사주는 선배들도 여럿이었다.

 

심지어 재신을 점찍어놓은 졸업한 선배들도 여럿 있다는 소문도 돌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재신은 그 누구에게도 공평하게 대했다.

남자가 아니라 사람으로 대하는 듯했다.

정말 깍듯한 선배로, 마치 남자 후배가 남자 선배를 대하듯이, 재신의 태도에는 흐트러짐이 없었다.

 

빨간 머리를 휘날리며, 하얀 얼굴로 말갛게 웃는 재신은, 어느 새, 이 동아리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되어 있었다.

심지어는 재신 때문에 남자 후배들이 열심히 가입한다는 설도 있었다.

지금도 여기 저기에서 재신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지만, 재신은 그저 카리스마 있게 기다리라며, 자신의 할 일을 하고 있었다.

 

파전 한 쪽면이 다 되자, 재신이 뒤집으려 하는 찰나, 누군가가 재신이 쥐고 있는 후라이팬을 쥐고는 파전을 던져 뒤집는다.

 

어!

 

재신이 놀라 돌아본 그곳에는 놀랍게도 시경이 서 있었다.

시경은 능숙하게 뒤집고는 뒤집개까지 빼앗아서는 전을 꾹꾹 누르고 있었다.

 

“선배!”

 

아까 도와주고는 갔으려니 했다.

워낙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 곳이라, 그저 동아리 사람이려니 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 시경인 줄은 몰랐다.

 

“도와줄게.”

 

“에? 아니에요. 선배. 선배는 사실...저기 앉아 계셔야죠.

복학생의 특권인데.....

것도, 민간인이 되신지, 겨우 3달인데.....

민간인을 더 누리셔도 돼요.”

 

그러나 시경은 여전히 후라이팬을 잡은 채, 파전을 굽고만 있었다.

 

원래......음식하는 걸.....좋아하나?

 

재신이 의구심이 들 찰나, 몇몇 복학들이 들이닥쳤다.

 

“야, 뭐야, 이거!!! 야, 은시경! 너 왜 재신이랑 같이 있어!!!

야, 그리고 은시경 니가 음식을 한다고!!!

와, 이거 말도 안 된다. 말이 안돼.”

 

동하 선배는 시경 선배를 보더니,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며, 난리도 아니었다.

 

“야, 재신아. 이건 진짜 말도 안 돼.

은시경이, 파전을? 와~ 이거 동아리 사람들한테 다 소문내야 된다.

진짜....이건 일대 드라마틱한 사건이야~~~”

 

“염동하....그만하지?”

 

시경이 차갑게 한 마디 하지만, 동하는 멈출 줄 몰랐다.

 

“이~~상한데......은시경......너랑 파전은 아닌데.....

너, 다른 꿍꿍이 있는 거, 아니야? 응?

너 혹시.....설마.......?”

 

“염동하!!!!! 한 마디만 더! 해라!!”

 

시경의 목소리가 차갑게 얼어붙자, 그제야 동하가 우물쭈물 입을 다물었다.

 

정말 카리스마 하나는 갑이다.

재신은 피식 웃으며, 그 상황을 관조하고 있었다.

 

다들 시끌벅적하게 자리를 잡고 앉아서는 축제의 마지막 날을 즐기고 있었다.

 

임원진들은 축제 기간 3일 동안 거의 풀로 일하는 바람에, 사실 체력이 거의 바닥나 있었다.

게다가 술까지 퍼마셔 댔으니, 제정신일리 없었다.

그래서 재신이 더 정신차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첫날과 둘쨋날은 일할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중간 중간 바쁜 시간에 가서 도와주고, 바로 나왔었다.

그러나 마지막 날은 자신이 아니면 일이 돌아갈 것 같지가 않았다.

그래서 아예 자신은 마지막 날 풀로 일하겠다고 선언을 하고는, 차라리 첫날 둘쨋날 일을 줄였다.

늘....축제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날이었다.

게다가 마지막날은 불금......

수요일부터 축제였지만, 이미 화요일밤부터 불타오르고 있었다.

사실 거의 나흘째 계속되고 있는 셈이었다.

마지막 날은 금요일이다 보니, 사회로 나간 선배들도 굉장히 많이 찾아왔다.

수많은 선배들을 상대하랴, 음식 해대랴, 주모 노릇하랴, 재신은 정말로 정신이 없었다.

사실 시경은 편한 선배가 아니었다.

그래도 이렇게 도와준다고 하니, 이만 저만 고마운 게 아니었다.

시경 선배가 옆에 있으니, 아무래도 어설픈 사람들의 접근도 없었다.

 

 

 

 

 

2

 

 

 

 

“어, 계란 다 됐다.”

 

부침가루를 풀어 계란을 넣으려고 보니, 계란이 다 떨어져 있었다.

 

“내가 가져올게.”

 

시경이 단대 뒤편으로 계란을 가지러 갔다.

그 사이 재신은 밀가루를 풀어 반죽을 하고 있었다.

 

“저........”

 

누군가가 재신의 앞에서 쭈뼛쭈뼛 거리며 말을 붙이고 있었다.

 

“네? 뭐, 더 드려요?”

 

해가 질 때부터 주구장창 앉아 있던 팀의 사람이었다.

동아리 식구도 아니고, 선배도 아닌....아마 다른 과에서 온 것 같은데....좀 이상하기는 했다.

보통은 자신의 과주막으로 가야 하는데, 남의 동아리에 앉아 있으니.....

뭐, 사실 가끔 재신이 있는 주막에는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는 했다.

 

“저....그게 아니라........”

 

“그럼? 왜?”

 

남학생은 쑥쓰러운 듯, 재신을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하고,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처음에는 술기운 때문에 그러나 싶었던 재신도 뭔가 감이 오기 시작했다.

 

“국문과, 12학번, 이재신.....맞죠?”

 

“네? 네.....그런데요.....”

 

놀랍게도 남학생은 나를 알고 있었다.

 

“저....사실은.....교양 수업 같이 듣는데.......”

 

“네? 뭐를.....?”

 

“그.....문학 개론 수업인데요.”

 

아.....그제야 기억이 나기도 한다.

1학년 때 너무 노는 바람에 시들시들하게 만들어버렸던 문학 개론, 결국 학점 세탁 차원에서 재이수를 하고 있었는데,

거기 같이 듣는 학생인 듯했다.

 

“아...네.......”

 

솔직히 재신은, 그래서 어쩌란 말이냐고 한 마디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이렇게 자꾸 성질을 보여줘서는 안 되니......에효....

 

“전, 전자모바일공학과 10학번, 김형재라고 하는데요.”

 

“네......”

 

“제가....그쪽에....관심이....있어서........”

 

“네?”

 

대뜸 관심 있다고 말해오는 남학생을 앞에 두니, 이것도 참 난감했다.

동아리 선배들은 술이 떡이 되어 있기는 했지만, 술을 마시면서도 하나 둘,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워낙 시끄러워서 소리는 안 들리겠지만, 동아리의 꽃, 이재신에게 남학생이 말을 걸고 있다는데,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었다.

 

아, 진짜....시끄러워질 텐데.....

 

안 그래도, 동아리 안에서도, 재신에게 아주 오랫동안 들이대는 선배들이 몇몇 있었다.

아까부터 술마시는 품이 장난이 아니었는데......

괜히 싸움 날까....걱정이 조금씩 되고 있었다.

 

“혹시.......남친...있어요?”

 

“네?”

 

너무 단도직입적인 남학생이었다.

있다고 말해야 할까.....

아...정말 귀찮다, 이거.......

 

“저, 솔직히 말해서, 전 그쪽 오늘 처음 봤거든요.

그런데 이렇게 말씀하시니, 좀 당황스럽네요.”

 

재신은 최대한 예의를 갖춰서, 그러나 조금은 차갑게 거절의 뜻을 비췄다.

 

솔직히 웃기지 않는가.

난 누군지 알지도 못한다.

무작정 와서 남친이 있느냐, 관심이 있다, 이러면 뭘 어쩌라는 건가....

댁이 사이코 패스일 수도 있는 거고....

어떻게 믿을 수 있냐고......

 

이렇게 다가오는 남자들이 있을 때마다 재신은 그저 귀찮고 피곤했다.

 

“저, 이상한 사람 아닙니다.

첫 수업 때부터 지켜봤어요.

물론 그 전부터 알고는 있었습니다.

이재신 씨, 우리 학교에서 굉장히, 유명하니까요.”

 

“네에?”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유명하긴 뭘 유명해.

이젠 아예 아부로 들이밀 생각인가 보다.

 

게다가 이 남자의 친구인 듯한 사람들 몇몇이 흥미롭게 지켜보며, 휘익~하며 휘파람까지 불고 있었다.

 

불.쾌.하.다.

 

남의 동아리주막에 와서, 지금, 뭐하자는 건지......

슬슬 짜증이 밀려오고 있었다.

 

“전, 그쪽을 전.혀. 몰라요.

그 말은....관심. 없다는 뜻이에요.”

 

에라 모르겠다 싶은 재신은, 음식도 내가야 하고, 총괄도 해야 하고, 정신 없는 와중에 빨리 끝내야겠다는 심정으로 최후 통첩을 날렸다.

 

“저...그건 차차 알아가셔도 될 듯한데요.

휴대폰 번호........알려주시면.......”

 

“휴대폰요?”

 

재신의 머리로 슬슬 김이 올라오고 있었다.

거머리과다.

아.....머리 아파......

이런 남자들이 젤 골치가 아프다.

정신 없고 바쁠 때, 집요하게 번호 알려달라고, 끙끙 대며 사람을 괴롭힌다.

그러면 바쁜 와중에 빨리 일처리 하려고 번호를 알려준 경우도 몇 번 있다.

그리고는 된통 당했었다.

 

아...피곤해!!!!!

 

“저.....번호 함부로 안 알려주거든요?

그리고 지금 좀 바빠서.......”

 

점점 재신의 목소리에 짜증이 배어 나오려 했다.

그래도 재신은 어떻게든 미소만은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동아리를 위해서....이 역사와 전통 빼면 시체인 이 동아리를 위해서.......

게다가 좀 이따 있을 동아리 공연을 위해서라도....참아야 했다.

그걸 보러온 사람일 수도 있으니...참자...참자...이재신......

 

“번호만 알려주세요. 그러면 얌전히 가겠습니다.”

 

열이 확 올라왔다.

재신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버럭 대려는 찰나, 재신의 어깨 위로 누군가의 손이 올라왔다.

 

헉!!!!

 

이건 또 뭐야!!!!

 

기겁을 하며 돌아보니, 시경선배였다.

시경은 재신을 보고 있지 않았다.

재신의 어깨를 꽉 안은 채, 재신에게 지분대고 있는 남학생을 노려보고 있었다.

 

“뭡.니.까. 지.금!!!”

 

사람을 얼려버릴 듯한 목소리였다.

나왔다....은시경 선배 카리스마.......

 

“그쪽은.......뭐죠?”

 

“법학부 09 은.시.경.”

 

“아........”

 

상대 남자의 입에서 약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뭔가 알고 있다는.........소리......

 

“알았으면, 이제 가지?”

 

알 수 없는 중압감.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카리스마......

숨이 훅 막히는......그런....얼음장 같은 목소리........

 

기 싸움이라는 게 있다.

누구도 범접 못할 그런 기가 있다.

은시경 선배는 그랬다.

여자들은 그저 멋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남자들은, 뭔가 시경 선배 앞에서 쫄고 있는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았다.

그렇게.....그 남자도......떨어져 나갔다.

 

그 남자가 완전히 주막을 벗어날 때까지 그는 내 어깨를 감싸 안고 있었다.

아니, 그 남자가 주막을 벗어났는데도 그의 손은 여전히 내 어깨 위에 있었다.

 

“....선..배........”

 

내가 나지막히 그를 부르자, 그가 나를 그제서야 돌아본다.

그의 눈에서 알 수 없는 화 같은 것이......살짝 드리워졌다 사라지고 있었다.

 

“괜찮아?”

 

“네? 네........”

 

“왜, 그렇게 당하고 있어?

날 부르든가 하지, 아니면 다른 선배들도 많은데.......”

 

“아니...다들...술 마시고 있기도 하고.....

또......주막 하다 보면, 이런 일 있더라구요.”

 

“자주.....?”

 

그의 미간이 심하게 찌푸려진다.

그의 검은 눈이 더 검어지는 듯했다.

 

“뭐, 가끔요.....저...선배 그런데.......”

 

재신이 뻘쭘해 하며, 자신의 어깨에 여전히 올려져 있는 그의 손을 흘낏 보자, 그제야 시경은 당황한 듯이 손을 내렸다.

그의 하얀 얼굴이 붉어지고 있었다.

 

“흠흠.....미안.....”

 

“아니에요. 풋......방금, 선배가 저 멋있게, 구해주셨잖아요.

감사감사~~~”

 

재신이 이쁘게 미소 짓자, 시경의 검은 눈이 깊어지는 듯하더니, 바로 고개를 돌려버린다.

그의 귀까지 붉어져 있었다.

 

“재신아!!!”

 

“우와~~~ 선배님!!!!”

 

졸업한 선배들 여럿이 주막으로 들어왔다.

다들 작년까지 새내기인 재신이를 떠받들며 이뻐하던 선배들이었다.

재신이 그 선배들을 향해 쪼르르 달려가는 것을, 시경이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3

 

 

 

“오늘 이렇게 와주신 여러분들 감사합니다.

그러면 우리 학교와 역사를 같이 하는 우리 동아리의 공연을 이제 시작하겠습니다.”

 

동아리 회장의 사회로 풍물 공연이 시작되었다.

 

우리 대학 전체의 상쇠는......은시경......선배였다.

풍물패는 단대마다 다 있다.

우리 동아리는 이 모든 풍물패의 핵, 중심이었다.

예전.......그 어느 날은.....우리 동아리 풍물패가 가장 앞에서 패를 이끌던 패라고 들었었다.

전경들 바로 앞에서 마치 살풀이를 하듯이, 돌고 돌며 놀이를 하듯이 뛰어놀았던 풍물패.

그리고 풍물의 꽃 상쇠.

그 상쇠의 꽹과리 소리에 전경들조차 넋을 놓고 지켜봤다던, 전설이 있고는 했다.

 

학교 전체 상쇠는, 굉장히 유명인물이었다.

각 단대 풍물패 가운데, 그 수장이 상쇠였고, 그 상쇠들 가운데 갑이 학교 전체 상쇠가 되었다.

 

 

내가 알기로, 우리 학교에서 은시경 선배 모르면 간첩이다.

 

학교 신문사에서 은시경 선배의 사진을 실으면서, 그야말로 학교 전체가 뒤집어졌었다.

아는 사람들은 알고 있었지만, 은시경 선배가 군대에 가면서 후배들은 잘 알지 못했다.

그런데 올해 3월, 제대를 하고 복학한 은시경 선배가 학교 전체 상쇠가 되면서, 풍물패를 취재하러온 신문사에서 은시경 선배의 사진을 찍었다.

 

꽹과리를 치며, 담배를 물고 있던 선배의 사진은.....그야말로 연예인을 방불케 했다.

오빠 부대가 형성이 되고, 시경 선배가 공연하는 날이면, 팬클럽에 가까운 여학생들이 몰려들고는 했다.

2013년.......이 시기에 풍물이 이렇게 인기가 있다는 건, 오로지 선배의 힘일지도 모른다.

오늘도, 우리 동아리 앞 마당에는 엄청난 인파가 몰리고 있었다.

 

시경 선배가 꽹과리를 집어 들었다.

 

채챙 챙챙 채챙챙......

 

그의 소리에 맞춰서 장구와 북들이 나가기 시작했다.

선두패들이 먼저 하는 동안, 나도 옷을 갈아입고, 북을 잡았다.

 

내 순서는 조금 뒤......

북패들만의 공연이 따로 있었다.

 

 

 

 

 

검은 옷에 붉은 띠를 매고, 재신의 붉은 머리가 밤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군중 속에 섞여 있어도, 똑같은 군무를 추고 있어도, 북을 들고 같은 움직임을 하고 있어도,

재신은 빛이 났다.

하얀 뺨 위로, 붉은 홍조가 올라왔다.

북은 계속해서 가슴을 울려대고 있었다.

 

북을 치며, 춤을 추고 있는 재신을 누군가의 시선이, 끊임없이 좇고 있었다.

북을 들고 위로 올리며 춤을 추던 재신이 순간, 시경의 눈과 마주쳤다.

시경의 꽹과리는 쉼없이 울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한번 잡은 재신의 시선을 놓지 않았다.

 

쿵.........

 

이상한 느낌........

재신의 심장이 내려앉는 소리인지, 심장을 울려대는 북소리인지 알 수 없는 소리가

저 안에서 떨어져 내렸다.

 

그의 검은 눈은......여전히 재신을 향하고 있었다.

푸른 바람 사이로, 그녀의 붉은 머리카락이 휘날리고 있었다.

 

 

 

 

 

 

 

 

 

 

 

 

4

 

 

 

“고생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서로 인사를 나누며, 공연을 마무리하고, 그 사이 1학년들은 새롭게 술자리를 마련하고 있었다.

 

힘들었다며, 재신에게 쉬라며 말해주는 후배들 덕분에, 재신은 몇 시간 만에 겨우 노동에서 해방되었다.

기지개를 펴며 주막을 나가는데, 선배 한 명이 재신을 불렀다.

 

“어! 재신아, 어디가? 너 설마, 집에 가는 거야?”

 

“에이, 아니에요. 화장실 가요. 화장실......”

 

화장실이라는 말에 당장이라도 붙잡으려던 몇몇 남자 선배들이 알겠다며, 빨리 다녀오라고 또 성화였다.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던 재신은 도서관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자리를 잡았다.

조금은 어둑어둑해서,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언덕에 있다 보니, 한눈에 주막이 눈 아래 보였다.

시끌벅적한 소리와 바람을 타고 오는 술냄새에 재신은 눈을 감았다.

그러자 시원하게 불어오는 오월의 바람 사이로 라일락 향기가 느껴졌다.

 

아....이제 좀 살 것 같네.......

 

“흠...흠......”

 

누군가 목을 가다듬는 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떠보니, 재신의 바로 앞....몇 계단 아래에 시경이 맥주캔 두 개를 쥐고 서 있었다.

 

“어? 시경 선배?”

 

시경은 멋쩍은 듯 맥주 한 캔을 재신의 앞에 내밀었다.

 

“아, 고마워요.”

 

시경이 건넨 맥주캔은 방금 얼음에서 나온 듯, 정말 시원했다.

 

“나......앉아도 돼?”

 

“네? 네....그럼요.”

 

재신의 말에 시경은 재신의 왼편으로 와서 곁에 앉았다.

약간......어색했다.

선배와 단 둘이 이렇게 일부러 있어본 적은 없는데.....

민경이...난리날 텐데......

이 기집애는 어디 간 거야?

 

뭔가 알 수 없는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숨을 쉬기도 힘든....긴장감......

 

그저 뻘쭘함을 이기고자, 맥주만 홀짝 홀짝 마시고 있었다.

 

날....따라온 걸까......?

 

왜?

 

 

생각해보니, 그는 처음부터 맥주캔을 두 개 가지고 있었다.

내게 주려고.....?

처음부터 그럼...나를 따라온 거였나?

 

아니다.....

맥주 한 캔으로는 성에 안 찼겠지.....

아니야, 아니야. 두 캔 다 마시려다가, 나 보고 한 개 줬겠지.

이재신....더 생각하지 마!

 

꼬물꼬물 올라오는 생각을 떨쳐버리려, 재신은 머리를 흔들었다.

그러자 그가 움찔하는 게 느껴졌다.

 

그러고보니, 그는 캔만 따놓고 마시지도 않고 있었다.

오른손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면서, 뭔가 긴장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이 어색함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민경이한테 칭찬받는 일이라도 해야겠다 싶었다.

민경이를 위한 것도 있고, 이 뻘줌함을 이기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다.

 

“선배......”

 

“어...어?”

 

갑자기 내가 선배를 부르자, 그가 당황한 듯 대답했다.

 

“축젠데....여기서 왜 이러고 있어요?”

 

“뭐가?”

 

“복학 선배들 보니까, 이번 축제, 완전 벼르고 있던데요?

복학하자마자 여친 안 잡으면 안 된다구요.

선배도, 여친이랑 놀아야지, 파전이나 굽고, 재미없게 계단에서 맥주나 마시고......”

 

“.......여자친구.....없어.”

 

“에엥? 진짜 없어요?”

 

재신이 놀란 듯 묻자, 계속 앞을 보고 있던 시경이 갑자기 재신의 눈을 바라본다.

그 눈이 너무 깊고 검어서, 재신의 가슴 저 안 무언가가 툭....아래로 떨어져 내리는 것 같았다.

 

“없어........”

 

“어, 아닌데........분명...선배...좋아하는 사람 있다고...오래 됐다고.....

그런 얘기 들었는데.......”

 

“무슨.....얘기를 들은 거야?”

 

“네? 아....저.......”

 

시경의 검은 눈 속으로 빛이 반짝였다.

재신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앞을 쳐다보며, 뭐라고 궁시렁거렸다.

 

“그럼....지금...여친 없는 거죠?”

 

“응.”

 

“저.....그러면........선배.......혹시......민경이 어떻게 생각하세요?”

 

“뭐?”

 

그의 목소리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기도 하지만, 1학년 때부터 선배를 쫓아다니며 그 난리를 치는 민경이가 안 돼 보이기도 했다.

이번 축제하기 전에도 몇 번이나 재신에게 다리를 놓아달라고 난리도 아니었다.

재신이 알기로는 얼마전에도 슬쩍 고백했다가, 둥글게 거절 당한 걸로 알고 있었다.

그 때, 분명 동하 선배가 좋아하는 사람 있다고, 오래 됐다는 이야기를 해줬다고 했다.

아마.......시경 선배가 동하 선배를 통해서 거절을 한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민경이 이 기집애도, 한 번 꽂히면 사생결단하는 스타일이라, 포기도 못하고, 계속 끙끙거리고만 있었다.

재신에게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며, 꼭 좀 도와달라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랬던 이 기집애가, 술 쳐먹고 어디가 자빠졌는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어휴...내가 이 기집애 때문에 진짜....

친하지도 않은 선배에게.....이런 말까지........

 

“민경이......제가 대학 들어오면서 만났지만, 진~~~짜 괜찮은 애예요.

선배도....아마 알고 계시겠지만, 민경이, 선배 좋아한 거, 꽤 오래됐어요.

1학년 때, 입학하자마자 선배 휴가 나오신 거 보고, 그 때부터 정말 한결같이 선배만 좋아하고 있어요.

걔가 보통 인물이 아니니, 주변에 좋다는 남자들도 많은데, 절대 돌아보지도 않더라구요.

그러니까...선배, 한번 만나라도 보시면......”

 

“........너는.........”

 

“네?”

 

방금 그가 뭐라고 말했는데, 재신은 뭐라고 주저리주저리 말하느라, 못 듣고 말았다.

 

“........하아........아니다.......”

 

“선배.....저.......”

 

“재신아.”

 

뭐라고 더 말을 해보려던 나를 그가 단호하게 불렀다.

 

“네?”

 

“연애는........내가 알아서 할게.”

 

더 이상 말하지 말라는, 니가 간섭할 일이 아니라는, 조금은 단호한 말이었다.

사실 맞는 말이기도 했다.

다시 입을 다물었다.

약간 미안하기도 하고, 뭔가 약간 선배를 기분 나쁘게 한 것 같기도 해서, 그의 눈치를 보고만 있었다.

 

하아........

 

게다가 그는 한숨을 깊게 내쉬더니, 맥주를 벌컥 벌컥 원샷을 해버렸다.

좌불안석이었다.

어서......이 불편한 자리에서 일어서는 수밖에 없었다.

 

“저....너무 오래 나와 있었나 봐요.

애고.....선배들이 찾겠네......

선배는 더 계시겠어요? 전....먼저.....일어날게요.

덕분에 잘 마셨습니다.”

 

내 말에 그는 아무 말도 없었다.

화가 났나.....싶었지만, 빨리 도망가는 게 상책이다 싶어서, 급히 일어나서 계단을 내려가려는데,

워낙 장소가 어둡다 보니, 그만 계단을 헛딛고 말았다.

 

어...어......!!!!!!

 

그 순간이었다.

그의 팔이 나를 확 잡아 끌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의 품이었다.

 

아...아니었다.

그냥 품이 아니었다.

앉아 있는 그의 품 안으로 안겨 들어오면서, 그의 무릎 위에 앉아 거의 눕듯이, 그의 품에 안겨 있었다.

 

아, 이재신.......미치겠다!!! 정말!!!!!

 

그의 왼손은 내 목을, 그의 오른손은 내 허리를 감은 채로, 그렇게 그의 품에 안겨 있었다.

그의 눈이 나를 깊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 민망한 자세에서 일어나고 싶은데, 그를 잡지 않고서는 일어날 수도 없었다.

이건 마치 신혼에 남자가 여자를 안고 침실로 들어갈 때의 자세랄까....

다른 점이 있다면, 그나마 우리는 앉아있다는 것뿐......

 

아, 뭐라는 거야, 이재신....미친 거야?

 

얼굴이 점점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그의 시선이 뜨거웠다.

알 수 없는 긴장감에, 나는 입술을 깨물며, 겨우 입을 뗐다.

 

“서..선배...저....일어날게요....죄송해요......”

 

누워있는 자세에서 일어서려니 어쩔 수 없이 그의 어깨를 잡을 수밖에 없었다.

내 목을 잡고 있던 그의 왼손에 힘이 들어갔다.

일어날 수 있도록 그의 손이 나를 밀어주고 있었다.

점점 그의 얼굴쪽으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바로 일어서려면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그의 얼굴을 지나 몸을 일으키면 되는 것이다.

그 짧은 순간, 조금만 참으면 된다고,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해가며, 어쩔 수 없다고...어서 일어나서 죄송하다고 사죄드린 다음, 내려가 버리면 된다고,

몇 번이나 속으로 다짐했다.

그렇게 그의 얼굴 곁으로 서서히 올라오고 있었다.

 

그 순간......세상이 정지했다.

 

지금.........이게.........무슨..........?

 

 

아니다...이건 현실이 아니다...아닐 거야..아니야........

 

내 입술 위에.......그의 입술이 놓여 있었다.

 

뭐지........? 지금 이거.....뭐야?

 

실수...인 걸까.....

내가 올라오려는 방향과, 그가 나를 일으켜주던 방향이...뭔가 어긋난 것인지도 모른다.

빨리 일어나야 해......

 

오로지 그 일념으로 그의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을 주며, 그의 입술에서 벗어나려 하자, 내 뒷목을 잡고 있던 그의 손에 힘이 바로 풀려버렸다.

 

어..어.....?

 

그대로 다시 아래로 내려가며, 허리가 뒤로 꺾이려 하자, 나도 모르게 그의 목을 감싸안았다.

그 순간이었다.

그의 눈이 깊어지는 듯, 마치 빨려들어갈 듯 검게 빛나던 그의 눈을 본 것 같다고 느낀 찰나,

그의 입술이 그대로 내 입술 위로 다시 덮쳐왔다.

말 그대로 정말 덮치듯이 내 입술을 빨아 당겼다.

 

도저히......믿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의 혀가 내 입술을 부드럽게 핥았다.

그 부드러움이 느껴지면서, 자꾸만 가슴이 자글자글해 왔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인지하지도 못한 채로, 심장이 뛰어대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는 내 입술을 몇 번이나 가졌다.

 

내가 숨을 더 이상 참지 못하자, 그가 겨우 내 입술을 놓아주었다.

그러나 그의 입술은 거의 닿을 듯이 내 입술 가까이에 있었다.

그의 손이 내 입술을 천천히 훑었다.

 

“서....선...배.......”

 

내 목소리가 떨리듯이 흘러나왔다.

그의 눈은 온갖 이야기를 담은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눈 속에는 오로지 나만이 오롯이 담겨 있었다.

 

지금....뭐지....?

 

“재신아....하아.......미안해.......

이럴 생각은 아니었는데.....이렇게 갑자기.....다가갈 생각은 아니었는데........”

 

무슨......말이지.....?

 

그의 눈이 애타하고 있었다.

알 수 없는....감정들이 내게 밀려오고 있었다.

뭔가 가슴을 저릿하게 하고, 두근대게 하는, 감정들이 내게로 쏟아지고 있었다.

 

아니야......아닐 거야......그럴 리가 없어.....

 

속으로 아무리 부정해봐도, 그의 눈은 정직하게 나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실수가.....아니라고......

나만 보고 있다고......

그렇게 말하고 있는 듯했다.

 

나를 안은 그의 손에 자꾸만 힘이 들어간다.

일어서고 싶은데, 그의 품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내가 바둥거릴수록 그는 더 강하게 나를 안아왔다.

 

“오래.....됐어......너에 대한 마음.......

처음부터.......너만 보였어........”

 

“서...선배.......”

 

“이렇게......막 다가갈 생각은....아니었는데.....

나 도저히...너....지금.......놓아줄 수가 없어........”

 

“잠...잠깐..흡......”

 

내 입술 위로 그의 입술이 그대로 다시 겹쳐지더니, 놀라서 벌어진 내 입술 사이로 거침 없이 그의 말캉한 혀가 들어왔다.

그의 품에서 벗어나려 아등바등거려 보지만, 그의 힘을 이길 수는 없었다.

내가 벗어나려 할수록, 내 허리를 감아오는 그의 손은, 내 목을 잡고 있는 그의 손은 더욱더 강하게 힘이 들어갔다.

 

바둥대다 어느 순간, 그에게서 벗어나려던 내 움직임도 서서히 잦아들었다.

그러자 그의 입술도 조금씩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의 혀가 자꾸만 내 입술 사이로 들어와서 내 혀와 얽혀들었다.

도망가고 싶었다.

뭔가 부끄럽고, 그러면서도 뭔가 저 안까지 저릿했다.

세상에 태어나서 이런 느낌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그의 혀 앞에서 무기력하게 얽혀들 수밖에 없었다.

그의 혀가 내 혀를 쓰다듬을수록, 도망가는 내 혀에 얽혀들수록, 저 발끝까지 자글자글하게 흘러다니고 있었다.

온 몸의 감각들이 하나하나 살아나서, 온통 그와 맞대고 있는 입술과 혀에 집중되고 있었다.

이때까지 살아오면서 이런 감각이 내게 있는 줄은 정말 몰랐다.

나도 모르게....야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숨이 차올라오도록, 그는 내 입술을, 내 혀를 놓지 않고 얽혀들었다.

참을 수 없을 만큼 밀어붙이고 나서야, 그는 겨우 내 입술을 놓아주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나를 그의 품 안으로 가득 끌어안았다.

쿵쿵거리며 세차게 뛰고 있는 그의 심장소리가 내 귀로 느껴졌다.

그의 한숨소리가 가슴 속에서 울려퍼졌다.

 

 

“재신아......하아......너....내 여자 해라.......”

 

“선...배.......”

 

“나 도저히 안 되겠다. 이젠 도저히 못 참겠다.

나.......너 아니면 안 되니까.....한번만 봐줘.

더 이상은.....참을 수가 없어......

니가...다른 남자들..... 하고 있는 거, 다른 남자들에게 웃어주는 거, 도저히 볼 수가 없어.

이렇게 가슴 졸이는 거, 더 이상 못하겠어.

더 이상.....내가 견딜 수가 없어.”

 

“저...전........”

 

“난.....너 없이는....이제 안 돼...........”

 

쿵쿵쿵쿵......

그의 심장소리가 말하고 있었다.

아주 오래된 감정이라고.......

나 때문에 이렇게 심장이 뛴다고,

그의 심장이 말하고 있었다.

 

그의 손이 다시 내 입술을 훑고 있었다.

그의 손가락이 스칠 때마다 온 몸으로 저릿한 감각이 흘러내렸다.

 

“너, 내 거 하자.”

 

“선....배........”

 

“대답해줘.......내 여자 하겠다고.......”

 

그의 눈이 짐승의 눈처럼 깊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대로 다시 내 입술로 내려앉았다.

나도 모르겠다.

자글거리는 감각대로 그에게 내 입술을 맡겼다.

세상에 모든 감각들이 그와 내 입술로 몰려들어왔다.

하아...하아.....

알 수 없는, 야한 소리들이 서로의 입술 사이로 새어나왔다.

 

“이재신, 이제 내 거다.”

 

 

대답을 한 적도 없는데, 그러겠다고 말한 적도 없는데,

그의 야한 입술 아래에서 나는......은시경의 여자가 되었다.

 

검은 하늘이 마치 그의 눈빛을 닮은 듯, 별을 빛내고 있었다.

그의 입술은 그 밤이 끝나도록 내 입술에서 떠날줄을 몰랐다.

 

달뜬 숨소리만, 그 밤....오월의 라일락 향기 사이로 바람을 타고 떠다닐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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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정말 미친 거 맞습니다 맞고요.ㅠㅠㅠㅠㅠ

요즘....미친 듯이 떠오른 이야기....

계속 거부하고 또 거부하고.......

어떻게든 도망다니다가, 결국에는 오늘 밤 꼴딱새고 야근 하는 이 와중에 이 일을 저질러버렸네요.

미추어버리겠습니다.

이렇게 미친 듯이 떠오르는 이야기는, 어떻게 제 스스로 제어가 안 됩니다.

고민하다가 차라리 쓰자, 싶어서....

그래야 일폭탄도 제거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미친 척하고 써버렸습니다.

 

이야기로 쏟아내고 나니...이젠 일할 수 있겠지요.

덕분에 저는 내일 오전까지....미친 듯이 달려야 하지만......

이 어마어마한 마감들 앞에서, 이렇게 잘못 걸려버리면, 정말.....제 스스로도 제어가 안 돼서 돌아버리겠습니다.

 

은신은......오로지 근위대장과 공주님으로만 그리려고 했는데,

이 이야기만은 죽어도 안 되네요.

어떻게든 나오겠다고, 뛰쳐나오려는 이야기 때문에 결국에는 가져오고 말았습니다.

 

오월의 축제....

마지막날...불금......

처음 본 그 순간부터 사랑에 빠진 한 남자의 지독하리만큼 깊은 사랑이야기입니다.

어쩌겠습니까.....

나오는 대로, 두 사람이 이야기 하고 싶은 대로, 쓰고야 말았습니다.

 

휴가를 나온 3월의 어느 날.....빨간 머리를 휘날리는, 아름다운 1학년짜리 새내기를 만나게 되지요.

다시 군에 들어가서 1년을 견디면서, 미치도록 가슴을 쳐댔던 여자.....

그렇게 제대를 하고 돌아온 이곳은......주변이 모두 적들......

다들...재신을 공략하기 위한 적들로 가득한 이곳에서 시경은 미친 듯이 가슴앓이를 합니다.

 

그런......이야기라지요.

 

 

즐감해주시길.......

그리고 주말도 잘 보내시길......

전......야근으로 고고씽~~~

밤을 새서라도 끝내야 하는데, 걱정이.....태산인.......ㅠㅠ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