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킹투하츠와 은신상플/(은신) 당신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은신상플) 당신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26

그랑블루08 2013. 6. 5. 05:08

 

(은신상플) 당신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26

 

 

 

<silver님께서 주신 당기못 대문짤~~ 감솨감솨합니다.^^>

 

<디씨 그러하다 횽이 주신 당기못 대문짤~~저는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__)>

 

 

 

 

 

 

 

 

 

 

 

 

 

*배경음악을 꼭! 틀고 봐주세요.

1. Say I love you - 포맨

2. 처음 사랑 - 이윤지

3. 나의 사랑 수정 - 조정석

4. 걷고 싶다 - 조용필

 

 

 

 

 

1) Say I Love You - 포맨

 

입을 맞춰도 불안하고 품에 안아도 초조하고

잠이 들 때도 꿈처럼 사라질까 밤새 뒤척이고

보면 볼수록 겁이 나고 겁이 날수록 더 보고 싶고

사랑할수록 니가 날 떠날까봐 두려워지나봐

 

사랑을 다줘도 불안한 건 남자야

넌 너무 모르지 남자의 사랑을

 

사랑할수록 더 보고 싶고 보면 볼수록 더 안달나고

평생 내 여자로 만들고픈 조급한 마음인 걸

평생 내 여자로 살아줄래 나 말곤 없다고 말해줄래

조금도 불안해 하지 않게 한 번 더 말해줄래

Say I love you..

 

사랑할수록 닮아가고 날이 갈수록 더 좋아져

함께 할수록 나 너 없인 못살아 너 책임져

사랑을 다줘도 불안한건 남자야

넌 너무 모르지 남자의 사랑을

 

 

 

사랑할수록 더 보고 싶고 보면 볼수록 더 안달나고

평생 내 여자로 만들고픈 조급한 마음인 걸

평생 내 여자로 살아줄래 나 말곤 없다고 말해줄래

조금도 불안해 하지 않게 한 번 더 말해줄래

Say I love you..

 

Say I love you.. Say I love you..

약속해줘 You are the only my love..

 

한 여자만을 사랑하니까 내겐 그 여잔 너 하나니까

자꾸만 니 사랑을 보채도 날 미워하지는 마

평생 내 여자로 살아줄래 나 말곤 없다고 말해줄래

조금도 불안해 하지 않게 한 번 더 말해줄래

Say I love you.

 

 

 

2) 처음 사랑 - 이윤지

 

처음엔 친구처럼 소중한 연인처럼

나의 마음에 너의 맘을 들여놓은 순간부터

설레던 내 마음은 운명이 될 거라고

믿었던 철없던 내 처음 사랑

숨만 쉬어도 행복했었어 햇살 같은 사랑이었어

영원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 추억 속에 남았어

이젠 아픈 맘 슬픈 눈물 내 뺨에 기대어도 괜찮아

기억 속 상처 온몸가득 남겨져도 괜찮아

마음이 먼저 선택한 너 처음사랑으로 충분해

영원히 지킬게 내 처음사랑

짜릿한 마법 같은 너의 그 입맞춤이

나의 마음에 설레임은 그렇게 시작됐고

불꽃처럼 뜨거운 사랑을 속삭이듯

미래를 꿈꾸었었던 내 처음 사랑

너의 미소가 나를 웃게 해 별빛 같은 사랑이었어

마냥 좋았어 그땐 그랬어 아름다웠던 시간들

이젠 아픈 맘 슬픈 눈물 내 뺨에 기대어도 괜찮아

기억 속 상처 온몸가득 남겨져도 괜찮아

마음이 먼저 선택한 너 처음사랑으로 충분해

영원히 지킬게 내 처음사랑

사랑해 행복했던 처음사랑

 

 

 

 

3) 나의 사랑 수정 - 조정석

 

바라보지 말아야지

하루종일 생각했지만

그 예쁜 두 눈을 바라보면

다른 생각은 할 수가 없어

 

생각하지 말아야지

하루종일 생각했지만

그 웃음 소리를 생각하면

다른 생각은 할 수가 없어

 

책을 펼치면 떠오르는 하얀 얼굴

길을 걸으면 온통 그 뒷모습

눈을 감으면 보이는 환한 미소

눈을 떠보면 어느새 사라져

 

조금만 더 기다릴까

잠시후면 지나갈텐데

난 그냥 우연히 지나다가

그냥 우연히 서있는 거야

 

하염없이 기다리다

우연인척 그녀를 만나

해맑은 그 미소 눈이 부셔

나의 사랑 수정

 

책을 펼치면 떠오르는 하얀얼굴

길을 걸으면 온통 그 뒷모습

눈을 감으면 보이는 환한 미소

눈을 떠보면 어느새 사라져

 

조금만 더 기다릴까

잠시후면 지나갈텐데

난 그냥 우연히 지나다가

그냥 우연히 서있는 거야

 

하염없이 기다리다

우연인척 그녀를 만나

해맑은 그 미소 눈이 부셔

나의 사랑.......

 

 

 

 

4) 걷고 싶다 / 조용필

 

 

이런 날이 있지 물 흐르듯 살다가

행복이 살에 닿은 듯이 선명한 밤

내 곁에 있구나 네가 나의 빛이구나

멀리도 와주었다 나의 사랑아

 

고단한 나의 걸음이 언제나 돌아오던

고요함으로 사랑한다 말해주던 오 나의 사람아

 

난 널 안고 울었지만 넌 나를 품은 채로 웃었네

오늘 같은 밤엔 전부 놓고 모두 내려놓고서

너와 걷고 싶다 너와 걷고 싶어

소리 내 부르는 봄이 되는 네 이름을 크게 부르며

보드라운 니 손을 품에 넣고서

 

불안한 나의 마음을 언제나 쉬게 했던

모든 것이 다 괜찮을 거야

말해주던 오 나의 사람아

 

난 널 안고 울었지만 넌 나를 품은 채로 웃었네

오늘 같은 밤엔 전부 놓고 모두 내려놓고서

너와 걷고 싶다 너와 걷고 싶어

소리 내 부르는 봄이 되는 네 이름을 크게 부르며

보드라운 니 손을 품에 넣고서

 

난 널 안고 울었지만 넌 나를 품은 채로 웃었네

오늘 같은 밤엔 전부 놓고~ 모두 내려놓고서

너와 걷고 싶다 너와 걷고 싶어

소리 내 부르는 봄이 되는 네 이름을 크게 부르며

보드라운 니 손을 품에 넣고서

 

 

 

1

 

 

 

 

 

 

 

 

 

 

 

 

공주님....

 

재신을 강하게 끌어안고 있던 시경이 재신을 나직이 불렀다.

 

“응?”

 

시경은 재신을 불러놓고도, 깊게 바라만 볼 뿐, 아무 말이 없다.

그러더니 재신을 번쩍 안아 들고는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도저히 인지가 되지 않는 그녀를 어딘가로 데리고 갔다.

 

가는 동안 시경은 아무 말이 없었다.

아무 말도 없이 자신을 안고 가는 이 상황이 재신에게는 낯설게만 느껴졌다.

 

이 남자가 이러는 걸 본 적이 없다.

 

그는 늘....자신의 위치에서 재신을 대했다.

그런데 이렇게 아무 말 없이 재신을 데리고 가는 것은.......그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마치....처음으로.....시경이 재신을 공주가 아닌, 한 여자로 대하는 것처럼, 재신을 안은 시경의 손은 그 어떤 거부도 용납할 수 없다는 듯,

강인하기만 했다.

 

어디를 가는 거냐고,

나 공준데 이렇게 막무가내로 안고 가도 되는 거냐고,

말할 수도 없었다.

 

심장이 터질듯이 뛰고 있었다.

쿵쿵대는 심장소리가 귀를 시끄럽게 하고 있었다.

온몸으로 뛰고 있는 이 심장소리 때문에 재신은 그에게 안겨가는 내내 손으로 자신의 심장을 꾹 누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지금 대한민국 왕실 근위대장이 아니었다.

늘 반듯하게 자신의 할일을 하는, 대한민국 왕실을 보호하는 것에 자신의 목숨을 바칠 듯이 충성스러운 군인이,

지금은 아니었다.

재신에게는 느껴지고 있었다.

 

그는....지금.....남자다.

그리고 지금 나도, 그에게는 여자다.

 

 

 

그는 자신의 차 앞으로 가서 운전석 옆 자리의 문을 열었다.

내리려고 바둥거리는 재신을 간단하게 제압하고, 천천히 그녀를 운전석 옆 자리에 앉혔다.

그의 옆얼굴이 재신의 얼굴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그의 스킨향이 재신의 코끝으로 훅하고 들어오며, 또다시 심장을 뛰게 만들고 있었다.

의자에 바짝 기댄 채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긴장만 하고 있는 재신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경은 안전벨트까지 꼼꼼하게 매주고 있었다.

 

그의 검은 눈썹이 그녀의 눈으로 들어왔다.

늘 자신을 보며 깊게 가라앉던 그의 눈도......

그리고 마치 베일 것처럼 솟아 있는 그의 날렵한 코도......

샤프하게 떨어진 그의 턱도......

그리고......

재신을 늘 부끄럽게 만드는 그의 부드러운 입술도......

그 짧은 순간, 그녀의 눈을 사로잡고 있었다.

 

이 남자........아름다웠다.

분명 강인하고 거친 듯한데, 그래도 그는 아름다웠다.

눈을 감고 싶을 만큼, 그는 아름답기만 했다.

 

그가 아름다운 만큼, 재신의 심장은 미친 듯이 뛰기만 했다.

 

내 심장이 미쳤나봐.......

 

재신은 눈을 감았다.

눈을 감은 세상에서는 오로지 그만이 느껴졌다.

그의 향도, 그의 시선도, 다가왔다가 멈칫대는 그의 숨결도,

그리고 뭔가 참고 있는 듯, 깊은 한숨소리와 함께 멀어지는 그의 얼굴도,

모두모두 느껴지고 있었다.

 

그 순간.....그녀의 입술 위에 부드러운 손길이 느껴졌다.

그의 손가락이, 그녀의 입술을 천천히 쓰다듬고 있었다.

그의 손가락은 그녀의 입술을 만지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손은, 그녀의 심장 저 안까지 만져오고 있었다.

 

하아......

 

그녀의 입술에서 작은 한숨이 흘러나오고, 시경의 손이 아쉬운 듯 그녀의 볼을 쓰다듬다가 천천히 떨어졌다.

차문이 닫히고, 또다시 열렸다.

그녀의 왼쪽에서 그의 향이 퍼져간다.

 

 

"전하, 은시경입니다."

 

"공주님, 잠시 모시고 다녀오겠습니다."

 

그 소리에 재신은 눈을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사무적으로 전화를 받고 있었다.

대한민국 국왕에게 통보를 하고 있었다.

 

놀라웠다.

그의 이런 모습을 보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니다.

그는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는 일들에 대해서는 늘 돌직구를 던졌던 것 같다.

그와 만난 그 짧은 시간 동안에도, 그는 그 누구에게든, 그가 국왕에게든, 나에게든, 정확하게 돌직구를 날리고는 했다.

 

전화기 너머로 분노해서 소리를 지르고 있는 재하의 목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야- 은시경, 너 죽을래?

지금 몇 신데, 애를 데리고 어딜 가겠다는 거야?

너, 그렇게 안 봤는데, 어? 너 완전 도둑놈 심보 아니야?"

 

"그렇게 늦지는 않을 겁니다."

 

분노에 쩌는 재하의 윽박 앞에서도 시경의 목소리에는 변화가 없었다.

 

"야, 내가 널 어떻게 믿어?

시커먼 니 속내를 내가 어떻게 믿냐고?"

 

"못 믿으신다면 저도 어쩔 수 없습니다.

어쨌든 늦지 않게 모시고 오겠습니다."

 

"야!!! 은시경!!!!!"

 

"그럼, 다녀와서 연락드리겠습니다. 전하."

 

시경은 재하가 소리를 지르든 말든,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리고는 휴대폰의 전원까지 꺼버렸다.

 

재신은 그런 그가 못내 놀라웠다.

이 남자, 알고 보면 나쁜 남자인 거 아닐까......

 

"어디....가는 거예요?

나.....납치하는 거예요?"

 

두근대는 마음을, 긴장대는 마음을 겨우 누르며, 재신은 그에게 겨우 말을 던졌다.

재신이 시경을 바라보지만, 시경은 정면만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은시경 씨.......”

 

“오늘.....공주님께서 마음대로 하셨으니,

저도.....마음대로 하겠습니다.”

 

통보....였다.

한 남자가 한 여자에게 하는 통보.

이 차안에 있는 사람은 근위대장도 공주도 아니었다.

그저 약간은 화가 난 듯한 한 남자와, 그를 의식하며 긴장하고 있는 한 여자만 있을 뿐이었다.

 

 

 

 

 

 

 

2

 

 

 

 

성곽이었다.

 

언제나 속에서 들끓을 때면,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나를 그립게 할 때면,

참다가 참다가 더이상 참을 수 없을 때가 되면,

그렇게 와야만 했던 이곳.

그런데 그가 이곳으로 나를 데리고 왔다.

 

차를 세워 놓고, 그가 운전석 옆문을 열었다.

 

"나 조금만......걷고 싶어요."

 

내 말에 다른 말없이 내 팔과 허리를 꽉 끌어안고 바닥에 세워준다.

내가 완전히 설 때까지 그는 나를 힘차게 끌어안고만 있다.

 

"됐어요. 이제 놔도 돼요."

 

그 말에 약간 멋쩍은 듯, 그가 흠흠 거리며 나를 놓아주었다.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걱정스러운 듯, 내 팔을 잡고 있다.

여차 하면, 안을 태세였다.

나는 그의 오른팔에 팔짱을 끼고, 한 걸음 한 걸음 옮겼다.

 

"공주님, 괜찮으세요?"

 

"몇 걸음 걸었다고, 지금 괜찮냐, 마냐예요?"

 

"그래도....길이 아무래도 오르막이다보니....."

 

"음....거의 근처까지 차 가지고 왔잖아요.

몇 걸음 되지도 않는구만....."

 

내 고집에 그도 할 수 없다는 듯, 내 뜻에 따라 천천히 한 걸음 씩 옮기고 있었다.

 

 

 

이 길을 걸으며, 이토록, 가슴이 꽉 차올라오는 기분을 느낀 적이 있었던가.

알 수 없는 그리움의 정체....그 정체가 바로, 내 곁의 이 사람인가 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충만해지는 마음은 뭐란 말인가.

그는.......이토록 내 가슴을 다 채우던 사람이었나 보다.

기억과 상관 없이, 내 심장이 알고 있는 사람인가 보다.

 

헉헉......

 

스무 걸음까지 아직 몇 걸음 더 남았는데, 벌써 숨이 차올라왔다.

 

"공주님, 더는 무립니다."

 

나도 알고 있었다. 더는 무리라는 걸.......

그는 조용히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내게 등을 내밀었다.

그의 단단하고 넓은 등.......

내 여린 모든 것을 감싸 안아줄 것만 같은.......누군가의 등이었다.

그 등 앞에서 괜시리 코 끝이 시큰해졌다.

이 남자는...자꾸만.....아빠를....그리고 아빠를 닮은 큰오빠를 떠올리게 한다.

 

쿵쿵쿵쿵.....

 

내 심장소리가 그의 등으로 전해지는 듯하다.

 

그래도....그의 등이 좋았다.

따뜻하고 넓은 그의 등이....자꾸만 내게 위로를 건넸다.

 

"은시경 씨......"

 

"예. 공주님."

 

"은시경 씨...."

 

"예. 공주님."

 

"은....시경 씨....."

 

"예. 공주님."

 

 

변함이 없다. 이 남자.

내가 물으면, 대답해준다.

마치 어느 날, 악몽을 꾸고 일어났던 그 날처럼, 그는 변함없이 내게 대답해준다.

왜 그러느냐고 묻지도 않는다.

내 불안을 아는 듯이, 그는 곁에 있다고, 살아있다고, 그렇게 대답해 준다.

 

"나.....처음 걸었어요. 이곳에서....."

 

"예."

 

"예전에 말이에요. 어렸을 때, 이곳에 왔을 땐......그냥 별이 좋아서였어요.

별도 보고, 속도 풀고......내 어깨 위에 짐처럼 올려져 있는 공주라는 왕족의 지위도 벗어버리고....

그렇게 자유롭고 싶어서 그렇게 별을 쳐다봤었어요."

 

"............."

 

"그런데요.....기억을 잃고 나서...이곳에 오면, 이상했어요.

그런 자유...같은 느낌이 아니었어요.

뭔가......아니 누군가가....그리웠나 봐요.

자꾸 누군가가 생각나는 듯해서, 기억에도 없는 누군가가 자꾸 가슴을 아프게 해서,

나도 모르게 눈물짓기도 했었어요."

 

".....하아....."

 

그의 한숨소리가 밤공기를 갈랐다.

 

"그런데....오늘은 달라요. 오늘은......예전 같아요.

예전...자유로웠던......정말...해맑게 별을 보러 온 그 날 같아요."

 

"이젠....괜찮으십니까......"

 

"응......."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다....그런 표현으로는 안 된다.

가슴 가득......뭉클한 무언가로 가득 차 올라온다.

그건....그리움이 채워졌을 때.....생기는 마음이 아닐지.......

 

"고마워요......."

 

"공주님........"

 

"그냥...다......고마워요. 은시경 씨......."

 

시경의 가슴에서 자꾸만...울컥하고 올라오는 것만 같다.

되었다고.....이걸로 충분하다고........

이것만으로도, 살아온 이유가 된다고........

자꾸만 눈시울이 뜨거워지려는 걸, 몇 번이나 눌러 참으며, 그 길을 올라갔다.

한 걸음 한 걸음.......어두울수록 빛나는 별을 가지러, 별보다 더 반짝이는 공주님과 함께 그곳을 향해 걸었다.

 

 

 

 

 

3

 

 

 

 

성곽 앞에서 시경은 재신을 기대게 한 후, 자신의 자켓을 벗어 성곽 위에 깔고 재신을 다시 안아서 그 위에 앉혔다.

그리고는 자신도 재신의 곁에 붙어 앉았다.

 

아...좋다....

 

바람이 지나가고 있었다.

밤의 푸르른 향들이 재신의 코 안까지 불어왔다.

 

그렇게 둘은 바람을, 별을, 밤을 즐기고 있었다.

 

“그 날.....”

 

“예?”

 

“그 날....많이...힘들었죠?”

 

“언제...말씀입니까......”

 

“내가......나한테 대신 고백해보라고 한 날....요.”

 

“......아닙니다.”

 

“힘들었잖아.....은시경 씨......

그날......당신 많이 아팠잖아요.”

 

“행복,했습니다.”

 

“응?”

 

“공주님께서 고백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거니까......

저는....그날...여한이 없다, 생각했습니다.”

 

“그럼....그...키스는 뭐예요?

막 들이댔잖아.”

 

“그건..흠흠...저도.......”

 

시경의 입에 주먹을 대고 헛기침을 한다.

벌써 목 주변까지 빨개지고 말았다.

 

이 짐승남이 자꾸만 수도승 코스프레를 한다.....

이러니 정말 이 남자는 알다가도 모르겠다. 정말.....

 

“예전에.......내가 먼저, 은시경 씨 좋아한다고, 고백했었어요?”

 

“........예........”

 

“풋,,,그럼 은시경 씨, 그 때 심장 터졌겠네?

나, 처음 봤을 때부터 좋아했다며?

그 비디오에서 그랬잖아요.”

 

“그게.....”

 

“뭐야, 왜 이제 와서 막 부끄러워하고 그래요?”

 

“사실은......처음에는 믿기지가 않았고, 시간이 지나니...점점...현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공주님을...아니 공주님의 마음을.....믿어서는 안 된다고...... ”

 

시경은 그날의 자신을 떠올렸다.

그 날.....자신의 긴장과 고민을.....그러다가 그녀에게 다가지도 못하고 떨고 있던 자신의 바보 같던 모습을 떠올렸다.

 

“너무 좋아하면......더 다가가지 못합니다.”

 

“왜요?”

 

“그 사람이 없는 순간을...그 사람이 떠난 순간을 견딜 수가 없으니까요.”

 

“은시경 씨는 왜, 늘....최악의 상황만 생각해요?”

 

최악의 상황?

재신의 말에 시경은 당황하고 말았다.

 

“당신의 유일하게 안 좋은 점이 그거야.... 너무.....dark side만 본다는 거......”

 

어쩌면 자신은 정말 그런지도 모른다.

실망하지 않기 위해, 늘 가장 안 좋은 것부터 먼저 생각하고는 했다.

또한 그것이 자신을 가장 후회하게 하고는 했다.

 

“..........”

 

“근데요 은시경 씨,

그 때, 고백했던 이재신이라는 여자, 있죠.

그 이재신이라는 여자가, 은시경 씨 정말 많이 좋아했나 봐요.”

 

“예?”

 

그녀가 나를 향해서, 숨도 쉬지 못하도록 그렇게 아름답게 웃고 계신다.

 

“나....한번도, 내가 먼저, 좋아한다고 말해본 적, 없어요.”

 

“예? 그......첫 ...사랑....에게는....”

 

“아니에요.

난 늘 물어봤어요. 나 좋아해? 라고......

그런데 정작 좋아한다는 말은 꼭꼭 숨겨뒀어요.

마지막 떠날 때도......물어봤으면 됐을 텐데.....

아니 내 마음이라도 정확하게 말했다면 좋았을 텐데....

그걸 못했어요. 내가.......”

 

그녀의 첫사랑....그 고백이었다.

가슴이...조금씩 소리를 내는 것 같다.

 

“그 이후로도 그랬어요.

만나는 남자마다 시큰둥했어요. 오래가지도 못했고..좋아하지도 않았고...

날 좋아한다고 하면, 귀찮았어요.

....상우 오빠..영향...있었던 것도 맞아요.

믿었던 남자한테 배신당한..그런 느낌이기도 했고...

저 남자들도 나를 좋아한다고 해놓고, 자신의 사정상 또 떠나겠지....싶기도 했고.....”

 

“................”

 

조용히 듣고 있는 시경.......

기분이 안 좋을 텐데도....들어주는 시경.......

재신은, 그런 그가 자꾸만 고맙다.

 

“나중에......내가 아주 좋아했던 사람이 은시경 씨라는 걸 알게 되고 나서.....

내가 당신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했다는 게, 정말 신기했어요.

왜 그랬을까......”

 

“.....................”

 

“그 때, 그 여자, 은시경 씨를.....정말 좋아했나 봐요.”

 

시경의 가슴이 울컥거리고 말았다.

 

“정말.....정말 많이요.”

 

재신은 마치 그때처럼 시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경은 자꾸만 목울대가 울렁대고 타는 것만 같다.

벅찬다,라는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다. 그 울컥거림을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당신이....생각하는 거.....그 이상일 거예요.”

 

하아.....

 

그 어떤 말도 하지 못한 채, 참아 왔던 숨을 뱉어낼 뿐이었다.

 

“오늘은.....두 개의 과거가 서로 지나갔어요.”

 

“무슨, 뜻입니까?”

 

“오늘은....교차점의 날....그러니까...오늘은 이해해줘요.”

 

재신은 자신의 파우치에서 작은 금색 조금은 낡은 학종이 하나를 꺼냈다.

 

“혹시....은시경 씨, 불 같은 거 있어요?

담배 안 하죠? 그럼 없겠네.

급히 나오느라 못 챙겼는데....”

 

시경이 안쪽 포켓에서 라이터 하나를 내밀었다.

 

“어? 어떻게 있어요? 은시경 씨, 알고 보니 골초?”

 

“아, 아닙니다. 전하께서 요즘 심란하실 때 ,한 번씩...”

 

“오빠?

어, 어...큰일이네

이재하.......언니 이제, 오늘 내일 하는데, 담배를..쯧쯧.....

그래도 어쨌든..다행이다.”

 

“공주님......그걸로 뭐...하실 겁니까?”

 

“불장난?”

 

재신의 눈이 반짝이며 빛을 냈다.

 

“과거의 교차점에서 하나를 태우려구요.”

 

“예?”

 

“이거...사실은....아주아주 어린 시절에.....10년도 더 된 어느 날....내가...하아...상우 오빠 주려고 만든 거예요.”

 

아, 그제서야 생각이 났다.

전하께서 말씀하신 적이 있었다.

결혼해 달라고 학까지 만들어 접으셨다는.......

나를 아주 오랫동안 괴롭힌....그 말씀.......

 

“이거, 있죠. 작은 오빤, 내가 이걸 상우 오빠한테 준 걸로 알지만,

사실 안 줬어요.

이상하게 못 주겠더라구요.

그때는 좋아한다고 생각은 했었는데, 이렇게까지...해야 하나...싶기도 하고.....

내가 너무 들이대는 것도 같고..그게 자존심 상하기도 하고...

어린 맘에 그랬었어요.”

 

“..............”

 

참 웃기게도, 안 주셨다는 말에, 안심하고 있는 나라는 놈이 한심했다.

 

“훗...웃기죠?

어쨌든....이거...이상하게 못 버리겠더라구요.

그런데.....이젠.......”

 

재신이 라이터를 당겼다.

어두운 밤, 빨갛게 불이 타올랐다.

 

“보내도 될 것 같아요.”

 

하아.....

 

시경이 한숨을 쉬더니 가만히 재신의 손 위로 자신의 손을 올렸다.

 

“공주님 그냥, 두세요.”

 

놀라서 자신을 보는 재신을 향해, 시경은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응? 왜요?”

 

“그런 일들이 모두 공주님의 추억입니다.

추억이 얼마나 소중한지......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시경은 재신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어느새 재신의 손에 있던 라이터의 불이 꺼졌다.

 

“공주님.......추억은 태운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은시경 씨......”

 

“그러니까.....그냥 가지고 계세요.”

 

“............”

 

재신은 무언가 울컥하기도 하고, 무언가 미안하기도 하고....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이고 있었다.

 

“다른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앞을 늘 지우고, 태워야 한다면,

그렇게 다 지우고 온 사람이, 그 사람이 정말 맞을까.....

온전히 그 사람 자신일 수 있을까.......

저는....의문이 듭니다.

과거가 있었으니.....현재의 그 사람이 된 거라고 생각합니다. 전.

그러니까......그냥....그대로 두세요.”

 

그냥...그대로....두세요......

 

이상한 울컥함......

그 말이 이상하게 위로가 된다.

과거의 나 없이 현재의 나란 존재할 수 없으니까......

그는 정말로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사람이다.

 

“만약에 말입니다......

정말 만약에......

제게 사랑하는 사람과 평생을 함께 할 수 있는, 그런 엄청난.....행운이 온다면,

그 분께......꼭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시경의 눈이 어느새 재신의 눈을 향해 있었다.

 

그 사람은.....나라고, 나였으면 좋겠다고, 그의 눈이 진심으로 말하고 있었다.

내 손을 잡은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 사람은.....이렇게 나를.......설레게 만든다.

 

“제겐 과거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저와 만나기 이전은, 어떤 사람을 만났든, 어떤 사람을 사랑했든 괜찮습니다.

제게는 저를 만난 이후가, 더 중요합니다.

저를 만난 이후, 저만 보시면 됩니다.”

 

앞으로 자신만 보라는.....그 말이었다.

자기 말고 다른 남자 보지 말라고.....

왜 내게는 그렇게 들릴까.......

 

모르겠다. 부끄러웠다.

그의 빠져 들어갈 듯 검은, 너무나 깊은 그 눈이....나를 부끄럽게 했다.

나도 모르게 그의 눈을 피해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공주님.......”

 

내가 눈을 피하자, 그의 목소리는 다시 애타는 듯하다.

그의 손이 내 얼굴을 들어올려, 다시 그를 보게 한다.

 

“그 분이.......공주님이셨으면......좋겠습니다.

그러면, 저는 정말....더 이상 바랄 게 없습니다.”

 

쿵...쿵...쿵...쿵......

 

심장이 뛴다.

미치겠다, 이 남자.

정말.......미치겠다.......

 

 

 

 

 

 

4.

 

 

 

자신의 얼굴을 부드럽게 쓰다듬는 그의 손길이 자꾸만 부끄럽게 했다.

재신은 황급히 얼굴을 돌리고는, 뻘줌한 듯 화제를 바꾸었다.

 

“근데 나 왜 여기 데려왔어요?

이유, 있는 거 아니에요?”

 

그 말에 시경은 재신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한다.

 

이유.....

내가 사랑을 하고 있다는 걸, 명확하게 알게 된 곳......

 

“공주님께서...공주님 첫사랑을 만나셨으니....

제 처음도...만나셔야죠.”

 

이 남자 자꾸 두근대게 한다.

 

“은시경 씨...진짜.....알고 보면, 바람둥이 아니에요? 카사노바나?

여자를 너무 잘 알아.....”

 

“그 때도...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어느 날 그 때도...

 

“은시경 씨? 알고 보면, 여자들 후리고 다니는, 바람둥이 아니에요?

여자가 어떻게 하면 설레 하는지, 너무 잘 알아.....”

 

그 날.....공주님도 그러셨다.

 

 

 

 

 

 

 

 

 

 

노래를 불러주실 때,

그 아름답던 밤을 잊을 수가 없었다.

별똥별도, 그 무엇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 옆에 앉아 있는 별이....이 천상의 별이...내 곁에 있다는 것이 그저 믿기지가 않을 뿐.

내 심장소리가 터져나와 공주님께 들릴까봐, 그것이 두려워서 더 긴장이 될 뿐이었다.

 

그 때 알았다.

공주님이 전화를 하시면, 왜 그렇게 심장이 뛰어댔는지.....

자신을 데리러 오라고 하실 때, 왜 그렇게 지체하지 않고 달려갔는지.......

그리고 다른 남자들과 술을 마시는 걸 보면, 왜 그렇게 알 수 없는 분노에 휩싸였는지.....

느끼고 있었다.

이건....근위대원의 태도가 아니다....

나도 알고 있었다.

내 주제에, 술을 그만하라느니, 공주님으로서 품위가 없으셨다느니....

그런 말들을 할 수는 없는 거였다.

나는 마치 내 여자를 단속하듯이, 나도 모르게 내 마음들이 자꾸 나오고만 있었다.

그래도 애써 외면했다.

아니다.....충성심이다.....공주님이다.....

아무리 심장이 숨쉴 수 없을 만큼 뛰어대어도, 도리질을 했다. 아니라고...절대 아니라고....아니어야 한다고.......

그러면서도, 은시경 씨...하면서 나를 부르실 때면, 미칠 것처럼 심장이 두근댔다.

 

애써 모른척했을 뿐이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

나는....이미 알고 있었다.

내 심장의 주인이, 공주님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곳에서 노래를 불러주시던 공주님을 보며, 이제 더 이상 도망 갈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한 것뿐이었다.

언감생심.....그녀의 마음을 바란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아주 조금은....다른 근위대원들과 다른 게 아닐까...

단 둘이.....성곽에 앉아 별을 보며, 내게만 노래를 불러주신 공주님이니까....

조금은 다른 게 아닐까.......

그날...그렇게 내 심장을....완전히 빼앗겨 버렸다.

 

 

그 이후 일상은 같았다.

공주님은 여전히 몰래 클럽을 가셨고, 나는 열심히 공주님을 쫓아다니는 수밖에 없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대로 정확하게 몇 시까지 마시겠다고 하시면, 꼭 지키셨다는 것이다.

물론....내가 데리러 오는 전제하에.....

그것도 좋았다.

나는 공주님의 곁을 지키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듯이, 그녀의 곁에 머물렀다.

 

그저 좋았다.

그녀의 목소리에서 늘 웃음이 느껴져서.....

내게 조금은 가깝게 느끼시는 듯해서....

때로.....어린 동생처럼 애교를 부리는 듯도 해서......

그저 가슴이 뛰었다.

 

그날은......이상하게 더 공주님께서 취하셨다.

 

“예. 공주님.”

 

“뭐~~야~~. 왜 아직도 안 와?”

 

이미 공주님은 술에 취하신 듯, 혀가 꼬이시는 듯도 했다.

술에 취하시면, 늘 이렇게 애교가 많아지시고는 했다.

 

“공주님, 술, 너무 과하십니다.”

 

“아니야, 아니야. 진짜...쪼금밖에 안 마셨어요. 진짜예요?

진짜~~ 쪼금이야...진짜예요. 진짜~~~”

 

내가 뭐라고......공주님은 내게 마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듯이, 나를 설득하시겠다는 듯이

그렇게 내게 적게 마셨다고 변명을 해대셨다.

그런 모습도, 좋았다.

 

“그~니까...왜 안 와요? 응? 나, 더 마신다~~ 그러다 소주 사발에 머리 박고 다 마신다?“

 

“흠흠....사발 안 보이는데, 어떻게 박으시려고 그러세요?”

 

“응? 무슨 소리야? 나 보고 있어요? 지금?”

 

공주님은 나를 찾는 듯이 주위를 두리번 두리번 대신다.

 

그런 모습이 자꾸만 설레게 했다.

내가 마치...정말 마치...공주님의...무언가가 된 것 같아서.....

 

“우와 우와~~은시경 씨~~~·!!”

 

그러다가 문밖에 조금 떨어져 서 있던 나를 발견하고는 손을 흔들며, 환하게 미소 지으신다.

그 순간, 그 짧은 순간, 나는.....그녀의 무언가가 진짜로 되고 만다.

내 마음 속에서...그 짧은 순간......설렘이 고통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많이 취하셨습니다. 가시죠. 공주님.”

 

“응응...나 이제 갈 거야. 안뇽~~~여러분~~~~”

 

이젠 워낙 자주 봐서 눈인사 정도는 나누는 공주님 밴드들에게 목례를 하고 공주님을 부축해서 일으키는데,

해영이라는 선배 한 사람이 툭하고 말을 던졌다.

 

“뭐야, 이재신, 너 수상하다~ 너, 연애하는 거 아니야?”

 

“응? 뭐라고? 언니?”

 

연애라는 말에 얼어버린 나와, 그런 나를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보는 해영이라는 공주님의 선배......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환하게 웃고 있는 공주님.

뭔가 재미있다는 듯, 그 상황을 바라보고 있는 밴드 부원들......

 

“이것 봐요. 은시경 중대장님.”

 

공주님 말씀에는 아무 대답 없이, 그 해영이라는 사람은 나를 향해서 바로 질문을 던졌다.

 

“이재신이라는 여자가 말이에요.

여기 앉아서, 얼마나 은시경 씨 찾았는지 알아요?

오늘은 왜 이리 늦느냐고.....올 때가 됐는데 왜 이리 안 오느냐고.....

난리 난리를 쳤다구요.

이거, 정말 근위 중대장님과 공주님 관계, 맞아요?

이거, 그렇게 봐도 되는 거 맞아요? 진짜?”

 

“아..저....흠흠.....그게....”

 

“어, 이거 뭐야, 중대장님.....얼굴 빨개지셨어.

세상에...이거 진짜 아니야?”

 

놀리는 소리가 들려도 나는 그 어떤 대답도 할 수가 없었다.

 

“뭐야? 언니, 은시경 씨 놀리지 마!!!

이 남자~~ 무서운 남자야~~!!

나한테도 돌직구 막~ 던지는 남자라고!!”

 

“그러니까, 왜 그렇게 은시경 씨 찾았냐고, 이재신!

너 진짜 이상한 거 아니?”

 

“이상하긴 뭐가 이상해. 에잇...여튼 해영 언니는 안 돼.

현영 언니 데려 와 빨리.

현영 언니 있었으면, 내가 이렇게 구박도 안 받아...으허헝.....”

 

“시끄러 기집애야. 현영이, 그 독한 년....그거 애 낳는다고, 그 골초가 1년이나 담배 끊은 년이야.

알고 보면, 무서운 년이다, 너~”

 

“흥~ 나중에 현영 언니 오면, 내가 다 일러 준다~~~.

이제 갈 거야. 가요, 은시경 씨....헤헷.....”

 

공주님은 바로 내 팔을 잡고는 비틀 비틀 걸어가신다.

 

“어휴....저 여우 봐. 그러면서 또 저렇게 매달려 간다.”

 

“냅둬. 공주님이잖아.”

 

뒤로 두런두런 얘기가 들리지만, 내 모든 집중력은 내 팔을 잡고 걷고 있는 이 사람에게로만 쏠리고 있다.

 

“오늘...진짜...왜 이렇게 늦게 왔어요?”

 

내 팔을 잡고 앞 뒤로 흔들며, 정말 애교를 부리듯이, 예쁘게 웃으신다.

정말....이럴 때는 착각하고 싶다.

 

“공주님......”

 

“응? 응?”

 

그 큰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빤히 보며, 해맑게 미소를 지으신다.

하아......

밤이라서 정말 다행이다.

이미 내 심장은 터져버릴 듯 뛰어대고, 얼굴은 뜨거워질 대로 뜨거워지고 있었다.

 

“아까, 와 있었습니다.”

 

“응? 그런데, 왜 연락 안 했어요?”

 

“즐기고 계신 것 같아서......”

 

사실 이 대답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녀를 바라보는 게 좋았다.

그녀가 아끼는 사람들, 그녀가 편해 하는 사람들 옆에서 그녀를 바라보는 것이 좋았다.

조금은 느슨해지고, 보통의 아가씨 같은 그녀 모습을 보는 것이, 정말 좋았다.

물론 남자 밴드 부원들이 집적거리지 않는다는 조건하에서지만.....

언제부턴가 공주님은 남자 밴드 부원들 옆에는 앉지 않으셨다.

선배 언니들 사이에 앉아 계셔서 예전보다는 마음이 놓인 것도 사실이다.

혹시...나 때문일까...내가 싫어하는 걸 아시는 걸까.....

그런 착각도 하고 싶지만, 금세 고개를 흔들고 정신을 차린다.

그래도......뒤로 갈수록 시계를 보시다가, 휴대폰을 보시다가 밖을 내다 보시며 두리번거리시는 모습을

조금은 떨어져서 보는 게 좋았다.

답답하신 걸 싫어하시다 보니 야외 포차에 앉아 이야기하시는 소리가 들리고는 했다.

다른 말은 잘 들리지 않아도.......은시경...씨라고 부르는 그녀의 목소리만은 너무나 잘 들렸다.

 

이상하네....은시경 씨 왜 이렇게 안 와.....

 

혼잣말처럼 말하는 소리도, 밴드 부원들과 같이 내 이야기를 하는 것도.....

그녀의 입술에서 나오는 내 이름이, 너무나 좋았다.

나를 기다리는 듯, 내 이야기를 하시는, 내 이름을 그녀의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 좋았다.

그래서 그 시간들을.....유예시키고 싶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착각하고 싶다고........

그날, 그 성곽에서 공주님은 내게 주문을 거신 것 같다.

공주님만 보도록, 자꾸만 공주님 때문에 설레도록, 그리고 그만큼 마음이 아프도록........

 

자꾸 비틀대고 있는 공주님의 어깨를 잡아 안 듯이 걸어가면서, 이 길이 끝나지 않았으면 싶었다.

심지어 왜 이리 가까이 차를 댔을까, 더 멀리 댈 걸.......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우와, 벌써 다왔네."

 

공주님은 내가 열어드린 뒷자리의 문은 밀어버리고, 스스로 운전석 옆 자리를 열고는 앉아버리신다.

 

“공주님! 뒤에 타셔야.....”

 

“뭐야! 은시경 씨, 나 아직도 몰라?

둘이 가면서, 뒤에 타는 거, 싫어요.

내가 나이든 노땅 사모님인가? 그런 거 싫다고.”

 

그리고는 재빨리 문을 닫아버린다.

어쩔 수 없다. 이미 타버리신 걸.....

또 한 편으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도 있다.

늘 내 곁에 타시는 걸 알면서도, 뒷자리 문을 열고 있는 나와,

또 늘 그걸 거부하시며 내 옆자리에 앉으시는 공주님의 실랑이는

알고 보면 같은 목적을 가진지도 모른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어, 어!! 은시경 씨, 벌써 들어가는 거야?”

 

“예?”

 

갑자기 뭔가 불만스럽다는 말씀에, 당황하고 말았다.

보통은 차에 타시면, 너무나 당연히 궁으로 향하고는 했다.

그런데 오늘따라 공주님이 많이 취하신 듯도 하다.

 

“나, 안 가. 이렇게 못 들어가!! 안가 안가!!! 억울해!!!”

 

“공주님.....”

 

“오늘....별 떨어진단 말예요. 그러니까..성곽 갈래. 성곽 가요!! 빨리 빨리!!!!!”

 

“공주님, 너무 늦었습니다.”

 

“안 늦었거든요? 내가 그래서 얼마나 은시경 씨 기다린 줄 알아요?

성곽 갈려 그랬더만, 이렇게 늦게 와서는, 자기가 잘못해 놓고, 또 저렇게 딱딱하게 그러는 거 봐.

계속 그러면, 나 진짜 은시경 씨 미워한다?

긍까....가자....성곽. 응? 응? 은~~시경 씨~~~”

 

술 취한 공주님의 귀여운 술주정이었다.

귀여운 고양이 눈을 하고서는 내 팔을 흔들어대신다.

 

아, 정말 위험하다...너무 위험하다......

 

시경은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더 바라보다가는....하아.......

 

“은~~시경 씨......응? 응? 가요? 응?”

 

“하아..........”

 

“가요....응?”

 

그 순간 공주님이 내 얼굴 앞으로 얼굴을 내미신다.

동그랗고 큰 눈이, 내 앞에 어른대고 있다.

황급히 눈을 돌렸다.

 

“흠흠...공주님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응?”

 

“바로...앉으셔야 출발을.....”

 

“와~~가는 거야!!! 우와우와!!! 은시경 씨가 웬일이야? 내 말을 다 들어주고....헤헤...신난다....”

 

그렇게 그녀와 나는 그곳으로, 또다시 향했다.

그녀 쪽 문을 밖에서 열자, 그녀가 살짝 잠이 들었던 듯, 몸을 부스스 떨어대셨다.

 

“공주님, 피곤하시면.....”

 

“아니야, 안 피곤해. 갈 거야. 좀 잡아 줘요.”

 

그녀의 팔을 잡아 땅에 바로 세워드리는데, 비틀대신다.

 

“어, 공주님!!!”

 

놀라는 사이, 공주님은 내 가슴에 얼굴을 대고 기대어 오신다.

 

“.........고...공...주.....님........”

 

“어지러워서......그래요......잠깐만....정신 좀 차릴게.”

 

그렇게 공주님은 내 가슴에 머리를 기대고 서 계셨다.

별을 스치운 바람이 내 심장 안까지 불며 지나가고, 설렘인지 두려움인지 알 수 없는 감정들이 그 사이로 떠다녔다.

 

“쿵...쿵...쿵...쿵.....”

 

“예...예?”

 

갑작스러운 공주님의 말씀에, 나는 그저 바보처럼 버벅대고 있었다.

 

“은시경 씨 심장이, 뛰어요.....쿵...쿵...쿵...쿵......”

 

숨도 쉴 수가 없었다.

 

“어, 더 빨리 뛴다. 이제 쿵쿵쿵쿵이야...풋.......”

 

하아......

 

극도의 긴장감으로 숨을 깊이 내쉬는 그 순간, 공주님이 기대어 있던 머리를 드셨다.

 

“풋~ 이제 그만 기댈게요. 이러다 은시경 씨, 심장 터질라.....큭.....”

 

그 소리에 또다시 얼어붙은 나를 놔두고, 공주님은 혼자서 또 몇 걸음 걸으시다가 다시 비틀대셨다.

황급히 가서 그녀의 팔을 잡는데, 그녀가 내게 손을 내민다.

 

“손 잡아줘요.”

 

“예....에?”

 

“안 넘어지게, 손 잡아 달라구요.”

 

어떻게 그녀의 손을 잡으라는 건지, 덜덜 떨리다 못해, 하얗게 질리고 있는 내게 공주님은 손을 내밀어, 그대로 내 손을 잡아버리셨다.

 

아..........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할지......

내 모든 감각이, 손에서 출발하고 있었다.

모든 감각이 완전히 손으로만 집중되어, 그녀의 부드러운 손을 느끼고 있었다.

가슴에서 자꾸만 소리가 난다.

서걱대다 못해, 뭔가 자그락 자그락 소리를 낸다.

이 부드러움을 어떻게 해야 할지, 이 따뜻하고 말랑한 느낌을......내가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그러면서도, 그녀와 맞닿고 싶은 손가락들이 아우성을 쳐대고 있었다.

나는 미쳐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들어가 마디마디마다 얽혀들어갔다.

조금의 틈도 없이 얽히며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서 그녀를 아프게 하는 건 아닐까 걱정은 하면서도, 힘을 뺄 수가 없었다.

그렇게 그녀의 자리로 가서 앉는 동안, 나는 그렇게 그녀의 손을 놓지 못했다.

 

성곽에 앉아서도, 몸을 흔들 흔들 흔드시는 바람에 온 신경이 그녀에게로 쏠려 있었다.

이러다 뒤로 넘어가실까봐, 알게 모르게 팔을 그녀의 등뒤로 빼고 여차하면 잡을 생각이었다.

그걸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그녀는 와~ 별 봐~~완전 많아~~ 하며 하늘만 바라보고 계셨다.

 

“근데, 은시경 씨.”

 

“예.”

 

“왜, 못 봐요?”

 

“예?”

 

온통 그녀가 넘어질까 신경 쓰느라 제대로 못 들은 건지,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내 눈, 왜 잘 못 보냐구요.

내 눈 보면 왜 피해?”

 

장난스럽게 물어오시는 공주님 말씀을 처음에는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나 심장은 쿵쿵 거리며 뛰기 시작했다.

이 상황에 대한 대답은....전혀 준비하지 못했다.

 

풋......

 

그녀는 또다시 풋하고 웃어버리신다.

 

아!!!!

 

그 때였다.

내 어깨 위로 그녀의 향기가 은은하게 퍼져나갔다.

숨이 막히는 것만 같았다.

내 어깨로 느껴지는 무게만큼, 심장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뛰고만 있었다.

그 소리를 들으실까봐.......심장을 누르고 싶지만, 손도 까딱할 수가 없었다.

 

“아.....좋다.......”

 

그녀는 그저 술김에 기대셨을 뿐이다.

그냥......기댈 어깨가 필요하셨을 뿐이다.

 

그렇게 몇 번이나 되뇌며 정신 못차리고 있는 심장을 애써 달래고 있었다.

그렇게 바람이 지나가고, 별이 쏟아지고, 하늘은 검게 물들어갔다.

 

 

“공주님.......주무세요?”

 

공주님이 고개를 흔드시는 게 느껴진다.

무슨 용기에설까....나는......그 날 이후 자꾸만 가슴에 박히던...그 물음을 묻고야 말았다.

어쩌면 오늘 취하셔서 기억을 못하실지도 모른다는......생각이 용기를 주었는지도 모른다.

 

“저번에 제게 불러 주신....곡........”

 

“응? 그거? 처음 사랑요?”

 

“예......그 곡........”

 

“그 곡이 뭐요?”

 

“저......누구......생각하며, 지으신 겁니까?

혹시.......좋아....하시는 분........있으....십니까....”

 

결국은 묻고야 말았다.

처음에는 그저 그녀의 노래를 들어서 좋기만 했다.

그러나 왠지......그녀가 좋아하는 사람을 생각하며 적은 건 아닌지......점점 고통스러워지기도 했다.

지금 이곳에서 그녀에게 결국에는 질문을 던지고는, 내 심장은 터져나가고 있다.

 

“풋~~~왜요?

혹시, 은시경 씨, 나, 좋아해요? 왜 그래? 풋~”

 

순간 쿵하고 심장이 내려앉았다.

알아버리신 걸까......내 마음을 들켜버리고야 만 걸까......

그렇게 전전긍긍하는 동안, 그녀는 그 말은 잊어버리신 듯, 입을 여셨다.

 

“아니야,......그냥.....이런 마음으로 사랑하면 좋겠다....그런 생각에서 얼마 전에 적은 거예요.

음........첫사랑이 있기는 했죠. 그냥 이젠 오빠 동생 사이야. 아....생각하니.....슬퍼~.”

 

장난처럼 하시는 공주님의 말씀에, 나는.....이상하게....속이 상해진다.

공주님의 첫사랑....비록 이 곡은 첫사랑과 아무 상관이 없다고 하셔도......

그녀의 마음 속에 있을 그 첫사랑이......내게는 아팠다.

 

“은시경 씨는 어떤 타입 좋아해요?”

 

“예?”

 

“좋아하는 여자 타입, 말이에요?”

 

“...........밝고, 자유롭고, 어디에서나 빛나는........그런.....분입니다.

너무 빛이 나서, 다른 사람은 그 빛 앞에서 아무 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버리는....그런 분....

바라보지 말자고 아무리 다짐을 해도, 어느 샌가....아름다운 두 눈을, 그 미소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그런 분입니다.”

 

“어, 난데?”

 

“예..예?”

 

“진짜 나 좋아해요?”

 

그 순간 나는 얼어붙고 말았다.

긴장은 당황이 되고, 이젠 정말 덜덜 떨리는 것 같았다.

그녀가......눈치 채신 게 아닐까......

정말이지, 은시경, 미쳤구나....공주님께.......

 

“노래 불러줘요.”

 

“예에?”

 

오늘 공주님은 그야말로 버라이어티하셨다.

일종의 술주정일 수도 있으나, 그저 하시고 싶으신 말들을 다 뱉어내시는 듯했다.

 

“내가 저번에 불러줬잖아. 그러니까, 은시경 씨도 답가 해요.

노래도 엄~~청 잘 한다며?”

 

“아,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냐?

노래 막 불러서, 거...뭐....언니도 꼬셨다면서요?”

 

“예?”

 

“오빠가 그러던데 뭐. 그 때 뭐 부른 거예요?”

 

“예? 아......그...저......소녀.....불렀습니다.”

 

“뭐? 소녀?

은시경 씨? 알고 보면, 여자들 후리고 다니는, 바람둥이 아니에요?

여자가 어떻게 하면 설레 하는지, 너무 잘 알아.......”

 

“절대, 아닙니다! 공주님!”

 

“어쨌든, 나만 불러주는 건 억울해. 나도 불러줬으니까, 은시경 씨도 나한테 불러줘요.”

 

“공주님........”

 

“항아 언니한테 부른 곡 말고, 다른 거, 불러줘요. 반드시 다.른.거!!”

 

뭔가 단호한 공주님의 목소리에 왠지 불러야만 할 것 같았다.

 

그녀는 여전히 내 어깨에 기대어 있었다.

내 숨소리, 내 심장소리, 그리고 내 떨림까지 다 듣고 계신 듯했다.

 

 

 

바라보지 말아야지

하루종일 생각했지만

그 예쁜 두 눈을 바라보면

다른 생각은 할 수가 없어

 

생각하지 말아야지

하루종일 생각했지만

그 웃음 소리를 생각하면

다른 생각은 할 수가 없어

 

책을 펼치면 떠오르는 하얀 얼굴

길을 걸으면 온통 그 뒷모습

눈을 감으면 보이는 환한 미소

눈을 떠보면 어느새 사라져

 

조금만 더 기다릴까

잠시후면 지나갈텐데

난 그냥 우연히 지나다가

그냥 우연히 서있는 거야

 

하염없이 기다리다

우연인척 그녀를 만나

해맑은 그 미소 눈이 부셔

나의 사랑 수정

 

책을 펼치면 떠오르는 하얀얼굴

길을 걸으면 온통 그 뒷모습

눈을 감으면 보이는 환한 미소

눈을 떠보면 어느새 사라져

 

조금만 더 기다릴까

잠시후면 지나갈텐데

난 그냥 우연히 지나다가

그냥 우연히 서있는 거야

 

하염없이 기다리다

우연인척 그녀를 만나

해맑은 그 미소 눈이 부셔

나의 사랑.......

 

 

그 마지막 부분에서 멈추었다.

 

“나의 사랑..........”

 

그 순간 내 심장이 떨어져 내렸다.

내 가슴 속에서 나는.....재신이라고.....부르고 있었다.

 

내 노래를, 내 고백을 들으셨을까......

내 어깨에 기대신 채, 잠이 드신....아름다운 공주님을 바라보며, 나는 알퐁스 도데의 <별>을 떠올렸다.

그 잠든 얼굴을 지켜보며 꼬박 밤을 새웠던 그 목동의 마음을......나는 이곳에서 느끼고 있을 뿐이었다.

 

 

 

 

 

잠든 그녀를 업고 내려오는 길......

그리고 차에 태워 궁으로 향하는 내내......

내 가슴을 아릿하게 하는 이 정체를 알 수가 없었다.

 

그녀를 차에 앉히면서, 그 떨렸던 마음을,

좌석을 아래로 내려드리며, 내내 설렜던 그 마음을,

내 곁을 가득 채우는 그녀의 존재감을 느끼는 지금 이 순간도,

자꾸만 내 가슴을 저릿하게 아리게 했다.

 

궁에 도착해서도, 그녀는 일어나지 못하셨다.

아니, 내가 깨우고 싶지 않았다.

이 순간을 잡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의자에 기대어 눈을 감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서, 정말로 내가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그녀를 깨워야 하지만, 나는 깨우지 않았다.

아니, 나는 깨울 수가 없었다.

이 시간을....좀 더....끌고 싶어서, 그녀의 곁에 조금만 더 있고 싶어서,

나는 내 이성의 소리를 무시했다.

 

나는 미쳤다. 정말 나는 미쳤다.

 

내 손은 어느 새, 그녀의 손을 살며시 잡고 있었다.

아까....나를 그토록 떨게 만들었던, 그 보드랍던 감각을 잊을 수가 없어서, 나는 또다시 미친 놈처럼, 그녀의 손가락에 얽혀들어 잡고 말았다.

 

가슴 가득 뭉클한 것이 올라왔다.

 

내 가슴의 이 저릿함의 정체를.....나는....온 몸 가득 느끼고 말았다.

 

나는....오늘......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별을 내 어깨에 내려놓았다.

 

 

우리 주위에는 총총한 별들이 마치 헤아릴 수 없이 거대한 양떼처럼 고분고분하게 고요히 그들의 운행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따금 이런 생각이 내 머리를 스치고는 했습니다.

저 숱한 별들 중에 가장 가냘프고 가장 빛나는 별님 하나가 그만 길을 잃고 내 어깨에 내려앉아 고이 잠들어 있노라고.......

 

                                                                                                 -알퐁스 도데의 <별> 중에서-

 

 

 

 

 

 

5

 

 

 

 

 

“그 날 불렀던 그 노래......지금, 불러줘요.”

 

“예?”

 

“제목이 뭐예요?”

 

“아.....나의 사랑 수정...입니다.”

 

“어, 처음 들어보는 제목인데?”

 

“그게.....육사에서 졸업페스티벌 때, 뮤지컬을 했는데, 그 때 부른 노래라.....”

 

“어, 은시경 씨, 뮤지컬도 했어요?”

 

“예? 아, 그게 아니라......노래 부르는 녀석들이 없어서.....”

 

“어쨌든...막 기대되는데? 은시경 씨 노래 실력.....

빨리 빨리 들려줘요.”

 

그녀의 눈이 감긴다.

그리고 여전히 내 어깨 위에는 그 날보다도 더 반짝이는, 그래서 내 심장 저 안까지 설레게 만드는

너무나 아름다운 별이 곱게 내려앉아 있다.

 

 

바라보지 말아야지

하루종일 생각했지만

그 예쁜 두 눈을 바라보면

다른 생각은 할 수가 없어

 

생각하지 말아야지

하루종일 생각했지만

그 웃음 소리를 생각하면

다른 생각은 할 수가 없어

 

책을 펼치면 떠오르는 하얀 얼굴

길을 걸으면 온통 그 뒷모습

눈을 감으면 보이는 환한 미소

눈을 떠보면 어느새 사라져

 

조금만 더 기다릴까

잠시후면 지나갈텐데

난 그냥 우연히 지나다가

그냥 우연히 서있는 거야

 

하염없이 기다리다

우연인척 그녀를 만나

해맑은 그 미소 눈이 부셔

나의 사랑......

 

 

그리고 그 날 그 자리에서 멈췄다.

 

심호흡을 했다.

내 어깨위로 앉은 내 별에게 고백했다.

 

“.....나의 사랑........재신.........”

 

두근두근두근두근.........

별이 반짝이는 그 하늘 아래, 온통 심장 소리로 가득 채웠다.

 

그 날은 감히 말하지 못했던 그녀의 이름을.......

나는 소리내어 뱉었다.

감히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이제 더 이상 감출 수 없는 내 사랑을.....

이제 차올라오다 못해 터져버릴 것 같은 내 사랑을.......

내 영혼까지 설레게 하는 그녀 앞에 내려놓았다.

 

하아........

 

그녀의 숨소리가 낮게 어둠 속으로 스며나왔다.

 

“나...그날.......은시경 씨, 떠본 거야......”

 

“예?”

 

“당신 떠보고 싶었던 거라구요.”

 

“공....주님.....”

 

“정말...좋아했구나...내가....”

 

“예?”

 

“노래까지 불러주고....

꼬시려고 정말 난리도 아니었네.....

막 듣는데 부끄러워요.”

 

“아닙니다.

사실..그 날...저 심장 터지는 줄 알았습니다.”

 

“풋...그랬을 것 같아요.

나, 정말 꼬시려고 작정했으면, 진짜 장난 아니었을 거야. 큭큭....

어떡해, 은시경 씨, 아무래도 나쁜 공주한테 걸렸나 봐......풋.....”

 

“나쁘지 않습니다.”

 

“응?”

 

“너무나...아름다우신 공주님이시죠.”

 

“.......어휴..정말.....바람둥이 맞아. 은시경 씨는.......”

 

“아닙니다. 절대...그런 거...”

 

“알아요. 알아...그만큼....여자 마음 꼬시는 거, 넘 잘 한다는 거예요.

지금..노래도...”

 

“예?”

 

“그 때 불러줬었다고 했죠? 나한테?”

 

“예.....”

 

“그럼....백퍼센트야.”

 

“예?”

 

“이재신, 이라는 그 여자, 백퍼, 넘어갔어요. 당신한테........

무서운 남자야. 은시경이라는 남자......”

 

헤어나올 수가 없게 만들어.......당신이라는 남자......

마지막 생각을 가슴으로 삼키며, 재신은 자신의 두근대는 심장에 손을 갖다 대었다.

 

“공주님.............”

 

“응?”

 

“처음 사랑......가사.......공주님 마음인 겁니까?”

 

“왜요?”

 

“처음 들었을 때는 마냥 좋다고만 생각했는데.......

갈수록....뭔가.......”

 

“새드 엔딩, 같아서요?”

 

“.....예......”

 

“풋.....내가 그런 마음으로 썼나 봐요.

사실은......누군가 대상을 가지고 쓴 곡은 아니었어요.

이런 사랑을 하면 어떨까.....생각했었어요.

이런 아름답고 따뜻한 사랑을 하면 어떨까....

그러면 비록 나중에 그 사람과 연이 되지 않아도

그 추억만으로 아름다울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미래의 마음으로 노래했나 봐요.

나중에.....아무리 돌아봐도 아름다운 그런 사랑을 하고 싶다고.....

진정으로 내 모든 것을 다 바치는 사랑을 하자고......

그런데......이 노래를 은시경 씨에게 내가....불러줬었구나......”

 

 

처음엔 친구처럼 소중한 연인처럼

나의 마음에 너의 맘을 들여놓은 순간부터

설레던 내 마음은 운명이 될 거라고

믿었던 철없던 내 처음 사랑

 

숨만 쉬어도 행복했었어 햇살 같은 사랑이었어

영원할 거라 생각했는데 그 추억 속에 남았어

이젠 아픈 맘 슬픈 눈물 내 뺨에 기대어도 괜찮아

기억 속 상처 온몸가득 남겨져도 괜찮아

마음이 먼저 선택한 너 처음사랑으로 충분해

영원히 지킬게 내 처음사랑

 

짜릿한 마법 같은 너의 그 입맞춤이

나의 마음에 설레임은 그렇게 시작됐고

불꽃처럼 뜨거운 사랑을 속삭이듯

미래를 꿈꾸었었던 내 처음 사랑

너의 미소가 나를 웃게 해 별빛 같은 사랑이었어

 

마냥 좋았어 그땐 그랬어 아름다웠던 시간들

이젠 아픈 맘 슬픈 눈물 내 뺨에 기대어도 괜찮아

기억 속 상처 온몸가득 남겨져도 괜찮아

마음이 먼저 선택한 너 처음사랑으로 충분해

영원히 지킬게 내 처음사랑

사랑해 행복했던 처음사랑

 

 

그 어느 날처럼, 그녀가 나를 위해 그 노래를 불렀다.

아름다운 음률이 그녀의 목소리로 나오며 시가 되었다.

그리고 또다시 알싸한 아픔을 가슴에 새겨넣었다.

 

 

마치 2년 전 그날들 같았다.

한없이 아름답게 빛나기만 했던 공주님과,

그 공주님을 가슴 깊이 품고 짝사랑을 시작하던 기사의 아름다웠던 그 날들이.....

다시금 눈 앞에 선물처럼 펼쳐지고 있었다.

 

 

 

 

 

“그렇네요.....”

 

“예?”

 

“조금....슬프네요. 노래가......”

 

“...................”

 

“그냥 불렀다면, 그저 아름다운 사랑 노래 같았을 텐데......

내가 만약 기억이 있었고, 당신이 돌아오기 전 어느 날이었다면,

나.......많이 힘들었을 것 같아......”

 

하아..........

 

그날들.....어쩌면 지금 이 순간만큼은 공주님이 기억을 못하시는 게 다행이다 싶을 수밖에 없었다.

 

“나, 왜 이렇게 가사를 쓴 거지.......”

 

“.....................”

 

“.....................”

 

“저 때문입니다.”

 

“뭐가 은시경 씨 때문이에요?”

 

“예전에 이곳에서 공주님은 제게 첫사랑이 아니라고 했었던 거, 기억하십니까?”

 

“응.......기억해요.....”

 

기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때 이 남자의 고백이 나를 향해 있는지도 모르면서, 가슴이 뛰고, 그만큼 가슴이 아팠었다.

 

“그 때, 공주님은, 제게 첫사랑이 아니라고, 왜냐하면 제겐 그 다음 사랑이란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공주님, 공주님은 제 첫사랑이 맞습니다.”

 

“네?”

 

“공주님, 첫사랑이.....서툴러서 이루어질 수 없다면,

아니 너무 사랑해서 이루어질 수 없는 거라면,

저 역시.....공주님이 첫사랑인 거 맞습니다.”

 

그 말에 이상하게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

이 남자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첫사랑이 맞다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건데.......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걸까......

 

“전.......다시.....사랑하고 있는 겁니다. 공주님을.......”

 

“무슨....말이에요? 그게?”

 

“공주님을 사랑했던 예전의 은시경은......첫사랑을 놓쳐버렸지만,

지금..........공주님을 사랑하는 현재의 은시경은.......이 사랑을 놓치지 않을 겁니다.

내 마지막 사랑인 당신을....나는 절대로 놓치지 않을 겁니다.”

 

첫사랑이 오래 기억 되는 이유는, 첫사랑만큼 내 모든 것을 바쳐 내놓은 적은 없기 때문이다.

아무 것도 계산하지 않고, 마치 이 사람이 아니면 죽을 것처럼 다가가기 때문에

세련되지 못하고 거칠어도, 그만큼 순수한 사랑의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목숨을 거는 마음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첫사랑을 정작 놓치는 이유는..... 그런 마음을 갖고도 그 사랑을 잡을 만큼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놓친 아픈 기억 때문에, 그 다음 사랑은 절대 놓치지 않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그리하여, 내 마지막 사랑을......절대로 놓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내 첫사랑이자, 내가 절대로 놓치지 않을, 내 생애 마지막 사랑이다.

 

말로 흐르는 고백들과 말이 되지 못한 고백들이 그렇게 쉼 없이 별빛 아래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그렇게 두 사람을......한없이 축복하고 있었다.

 

 

 

 

<윤찡갤 시경재신횽 짤임돠..감솨감솨(__)>

 

 

 

 

 

6

 

 

 

 

 

내려오는 길, 그는 또다시 내게 등을 내밀었다.

이러면 자꾸 버릇되는데......

그러면서도 재신은 그의 단단한 등 앞에서 또다시 무너지고 말았다.

 

“은시경 씨, 왜 이렇게, 자꾸 업어요?”

 

“그냥....그러고 싶습니다. 제가.....”

 

“왜요?”

 

“.............”

 

“은...시경 씨?”

 

“공주님이....제...여자인 것 같아서........”

 

쿵쿵쿵쿵.......

두 사람의 심장이 뛰어댄다.

온 세상이 심장소리로 가득하다.

 

 

그 심장소리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궁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오로지 심장소리만 들으며, 그렇게 알 수 없는 긴장감에 휩싸이고 있었다.

 

재신이 들어오자,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근위대원들이 휠체어를 가지고 나왔다.

재신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시경이 입을 뗐다.

 

“내가 모시고 들어간다.”

 

그 말에, 재신에게 다가오던 근위대원들은 경례를 붙이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시경은 재신을 안아 들었다.

충분히 재신 혼자서 일어서서 탈 수 있었다.

그러나 시경은 재신에게 그 어떠한 기회도 주지 않았다.

그의 스킨 향이 또다시 재신에게 퍼져왔다.

 

알 수 없는 두근댐이 자꾸만 몰려와 숨도 쉬기가 어려웠다.

 

나, 진짜 미쳤나봐....왜 이러지...진짜......

 

시경은 뒤에서 재신의 휠체어를 밀며 조용히 재신의 방으로 향했다.

이미 밤이 깊은 시각이라 어둠 사이로 시경의 발자국 소리만이 울려대고 있었다.

그 소리가 마치 재신의 심장소리마냥 떨려오기만 했다.

 

시경은 재신의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침대로.......옮겨 드리겠습니다.”

 

“어, 아, 아니 은시경 씨!”

 

재신이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시경이 그녀를 휠체어에서 안아 들었다.

 

재신은 당황이 되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은시경 씨, 나.....저기까지는 충분히 걸을 수 있어요.

가끔...은시경 씨, 예전의 날 생각하나 봐.”

 

“아, 아닙니다. 공주님께서 오늘 피곤하실 것 같아서......”

 

사실....재신도 그가 옮겨주는 게 싫지는 않았지만, 오늘은 왠지.....그것도 이 깊은 밤, 그가 안아서 침대로 옮겨주는 게 뭔가 민망했다.

그래도 이왕 이렇게 된 거, 그의 목을 끌어 안았다.

그의 얼굴이 금방 붉게 변해가고 있었다.

 

이봐...이럴 거면서.....

 

그는 천천히 걸었다.

마치 이 순간을 즐기는 것처럼, 이 순간이 끝나는 게 아쉽다는 듯이,

이 시간을 붙잡는 사람처럼, 아주 천천히 침대로 다가갔다.

그렇게 그는 침대에 나를 앉혀 주었다.

 

“그럼......가보겠습니다.”

 

방금 전까지 그토록 아쉬운 듯 움직이던 그가, 재신을 침대에 내려놓고서는 바로 나가려는 듯, 급하게 고개를 숙이고는 성큼성큼 문쪽으로 걸어나갔다.

문을 여는 그를 바라보다, 재신은 아까부터 묻고 싶었던 말을 뱉었다.

 

“아까......화났던...거죠?”

 

“...............”

 

문고리를 잡은 채, 그는 여전히 등을 보이며 서 있었다.

 

“화, 났던 거, 맞죠?”

 

“.........아셨....습니까.......?”

 

여전히 그는 나를 보지 않은 채, 문고리만 잡고 있었다.

마치 열린 문 사이로 나가버릴 것처럼 서 있었다.

 

“왜....처음에는.....화, 안 냈어요?”

 

“.......화를 내는 것도....안심이 되어야....낼 수 있는 거니까요.

떠날까봐 두려우면, 불안하면, 화조차......낼 수가 없습니다.”

 

그랬구나.....

이상했다.

처음 그에게 돌아왔을 때, 그는 그저 아픈 눈으로 물었다.

돌아온 거냐고.....

몸도, 마음도 모두 그에게 온 거냐고....

흔들리지 않고, 마음까지 가지고 온 거냐고.....

그것만을 안타깝게 물었었다.

 

내가 돌아왔다는 걸,

몸도 마음도, 흔들리지 않고 마음까지 가지고 돌아왔다는 걸 확신하고서야

그는 내게 그제서야 화를 냈다.

 

그래서......싸아 하고.....가슴이 저려왔다.

그의 마음이 느껴져서.......혼자서......가슴 아팠을 그가 느껴져서.......

두근거렸던 만큼, 저렸다.

 

“미안해요.....자꾸.....은시경 씨, 아프게 해서......”

 

“...............”

 

“오늘.....노래.......고마워요......”

 

“...............”

 

“........그리고......고백도........고마워요......”

 

하아........

 

그때였다.

그의 한숨과 함께 낮게 쿵....하고....벽이 울렸다.

그가.....한쪽 주먹으로 벽을 쳤다.

 

놀란 심장이 쿵쿵하고 뛰기 시작했다.

알 수 없는 긴장감이 방 안을 가득 채웠다.

 

하아........

 

또다시 그의 한숨이 뱉어진 순간, 문이 닫혔다.

아니 그가 문을 닫았다.

 

팅......

 

금속의 울리는 소리가 끊어질 듯한 긴장감으로 가득찬 방안을 매웠다.

 

헉......

 

숨이 막혀 왔다.

한 손으로 나도 모르게 심장을 꾹 눌렀다.

 

나는....나는.........

 

그가 서서히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보지 말았어야 했다.

저렇게 깊게 가라앉는 그의 눈을.....절대로 보지 말았어야 했다.

언젠가......본 적이 있는 기억이 자꾸 심장을 쳐대고 있었다.

어두웠던 복도.....내게 다가왔던 그 날처럼......

그가 같은 모습으로 침대 위에 앉아 있는 내게로 천천히 다가왔다.

 

“은.....시.....경....씨.......”

 

목소리가 덜덜 떨리는 채로 흘러나왔다.

마치 내 목소리가 아닌 듯....그렇게 떨고 있었다.

 

“공주님은...오늘...저를 그냥.....보내셔야 했습니다.”

 

“..............”

 

그의 손이 내 볼을 쓰다듬었다.

그의 눈을 바라볼 수가 없다.

두려웠다. 온 몸이 떨려왔다.

그의 눈이 나를 너무나 강하게 제압해 왔다.

심장이 펄떡대다 못해, 고통스럽기까지 했다.

 

“은...시.......흡!”

 

그의 입술이 밀려왔다.

숨도 쉴 수 없을 만큼, 그는 내게 밀려 와서 그의 힘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의 힘에 밀려 나는 뒤로 눕혀지고 말았다.

그 위로 그가 내게로 쏟아졌다.

감당할 수 없는 무게로, 그는 내게 다가왔다.

숨도 쉴 수 없을 만큼 그는 나를 안으며, 내 입술과 혀를 빼앗으며, 그렇게 미친 듯이 나를 탐닉하기 시작했다.

그의 입술을, 그의 혀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내 혀에 얽혀 들어오는, 너무나 강하게 감싸 오는 그의 혀에, 숨을 쉴 수도, 정신을 차릴 수도 없었다.

도망갈 곳도 없이, 두 손은 그에게 붙들린 채, 나는 무방비하게 그의 입술이 유린하는 대로 그렇게 헐떡이며 그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남자, 은시경.......

오롯이 남자인 채로, 그는 내게 요구하고 있었다.

 

하아...하아....

 

뜨거운 숨소리만이 방안 가득.......야하게 헐떡이며 울려퍼질 뿐이었다.

 

   

 

그는....지금.....남자다.

그리고 지금 나도, 그에게는 한 여자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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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죄송합니다. 너무 늦었네요.

집에 돌아와서 자다 일어난 남편이 제 옆에서 일하는지 노는지 감시하는 바람에....에효....여튼 겨우 남편을 자라고 윽박질러놓고

이제야 마무리했습니다. ㅠㅠㅠㅠㅠㅠ

여튼 또 47장입니다. 이러다...분량에 압사할 듯요...ㅠㅠㅠㅠ

 

2

지치는 마감 중, 내 나름의 휴식을 취할 때 써내려간 당기못 26회.

26회는....사실......여러분을 위함도 있지만,

제 자신을 위함이 더 클지도 모르겠습니다.

정말 오래 기다린 회였다지요.

제 로망....이 담긴.......

26회의 은시경이 너무 두근대서.....혼자 콩닥콩닥대다 참을 수가 없어서 끄적이고는 했으니......

사실 이렇게 빨리 가지고 오게 된 것도(빨리가 아니라 하시면, 할 말이 없다능요.ㅠㅠㅠ)

<나의 당.기.못> 적어달라 떼쓰고 있는 게 죄송했던 것도 한 이유가 되고,

또 다른 이유는, 제가 제 눈으로 보고 싶어서이기도 했답니다.

 

뭐라 하실지 모르겠지만, 제게는....너무나 두근두근대는 26회입니다.

쓰면서도 두근두근....생각을 하다가도 두근두근.....계속 일하다가 눈에 떠올라서 혼자 두근두근대기도 했다능요.

뭐 이런 걸로 두근대냐고 하신다면 할 말 없습니다만....

제게는.....이런 부분들이 두근대요.

아......이 멋진 남자를 어쩌죠...미추어버리겠어요. ㅠㅠㅠㅠㅠ

 

3

보시면 아시겠지만, 사실 이 당기못 시놉은 처음부터 있었습니다.

세부 항목, 심지어 주요 대사까지도 써둔 것이었습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제가 앞부분 쓰면서 제 스스로도 열이 차올라

제 시놉을 보며 마음을 다독인다고 한 적이 있었습니다.

사실...그 중 하나가 이 부분입니다.

결국 견디다 못해, 단편 방식으로 결국엔 은근 터뜨려버리기도 했지만요...ㅠㅠㅠㅠ

결국 26회에서도 2개나 단편에 나와 버렸지요.

잘 보시면 아실듯요.

 

그리고 은시경이 말하는....과거는 상관 없다, 나와 만난 이후가 중요하다..라는 말은....

사실 제 남편에게 들은 말입니다.

그 전에 다른 남자 만난 거 당연하다고, 안 만난 게 이상하다고.....

그러니 그 이전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으니, 앞으로만 바람 안 피면 된다...뭐 그런 말을 했더랬지요.

아시다시피, 저희 남편도, A형 남자롸서리.......

은시경도....이렇게 말할 것 같았어요.(저희 남편도 은시경처럼 연애가 저랑 처음이라......불쌍한 인생이라능......ㅠㅠ)

 

여튼.....아무래도 더킹의 은시경이 A형이니.....A형 남자의 모습을 생각해보며,

더킹의 은시경이 어땠을까에서

다시 당기못의 은시경은 어땠을까...까지.....고민하게 되네요.

같지만...또 다른 은시경의 모습이...자꾸 드러나는 듯합니다.

 

글고 성곽씬.....하나 더 등장이라지요.

아무래도 더 있지 않았을까요?

성곽씬에서 노래한 이후, 전화해서 같이 밥먹자고 한 사이에

분명 둘은 엄청난 진전이....있었던 듯했답니다.

들마에서 채우지 않은 그 나노 분량을......제가 알아서 채워볼랍니다.

 

 

 

4

 

1번 장면은 사실 25에 끝부분에 넣을까 말까 엄청 고민했답니다.

그러나 25는 오롯이 공주님의 첫사랑 장으로 남기고 싶어서 뺐습니다.

그리고 26회는 오롯이 은시경의 첫사랑 장으로.....그리고 두 사람만의 이야기로 담고 싶어서

결국 이렇게 배치했는데......잘 모르겠네요.

만약....25회 마지막에 1을 넣었다면, 읽으시는 님들은 훨씬 좋아하셨겠지만......

그냥.....26회를 온전하게 만들고 싶어서, 알면서도 25회에 넣지 않았습니다.

가끔은 이렇게 결벽증적인 성격 때문에 알면서도 욕을 먹는.....에효......

어쨌든 25회 읽으시며 힘드셨을 님들....토닥토닥....임돠....

 

 

5

 

이상하게....조각조각 적을 때는 혼자 두근두근대며 적었는데.....(그때는 그랬어요.)

지금 연결해 놓고 보니...이거 뭔가.....지저분하고 구질구질한 것 같아서....이걸 올려야 되나 싹 다 지워버려야 하나...완전 고민입니다. 이를 어쩔....

아직까지 결정은 안 나는데, 일단 올려놓고, 수정을 좀 해봐야겠어요.

 

<나의 당.기.못>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많은 문항 열심히 답변해주신 분들 너무나 감사합니다.

사실 한 문항만 답변해주셔도 저는 감지덕지입니다.

취지는 <당.기.못>에 대해 얘기해 보자, 였거든요.

열심히 써주시고, 또 응원의 말도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나의 당.기.못>은 계속 진행중이니, 참여해주신다면, 저야 무한 영광입니다. (__)

 

 

당기못은...느립니다. 늘...느림의 미학이라고...애써 말씀드리지만....그래도...

역시 이 말씀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당기못은.....느림의 미학이니.....그 느림까지도 즐겨주시길......

 

 

+) 참 은시경의 회상 부분은, 단순 회상이 아니라 공주님께 얘기를 해 주는 부분으로 생각해 주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