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나의 이야기

생명

그랑블루08 2013. 6. 10. 19:16

 

 

 

윤이가 학교에서 구피 두 마리를 받아왔다.

방과후 수업을 하는데, 거기서 준 것이었다.

사실 안 받아오길 바랐지만, 아이가 원하니 안 받아올 수도 없었다.

 

난, 비늘 있는 걸 굉장히 싫어한다.

물고기 먹는 것도 싫어하고, 보는 것도 싫어하고, 만지는 건 더더욱이......

 

사실 윤이만 아니었다면, 생선 굽는 건, 생각도 못했을 거다.

그래도 다듬어진, 생선은 어떻게든 건드리기는 한다.

물론 중무장을 한 후 하지만......

살아있는 물고기는, 정말 세상에서 가장 싫어한다.

아, 그렇지, 새도 싫어한다.

사실은....싫어하는 게 아니라 무서워한다.

발 세 개 달린 거랑, 비늘 달린 거......세상에서 제일 무섭다.

내겐 조류공포증도 있다. 아, 물고기 공포증도 있는 듯하다.

 

어린 시절......

학교 어항에서 금붕어가 서로 물어뜯으며 먹는 걸 보고는, 나는 절대로 물고기 같은 건 안 키우겠다고 굳게 결심했었다.

집에 엄마가 수조를 마련하고(그때 한창 유행이었다. ㅠㅠㅠㅠ) 물고기 키우실 때도, 진짜 싫어했다.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수조 청소할 때도, 나는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난 늘 수조가 깨지는 걸 상상하고는 했다.

무서워서 근처엔 죽어도 가지 않았다.

 

그랬던 내가 자식 앞에서는....어쩔 수가 없었다.

 

암컷, 수컷 한 마리씩 구피 두 마리를 받아왔는데, 정말 키울 재간이 없는 거다.

하루 세 번 먹이를 주라는데, 점심 때야 윤이가 학교 다녀와서 주기는 하지만,

어쨌든 그걸 책임지고 할 수도 없고.....

처음엔 대충 볼에 담아놨더니, 애들이 서로 포개져 있으면서 기가 팍 죽어 있었다.

 

그래도 생명인데.....

생명을 함부로 할 수는 없어서....

결국 수조도 사고,  먹이도 사고, 이것저것 산란통도 사고......이러다보니,

한 마리 1000원짜리 물고기 두 마리 때문에 15만원이 들었다.

 

수조를 사서 넣었더니 그제서야 얘네들 둘이 열심히 돌아다니고 있었다.

 

처음 볼에 넣었을 때(스텡이었다. ㅠㅠ)

윤이가 한 마디 했다.

 

엄마, 얘네들, 상태가 안 좋아. 약간 정신이 이상한 거 같애.

 

내가 봐도 그랬다.

 

고민을 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옆 집에 보낼까, 누구를 줄까 온갖 고민을 하다가, 결국 남편은 우리에게 주어진 생명이니

생명이 살 수 있도록 해주자고 의견을 모았다.

 

생명이라고.....옆에 가서 보게 되기도 한다.

 

문제는 암컷이 임신을 한 거다.

구피는 어미가 새끼를 먹는단다.

또 거기서 한 번 분노했다.

어떻게 엄마가 돼서 새끼를 먹느냐고, 울분을 토하다가,

또 어쩔 수 없이, 새끼 분리시킬 수 있는 산란통을 또 구입했다.

 

그러고 놓으니, 두 마리가 생이별을 하면서 난리도 아니었다.

수컷은 밖에서 암컷만 따라다니고,

암컷도 그 좁은 통 안에서 난리를 치고.....

보고 있는데, 뭔가 좀 짠했다.

그래도 어쩔 수가 없다.

어미도 새끼를 먹는다지,(구피는 알이 아니라 실제 새끼를 낳는단다....ㅠㅠ)

수컷은 암컷 꼬리만 쫓아다니며 새끼 나오면 먹는다지....ㅠㅠㅠㅠ 으으....생각만 해도 무섭다.

 

여튼...어쩔 수 없이 분리시켜놨는데,

어젯밤 새도록 암컷이 스트레스 만땅이었다.

배도 볼록하고, 검어지면서, 뒤로 뭔가가 자꾸 검정색이 보였다.

곧 나올듯한데...참.....이게 또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저 미물도 생명이라고, 저렇게 새끼 낳는다고 고생이다 싶고....

아무리 작아도, 얼마나 고생인가 싶고.....

밥은 잘 안 먹어서 걱정돼서 조용히 앉아서 지켜보기도 하고(혹시 눈에 거슬릴까 싶어, 낮게 앉아서 지들은 나를 못 보게...)

여튼....

생명이다.

 

생명을 키운다는 건, 참 힘든 일인 것 같다.

신경 쓸 것도 많고.....

함부로 생명을 거두면 안 되는데,

이미 거둔 거라면, 책임을 져야하는 것이니.....

이리저리 손 갈 것도 많고, 신경 쓸 것도 많고, 돈도 많이 들고.......

 

생명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윤이에게 가르쳐주고 싶어서 시작한 것인데,

정작 어른들 둘이 수조 옆에 붙어서 온갖 잡일을 하고 있다.

 

그래도 생명은 생명이다.

집에 다른 생명이 있으니, 지켜보게 된다.

 

우리집에 왔으니..잘 자라길....

새끼도 어여 낳아서 빨리 산란통을 나가서 속좀 시원해지길....

저도 힘들겠지만, 보는 나도 힘들다.......

에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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