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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신상플) 야누스의 달(Januarius) 16 - 8년을 돌아 마주하다

그랑블루08 2013. 8. 4. 00:05

(은신상플) 야누스의 달(Januarius) 16 - 8년을 돌아 마주하다

 

 

 

 

 

 

 

 

 

 

* 위의 배경음악을 틀고 봐주세요.

한 남자/김종국 을 반복 재생하시면 됩니다.

 

 

한 남자 / 김종국

 

참 오래됐나봐 이 말조차 무색할 만큼

니 눈빛만 봐도 널 훤히 다 아는

니 친구처럼 너의 그림자처럼

늘 함께 했나봐 니가 힘들 때나 슬플 때

외로워할 때도 또 이별 앓고서

아파할 때도 니 눈물 닦아줄

한 남자가 있어 널 너무 사랑한

한 남자가 있어 사랑해 말도 못하는

니 곁에 손 내밀면 꼭 닿을 거리에

자신보다 아끼는 널 가진 내가 있어

 

너를 웃게 하는 일 오직 그것만 생각하고

언제 어디서나 너를 바라보고

널 그리워 하고 니 걱정만 하는

한 남자가 있어 널 너무 사랑한

한 남자가 있어 사랑해 말도 못하는

니 곁에 손 내밀면 꼭 닿을 거리에

자신보다 아끼는 널 가진 내가 있어

천 번쯤 삼키고 또 만 번쯤 추스려 보지만

말하고 싶어 미칠 것 같은데

널 와락 난 안고 싶은데

 

한 여자가 있어 이런 날 모르는

사랑 받으면서 사랑인줄도 모르는

나만큼 꼭 바보같은 슬픈 널 두고

이 순간도 눈물이 나지만 행복한 걸

니가 곁에 있기 때문이야

  

 

 

 

 

 

55

 

 

 

 

 

항아가 오랜만에 시간이 빈 듯, 궁 정원에 나와 있었다.

시경은 아무 말 없이 항아의 옆을 지켰다.

 

“괜찮으십니까.....”

 

조용한 시경의 말에 항아가 씩씩하게 웃는다.

 

“안 괜찮으면, 어떡하갔습네까?

남조선에서는 꼭 괜찮으냐....고 묻습디다만, 고조 그 말이 참 어처구니가 없기도 합네다.”

 

“예?”

 

“그 말로 물으면 말입네다.

꼭 괜찮다고 대답해야 할 것 같더란 말이디요.

상대방을 위해서 꼭 그 말을 해주어야 할 것 같은......그런 거 말입네다.”

 

“예.”

 

“우리는 말입네다. 그럴 때, 일 없다고 하디요.

일...... 그 말도 참 우습디요.

그 정도로는 내가, 이 굳건한 내가 움직이디 않는다고

내게는 그 까딛 것, 아무 문제 안 된다고

그 까딛 것이 나를 해할 수 없다고 말입네다.

그건, 일 따위도 되디 않는다, 이 말입네다.”

 

시경은 항아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런 시경을 바라보는 항아의 눈이 부드러웠다.

마치 누나처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그런 항아 앞에서 시경이 고개를 숙였다.

 

“은시경 동지가, 뭐가 미안하다, 이말입네까?”

 

“저 때문에 결국 약혼식, 미루어지신 거니까.......”

 

항아는 마치 부사관의 어깨를 치듯이, 시경의 어깨를 툭하고 치며, 화통하게 웃어버린다.

 

“그거이 왜 은시경 동지 잘못입네까?

그렇게 만든 장본인은 그 악질 수괴놈 때문이디, 고생하고 있는 은시경 동지 잘못이 아이디요.

그런 마음, 갖는 거이야 말로 은시경 동지 잘못입네다.”

 

시경은 그저 고개를 숙였다.

항아의 마음이 어떨지 어쩌면 자신보다 더 잘 알 수 있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총을 쥐고, 전쟁에 나가야 하는 군인이 이렇게 궁에 박혀 있으니, 더 숨이 막힐 것이다.

나약한 존재가 아닌 이 분이 이렇게 갇혀 있어야 하니, 더 힘드실지도 모른다.

 

“차라리 총을 들고 전장에 나가는 편이 더 속은 시원할디도 모르디요.”

 

시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군인라면 당연한 마음이다.

 

“그래도 후회하지 않으십니까?”

 

항아가 환하게 웃었다.

 

“저 개철철이가 참......좋은 건 사실인가 보디요.

이 천하의 김항아가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걸 보면 말입네다.”

 

마음이란 그런 것일 거다.

나라 이외에는 그 어떤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던 사람을 이토록 바꾸어 버릴 수 있는 것이, 마음이란 것이다.

 

“기래서, 은시경 동지는 어케 내게 접근한다는 것입네까?”

 

“예? 무슨 말씀이신지......”

 

“아니 저 개철철이가, 은시경 동지를 조심하라고, 난리도 아니었다, 이말입네다.

꼬신다나 어쨌다나, 요상스런 말을 해대니 무슨 소린디 이해도 되지 않는데 말이디요.

기래, 기카니 그 개철철이 말대로라면, 어케 꼬실 겁네까?”

 

“예? 전 그냥.....이렇게 곁에서 호위한다는 말씀이었는데....뭔가 오해가.......”

 

시경의 얼굴이 붉어지자, 항아는 껄껄대며 이러니 개철철이라며 남자처럼 웃어댔다.

 

“기래도 그 개철철이, 은시경 동지를...믿는 거, 아시디요?”

 

“죄송합니다.”

 

“전하를......그 사람......힘껏, 도와줄 거라 믿습네다.......”

 

“............최선을.....다하겠습니다.”

 

“은시경 동지야말로, 일. 없슴네까?”

 

“예?”

 

갑작스런 항아의 질문에 시경이 놀란 듯 쳐다보지만, 항아의 얼굴은 온화하기만 했다.

 

“은시경 동지, 마음은 괜찮으냐, 이말입네다.”

 

“무슨...말씀...이십니까?”

 

“사랑이라는 거이......그거이......사람 마음대로 되는 거이 아니디요.”

 

하아........

 

시경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밀려나왔다.

 

“군인의 눈동자는, 함부로 흔들려서는 아니되는 거이디요.

총탄에 맞아, 내 부하가 죽어가더라도, 군인은 흔들려서는 안 되는 거입네다.

기캐도.....그 군인의 눈이 흔들린다는 거는 이미.......마음대로 안 되는 거이디요.

안이 그렇습네까? 은시경 동지....”

 

“...................”

 

시경은 앞을 바라볼 뿐, 아무 말이 없었다.

 

“다른 이의 눈에는 안이 보이겠디요.

군인의 흔들림은, 군인에게만 보이는 법........”

 

항아의 눈에는 보였다.

군인이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지, 그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리고 그 군인이 누군가를 마음에 품게 되면, 또한 어떻게 되는지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어쩌면 말입네다. 은시경 동지래, 그 마음 때문에 내레 은시경 동지를 믿는지도 모르디요.”

 

“예?”

 

“당신이 가진 그 마음이 당신을...흔들리지 않게 지켜줄 거입네다.”

 

마음이, 흔들리지 않게 지켜주다.

그랬다. 그럴지도 모른다.

 

“저기 와 계시디 않습네까?

당신의 흔들리지 않는 그 마음......”

 

그곳에.......공주님이 계셨다.

그의 시선은 온전히, 오롯이, 공주님만을 향해 있었다.

 

 

“가 보시디요. 은시경 동지의 마음이 계시는 곳으로.......”

 

 

 

 

 

 

 

 

 

 

 

 

56

 

 

 

 

 

불편.....

그래 불편했다.

간만에 나와 본 정원에, 항아 언니와 함께 앉아 있는 그의 모습이, 불편했다.

이성이 받아들인 시간과, 마음까지 받아들여야 하는 시간 사이에는 꽤 많은 거리가 있었다.

저 남자가 나를 배신한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처음부터 저 남자의 마음은 항아 언니를 향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눈으로 보는 건, 어쩔 수 없이 비참했다.

 

비참이라.....

이런 말을 떠올리는 것조차 참 자존심 상하는 일이기도 했다.

그래도, 그라고 좋았을까.

사랑하는 여자가 아니라, 왕실의 공주와 어쩔 수 없이 관계를 가져야 했을,

그것도 자신의 처음을 나누어야 했을,

그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내가 알던...그 육사생도라면, 흔들리지 않았을까.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고 후회하고 있지 않을까....

 

그는 내게 마음을 지키지 못했다고 했다.

그 말의 의미를 알 수가 없다.

사랑하는 여자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순결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인지......

아니면 수장의 계략에 흔들리고 말았다는 것인지......

그 또한 알 수가 없다.

 

돌아가자.

이럴 때, 연습이나 더 하자.

 

재신이 몸을 돌려 공주궁으로 향하는 순간, 그녀의 앞에 그가 서 있었다.

아무 말 없이, 검고 깊은 눈을 하고, 말로 다 뱉지 못하는 말들을 눈으로 전하고 있었다.

 

혼란......스럽겠지.

나도 그런데......

이 남자도 그렇지 않을까.

예전 그 육사생도라면, 내 처음을 가졌다는 책임감 때문에 자신의 사랑에게 다가가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명확하게, 분명하게, 내가 금을 그어주면 되는 것이다.

이성적으로, 머리가 시키는 대로, 대한민국의 왕실, 공주답게......

그렇게.......

그가 그의 사랑에게 갈 수 있도록 , 그가 자신의 사랑을 할 수 있도록,

내가, 먼저 끊어주면 되는 것이다.

 

 

“은시경 씨.”

 

갑자기 재신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자, 시경은 놀란 듯, 두려운 듯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예. 공주님.”

 

재신의 입에서 낮게 한숨이 흘러나왔다.

 

“나에 대해서......의무감 가질 필요, 없어요.”

 

“무슨....뜻입니까.....”

 

시경의 목소리가 떨려나왔다.

그러나 재신은 멈추지 않았다.

 

“말 그대로예요.

당신이.....내 처음을 가졌다고 해도....그건....그래요. 별 의미 없어요. 내게.

이때까지 그럴 기회가 없었던 것뿐이니까.....

의무감도, 죄책감도, 가질 필요 없어요.”

 

하아....

 

그의 입에서 알 수 없는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사고도, 뭣도 아니에요.

난...사실 당신한테 고마워요.

어쩌면......난.....내 처음을 정말 배려 받으며 치렀으니까......

그 누구도 당신만큼.....아껴주지는 못했을 거예요.

그래서.......고마워요.”

 

고마워요......

 

이 말이 이토록 잔인했는지 몰랐다.

시경에게는 그랬다.

잔인했다.

너와는 끝이라는.....

이런 걸로 나와 엮일 생각하지 말라는.....

그런 잔인한 말이었다.

심장으로 아릿한 통증이 지나갔다.

 

“저는........”

 

시경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다 마치 신음소리를 뱉듯이 겨우 말을 이었다.

아니 화가 난 것 같기도 했다.

 

“공주님을 감히......넘볼 수 없다는......그런 말씀이십니까?”

 

“네? 아...아니...그런 의미가 아니라.....

괜히 내가 처음이라서....당신에게 족쇄가 될까봐...그러는 거예요.

나한테 대해서 의무감 가질 이유도, 필요도 없어요.

그저....지나가는 경험이었어요.

그러니까.......”

 

“공주님께는......아무 것도, 아니었습니까?”

 

“은시경 씨.....”

 

“하아.......그랬군요......아무 의미 없는.....행위셨군요. 공주님께는.....”

 

재신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뭐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입을 열면 열수록 비참해질 뿐이었다.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먼저 가보겠습니다.”

 

그는 그렇게 내게 고개를 숙이고는 가버렸다.

그의 걸음에서도, 그의 화가 느껴졌다.

 

그러다 그가 그대로 걸음을 멈추었다.

 

“그거...아십니까........공주님......”

 

“......................”

 

“........제게는.......저라는 놈에게는.......

제 평생을.....품고 갈.......순간이었습니다.

이 한 순간을 위해서.....제 목숨을 버려도 좋을......순간이었습니다.”

 

심장이 쿵 소리를 내며 떨어지더니, 정신없이 뛰어대기 시작했다.

그는 자꾸만 이렇게 흔들리게 한다.

 

재신은 두근대고 있는 자신의 심장을 손으로 꾹 눌렀다.

그래도 심장은 정신없이 뛰어대고만 있었다.

 

 

 

 

 

 

57

 

 

 

 

 

재신은 저녁을 먹고 나서도 가슴이 답답했다.

아니 저녁을 제대로 먹지도 못했다.

도대체 그는 왜 내게 그런 말을 한 건지......

자꾸만 왜 이렇게 흔들어대는지......

날더러 어쩌라는 건지.....

 

재신은 답답한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사격실로 향했다.

텅 빈 사격실에서 보호안경을 끼고, 귀마개를 한 채, 공기총으로 몇 번이나 격발을 하고 있었다.

타켓을 보고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았다.

자꾸만 머리는 어지럽기만 했다.

 

그의 목소리가 자꾸만 떠다녔다.

 

 

“........제게는.......저라는 놈에게는.......

제 평생을.....품고 갈.......순간이었습니다.

이 한 순간을 위해서.....제 목숨을 버려도 좋을......순간이었습니다.”

 

 

그의 말이 또다시 머리를 헤집자, 잡고 있던 총구는 끊임없이 흔들리고만 있었다.

 

왜 이러니......정말......

 

한 번으로 충분하잖아.......

그 때로 충분하잖아......

이젠 제발.......이러지 말자.......

 

열여덟.....그 때도 이랬던 것 같다.

이런 마음이었던 것 같다.

이렇게 뭔가 죽도록 배신감을 느꼈던 것 같다.

 

 

 

 

 

58

 

 

 

 

 

소녀는 열여덟 살......남자는 스물두 살.......별빛이 쏟아질 것만 같던 어느 두근대던...밤이었다

소녀가 남자의 볼에 입을 맞췄던 그 날......

도망가려는 소녀를 그 남자가 자신의 품 안으로 가득 안아왔던 그 날.......

남자의 심장이 터져나올 것처럼 뛰어댔던 그 날.......

 

하아.......

 

그의 한숨소리가 공기를 가르며, 소녀의 가슴 안까지 저릿하게 만들었던 바로 그 날.....

 

“공주님, 함부로........남자에게 이러시면 안 됩니다.”

 

낮고 떨렸던 그의 목소리가 소녀의 심장까지 떨리게 했던 그 날......

그녀의 허리를 감고, 놓지 못하던 그 남자의 품이 자꾸만 얼굴을 붉게 만들던 그 날.....

 

그는....소녀를 놓지 못했다.

두근대는 심장소리를 그녀에게 전하며, 그는 자꾸만 가는 그녀의 허리를 안고 그녀의 머리 위로 입술을 묻었다.

 

자꾸만 당황이 되고, 떨리던 소녀가 겨우 그를 밀어내며, 그의 품에서 벗어나자, 둘은 빨개진 뺨을 들킬까, 서로를 바라보지도 못하고 서 있었다.

 

“나, 이제 들어갈게요.”

 

더 있다가는 심장도 터질 것 같고, 부끄러워서 이 오빠를 쳐다보지도 못하겠고, 재신은 들어가려 몸을 돌렸다.

그 순간, 시경의 손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그가 천천히 입을 뗐다.

 

“공주님......제가.......연락을 드려도......되겠습니까......”

 

재신의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어대고 있었다.

이 오빠가 하는 말이 무슨 의민지, 모를 정도로 어리지는 않았다.

재신이 천천히 몸을 돌려 그를 바라보자, 이제는 시경의 얼굴이 확 하고 붉어지며,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한다.

 

그런 그의 순진한 모습에 왠지 이 오빠, 연애도 못해봤겠다 싶어, 기분이 뭔가 좋아지고 있었다.

뭐, 그렇다면, 연락처 정도는 줄 수 있지......

 

재신은 자신의 파우치를 열어 동그란 팬던트 하나를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이게, 뭡니까?”

 

동그란 펜던트가 파란 줄에 달려 있었다.

그녀의 손에서 받아든 팬던트에는 알 수 없는 마크가 그려져 있었다.

 

“우리 학교, 개목걸이에요.”

 

“예?”

 

“개목걸이 몰라요? 학교 배지 대신에 목에 거는 거?”

 

“그런데 왜...이걸.....”

 

“뒷면으로 돌려봐요.”

 

팬던트를 돌려보니, 뒷면에 J.S.라고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 번호도 새겨져 있었다.

 

“연락, 한다면서요?”

 

“예?”

 

“내 휴대폰 번호라구요. 그 번호가.”

 

“아........”

 

그제야 시경도 안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나, 인제 진짜 가요.”

 

재신은 후다닥 뛰어가다가 갑자기 멈춰 서더니, 뒤로 확 돌아봤다.

 

“저녁 8시 이후엔 다 괜찮아요.”

 

“예?”

 

“그 때는 전화 받을 수 있다구요.”

 

그 말에 시경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다시 뛰어가는 소녀의 두 뺨도 빨갛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다음 날, 그녀는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궁중실장과 함께 왕실 전용기를 타고 일본으로 떠났다.

도대체 무슨 상황인지 알지도 못한 채, 재강은 그녀를 일본 마쯔리에 보내버렸다.

축제 기념 어쩌고 하면서 그것도 문화 교류 어쩌고 하면서 미리 얘기도 되지 않은 곳으로 그녀는 준비도 되지 않은 채 갈 수밖에 없었다.

오빠가 가라니 가야지 싶었지만, 뭐, 이런 게 왕족의 삶이 아닌가 싶어서,

부지런히 문화 행사에 참여하며, 미소를 지어댔다.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기사들에서는 연일 재신에 대한 찬양이 이어졌고,

세계 최고 미녀 공주답다는 둥, 다들 극찬 일색이었다.

가끔은 자신이 연예인이 아닌가 싶었다.

 

그렇게 급하게 일주일가량 있다 돌아온 한국은 조용했다.

그에게서 연락이 오지 않을까 기다렸지만, 아무 소식도 없었다.

연락 한다더니......

나 이제 일본에서 돌아왔는데......

분명 뉴스에도 나고 했으니, 일본에 다녀온 것도 알고 있을 텐데 연락이 없자, 이상하게 서운했다.

 

그렇게 또 일주일이 지났다.

벌써 이주 째 연락이 없자, 재신은 슬슬 화가 나기도 했다.

그렇게 안 봤는데, 한 입으로 두 말 하나 싶기도 하고, 많이 바쁜가 싶기도 하고......

그렇게 언제나처럼 저녁을 먹고 있었다.

바쁜 큰오빠는 일처리 후 좀 늦게 온다고 해서, 먼저 먹고 있는데, 은실장님과 함께 큰오빠가 들어왔다.

은실장님도 같이 식사를 하니, 자연스럽게 시경 오빠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이상하게 심장이 두근두근대고 있었다.

 

“그러면, 아드님은 지금 방학이겠네요.”

 

“예. 그렇습니다. 대비마마.”

 

“아, 참 가을에 교환학생으로 미국에 간다고 했었죠?

그럼, 준비하느라 바쁘겠네요.”

 

“사실은, 이미 미국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말에 재신이 들고 있던 젓가락을 떨어뜨렸다.

재강이 그런 재신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지만, 재신은 알지 못했다.

 

“벌써, 갔어요?”

 

“예. 미리 준비하는 게 좋겠다고, 열흘 전에 바로 들어갔습니다.”

 

 

그 다음부터 재신의 귀에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다.

연락.....한다더니......

그는 그저 그렇게 떠나버렸다.

그 이후로도 연락은 없었다.

그러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왜 그런 말을 해서 사람을 흔들리게 했는지.....

대학생 눈에, 고등학생인 내가 우스워 보인 건지......

 

그렇게 내 첫사랑은, 아프게 끝나버렸다.

아니, 첫사랑이라고 말하기에도 어설프게, 한여름밤의 꿈처럼 그렇게 단 하루만에 끝나버린,

어설픈 풋사랑....이었는지도.......모른다.

 

 

 

 

 

59

 

 

 

 

옛 생각이 떠오르자, 재신의 총구가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재신은 귀마개를 벗고 격발하기 시작했다.

머리를 울려대는 소리가 차라리 속이 시원했다.

총소리가 귀를 찢어대고 있었지만, 차라리 딴 생각이 들지 않아 나은 듯했다.

그러나 여전히 휘몰아치는 머리는 집중하지 못하게 했고, 끊임없이 타겟으로부터 비켜가게 만들었다.

열 발 모두 타겟 근처에도 미치지 못했다.

 

뭔가 열이 받는 듯, 재신은 또다시 총을 드는데, 누군가가 등 뒤에서 그녀의 팔을 꼿꼿하게 펴준다.

 

아!

 

갑자기 나타난 손길에 놀라 돌아본 그곳에는 그 남자가 서있었다.

지금껏 자신의 머리를 헤집고 다니던 그 남자가 검게 가라앉은 눈빛을 하고,

총을 잡고 있는 그녀의 왼팔을 잡아 더 수평으로 펴주고 있었다.

그녀의 등으로 그의 가슴이 느껴졌다.

그녀의 팔을 자신의 팔로 받쳐서 올리고 흔들리지 않도록 뒤에서 받쳐주고 있었다.

그녀의 몸이 당황한 듯 살짝 흔들리자, 그의 오른손이 그녀의 허리를 뒤에서 휘감았다.

 

헉....하고 숨이 막혔다.

심장이 터질 듯 뛰어대고 있었다.

 

“팔을 더 쭉 펴셔야 합니다.

그리고 배에 더 힘을 주셔야 격발 시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렇게 해서는, 공주님 자신을 지키시기는커녕 더 위험해지실 뿐입니다.”

 

재신은 입술을 깨물었다.

 

“격발, 하십시오.”

 

그의 팔에 자신의 팔을 얹은 채로, 그의 팔에 허리를 감긴 채로, 그녀는 방아쇠를 당겼다.

굉음을 내는 총의 비명 사이로, 타겟은 정확하게 머리를 맞고 넘어지고 있었다.

격발되는 총의 힘에 몸이 뒤로 밀릴 때마다 그의 단단한 가슴이 등 뒤로 느껴졌다.

그의 몸에서 떨어지려 해도, 그의 단단한 팔이 놓아주지를 않았다.

그가 마치 나를 뒤에서 안은 채로, 마치 내가 그의 품에 안긴 채로, 총을 쏘고 있었다.

그의 낮은 숨소리가 귀를 간질이고, 그의 팔은 더욱더 강하게 내 허리를 안고 있었다.

 

열 발의 격발이 끝나고 그가 천천히 팔을 내리면서 내 팔도 따라 내려왔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그의 팔은 여전히 내 허리를 강하게 안고 있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그의 거친 숨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바르르 떨고 있는 사이, 그의 내려져 있던 왼팔까지 재신의 허리를 감쌌다.

그의 두 팔이 온전히 그녀를 뒤에서 깊게 안고 있었다.

숨도 쉴 수 없이 심장만 뛰어대는 그 순간, 머리카락 위로 그의 입술이 느껴졌다.

 

쿵...쿵...쿵...쿵....

 

그의 것인지, 그녀의 것인지 알 수 없는 심장소리만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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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복잡할 때, 글을 써대면 뭔가 풀리는 듯도 해서......

이렇게 연속해서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참....웃기게도,

야누스의 달에서 공주님과 은시경은 이미 끝까지 간 사이인데도,

이런 장면들이....이상하게 두근대게 하네요.

저만 그럴지도.....

여튼 <야누스의 달>은 정말 제 스트레스 해소용이 맞는 듯합니다.

주말.....즐겁게 보내시길.....(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