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제4편 <里仁> 德不孤 必有鄰 (덕불고 필유린)이란 말이 나온다.
"덕은 외롭지 않으니 이웃이 있다."
"덕이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나니, 반드시 곁을 찾는 이가 있다."
라는 말이다.
이를 달리 돌려서 생각해 보면, 내 곁을 찾는 이가 있다면, 내게 덕이 있다는 것이다.
또 다시 돌려서 생각해 보면, 내 곁에 누가, 어떠한 사람이 있는가가 나라는 사람을 정의내린다는 것이다.
결국 내 곁에 있는 이가, 사실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반증이 된다.
끼리끼리 뭉친다는 것은,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이 모인다는 것이다.
내 곁에 있는 이는, 내가 같이 있고 싶은 이, 내가 가지고 있는 성품, 내가 가진 꿈, 내가 잡고 살아가야 할 기준, 가치관,
그런 것들을 어쩌면 공감하고 나누는 이들일 것 같다.
마흔의 문턱을 밟고 보니, 사람에 대한 생각이 많아진다.
내 곁에 누가 있는가에서부터, 내 얼굴은 어떠한가까지, 그 생각들이 더욱더 깊어지는 것 같다.
마흔은 자신의 얼굴을 책임지는 나이라 한다.
내 얼굴에 새긴 주름 하나까지 그것은 내가 어떻게 살아왔으며, 내가 지금 여기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불평하는 말들이 많았다면, 내 얼굴은 늘 찌푸려져 있을 것이다.
내 얼굴만 봐도, 사람들이 슬슬 피한다면, 내 얼굴은 지금 불평으로 가득차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계속 살아간다면, 내 주름들은 불평과 피곤함으로 찌들어 그대로 '나'라는 형상이 되어버릴 것이다.
마흔의 얼굴을 책임진다는 것. 그것이 주는 무게가 참 크다.
의식적으로 웃는 연습을 한다. 그저 일을 하더라도, 모니터 앞에서 열심히 작업을 하더라도,
내 입꼬리를 올려두려 한다.
무표정한, 아니 의식하지 않은 표정조차 미소가 될 수 있게, 내 입술에 웃음을, 밝음을, 긍정을 둘 수 있게,
의식적으로 연습한다.
불평보다는 긍정으로, 남탓보다는 내 자신의 일로, 일이 많다는 한숨보다는 주어진 일을 좀더 효율적으로 끝내려 하는 의지로,
그렇게 내 얼굴의 표정을 연습한다.
결국 그 얼굴을 책임지는 것은 나이므로, 입꼬리를 올리듯이, 내 삶을 한 걸음 더 올려두려 노력한다.
그런 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하듯이, 내 곁에 있는 이도 내가 책임을 져야 한다.
아니, 한 편으로는 내 곁을 지키는 이가 바로 내가 살아온 삶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人之過也各於其黨. 觀過 斯知仁矣.
사람의 잘못이 각 그 무리로 말미암음이니(그 무리에게 있으니), 그 잘못을 보면 그 덕(인)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한 해석들은 많지만(군자는 군자대로, 소인은 소인대로 그 무리에 맞게 평가하고, 소인을 너무 탓하지 말라는 등),
내게는 다르게 읽힌다.
내 멋대로 읽기일 수도 있으나, 나는 그 주변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것으로 읽고 싶다.
내 주변이 나를 평가하는 잣대가 된다.
또한 내 주변이 그러하다면, 내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혹은 내 주변을 따라 나도 변해갈 수 있으니 나도 닮아간다는 것이다.
그러니 내 주변에, 내 곁에 덕이 있는 이들이 있다면, 나역시 닮아가려 할 것이고,
내 곁에 덕이 없고, 불평이 많고, 화를 내고, 짜증과 불만만이 가득한 이들이 있다면, 나역시 그러한 것이다.
덕이 있는 자가, 덕이 있는 자를 부른다.
그러니 그 모든 것들은 나로부터 말미암은 것이다.
내 곁에 머무는, 혹은 내게 찾아오는 이에 대해 생각해 본다.
어떤 사람이 내 곁에 오는가, 혹은 내 곁에 머물고 있는가,
또 얼마나 많은 이들이 내 곁에 오고 싶어 하는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내 곁에 오고 싶어 하는가, 나는 그럴 만한 사람인가,
하는 것들.....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어쩌면 위의 말(논어 제1편 學而편)을 보면, 중학교 시절 다 배웠던 말들이다.
배우고 때때로 이를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친구가 있어 먼곳에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사람(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아니하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그 시절 아무 영혼 없이 배웠던 말들이, 마흔이 되어 맞닥뜨렸을 때는, 가슴을 쿵쿵 쳐댄다.
배우고, 내 곁을 찾아올 수 있도록 덕을 쌓고, 또한 남이 알아주지 않는다 하여도 한결같이 나 자신을 지켜 내는 것.
그것이 덕이 있는 삶이 아닌가 한다.
무엇보다 <里仁>편에서 가장 마음을 치는 구절은 이것이다.
不患無位 患所以立. 不患莫己知 求爲可知也.
지위가 없음을 근심하지 말고, 그 자리에 설 수 있는가를(설 능력이 있는가를) 근심하며,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근심하지 말고, 알아줄 만한 사람이 되도록 하라.(가히 알아줄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구하라)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가장 정신차리고 들어야 할 말인 듯싶다.
사람이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않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더 나아가서, 내가 그 자리가 아님을 속상해 하지 말고, 그 자리에 설 능력을 갖추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해야 하며,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않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알아줄 만한 사람이 되도록, 알아줄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나 자신을 쳐서 만들어가야 한다.
불평을 멈추고, 속상함을 없애고, 근심을 그치고,
내가 과연 덕이 있는 사람인가.....고민해 보아야 한다.
내 곁에 있는 이들이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덕이 있는 이들이 내 곁에 머물 수 있도록, 나 자신이 덕을 쌓아야 한다.
내 덕을 알아볼 수 있도록 그렇게 하루하루 나를 만들어 가야 한다.
배우고, 내 곁을 찾아올 수 있도록 덕을 쌓고, 또한 남이 알아주지 않는다 하여도 한결같이 나 자신을 지켜 내는 것.
거기에 더해서, 남들이 알아줄 만한 사람이 되도록 나 자신을 다듬고 만들고 성장해 가는 것.
그래서, '나'라는 사람과 '내 곁에 머무는 사람'을 책임져 가는 것.
그것이 내가 찾아가야 하는 '마흔에 책임져야 하는 내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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