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과 삶/마흔에 읽는 논어

제1편 學而 1장 - 기쁨을 나누는 삶

그랑블루08 2013. 11. 4. 18:37

 

 

<올 추석때 갔던 경주 보문 단지>

 

 

제1편 學而

學而 第一

 

1

1) 子曰 學而時習之면 不亦說(悅)乎아 (배우고 그것을 때때로 익히면 기쁘지 않겠는가.)

2) 有朋이 自遠方來면 不亦樂乎아 (친구가 있어 먼 곳으로부터 찾아온다면 또한 즐겁지 않겠는가.)

3) 人不知而不慍이면 不亦君子乎아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서운해 하지 않는다면 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배움에 대한 장.

논어가 學으로 시작한다는 것은 내게는 꽤 의미가 있다.

배움이란 무엇인가, 배움이란 것을 어찌해야 할 것인가.

고민되는 부분이다.

 

초중고대를 지나면 배움이 지나가는 것인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마흔이 되고 보니, 세상엔 참 배울 것들이 많다.

그리고 내게 모자란 지혜가 너무나 많다.

배우고 또 배워도 모자라기만 하다.

그래서 <논어> 읽기를 이렇게 시작해 보고 있지만, 이것이 얼마나 갈지 내 스스로도 알 수가 없다.

그저 천천히 달팽이처럼 느리게, 거북이처럼 끈질기게 한 번 가보려 한다.

1)의 말. "배우고 그것을 때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라는 말처럼

나는 나의 이 잡스러운 수다방에서 때때로 익혀보려 한다.

 

사실 이렇게 천천히 진행하는 건, 한 번 외워보려는 심산이기도 하다.

놀랍게도 이렇게 쳐보고 나니, 외워진다.

게다가 한 자 한 자 해석해 보려 주석책을 보고, 어말 어미조사는 뭐가 쓰였는지 직접 찾아보고(솔직히 이건 결국 한문독해법 책을 주문했다.)

해석은 어떻게 하는지, 이 한자의 뜻은 뭔지 사전을 찾아 살펴보다 보니,

조금은 글자가, 그리고 문구가 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이렇게 시작한다.

때때로 익히는 이 즐거움을, 내 블록에 한 절 씩 올리는 것으로 한 번 누려 볼까 한다.

 

 

2) 有朋이 自遠方來면 不亦樂乎아 (친구가 있어 먼 곳으로부터 찾아온다면 또한 즐겁지 않겠는가.)

 

친구가 있어서 먼 곳으로부터 찾아온다는 것, 그것은 단순한 기쁨이 아니라, 즐거움이라 표현한다.

사실 이 부분은 이 절 아래 풀어놓은 제자 혹은 후학들의 集註 해석에서 좀 더 살펴볼 수 있다.

 

 (程子)又曰 說在心 樂主發散 在外 (기쁨은 마음에 있고, 즐거움은 발산함을 위주로 하니 외부에 있다.)

 

程子(정자)는 기쁨과 즐거움을 구분하고 있다.

2)절은 한 문장이었으나 공자의 말을 해석해 놓은 문장(集註)이 훨씬 많았다는 것이 함정이었지만,

하나 하나 짚어보며 해석해보는 건, 또다른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어쨌든 그의 말을 곱씹어 보면, 기쁨은 내 마음에 있는 것이고, 즐거움은 밖으로 발산되는 것이라 외부에 있다고 한다.

이건 3)에서 程子가 해석해 놓은 데서 다시 찾아볼 수 있었다.

"樂由說而後得"

 

즐거움(樂)은 기쁨()으로 말미암은 뒤에야 얻어지는 것이라 했다.

결국 먼저 기뻐하고, 그 뒤에 즐거움이 외부로 나가는 것이 아닐까 한다.

내가 기쁘고, 내 기쁨이 밖으로 나가서 이루어지는 것이 즐거움이 아닐까.

 

이것을 어찌 해석하느냐는 해석자마다 다 다를 것이다.

그저 나는 오독하기를 해볼까 한다.

나에게 맞는, 내 마음에 와닿는, 그리고 내가 때때로 익혀 나가야 하도록,

그런 방식으로 오독하기를 해볼 것이다.

해석학의 대가였던 한 철학가는 모든 이해는 오독에서 시작된다고 했으니.....

 

어쨌든 내 기쁨이 밖으로 나와 함께 즐거워하게 만들 것.

즐거움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도록, "함께" 즐거워하도록 할 것.

그래서, 저 멀리서 친구가 찾아오도록 할 것.

분명 친구가 찾아와서 즐겁다로도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그 즐거움을 함께 나눌 수 있도록.....그러한 사람이 되어라는 말로 내게는 읽힌다.

먼저 내 스스로 기뻐하고, 그 기쁨을 나누고, 내 주변을 즐겁게, 행복하게, 그 기쁨이 전해질 수 있게 할 것.

 

 

3) 人不知而不慍이면 不亦君子乎아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서운해 하지 않는다면 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세번째 말은 참...내 마음을 두드린 말이다.

중학교 때 배운 한문 책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그런 감동을 받게 만드는 말이랄까.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서운해 하지 말라.

 

- 德之所以成 亦由學之正, 習之熟, 說之深而不已焉耳

(德이 이루어지는 所以는 또한 배우기를 올바르게 하고,

익히기를 익숙히 하고 기뻐하기를 깊이 하여 그치지 않음에 말미암을 뿐이다.)

 

이 절의 아래 써놓은 집주의 문구가 그 방법을 가르쳐준다.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서운해 하지 않을 수 있는지,

그 방법을 단순하지만 명쾌하게 알려주고 있다.

 

배우기를 올바르게, 아니 올바르게 배우고,

익히기를 내 스스로 익숙해질 때까지 곱씹고 또 곱씹어 내 것이 되게 하고,

기뻐하기를 깊이 하여 그치지 않음으로써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서운해 하지 않을 수 있다.

주변의 말에 흔들리지 않고, 내 스스로의 힘을 갖는 법.

주변의 인정에 내 자신을 맡기지 않고, 내 자신 스스로의 판단으로 나를 세워가는 것.

 

이 중 가장 가슴에 와닿은 것은 기뻐하기를 깊이 하여, 그치지 않는다는 부분이다.

기쁨을 그치지 않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어떻게 계속 기뻐할 수가 있을까.

불가능하지 않을까.

그런데 기뻐하기를 깊이 하라고 말한다.

깊이 한다는 것.....

그것은 곱씹어 보고, 내 내면을 되돌아보고, 내게 감사할 것이 무엇이 있는지를 끊임없이 찾아보라는 말인 것 같다.

감사할 것을 찾아 그것을 기뻐하고,

그 기쁨을 나누어 다른 이들과 "함께" 즐거움을 누리라는 말이 아닐까.

 

깊이 들여다 보면, 아마 결국 내 첫걸음을 만나게 될 것 같다.

그 맨처음 마음을......

아주 작은 것에도 감동을 받았던 순간을.......

어쩌면 호의가 권리가 되지 않는, 가장 순수했던 순간을......

그 모든 것들이 감사했던 순간을

그 순간을 들여다보고,

지금 지속되고 있는 이 순간을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

그리고 거기에 그치지 말고,

나만의 기쁨에 머무르지 말고,

그 기쁨을, 그 감사를, 그 즐거움을....흘러흘러 넘치게 할 것.

그리하여 나 혼자만의 기쁨이 아니라 함께 즐거워하고 기뻐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 것.

 

배움이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함께 나누는 것이라,

그래서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즐겁게, 그리고 감사하게 만드는 것이라 그리 말하는 것 같다.

 

 

* 1)2)3)으로 적힌 것이 실제 논어의 내용이고,

아래 程子(정자) 등의 말은 集註(집주)에 나오는 부분이다.

<논어집주>에는 공자 또는 제자들의 말 아래에 그 당대 후학들의 주석이 달려 있다.

거의 공자와 동시대 혹은 바로 다음 세대의 인물들이라,

역시 공자 수준의 학자들.

집주까지 읽으니, 한문이 어마무지 하다는 것.....

1편, 1장 분량만 읽는데 4페이지였다.

실제 내가 지금 시도하고 있는 이 <논어집주>는

송대 이후 중국과 조선에서 교과서라 불리던 주희의 <논어집주>의 번역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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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흔에 읽는 논어> 보시는 분들.....

앞으로 얼마나 제가 올릴 수 있을지 알 수는 없으나,

이건 그야말로 제 멋대로, 제 생각대로, 제 꼴리는 대로 올리는 거라, 원 해석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해석이라는 것도, 한자를 해석해 보고,(주석 책을 보며) 내 나름대로 이해하는 방식을 이 블로그에 올려보는 거라서,

그저 제 나름의 공부 방법입니다.

그러니 펌은 절대로 아니 되옵니다.

혹시 보신다면,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리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