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과 삶/마흔에 읽는 논어

제1편 學而 9장 - 몸으로 기억하기

그랑블루08 2013. 12. 11. 17:11

제1편 學而

 

9장

曾子曰 愼終追遠이면 民德이 歸厚矣리라

(증자가 말하기를, 終을 삼가서 치르고 먼 이를 추모하면, 민덕이 두텨워질 것이다.)

 

9장은 제례에 관련된 부분이다.

초상을 치를 때 유의해야 할 부분, 삼가야 할 부분에 대한 당부다.

초상을 치를 때 그 예를 다하라는, 정성을 다하라는 말인데,

사실 나와는 조금 먼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예를 다한다는 것은 분명 중요한 부분이므로,

어떻게 추모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해 보려 한다.

 

- 遠者는 人之所易忘也어늘 而能追之면 厚之道也라

故로 以此自爲면 則己之德厚요 下民化之면 則其德亦歸於厚也니라

(먼 사람은 사람이 잊기 쉬운 것인데 그를 추모할 수 있다면 후덕해지는 도이다.

그러므로 이로써 스스로를 행하면 자신의 덕이 두터워질 것이요

백성들이 교화되면 그 덕이 또한 후함으로 돌아올 것이다.)

 

주석을 살펴 보면, 내용이 좀더 분명해진다.

주석에서는 분명히 말한다.

"終"도 "遠者"도 사람들이 소홀히 하기 쉽다고 말이다.

사람을 보내는 자세에 대해서 말하는 것 같다.

어떻게 보낼 것인가.

소홀히 하기 쉬운 이것을 어떻게 하면 좋은 것일까.

 

모든 끝에 대한 예의.

모든 사람의 삶에 대한 예의.

그것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소홀히 하지 말고, 그 끝을 기억하라고....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돌아보고 기억하라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의 끝을 존중해 주라고,

내게는 그렇게 들린다.

 

한 사람의 끝을 기억하고, 그의 삶을 추모하고,

그의 발자취를 돌아보아, 내 가슴에 교훈으로 삼는 것은

다름 아닌 道의 길이다.

德厚.

지금은 오타쿠와 같은 말로 쓰이는....혹은 동음이의어인 이 말이,

9장의 핵심이 아닌가 싶다.

 

어떻게 하면, 내가 어질고, 덕이 많아질 수 있는가.

그 하나의 방법이 바로, 사람을, 한 사람의 삶을 기억하는 것이다.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떻게 살아가려 했는지, 그가 남긴 것은 무엇인지,

기억하고 추모하는 것이다.

 

慕를 단순히 죽은 이를 그리워하는 것으로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 말은 매우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募는 그리워할 모도 되지만, "뒤따르다"라는 뜻이 있다.

追 역시 쫓다, 따르다 라는 뜻이다.

결국 그의 삶을, 그의 발자취를 기억하고 뒤따라 쫓아, 같아질 정도로 따라가라는 뜻이다.

그것을 기억이라 한다.

머리에 떠올리고 슬퍼하고 힘들어하고 보고 싶어 하고....

그것은 추모라 할 수가 없다.

진정한 추모는,

그의 삶을 따라 사는 것이다.

그를 배워 사는 것이다.

그를 좇아, 때로는 쫓아 같아질 정도로 내 삶을 달음박질 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이 내가 덕을 쌓아가는, 내 덕을 두텁게 만드는 길이다.

 

덕이란 무엇인가.

사전에 찾아보면, 도덕적, 윤리적 이상 실현을 위한 사려 깊고 인간적인 성품이라 나온다.

그저 착하다, 와는 다른 차원에서

이상과 목표를 가지고 그것을 실천하고자 움직이는 사람이다.

행동하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사려 깊은 사람이다.

이에 더해 사전에서는 착한 일로 쌓은 어진 품성, 남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성품이나 행동이라 한다.

행위로, 내 실천으로 쌓아가는 내 품성이다.

그 품성은, 행위와 실천으로 만들어지며,

결국 그것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만드는 그릇이 된다.

 

그리 본다면, 성격은, 성품은, 작은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것은 행위가 쌓여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내 실천과, 내 이상이 결합하여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행동이, 행위가 내 정신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덕은 어짊이요, 너그러움이요, 동시에 실천하는 행위이다.

 

그리고 9장은 그 실천하는 행위로서, 한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남들이 소홀히 하기 쉬운 것들....

그러나 내 스스로 덕을 쌓아가는 방법들.....

 

그것은 "기억하기"였다.

사람의 생명은 유한하다.

살아가면서, 많은 이들의 마지막을 지켜봤고, 또 앞으로도 지켜보게 될 것이다.

가슴을 쳐대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남은 이의 할 일은, 진실로 기억하는 일이라 한다.

기억은 행위였다.

그 삶을 기억하고, 곱씹고, 그 삶의 행위를 배워 스스로 실천하는 것.

그것이 바로 몸으로 기억하는 "추모"였다.

 

 

실천적인 행위로서의 "추모"

 

내게는 깊은 울림을 준다.

 

잊지 않고 있다고,

절대로 잊지 않겠다고,

 

"우리 아이들에게,

결코 불의와 타협하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다는 하나의 증거를

꼭 남기고 싶었습니다."

 

나는 이곳에서,

내가 발을 디디고 있는 이곳에서,

작지만, 보잘 것 없지만,

그래도 내가 서 있는 이곳에서,

나는.....그 말을 실천해보고자 한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아도 성공할 수 있다는 하나의 증거가,

내 스스로 되어보고자 한다.

 

 

 

 

 

 

 

<출처 : http://tvpot.daum.net/v/15641109?lu=flvPlayer_in>

 

 

 

 

 

변호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