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킹투하츠와 은신상플/(은신) 당신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은신상플) 당신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33 - 내 삶의 이유(전체버전)

그랑블루08 2014. 4. 24. 00:44

(은신상플) 당신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33 - 내 삶의 이유

 

 

 

 

 

 

 

<silver님께서 주신 당기못 대문짤~~ 감솨감솨합니다.^^>

 

 

<디씨 그러하다 횽이 주신 당기못 대문짤~~저는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__)>

 

 

 

 

 

 

 

 

* 위의 배경음악을 틀고 봐주세요.

 

 

 

1. 감사 / 김동률

 

눈부신 햇살이 오늘도 나를 감싸면

살아있음을 그대에게 난 감사해요

부족한 내 마음이 누구에게 힘이 될 줄은

그것만으로 그대에게 난 감사해요

 

그 누구에게도 내 사람이란 게

부끄럽지 않게 날 사랑할게요

단 한순간에도 나의 사람이란 걸

후회하지 않도록 그댈 사랑할게요

 

이제야 나 태어난 그 이유를 알 것만 같아요

그대를 만나 죽도록 사랑하는 게

누군가 주신 나의 행복이죠

 

그 어디에서도 나의 사람인걸

잊을 수 없도록 늘 함께 할게요

단 한순간에도 나의 사랑이란 걸

아파하지 않도록 그댈 사랑할게요

 

이제야 나 태어난 그 이유를 알 것만 같아요

그대를 만나 죽도록 사랑하는 게

누군가 주신 내 삶의 이유라면

 

더 이상 나에겐 그 무엇도 바랄게 없어요

지금처럼만 서로를 사랑하는 게

누군가 주신 나의 행복이죠

 

 

 

 

2. 그 중에 그대를 만나 / 이선희

 

그렇게 대단한 운명까진

바란적 없다 생각했는데

그대 하나 떠나간 내 하룬 이제

운명이 아님 채울 수 없소

 

별처럼 수 많은 사람들 그 중에 그대를 만나

꿈을 꾸듯 서롤 알아보고

주는 것 만으로 벅찼던 내가 또 사랑을 받고

그 모든건 기적이었음을

 

그렇게 어른이 되었다고

자신한 내가 어제같은데

그대라는 인연을 놓지 못하는

내 모습, 어린아이가 됐소

 

별처럼 수 많은 사람들 그 중에 그대를 만나

꿈을 꾸듯 서롤 알아보고

주는 것 만으로 벅찼던 내가 또 사랑을 받고

그 모든건 기적이었음을

 

나를 꽃처럼 불러주던 그대 입술에 핀 내 이름

이제 수많은 이름들 그 중에 하나되고

오~ 그대의 이유였던 나의 모든 것도 그저 그렇게

 

별처럼 수 많은 사람들 그 중에 서로를 만나

사랑하고 다시 멀어지고

억겁의 시간이 지나도 어쩌면 또다시 만나

우리 사랑 운명이었다면

내가 너의 기적이었다면

 

3. 그대에게 하는 말 / 스윗 소로우 

 

야트막한 마음 언저리 그대 홀로 쓸쓸히 서성일때

곁에 모두 어딘가에 사라졌을때

숨겨왔던 오랜 슬픔을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아픔을

목이 메어 눈물조차 힘겨운가요

 

어두워진 길 위에 혼자뿐이라도

얼어붙은 세상이 등 돌린다 해도

그대 그대 오 그대 난 항상 그대에게 있어요

 

Don't cry Don't cry Don't cry Don't cry Don't cry

그대에게 있어요

어두워진 길 위에 혼자뿐이라도

얼어붙은 세상이 등 돌린다 해도

그대 그대 오 그대 난 항상 그대에게 있어요

 

그대 깊음 숨속 말하지 못한 아픔들

어느 누구 하나 헤아려 주지 못해도

끝내 홀로 떠나가진 말아요

그대 그대 그대 always on my mind

 

잔인한 그 한마디 그대를 찌르고

어리석은 마음이 또 그댈 속여도

그대 그대 오 그대 난 항상 그대에게 있어요

 

아무것도 남지 않아도 아무도 들어주는 사람 없어도

잊지마요 내가 그대 곁에 있음을

 

 

 

 

1

 

 

 

 

두렵다.

다른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다.

미칠 듯한 상실감이 밀려왔다.

사랑이 지나가고, 그 격한 행위가 지나가고 엄습한 것은

충만감도, 행복감도 아니었다.

그것은 오로지 두려움 그 자체였다.

그토록 가지고 싶었던 사람을 품었다.

그러면 이 두려움이 사라질 줄 알았다.

그녀를 잃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다시는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그 두려움이

내게서 완전히 사라질 줄 알았다.

아니었다.

그것이 아니었다.

이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미쳐버릴 것만 같은 두려움이 내 영혼을 덮쳐버렸다.

 

나는....이제......살 수 없을 것이다.

이 사람 없이, 숨도 쉴 수 없을 것이다.

행위는 이제 돌이킬 수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그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가고야 말았다.

그녀와 함께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녀를 가진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그리고 그녀를 온 몸으로, 온 마음으로 품는다는 것이

어떤 행위인지, 이제 알아버렸다.

그래서 나는 이제 진실로 그녀를 잃고는 살 수 없게 되고 말았다.

 

그녀를 가지면서, 그녀의 깊은 그 곳으로 들어가 미친 듯이 휘몰아치면서도

온 몸에 전율이 흘러, 숨도 쉴 수 없을 정도로 쾌락으로 온전히 채워져도

내게 든 감정은 하나였다.

두렵다.

그녀를 빼앗길까 두렵다.

그녀 없이 살라고 할까 두렵다.

그녀를 다시 가지지 못할까 두렵다.

 

그 두려움들이 지금도 내 품 안에 잠든 그녀를 보면서도 미친 듯이 내 마음을 갉아 먹고 있다.

이런 사랑이 두렵다.

감당이 되지 않는, 한 사람의 경험치와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그 크기를 넘어서 버렸을 때

마치 신을 만난 듯, 경외감이 든다.

그러나 그만큼 두렵다.

 

공...주...님......

 

내 품에 안겨 있는 이 사람을 불러본다.

그녀가 내 가슴 속으로 더욱더 파고 든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그 살결이 온 몸에 전율을 일으킨다.

 

꿈일까......

 

놓칠 수 없다는 듯, 나는 그저 내 품에 그녀를 꽉 안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지 않으면, 꿈이라고 할까봐, 내 착각이라고 할까봐, 내 욕망이 만들어낸 환상이라고 할까봐

두려워서 놓을 수가 없다.

잠들 수가 없다.

 

아니 심지어는 그녀를 깨우고 싶다.

지금 이것이 현실인지, 지금 우리가 정말 사랑을 나눈 것인지....

그녀의 입술로 듣고 싶다.

아니다.....입술만으로는 부족하다.

행위로 확인받고 싶다.

당신의 입술로 터지던 그 야한 신음을 들으며 또다시 당신의 몸으로 달려가고 싶다.

그러면 이 불안함을 잠재울 수 있을까.

 

으음.....

 

내 품에서 꼬물거리던 그녀가 뒤척였다.

또다시 참지 못하고 나는 그녀의 하얀 볼에 입을 맞추었다.

 

“뭐야....은시경 씨.....안 잤어요?”

 

나의 그녀가.....눈을 떴다.

내 눈과 마주치자 살짝 얼굴을 붉히며 내 가슴으로 파고 들었다.

 

“그렇게 보지 마요......쪽팔려......나......”

 

내 가슴에 얼굴을 묻던 그녀가 미소를 짓는지 가슴이 간지럽다.

 

“근데.....은시경 씨 심장....이러다....터질 것 같아......이렇게 막 뛰어도 돼요?”

 

“......공주님....때문입니다.”

 

“맨날 나 때문이래.......

근데 정말 왜 안 잤어요?

아직 캄캄한데........”

 

“잘 수가 없습니다.”

 

“왜요?”

 

시경의 눈이 또 심하게 가라앉았다.

 

하아.........

 

그의 심장에서부터 한숨이 퍼져나왔다.

 

“두려워서요.....”

 

“뭐가요? 뭐가 두려워요?”

 

재신으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대답이었다.

그것도 이렇게 심각한 표정으로 이토록 무겁게 대답할 줄은 몰랐다.

 

“공주님과 함께 한 시간이.....꿈일까봐.....

두려워서 도저히 잘 수가 없었습니다.”

 

“은...시경....씨.....”

 

“저....이제.......어쩌죠......공주님.......

전 이제 당신 없이는...안 되는데......

이제 지켜보는 것만으로는 안 되는데.......

전......이제 공주님.....못 놓습니다.

제가 답답해서 제게 싫증을 느끼셔도,

이제 전......공주님...절대로....못 놓아드립니다.

그러니 공주님께서...절.....책임지셔야 합니다.”

 

이상하지...참....

남자와 여자가 몸을 섞고 나서...남자에게 듣는 말이 책임지라는 것이라니.....

그런데도 그 말에 이토록 가슴이 뛰는 나는 뭔지......

왜 이 남자가 말하면, 뭐든 이렇게 설레는 건지.....

이 남자는 무슨 말을 해도, 이토록 멋있게만 보이는 건지.....

내가...정말......뭔가 눈에 씌었나 보다......

 

 

 

 

 

2

 

 

 

 

 

“꿈을 꿨어요......”

 

시경의 손이 재신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힘든......꿈이었습니까?”

 

“그랬던 것 같은데....또 그런 것만은 아니에요.”

 

재신은 자꾸만 시경의 넓고 따뜻한 가슴 안으로 파고들었다.

시경의 심장소리가 재신의 볼을 울려대고 있었다.

점점 빨라지는 그 심장소리가 재신을 미소 짓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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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다섯, 그 소녀가 검은 옷을 입고 입술을 깨물며 울음을 참고 있었다.

검은 원피스를 입고, 검은 모자에 망사로 된 창 사이로 하얀 얼굴의 소녀는 울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것이 더 안타까워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국상(國喪).......

수많은 조문객과 근위대원들 사이에서 울지 않아 더 슬퍼보였던 한 소녀가 있었다.

 

소녀는 그렇게 꿋꿋이 서 있었다.

모두가 돌아가고 난 다음에도 소녀는 그곳에 서 있었다.

아버지의 무덤 앞에서 무슨 다짐을 했는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는 모른다.

궁으로 돌아와서도 소녀는 여전히 입술을 깨물며 참고 있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소녀는 달렸다.

아무도 만나지 않을 수 있는 곳, 아빠와 늘 함께 거닐던 그 정원으로 뛰어들어갔다.

 

"공주님!!!!"

 

자신을 부르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제는 다음 국왕이 된 큰오빠가 궁인들을 말렸다.

 

“그냥...두세요.......”

 

그렇게 소녀는 유학을 가기 전, 아빠와 함께 앉았던 그 벤치에 가서 멍하니 앉아 있었다.

 

마지막 전화를 떠올렸다.

 

“우리 막둥아, 아빠는 막둥이 보고 싶은데.......”

 

“아, 좀!!! 아빠, 나 바쁘다고 했잖아.”

 

중2병에라도 걸렸던 건지 열다섯의 소녀는 배배 꼬여 있었다.

모두가 가는 파티였다.

위험할 것도 없었다.

그러나 아빠는 단호했다.

친구들과 약속해뒀는데, 마음에 드는 남자애들도 간다고 하는데,

아빠는 단호히 안 된다고 했다.

 

“자유롭게 행동해도 된다.

그러나 경거망동은 안 돼.”

 

“파티 가는 게 왜 경거망동이야?

내 친구들도 다 가는데...왜 나는 안 돼?”

 

“알콜이 없다고 재신이 너, 아빠한테 단언할 수 있니?”

 

“아빠.....미들스쿨 파티야, 무슨 알콜이야?”

 

“너, 맹세할 수 있어?”

 

소녀는 머뭇댔다.

친구들과 와인을 준비하기로 한 것도 사실이었다.

파티 뒤에 빠져나와 보트위에서 우리들만의 시간을 보내려던 것도 사실이었다.

 

“재신아, 넌....대한민국의 공주다.”

 

“그래서 뭐?”

 

“10대의 공주가 난잡한 파티에 다닌다는 기사를, 아빠는 보고 싶지 않구나.”

 

“아, 진짜!!!! 아빤 아무 것도 모르면서!!!

아빠, 정말.....짜증나!!!”

 

그것이 마지막 통화였다.

몇 번이나 아빠에서 전화가 왔지만 받지 않았다.

그저 궁시렁대며 집에서 게임만 하고 있었다.

그렇게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는 말을 듣기 전까지 나는 내내 삐져 있었다.

나는.....그랬다.

그렇게 어리기만 한, 틴에이저였을 뿐이었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뭘 잘 했다고 울어....뭘 잘 했다고......

 

소녀는 또다시 입술을 깨물었다.

자꾸 눈물이 차올라 온 세상이 뭉글뭉글 올라오고 있었다.

참으려 참으려 몇 번이나 눈을 깜빡이는데, 소녀의 눈 앞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그 남자는 묵묵히 소녀의 앞에 서 있었다.

 

"그냥 참지 말고...우세요."

 

“누구...세요? 오빠는?”

 

소녀의 앞에 고등학생인 듯한 남자가 서 있었다.

검은 양복에 까만 눈을 한, 여자도 가지기 힘들 정도로 하얀 피부를 가진.......한 남자.

소년과 청년의 경계에 있는 한 남자가 소녀를 묵묵히 바라보고 서 있었다.

소녀는 아까 본 듯도 했다.

그것도 아주 가까이에서......본 것 같았다.

은실장님 옆에 서 있던 하얀 얼굴의 남자......

 

정지 화면처럼 서 있던 남자가 소녀의 곁에 앉았다.

기시감 같은 느낌........

뭔가.....익숙해서 거부할 수도 없는....

어디 공주 옆에 앉느냐고, 말도 할 수 없는......

그런 느낌 때문에 소녀는 그저 그가 하는 대로 지켜보고만 있었다.

 

“슬플 땐....안아줘야 한다면서요?”

 

“네?”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는 없으니까.....그냥.....앉아 있어줄게.......

울어요.”

 

“무...무슨....소리를........하는....”

 

“그냥 울어.......”

 

아무 감정이 담기지 않은 듯한....담담한 까만 눈이 소녀를 말갛게 보고 있었다.

자꾸만 그렁그렁 눈에 맺혀 오는데, 억지로 참고 있는데

누군지도 모르는 남자가 담담하게 말하고 있었다.

 

그냥 울어........

 

안 돼, 울면 안 돼.......

그러나 마치 그의 말이 무슨 신호탄인 것처럼, 소녀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저 안에서 올라오는 뜨거움을 참아낼 수가 없었다.

 

그냥 무언가가 터져 버렸다.

입에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거라 생각했었다.

아니었다.

그것이 아니었다.

슬픔은, 저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생채기를 내며 끓어올라오는 것이었다.

가슴을 쳐대는, 심장을 쥐어짜는 행위였다.

심장을 쳤다.

아파서 아파서 미쳐버릴 것 같아서 심장을 쳐댔다.

 

그 순간, 정지한 채 앉아 있던 남자가 소녀의 팔목을 잡았다.

남자는, 왜 잡느냐며 놓으라고 뿌리치는 소녀의 팔목을 잡아 자신의 품에 안았다.

 

마치......때리지 말라는 듯이,

그렇게 가슴을 치지 말라는 듯이,

그는 자신의 가슴을 빌려주었다.

소녀는 자신의 심장을 쳐대던 손으로 그의 가슴을 잡았다.

꺽꺽대며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의 자켓을 움켜쥐고, 통곡을 뱉는 소녀의 등을 그는 천천히 쓸어주었다.

그렇게 그는 소녀를 자신의 품에 안고 소녀의 슬픔을 받아주었다.

소녀가 자신의 슬픔을 내놓을 수 있도록, 슬픔을 몸 밖으로 내놓을 수 있도록

묵묵히 그러나 따뜻하게 지켜주고 있었다.

 

소녀가 슬픔을 다 내놓을 때까지....

그래서 울음이 잦아들 때까지......

소녀의 들썩이던 어깨가 조금씩 내려올 때까지 ......

그는 그렇게 소녀를 자신의 가슴에 안았다.

 

몸속의 슬픔이 빠져나가고, 통곡이 빠져나가고 나서도,

그는 소녀를 자신의 가슴에서 놓지 않았다.

시간이 정지한 듯, 혹은 시간은 흘러가지만, 멈춰진 순간 속에서

둘은 오롯이 서로의 몸을 의지한 채, 따뜻함을 나누고 있었다.

아까까지 떠있던 해가 서쪽으로 넘어가는 그 순간까지

소년과 청년의 경계에 서 있던 한 남자가 소녀를 자신의 품에 오롯이 안고 있었다.

 

“공주님!!!”

 

누군가 뛰어오고 있었다.

 

그제야 소녀는 남자의 품에서 놓여났다.

자신이 벗어났는지, 그가 놓아주었는지 그것은 알 수 없었다.

남자의 까만 눈과 눈이 마주치자, 소녀의 얼굴로 알 수 없는 뜨거움이 몰려왔다.

그의 하얀 얼굴도 저무는 붉은 석양처럼 붉게 물들고 있었다.

 

“공주님!!!!! 여기 계셨어요?”

 

궁중실장님이 이제 열 걸음도 채 남지 않을 곳에서 뛰어왔다.

그리고 돌아보았을 때, 그는 숲 사잇길로 사라지고 없었다.

아니 그의 검은 등만이 흔들리는 가지 사이로 보일 뿐이었다.

 

“누구랑 계셨어요?”

 

“네? 누구? 아......”

 

그제야 깨달았다.

누군지도 모르는 남자의 품에 내가 안겨 있었다는 것을.......

나는 그 남자의 이름도 모른다는 것을.......

 

쿵쿵쿵쿵...뛰던 심장소리만이 감각 속에 새겨져 있었다.

 

그것이 15살 소녀가 만났던.......소년과 청년의 경계에 서 있었던 한 남자였다.

겨울의 끝자락, 여전히 차가운 바람이 가슴을 서늘하게 만드는 3월의 어느 날.......

여전히 봄은 먼 듯이 보였던.......

아버지가 하늘의 별로 떠나갔던.....

3월의 어느 날이었다.

 

 

 

 

3

 

 

 

 

“......혹시......그 남자.......은시경 씨....였어요?”

 

“......아셨습니까?”

 

“정말, 정말 당신이었어요?”

 

재신은 놀란 듯, 시경의 검은 눈을 바라보았다.

그랬다. 정말 그 때 그 눈이다.

담담하고 묵묵하던 그 눈, 그토록 진한 까만 눈이었다.

 

 

“벌써.......13년이나 지났습니다.

그 때 제가 19살이었으니까.......”

 

재신의 눈이 시경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랬구나. 이 사람이었구나.

열아홉 살....오빠였구나.

뭔가 이상하게 뭉클했다.

이 남자를 내가.....그때도 만났었다는 것이 너무나 묘하고 뭉클했다.

 

“왜...그 때 왜 그랬어요?

처음 만난 모르는 여자애한테.......왜 그랬어요?

막...안아주고........그 때부터 바람둥이였던 거야?

은시경 씨....진짜.....선수인 거 아니에요?”

 

“전.......공주님......알고 있었습니다.”

 

“아, 물론 그렇죠. 난...공주니까....

여튼......왜 그랬던 거예요?

아무리 15살짜리라지만, 그래도 여자는 여잔데....그렇게 막 안고 그러면 안 되잖아.

왜 그랬대?”

 

“공주님께서.....원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원하다니? 내가 안아달랬다는 거예요? 처음 보는 오빠한테?”

 

“공주님께서......울고 싶어하셨습니다.”

 

“내가? 아니야, 울지 않으려고 얼마나 노력하고 있었는데.......”

 

“그러니까요. 울고 싶은데, 울 자리가 없으셨죠.

누구보다도.....제가 더 잘 압니다.”

 

시경이 갑자기 재신을 자신의 가슴에 꽉 끌어안았다.

 

“그 때 공주님........때문에.....저......한동안 아무 것도 못했습니다.”

 

“응?”

 

“그 날.....공주님 어깨가 너무 가녀려서......

너무나 여린 어깨로 바들바들 떨고 계셔서.......

그래서......도저히 안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그날.....그 자리에서 애써 울음을 참으시던....그 소녀는.....하아......

너무나......아름다웠습니다.

그래서.....몇 날 며칠.....가슴이 저렸습니다.”

 

“은...시경 씨.......”

 

“열다섯 살...소녀가......도저히 열다섯 살이라 믿을 수 없을 만큼.....기품이 있으셔서.....

그 때 생각했었습니다.

저 어깨를......지켜드리고 싶다....고......

다시는 떠시지 않도록, 아니 그 떨림을 모두 안아드리고 싶다고......

그렇게 다짐했습니다.”

 

처음....듣는 이야기였다.

한 번도 그와 이전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었다.

그래, 말이 안 되는 거였다.

단지 2년 전에 내가 영국에서 돌아와서 만났다는 것도, 그 때 처음 만났다는 건 정말 말이 안 되는 거였다.

은실장님의 아들인데, 우리가 만나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아니 꿈이 아니었다면, 나는 영영 몰랐을지도 몰랐다.

 

한 번도 그 때 그 남자가 이 사람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때, 나는 알고 있었을까.....

그래서 이 남자를 좋아하게 되었던 걸까.....

 

“은시경 씨는........그럼, 나.......언제부터 좋아한 거예요?”

 

“.........공주님께서 기억하시기 전부터........아주 오래....전부터였습니다.”

 

“.....그럼...설마.....그 날..........?”

 

시경은 아무 말 없이 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재신의 눈 위에 입을 맞추었다.

 

“........공주님, 제가 왜....육사에 갔는지 아십니까?”

 

재신은 그의 입술이 좋아 눈을 감았다.

감은 눈 위로 부드러운 입술이 자꾸만 내려앉았다.

그의 낮은 목소리가 자꾸만 나른하게, 자글거리게 만들었다.

 

“그날...이 아니었으면, 어쩌면 전....아버지가 원하는 대로 법대로 갔을지도 모릅니다.”

 

“그럼......왜....?”

 

“바들바들 떨고 있던 그 어깨 때문에, 제 열아홉의 봄은 그렇게 앓이를 하며 보냈습니다.

그리고.....결심을 했습니다.

그 어깨를......지켜드리겠다고........

소녀의 어깨를......뒤에서 반드시 지켜드리겠다고.......

그렇게 결심했습니다.”

 

“설마....지금 은시경 씨, 나 때문에......육사를 갔다는 거예요?

군인이 된 게 나 때문이라고? 지금.....그 말 하는 거예요?”

 

믿을 수 없었다.

한 남자가, 이토록 올곧은 한 남자가 나를 위해서, 나를 지켜주고 싶다는 이유로,

군인이 되었다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그의 손이 천천히 재신의 볼을 쓰다듬었다.

그의 검은 눈이 짙게 깔리고 있었다.

 

“그래서.........실망....하셨습니까?”

 

그의 입술이 그녀의 발그레해진 볼 위에 부드럽게 놓였다 떨어졌다.

 

쿵쿵.....심장이 뛰었다.

 

시경의 엄지손가락이 놀란 듯 살짝 벌어진 재신의 붉은 입술을 쓸었다.

눈을 감고 있어서, 그 감각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대답....안 해 주십니까?”

 

시경의 입술이 재신의 입술을 간질이며 살짝 닿았다가 떨어졌다.

 

“공주님........”

 

시경은 재신의 귀를 가볍게 깨물며 속삭였다.

 

“하아....하아........”

 

귓가로 스치는 그의 숨결도, 그의 낮은 목소리도, 귀를 핥는 그의 부드러운 혀도,

자꾸만 재신을 꿈틀거리게 했다.

그의 입술도, 목소리도 너무나 야했다.

재신은 그의 목을 안았다.

그러고는 천천히 눈을 떴다.

자신의 눈 앞에 까맣게 타들어가는 검은 눈빛의 한 남자가 있었다.

자신을 향해 욕망을 더 이상 감출 수 없어서 온 몸으로 내뿜고 있는 한 남자가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검게 가라앉은 시선을 마주 하는 것만으로도 재신은 등 뒤로 저릿한 무언가가 흘러다녔다.

그의 눈에서 욕망이 불꽃처럼 확 하고 일어났다.

순식간에 그는 그녀의 몸 위로 올라왔다.

덮고 있던 이불이 내려가 그녀의 하얀 목과 그 아래 부드러운 곡선이 수줍게 드러났다.

재신이 부끄러운 듯 손으로 (중략) 가리려 하자, 시경은 자신의 두 팔로 그녀의 양손을 잡아 올렸다.

그의 눈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것만 같았다.

재신은 그 눈을 똑바로 바라볼 수도 없었다.

얼굴에 자꾸만 열이 오르는 것도 같다.

이 남자.... 때문에 미칠 것 같다.....

 

“실망...하셨느냐고....물었습니다.....공주님.......”

 

재신은.....눈을 감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꾸만 열기가 올라와서, 입술 사이로 한숨 같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아니......하아.......좋아요.....은시경 씨.......”

 

“제가.....정말....좋으세요?”

 

“응......좋아.....요........당신 때문에...나......미칠 것 같아.......”

 

재신은 자신도 모르게 부끄러운 고백을 뱉고야 말았다.

아.....미쳤구나...이재신.....

자신이 뱉고 봐도 너무 야했다.

이 남자 때문에 미치겠다니.......

그것도 이토록 몸을 비틀면서.....

이토록 야한 숨소리를 내면서......

 

아.........

 

그의 입술이 그대로 재신에게(중략) 내려앉았다.

(중략)

 

으음.......

 

재신은.....미칠 것만 같았다.

정말....미칠 것 같다.

 

그의 눈이, 그의 입술이, 그의 손길이 자신을 미치게 했다.

자꾸만 몸이 비틀리는데 그의 손은 여전히 재신의 양쪽 팔목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머리 위로 잡고 있었다.

 

제발.......하아...하아......

 

(중략)

그가 닿았다 떨어질 때마다 감각은 더욱더 예민하게 일어서고 있었다.

 

순간 그의 손이 재신의 팔목을 놓아주었다.

(중략)

그가 건드릴 때마다 재신의 허리가 비틀렸다.

(중략)

발끝까지 자글자글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재신은 (중략) 그의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싸쥐었다.

(중략)

 

 

으..은..시경..씨.....

 

하아......잠깐...아!!!

 

쓰렸다.

아릿하게 아픔이 지나갔다.

그러나 그 쓰림 사이로 또 다른 감각이 휘몰아쳤다.

 

(중략)

 

 

이상했다.

그 자글거림이, 그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중략)

 

그대로...무언가가 일어날 듯이, 자신도 알 수 없는 세포들이 일어날 듯이

마치 날생선들이 활개를 치듯이,

그녀의 몸에서 파듯파듯거리고 있었다.

 

그...그만...은시경 씨....

으음....나...이상해.....그만해...그만해요......

 

그녀의 목소리에 울음이 스며들 정도로, 눈에 눈물이 맺힐 정도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는 멈추지 않았다.

 

(중략)

 

.....으음........하아...하아.....

 

그녀의 야한 신음은 점점 강도를 높여오고, 그녀의 신음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중략) 그는 (중략) 자꾸만 그녀를 들썩이게 했다.

 

그만...제발 그만..........

 

흐느끼는 그녀의 목소리에도 시경은 멈출 줄 몰랐다.

재신은 그의 목을 끌어 안았다.

 

(중략)

 

은..시경....하아..하아....은시경......제발........

 

그녀가 흐느끼고 있었다.

 

(중략)

 

“.....하아......많이......아프십니까.......”

 

아팠다.

어젯밤만큼은 아니라 해도 여전히 아팠다.

그러나 또한 (중략) 그가......등줄기가 서늘해지도록 좋았다.

 

“아니.....괜찮아요. 조금만...천천히....(중략)......”

 

(중략)

마치 처음부터 서로의 것이었는 양, 완전히 서로에게 맞춰지고, 시경은 전율에 몸을 떨었다.

이 느낌이었다.

죽어도 좋다, 느껴지는 이 느낌.

이 감각을 다시 누리지 못할까 두려워지는 순간.

온 몸의 세포가 일어섰다.

(중략)

그녀는(중략) 미쳐버리도록 만들었다.

자신이 이토록 감정적이었는지, 동물적이었는지 몰랐다.

자신 안에 이토록 짐승이 가득한지 몰랐다.

그녀의 신음이, 그녀의 목소리가, 울음 섞인 그녀의 비명이....미치도록 자극적이었다.

게다가 부드러운 그녀의 살결은, 그 하얀 살결 위에 자신이 만들어놓은 붉은 자국들은

정말이지 남자를 미치게 만들었다.

 

“공주님.....공주님.........”

 

신음처럼 그녀를 불렀다.

(중략)

그녀의 입술을 머금으며, 그녀의 신음을 삼키며, 시경은 재신을 안고 짐승이 되었다.

완전한 수컷으로 미친 듯한 욕망만이 살아 있는 남자로 그렇게 자신의 여자를 안았다.

 

(중략)

여전히 신음을 뱉는 그녀의 입술을 훔치며 시경은 그녀를 자신의 품 안으로 가득 안았다.

 

“사랑합니다......사랑합니다......나의 공주님.....공주님........”

 

그의 고백은......생에 단 하나뿐인 사랑을 향한 그의 고백은 끊임없이 터져나오고 있었다.

 

 

 

 

 

4

 

 

 

 

 

그의 목소리를 들은 것도 같다.

그는 전화를 하는 중이었다.

 

“예. 공주님 개인 일정이 있으시니까

내일 출발 때까지 모두 휴식을 취하시면 됩니다.

오후에는 나가실 수도 있으니, 제2중대장과 대원들은 연락하면 바로 올 수 있도록 대기하라고 해주십시오.”

 

무슨 말이지? 그가 누군가에게 일정을 말하고 있는 듯했다.

 

“공주님은 제가 호위할 테니 걱정마십시오. 궁중실장님.”

 

궁중실장님이셨나 보다.

그런데 이게 무슨 소리지......?

 

소리는 들리는데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었다.

손도 하나 까딱할 수가 없었다.

저 남자는 분명....짐승인 게다.

상남자도 그런 상남자가 없다.

인내.....다 거짓말이다.

뭐가 답답이란 거야.

32년 동안 욕망을 쌓아뒀다가 나한테 터뜨린 게 틀림없었다.

 

“.....짐...승........”

 

“예?”

 

시경이 어느 새 재신이 누워 있는 침대로 다가왔다.

혼자서 옷은 언제 챙겨 입었대?

나 혼자 (중략) 침대에 엎어져 있다니 뭔가 불공평했다.

 

그는 단정하게 예의 근위대장으로 돌아와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답답이 근위대장의 복장을 한 채로, 그의 손은 나쁜 손으로 (중략) 더듬어왔다.

 

“지금....뭐하는 거예요?”

 

시경은 아무 말 없이 재신의 맨 등에 입을 맞추었다.

 

“안 돼!!!! 더는 안 돼!!!!! 나.......죽어요. 이러다.......”

 

시경은 그 말을 들었는지 어떤 건지 재신의 입술을 향해서 또다시 다가왔다.

(중략)

그의 눈에 또다시 욕망이 일렁거렸다.

 

그러다 일순 그의 손이 정지했다.

이상하다 싶었던 재신이 천천히 그를 바라보다가 그의 시선을 따라내려갔다.

그의 손이 재신을 쓰다듬으며 이불을 제친 탓인지, 그녀의 몸이 드러나 있었다.

그 아래 시트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시경은 뭔가 충격을 받은 듯이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재신의 얼굴이 빨개졌다.

 

뭐야, 지금 저걸 충격받았다는 듯이 보고 있으면 어쩌겠다는 거야?

 

재신은 이불을 얼굴 끝까지 덮었다.

설마...저 남자 나 처음이었는 거 몰랐던 건 아니겠지?

아...진짜.....왜 저렇게 보는 거야?

 

이불을 덮고 있어도, 그의 시선이 느껴져 재신은 이불을 꼭 붙들고 있었다.

 

아.........

 

한참이나 지나서, 뭔가 때가 늦은 듯한 그의 단발마의 음성이 터져나왔다.

 

“공주님....혹시.......”

 

아, 진짜 이 답답이!!!!

그걸 그렇게 주저주저 하며 한참이 지나서 묻고 있다니........

 

그런데 정작 그 뒤의 말은 묻지 못한 채, 침만 삼키고 있었다.

한참을 기다려도 그는 뒷말을 잇지 못했다.

재신은 이불 속에서 자신의 아래를 바라보았다.

침대 시트에 붉은 피가 묻어 있기는 했지만, 자신이 상상했던 만큼 그렇게 많은 양은 아니었다.

사람마다 다 다르다더니 그런 것 같았다.

 

솔직히 처음 그와 관계를 가졌을 때는 아프기는 했지만, 뭔가....흘렀다는 느낌은 없었다.

아마......이 피는....두 번째 관계 후에 나온 게 아닌가 싶었다.

아니면 처음도 두 번째도 모두 피를 흘렸는지도........

처음 하는 사람들은 매번 할 때마다 피가 나오는 사람도 있다고 했었다.

 

“처음.......이셨....습니까........”

 

하아.......

그걸 또 묻고 있는 이 남자.....

날 더러 뭐라고 대답하라는 건지.....

그런 건 알아서 대충 넘겨주지.......

 

“저 때문에.......하아.........”

 

그 순간 터져나오는 그의 한숨.....

마치 자책같이 새어나왔다.

 

침대가 울렁였다.

그가 일어서서 어디론가 걸어가고 있었다.

뭘 하려는 건지........

재신은 여전히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뭔가 부끄러웠다.

그러면서도 몸을 꼼짝할 수가 없었다.

솔직히 쓰리고 욱씬거려서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은 질문은 했는지......

 

혜원이에게 물었었지.......

술 취해서 하면 모를 수도 있지 않느냐고......

 

모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토록 온 몸에 각인이 되는데, 했는지 안 했는지 모른다니........

그러니 혜원이가 그토록 어이 없어 했던 건지도.......

 

남자와 여자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정말로 강렬한 것이었다.

온 몸에 생채기가 나고, 서로의 몸에 흔적을 남기고, 그렇게 해서도 그 아픔을 겪으면서도 하나가 되고 싶은 마음.......

재신은 그랬다.

막연한 두려움도 있었다.

아프지 않을까 하는.......

결혼한 친구들이....아프기만 하다고 말할 때면, 왜 그걸 하며 사는 걸까 싶기도 했다.

남자만 좋은 거 아니야, 싶기도 했다.

 

그런데.....그게 아니었다.

아파도.....좋은.......알 수 없는 신비가 있었다.

나....정말 색*녀가 다 됐나 봐......

 

“어!!! 어!!! 지금 뭐해요? 은시경 씨!!!!!!”

 

자기만의 생각에 빠져 있느라 시경이 뭘 하는지 예상도 못했던 재신은 자신의 아래를 들추는 손길에 놀라서 그를 말렸다.

그러나 그는 아랑곳도 하지 않고, 그녀의 아래를 덮고 있던 이불을 걷었다.

 

“잠깐...잠깐만요......”

   

(중략)

 

아.........

 

따뜻한 수건이 그녀의 쓰린 그곳을 달래주었다.

 

“많이.......아프셨습니까?”

 

그의 목소리에는 걱정과 두려움이 잔뜩 배여 있었다.

 

바보.......또......저러네.......

 

싶었다.

 

이 남자는 짐승처럼 달려들고서도, 그 순간이 지나면 이렇게 주저하며 가슴 아파한다.

 

“은...시경 씨.....”

 

여전히 부끄러워 이불에서 얼굴을 빼지 않은 채로, 시경을 불렀다.

 

“예. 공주님......”

 

“나 좀....안아줘요.”

 

그 말에 시경은 천천히 재신의 곁에 누웠다.

그제야 재신이 말간 얼굴을 이불 밖으로 내밀었다.

그러더니 시경의 넓은 가슴 안으로 파고 들었다.

하얀 셔츠의 단추를 하나하나 풀었다.

그러고는 재신은 풀려진 단추 사이 그의 맨 가슴 안으로 얼굴을 묻었다.

 

그의 살내음이 좋았다.

 

“아팠어요. 진짜...많이....”

 

순간 시경이 정말 눈에 띄게 멈칫 했다.

 

“공주님...저 때문에...제가 서툴러서.....하아....죄송합....”

 

“그런데요. 그 이상으로 좋았어요.”

 

“공...주님......!”

 

“당신이라서.....은시경 씨 당신이라서....나....정말....좋았어요.”

 

시경의 팔이 재신을 자신의 가슴으로 힘주어 안았다.

 

“공주님.......제게 공주님의 처음을 주신 거, 후회하시지 않도록.......

정말 멋진 남자가 되겠습니다.

제가.....많이......더 많이......사랑하겠습니다.

절대로 후회하시지 않도록.......

오늘을 절대로 후회하시지 않도록.......

당신에게......어울리는 사람이 되도록......노력하겠습니다......”

 

그의 목소리가 뭔가 울컥했다.

아까까지는 분명 장난 같았는데 저 아래에서 뭔가 뭉클한 것이 올라왔다.

사랑을......이런 절대적인 사랑을.......

어떻게 내가 받을 수 있는 건지......

내가 받아도 되는 건지......

내게 어떻게 이렇게 큰 복이 내려진 건지.......

누군가 나를......내 아픔을 보시는 이가......

위로하고 있다는 것이......

그래서 이 남자를 보내셨다는 것이......

자꾸만 울컥하게 했다.

 

 

 

 

 

 

5

 

 

 

 

 

뭔가.....분위기가 바뀌었다.

두 분......분명......

 

이제는 왠지....차라리 다행이다 싶었다.

이젠.......완전히 정리할 수 있을 듯도 했다.

 

다른 대원들은 모두 하루의 휴가를 즐기고 있을 때,

동욱과 제2중대원 몇 명은 공주님을 호위하고 있었다.

그것도 꽤 멀리에서 천천히 호위하라는 근위대장님의 명령에 두 사람을 지켜보며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뭔가 달랐다.

동욱의 눈에는 뚜렷이 보였다.

두 사람의 관계......

분명.....무언가...달라져 있었다.

 

남자의 본능일지도 몰랐다.

지금 근위대장님은 은연 중에 자신도 모르게 드러내고 있었다.

공주님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공주님께 내미는 손길에서 예전에 보이던 주저함이 사라져 있었다.

그렇다고 예의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조심스러웠지만, 그것은 예전과는 분명 판이하게 다른 것이었다.

자신만이....오로지 자기만이 공주님에게 손댈 수 있다는......

그런 자신감 같은.....그런 것들이 은연 중에 드러나고 있었다.

목발을 짚겠다는 공주님께 근위대장님은 단호하게 휠체어를 권했다.

예전 같으면 공주님은 절대로 안 된다며, 버럭 하셨을 수도 있는데, 근위대장님이 하자는 대로 따르고 있었다.

그것도 근위대장님의 눈을 바라보다 고개를 숙이시기도 했다.

더 놀라운 것은 그럴 때면 공주님의 얼굴이 빨갛게 물들고 있었고, 그런 공주님을 근위대장님은 너무나 사랑스럽게 바라보셨다는 것이다.

저러다 두 분......다 들키고 말겠다 싶을 만큼......

근위대장님이 몇 번이나 손을 움찔 하는 것을 보고 말았다.

공주님께 거의 닿을 뻔한 손을 가까스로 제어하는 것을 보고야 말았다.

그러다 공주님 얼굴에 내려온 머리카락을 올려주시고야 말았다.

그 순간.....공주님은 정말......부끄러워하셨다.

마치 자신의 남자 앞에서 부끄러움을 타는 아가씨처럼....그래 마냥 아가씨처럼 얼굴을 붉히시며 고개를 숙이셨다.

 

정말로 사랑은.......사람을......변하게 만드나 보다.

 

 

 

 

 

6

 

 

 

 

정말 오후가 돼서야 겨우 나올 수 있었다.

그는 무리하지 말자고 말렸지만, 왠지 한 달 전 우리의 시작이 되었던 그 바다를 보고 싶었다.

그래서 휠체어까지 오랜만에 대령해서 타고 나왔다.

호텔 밖 언덕까지 휠체어를 타고 나왔다.

목발을 짚고 걷고 싶었지만, 시경은 허락지 않았다.

웃기게도......재신은 시경의 말을 듣고 있었다.

마치 그래야 할 것처럼......

그의 배려를 당연하다는 듯 받고 있었다.

 

뒤에서 따라오는 동욱 씨와 근위대원들 때문에 자꾸만 부끄러웠다.

그가 나를 빤히 바라볼 때도, 그의 손이 내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줄 때도,

볼이 빨개졌을까봐 걱정이 되고는 했다.

그의 눈을......바라보기가 이렇게 어려웠던 걸까......

바라볼 수가 없었다.

왜 이렇게 부끄럽지......

지금도 그는 나를 바라보고 있는데, 나는 그저 앞만 보고 있다.

그러나 내가 얼마나 그를 의식하고 있는지 그도 알고 있었다.

안 봐도 알 수 있었다.

내 뺨이 자꾸 빨개지고 있다는 것을......

그것을 보며, 그가.....눈으로 웃고 있다는 것을.......

 

 

“바닷가 쪽 대원들 배치하고, 언덕 쪽에서 내려오는 쪽도 배치하도록 해.

수상한 인물이 접근하면 무전하고......”

 

“예. 알겠습니다.”

 

시경은 또다시 재신을 업었다.

마치 합법적으로 스킨십을 할 수 있어서 좋다는 듯이, 둘은 흠흠 거리며 서로의 품을 느꼈다.

그의 어깨가, 그의 등이 이렇게 넓었던가.....

이렇게 듬직했던가.....

새삼 재신은 자꾸만 그의 등이 좋아 자꾸 얼굴을 기댔다.

 

흠흠.......

 

시경이 목을 가다듬었다.

 

“왜...그래요?”

 

“좋아...서요.......”

 

“응? 뭐가?”

 

“아직도......실감이 잘 안 나서.......”

 

“그러게 뭐가요?”

 

“공주님께서......절 좋아해 주신다는 것이......흠흠.....”

 

재신은 시경의 목을 더 강하게 끌어안았다.

그가 긴장한다는 것이 단번에 느껴졌다.

 

“그럼.....실감 나게 해줄게요.”

 

재신은 시경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

그러고는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은시경 씨.......좋아해요.......”

 

“공주님......”

 

“진짜....진짜...많이....좋아해요. 은시경 씨.....”

 

재신의 팔이 또다시 시경의 목을 감싸왔다.

시경은 자꾸만 울컥댔다.

자신에게 이런.....행운이 올 수도 있는 건지......

공주님께서 자신을 좋아한다고 말씀해 주시고 계셨다.

마음으로 소망했지만, 정말 그런 날이 올 수 있을까......

생각하면 할수록 가슴이 저리도록 아팠던 날들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그 순간이 자신에게 선물처럼 주어졌다.

이 행운을 믿을 수가 없어서......

도저히 진짜라고 믿을 수가 없어서.....

혹시나 꿈일까....깨버릴까 두렵기만 했다.

 

그러나 지금 자신의 목을 감고 있는 그녀의 손은,

그리고 등으로 눌리는 말랑하고 뭉클한 그녀의 가슴은,

또 자신의 귀에 속삭여주는 그녀의 목소리는 말하고 있었다.

정말이라고........

정말......공주님이 자신을 좋아한다고.......

자꾸만 두근대게, 벅차오르게 했다.

 

그 날....그 바다 앞까지 시경은 재신을 업고 갔다.

두 사람이지만, 한 사람의 발자국이 모래 위에 찍혔다.

따뜻한 햇살이 두 사람을 축복하듯이 내리쬐고 있었다.

 

재신은 그의 단단한 등에 얼굴을 기댔다.

 

“은시경 씨.......”

 

“예. 공주님.”

 

언제나처럼, 그는 단단하게 대답해왔다.

내가 부르면 대답하는 사람........

너무나 든든하게 대답해주는 남자......

 

“나........수술......할까요?”

 

“예?”

 

“김 박사님이......예전부터 권하셨어요.

줄기세포 수술.....나처럼 잘 된 임상 결과가 없다고.....

밑져야 본전인데.......한 번 더 할 생각 없냐고......”

 

“뭐라고....대답하셨습니까?”

 

“필요 없다고...그랬었어요.

나....이 정도도 됐다고.......

한 자리 숫자도 안 되는 결과에 목숨 걸고 싶지 않다고.......

그랬었어요.

그런데.........”

 

“.......................”

 

“실패하더라도.........한 번......도전해 보고 싶어요.

당신한테.......은시경 씨한테......

멋진 모습.....보여주고 싶어요.

더..잘.....걷고 싶어요........”

 

시경이 천천히 그녀를 모래 사장 위로 내렸다.

그러더니 재신을 자신의 품 안으로 안았다.

 

“지금도......제게는 넘치도록 멋지십니다.

제가 따라가기 벅찰 정도로......

그래서 두려워질 정도로......

너무나 아름답고.....멋지십니다.”

 

재신은 두 팔로 그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따뜻하고 뿌듯했다.

자신의 팔 안 가득 품어지는 그가......좋았다.

 

“그러나.......도전하세요. 공주님.......”

 

“응? 정말?”

 

“예.......공주님의 연설처럼......그렇게 청춘을 누리세요. 공주님.......

어떤 상황이 되든, 공주님은.....언제나 빛나십니다.

그 누구도 당신의 빛보다 더 반짝일 수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당신은 언제나.....어제보다 오늘....그리고 오늘보다 내일.....

더 한 발 성장하시는 분이십니다.”

 

어쩌지....나.......

재신은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이 남자가 좋아서....너무 좋아서.......

 

“대신....하나만 기억해 주세요.”

 

“응?”

 

“어떤 순간에도......전....늘....당신 곁에 있습니다. 공주님........

그러니 그것만 잊지 말아 주세요.”

 

재신은 그의 품 안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하고 싶었지만, 자꾸 울컥거려서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푸른 하늘과 파랗다 못해 쩡하고 소리가 날 것 같은 파란 바다와 푸른 빛을 한 바람과

온 세상이 푸르게 물들 것만 같은 그곳에서......

재신은......그의 심장을 품었다.

 

그는.......나의 유일한 남자였다.......

그리고 나는.....그의.......유일한 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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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정신으로 썼는지 모르겠어요.

쓰고 싶어 죽을 것 같아서 썼던 순간들도 있었고,

도피하고자 쓴 순간도 있었고,

오늘 어머니 수술을 받으시는 동안 3시간을 기다리며 쓰기도 했고,

계속 정신이 없어서....그냥 마무리해서 올려야겠다 싶어.....

직장에서 마무리하고 있기도 합니다.

 

조금 정신차리고 나면, 조금 손 봐야 할 듯합니다.

그래도.....이 날 것 그대로 올립니다.

그대로.....이 날 것 그대로가....그들이 아닐까 싶어서......

아름답게 치장하는 것보다.....

날 것처럼 펄떡대는 그대로 올려봅니다.

 

이렇게 몰아쳤으니....

이젠....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정신 차리고...다시...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사실...원래 32회 컨셉이 성스러움과 순결, 숭고였다면,

33회는 그냥.....원초적인 감각과 야*함이었습니다.

그런데.....이런 때에 이렇게 올려도 되는지......죄송스럽기도 합니다.

아 그런데..이번 전체 글은 큰일입니다.

지울 수도, 안 지울 수도 없는 이 상황...

스토리상 지울 수도 없고...이를 어쩔....싶습니다. ㅠㅠㅠㅠㅠ

 

오늘 33회 메인 테마 곡은 김동률의 감사입니다.

당기못 시놉부터 정해 놓았던 곡인데 이제야 쓸 수 있게 되었네요.

 

정신 없는 글, 재미 없는 글, 지루한 글......

그래도...지금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