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신상플) 당신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35 – 보이지 않던 게 보이고, 들리지 않던 게 들려
<silver님께서 주신 당기못 대문짤~~ 감솨감솨합니다.^^>
<디씨 그러하다 횽이 주신 당기못 대문짤~~저는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__)
* 위의 배경음악을 꼭 틀고 읽어주세요.
12월의 기적 - 엑*소
보이지 않는 널 찾으려고 애쓰다
들리지 않는 널 들으려 애쓰다
보이지 않던 게 보이고
들리지 않던 게 들려
너 나를 떠난 뒤로 내겐 없던 힘이 생겼어
늘 나밖에 몰랐었던 이기적인 내가 yeah
네 맘도 몰라줬던 무심한 내가
이렇게도 달라졌다는 게 나조차 믿기지 않아
네 사랑은 이렇게 계속 날 움직여
난 생각만 하면 세상을 너로 채울 수 있어 음~
눈송이 하나가 네 눈물 한 방울이니까
단 한 가지 못하는 것은 널 내게로 오게 하는 일
이 초라한 능력 이젠 없었으면 좋겠어 우~
늘 나밖에 몰랐었던 이기적인 내가
네 맘도 몰라줬던 무심한 내가
이렇게도 달라졌다는 게 나조차 믿기지 않아
네 사랑은 이렇게 계속 날 움직여
시간을 멈춰 네게 돌아가
추억의 책은 너의 페이지를 열어
난 그 안에 있어 오~
너와 함께 있는 걸
아주 조그맣고 약한 사람이 너의 사랑이
이렇게 모든 걸 (내 삶을 모두) 바꾼 걸 (세상을 모두)
오~ 사랑이 고마운 줄 몰랐었던 내가 오~
끝나면 그만인 줄 알았던 내가 오~
너 원했던 그 모습 그대로 날마다 나를 고쳐 가
내 사랑은 끝없이 계속될 것 같아
시간을 멈춰 (오 이제 나)
네게 돌아가 (네게 돌아가)
추억의 책은 (오 오늘도)
너의 페이지를 열어
난 그 안에 있어 오~
그 겨울에 와있는걸
보이지 않는 널 찾으려고 애쓰다
들리지 않는 널 들으려 애쓰다
1
숨을 헐떡이는 그녀에게 시경은 입을 맞추었다.
빨갛게 열이 오른 그녀의 얼굴은 시경을 자꾸만 들뜨게, 설레게 했다.
온 영혼을 가득 채우는 충만감으로 시경의 심장은 어느 새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어떡해....."
뭔가 곤란한 듯, 걱정되는 듯한 재신의 말에 시경은 그녀에게 닿았던 입술을 겨우 떼냈다.
"왜 그러십니까."
혹시 자신 때문에, 너무 몰아쳐서 힘드셨던 건가 싶어 걱정이 되기도 했다.
"누가...봤으면 어떡해....
완전 공터였잖아요....."
말하면서도 부끄러운 듯, 재신의 얼굴은 또다시 빨갛게 홍조가 올랐다.
미쳤다 싶기도 했다.
그러나 그 때는 어쩔 수 없었다.
그의 입술에, 그의 손길에, 자신도 미쳐버리고 말았다.
이제 정신이 들고 나니, 스며드는 한기만큼이나 걱정도 몰려오고 있었다.
그러나 의외로 시경은 담담했다.
"감기 드십니다."
그렇게 미친 듯이, 짐승처럼 몰아칠 때는 언제고 지금은 또 어느 새 은시경으로 돌아가 자신의 옷을 입혀주고 있었다.
정말 다중이가 아닌가 의심스러울 지경이었다.
"뭐야, 시경 씬, 왜 이렇게 담담한 건데?"
그 말에 시경의 가슴으로 바람이 불었다.
같은 말인데도 왜 그렇게 가깝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그저 이름만 불렀을 뿐인데, 정말 가까워진 듯한, 정말 공주님의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아, 가슴이 뭉클해졌다.
"은시경!!!"
참다 못한 재신이 소리를 지르고 나서야, 시경은 겨우 정신을 차렸다.
"걱정 안 돼요?
나 진짜 무슨 동영상 뜰까봐 걱정인데....
리얼 공주 avi. 이런 거 뜨면 어쩌냐고.....
아 나....미쳐......
나 진짜 미쳤나봐....."
걱정이 되다 못해, 그로기 상태인 재신을 보면서도 시경은 별 걱정이 없었다.
이 남자 보게......왜 이렇게 멀쩡해?
어...설마.....
"뭐야, 은시경 씨! 근위대원들 배치 시킨 거예요?
근위대원들 다 쉬게 해줬다 했잖아요."
"전, 그렇게 말한 적 없습니다.
공주님과 둘이 있고 싶다, 고만 말씀드렸습니다."
"뭐야, 그럼, 우리 주변에 배치했다는 거예요?"
"예전 전하께서 제게 쓰셨던 방법을 썼을 뿐입니다."
"어? 그게 뭔데?"
"반경 1 킬로미터 내 접근 금지."
"응?"
"전 200미터 접근금지 시켰을 뿐입니다."
"그럼...우리 그러고 있는 동안 근위대원들이 우리 주변에 배치되어 있었다고?"
"엄밀히 말하면 그렇지만, 일반인 접근 못하도록 주변 통제를 시켰다는 것이 더 맞을 겁니다.
생각 같아서는 전하 말씀처럼 1km로 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일대 전체가 통제될 것 같아서.... "
"그래서 200미터 내 접근 금지?"
“예.”
"허......"
어이가 없다는 듯, 재신의 입에서는 바람 새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그래, 이 남자 은시경이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한 거야......
그러나 그 다음 나온 시경의 말은 그야말로 재신을 기함하게 만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정말 공주님과 둘이 있고 싶었지만....."
"그런데요?"
"제가 제 자신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네?"
"사실 이곳에서 ...그렇게까지...흠흠....갈 생각은 없었는데....."
그 말을 하는 시경도, 그 말을 듣고 있는 재신도 얼굴이 확하고 열이 올라오고 있었다.
"적어도......키스는....하지 않을까....생각은 했었습니다.
공주님께서....너무 아름다우시니까....제가 못 참을 거라고....."
뭔가 부끄러웠다.
이 남자의 말이 자꾸만 재신을 부끄럽게 만들고 있었다.
정말 이 남자의 속은 가늠할 수가 없다.
그리고 어느 새 이 남자는 또다시 그녀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토록 깊게 서로를 탐하고도, 그의 눈은 재신만을 향하며 욕망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의 입술이 또다시 재신의 입술을 훔쳤다.
재신은 눈을 감고, 그의 목을 감싸 안았다.
마치 천국인 것처럼 따뜻하고 벅차올랐다.
2
그의 품에 안겨서 룸으로 올라와 재신은 그대로 잠이 들었다.
지칠 만도 했다.
지독하게 자신을 품어내는 사내의 욕망 앞에서 재신의 몸이 그만큼 견뎌낸 것도 용한 것이었다.
여전히 창 밖은 어둠이 깔려 있는데, 재신의 볼에 누군가 입을 맞추었다.
재신의 입술로 미소가 퍼져나갔다.
아직 잠도 덜 깼으면서도 재신은 자신을 향해 오는 남자의 품 속으로 더욱더 안겨들었다.
하아.....
깊은 한숨소리....
재신은 그 한숨소리 속에서 남자의 욕망을 읽어내고는 또다시 미소 지었다.
나 때문에 미치는 이 남자가 심장이 저릿해지도록 좋았다.
"더, 주무세요.“
시경의 손이 재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손길이 따뜻해서 재신은 자꾸만 나른해졌다.
"자기가 깨웠잖아....."
"공주님....."
재신은 눈도 뜨지 않은 채, 시경의 품에 더 깊게 안겨들었다.
공주님은 때때로 생각지도 못한 말로 시경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머뭇대던 그의 손이 또다시 재신의 입술 위에 머물렀다.
손가락 끝으로 저릿함이 흘러 심장에까지 내려앉자, 시경의 입술이 또다시 재신의 입술 안으로 깊이 들어왔다.
몇 번이나 얽혀 들고, 몇 번이나 쓰다듬고 나서야 시경은 겨우 그녀를 놓아주었다.
"가는 거예요?"
"동이 트면, 궁중실장님께서 바로 들어오실 겁니다."
"응......"
뭐가 그리도 아쉬운지, 그의 품에서 잠든 지 겨우 이틀일 뿐인데,
혼자 있기가 싫은 이 감정은 무엇인지.....
그의 따뜻한 품이, 그의 부드럽고 야한 입술이 자꾸만 그리웠다.
그가 나가고 뭔가 텅빈 침대가 공허하기만 했다.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걸까.....
잠도 오지 않았다.
그가 베고 잔 베개에 코를 묻었다.
알싸하고 시원한 그의 향이 재신의 가슴을 간질였다.
나....미쳤나봐......
사람에게 이토록 빠질 수 있다는 것을,
스물여덟의 나이에 비로소 느끼고 있었다.
3
"공주님, 일어나셨습니까?"
"네. 일어났어요."
궁중실장은 평소보다 조금 늦게 재신이 있는 스위트룸으로 올라왔다.
치장을 하는 동안도, 궁중실장의 눈은 뭔가 날카롭게 살피는 듯했다.
그 시선에 재신 역시 긴장하고 있었다.
재신의 치장이 끝나자, 궁중실장은 궁녀들을 모두 내보냈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으세요?"
"공주님께 필요하실 것 같아서......"
궁중실장은 작은 상자가 든 종이가방을 재신에게 건넸다.
"30분 후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그때까지 쉬세요. 공주님."
"아, 네."
전과는 달리 약간은 딱딱한 궁중실장의 태도에 재신도 뭔가 얼떨떨했다.
왜, 저러시지?
종이백 안에 상자를 여는 순간, 재신은 몇 초간 정지했다.
그 속에는 각종 피임약이 들어 있었다.
심지어 사용방법까지 하나하나 포스트잇으로 정성스럽게 붙어 있었다.
그리고 하나....
사후 피임약.
재신의 얼굴이 확하고 붉어졌다.
재신은 자신의 백에 약을 넣었다.
어쩌면 궁중실장님은 나이 많은 언니이자, 또 한 분의 엄마인지도 몰랐다.
재신보다도 더 재신에 대해 알고 있었다.
사실 모르실 수가 없었다.
근위대원들이나 궁인들은 모른다고 해도, 재신의 일거수 일투족을 함께 하는 궁중실장이 재신의 상황을 모를 수가 없었다.
시경도 궁중실장님께는 바로 연락하고 있었다.
자신이 함께 있겠다고, 자신이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분명 말하는 것을 들었다.
결국 그 말은......같이 지내겠다는 말이라는 것을 궁중실장님이라면 아셨을 것이다.
어쩌면, 예전, 그 오래된 날에 대해서도 궁중실장님은 아실지도 몰랐다.
재신은 전용기 안에서도 왠지 부끄러워서 궁중실장님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고맙기도 했지만, 역시 그 뻘줌함이란 고개를 들기 어렵게 했다.
시경이 자신을 지켜보는 걸 알고 있었지만, 재신의 얼굴은 그저 붉게 달아오르기만 할 뿐, 한 마디도 제대로 건넬 수가 없었다.
그의 시선을 느끼면서도, 그가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재신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4
"은시경! 지금 당장 집무실로 와!"
도착하자마자 재하는 바로 시경부터 불렀다.
올 것이 온 듯했다.
재신이 대비에게 불려가자마자 재하는 기다렸다는 듯이 시경을 호출했다.
시경이 집무실에 들어서자마자 그를 반긴 것은 재하의 주먹이었다.
얼굴이 돌아가도록, 볼이 얼얼하도록, 정신이 확 돌아오도록 재하의 주먹은 매웠다.
짭짜름한 맛에 주먹으로 입술을 훔치자, 어느 새 입술이 터져 피가 새어나왔다.
“이건, 감히 날 떠나겠다고 한 거.”
“예? 윽!!”
그 순간 그의 주먹이 그대로 시경의 명치를 때렸다.
숨이 그대로 멎는 것 같았다.
쿨럭 쿨럭거리며, 겨우 기침을 뱉어내고서야 숨이 쉬어졌다.
“이건, 감히, 내 동생을 건드린 죄다!”
재하는 손이 아픈지 손목을 돌리며, 버럭 댔다.
시경은 좀 진정이 되자, 또다시 재하 앞에 꼿꼿이 서 있었다.
“야, 너 이제 어쩔 거야?
어쭈~ 아예, 휴대폰을 꺼.
야!! 은시경! 너 진짜 내 손에 죽고 싶냐? 어?”
재하가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대고 있어도, 시경은 정면만을 바라보며 부동자세를 취할 뿐, 눈빛 하나 바뀌지 않았다.
결국 제 풀에 꺾인 재하가 힘에 부쳐 집무실 의자에 쓰러지듯 앉고 말았다.
그래, 저 무식한 군바리를 상대로, 내가 뭐 하는 짓이냐...어휴.....
혼잣말처럼 한숨을 내뱉듯 던진 말에, 그제야 시경이 반응했다.
“무식하지 않습니다. 전하.”
여튼, 새끼, 귀도 밝아.
“그래, 안다고 알아. 니 똥 굵다, 됐냐?!!!
여튼 입은 살아서!!
넌 더 쳐맞아야 돼.
뭐? 군으로 돌아가?
야, 이 새끼야, 내가 너, 반 병신 만들려다가 참은 거다. 재신이 불쌍해서......”
재하가 뭐라고 퍼부었지만, 여전히 시경은 또다시 묵묵무답이었다.
결국 답답한 재하가 시경을 쪼을 수밖에 없었다.
“야!!!! 너, 나한테 뭐, 할 말 없냐?
니가 나한테 뭐라도 말해야 되는 거 아니야?
너, 설마, 아무 일도 없었다, 뭐 이딴 말하는 건 아니지?
너, 만약 그러면, 나한테 그냥 죽는다!!!
임마, 넌 남자도 아닌 거야.”
“아까는 전하께서 제가 감히 공주님을 건드렸다며 때리시지 않으셨습니까?”
“야, 그건 당연히 니가 맞을 짓을 한 거지.”
“그러면 아무 일도 없었다면 왜.......”
“야 이 새끼야!!! 그건, 니가 고*자라는 거지.
야, 어떤 사내 새끼가, 몇 년 간 죽고 못 산 여자가 곁에 있는데,
그것도 지 좋다고 그러는데 가만히 있겠냐? 그건, 사내 새끼가 아닌 거지.
그런 고*자 새*끼한테 난, 내 동생 못 준다. 알겠냐?”
“............”
시경이 또다시 입을 다물었다.
시경이 입을 다물자, 재하는 슬슬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설마, 저 눈치 없는 새끼가, 정말 고*자 흉내 낸 거 아니야?
지켜주느니, 뭐, 그러느니 하면서 재신이 속 뒤집어 놓은 거 아니야?
재하의 눈이 점점 가늘어지며, 시경을 쏘아보기 시작했다.
“저, 남잡니다. 전하.”
“뭐? 그래, 남자지. 당연......뭐?”
놀라서 바라본 재하의 눈에는 분명 자신의 충신이 꼿꼿이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흐트리짐 없이 여전히 부동 자세로 정면을 바라보며 서 있었지만, 그의 볼과 귀가 서서히 붉어지고 있는 것은 놓치려야 놓칠 수가 없었다.
이젠 목까지 빨갛게 물들어 갔다.
이 새끼가!!!!
이건 도대체 무슨 심보인지, 재하는 자신도 자신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남자라고 해도 열이 받고, 고*자라고 해도 열이 받고.....
어쨌든 이 놈 자체가 열을 받게 했다.
아, 열 받아!!!!
재하는 책상에 놓인 냉수 한 잔을 그대로 들이켰다.
“야, 은시경!!!”
“예. 전하.”
“너, 책임져라.”
“예?”
“모른 척 하지 말고, 새끼야.
재신이 책임지라고!!!
제대로 책임 안 지면, 나한테 죽.는.다.”
“.....그 책임은 제가 지는 것이 아닙니다.”
뭐! 이 새끼가!! 화장실 들어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르다는 거야!!!!
이게 죽고 싶어서 환장을 했나!!!
“뭐라고, 새끼야, 너 죽고 싶어? 너 내 손에 장사 지내 볼래? 어?
이게 이제와서 뭐래는 거야? 너 죽....”
“더!!!”
“뭐?”
“큰 사람이, 책임을 지는 겁니다.”
이게 지금 뭐라는 거야....
황당해 하고 있는 재하에게 시경은 여전히 답답하리 만큼 꼿꼿한 태도로 말을 이었다.
“공주님께서 저를 책임지셔야 합니다.
전...절대 변하지 않습니다.
공주님은......제 마음의 주인입니다.
그러니....주인이 저를 책임지셔야 합니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주인 타령인가.
재하는 황당하다 못해 기가 막혔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이상하게 시경의 논리에 자신이 빠져들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딱히 잘못된 부분을 찾기 어렵다는 것.
그래, 너도 참 힘들겠다, 뭐 그런 생각이 든다는 것.
그러면서 왠지 재하 스스로도 그 말에 감정 이입이 되고 있다는 것.
재하 역시, 항아가 자신을 책임져야 한다고, 무진장 강하게 압박하고 싶으니 말이다.
그야말로 을이라는 놈이 더 당당한 이 이상한 논리에, 재하는 자기 스스로를 대입시키며 이미 설득 당하고 있었다.
“임마, 어쨌든, 너, 방금 말한 거 지켜라.”
“예? 어떤 걸 말씀하시는.....?”
“또, 순진한 척 하는 거냐?
안 변한다며?
그러니까 평생 변하지 말고, 재신이 곁에 있으라고.”
“제발.....공주님께서 그렇게 허락해주시길.....바랄 뿐입니다, 전.”
“어휴...그래,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은시경, 저 일편단심 군인 정신.
어쩌면 재신이 입장에선 스토커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 임마.”
“예?”
그저 징하다는 생각에서 뱉은 말에, 자신의 충신, 아니지, 재신이에게 목 매고 있는 녀석의 눈이 흔들리고 있었다.
호오....이거 재밌게 되어 가는데?
뭐, 이렇게 나오면, 놀리는 게 맛이지. 큭큭...
“뭘, 새삼스레 놀라고 그래?
야, 은시경, 재신이, 왕년에 잘 나간 거 알지?”
재하의 말에 시경의 얼굴에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미간은 이미 좁혀질 대로 좁혀진 채, 어금니까지 꽉 깨물고 서 있었다.
여튼, 단순한 자식.
“재신이, 너 만나기 전에 말이야.
무진장, 잘 나가던 놈이거든?
나만큼이나 말이야.
내가 알기로, 저 놈이 데이트 한 놈만 한 트럭으로도 모자라, 임마!”
시경의 검은 눈이 재하가 알아채도록 심하게 흔들렸다.
그러나 어느 새 짙게 가라앉아 마음을 고르고 있었다.
“......과거는....과거일 뿐입니다.”
호오...그리 나오시겠다?
뭐, 좋아.....
“그래? 뭐, 흠....그건 그래.
항아도 내 과거를 이해해줬으니까.
그런데 말이야......”
재하의 눈빛이 순간 반짝였다.
시경은 그 눈빛을 알고 있다.
저런 눈빛을 한 자신의 주군은 늘 위험했다.
시경은 자신도 모르게 목이 타는 듯, 침을 삼켰다.
“그건 아냐? 은시경?
재신이 말이야, 걔가 아닌 척 해도, 나랑 닮은 구석이 있거든?”
그건 말씀하지 않으셔도 시경도 알고 있었다.
공주님과 자신의 왕은 너무나 닮아 있었다.
성격도 말투도 생각도 마치 이란성 쌍둥이 같다고 느낄 때도 많았다.
그 말씀인즉슨, 공주님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분 역시 전하라는 것이다.
“재신이가, 한 트럭을 사귀어도 말이야.
한 놈이랑 그렇게 오래 못 갔다는 거지.
그 놈, 한 세 번 만나면 끝이야.
좀 오래 가도, 한두 달은 갔었나?
그 녀석이 이 놈 저 놈 만나기도 하고 말이야.
뭐,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기는 했지.
나름 좀 만나줘야 할 사정도 있었으니까.”
화가 난 듯, 굳어 있는 시경을 바라보며, 재하는 회심을 미소를 지었다.
“아, 예외가 있긴 있었다.”
“...............”
“이.상.우.....꽤 오래 갔었지, 아마?”
시경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이마에도 주먹에도 핏줄이 파랗게 일어서고 있었다.
“그.래.서. 무슨 말씀을 하시고 싶으신 겁니까!!!!”
“야, 너, 그러다 나, 한 대 치겠다?
누가 뭐래? 그렇다는 거지.”
시경의 턱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보며, 재하는 능글맞게 한 마디 더 던졌다.
“나는 말이야. 들이대는 여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는 거지.”
“예?”
“재신이도 같지 않을까?
너무 들이대면, 질려.
게다가 나도, 재신이도, 우리가 좀, 사람에 대해서 질려하는 편이거든.
어려서부터 너무 들이대는 인간들을 많이 봐와서 말이야.”
시경의 검은 눈이 짙게 깔린 채, 흔들리고 있었다.
재하는 그런 시경에게 쇄기를 박았다.
“한 번이 어렵지, 그 다음은 쉽거든?
그리고 재신이, 프리한 놈이야.
처음 어쩌고 하면서 묶어둘 수 있는 놈이 아니라고.”
“무...무슨...말씀을......”
“말했잖아. 너.무. 니 마음을 그대로 다 들이대지 마.
사람은 말이야.
너무 다가오면, 도망가고 싶거든.
지금이 조선시대도 아니고, 재신이가 옛날 여자도 아니고 말이야.
재신이에게 니가 처음이라면, 그게 니가 특별해서가 아닐 수도 있다는 거야.
단지 지금까지는 소문내지 않을 만큼 입 무거운 놈을 못 만났을 수도 있다는 거지.
공주의 스캔들은 그야말로 여파가 커서 말이야.”
“.................”
시경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멍하니 서 있었다.
재하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었지만, 가슴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분명 공주님과 전하는 닮았다는 것이었다.
너무나 비슷해서 가끔은 헷갈릴 정도로, 성격도, 행동도, 말투도 닮아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공주님을 가장 잘 아시는 전하의 말이었다.
그것도 자신의 상황에 빗대어 말씀하시고 계셨다.
“은시경! 마지막으로 충고 하나 해 줄게.
재신이에게 너무 다가가지 마라.
후회하게 될 거다.
녀석은 금방 질.려.버.릴.거.야.
알겠냐?
알겠으면, 나가 봐.”
거의 쫓겨나듯이, 시경은 재하의 집무실에 황급히 나올 수밖에 없었다.
전하께서 자신을 놀리는 것일 수도 있다.
분명 그 눈빛은 그랬다.
그러나 자신의 심장은 자꾸만 불안하게 뛰고 있었다.
녀석은 금방 질.려.버.릴.거.야.
그 말이 마치 저주처럼, 심장을 강타했다.
자신을 가장 두렵게 했던 말이었다.
시경 자신도 알고 있었다.
자신은 정말 재미없는, 그야말로 고리타분한 인간형이다.
공주님께서 자신을 좋아해주시는 것도 신기할 만큼,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을 만큼,
아니 도리어 놀리시는 거라 의심했을 만큼,
자신은 재미가 없다.
그런 자신을 공주님께서 계속 좋아해주실까.
돌아와서는 오로지 자신의 마음이 너무 커서, 그녀를 향한 자신의 마음 때문에 다른 것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예전 그 두려웠던 마음도 잊어버렸다.
그저 그녀를 향한 자신의 마음만 보였을 뿐이었다.
그런데 지금 전하는 바로 예전, 자신이 가장 두려워했던 부분을 적나라하게 짚어내셨다.
두려움이 가슴 저 안에서 또다시 폭풍처럼 밀려올라오고 있었다.
허, 책임을 져?
재하는 그래도 뭔가 마음에 안 드는지, 재신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야, 이재신, 넌 왔으면, 오빠한테 와야지, 뭐하는 거야?”
“헐~. 이건 또 뭔 소리래?
아까 들어오는 거 봤잖아. 대충 본궁 정문에서 봤으면 됐지, 뭔 소리야?
나, 엄마 만나고, 바로 방으로 왔거든?
좀 쉬자. 나도. 피곤해 죽겠는데.”
“왜애? 왜 피곤할까? 어? 며칠 푹 쉬다 왔을 텐데, 왜 피곤하지?”
재하의 목소리가 뭔가 음흉했다.
마치 무언가를 다 알고 있다는 듯, 재신의 속을 깔짝깔짝 긁어대고 있었다.
“시끄러! 뭐래는 거야?
나 피곤해. 끊어!!!!”
“야, 야!!! 이재신!!!”
“왜? 빨리 말해. 1분 준다.”
이건 도대체 누가 오빠고 동생인지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래도 재하는 1분 안에 빨리 말해야겠다는 일념에 다다다다 말을 쏟아냈다.
“야, 은시경이, 널더러 책임지랜다.”
“어? 그게 무슨 말이야?”
은시경이란 말에 재신의 목소리도 확연히 달라졌다.
허, 이것들 봐라.
재하의 저 속에서는 또다시 심술이 몽글몽글 솟아올라왔다.
“야, 내가 오빠로서 말이야. 너 책임지라 그랬거든.
근데, 그 놈이 지가 책임지지 않겠단다.”
“어?”
“지가 책임지는 게 아니라, 널더러 자기를 책임지랜다.
야, 그게 남자냐? 남자라면...자기 여자, 자기가 책임지......”
“큭큭큭큭큭......”
재하가 뭐라고 말을 맺기도 전에, 수화기 너머로 숨이 넘어갈 듯 웃어재끼는 재신의 음성이 울려왔다.
이것들은 뭐야, 도대체?
“아놔~~. 진짜 이 남자 어쩌지? 큭큭큭큭.......
와...진짜 은시경이다. 은시경. 놀라운 생명체야. 은시경은...큭큭큭큭.....”
“야, 이재신! 넌 배알도 없냐?
남자가, 널 책임지지 않겠다잖아?
그런데 웃음이 나와, 나오길?”
“이건, 또 무슨 소리래?
야, 이재하 시끄럽고, 날더러 책임지라면, 내가 지면 되지, 뭐가 문제야?
별 쓸데없는 걸로 고자질하고 그러냐? 남자가?
이재하, 너 여자지? 아니지, 여자들도 안 그러거든?
오빠 넌 여튼...그래서 안 되는 거야.
이재하. 밴댕이 소갈딱지처럼 그러지 마라."
"야, 이재신, 너 오빠한테 말버릇이 그게...."
"그리고, 이.재.하.
내 남자, 건드리면, 죽.는.다.”
헐!!
재신은 혼자 다시 큭큭대더니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뭐, 이런 놈이 다 있는 건지......
재하는 방금 자신의 충신에게 했던 그 말 그대로, 재신에게서 듣고 있었다.
자신이 말한 것처럼, 재하와 재신은 똑같이 닮아 있었다.
말하는 것도, 사람을 대하는 것도, 겁주는 것도......
재하는 자신이 은시경에게 했던 말들이 그대로 재신에게 들어가는 게 아닐까 순간 두려움이 엄습했다.
설마....항아한테 얘기하려고.....
슬슬 불안함이 밀려오고 있었다.
5
겨우 하루였다.
도착하고 딱 만 하루가 지났을 뿐이었다. 아니 만 하루 반일 것이다.
그러나 재신은 하루종일 무언가 찝찝한 마음에 기분이 상하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병원에서 물리치료를 하고, 주치의인 김 박사님과 향후 일정을 상담했다.
수술 일정을 조율할 때까지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어서 시경에게 알려야지 하는 마음에 시경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그의 전화기는 꺼져 있었다.
바쁜 일이 있나 싶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근위대 간부 회의와 재하 일까지 겹쳤단다.
뭐, 그럴 수 있다 싶었다.
그러나 문제는 점점 열이 받기 시작한 재신의 마음 상태였다.
하루 종일 카톡 하나 없었다.
좋다, 다 양보하고, 문자 하나라도 남겨야 할 것 아니냐고.
벌써 근위대 종례 시간인 6시도 넘었는데, 도대체 왜 아직까지 연락이 없는 건지......
저녁을 먹을 때 보니, 재하도 바쁜지 가족 식사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재하가 시경을 괴롭히는 건 아닌가 싶기도 했다.
오빠라면 충분히 그럴 위인이니.....
그러나 중요한 건, 문자는 할 수 있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항아의 방에서 조카를 안아주면서도 자꾸만 마음이 가라앉았다.
“아가씨, 무슨 일, 있음네까?
안색이 안 좋은데, 왜 그라심네까?”
“어? 어...아니에요. 그냥요......”
“흐음......무슨 일 있구만요.
그것도 남정네 일, 아닙네까?”
“......있죠. 오빠랑 언니, 잘 되고 나서..... 오빠가 계속 잘 해 줬어요?”
항아의 눈빛이 뭔가를 알겠다는 듯이 반짝였다.
그러나 항아는 모르는 척, 재하의 얘기를 해주었다.
“잡은 물고기한테 밥 주는 거 봤냐.”
“네? 언니?”
“그 개철철이가, 기카니 말합디다.”
“네에?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주먹맛을 징하게 보여줬디요.”
그 뒷얘기는 안 들어도 될 듯했다. 그 이후는 지금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니......
잠들 때까지도 항아의 말이 자꾸만 재신의 머릿속을 괴롭혔다.
엄밀히 말하자면, 재하의 말이, 아니, 남자라는 것들의 속성에 대해서......
시경 씨도 그런 걸까......
이상하게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다음 날, 재신의 일정은 여전히 같았다.
병원을 다녀오니, 오후에 재하가 재신을 호출했다.
앞으로 항아를 대신해서 다녀야 하는 스케줄을 아예 목록화해서 브리핑해대고 있었다.
머리가 찌끈거렸다.
“아, 그리고 재신아......”
“왜? 또 뭐?”
머리에 과부하가 걸릴 지경인데, 재하가 무언가 중요한 얘기가 있는 듯 머뭇대고 있었다.
“사실은 내가 새로 생각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있는데 말이야.”
“그런데?”
재하답지 않게 무언가 주저하고 있었다.
“그걸 니가 해주면 좋을 듯해서.....”
“그게 뭔데?”
재하는 재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지금은 안 되겠다.”
“어? 무슨 소리야? 말 꺼내놓다 말고?”
“정신 좀 차리고 하든가.”
“무슨 정신?”
“이재신! 너 지금 정신 나갔거든?
그러니까 집 나간, 정신줄 좀 챙겨 와라.”
“무슨 소리야?”
“나 참, 두 번 연애 하다가는 난리 나겠다. 대한민국이 뒤집히든지.....
여튼 유세도 유세도.....”
“무슨 말이냐니까?”
“둘 다. 생 난리라고.
정신 좀 챙기시라고요.
대한민국 공주님과 대한민국 근위대장. 둘 다.”
“어....어?”
그 말에 당황한 듯 재신의 목소리가 떨렸다.
“니들, 그러다 다 들킨다.
이건 뭐, 동네방네 소문내는 것도 아니고.
정신 안 차릴래? 이재신?”
“무슨 소리야?
말도 안 하고, 만난 적도 없고, 문자조차 안 하는데......”
재신의 입이 한 자나 툭하니 나와 있었다.
허....이 녀석이 이럴 수도 있나.....
재하는 지금 한 평생 같이 살아온 이재신의 이런 모습을 처음으로 보고 있었다.
“갈게....오빠 말대로 나중에 얘기해.”
재신은 고개를 흔들며 재하의 집무실을 나갔다.
짜식.....진짜 연애하네.....
재하의 입에서 나온 뭔가 서운하면서도 대견해 하는 그 말을 재신은 듣지 못했다.
6
어느 틈에 해가 지려 했다.
가을이다 보니, 해가 짧아지고 있었다.
하늘이 쩡 소리를 낼 듯이 파랬다.
재신은 휠체어를 멈추고 복도 너머 큰 창으로 푸른빛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내가 연락해 볼까.....
자존심 때문일 수도 있었다.
먼저 연락하지 않겠다는, 여자로서의 자존심. 그런 것도 분명 있다.
그러나 또 다른 자존심도 있었다.
나잇살이나 먹어서, 어린애들처럼 애인에게 징징대고 싶지는 않았다.
분명 바쁜 걸 뻔히 알면서, 오빠가 얼마나 일을 많이 벌이고 있는지 알면서,
말이 근위대장이지, 비어 있는 비서실 일까지 같이 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
왜 연락하지 않느냐며, 스무 살 애들처럼 삐진 여친 코스프레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년이면 스물아홉.
곧 서른이다, 이재신.......
처음으로 느끼는 이 감정들......
낯설다.....
한 남자 때문에 달라지고 있었다.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될 줄은 몰랐는데......
함께여서 두근거렸던 것만큼, 그의 품이 따뜻했던 것만큼, 그의 미소가 심장을 울려댔던 것만큼,
이렇게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딜 수가 없었다.
아주 조금은, 어린 시절 연애를 하던 자신의 친구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절대로 이해할 수 없으리라 여겼던, 그 때의 그 친구들의 태도를.....
작은 일에 삐지고, 휴대폰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남친이 바쁘다며 속상해 하고,
마음이 식은 게 아닐까 두려워하고, 그러다 만나자고 하면 언제 속상해 했냐며 뛰어나가던...
그 아이들을.....이해하게 되었다.
그토록 혀를 찼던 자신이 이렇게 바뀌게 될 줄은 진정 몰랐다.
같은 공간에 있는데,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 그를 볼 수가 없다.
파란 하늘을 보며, 뒤에 서 있는 궁인들은 보지 못하게 아주 작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은...시..경......
가슴 속으로 파문이 일었다.
그의 이름만 불렀을 뿐인데.....가슴의 파장은 어마어마했다.
그 파장의 끝은 하나였다.
보고 싶다.
아, 이재신......없어보이게 왜 이러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다시 휠체어를 움직이는 순간, 저 앞 복도 끝에서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재신의 심장이 온 몸을 울려댔다.
그다.....그 사람이다.....
그도 놀란 듯, 그곳에 멈춰 서 있었다.
멈칫 하던 그가 천천히 그녀를 향해 걸어왔다.
어쩌지...나......
시경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고 있었다.
그만큼 재신의 심장도 터질 듯이 뛰어댔다.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검은 눈빛을 똑바로 쳐다보기도 어려웠다.
창으로 비치는 석양에 살짝 미간을 찌푸리는 모습도,
그녀를 바라보다 얼굴을 붉히는 모습도,
그러면서도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뜨거운 시선도,
조금은 딱딱한 듯, 반듯하게 걸어오는 그의 걸음걸이까지......
하나하나 가슴 저 안으로 내려앉았다.
두근거린다.
심장이 터질 듯이 뛰어댄다.
그러면서도 그를 향한 눈을 거둘 수가 없다.
이 남자가 이렇게 멋있었던가......
살짝 찡그리는 모습까지 멋있어 보였다.
뒤에 있는 궁인들, 반하면 어쩌지......
재신은 별 말도 안 되는 걱정까지 해대는 자신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공주님.......”
조금은 낮은 듯, 조금은 가라앉은 듯, 그가 재신을 부르는데, 재신은 그 목소리조차 두근댔다.
이 남자는......목소리도 멋있다....
아...나...정말...미쳤나봐.....
얼굴에 열이 확 올라왔다.
뭐라고 말해야 하는데....
안 그러면 이상하게 보이는데.....
아, 미치겠다....
어떤 말도 내뱉을 수가 없었다.
목이 잠긴 듯, 긴장한 듯,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재신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살짝 그의 눈을 비끼자, 그의 눈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그러나 재신은 당황하여 눈을 피한 탓에 그의 눈을 볼 수 없었다.
“바쁘시네요. 근위대장님.”
“예?”
갑자기 던진 재신의 말에 시경이 당황한 듯 되물었지만, 재신의 휠체어는 이미 움직였다.
“고생하세요.”
재신의 휠체어가 그의 곁을 지나가려 하자, 시경은 고개를 숙였다.
재신의 뒤에서 그녀의 휠체어를 밀어주며 수행하던 궁인들도 시경을 향해 발그레해진 뺨을 감추며 고개를 마주 숙였다.
그때였다.
그의 손이 재신의 어깨를 살짝 잡았다가 놓았다.
잠깐 스친 게 아니었다.
순간이었지만,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그녀의 어깨를 감싸쥐던 그의 온기가 그대로 느껴졌다.
그의 손이 떨어지고 나서, 그 감각은 더 크게 와닿았다.
재신의 볼이 확 하고 붉어졌다.
단지 어깨를 잡았던 것뿐인데, 왜 이리 가슴이 떨리는 건지, 자신도 알 수가 없었다.
자꾸만 당황하게 되는 자신이 부끄러워서 재신은 조금 빨리 가자고 말해야겠다 싶은 그 순간, 뒤에서 시경이 그녀를 불렀다.
“공주님!!!”
재신의 휠체어가 멈추었다.
쿵..쿵..쿵..쿵....
재신의 심장이 두근거리며 뛰어대고 있었다.
“전하께서.....공주님께 서류를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
“네?”
“제 방에 뒀는데, 가셔서 직접 보시고 확인하실 것도 있고 해서.......
제가 가져다 드리는 것보다 전체 근위대 일람표와 함께 보시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오신 김에 같이 가시겠습니까?”
시경은 뭔가 업무라는 듯이 딱딱하게 누군가에게 들으라는 듯이 브리핑하고 있었다.
재신이 황당한 듯, 고개를 돌리자, 시경은 어느 새 재신의 바로 앞까지 와 있었다.
“제가 공주님 방까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두 분은 먼저 돌아가시죠.”
“예? 아...아닙니다. 근위대장님.
저희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공주님과 함께 돌아가겠습니다.”
궁인 입장에서는 그것이 맞았다.
오늘 공주님 수행 궁인이니 마지막까지 그들의 업무였다.
게다가 근위대장은 지금 궁에서 가장 바쁜 인물이 아니었던가.
그런 분께 자신의 일까지 맡길 수는 없다는 그야말로 직업정신이 투철한 궁인들이었다.
“상의할 내용이 있어서, 시간이 걸릴 듯합니다.
늦어지면, 제가 죄송하니, 제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알고 모시고 가겠습니다.”
“아..저....근위대장님!!!”
시경은 아예 궁인들의 대답에 대해서는 여지도 주지 않은 채, 재신의 휠체어를 끌고 자신의 방으로 이미 향하고 있었다.
재신은 뭔가 황당했다.
이 무슨 상황인지......
가는 동안 그는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마치 화난 사람처럼 그는 아무 말도 없었다.
설마 방에서 따지려는 걸까.....
그러고보니 오빠가 맡긴 서류라 했다.
이것도 참 황당한 거였다.
방금 오빠를 만나고 왔는데, 이 무슨 소린지......
이런 저런 복잡한 생각들이 밀려오는 와중에도 재신의 심장은 여전히 튀어나올 듯 뛰어대고 있었다.
재신은 자신의 심장을 오른손으로 꼭 눌렀다.
이윽고 그의 방으로 들어서자, 재신은 바로 시경을 향해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오빠가 준 서류라니.....?
방금 오빠 만나고 왔는데...아무 말 없......!!”
이상하다 싶어서 시경에게 묻던 재신의 말이 놀란 듯 멈춘 것은 그때였다.
시경은 재신의 말에는 대답도 없이 방문을 잠그고 있었다.
아.......
순간 재신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그의 눈과 마주쳤다.
검고도 검은...깊고도 깊은 그의 눈이 재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심장이 쿵....하고 저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저 눈을 안다.
재신은 자신의 심장을 오른손으로 꼭 누르고 있었다.
그가 성큼성큼 재신에게로 걸어왔다.
그 짧은 순간이, 몇 걸음도 되지 않는 순간이, 재신에게는 견디기 힘들 정도로 숨이 막힐 듯 긴장이 되었다.
시경의 무릎이 굽혀진다고 느껴진 순간,
그의 손이 자신의 뒷목을 강하게 잡아서 당겨오던 순간,
그의 팔이 자신의 허리를 감싸오는 것을 두근거리며 받아들인 순간,
그의 입술이 이미 그녀의 입술로 내려앉아 빼앗고 있었다.
겨우 만 이틀이었다.
그러나 둘에게는 어쩌면 일 분 일 초가 억겁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시경의 혀가 재신의 입 안으로 밀려들어와 얽혀들었다.
이성을 잃은 듯, 그의 입술은, 그의 혀는 거침이 없었다.
따라갈 수 없을 만큼, 거칠고 깊고 아찔했다.
재신의 입에서 헐떡이는 숨소리가 뱉어질 때까지, 온 몸을 파고드는 감각을 견디지 못해 신음을 터뜨릴 때까지,
그의 입술은 재신의 입술을 가지고 또 가졌다.
시...시경..씨.......
더 이상 숨을 참을 수 없어서 재신이 그를 억지로 밀어내고서야 그의 입술은 그녀의 입술에서 겨우 떨어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의 팔은 그녀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그의 입술이 그녀의 목에 깊이 닿았다.
자신의 욕망을 다스리려는 그의 숨소리가 목을 간지럽혔다.
그의 숨결이 스칠 때마다 재신은 발끝까지 저릿했다.
“시경 씨......”
아무리 그래도 그의 집무실이었다.
이러면 안 된다고, 재신은 시경을 밀어내려 하지만, 그는 바위처럼 끄덕도 하지 않았다.
하아.......
그녀의 목에 입술을 묻고 숨을 고르던 그가 깊은 한숨을 쏟아내었다.
그 한숨이 많은 것들을 말해주고 있었다.
재신의 가슴 안으로 저릿한 무엇인가가 지나갔다.
“저....어떡하죠....공주님......”
신음 같은, 고통스러운 그의 말이 흘러나오던 순간, 그가 재신을 놓아주었다.
아니 놓아주는 줄 알았다.
그의 검은 눈과 마주친 순간, 재신은 숨을 멈추었다.
그녀는 분명 보았다.
그의 눈 속에 이글거리던 남자의 욕망을.....
온전히 그녀를 향해 있던 그 순수하고도 절실한 남자의 본능을......
시경이 그대로 재신을 휠체어에서 안아 올렸다.
“시...경....씨!!!”
혹여나 밖에서 누가 들을까 숨죽여 그를 말리려는 그녀를 시경은 단번에 무시하며 그대로 안아들어
집무실 안, 길게 놓여 있는 소파 위에 눕혔다.
버둥거리며 일어나려는 그녀를 누르며 시경은 그대로 그녀의 위로 올라왔다.
놀란 그녀가 그의 이름을 채 부르기도 전에 그의 입술은 그녀의 입술을 훔쳤다.
서로를 향한 욕망으로 헐떡이는 숨소리만이 방안을 가득 채웠다.
그의 입술이, 그의 손이 그녀를 침범해 들어오는 동안, 그녀는 그저 달뜬 신음 소리만 낼 뿐이었다.
<여전히...가슴...두근거리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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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00자 정도 되네요.
요즘 연재 때문에 A4 몇 장이 아니라 전체 몇 자 정도로 계산하게 되더라고요.
웹소설 연재는 북팔의 경우 3000자 내외로 올리게 되어 있는데,
당기못의 한 회 호흡이 그쪽의 한 회 분량에 5배도 넘는 듯합니다.
물론 3천자 내외로 올리라 하나, 늘 6천자를 넘는다는 것이 함정이라지요.
여튼 참 징하게도 길게 쓰는 듯합니다.
별 거 없는 연애담입니다.
별 거 아닌데, 자기들끼리는 별 문제도 아닌데 저렇게 별 거인 듯 속상해하고 두근대고....
뭐...누구나 하는 그런 연애.....
잡은 물고기 밥 안 준다는 얘기는,
남편이 결혼하고 나서 제게 했던 이야기.
그리고 항아가 했던 말은....결국 제가 실행에 옮긴.....쩝....
오해는 마시길.....
실제 물리적인 폭력이라기보다는.....
음....약한, 애교?스러운 주먹질과 머리카락을 가볍게?(응칠에서 성시원이 윤윤제의 머리를 쥐어뜯는 것과 비슷하다등가몽가) 쥔다든가.....
입으로 경상도식 거친 애정?표현 같은 겁박?을 좀 했다든가.....
뭐...그런.....
에효....제가 지금 일이 많아서 끙끙대다,
오늘은 엄마 검사 때문에 병원에 5시간 따라다니고, 오후엔 몇 시간 동안 회의에,
마무리 하고 지쳐서 이러고 있습니다.
이번 회가 왜 이러냐고 하시면,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재하에 빙의된 것인가....그럴지도 모르겠어요.....
마감 때문에 머리 터질 지경인데, 내일 또 행사 있어서 거기 붙잡혀 가야 해서리....
게다가 애는 기말고사라고 하지....
이것참....이래저래 머리 터지겠습니다.
웬 넋두리가 이리 센 건지......
각설하고....
여튼.....공주님과 근위대장님은 연애중입니다.
스물여덟과 서른둘에.....
2014년 가을....연애를 하고 있는 중.
마치 스무 살, 그 때의 풋풋한 연애를....지금 하고 있는 중.....
석 달만 있으면, 이 두 사람의 시간과 만나게 되네요.
다시 한 번....저와 함께 은신에 빠져보실래요.....
요즘 제가 다시......빠져들고 있네요.
사실....늘....도돌이표처럼 그곳에 서 있는 듯합니다.
저 사진의 장면 속에 저 역시 시간이 멈추어 있는 듯합니다.
부족하고 모자란 글, 늘 기다려주시고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모자라더라도 그저 그러려니 이해해주시길.....
오늘 밤도 평안하소서.....(__)
* 배경음악은 엑*소의 12*월*의* 기*적입니다.
이번 회 제목도 이 노래 가사에서......
딸내미가 푹 빠져 있어서 저도 같이 들었는데, 이 노래가 정말 좋더라고요.
어쩌면 가사처럼, 그 시간, 그 순간 속에 정지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더킹투하츠와 은신상플 > (은신) 당신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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