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신상플) 당신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37 - 경계를 넘어서 (전체)
<배경음악에서 “첫사랑이죠”를 반복재생하며 읽어주세요.>
첫사랑이죠 – 나윤권, 아이유
어쩜 우리 어쩜 지금 어쩜 여기 둘이 됐을까요
흐르는 시간, 별처럼 많은 사람 속에...
내 맘~ 가득~ 그대~ 소복소복 쌓여요
내 마음 속 내 눈 가득 온통 그대 소복소복 쌓여요
차가운 손끝까지 소리 없이 따뜻해 지나봐.
말하지 않아도 우리 마주 본 두 눈에 가득 차 있죠.
이젠 그대 아플 때 내가 이마 짚어줄 거예요.
겁내지 말아요, 우리 꿈처럼 설레는 첫사랑이죠.
조심스럽게 또 하루하루 늘 차곡차곡 사랑할게요.
그댈~ 떠올~ 리면~ 발그레해지는 맘
그대 얼굴 그 목소리 떠올리면 발그레해지는 맘
하얗게 얼어있던 추운 하루 녹아내리나봐.
보이지 않아도 우리 마주 쥔 두 손이 참 따뜻하죠.
그대 잠 못 드는 밤 내가 두 볼 감싸줄 거예요.
서로를 믿어요, 우리. 별처럼 반짝일 첫사랑이죠.
두근거려도 또 한발 한발 좀 더 가까이
반가운 첫눈처럼 나에게 온 그대와 첫 입맞춤을 하고파[첫 입맞춤을 하고파~]
들려요 그대 마음 세상엔 우리 둘 뿐 인가봐
말하지 않아도 우리 마주 본 두 눈에 가득 차 있죠.
이젠 그대 아플 때 내가 이마 짚어줄 거예요.
겁내지 말아요, 우리 꿈처럼 설레는 첫사랑이죠.
조심스럽게 또 하루하루 늘 차곡차곡 사랑할게요. You're my first love
1
왕실 재단 창립 후원의 밤이 6월의 어느 날 서울의 한 호텔에서 개최되었다.
처음에는 궁에서 할 뻔 했으나 여러 사정상 궁을 개방하기보다는 접근이 용이한 호텔을 섭외하는 것이 낫다는 재하의 판단 때문이었다.
물론 그 때문에 바빠지는 것은 근위대였다. 그 중에서도 가장 바쁜 건 단연 근위대장 은시경이었다.
재하는 근위대 배치를 조율하고 있는 은시경을 뭔가 의미심장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무언가 바빠 보이기는 했지만, 재하의 눈에는 분명히 보였다.
무언가 들뜬 듯한, 혹은 조금은 두려운 듯한 은시경의 상태를 재하는 분명히 볼 수 있었다.
뭐, 당연 긴장되겠지.
오늘 오랜 재활을 거친 재신이가 한국으로 돌아온다.
재신은 10월 한국에서 수술을 단행했다. 자가 줄기세포를 삽입해서 연골 재생까지 하는 수술이었다.
수술 자체는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으나, 수술 후 줄기세포가 제대로 자리를 잡으려면 다리 근육을 키우는 재활 치료를 병행해야만 했다.
연골이 자라기 시작하는 것은 수술 후 최소 3개월 이후, 그 사이에 재활 치료를 어떻게 하느냐에 수술의 성과가 달려 있다.
재신이 처음 수술을 했을 때보다 줄기세포 기술이 더 발달한 것도 사실이고, 그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재활 치료가 무엇보다 중요한 상황이었다.
“어떡할래? 한국에 있을래? 아니면 제대로 치료 받을래?”
수술한 후 1달이 되어 퇴원을 준비하고 있는 재신에게 재하는 물었다.
어떻게 할 거냐고, 여기서 끝낼 건지, 아니면 제대로 도박을 해 볼 건지.
재신은 시간을 달라고 했다.
그렇게 이틀이 지난 후, 재신은 밤을 샌 건지 충혈된 눈을 하고 대답했다.
“갈게.”
“어딜?”
아무 것도 모른다는 듯이 재하는 능글맞게 물었다.
“혹시....은시경 씨......있었던 곳이야?”
“여튼, 눈치 하나는 죽여주는데?”
“얼마나......있어야 할까?”
“최소 3개월. 물론 니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린 거지만.
연골이 제대로 자라려면, 수술 후 3개월째부터라니까, 연골 자라는 동안 집중적으로 재활을 해야겠지.
존스 홉킨스가 제격이긴 해.
줄기세포 연구도 그렇고, 재활도 그렇고.
우리 병원이랑 제휴되어 있으니, 우리 쪽 의사들도 몇 명 따라 붙을 거야.”
재신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겠냐?”
“뭐가?”
재하가 뭔가를 아는 듯 던진 질문에, 재신은 담담하게 반응한다.
“수술한다고 한 달, 나가서 다시 석 달, 견딜 수 있겠냐?
말이 석 달이지, 재활 상황에 따라 6개월이 넘을 수도 있어.”
“견디지, 뭘 못 견뎌?”
“저 놈 안 보고도 견딜 수 있다?”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던 재신이 순간 입을 다물었다.
“여기 있는 동안도 너네, 제대로 못 봤잖아.
엄마가 계속 니 옆에 붙어 있으니, 제대로 볼 수가 없지.
그나마 내가 저놈 데리고 와서 보는 거지, 아니면 너 볼 수도 없었잖아.
여튼, 그래도 그나마 이곳에 있으니 얼굴이라도 가끔 볼 수 있었지,
거기 가 버리면, 최소 석 달은 아예 못 보는 거야. 아니지 그보다 더할 수도 있지.
알지? 나 지금 무지 바빠서 미국 갈 일도 없다고.
곧 수상도 바뀔 거고, 여기 일이 산더미야.”
“알아.....괜찮아.”
의외로 재신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재하는 왠지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아 한 번 더 삐딱선을 타보기로 했다.
“어이, 이재신, 너, 너무 자신만만한 거 아니냐?
그러다 은시경, 다른 데 눈 돌아가면 어쩔래?
내가 알기론 궁인들 서열 1위라던데.
물론 유부까지 합치면, 당연 내가 1등이겠....”
“그러면 할 수 없는 거지.”
“뭐? 그게 뭔 소리야?
너, 저 놈이랑 헤어지겠다는 거야?
야, 너 벌써 지겨워졌냐? 이재신 너, 팜므파탈이냐?”
자신이 먼저 헛소리를 해놓고도 재신의 반응이 마음에 안 드는지 더 열을 냈다.
“그런 거...아니야.”
“그럼, 뭔데?”
“아 좀! 그렇게 심각하게 대답한 거 아니야.
그냥.....은시경 씨가 그럴 사람도 아니지만, 만약 오빠 말처럼 그렇게 된다면, 그런 사람이 변한다면,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그게 뭔 소리야? 믿는다는 거야, 안 믿는다는 거야?”
“믿는다고. 믿어!
믿으니까, 그러니까.....
그런 사람이 다른 사람이 좋아졌다면 그렇다면 내가 욕심내면 안 되는 거잖아.”
“나 참, 어이가 없어서.
그게 뭔 말이야? 그럴수록 잡아야지. 욕심은 뭔 개뿔.
니가 그놈한테 욕심이지, 니가 뭔 놈의 욕심을 내?”
“은시경이야. 오빠. 다른 사람이 아니라 은.시.경.
은시경이라는 사람이 다른 여자가 마음에 들어왔다면, 그건 게임 오버야.
그 남잔, 그러더라도 나한테 의리를 지키려 하겠지.
그럼, 그 남자는 내 곁에서 불행한 거잖아.
그러면 내가 그걸 견딜 수 있을까. 헤어져도, 그 남자가 행복한 게......차라리 나아....난......”
“아, 진짜! 말도 안 되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이 따위 얘기는 왜 하고 있는 거냐.
짜증나게!!”
“오빠 니가 먼저 시작했거든?”
“그래, 그래. 내 잘못이다. 내가 잘못했다.
내, 다~~시 은시경 바람 피네 어쩌네 그런 소리 하면 내가 대한민국 국왕이 아니다.
내 입에 장을 지진다, 내가!”
“오케이~. 그 날만 기다릴게.”
재하가 병실을 나가려다 갑자기 멈추더니 아까와는 달리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이재신, 너. 정말 은시경.....좋아하는구나.
너, 은시경보다 니가 더 좋아하는 거, 아니야?
여자가 너무 매달려도 보기 안 좋다, 너.”
재신의 입에서 풋 하고 웃음이 새어나왔다.
“응, 그런가봐. 살다 살다 이재신이 남자에게 목을 매네.”
“저거 저거....줏대 없는 놈......”
재하가 기가 막힌다는 듯 혀를 차대며 병실을 나갔다.
재하가 나가자, 재신은 참았던 한숨을 깊게 내뱉었다.
“그래도.....은시경......바람 피지 마.
상상만 해도, 싫다.”
2
그렇게 재신은 재활을 위해 떠났다.
자신의 연인에게 이별도 제대로 전할 수가 없었다.
수술 때문에 몸을 함부로 움직여서도 안 되었고, 그 때문에 영선은 재신의 곁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재하가 몇 번이나 영선을 쉬게 하려 했지만, 영선은 끝까지 고집을 부렸다.
어쩌면 그것은 영선 스스로의 부채 의식일지도 몰랐다.
아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그 마음이, 딸만은 지켜야 한다는 그런 부채 의식으로 나타난 것인지도 모른다.
그 때문에 두 연인만 애달파질 수밖에 없었다.
사실 시경은 재신이 퇴원해서 궁에 있을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병원에 있을 때보다는 훨씬 마음 편히 그녀를 만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퇴원하기로 했던 날, 갑자기 퇴원을 미루게 되었다는 얘기를 재하에게 전해 듣고, 혹시 몸이 불편해지신 건지 걱정이 되어 안절부절 못하고만 있었다.
그런데 뜸을 들이던 재하가 시경에게 놀리듯이 한 마디 던진 이후 시경은 머리를 둔기로 맞은 듯이 멍해 보였다.
“야, 너 어떡할래?
재신이 재활 치료 받으러 간대.
너 있던 데 있잖아. 거기.
너, 한동안 죽어나겠다?”
“그..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전하?
공주님께서....재활...치료....받으십니까?”
믿기지 않아 떠듬대며 물어본 말에 재하는 더 깐죽대며 말을 이었다.
“그으래. 너 있던 데 거기로 간다고.
야, 은시경, 이러다 송장 치르는 거 아니냐? 응?
너, 재신이 없는 새, 바람 피면, 나한테 죽는....?”
“얼마나....그곳에서 얼마나 계시는 겁니까?”
재하가 시경을 놀리려고 하는 말도, 시경에게는 들리지 않는 듯했다.
“뭐, 한 3-4개월?
근데 알 수 없지 뭐. 재활이라는 게 해 봐야 아는 거잖아.
너도 생각보다 많이 걸렸고.
가 봐야 아는 거야.”
재활에 정확한 시간이란 없었다.
사람마다, 상황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알고 있다.
시경은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또 공주님께 그 무엇보다도 필요한 일인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마음이 헛헛해지는 것 역시 자신의 힘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시경은 자신의 집무실에서 그저 멍하니 앉아 있었다.
조금 마음을 추스르고, 조금은 정신을 차리고 연락을 해야 했다.
그러나 몇 번이나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면서도 시경은 쉽게 통화버튼을 누를 수가 없었다.
뭔지 모르게 자꾸만 겁이 났다.
겁낼 필요 없는데, 뭐 때문에 자신이 겁나 하는지도 모르면서 시경은 불안한 마음을 몇 번이나 쓸어내렸다.
그러고는 이윽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그녀는 받지 않았다.
<미안해요. 엄마가 바로 옆에 있어서....게다가 울 엄마 좀 울고 해서.....
엄마 없을 때 내가 전화할게요.>
카톡으로 온 메시지를 보며, 시경은 또 그렇게 한참을 멍하게 앉아 있기만 했다.
그렇게 1시간이 더 지나고 나서야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시경 씨, 미안해요. 많이 기다렸죠?
엄마가 잠시 화장실 가셔서 잠깐 짬이 났어요.”
“아, 아닙니다. 공주님. 전 괜찮습니다.
공주님께서는...........괜찮으십니까?”
한참 동안 재신은 말이 없었다.
“......응......괜찮아요. 난.......
혹시, 시경 씨, 들었어요?”
“.........예.”
그의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짧은 대답 안에서도 그의 감정이 모두 느껴지는 듯했다.
“.........미안해요. 갑자기 결정했어요.”
“아닙니다. 공주님, 저한테 굳이 미안해하실 필요 없습니다.”
예전 같으면 이 남자는 왜 이리 딱딱할까 싶었을 그런 말이었지만, 재신은 이제 이 남자의 화법을 안다.
단단한 듯, 괜찮은 듯, 또 원리원칙대로 말하는 듯하지만, 그 마음에는 아마 소용돌이가 치고 있을 것이다.
“미안해요......시경 씨........”
그 말에 시경은 한참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아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아서 더 그의 감정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재신은 더 미안했다.
“........시경 씨.........”
“예....공주님......”
겨우 마음을 추스른 듯 평소의 은시경처럼 대답했다.
“나, 없는 동안, 바람 피면 안 돼요. 알겠죠?”
“예?”
시경은 재신이 무슨 소리를 한 건지 한참동안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 자신의 귀로 들은 말이 정녕 그 의미인지 해석하는 데도 한참이 걸렸다.
“딴 여자한테 눈도 주지 말라니까?
웃지도 말고.
시경 씨 좋다고 달라붙어도 절~~~대로 웃어 주지 마.
아, 말도 섞지 말라고 하고 싶은데....그건 좀 그렇겠지?
아, 그래도 싫어. 나 없는 데서 딴 여자랑 말하는 것도 싫어.”
“.......공...주...님........”
“내 남자가 너무 인기가 많아.
시경 씨, 완전 까칠해질래요?
아니다, 그럼 또 나쁜 남자의 매력에 더 빠지려나......
여튼, 뭐가 그렇게 멋있는 거야.
이건 다, 시경 씨 잘못이야. 너무 잘 생겼잖아....흑.......”
“공주님!!!”
재신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던 시경의 목소리가 갑자기 단호해졌다.
“응? 왜요?”
“재활, 열심히 하셔야 합니다.”
“어? 어....알겠어요. 열심히 할게요.”
“정말 재활, 열심히 하셔야 합니다.”
“알았다구요. 열심히 한다구요. 내가 개길까봐 그래요?”
“.......그저 전....공주님께서....재활에만 집중하셨으면.....좋겠습니다.”
“응? 재활에만?”
“예......그리고 대비마마께서 같이 가시는 거, 맞습니까?”
“응....그런데요. 왜요?”
“근위대는.....제가 최선으로 배치하겠습니다.”
그러나 재신은 가보고서야 알았다.
이상했다. 병원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사람이 여성이었다.
여의사에 여자 물리치료사, 심지어 근접에서 경호하는 근위대원들은 모조리 왕창 여자였다.
그래도 재신은 재하가 신경을 써서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러다 재하와 통화를 하다가 기함을 하고 말았다.
“오빠 근데, 너무 한 거 아니야?
어떻게 볼 만한 남자가 없어?
나보고 시경 씨 바람피울 거라더니, 내가 바람피울까봐 이러는 거야?”
“야, 이재신, 내가 그랬겠냐?
누구겠냐. 내가 진짜, 은시경 이놈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 살 수가 없다고!!!
그 놈이 아예 명단을 요구해서는 남자놈은 다 바꾸라고 난리도 아니었다고!!!
내가 진짜 열받아서.....
야!! 니 의사, 물리치료사 전부 저 놈 컨펌 받고 한 거야.
지가 내 머리 위에 있다, 진짜!! 어후, 생각하니 더 열받네.”
“그...그게 무슨 소리야? 시경 씨가 여자로 다 바꾸라고 했다는 거야?”
“당연하지!!! 그 놈 그거 스토커 기질이 다분하다고. 아니지, 저 놈...사람을 아주 잡아!!
명단 가지고 난리를 쳤다, 말도 마라...하아...생각만 해도 골이 흔들려.
야, 근위대원 해 놓은 거 봐도 알잖냐.
다 여자지? 전~~부! 저놈이 한 거야.
대외 업무할 때 남자 놈들이 있긴 해도, 그 놈들 떡대 봤냐?
난 씨름 선수 단체로 뽑은 줄 알았다.”
그러고 보니 그랬다.
근접 경호는 여자 근위대원들이 한다고 해도, 외부로 나갈 때는 아무래도 남자들이 필요했다.
그럴 때 등장하는 근위대원들을 보고, 재신도 처음엔 기겁을 했다.
정말 씨름 선수인 줄 알았다. 덩치도 산만했고, 얼굴은....처음엔 진짜 무서워서 쳐다볼 수도 없었다..
나중에야 순둥순둥하다는 걸 알게 됐지만, 정말 시각적으로는 모두 꽝이었다.
대한민국 왕실 근위대원들은 원래 얼굴 보고 뽑았는데,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게 정말 은시경의 작품일 줄은 정말 추호도 생각지 못했다.
“정말 재활, 열심히 하셔야 합니다.”
떠나기 전 통화에서 했던 시경의 말이 떠오르자 재신은 오싹해졌다.
분명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어쩌면 이 남자, 무서운 남자일지도 모른다.
3
왕실 재단 창립 후원의 행사 겸 재신의 귀국 파티를 함께 하는 장인 만큼, 재신이 오랜만에 매스컴에 등장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러나 재신은 오기 직전에 스케줄이 잡혀서 거의 저녁이 되어 도착하는 바람에 파티 후반부에 참석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재신은 미국에 머물었던 시간 동안 매스컴에 거의 노출되지 않도록 피해 왔었다.
극적인 효과가 필요한 것도 있었고, 수술 후 재활에만 집중하겠다는 재신의 의지이기도 했다.
시경조차 재신의 얼굴을 사진으로도 거의 볼 수가 없었다.
처음 갈 때는 삼 개월이라 했으나, 그녀가 떠난 지 벌써 8개월 가까이 지나버렸다.
초겨울에 떠난 그녀가 이제 여름이 들어서고서야 돌아오는 것이다.
공항에 도착하는 것만이라도 시경이 나가면 좋았겠지만, 왕실 재단 창립 후원의 밤 때문에 근위대장 입장에서 자리를 비울 수도 없었다.
겉으로 보기에 시경은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시경의 그런 모습에 재하도 혀를 내둘렀다.
행사 1부는 지금까지 왕실의 역사와 왕실이 지금까지 해온 여러 일들에 대한 브리핑으로 시작했다.
그 후 선왕 이재강의 동영상이 소개되고, 재하가 앞으로 나왔다.
“여러분, 대한민국 국왕 이재하입니다.
방금 보신 영상은 선왕이셨던.....이재강 국왕 전하이십니다.
누구보다 대한민국을 사랑했고, 통일을 꿈꿨던 왕입니다.
그리고 불의와 부정에 맞서 싸웠으며,
정의를 위해 목숨을.....바친 자랑스러운.....저의 자랑스러운 형이기도 합니다.”
잠시 재하가 입을 다물었다.
언제나 장난기가 가득하던 재하의 눈에 물빛이 비치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저는 형의 꿈을 이루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재하의 뒤편으로 스크린 상에 누군가의 메모가 비춰졌다.
1. 자랑스러운 아들이 된다.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된다. 먼저 가족을 생각한다. 2. 나 자신보다, 왕실보다 국익을 먼저 생각한다. 3. 통일의 기틀을 마련한다. 4. 대한민국 왕실 복지 재단을 설립하여 왕실의 의무를 실천한다. 5. 국가의 틀을 넘어 전 세계를 향하는 왕실이 된다. |
“형의...아니, 대한민국 국왕이 꿈꾸었던 세상입니다.
그리고 지금 제가 꿈꾸고 있는 세상이기도 합니다.”
좌중은 침묵하고 있었으나, 그 침묵은 무언가 벅참과 안타까움과 설렘 같은 감정들로 휩싸여 있었다.
“대한민국 왕실은 이제 국가의 틀을 넘어 전 세계로 나아가고자 합니다.
예, 누군가는 말씀하실 것입니다.
천문학적인 돈을 쓰고 있는 왕실이 그만큼의 가치를 하고 있는가?
대한민국 안에 발생하는 수많은 문제에 대해서는 외면하는 것인가?
단연코 말씀드리자면, 그렇지 않습니다.
돈만 쓰는 왕실이 되지 않기 위해서,
대한민국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그리고 단순히 자국만의 이익이 아니라, 전세계의 문제와 아픔을 공감하고 해결해 가기 위해서
우리는 지금 각국의 대표들과 기업의 대표들께 이러한 자리를 마련한 것입니다.”
그 때 갑자기 뒤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행사장의 문이 열리고, 휠체어에 앉은 대한민국의 공주가 들어서고 있었다.
좌중이 모두 일어나며 박수를 치기 시작하자, 공주는 우아한 미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숙였다.
“이제 그 적임자가 도착했군요.
나머지는 대한민국 왕실 복지 재단의 이사장을 맡게 될 이재신 공주에게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재하는 휠체어에 앉아 있는 재신에게 성큼성큼 걸어갔다.
재하의 입술에 장난기 어린 미소가 어렸다.
“이재신, 준비 됐냐?”
“당연하지.”
재하가 재신에게 손을 내밀자, 재신이 휠체어에서 일어섰다.
그것만으로도 좌중에서는 오 하는 소리가 울렸다.
그러자 재하가 어깨를 으쓱하더니, “Show time”이라 외치자, 재신이 함박 웃음을 터뜨렸다.
재하의 팔에 팔짱을 낀 채, 재신이 한 발 한 발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물론 예전에도 재신은 몇 걸음씩 걸을 수 있었다.
그러나 조금은 불편해 보였고, 위태해 보였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지금 분명 재신이 내딛는 한 발 한 발에는 힘이 가득했다.
단상 앞에서 이를 지켜보던 시경 역시 놀란 듯, 얼어붙은 채 서 있었다.
단 한 번도 얘기한 적이 없었다.
서로가 재활에 대해서는, 아니 재활의 결과에 대해서는 불문율처럼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시경이 직접 겪어냈기 때문이기도 했다.
쉽게 던지는 말 한 마디가 감당하는 사람에게는 엄청난 무게로 다가올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재신의 얼굴은 여유로웠다.
아주 오래 준비했던 것처럼, 아니 아주 익숙한 것처럼, 그녀의 걸음은 힘찼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예전의 그녀인 것처럼, 진정 예전 대한민국 유일한 공주의 귀환이었다.
좌중이 모두 일어나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모두가 기대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의 공주가 기적처럼 일어나 주길.....
이번 수술이 제대로 이루어졌기를......
한편으로 대한민국 의술의 엄청난 성장을 그녀가 보여주길....
모두가 바라고 있었을 수 있다.
그리고 지금 그녀는 그 모든 바람들대로 걸어주었다.
앞으로 걸어나오는 재신이 점점 시경에게로 가까워졌다.
시경은 마치 자신에게로 걸어오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먼 훗날, 가슴 벅찬 어느 날을 미리 재현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만큼 그 날을 간절히 바라고 있는지도 몰랐다.
단상 앞까지 걸어오자, 재하가 멍하니 서 있는 시경을 향해 눈짓했다.
시경이 다가오자 시경의 손으로 재신을 넘겨주었다.
“이제 니가 데리고 가.”
당황하는 시경을 향해 재신은 활짝 웃고 있었다.
“놀랐죠? 나.”
“아...예. 공주님. 이렇게....완전히....걸으실 줄은....몰랐습니다.”
“응. 시경 씨, 놀래켜 주려고......”
단상으로 올라가는 짧은 시간, 그녀의 환한 웃음은 시경의 가슴을 한없이 간질이고 지나갔다.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대한민국 공주, 그리고 대한민국 왕실 복지 재단의 이사장을 맡은 이재신입니다.”
완벽한 복귀. 그녀의 컴백이었다.
“오늘 대한민국 왕실은 대한민국을 위해, 그리고 세계에 공헌하기 위해 왕실 복지 재단을 설립하고자 합니다.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로, 경계를 넘어서려고 합니다.
우리는 무너진 세계를 재건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꿈꾸는 세계는 아이들을 먹이고, 여성들의 아픔을 치유하고, 마음과 몸의 불편을 치료하는 땅입니다.
이는 대한민국 경계 안일 수도 있고, 그 경계를 넘어설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글로벌이라는 단어를 숱하게 써오고 있습니다.
세계가 하나의 공동체라면, 그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치고 있다면,
먼 나라에서 굶어 죽어가고 있는 아이의 문제도,
10살밖에 안 된 여자아이가 혼인을 해야 하는 문제도,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고 있는 여성 문제도,
모두 우리의 문제로 돌아올 것입니다.”
재신은 잠시 말을 멈추고 좌중을 돌아보았다.
알고 있었겠지만, 다들 의아해 보이기도 했다.
지금, 이 시점에서, 그것도 대한민국 내에서 왕실의 존재가 위태한 이때에 왜 이토록 거대한 사업을 벌이려고 하는지 이해가 안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재신은, 아니 대한민국 왕실은 그 한계를 넘어서려고 했다.
“이제 겨우 첫걸음을 떼는 것입니다.
왕실 복지 재단은 왕실의 기금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계속 이어가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기부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세계의 재건에 나설 것입니다.
지금 제가 이렇게 일어선 것처럼, 먼저 대한민국은 일어서지 못하는 이에게 일어설 수 있는 힘을 보탤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의술로, 또한 왕실의 복지 재단의 힘으로 일할 것입니다.
또한 굶어 가는 아이들과 조혼에 죽어가는 소녀들, 그리고 착취당하는 여성들을 위해서 우리는 목소리를 낼 것입니다.
지속적으로, 과감하게, 그리고 강력하게 목소리를 낼 것입니다.
그리고 그곳에 제가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찾아갈 것입니다.”
심각하게 이야기 하던 재신의 표정이 조금 장난스러워졌다.
“음....제가 너무 진지하게 얘기했나 봅니다.
그럼, 조금 가볍게 얘기해 볼까요?
오늘, 이곳에 오신 내빈들께서는, 두둑하신 주머니만큼이나 마음도 넉넉하시리라 믿습니다.
그래도 제가 그냥 달라고 하면, 그건 도둑이죠. 저도 그럴 생각은 없습니다.
이런 행사에는 꼭 기금을 위한 서프라이즈가 있던데요.
저희도 사실 준비했습니다.”
서프라이즈라는 말에 좌중이 약간 웅성거렸다.
경매물이라도 있는가 싶어 다들 기웃거리고 있었다.
대한민국의 고 유물이 나올 수도 있다는 기대감에 다들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이런, 혹시 고려청자라도 기대하셨다면, 그건 아닌데 어쩌죠?
오늘 서프라이즈는 바로....접니다.”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싶어 다들 웅성거렸다.
시경은 뭔가 떠오르는 것이 있는 듯 미간이 심하게 찌푸려졌다.
설마.......
“네. 맞습니다. 오늘의 서프라이즈~
이렇게 제 입으로 직접 말씀드리기 쑥스럽지만, 제가 오늘 여러분과 춤을 추어드릴 겁니다.
저와 춤을 추실 분들은 반.드.시 그에 상응한 기부금을 내셔야 한답니다.
날이면 날마다 오는 기회가 아닌 건, 아시죠?
게다가 제가 이렇게 춤을 출 수 있게 된 건, 얼마 안 되었답니다.
그러니 제 정성을 생각해서, 그만큼 우리 왕실 기금으로 채워주시리라, 굳게 믿겠습니다.
그럼, 오늘 파티를 즐겨주세요.”
재신의 연설이 끝나자, 시경이 재신의 곁으로 다가왔다.
재신의 손을 잡고 부축하는 시경의 얼굴이 뭔가 단단히 굳어 있었다.
사실 처음 재신이 나타났을 때는 공주님이 돌아왔다는 사실만으로 아무 것도 보이지도 느낄 수도 없었다.
그러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지금 공주님의 드레스나 모든 면에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가슴까지 푹 파인 흰 드레스는 아찔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런 드레스를 입고 다른 남자들과 춤까지....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응? 뭐가요?”
“공주님, 아무리 재활이 잘 되었다고는 해도, 무리하시면 안 됩니다.
그런데 무슨 춤을 추시겠다는 겁니까?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셔도....”
“아니요. 그렇게까지 해야 돼요.”
“공주님!”
“이슈가 되겠죠. 서프라이즈도 되고.
이슈가 되어야 해요. 돈도 돈이지만, 휠체어에 앉아 있던 이재신이 일어나 춤까지 추더라.
내일 헤드라인은 전부 이걸로 나갈 거예요.
그러니까 난 반드시 해야 돼요.
그걸 위해서 그렇게 이를 악물었는데.......”
그때였다.
J그룹의 둘째 아들이 다가와 재신에게 인사를 건넸다.
“공주님, 제가 첫 번째의 영광을 누려도 되겠습니까?”
“아, 정 실장님, 오랜만에 인사드려요.”
“사실....얼마 전에 승진했습니다.”
“아, 이런 실수를 했네요. 그럼...이제....?”
“예. 이번에 회장님께서 호텔쪽을 맡겨주셨습니다.”
“어머, 축하드려요.”
그러는 사이, 외국의 대사들까지 재신의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이런, 제가 번호표라도 드려야 하나요? 일단 정 사장님과 한 곡 먼저......”
정 사장이라는 자가 재신의 손을 잡자, 시경도 어쩔 수 없이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재신은 플로어로 걸어가는 내내 뒤통수가 찌릿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은시경 씨, 엄청 열 받았겠네.
재벌, 외국 대사들, 그들과 춤을 추면서도 재신은 피곤한 것보다도 마음이 더 불편했다.
한 시간이 넘도록 열여 명 이상과 춤을 춰댔다.
그 사이 시경은 거의 노려보다시피 하고 있었다.
발이 아픈 것도 있었지만, 마음이 불편한 것이 더 힘들었다.
조용한 곡으로 바뀌자, 스텝이 느려져서 그나마 좀 낫기도 했다.
재신도 알고 있었다.
자신의 한계는 한 시간이었다.
한 곡을 3-4분으로 치면 최소 15-20명과 춤을 춘 듯했다.
이만하면 자신의 건재함은 확실히 알린 듯한데, UAE의 대사가 아까부터 기다리고 있어서 거절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말이 대사지, 그는 몇 번째인지는 가물가물했지만, UAE의 왕자였다.
무시할 수 없는 대상이기도 했다.
나름 매너가 좋기로 유명한 왕자라, 재신도 그가 나쁘지 않았다.
무엇보다 돈이 많으니, 꽤 많은 돈을 기부할 거라는 건 믿어 의심치 않았다.
“My princess, you look so tired.”(공주님, 피곤해 보이십니다.)
“Oh, never mind. I’m Okay.”(신경 쓰지 마세요. 괜찮아요.)
“Why don’t you lean on my shoulder?”(제 어깨에 기대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아......
재신이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그의 손이 부드럽게 재신의 어깨를 안아 자신에게 기대게 했다.
이를 어찌해야 하나 당황스러운 가운데 재신이 머뭇머뭇하는 사이, 익숙한 목소리가 곁에서 울렸다.
“Excuse me, Sir.”
은시경이었다.
“I’m sorry to interrupt you, but the king of Great Republic of Korea calls the princess.”
(방해해서 죄송하지만, 대한민국 국왕께서 공주님을 부르십니다.)
“Oh, that’s no problem.
My princess, I’ll be expecting a chance with you next time.”
(괜찮습니다. 공주님, 저는 다음 기회를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재신이 고개를 끄덕이기 무섭게 시경의 팔이 재신의 허리를 감싸고 플로어를 벗어났다.
다들 그저 재신이 힘들어서 쉬러 가는 걸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시경이 눈짓을 하자 근위대원들 몇몇이 모여들었다.
“발코니 쪽으로 아무도 못 오게 해.”
“예. 알겠습니다.”
멍하니 그를 바라보고 있는 재신을 다시 이끌고 시경은 파티장 바깥으로 이어진 발코니로 나갔다.
그러더니 시경은 발코니에 놓여있는 작은 테이블과 의자가 있는 곳으로 재신을 이끌고 가서 의자에 그녀를 앉혔다.
“뭐야? 오빠는?”
“예?”
“오빠가 불렀다며? 아까 아랍 왕자한테 그렇게 말했잖아?”
“아...그건.......”
시경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시경 씨, 요즘 거짓말 완전! 잘 해.”
“......공주님께서 피곤해 보이셔서.......”
재신은 입을 다물고는 시경을 찬찬히 훑어보았다.
“..왜....그러십니까?”
“화....났죠?”
“예? 아...아닙니다. 흠흠......”
“화 났구만, 뭐. 화 났잖아요. 그죠?”
“.................”
“어, 이제 대답도 안 해. 이젠 내 말도 씹을 거예요?”
시경은 곤란한 듯, 자신의 짙은 눈썹을 오른손으로 꾹꾹 눌렀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재신의 얼굴에 미소가 한가득 피어올랐다.
“이봐, 곤란하니까, 또 눈썹 만지네.
시경 씨, 곤란하면 꼭 그렇게 눈썹 만지더라.”
“제...버릇도....아십니까?”
뭔가 놀란 듯한 시경의 말에 재신은 또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바~~보!! 내가 남친 버릇도 모를까봐?”
그 말에 시경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
재신의 앞에 묵묵히 서 있던 시경이 천천히 그녀의 앞으로 가서 한 쪽 무릎을 꿇었다.
“응? 뭐해요? 시경 씨?”
시경의 손은 그녀의 왼쪽 구두를 벗기고 왼발을 무릎 꿇고 있는 자신의 다리 위에 올렸다.
그러고는 천천히 그녀의 발을 마사지하기 시작했다.
“뭐야? 시경 씨. 하지 마. 시경 씨 손만 버려요.”
재신이 안 된다며 말렸지만, 시경의 손은 고집스럽게 그녀의 발을 눌러주었다.
“고생...하셨지 않습니까. 공주님의 발.”
뭐랄까 간질간질했다.
여름의 초입, 밤바람은 청량했다.
그 사이로 한 남자가 한 여자의 발을 조용히 마사지하고 있었다.
그 조용하고 단단한 움직임이 자꾸만 여자의 마음을 살랑거리게 했다.
고요한 물 속에 떠 있는 작은 꽃잎처럼 작은 듯, 고요한 듯, 천천히 물결을 일으켰다.
남자의 얼굴을 이렇게 찬찬히 들여다본 것이 얼마만인가 싶었다.
반 년이 훌쩍 넘는 동안, 남자는 조금은 더 단단해진 듯도 하고, 조금은 살이 빠진 듯도 해서 조금 더 날렵해져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그의 눈썹은 검었고, 그의 눈은 깊었고, 그의 손은 단단했다.
남자의 손은 어느 새 오른발을 마사지하고 있었다.
나른하고, 편안했다.
그 나른하고 편안함 가운데 조금씩 잔잔한 바람이 일었다.
여자의 손이 천천히 그의 얼굴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그의 짙은 눈썹을 손가락으로 쓸어보았다.
놀란 듯 손을 멈춘 남자가 그녀를 바라보았지만, 여자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그의 눈이 짙게 가라앉았다.
재신의 손이 천천히 멀어지자, 남자의 가슴에 바람이 일었다 가라앉았다.
“다 했죠?”
“예? 아...예. 아니, 더 해드리겠습니다.”
“아니. 나 완전 말짱해졌어요. 시경 씨 덕분에.
시경 씨, 나, 파우치 좀 가져다 줄래요?
춤 출 때 궁인한테 맡겨뒀는데......”
“예.”
시경이 파우치를 가지고 돌아오자, 재신은 시경을 자신의 곁에 있는 의자에 앉혔다.
그러고는 파우치에서 물휴지를 꺼내더니 시경의 손을 가지고 갔다.
“아, 괜찮습니다.”
“시끄러워요. It’s my turn.”(이번은 내 차례.)
재신이 물휴지로 시경의 손을 정성스럽게 닦아내렸다.
그의 단단한 손가락과 강하게 핏줄이 올라온 손등까지 꼼꼼히 닦았다.
시경의 눈은 그런 재신을 한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그 시선에 재신의 양볼이 발그레해지고 있었다.
“공주님.”
“응? 왜요?”
“이제, 발 안 아프십니까?”
“당연하지. 누가 마사지해줬는데?
말짱하다니까요?”
그 말에 시경이 의자에서 일어섰다.
그러고는 또다시 재신의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재신에게 손을 내밀었다.
“공주님, 저와 한 곡, 추시겠습니까?”
별 것 아닌 행동도, 이 남자가 하면 자꾸만 두근댔다.
단어 하나 하나, 꾹꾹 눌러 말하는 이 남자가, 그 진중한 목소리가 좋았다.
재신이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시경을 바라보자, 시경의 눈빛이 당황한 듯 흔들렸다.
“저와는.....안 추십니까......”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재신의 가슴 저 안으로 박혀 떨어졌다.
아마 이 남자는 모를 것이다.
그의 말 한 마디가 여자의 가슴을 얼마나 설레게 하는지, 어떤 바람을 일으키는지, 그는 모를 것이다.
재신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 사이, 시경의 손이 재신의 손을 잡았다.
재신의 가슴으로 또다시 바람이 일었다.
“룰 알죠?”
“예?”
시경은 어느 새 재신을 일으켜 세웠다.
‘이 남자, 보게’ 하는 시선으로 재신은 또 한 번 튕기듯이 말을 건넸다.
“나랑 춤추려면 기부금을 내야 돼요. 내가 아까 말했잖아?”
시경의 팔은 이미 그녀의 허리를 감싸안고 있었다.
“얼마를....드리면 됩니까.....”
그의 목소리가 깊게 가라앉았다.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도 그의 목소리처럼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엄청....많이.......”
그가 이끄는 대로 발을 떼며 재신이 낮게 읖조렸다.
“제 전 재산을 드리면, 허락해 주시겠습니까?”
은시경다웠다.
아주 진지하게, 정말 전 재산을 팔아올 것 같은 자세로 말하고 있었다.
그는 아마 그럴 것이다.
재신의 입술에는 어느 틈에 미소가 어렸다.
들키지 않으려는 듯, 재신은 그의 가슴에 머리를 기댔다.
쿵...쿵...쿵...쿵.....
그의 심장 소리가 그녀의 얼굴로 부딪쳐왔다.
또다시 미소가 스며나왔다.
정직한 그의 심장소리.......
나른하고, 간질거렸다.
천천히 음악에 맞춰 리듬을 타면서 두 사람의 대화는 그렇게 흘러갔다.
“공주님?”
“작아....그걸로 안 돼.”
“예?”
시경은 정말로 당황한 듯했다.
“그 돈으로 절대 안 돼.....”
“그럼.....무얼 드려야 저와 추실 겁니까.....”
한참동안 재신은 아무 말이 없었다.
시경의 가슴에 기댄 채 재신은 눈을 감고, 그가 이끄는 대로 음악에 맞춰 몸을 움직였다.
“.......당신........”
처음엔 시경은 재신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심장이 쿵 하고 저 아래로 떨어져내렸다.
“돈으로는 환산이 안 되는...은시경....당신......”
“..................”
“다 필요 없어......
오로지 당신......”
그 순간 시경이 멈추었다.
재신도 시경을 따라 멈춘 채, 그의 가슴에 가만히 안겨 있었다.
재신의 허리를 감싼 그의 팔에 점점 힘이 들어갔다.
숨이 막힌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시경의 팔이 재신을 놓아주었다.
아니 놓아주는 줄 알았다.
그는 재신의 손을 잡은 채, 발코니 안쪽 깊이 들어간 쪽으로 그녀를 데리고 갔다.
“시..경...씨?”
벽에 기대어 놀란 듯 시경을 바라보는 재신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그의 눈이 너무나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심장이 꿈틀거리다 못해, 간질거리며 뛰어대는 사이, 남자의 손이 여자의 얼굴로 천천히 다가왔다.
이마로 흘러내린 그녀의 붉은 머리카락을 넘겨주는 그 손이 조금은 떨리는 듯도 했다.
그녀의 볼을 천천히 쓰다듬는 그의 손길에, 그녀의 붉어진 뺨을 바라보는 그의 눈길에 여자의 심장은 자꾸만 자글거렸다.
그의 손가락이 그녀의 입술을 가만히 쓸었다.
온 몸이 간질간질한 듯 울렁거렸다.
하아........
저 깊은 곳에서 울려오는 그의 한숨 소리에 심장은 터질 듯이 뛰어대기만 했다.
그러나 남자도, 여자도 그 어떤 말도 입 밖으로 낼 수가 없었다.
터질 듯한 긴장감 속에서, 이 미묘하고 감각만이 살아 숨쉬는 듯한 강렬한 순간 속에서 손가락 끝으로 전해지는 짜릿함에 그도, 그녀도 온 몸을 떨고 있을 뿐이었다.
“보고.....싶었습니다.....공주님......”
“.................”
“만지고.......싶어서........이렇게........공주님을.....안고 싶어서.......
하아.....죽는 줄.......알았습니다.”
고백 같은 그의 말에 재신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의 검은 눈이, 저 깊은 곳까지 들여다보는 듯한 그의 검은 눈이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나도 그랬다고, 당신이 보고 싶어서 미치는 줄 알았다고, 그 말을 하고 싶었지만, 재신은 단 한 마디고 할 수가 없었다.
그의 눈이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의 입술이 천천히 그녀의 이마에 내려앉았다 떨어졌다.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아서, 여자는 눈을 감았다.
볼 위로 남자의 입술이 닿았다 떨어졌다.
여자는 숨을 멈추었다.
다음이 어디일지, 그가 그녀의 무엇을 훔칠지 아는 까닭이었다.
그렇게 남자의 입술이 밀려들어왔다.
뜨겁고 강하게 그녀의 입술을 삼키고, 그녀의 혀와 얽혀들었다.
숨이 턱하고 막혀왔다.
그의 혀가 얽혀들 때마다 온 몸이 자글거렸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 그의 목을 감싸 안았지만, 자꾸만 미끄러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았다.
너무나 강하게, 너무나 맹목적으로 그녀의 입술을 가지고 또 가졌다.
아......!
(중략)
“자...잠깐....아......”
(중략)
말리려다 도리어 야한 신음만 뱉고 말았다.
그의 혀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자글거리는 느낌이 이제 온 몸을 기어다니며, 그녀를 요동치게 했다.
그토록 그리웠던 감각들이 순식간에 들이치고 있었다.
그 순간 시경이 갑자기 그녀를 놓아주었다.
붉어진 얼굴을 들킬까, 재신은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드러난 어깨 위로 옷을 다시 여며주는 그의 얼굴을 들여다 볼 수도 없었다.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저 그녀의 손을 잡고 어딘가로 이끌었다.
그의 손은 너무나 강했다.
피할 수도, 도망갈 수도 없다는 듯, 그는 그녀의 손을 강하게 잡고 있었다.
“어...디.....?”
재신이 묻고 있어도 시경은 아무 대답이 없었다.
마치 화가 난 사람처럼 어금니를 꽉 깨물고 단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발코니는 길게 연결되어 있었다.
긴 파티장을 따라 길게 연결된 발코니는 왼쪽으로 꺾이더니 다른 공간과 연결된 것 같았다.
시경은 그녀를 데리고 파티장 옆 그 공간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여긴......어디예요?”
방 안에는 작은 책상과 소파, 근위대원들의 짐 같은 것들이 널부러져 있었다.
근위대원들이 잠시 대기하는 공간인가......
찰칵......
바로 그 때 방문을 잠그는 소리가 들렸다.
놀란 듯 바라보는 재신의 앞으로 시경이 성큼 성큼 걸어왔다.
뭣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시경이 한 걸음씩 다가올수록, 재신은 한 걸음씩 물러났다.
그의 단단한 얼굴이, 그의 검은 눈빛이 뭔가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고 두렵게 했다.
저 눈빛을 안다.
재신의 맨살이 드러난 등으로 차가운 창이 느껴졌다.
이제 갈 곳도 없었다.
시경은 이제 재신의 바로 앞에 서 있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남자의 목소리가 방안에 낮게 울려퍼졌다.
“...뭐...뭐가요?”
여자의 목소리가 떨리는 듯 흘러나왔다.
“제가...지금 이곳에서......공주님을 가져도.......”
재신의 얼굴이 그대로 확하고 붉어졌다.
지금 이 남자는 여자의 대답 따위는 들리지 않을 듯했다.
남자는 여자의 대답은 기다리지도 않고, 오른손으로 여자의 목을 잡고 그대로 입술을 맞춰왔다.
그의 손은 이미 그녀의 등 뒤에 있는 드레스의 지퍼를 내리고 있었다.
재신은 떨리는 손으로 사르르 내려앉는 드레스를 잡았지만, 그보다 시경이 더 빨랐다.
시경은 재신을 안아 그대로 창틀에 앉혔다.
그의 눈과 재신의 눈이 마주쳤다.
이미 그의 눈은 검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재신의 입술 위로 그의 입술이 내려앉았다.
뜨겁다 못해 데일 것만 같은 그의 입술에 숨을 할딱이며 겨우 받아낼 뿐이었다.
(중략)
그 동안 어떻게 참았나 싶을 만큼 그저 본능만이 꿈틀대고 있을 뿐이었다.
“은.....시...경.....”
(중략)
시경은 그대로 그녀를 안아서 들어올렸다.
그러고는 그대로 그녀를 소파에 눕혔다.
그렇게 8개월만에 서로를 가득 품었다.(중략)
재신의 팔이 그런 시경을 가만히 끌어 안았다.
“공주님......무거우실텐데.....”
“그냥......잠시만 이렇게 있어요. 우리.”
폭풍이 지나갔다고 해도, 저릿한 여운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재신은 그저 이 여운을 즐기고 싶었다.
그의 단단한 가슴과 부드러운 살결을 계속 느끼고 싶었다.
이 나른함을 그와 이렇게 끝까지 나누고 싶었다.
“이렇게.....다....줄 수도 있는 거구나....”
“예?”
“머리 안 쓰고.....그냥 마음 가는 대로 다 주는 거.....
사람한테 내 마음의 바닥까지 다 줄 수도 있는 거구나......싶어요.”
“공..주님.......”
시경이 고개를 들고 재신의 눈을 바라보았다.
“난.....당신이 처음이야......”
하아......
시경의 한숨이 깊어졌다.
“저는.....아닙니다.”
“어? 그게 뭔 소리야?
당신은 아니야?”
재신은 방금 한 시경의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자신만큼이나, 아니 자신보다도 더 바닥까지 내어줄 사람이 은시경이라 믿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아니라 한다.
그 찰나의 순간에 뭔가 배신감 같은 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전.......제 마음 가는 대로 다 하면 안 됩니다.”
“..............”
“전....막고 또 막아야 합니다.
그래야.....공주님이 덜 힘드실 겁니다.”
“안...막으면요.
안 막으면, 어떻게 돼요?”
시경은 아무 말 없이 재신의 입술에 입을 맞춰왔다.
그녀의 입술 안, 혀와 얽혀들며 깊게 깊게 다가왔다.
“잠깐만.....시경 씨.......대답해 봐요.
어떻게 되냐니까........”
자꾸만 입을 맞춰오는 시경을 밀어내며 재신이 집요하게 물어대자, 시경은 한숨을 쉬었다.
하아.......
“시경 씨........”
“공주님은.....오늘 이 방에서......못 나가십니다.”
“은..시...흡!”
재신이 말릴 사이도 없이, 시경의 입술이 또다시 그녀의 입술을 덮쳤다.
(중략)
4
“둘이 어디 간 거야? 혜원이 넌 아냐?”
“대한민국 국왕으로 제게 물으시는 건지, 아니면 동생 친구로 물으시는 건지 먼저 대답해주셔야겠습니다.”
“뭐? 야, 박혜원, 너, 요즘 많이 컸다?”
“네네. 제 보스는 이제 이사장님이신 공주님밖에 없으셔서요.
어서 대답해주시죠. 국왕전하.”
“당연히 동생 친구지. 이것들 어디 간 거야? 어? 둘이 내뺀 거야? 이 중요한 시국에?”
“동생 친구로 물으신다면, 그냥 내버려두세요.”
“뭐? 뭘 내버려 둬? 이것들이!!”
“자그만치 8개월이거든요? 회포 좀 풀게 좀 놔둡시다. 좀!”
“야, 박혜원, 너 자꾸 이재신 닮아간다? 가뜩이나 생긴 것도 비슷한 것들이 성질까지 같이 사나워지는 거냐?”
재하가 계속 험한 말을 해대자, 혜원은 어깨를 으쓱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재하에게서 멀어졌다.
“어쭈, 저게 그냥 가네? 와....이재신이나 박혜원이나 진짜 유유상종이다.”
“전하, 그럼 저도 가보겠습니다.”
있는지도 몰랐던 동욱이 재하에게 고개를 숙이더니 혜원을 따라 걸어갔다.
“아쭈~~. 이제 박혜원 보디가드라 이거지?
저것들도 정분 나는 거 아니야?
요즘 것들은 하여간...쯧쯧......”
그날 밤이 늦도록 재하의 투덜댐은 그렇게 계속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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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회 드디어 가지고 왔습니다.
이틀간 밤을 꼴딱 새고 마감을 친 후 이렇게 약속대로 가지고 왔습니다.
약속이라 말씀드리기에도 죄송스럽습니다.
벌써 10개월도 지나버렸네요.
다시 올리기까지, 생각보다 너무 시간도 많이 걸린 듯합니다.
다시 흐름을 잡고 쓰는 게 갈수록 더 어려운 듯합니다.
당기못은 여전합니다.
그 사이 둘에게는 많은 일이 있었지요.
공주님은 줄기세포 수술을 받은 이후, 미국에서 재활을 하셨고, 8개월만에 돌아오셨답니다.
그들의 시간은 2015년 6월.
이제 우리의 시간과 그들의 시간이 거의 맞아가는 듯합니다.
벌써 3년이 넘었네요.
당기못에서 32살, 28살이었던 이들이 33살, 29살이 되었네요.
지금까지 기다려주신 분들,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3년이라는 시간이 생각보다 훌쩍 지나가버렸습니다.
처음에 2년을 잡으면서, 2년 안에는 다 쓰겠지 했는데, 역시 과욕이었습니다.
다른 글도 4년 가까이 썼는데.....결국 당기못도 3년을 넘기네요.
부지런히 써서 올해 안에는 끝을 내고 싶습니다. (물론 제 바람입니다. ㅠㅠ)
37회는 33장이나 되지만, 그 안에 친구들만 읽을 수 있는 그런 내용도 있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은시경이 공주님의 발을 마사지해 주는 거나,
공주님이 은시경의 품 안에 안겨 춤추면서 눈을 감고 있는 장면이 훨씬 더 설렘설렘한 듯합니다.
제 개인적인 취향인 듯도 하고요.
허접스레한 글, 그저 심심풀이 땅콩으로 읽어주시길......
잊지 않고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__)
'더킹투하츠와 은신상플 > (은신) 당신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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