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독수리 날다

잘 커주어서 고마워

그랑블루08 2014. 12. 5.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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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ay for me - 이승환

맑은 눈을 가지게
바른 입을 가지게 하시고
뜨거운 가슴은 식지 않게
머리는 차갑게

용기와 지혤 품게
미소와 눈물을 담게
오롯한 마음의 그릇
가지게 하소서

for me pray for me 더 얻으려 하지 않게 하소서
나를 나의 노예로 부리지 않도록 하소서

생각은 생각을 낳아
여러 갈래의 끝에 이르니
선택을 그르칠 모든 것
내치게 하소서

for me pray for me 더 얻으려 하지 않게 하소서
나를 나의 노예로 부리지 않도록 하소서

나를 진실로 용서케 하시고
모둘 진실로 사랑케 하시고

for me pray for me 더 얻으려 하지 않게 하소서
나를 나의 노예로 부리지 않도록 하소서 ×2

가사 출처 : Daum뮤직

 

왼쪽은 윤이랑 9월에 경주 갔을 때 호텔 안 가게 안에서 찍은 사진.

이렇게 뒷모습만 보니, 진짜 많이 컸다 싶다.

 

<독수리 날다> 카테고리는 윤이에 대한 이야기들을 기록해두려 만든 건데,

참 바쁘다는 핑계로 오랫동안 글을 올리지 못한 것 같다.

반성 겸, 또 이렇게 기록해 두지 않으면, 고마운 마음, 사랑하는 마음을 전할 수 없을까봐

이렇게 적어보려 한다.

 

이젠 키도 많이 자라서, 초등학교 5학년으로는 다들 보지 않는 우리 윤이.

며칠 전 파카를 사러 갔는데, 주인이 교복 위에 입을 거냐고 물어서 윤이와 나랑 둘다 황당해 했었다. 초등학생이라고 했더니, 주인이 깜짝 놀란다. 중학생인 줄 알았다고.

5학년이라고 했더니 더 놀란다. 초등학생이라 해도 6학년이 아닐까 싶었단다.

여튼....하는 행동이나 속은 아직 어린이에, 내 눈엔 애기 같은데, 몸은 훌쩍 커버렸다.

 

몇 주 전, 친척 조카 결혼식이 있어서 부산 오빠네가 간만에 올라왔었다.

그 때 윤이 작아진 옷들을 다 정리해서 새언니에게 보내는데, 짐을 싸면서 얼마나 마음이 서운하던지......

새언니 딸내미, 우리 조카는 1학년이라 아직 어려서 여전히 어린아이처럼 옷을 입는데, 윤이는 이제 훌쩍 큰 언니가 돼버려서 아이 같은 옷들, 공주님 같은 옷들을 이제 못 입는다고 생각하니 뭔가 이상하게 서운했다.

분홍색, 키티, 공주 드레스, 레이스 등등등......여자 아이들이 좋아하는 옷들은 이제 바이 자이지엔이 되어버렸다.

아이는 어느 새 커버려서 언니야 같은 티에 청바지만 줄곧 입는다.

여튼......아이는 큰다.

어렸던 아이의 모습이 자꾸만 어른거려 아쉽고, 지금도 커가는 것이 아깝고 그런 것 같다.

 

한동안 버려둔 내 블록에 간만에 기어들어온 이유는, 울 딸내미 일을 그래도 기록해두고 싶어서다.

나중에 윤이가 성인이 되면, 아님 결혼을 하게 되면, 이 모든 것들을 출력해서 책처럼 제본을 해서 줄까 싶기도 하다.

아주 오랫동안 엄마가 적어온 딸내미의 기록을.....

엄마가 얼마나 많이 사랑하는지에 대한 마음을.....

그렇게 전해 주고 싶다.

 

며칠 전 윤이가 기말고사를 쳤다.

이번엔 내가 정말 너무 바빠서 제대로 시험을 봐주질 못했다.

그래서 이번 시험은 그야말로 윤이 혼자서 공부해서 친 거나 진배없었다.

밤에 다음 날 할 부분을 적어두면, 다음 날 윤이가 혼자 문제집에 정리된 내용들을 읽어보고, 문제도 풀고 스스로 준비해나갔다.

따로 설명을 해줄 틈도 없고, 실제로 아이가 자고 나서야 집에 들어가는 일이 많아,

이번엔 진짜로 윤이 혼자 시험을 준비했다.

그래서 걱정이 좀 되었다.

윤이도 걱정을 좀 했었는데, 혼자서 준비한 시험으로 꽤 잘 친 것 같다.

그게 참 기특해서 많이 칭찬해 줬다.

다른 사람과 비교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혼자 공부해서 과목 당 1-2개씩 틀렸다면, 정말 잘한 게 아닌가 싶었다.

(아, 수학은 3개 틀렸다. ㅎㅎ)

여튼, 실수도 많이 했지만, 실수 또한 자신의 실력이므로, 스스로 이만큼 해낸 것이 참 기특했다.

이번엔 근현대사가 집중되어 있어서 어려웠는데,

신사 참배 문제나 정신대 문제에 대해서 스스로 알아가는 것도 굉장히 의미있는 일이었다.

 

어쨌든 윤이가 화요일에 시험을 치고 나서 오후에 전화가 왔다.

아직 시험 성적을 몰랐던 때였는데, 윤이가 나름 엄마에게 고해성사? 같은 걸 하는 거다.

원래 윤이 성격이기도 하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 조금이라도 찝찝한 일, 본인이 잘 한 일, 아니면 못한 일 등등등....

뭐든 무조건 엄마에게 다 이야기한다.

그렇게 이야기하면 마음이 편해지고 시원해져서 시시콜콜한 모든 이야기를 다 하고 싶어한다.

그러면 나도 열심히 들어준다.

아니 열심히 들어주려고 노력한다.

눈을 마주치고 열심히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다고 해서,

자주, 오랫동안, 같이 있어주지 못하는 엄마니까, 같이 있는 동안만이라도, 아니 떨어져 있어도 전화로만이라도,

열심히 들어주고, 열심히 눈을 마주쳐주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그런지 윤이도 엄마에게 얘기하는 걸 좋아하는 눈치다.

어쩌면 아주 오랫동안 엄마에게 이야기해 오다 보니, 안 하면 본인이 찝찝해서 털고 싶어하는 것 같다.

윤이에게 엄마는 대나무숲인지도 모르겠다. 또, 그랬으면 좋겠다.

무슨 말이든지 다 들어줄 수 있는, 그런 대나무숲이 되었으면 좋겠다.

 

여튼 내용은 이거였다.

영어 시험에서 갑자기 기억이 안 나는 문제가 있었다는 거다.

윤이가 여러 사정상(우리가 잠시 외국에 가려던 일 때문에....물론 접혔지만....) 영어를 일찍 배우게 됐다.

6살 때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계속 같은 학원을 다니고 있는데,

나름 영어는 좀 한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다.

얼마 전 학교 자기 반에서 했던 영어 골든벨에서도 윤이가 1등을 했었다.

이 이야기도 진짜 웃긴다.

전교부회장인 아이와, 1년동안 미국에 다녀온 아이, 그리고 우리 윤이가 최종까지 남았다.

반 아이들 전부다 앞선 두 아이가 1등을 할 거라 생각하는 상황에서 나온 문제가

할로윈은 무슨 요일인가였다.

윤이가 잠시 멍해 있는 사이 두 아이는 답을 적었고, 반 아이들은 아예 대놓고 얘기했단다.

윤이 혼자 모른다고....

그 때 윤이는 그냥 유추를 해봤단다.

영어학원에서 늘 할로윈 파티를 하는데, 그럼, 월수금 중 하나이고,(영어학원을 처음에는 매일 갔으나 4학년 때부터는 월수금만 간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늘 금요일에 한 거 같더란다.

그래서 혼자 Friday라고 적었는데 나머지 두 아이는 모두 Thursday로 적었더란다.

반 애들은 전부 윤이가 틀렸다고 생각했으나, 반전. 윤이가 1등을 했다.

다들......윤이에게 찍기의 신이라고 했단다. ㅎㅎㅎㅎ

뭐, 찍기이기도 했지만, 나름 근거있는 유추였다.

 

아, 간만에 글을 적으니 또 다른 데로 샜다.

여튼 다시 돌아와서, 영어 시험 얘기를 하면,

한글을 번역해서 영어로 적는 문제였는데, Thank you에 대한 대답으로 '내 기쁨입니다'를 영어로 적어야 하는 거였다.

그런데 갑자기 'My pleasure'가 생각이 안 나더란다.

고민하다가, 결국 생각이 안 나서 그냥 'You're welcome.'을 적었는데,

어쩌다가 앞의 애 답지가 보이더란다.

거기에  'My pleasure'가 적혀 있었단다.

 

그런데 윤이가 전화로 이렇게 말했다.

 

"엄마, 근데, 나 안 고쳤어.

시험은 정직하게 해야 하는 거잖아. 그러니까 고치고 이러면 안 돼.

정직하게 해야 돼."

 

이러는 거다.

그 때 참....우리 윤이가 잘 커주었구나 싶었다.

잘했다고 진짜 잘했다고 엄청 칭찬해주었다.

어린 마음에 틀리더라도 정직한 게 더 중요한 거라고 생각한 딸내미의 마음이 참 고마웠다.

 

엄마가 바빠서 제대로 키우지도 못했는데

윤이는 혼자서 바르게 잘 커준 것 같아서, 미안하고 고마웠다.

제대로 키우지 못하니, 늘....할 수 있는 게 기도밖에 없었는데,

아이를 키우시는 손길이 나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바르게 인도하고 계시는 것 같다.

그래서 감사했다.

 

웃기는 건, 어제 시험 결과가 나왔다는데, You're welcome도 맞았단다.

정직하고 바르게 사는 것.

이보다 더 중요한 건 없으니, 윤이가 계속 이 마음을 올곧게 가지고 살았으면 좋겠다.

 

또 윤이 덕분에 나또한 돌아보게 된다.

정직하고 올바르게 해야 하는 일에 내가 혹시 욕심을 부리는 건 아닌지,

내가 나 하나 살자고 다른 사람을 밟고 있는 건 아닌지,

나 혼자 잘 나가겠다고, 다른 사람의 상처는 무시하고 있는 건 아닌지,

나 혼자 올라가겠다고, 같이 잘 되자는 마음 대신 나 혼자 잘 되자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다시 한 번 돌아본다.

 

아이는 나의 거울이고 나의 과거이자 미래다.

나는 윤이의 대나무숲으로, 윤이는 나의 거울로.....

그렇게 살 수 있기를......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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