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신/단편) 새해 (下)
1
바람.....쇠고 싶어......
그랬던 것 같다. 재신은 그렇게 말했던 것 같다.
익숙한 듯, 낯선 듯 누군가의 손길에 이끌려 발코니 밖으로 나왔던 것도 같다.
“커튼, 정위치.”
묵직한 음성이 들리고 나서야 조금은 정신이 돌아오는 듯했다.
시경이 인이어로 명령을 내리자 안에 있던 근위대원 중 누군가가 커튼을 다시 쳤다.
고립된 공간에서 그와 단 둘이 있었다.
또다시 아까처럼, 그는 재신의 어깨에 자신의 자켓을 걸쳐주었다.
별 일 아닌데.......
분명 별 일 아닌데.......
이성의 목소리와는 달리 심장은 여전히 튀어나올 듯이 뛰어댔다.
재신은 눈을 감았다가 정신을 차리려는 듯 힘을 주어 떴다.
바로 앞에 서 있는, 이 검은 양복의 남자를 마치 처음 보는 듯이 찬찬히 살펴보았다.
단정한 그의 구두와 깔끔하게 선이 들어가 있는 그의 바지를 지나 꽉 조이는 그의 하얀 셔츠.
춥지 않을까 걱정도 되지만, 도리어 추운 바람에 드러나는 그의 근육이 보기 좋다 싶은 마음은 재신 자신도 왜 이러나 싶기도 했다.
언제나처럼 그의 주먹은 꽉 쥐어져 있었다.
마치 그가 턱을 꽉 물고 있는 듯이 손도 그러했다.
절대 빈틈이 없는 듯이 보이는 군인, 이 남자는 그랬다.
그의 얼굴을 보려 눈을 드는데, 재신은 자신도 모르게 심호흡이 나왔다.
왜 이러는 건지, 뭐 이런 일에 용기까지 내야 하는지 살펴볼 틈도 없이 그녀의 눈 안으로 그의 검은 눈이 박혀 왔다.
그녀와 눈을 마주치는 순간 당황한 듯 흔들리는 그 눈을 대하자 재신의 눈빛도 그와 똑같이 흐트러지고 있었다.
아까 정원에서 느꼈던 당황스러웠던 그 감정이 또다시 저 아래에서부터 슬그머니 머리를 들이밀고 있었다.
뭐지?
순간 재신의 머리로 무언가가 울려댔다.
위험하다.
뭐가? 도대체 뭐가?
뒤죽박죽으로 물음들이 떠다녔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자신을 잘 지켜낼 이 군인 남자 앞에서 왜 자신은 지금 위험하다, 느끼는 것인지.
이것은 분명 아까 정원에서 느꼈던 그 감정의 정체였다.
그저 당황스럽고, 그저 묘하다 느꼈던 그 감정의 정체는, 바로 ‘위험하다’였다.
그런데 도대체 왜? 이 남자가 왜?
자신의 본능이 말해주는 이 경고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재신은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본능은 이미 무조건 반사처럼 그녀를 물러서도록 만들고 있었다.
이미 그녀의 왼발은 한 발짝 뒤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행동을 그 남자가 낯설게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의 오른발까지 뒤로 움직이려는 순간, 그의 짙은 눈썹이 꿈틀거렸다.
미세한 움직임, 아주 작은 그 움직임에 그녀의 심장은 또다시 용솟음쳤다.
순간 재신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그의 검은 눈이 재신을 꼼짝 못하도록 붙들어두고 있었다.
왜 자신이 움직이지 못하는지, 무엇 때문에 근위중대장의 눈빛 하나에 자신이 얼어붙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 재신은 숨을 멈추었다.
겨울의 바람이 차가운 기운을 품은 채 두 사람의 사이를 흐르며 지나갔다.
재신의 코끝으로 스며드는 향에 그녀의 눈이 점점 초점을 잃고 흔들렸다.
“.....다...당신......?”
이 불안의 정체, 이 위험함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영창......가겠습니다.”
“뭐?”
2
고통이란 게 뭔지 알지 못했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이후, 고통이란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로 지냈다.
아니, 그 어떤 것도 더 이상의 고통은 되지 못했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집에 거의 오지 못하시는 아버지 덕분에 혼자서 지내는 일도, 기숙학교에 다니며 학업을 쫓아가는 일도,
아버지의 기대를 거역하고 육사에 입학했던 일도,
또 지독하게 받아냈던 훈련들도, 그 어떤 것도 고통스럽다,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30년의 삶 동안, 단 한 번 존재했던 그 “고통”이라는 것을 다시금 느낀 순간이었다.
지독했다.
하루 하루 지내는 것이, 고통이었다.
왜 이렇게 숨을 못 쉴 것 같은지, 왜 이렇게 심장 안에 돌을 매달고 있는 것 같은지, 왜 밥을 먹는 것도, 잠을 자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닌지, 알 수가 없었다.
평소대로, 해야 할 일들을 하며, 왕실을 보좌하는 그 일들을 해내면 그만이었다.
그랬다. 그래야만 했다.
“은시경!! 은시경!!!”
그래, 그렇게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 줄 알았다.
“야!!! 은시경!!! 너, 내가 부르는 거 안 들려? 야!!!!!”
그래, 난 군인이니까, 군인답게 그렇게 살고 있는 줄 알았다.
“야, 이 새끼야, 너 뭔 일 있냐? 정신을 어디 놔두고 다니는 거야?
아님, 니가 지금 왕제 앞에서 게기는 거야? 이게 간이 배 밖에 나왔구만.
야, 너 왕제가 우습게 보여? 어?”
그렇게 정신없이 깨지고 나서야, 지금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어렴풋이 보였다.
그리고 그 순간 울리던 휴대폰과 왕제님의 입에서 울려 퍼지던 누군가의 이름.....
“어, 재신아!!!! 야, 도착했으면 바로 바로 전화해야지.
일주일이 넘었다, 인마.”
심장으로 한 자 한 자 내려앉던 그 이름이었다.
“얌마! 내가 엄마한테 니 소식을 들어야겠냐?
너, 지금 나 차별하는 거지? 응?
너, 이렇게 나오면 섭섭해. 항아한테도 연락했다며? 너 이러기야?”
그랬었나? 내가?
저 이름 때문이었나? 내가?
“나, 겨울에 오면, 그때도 나 호위 해줄 거죠?”
“.....겨울에...오십니까......”
그랬었던가.
겨울이라는 그 말에, 툭 떨어지던 심장이 다시 뛰어대던 것은.......
그 이유 때문이었던가.
겨울이라는 말이 그토록 여운을 가진 줄 몰랐다.
세월이 이토록 흐르지 않는다는 것을, 시간이 이토록 더디 가는 것을, 그제야 깨닫고 있었다.
겨우 일주일이 지났을 뿐이다.
손 안에 남아있던 그 부드러웠던, 그 가슴을 간질이던 감각은 사라져만 가고, 겨울은 마치 오지 않을 것처럼 그토록 멀기만 했다.
나이 서른에.......내가.......
가슴이 서늘해지는 밤이면, 성곽에 가서 앉아 있었다.
캄캄한 하늘 가득 뿌려져 있는 별들을 보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괜찮을 거라고, 이렇게 가라앉을 거라고, 그렇게 나를 다독였다.
머리에 바람이 불어 이 감당하지 못할 생각들을 흩어버리기를 바랐건만, 그 바람은 가슴에서만 일다 지나갔다.
아니, 그 바람은 심장 가득 머무르며, 소용돌이만을 일으킬 뿐이었다.
“요즘, 무슨 일 있으십니까?”
“어? 무슨 소리야?”
“중대장님, 요즘.....좀 이상하십니다.”
“내가?”
“진~~짜 이상하시지 말입니다.
밥도 잘 안 드시고, 틈만 나면 땅이 꺼져라 한숨만 쉬시고,
아니면 멍하게 정원에 벤치만 바라보고 있으시기도 하시고 말입니다.
지금 근위대원들 사이에 어떤 소문이 도는지 아십니까?”
“뭔, 쓸데없는 소리야? 염동하, 그만 하지.”
“그..그게....흠흠. 처녀귀신이 씌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염.동.하.중.위.!”
“아, 중대장님, 이건 제 얘기가 아니라, 다른 대원들이...아, 억울합니다. 중대장님!!!”
“안 되겠군. 제2중대 5분 내 모두 집합!!!”
“중대장님!!! 그냥...소문이지 말입니다. 아우......
여튼, 공주님 가신 즈음부터인가 그 때부터 이상하시단 말입니다.
그 이후 뭔 일 있으셨냔 말입니다.”
얼어붙었다.
“염.동.하. 당.장. 나,가.”
웃기지 않은가. 허둥지둥 나가는 염중위를 보며, 실소가 새어나왔다.
심장이 말이다. 완전히 망가져버렸다.
시도 때도 없이 뛰어대고, 시도 때도 없이 고통이 엄습한다.
마치 누군가가 저주를 퍼붓듯이 내 심장에 바늘이라도 꽂아두고 있는 듯, 저주인형이라도 된 듯, 심장이 쥐어 짜이는 듯하다.
공.주.님.......
그 세 글자가 물결을 일으켜 거대한 파도가 되어 내게 몰려온다.
어느 새 그녀가 내게로 온다.
그렇게 헤어나올 수 없는 고통의 시간에 잠겨든다.
3
“들으셨습니까? 공주님 곧 입국하신답니다.”
“중대장님, 공주님께서 이번에 새해 왕실 파티 참가하시면, 호위를 제2중대에서 하게 됐답니다.”
“이건 진짜 빅뉴슨데 말입니다. 공주님께서 직.접. 은시경 중대장님을 지목하셨답니다.
와우~~ 진짜 대.박.사.건.이지 말입니다. 우리 공주님, 완전 쿨하십니다.
아니, 품위 운운했던 그..흠흠....어쨌든 중대장님께 다시 맡기시다니...와우~~~~”
“보셨습니까? 중대장님!!! 공주님 완죤!! 완죤!!! 극강 미모~~ 와우!!!!”
“인사하러 안 가십니까?”
그 모든 소식들은 모두 염동하가 전해주었다.
그는 그저 듣고만 있었다.
궁에 도착하신 지 이틀.
그러나 제대로 인사드릴 틈은 없었다.
궁 정문에서 수많은 근위대원들과 함께 잠깐 뵌 것 외에 개인적으로 얼굴을 마주할 수는 없었다.
그랬다. 그것이 그의 위치였다.
반년 간의 속앓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겨울이면, 뭐가 달라지는데?
누군가 그에게 그렇게 묻고 있었다.
그래서 공주님께 갈 수 없었다.
공주님이라는 말 한 마디에도 목이 메일 만큼, 숨을 몇 번이나 고르고 있어야 하면서도,
정작 그는 그녀에게 갈 수가 없었다.
오늘, 왕실 신년 파티를 왕실 별장에서 열기 전까지는 공주님을 가까이에서 뵙지도 못했다.
그렇게 오늘 그녀와 마주했다.
그것도 제대로 말을 건네 본 건, 답답하다며 파티장을 나오는 그녀 뒤를 따르면서였다.
“은시경 씨만.......다른 대원들은 좀 쉬어요.
이 사람은 쉬라고 해도, 안 쉴 거야.”
그녀의 입술에서 자신의 이름이 흘러나오는 것을 오랜만에 들었다.
누군가가 불러주는 이름이 이토록 가슴을 흔들어놓을 줄은 몰랐다.
그래도 공주님의 목소리로 이름을 듣는 것이 좋았다.
그 순간만큼은 조금은 특별해지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마치 처음 만난 날처럼, 분방했다.
답답해 했고, 나가고 싶어 했다.
시경의 눈은 끊임없이 그녀를 쫓고 있었다.
그녀가 의아해 할 만큼, 머리를 몇 번이나 갸웃거릴 만큼, 그의 시선은 이제 감추지 못하게 된 것인지도 몰랐다.
6개월 만에, 그녀와 함께, 눈을 마주하며 서있었다.
그녀의 물음에 바보 같은 대답을 하면서도, 그래도 대화라는 것을, 나누고 있었다.
같이....그렇게 함께...있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또한 잠시일 것이다.
아주 잠시.....
그렇게 그녀는 또다시 홀연히 날아가 버릴 것이다.
그녀가 눈앞에 있어서, 그녀가 그의 목을 감싸고 있어서, 그의 손 안으로 부드러운 그녀의 허리가 그대로 안겨 와서, 그래서 더 울대가 울렁거렸다.
가만히 있어도 자꾸만 저 안에서 울컥한 무언가가 올라왔다.
나는 또......6개월을 이렇게 기다려야겠지.......
같이 있어서 더 고통스러웠다.
떠난 순간이 어떠할지 이제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에,
이 순간이 혼자 있는 어느 날 고통으로 다가올 것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같이 있는 지금이 행복한 것이 아니라 고통스러웠다.
몇 번이나 목을 가다듬고, 몇 번이나 심호흡을 하며, 그렇게 마음을 눌렀다.
목을 스치는 부드러운 손길도, 그녀의 하얀 얼굴도,
너무 가늘어서 힘을 주면 부러질 것만 같은 그녀의 허리도, 이상한 듯 바라보는 반짝이는 그녀의 눈도,
그래도 다 지나갈 것이라고, 다 지나갈 수 있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자꾸만 울컥대는 마음을 누르고, 뛰어대는 심장을 진정시키며, 그렇게 지나가라, 제발 지나가라 빌고 또 빌었다.
그러나 그녀는 현실이었다.
손 안 가득 들어와 차는 현실 그 자체였다.
상상했던, 꿈을 꾸었던 그 어떤 순간보다도 아름다웠고, 그래서 가슴이 시렸다.
안 된다고, 정신 차리라고 외치는 이성 사이로 본능은 더욱더 강렬하게 밀려 올라왔다.
서른 해를 참아온, 아니, 이제 서른 한 해를 참아온 남자가 그의 깊은 본능 속에서 꿈틀대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이 조금씩 흔들리는 것을 보며,
그녀의 볼이 빨갛게 물들어가는 것을 보며,
입꼬리로 옅게 미소가 퍼지는 것을 보며,
시경은 생각했다.
자신은 미쳤다고......
분명 미친 게 틀림없다고......
발을 헛디딘 그녀가 비틀대는 순간, 그의 팔은 이성의 명령을 무시하고, 그녀를 자신의 품 안으로 가득 안아왔다.
심장이 온 몸을 두드려댔다.
그녀의 부드러운 몸이, 그녀의 울렁이는 가슴이, 자신의 가슴으로 그대로 전달되고 있었다.
......공주님이었다.
......자신의 오랜 그리움이었다.
4
발코니 앞 겨울의 바람이 지나갔다.
그의 스킨 향이 또다시 그녀에게로 날아왔다.
처음에는 몰랐다.
불이 꺼지고, 순간 어둠이 몰리자 아주 조금 당황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주변에 붙들 사람도 없는데 싶은 순간, 누군가의 손이 다가왔을 때, 다행이다 싶기도 했다.
은시경 씨일 거라고 무조건 그렇게 믿었다.
그래서 그 손이 자신의 손에 얽혀 올 때도, 별 생각이 없었다.
내가 겁낼까봐 그러는 모양이라고, 이상한 놈이라도 들이댈까 봐 그러는 거라고 재신은 혼자 그렇게 생각해 버렸다.
어.........
그 순간 다른 손 하나가 자신의 얼굴을 더듬었다.
어두워서 실수한 건가 싶은 순간, 그 손은 볼을 더듬어 내려가 입술에 머물렀다.
이상하다, 싶은 그 때였다.
누군가의 스킨 향이 진해지는 듯하더니 부드러운 무언가가 입술에 놓였다.
방금 느꼈던 손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훨씬 더 부드럽고, 훨씬 더 따뜻하고, 촉촉했다.
설..마....입술?
1분의 찰나........
지금 뭐지?
불이 켜졌다.
재신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아니 주변을 쳐다볼 수조차 없었다.
누구인지 알게 될까봐, 아니 자신이 생각하는 사람이 아닐까봐,
아니, 아니다.
모르겠다. 정말 아무 것도 모르겠다.
“괜...찮으....십니까......”
자신의 허리를 잡고 있는 이 남자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면 도대체 누가?
그랬다, 재신은 그렇게 생각했다.
이 남자는 아닐 거다. 절대 그럴 남자가 아니다.
도대체 누가, 은시경이 옆에 있는데도 그런 짓을 한 남자가 도대체 누군지......
바람을 쐬어야 했다.
붉어진 얼굴을 식혀야 했다.
이성이 마비된 듯한 머리를 냉정하게 만들어야 했다.
그런데 그 때 그 향이 날아왔다.
마치 자신이라고 말하는 듯이 그가 서 있었다.
위험했다.
위험의 정체를 눈 앞에 목도한 순간이었다.
피하고 싶었던 건지, 알고 싶었던 건지, 재신 스스로도 헷갈리는...순간이었다.
“.....다...당신......?”
이 불안의 정체, 이 위험함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영창......가겠습니다.”
“뭐?”
그가 그녀의 앞으로 성큼 성큼 걸어왔다.
재신의 발은 또다시 뒷걸음쳤지만, 벽에 막히고 말았다.
더 이상 도망갈 곳도 피할 곳도 없었다.
남자가 걸어온다.
몇 걸음 되지 않는 거리일 뿐인데, 영겁의 시간만큼 멀게만 느껴진다.
도망가면 되는데, 소리 지르면 되는데, 재신은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그저 그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한 남자를.....
뜨겁다 못해 타들어가는 검은 눈의 한 남자를......
그의 손이 그녀의 허리를 감아오는 것을,
그녀의 목을 감싸 안는 그의 오른손을,
그의 검은 눈이 닿을 듯이 다가오는 것을,
아니, 그 검은 눈이 깊게 감기는 것을, 감긴 그의 눈이 파르르 떨리고 있는 것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그의 입술이 다가왔다.
아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깊고 뜨겁게 다가왔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의 가슴을 밀어내 보아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은..시...흡...!”
그 순간, 그의 혀가 그녀의 입술 안으로 깊이 들어왔다.
입술과 입술이, 혀와 혀가 얽혀들었다.
그의 혀는 도망가는 그녀의 혀를 잡고 섬세하게 쓰다듬었다.
간지럽고 서걱대고 저릿했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만큼, 그녀의 모든 감각들이 일어서고 있었다.
그만이라고 말하고 싶은데, 그녀는 그를 밀어내지도, 거부하지도 못했다.
무언가 감각들이 폭발해서 미칠 것만 같았다.
이때까지 이런 감각들이 존재했는지 의심스러운 감각들이 온 몸을 흘러다녔다.
그의 혀가 얽혀들 때마다 발끝까지 저릿했다.
어느 새 그녀의 벗은 등을 덮고 있던 자켓은 떨어져 내리고, 그의 손은 그녀의 등을 쓰다듬었다.
그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신음이 터져 나왔다.
자신이 생각해도 낯뜨거운, 여자의 달뜬 신음이었다.
내가 미쳤나봐, 싶어도 참을 수가 없었다.
멈출 수가 없었다.
그의 입술을 그의 손길을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이성을 놓았다.
재신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그제야 시경이 재신의 입술을 놓았다.
어깨가 그대로 드러난 그녀가 얼굴을 붉힌 채로 몸을 떨고 있었다.
시경은 떨어져 있는 자신의 자켓을 주워 다시 그녀의 어깨에 걸쳐주었다.
“.....죄송....합니다.”
“..........뭐...가요?”
“제가.....이성을.......잃어서.............”
뭐야, 이 남자.....
이제 와서 실수였다?
순간 재신의 마음은 상해버리고 말았다.
마치 자신이 유혹해서 유혹에 넘어갔다...뭐 그런 소리를 하는 건가?
자존심도 상하고, 열도 받고, 농락당한 것 같기도 하고,
게다가 그런 낯 뜨거운 신음 소리까지 내며, 키스를 즐기기까지 했는데,
얼마나 자신이 우스워보였을까 싶기도 해서,
재신은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뺨이라도 한 대 때려야 하는데, 타이밍을 놓쳐 버렸다.
즐길 거 다 즐겨 놓고, 이제 와서 억지로 키스 당한 코스프레 하기에도 말이 안 되었다.
그래, 술 취한 척, 이게 최고야.
그러니까.....
“됐어요. 나도 뭐...흠.....와인도 아까 마셔서....뭐...술도....”
에이씨.....계속 말이 왜 꼬여, 없어보이게.
말은 꼬이고 열은 나고, 쪽팔리고, 재신은 한숨이 절로 나왔다.
“됐어요. 됐으니까.....난...이제....들어.....”
손사래를 치며 들어가려는 그녀의 팔을 그가 잡아 당겼다.
어!!
“전....아직....안 됐습니다.”
그의 손이 어딘가로 끌어당겼다.
2층 발코니로 이어져 있는 다른 방의 창을 그가 열고 있었다.
“은시경 씨!!! 지금 뭐하는 거예요?!!”
그녀의 말에는 대답도 없이 그녀를 가볍게 안아 방으로 옮겼다.
그러고는 창문을 잠갔다.
“은...........”
미처 그의 이름을 부르기도 전에, 그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을 덮었다.
“싫으....십니까......”
재신의 팔이 그의 목을 감쌌다.
그렇게 달뜬 신음소리만이 창문 밖으로 흘러나올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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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편 가지고 왔습니다.
생각보다 오래 걸렸네요.
금요일에 마감하나 치고, 토요일에 떡실신한 이후 다시 또 다음 마감을 위해 달리고 있습니다.
다음 주 월요일부터 일주일간 출장이 있어서 그 사이에 모든 일을 다 해놓고 가려니 정말 쉴 틈이 없네요.
여튼 여전히 이곳을 방문해 주시는 분들이 이렇게 많다니, 그저 깜놀할 따름입니다.
변함없이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음에 안 드시더라도, 그저 그러려니 하고 읽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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