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과 삶/마흔에 읽는 논어

다시 시작, 飛上

그랑블루08 2015. 9. 3. 15:43

 

 

<대만 지우펀(九份)에서 찍은 풍경>

 

 

2013년 겨울, 논어에 빠져 무작정 읽으려 하다가 된통 호되게 당했다.

한문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2014년 봄부터 한문을 배우게 되었다.

맹자 조금, 대학, 중용까지 빠지기도 많이 빠져가면서 한문을 배웠다.

배웠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저 그 자리에 가서  앉아 있었다고 해야 할지.

어쨌든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이렇게 주섬 주섬 다니다보니,

이제 해석되는 부분들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기다려오니, 드디어 <논어>를 배우게 됐다.

나름 코스가 있어서 몇 년을 주기로 돌고 도는 듯했다.

그래서 2015년 가을,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논어>를 제대로 배울 수 있게 되었다.

 

아무 것도 모르고 맹자를 들었다가 기겁을 했고,

한참 후, 대학과 중용을 들으니, 이건 좀 들을 만하다 싶었다.

이제 나름 앞 과정을 좀 읽었으니 <논어>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도 된다.

 

대학과 중용을 배울 때, 아는 언니가 써보라고 권유해 줘서, 노트에 쓰게 됐다.

그런데 그게 꽤 도움이 되었다.

쓰는 것도 읽는 것도, 또 예습하고 복습하는 것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 논어도 쓰고 있다. 이제 시작이지만, 이렇게 배워나가다 보면, 좀 깨우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혼자서 읽는 것과 배우면서 읽는 것은 확실히 달랐다.

 

子曰 學而時習之면 不亦說(悅)乎아

 

학이편 첫장에 나오는 이 말에 대해 블로그에 내 나름의 오독적인 해석을 올려놓기도 했다.

그런데 배우면서 느낀 점은 또 달랐다.

 

때때로 익힌다(時習)는 뜻이 너무나 강렬하게 다가왔다.

익힌다(習)이라는 단어에는 새의 날개가 있다.

즉 익힌다는 것은 어린 새가 날기 위해 둥지 안에서 수도 없이 날개를 파닥거리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위한 해석으로 논어에는

"習은 數飛也니 學之不已는 如鳥數飛也니라"라는 주석이 달려 있다.

"익힌다는 것은 자주 나는 것이니 배우는 것을 그치지 않는다는 것은 마치 새가(어린 새가) 자주 나는 것과 같다"라는 뜻이다.

 

어린 새는 아직 날지 못한다.

그 새가 날기 위해서 둥지에서 얼마나 파닥거릴 것인가.

수도 없이, 수천 번, 수만 번도 더 날갯짓을 할 것이다.

아무리 해도 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수도 없이 그렇게 파닥거린 연후에,

드디어 단번에 비상해서 저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이다.

 

지금 날지 못하니까, 안 되는 것이 아닐까 싶을 때, 그것이 아니라고 논어는 대답했다.

파닥거리는 동안 새는 날지 못했다.

그래서 더 파닥거리며 새는 날개를 움직여 나는 연습을 했다.

수천만 번을 파닥거려도 새는 날지 못했으나, 새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단숨에, 그 연습이 쌓이고 쌓여 자신도 모르게 허공으로 발을 내디뎠을 때,

그 때, 저 하늘 위로, 飛上하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내가 날아오르지 못하는 것은 아직 그 파닥거림이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충분히 연습하지 않았기 때문에, 또 충분히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에,

충분히 내 실력을 쌓지 않았기 때문에,

그래서 아직 비상할 때가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매일 매일 비상을 꿈꾸며 내 실력을 쌓아 가면, 비록 지금 날아오를 수 없다 하더라도,

내 노력과 내 연습과, 내 실력이 쌓이면, 그 성실함이 비상하게 해 줄 것이다.

 

아직 내 노력이 부족하다.

내 훈련과 내 연습이 부족하다.

그러니 더 열심히 파닥거리며 성실하게, 포기하지 않고, 실망하지 않고, 낙망하지 않고,

그렇게 날갯짓을 해나갈 것이다.

 

나의 飛上을 꿈꾸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