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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상플] 94년 어느 날, 어쩌면 Epilogue - 세상의 모든 40대를 위한 오마쥬(完)

그랑블루08 2016. 4. 7. 20:26

[선택/상플] 94년 어느 날, 어쩌면 Epilogue - 세상의 모든 40대를 위한 오마쥬(完)


 

<원본 글들>

 
94년 어느 날, 어쩌면 1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reply1988&no=887558

94년 어느 날, 어쩌면 2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reply1988&no=887560

94년 어느 날, 어쩌면 3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reply1988&no=891383

94년 어느 날, 어쩌면 4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reply1988&no=894225

94년 어느 날, 어쩌면 5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reply1988&no=898543

94년 어느 날, 어쩌면 6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reply1988&no=907091

94년 어느 날, 어쩌면 7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reply1988&no=911318

94년 어느 날, 어쩌면 8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reply1988&no=932656

94년 어느 날, 어쩌면 9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reply1988&no=937120

94년 어느 날, 어쩌면 10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reply1988&no=943519

94년 어느 날, 어쩌면 11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reply1988&no=948911

94년 어느 날, 어쩌면 12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reply1988&no=954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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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년 어느 날, 어쩌면 16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reply1988&no=989418

94년 어느 날, 어쩌면 17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reply1988&no=998118

94년 어느 날, 어쩌면 18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reply1988&no=1008141

94년 어느 날, 어쩌면 19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reply1988&no=1016357

94년 어느 날, 어쩌면 Epilogue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reply1988&no=1016358

 

 


* 배경음악  : https://www.youtube.com/watch?v=Dic27EnDDls

 

걱/정/말/아/요/ 그대 - 이/적

 

그대여 아무 걱정 하지 말아요
우리 함께 노래 합시다
그대 아픈 기억들 모두 그대여
그대 가슴에 깊이 묻어 버리고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떠난 이에게 노래 하세요
후회없이 사랑했노라 말해요

그대는 너무 힘든 일이 많았죠
새로움을 잃어 버렸죠
그대 슬픈 얘기들 모두 그대여
그대 탓으로 훌훌 털어 버리고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우리 다 함께 노래 합시다
후회없이 꿈을 꾸었다 말해요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우리 다 함께 노래 합시다
후회없이 꿈을 꾸었다 말해요
새로운 꿈을 꾸겠다 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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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장 에필로그 - 세상의 모든 40대를 위한 오마쥬

 

 

그대가 아름다운 것은,

그대가 젊기 때문이, 어리기 때문이 아니다.

그대가 아름다운 것은,

그대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대가 아이이건,

그대가 이제 태산 같은 부모님이 되었건,

혹은 이제 황혼에 서 있다고 해도,

그대는 여전히 청춘이다.

 

치열하게 지금 이 순간 살아가고 있는 그대는,

살아가고 있는 것만으로,

포기하지 않고 한 걸음을 딛고 있는 것만으로,

청춘이다.

 

삶이 얼마나 지난한 것인지,

그러나 또 동시에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알고 있는 그대는

여전히 청춘이다.

 

그러니, 세상의 모든 청춘이여, 응답하라.

 

 

1

 

 

1996615일 오전 1030분부터 시작된 하이원리조트배 명인전 대국이 한참이나 이어지고 있었다. 오늘 이 명인전 이후 최택 9단의 기자회견이 잡혀 있었다. 아직까지 기자들 사이에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갑자기 최택 9단이 기자회견을 하겠다는 것도 처음 있는 일인데다가 안 그래도 기자들 사이에 루머처럼 떠돌던 여러 이야기에 대한 확답을 듣는 것이 아닌가 싶어 기자들은 특종을 놓칠까 싶어 한껏 긴장하고 있었다.

 

사실 처음 기자회견은 한국기원에서 하기로 했었으나, 장소가 좁다고 기자들의 원성이 자자해서 어쩔 수 없이 급하게 신라호텔 컨벤션홀로 변경하게 되었다. 원래 기자회견 시간은 4시였으나 대국이 늦어지면서 5시로 밀렸다. 그러나 기자들은 이미 점심 이후부터 모두 자리를 잡고 기다리고 있었다. 다행히 대국은 생각보다는 일찍 끝났는지 최택은 5시가 되기 전에 오늘 명인전을 치룬 기사들과 함께 나타났다.

 

최택이 나타나자, 주요 언론 기자들과 기원 관계자들의 카메라 플래시가 쉴 새 없이 터져댔다. 사실 최대의 관심사는 최택이 열애를 발표하는 것이 아니냐는 데 있었다. 정말 항간의 소문처럼 최고의 여배우 모 양인지 아니면 일반인인지, 그것도 아니면 기원 안에서의 새로운 소식인지 다들 들떠 있는 중이었다.

 

최택이 기자회견장 앞에 마련된 장소에 앉자, 사회자가 나와서 장내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오늘 진행 순서에 대해서 소개하는데, 명인전에 관련된 인터뷰와 최택의 발표, 그리고 기자들의 질문으로 이어진다는 것이었다.

 

명인전에 관련된 대국 인터뷰가 어느 정도 끝나자 최택에게 바로 마이크가 넘어갔다.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최택과 인터뷰하는 것이 하늘에 별따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말을 아끼는 인물이, 이렇게 기자회견까지 할 줄은 몰랐다. 그리고 그의 입으로 나온 말은 과히 핵폭탄급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최택입니다. 오늘 이렇게 많이 와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지금까지 저를 성원해주시고 아껴주신 국민 여러분, 그리고 기자 여러분, 또 바둑을 사랑해주시는 팬 여러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사실 제가 오늘 여러분들을 모시게 된 것은 제 결혼을 발표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순간 장내는 그야말로 아비규환이었다. 고작해야 열애설 인정이거나 하지 않을까 했는데 갑작스런 결혼발표에 기자들은 이게 무슨 상황인지 자신들도 인지가 되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사진을 찍는 기자, 서로 연락하는 기자, 신문사로 직접 전화를 하러 뛰어가는 기자들로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제 신부가 될 사람은 그저 평범한 일반인입니다.

그래서 언론에 노출되지 않기 위해 많이 노력해 왔습니다.

저는 공인이지만, 제 신부가 그렇게 공개적으로 알려지는 것은 그 사람을 위해서 피하고 싶었습니다."

 

"잠시만요. 혹시 그 신부되시는 분이, 승무원 아닙니까?"

 

갑작스럽게 던진 기자의 질문에 사회자가 제재를 하려 했으나 택은 괜찮다며 바로 대답을 하겠다고 했다.

 

". 맞습니다."

 

그러자 또다시 장내는 난리가 나고 있었다. 모두들 한 입으로 외치고 있었다.

 

"대한의 얼굴? 진짜 대한의 얼굴 아니야? 옛날에 왜 사진 찍혔던?"

 

"오랫동안 친구였다는, 그 뭐 동네 친구?"

 

그 사이 또 기자 한 명이 손을 들고 물었다.

 

"얼마 전에 광고에 나왔던 대한의 얼굴, 맞습니까?"

 

". 맞습니다."

 

사실 그 전까지는 덕선은 그저 평범한 승무원이었다. 그러나 얼마 전, 사내 승무원을 콘셉트로 삼아 항공사에서 광고를 찍으면서 몇몇 승무원이 나오게 되었다. 그 중 한 명이었던 덕선은 광고에 등장하자마자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만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미모의 여배우를 연상시키는 데다가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미소까지 일명 대한의 얼굴이라며 한동안 난리도 아니었다. 심지어 광고계에서는 그녀를 캐스팅하고자 했으나 그녀가 자신은 승무원이 천직이라며 단칼에 거절했다는 풍문도 기자들 사이에서는 간간히 돌고 있었다.

 

택이 인정하자, 이제 기자들은 바빠지기 시작했다. 누구보다 빨리 특종을 터뜨려야 하니 무엇보다 시간이 관건이었다. 택의 기사를 받아 적는 사람, 그것을 뛰어가서 전화로 옮기는 사람, 그러면서 대한의 얼굴 사진을 기사로 올리라는 사람, 그렇게 기자회견장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는 동안 유 과장과 함께 묘령의 여인 두 명이 스탭 목걸이를 목에 걸고 조용히 뒤쪽에 앉았다.

 

사실 이 둘은 덕선과 탑 언니였다. 오늘 오전에 비행을 마치고 돌아왔으나, 덕선은 이곳에 올 수 있을 거라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겁도 났고, 떨리기도 했고, 이런 공적인 장소는 자기가 설 곳이 못 된다고 생각했다. 또 택이도 자신이 하겠다며, 굳이 덕선까지 힘들게 그 자리에 설 필요가 없다고 든든하게 말해준 덕분이기도 했다. 그러나 탑 언니가 구경가자고 했을 때, 사실 궁금하기도 했다. 택이가 자신에 대해 무슨 말을 할지, 우리의 결혼에 대해서 어떻게 말할지 기사로 볼 수도 있지만, 직접 택이의 말을 듣고 싶기도 했다.

 

물론 처음 탑 언니가 구경 가자고 했을 때는 들키면 어떡하느냐고 안 된다고 했지만, 유 과장님이 스텝 목걸이까지 준비했다고 하자, 혹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승무원 복장이라는 메리트가 있어서 그 옷만 갈아입으면 절대 모른다는 언니의 말이 묘하게 설득력이 있었다. 사실 탑 언니의 말처럼 사람들은 덕선이 옷만 갈아입고 머리만 길게 풀어도 잘 알아보지 못했다. 그것이 승무원 복장이 가지고 있는 함정일지도 몰랐다. 그래서 결국 탑 언니와 함께 기자회견장에 몰래 숨어들었다. 워낙 사람도 많고 북새통을 이루고 있어서 택이도 전혀 알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럼, 신부되시는 분은 결혼 후 일을 그만 두시는 겁니까?

아무래도 대한민국 최고의 국수이신 최택 9단님을 내조하셔야 하지 않나요?"

 

마침 덕선이 들어왔을 때, 덕선에 대한 질문이 이어지고 있었다.

 

"전 내조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그 사람에게는 그 사람의 인생이 있습니다.

위대하고 큰 사람입니다

세상에서 일해야 할 사람을 저라는 울타리에 가두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외조를 해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기 저기에서 오~하며 멋지다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뒤쪽 자리에 앉아 그 이야기를 듣는 덕선도 뭔가 울컥하고 있었다. 언제나 택이는 그랬다. 언제나 덕선이 우선이었다. 지금 그 말처럼, 택은 정말 덕선을 위대하고 큰 사람이라 여겨주었다.

 

그렇게 여러 질문이 오가는 사이, 갑자기 옆에 탑 언니가 손을 들었다.

 

"..언니, 지금 뭐하시는....거예요?"

 

덕선은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서 당황하는 사이, 다행히 사회자는 앞쪽에 있는 다른 질문자를 지목했다. 한시름 놓는 순간, 갑자기 택이 사회자를 불렀다. 택은 그에게 몇 마디 소곤거리자 갑자기 두리번거리던 사회자가 탑 언니를 발견하고는 탑 언니에게 발언권을 주었다.

 

사회자가 탑 언니를 지목하자, 덕선은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알지도 못한 채, 들킬까 싶어서 고개를 숙였다.

 

"최택 9단님, 제가 듣기로 엄청난 로맨티스트로 아는데요. 혹시 프로포즈는 하셨나요?"

 

"? . 한 것 같긴 합니다만...."

 

"제대로 하신 거 맞나요?

원래 프로포즈는 이벤트도 있고, 무릎도 꿇고 해야 하는데....풍선도 달고 꽃도.....

그런 거 다 하셨어요?"

 

택은 당황한 것인지 아무 말이 없었다. 고개를 숙인 채, 귀로만 이 상황을 듣고 있는 덕선은 도대체 저 언니가 왜 저러나 싶었다. 그저 조용히 이렇게 넘어가 주길 간절히 바라고 또 바라고 있었다.

 

"못하셨으면, 지금 하시는 건 어떠세요?"

 

그 말에 주변에서 오 하며 탄성을 보냈다. 기자 회견을 빌미로 신부에게 하는 말을 들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다들 영상 혹은 사진으로 혹은 기사로 신부에게 청혼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 덕선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주변이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아까까지의 상황과 완전히 달랐다. 아까까지도 북새통에 아비규환이었지만, 이건 진심으로 무언가 큰일이 벌어진 것 같았다. 혹시나 해서 고개를 들어본 덕선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최택은 지금 단상에서 내려와 기자들 사이로 걸어오고 있었다.

 

아닐텐데, 설마....

 

택은 기자들 사이를 가르고 똑바로 그녀를 향해 다가왔다. 설마설마 하던 기자들은 택의 걸음 하나하나를 카메라에 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언젠가 이런 광경을 본 적이 있다. 열여덟 어린 날, 택이 대국을 치르기 위해 가던 그 길을 기억한다. 기자들에 둘러싸여서 엄청난 플래시 사이로 택은 무표정한 얼굴로 익숙한 듯 걷고 있었다. 그저 그 모습을 자신은 뒤에서 지켜볼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이 아니었다. 그 플래시들이, 그 엄청난 카메라들이 지금 자신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택이가 이끌고 있었다.

 

그렇게 택은 덕선이 앉아 있는 바로 앞까지 걸어왔다. 그리고 덕선의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 순간 수많은 플래시들이 터졌다. 설마 설마 했는데 진짜 이곳에 최택 9단의 신부가 와 있었다.

 

기자들이 외치고 있었다. 대한의 얼굴, 대한의 얼굴!

 

그랬다. 바로 그곳에 최택 9단과 그의 연인인 대한의 얼굴이 한 자리에 있었다.

 

"........"

 

무릎을 꿇고 그녀를 바라보며 미소 짓는 택이를 보며, 덕선은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것 외에 다른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다.

 

"덕선아....."

 

그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 그 시끄럽던 세계가 고요해졌다. 번쩍이는 섬광도, 카메라도, 웅성이는 사람들의 외침도, 그 어느 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그 속에서 오로지 단 한 사람의 목소리만, 단 한 사람의 모습만 보였다.

 

"숨도 못 쉬던 그런 날들이 있었어.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 싶은 날, 너를 만났어."

 

"............."

 

"고마워. 덕선아.

넌 내게 공기 같은 사람이야.

내가 숨을 쉴 수 있게 해주고, 나를 살 수 있게 해주는 그런 사람이야.

태어나줘서 고마워. 그 어린 날, 내게 손 내밀어 줘서 고마워,

그리고 이런 나를 받아줘서 고마워.

무엇보다, 이 하늘 아래, 나와 같이 숨 쉬고 있어줘서, 이렇게 내 곁에 살아 있어줘서 고마워."

 

"...택아..."

 

덕선의 눈에 눈물이 글썽이고 있었다.

 

"사랑해, 덕선아. 나랑 결혼해줄래?"

 

"당연하지. 택아. 나도 너 없으면 안 되는 거, 알잖아?"

 

덕선의 대답에 택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드리워졌다. 덕선에게는 늘 보는 미소지만, 기자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저 얼음 같은 남자가 저런 미소도 지을 수 있는 건가 싶어 기자들의 손은 그저 바쁠 뿐이었다.

 

"성덕선, 이제 어떡하냐.

전국에서 이제 내가 니 껀 거 다 아는데,

나 버리면 안 된다."

 

"뭐래?"

 

"최택은 성덕선 거라고,

너 이제 빼도 박도 못해. 도망가지도 못해.

전국이 다 안다고.

그러니까, 너 나 책임져야 돼."

 

덕선의 볼로 눈물이 방울져 흘러내렸다. 그러나 그녀의 입가에는 환한 미소가 퍼져나갔다.

 

"그래! 내가 책임질게. 나야 좋지, . 웬 떡이냐."

 

덕선의 볼로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덕선의 볼로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으로 닦아주던 택이 그대로 덕선의 얼굴을 잡고 그 붉은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주변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지만, 두 사람에게는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엄청난 플래시에도, 엄청난 소리에도, 그들의 세계는 두 사람밖에 없었다. 서로가 서로를 사랑으로 선택한 두 사람밖에 없었다.

 

"택아, 난 늘 왜 날 좋아하는 사람은 없는지 고민했어.

난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여자인가, 가족에게서도 그렇게 늘 뒷전이니까,

그런 건가 생각했었어.

근데, 늘 니가 내 뒤에 있더라.

늘 나를 봐주고, 나에게 웃어주고, 내 등을 지켜주고....

그런 사람이 택이, 너였어.

너 덕분에 알게 됐어.

사랑받는 것보다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 일인지, 널 통해 알게 됐어."

 

"아니, ...절대 나 못 따라와.

니 평생 노력해도 안 될 걸?"

 

택의 그 말도 고마웠다. 아무리 뛰어가도, 아무리 다가가도 절대로 그의 사랑을 이기지는 못할 것이다. 그것이 감사하고, 그토록 벅찰 수가 없었다.

 

"군대 가 있는 동안, 너 이제 나 버리고 절대 도망 못 간다."

 

"안 가. 니가 가라고 그래도 안 가. 그리고 너 4주밖에 안 되잖아. 4주 가지고....."

 

택의 입술이 또 한 번 그녀의 입술을 삼켰다. 오롯이 그들만의 세상이었다.

 

 

2

 

 

기자회견이 잡히기 열흘 전, 기원에서는 유 과장이 무언가로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바둑 외에는, 아니 덕선이와 바둑 외에는 그 어떤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택의 눈에도 머리를 붙들고 사무실 자신의 책상에 앉아 있는 유 과장이 지금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모르는 척 해주는 게 예의일까 싶어 인사를 왔다 조용히 문을 닫고 가려던 택은 자꾸 한숨을 쉬는 유 과장을 모른 척 할 수가 없었다.

 

무슨 일 있으세요?”

 

에휴, 지금 프로포즈 때문에 미치겠습니다, 아주.”

 

? 프로포즈, 하신 거 아니셨어요? 다음 달에 결혼하시잖아요.”

 

그렇죠. 그건 그거고, 프로포즈는 프로포즈니....에휴....”

 

택의 머리로는 유 과장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결혼하자는 말이 프로포즈인데, 그건 그거고 이건 다른 거라는 뜻인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멀뚱하게 유 과장을 바라보자 유 과장은 아차 하는 표정으로 설명을 덧붙였다.

 

최 사범님은 모르실 수도 있겠네요.

그게 여자들 로망이랍니다.

결혼식 하기 전에 아주 난리법석을 떨면서 프로포즈를 받는 게 소원이라는데,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입니다.“

 

, 따로 해야 한다는 말씀이세요?”

 

예에~. 뭐 촛불을 깔고 피아노를 친다든가, 아니면 많은 사람들 앞에서 기습적으로 고백을 한다든가, 그것도 아니면 풍선이나 아, 장미꽃 천 송이를 준다든가....

, 하여튼 드라마가 사람 다 버렸어요.

여자들이 다 그런 걸 바라니, 일반인들은 뭐 가랑이 찢어지죠.“

 

그 말에 택이가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눈치였다.

 

혹시, 최 사범님은 프로포즈 하셨어요?”

 

택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마 유 과장님 말씀하신 대로라면 전, 안 한 것 같은데요.”

 

애고. 그럼 하셔야 할 텐데....

글쎄 요즘 이거 제대로 안 하면, ~~생 바가지에 덜덜 볶인 답니다.

제 친구 녀석이 아예 신신당부를 하더라고요.

벌써 결혼한 지가 5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틈만 나면 마누라가 그렇게 난리를 친다네요.“

 

택의 표정이 뭔가 굉장히 심각해졌다.

 

전 할 줄 아는 게 없는데.......”

 

아무래도 사범님께서 뭘 하시기는 어려우실 텐데....

아니면 장미꽃 천 송이 어떠세요?

필요하시면 제가 전화로 주문 넣어놓겠습니다.“

 

.....유 과장님, 죄송하지만 제 부탁 하나만 들어주시겠어요?”

 

유 과장에게 부탁을 건네는 택의 눈빛이 반짝였다.

 

괜찮으시면, 여자친구 분께도 부탁을 드려야 할 것 같아요.”

 

아이고...얼마든지요. 제가 두 손 두 발 다 걷고 무조건 도와드립니다.

아시잖아요, 덕선 양이 저랑 은서 씨 인연 맺어준 거.

저희가 은혜에 보답은 확실하게 하겠습니다.“

 

그렇게 그 날 택이의 전략 아래, 열흘 후 기자회견 장에서 택이의 프로포즈가 진행되었다. 그건 덕선이 결혼하고 나서도, 지금 이때까지도 알지 못하는 그들만의 비밀이었다.

 

 

3

 

 

201639일 오후 1시 인간과 인공지능의 세기의 한 판이 시작되었다. 서울 포시즌즈 호텔에 들어가기 전, 주차장에 차를 세운 덕선은 차 안에서 택을 품에 안아주었다.

 

"너 이기지 마."

 

"?"

 

'져도 돼'도 아니고 이기지 말라니, 그 말이 의아해서 택이 되물었다.

 

"무서워."

 

"뭐가?"

 

"내 남편이 컴퓨터인 건 싫어.

사람은 말이야. 적당히 허술하고 적당히 모자라고 그래야 돼."

 

그 말에 마치 당연하다는 듯 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택이 뭔가 알겠다는 표정을 짓자, 덕선은 도대체 어떻게 할 건지 궁금해졌다.

 

"지더라도 길은 터줘야지."

 

"어떻게?"

 

"이것저것 해볼까?"

 

참 세월은 웃기게도 40대의 최택을 이렇게 넉살좋게 바꾸어 버렸다.

 

"큭큭. 그래 아주 발라버려. 근데 너 그러다 이기면 어떡하냐."

 

". 그럼 재수지."

 

"오올. 최택, 많이 변했다."

 

", 마누라 덕분이지."

 

"알긴 아네. , 나 덕분에 사람된 줄 알아."

 

그 말에 택은 덕선의 입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 마흔 넘어서 아직도 이러는 건 병이야.

, 머리는 안 빠지니?

머리카락 나는 약 먹을까?"

 

"왜 이래? 지극히 정상적인데.

그리고 아무리 나중에 머리 빠져도 그 약은 안 먹어."

 

"? 너 들었어? 그거 정력 약해지는 거?"

 

"내가 바보냐. 동룡이가 그 약 때문에 울상인 거 모르냐.

그냥 이렇게 20대로 살 거다."

 

"누가 너보고 돌부처래, 어휴.

질택이야."

 

"?"

 

"질척대는 최택. 사람들은 모르지. 이런 널 두고...에휴..국수라고...."

 

"사람들은 몰라도 되지. 너만 알면 되는 거잖아. 질택 좋은데?"

 

"?!!"

 

그 순간 덕선의 입술은 이미 택의 입술이 차지하고 말았다. 언제나처럼, 그에게는 한없이 약한 덕선이었고, 언제나처럼, 그녀만 보이는. 여전히 남자인 택이었다.  



 

<응/갤/펌, 감솨감솨, 알/파/고/ 합짤 금소니 감솨감솨(응/팔/갤 합짤찌는 선택러 횽 짤 펌), 혹시 문제되면 빛삭하겠음>





누군가는 말할지 모른다. 청춘은 아주 짧은 시기, 그 어린 시기일 뿐이라고.

그러나 세월을 겪어낸 사람들은 안다. 세월이 흐른다고, 주름이 는다고, 나이가 들어간다고, 마음까지 늙어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여전히 그 마음은 열여덟 어느 날, 스물넷의 어느 날, 그 날에 살고 있다는 것을.

그리하여 이 두 사람의 이야기는 세상의 모든 40대에게 보내는 오마쥬일지도 모르겠다.

 

 

40대였던, 현재 40대인, 그리고 앞으로 40대가 될 모든 이들에게

당신은 여전히 청춘이라고,

당신의 삶은 여전히 아름답노라고,

위로하는 그대들을 위한 오마쥬.

 

세상의 모든 청춘인 40대여, 응답하라.

그대들의 최선을 다한 삶에, 그리고 앞으로 살아갈 삶에.

그대는 진심으로 최선을 다했고, 또한 오늘도, 내일도, 그대는 최선을 다하고 있고, 최선을 다할 거라고 믿는다.

 

그대가 아름다운 것은, 그대가 젊기 때문이, 어리기 때문이 아니다.

그대가 아름다운 것은, 그대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대가 아이이건,

그대가 이제 태산 같은 부모님이 되었건,

혹은 이제 황혼에 서 있다고 해도,

그대는 여전히 청춘이다.

 

치열하게 지금 이 순간 살아가고 있는 그대는,

살아가고 있는 것만으로, 포기하지 않고 한 걸음을 딛고 있는 것만으로,

청춘이다.

 

청춘은 겉모습이 아니라, 그대의 영혼이 결정하는 것이므로....

삶이 얼마나 지난한 것인지,

그러나 또 동시에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알고 있는 그대는

여전히 청춘이다.

 

그러니, 세상의 모든 청춘이여, 응답하라.

       

<끝>


 

<갤펌 감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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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뭐지, 왜 이렇게 울컥하지. 이렇게 현눈이 터질 줄은...이렇게 울컥할 줄은 나도 몰랐다.
고맙다. 함께 달려줘서. 생각보다 오래 걸린 길이었는데, 내 갠적으로는 생업에 힘들고 바쁠 때였는데
이 글을 쓰며 스스로 위로도 받고, 힘도 얻었었다. 무엇보다 같이 달려준 횽들 덕분에 아주 많이 힘이 되었다고, 꼭 말하고 싶었어.


* 도대체 몇 번을 본 것인지, 한 사람 당 50번, 100번은 본 건가 싶을 정도로, 조회수가 어마어마하도록 열심히 읽어준 횽들,
떠내려가지 않도록 열심히 개추 달아준 횽들,
또 엄청 귀찮았을 텐데 지치지 않도록, 계속 써나갈 수 있도록 어마무지한 힘을 실어준 댓글 달아준 횽들.
진심으로 감사하다.


* 알다시피 이 글은 사실 상플을 빙자한, %8에 대한 내 개인적 리뷰이기도 하다. 내러티브로 쓰는 리뷰랄까.
그래서 극히 개인적인 해석도 있을 수 있었을 텐데, 공감해줘서 많이 힘도 되고 감사했다.


* 디시의 특성상 글을 긁어서 개인소장하는 횽들도 많은 것 같아.(글삭제 대비용이 아닐까 싶다)
근데 내가 사실 상플을 몇 번이나 복습하면서 눈에 띌 때마다 수정하고 있거든.
그래서 이왕 개인소장할 거라면, 내가 전체를 다시 수정하고 정리해서(처음 올렸을 때 퍼간 횽들은 아마 오타와 문장 이상한 경우가 더러 있었을 거야.)
갤에 올릴까 해.


* 어쨌든 지금까지 같이 달려줘서 고맙다. 허접한 선택 리뷰와 후기를 들고 곧 올게.(<9.어.면> 연대기표 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