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하늘의 소리

나를 내려놓기

그랑블루08 2016. 10. 21. 22:25



<런던 웨스터민스터 사원. 영국에 갔을 때, 일요일에 이곳에서 예배를 드렸는데(예배 드리면 내부 구경이 공짜다.) 참 인상적이었다.

특히 소년 합창단의 목소리도 아름다웠고, 신부님(?) 혹은 목사님(?)의 말씀도 좋았다. 감동적이었던 worship.>



오늘 몇 달 간 준비했던 행사를 치렀다.

내가 담당자라 준비부터 실행까지 나 혼자서 고군분투해야 했다.

나도 늙은 건지, 예전만 하지 못했다.

예전엔 매주 행사를 치러내도 아무렇지도 않게 능숙하게 해왔었는데,

이번엔 왜 그렇게 버벅댔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신기한 건, 예전보다 훨씬 더 부드럽고 무난하게 또 여유롭게 잘 치러내었다는 점이다.

예전엔 나 자신이 참 빠닥빠닥했던 것 같다.

실수하지 않으려, 완벽하게 하려, 어쩌면 난 일 잘해, 뭐 이런 완벽하고자 하는 욕망 때문에

나 자신을 갈굼했던 것 같다.

엄청난 시간을 들이고,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그래서 질리도록 완벽하다는 말도 들어보고.....

너무 심하게 일에 매달린다, 병이다, 라는 말도 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올해 슬럼프? 혹은 내면 세계를 다시 정립하는 기회를 얻으면서,

내 손에 힘이 모두 빠지면서 조금은 달라진 듯하다.

손에 힘이 빠지고 나니, 내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아주 작은 일도, 심지어 밥을 해서 아이를 먹이는 일도 힘들었다.

오죽했으면,  내 손에 힘이 들어와서 아이에게 밥 해 먹일 수 있게 해달라, 그리 기도를 했을까.


웃기게도, 그 이후, 나는 나 자신을 신뢰하지 않게 되었다.

아무리 철두철미하게 또 보고 또 보고 하더라도, 내 손에 힘이 빠지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달까.

예전엔 일하는 걸 99.9% 하고, 0.1% 도와달라고 기도했다면,

지금은 그 반대가 된 것 같다.

아니 반대라기보다는 순서가 바뀐 것 같다.


기도를 하며, 명상을 하며 나 자신을 먼저 세우고, 그 이후 일을 한다.

그러면 훨씬 더 단시간에 스트레스 받지 않고 편안하게, 또 무난하게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그리고 나 자신을 더이상 혹사시키지 않게 되었다.

너무 많은 스케줄 때문에 혹여나 놓칠까 싶어서 늘 칼끝 위에 서 있던 그 긴장감에서

이젠 완전히 느슨함으로 바뀌어 버렸다.

물론 걱정은 된다.

여전히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되고, 행사는 무사히 치러져야 한다.

그래서 기도하고 명상한다.

내 능력이 안 됨을 알기에, 먼저 기도하고, 또 내 마음을 차분하게 정리한다.

그러고 나면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떠오르고 또 그것을 정리해 두었다가 실천하면 된다.


한 2년 행사 일에서 손을 뗐다가 다시 하니까, 이상하게 낯설고, 스트레스 받기도 하고, 신경 쓰이고 그랬던 것 같다.

그 전에는 내 능력으로 하는 줄 알았는데,

지금은 그것이 아님을 안다.

조금은 내 자신에게 너그러워진 것도 같다.

실수할 수 있다고, 그러나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나도 부드러워지고, 주위도 부드러워지는 것 같다.


어쨌든 오늘 행사는 무사히 치렀다.

회식이 끝나고 다시 직장으로 돌아와 결과보고서를 쓰면서 드는 생각은,

감사하다는 것.


무사히 치러서, 참 다행이고 감사하다.

내 힘으로 된 것이 아닌 것을 안다.

그래서 감사하고 안도가 된다.


내 능력이 없는 것을 알고 나니, 더 내려놓게 되는 것 같다.

나를 닦달하지도 않고, 나를 매섭게 몰아세우지도 않는다.

나를 비난하지도 않고, 나를 쪽팔려 하지도 않는다.

그저 그러한 대로, 나의 낮음을, 나의 비어 있음을 인정하게 되고,

그러면서 그 비움을 기도와 묵상으로 채워나가게 된다.


그러면서 나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너그러워지는 것 같다.

어쩌면 나의 가장 큰 적은 나일지도 모른다.

자꾸 더, 더!를 강요하는 나 자신.

성공하면, 내 능력이라 여기며 우쭐대는 나 자신.

알고 보면 도우시는 손길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일인데, 그 모든 과업을 마치 내 것인 양 가로챘는지도 모른다.


별 것 아닌 존재인 나를 인정하는 것.

내 능력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실수하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

그래서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거기서부터 회복과 성장은 출발하는 게 아닌가 싶다.

요즘 나는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법'을 배우고 있는 중인 것 같다.

그래서 그 시선이 타인에게도 적용되어  '타인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법'도 배우고 있는 중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