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윤이가 물었다.
엄마는 아빠 만나기 전에 어떤 남자들을 만났는지.
"모쏠은 아니었지?"
곰곰이 생각하다 대답했다.
"그건 엄마 프라이버시야."
그 말을 듣고서도 윤이는 한참 물었다. 아빠한테는 말하지 않겠다, 비밀로 하겠다, 자기만 알려달라. 등등
"그래도 아빠한테 예의가 아니지. 옛날 남자 얘기는...."
"그러니까 예전에 사귀긴 했다는 거지? 몇 명 사겼어?"
"엄마 모쏠이었다."
이걸로 대답은 끝. 윤이는 계속 툴툴대더니 결국 피곤해서 잠들고 말았다.
친구들이 남친이 있으니, 자기도 남친 만들고 싶어서 또 궁금해서 엄마한테 묻고는 한다.
그래도 다른 이야기는 다 하더라도, 엄마의 과거 남친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 한다.
예의인 것 같아서.
남편은 처음 연애할 때, 자기를 만나기 전은 아무 상관 없다, 만나고 나서 다른 남자 만나는 건 안 된다(뭐 당연한 얘기지만) 뭐 그런 얘기를 했었다.
예전에 남친 사귀었던 것도 대충 아는 듯, 마는 듯하지만, 자세하게 얘기한 적은 없고, 앞으로도 할 생각은 없다.
그리고 딸내미에게도.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내가 좋아하는 남자들, 혹은 좋아했던 남자들 성향은 어땠을지.
과거의 남자 말고, 그냥 과거 내 글에서 남자들 성향은 어땠는지......
상플의 첫 시작, <가락국>은 창휘로 시작해서 지금은 <가락국의 왕녀>에서 '희 공자'가 된 인물.
내 최초의 시작이기도 하다.
희는 차가운 듯했으나, 알고 보면 직진인, 단 한 번도 한눈 팔지 않았던 인물이다.
진 공주를 향한 일편단심도 있지만, 희는 진 공주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대단한 인물이라 여긴다.
그래서 자신이 기꺼이 진 공주를 위해서 희생할 각오도 되어 있는 인물이다.
스스로도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진 공주가 더 뛰어난 인물이라 여기고, 나라를 위해 꼭 세워져야 하는 인물로 생각한다.
진은 희 공자와 있으면, 훨씬 더 자신감을 얻고 두렵지만 앞에 나설 수 있게 된다.
성장시켜주는 인물, 또 진 공주 스스로도 몰랐던 자신의 모습을 깨우쳐 각성하게 해주는 인물.
그래서 결국에는 이전보다 더 나은, 더 뛰어난 인물이 되도록 끊임없이 격려하는 인물이다.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냉철하고 차갑게 정신차리도록 진 공주를 세워준다.
어쨌든 아주 오래 짝사랑하며 직진만 하는 인물. 그게 좋았다.
미남의 <신우>는 뒤에서 바라보는 사랑에 눈이 많이 갔었다.
그렇게 나온 <신우 이야기>는 이 아이의 뒷 모습, 그림자에 대해 이야기 해주고 싶어서 시작되었다.
들마에서는 많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내 글의 신우는 기다려주고, 배려해주는 인물이었다.
물론 뒤에서는 또 많이 바뀌기도 하지만.
카리스마 넘치고, 잘난 남자도 좋지만, 앞서 스타처럼 별을 빛내는 남자도 좋지만,
사랑하는 여자가 더 빛을 낼 수 있도록 조용히 받쳐주고 기다려주고 배려해주는 남자가 나는 더 좋은 듯하다.
신우 역시 그런 인물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천재 말고 평범한 인물의 이야기를, 모짜르트 말고 살리에리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뛰어난 천재 옆에 선 살리에리, 그 평범한 인물이 어떻게 성장하고 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해나가는지,
하늘로부터 받은 천재성은 없다 해도, 성실이라는 무기로, 열심이라는 방패로 그렇게 좋아하는 일과 잘하는 일의 균형을 잡아가며
자신의 꿈을 이루어가는 것을 그리고 싶었다.
어쩌면 유일하게 남자가 주인공인 글이 아닌가 한다.
비록 태생은 들마에 빚지고 있으나, 그래도 2/3는 들마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인물로 성장해나가도록 적고 싶었던 것 같다.
은신 이야기들의 은시경과 공주님은 아픈 생채기 같았다.
들마의 충격에 벗어나지 못해서, 그래서 쓰기 시작한 글이었다.
공주님이 성벽에서 노래 부르실 때, 어쩔 수 없이 끌려서 공주님을 한없이 바라보던 은시경의 시선이 내게는 최초의 지점인 듯하다.
할 말 다하는 군인, 조국과 왕실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충성스러운 군인, 답답하리 만큼 원칙주의자인 군인,
그런 군인이 자기보다 너무나 위에 있고 빛나는 존재인 공주님을 사랑하면서 벌어지는 일들.
어쩌면 짝사랑남의 최고봉이 아닌가 한다.
중세의 기사 이야기의 현실판이 아니었나 싶다.
공주님을 지키는 기사의 이야기, 그 기사를 살려내어 쓰고 싶었던 것이 당기못과 나머지 은신 상플들이었다.
당기못의 은시경은, 들마보다 더 순애보지만, 들마보다 더 상남자적인 모습도 있다.
퓨즈가 나가기 전과 후가 다른..... 공주님에게만 한정적인 남자. 늘 공주님만 바라보는 남자. 그래서 늘 공주님이 떠날까 두려운 남자.
능력이 뛰어나고, 잘난 남자....물론 좋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따뜻하고 한 사람만 바라보고, 또 그 때문에 뒤에서 가슴 아파하는 남자를 좋아한다.
그리고 그 최고봉이 바로 은시경인 듯하다.
선택은 사실 단 한 시리즈만 썼다.
<94년 어느 날 어쩌면> 소위 9어면.
그때도 그랬다. 난 착한 남자를 좋아한다. 장난으로라도 심하게 말하거나 툭툭 함부로 행동하는 것을 정말 싫어한다.
바보 같을 만큼 착하고 한 사람만 바라보는 남자를 좋아한다.
스스로의 능력은 엄청나지만, 그것을 대단하다고도 생각지 않고, 으스대지도 않는다.
그게 바로 택이었다.
택에게 꽂혔던 것은 그 순둥순둥한 아이가, 상처가 많은 아이가, 평상시에는 바보 같아 손길이 많이 가는 그 아이가
6회, 엘레베이터에서 대국이 열리는 호텔방까지 걸어가던 그 런웨이.
날카로우면서도 프로페셔널하던, 자기만의 세계에서는 진정 '왕'이었던 그 아이의 갭. 그것이었다.
프로페셔널하지만, 늘 한결같이 한 사람만 바라보고, 한 사람만 아끼고, 한 사람에 대해서는 장난으로라도 함부로 말하지 않는
그런 따뜻함이 좋았던 것 같다.
<9.어.면>은 그런 면들을 더 부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지독하게 사랑했던 그 짝사랑을 그렇게 그려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로부터 이렇게 파생된 내 글들.....
<발해>는 아가씨를 향한 대윤의 순애보, 그리고 발해를 일으킨 최고의 황제이면서도 한 여인만을 향하는 순애보.
어떤 위치에서도 그 여인을 배려하는 대윤. 그런 모습이 내게는 좋다.
한 나라의 황제라면 훨씬 더 자기 마음 가는 대로, 명령이라는 이름으로 함부로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대윤은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
늘 기다려주고, 배려하고, 아낀다.
전장에 나간 후, 수연이 자신이 살던 세계로 떠났을까봐 두려워하며 샘으로 뛰어와서는,
정작 그녀 앞에서는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던 대윤을.....난 참 좋아한다.
그녀가 보고 싶어서, 떠났을까봐 두려워서 한 달음에 뛰어왔지만,
그녀를 그저 고요히 지켜보던 대윤이 참 좋다.
배려의 아이콘일지도.....
가락국의 인물과 겹치는 부분도 있지만, 사실상 전혀 다른 성격이자 다른 인물들이 등장하는 <태왕의 전설>에서 련은
1회 때문에 오해가 되기도 하지만, 역시 그도 그렇다.
뒤에서 고요히 지켜보고, 또 지고지순하게 자신의 사랑을 지켜가는 인물.
그러나 또한 그 사랑을 이루어내고자 모든 힘을 다하는 인물.
<태왕>은 아직 1/3 정도밖에 진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더 말할 수는 없지만,
역시 그도 끝까지 지켜내는, 순애보의 인물이다. 물론 질투는 작렬이지만.
그리고 요즘 내가 다시 빠진 인물.
사실 상플을 쓰지는 않았다.
2016년 강타했던 유시진 대위와 강모연 교수.
그때도 좋아했었지만, 그래서 dvd도 구입하고 했었지만, 어쩌면 그때보다 지금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올 여름 드라마 볼 게 없어서 복습하다가 다시 빠져버렸는데,
그때는 보이지 않던 면들이 보여서, 자꾸 이 유시진 대위에게 빠져든다.
농담하는 남자, 그러나 단 한 번도 강 선생에게 진지하지 않았던 적이 없던 남자,
언제나 한 여자만을 바라보는 남자, 그리고 다른 그 누구에게도 눈 돌리지 않는 남자.
무엇보다 강 선생의 능력을 인정하고 존경하는 남자.
이렇게 놓고 보니, 내가 좋아했던, 좋아하는, 좋아할 남자는 늘 비슷하다.
한 사람만을 지켜보고, 아주 오래 사랑하고, 또 뒤에서 그림자처럼 지켜주고, 그러면서 오래 아파하고......
누구보다 그 사람의 능력을 알아봐주고, 존경하고, 격려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스스로의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그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희생시키지 않는 남자.
스스로가 사랑하는 이를 위해 배경이 되어도, 조연이 되어도, 행복하다는 남자.
그래서 더 멋있는 남자.
그 어떤 순간에도 따뜻하고, 유머러스하지만, 늘 존중하며, 함부로 행동하지도, 함부로 말하지도 않는 남자.
늘 먼저 물어보고 마음대로 하지 않으며, 사랑하는 이의 말에, 마음에 늘 귀 기울이는 남자.
단 한 번도 그 사람의 말을 무시한 적도 없고, 늘 귀담아 들으며, 스스로를 바꾸려 하는 남자
적어놓고 보니 정말 내 이상형인 듯하다.
결국 나는 늘 같은 남자에 대해서 꽂히고, 빠지고, 그래서 허우적대다가 글로 적고, 혼자 좋아하고 설레고 하는 듯하다.
계속 써야 할 글들이 많다.
공개하지 않은 글들도 있다.
그것이 현대물이든, 역사물이든 상관 없이 남자는 한결 같은 듯하다.
어쩔 수 없지. 어차피 글은 내 욕망과 로망의 집산지이니, 그렇게 그 남자 이야기를 자꾸자꾸 쓰게 될지도......
근데 참 나도 한결같다. 변함이 없다. 늘 이런 남자를 좋아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