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결혼기념일이었다.
얼마 전이라 하고 보니 그래도 보름 이상이 지나긴 했다.
5월 12일.
우리 부부는 결혼기념일을 챙기지 않는다.
딸내미 생일이 비슷한 시기라, 남편 생일도 끼여 있고 해서 보통 생일만 챙기고 결혼기념일은 챙기지 않는다.
코로나 19로 딸내미가 학교를 가지 못하고 있던 때였으니, 사실 그 때쯤 내 한계도 거의 폭발하고 있었다.
직장 일에, 딸내미 케어까지 거의 내가 하게 되면서 내 시간이 너무 없으니 정말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5월 12일도 그랬다.
그 날 아이의 식사와 케어를 남편에게 맡겼다. 사실 분노조절장애 상태라 내가 버럭 대는 바람에 남편이 두려워(?)하며 자신이 맡기로 했다.
그리고 밤 12시가 넘어서 얘기했다.
"그거 알아? 방금 시간이 지났지만, 우리 결혼 19주년이었어."
남편이 놀라서 자신은 몰랐다며, 선물 뭐 해줄까 하고 물어봤다.
"필요 없어. 난 선물 받았어. 오늘 내 시간을 준 걸로 선물 땡이야."
그랬다. 다른 건 필요 없었다. 온전한 내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선물을 남편은 자기도 모르게 준 것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처럼, 난 내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람이다.
오롯이 혼자서만 있는 시간. 내게는 너무나 중요하다.
그러나 코로나 19 때문에 오롯한 나만의 시간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폭발해버렸다.
사실 남편은 혼자 있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다. 정말 나랑 반대 성향의 인물이다.
남편은 혼자 있는 걸 싫어하고, 나는 혼자 있는 걸 좋아하고.
이러한 성향 때문에 내가 버럭 댈 때가 종종 있다.
며칠 전 딸내미가 학원 간 시간에 남편이 조금 일찍 퇴근해서 집에 왔다.
좀 늦게 오라고 했으나, 일찍 오고 싶다는 바람에 그러라고 했더니
집에 와서 둘만 있다고 좋아한다. 참, 특이하다.
그러더니 남편이 하는 말.
"우리 연애할까?"
내가 대답했다.
"가족끼리 그런 거 하는 거 아니야."
그래도 굴하지 않고 남편이 묻는다.
"그럼, 손만 잡고 있을까?"
단호박처럼 나는 대답했다.
"아니, 더워."
참, 특이한 남편이다.
남편 덕분에 글에 넣을 소재를 또 하나 얻었다.
반 백 살이 다 되어 가는데, 마음은 정말 여전히 어린가 보다.
마음 속에 여전히 어린애가 살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