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담(媅)
- 즐거운 다미와 트라이앵글 협주곡
(Franz Liszt Piano Concerto No. 1 in Eb major, S.124)
“왜 그래? 너 완전히 불타는 고무대야다.”
지훈이 녀석이다.
저네 반도 아니면서 아예 이쪽으로 출퇴근이다.
난 아무 말 없이 가방을 챙겼다.
“야! 너 보충 수업 해야지. 그냥 갈 거야?”
난 지훈이 녀석에게 일언반구도 없이 가방을 들쳐 매고는 교실 밖을 나갔다.
“다미야!”
지훈이 녀석이 내 팔을 잡았지만, 난 홱 뿌리치고는 계단을 내려갔다.
녀석도 포기한 건지 보이지 않았다.
정말 되는 일이 없다.
교문 밖을 터덜터덜 나가는데, 누군가 내 어깨를 탁 때린다.
“뭐야?”
짜증이 날 대로 난, 내 목소리는 앙칼지게 튀어 나왔다.
“그거 아냐? 넌 목소리로도 사람 죽일 수 있는 거!
목소리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아마 넌 희대의 살인자가 될 거다. 아마...”
“시끄러! 안 그래도 열 받아 죽겠는데 네 녀석까지 난리냐?”
“뭔데 그래?”
“아...그럴 일이 있어. 어떤 불량배 놈 때문에...말하기도 싫어.”
“뭐? 불량배? 너 삥 뜯겼어?”
“뭐 비슷해. 말 걸지 마. 짜증나니까. 그리고 너 자꾸 우리 반에 오지 마.
너 때문에 자꾸 이상한 소문나잖아. 그것도 열 받거든?”
“뭐 어때? 소꿉친구끼리...
우리 볼 거 안 볼 거 다 봤잖아.”
저 유들유들하게 받아넘기는 것 좀 봐라.
하여간 지훈이 놈은 아직까지 내 옆에 빌빌거리며 있는 것이 내가 보기에도 신기하다.
“아! 그리고 너!!!
내가 뭐랬어! 애들 있는 데서 다미라고 부르지 말랬지?
아니다. 너 아예 다미라고 부르지마! 알겠어?”
“이것 보게. 너 또 떼 쓰냐?
어디서 맞고 와서는 딴 데서 화풀이야?
그리고 니가 다미지. 그럼 뭐냐?”
“아...진짜!! 됐다. 됐어. 입 아프다.”
넉살 좋은 지훈이 녀석, 나라도 나 같은 애랑 다니기 싫을 텐데.
10년도 넘는 우정이네 어쩌고 하면서 늘 내 곁에서 챙겨준다.
지훈이 녀석이 없다면, 난 그야말로 왕따겠지.
“오락실 갈 거냐?”
난 말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저 녀석은 늘 나보다 먼저 내 마음을 안다.
오락실에 들어가자마자 “1942” 앞에 앉았다.
그걸 보더니 지훈이가 혀를 찬다.
“하여간. 넌 다른 거 할 거 없냐? 만날 그놈의 1942냐?
저 2차원적 비행기 폭격이 뭐가 재미있다고 날이면 날마다 그것만 해?”
“남이야 뭘 하든 말든?”
난 퉁명스럽게 대꾸하며 미친 듯이 버튼을 빠르게 눌러댔다.
“여튼 대단한 놈이다. 너도!
너 그거 아냐? 너 가미카제 닮은 거?”
“아예 대놓고 욕을 해라, 욕을!!!”
“아...그러게 왜 만날 가미카제 오락이나 하냐고?”
“아 그럼 뭐 하리? 딴~딴~딴~ 딴딴따따 딴딴따따...뭐 이런 거 하리?”
“그게 뭐야? 보글보글? 됐다 됐어 내가 말을 말자.
무식하게 총이나 쏘아 대고, 것도 저렇게 구닥다리 게임을 해대는 너랑 무슨 말을 하겠냐?”
지훈이 녀석이 옆에서 시끄럽게 떠드는 사이 미군 비행기에게 내 비행기가 격추 당했다.
오늘은 오락까지 말썽이다.
추억의 두더지 게임까지 3번을 연거푸 한 뒤에야 나는 오른쪽 팔을 두드리며 오락실 밖으로 나왔다.
여전히 세상이 밝다. 지금쯤은 해가 져도 좋을 텐데...
봄이 깊어가다 보니 해도 깊어가나 보다.
“집에 들어가기 싫어?”
“그만 좀 아는 척 하지?”
어느 틈엔가 내 마음 안까지 들여다보고 있는 지훈이 녀석 때문에 편하면서도 불편하다.
“아니, 집에 갈 거야.”
이제까지 시끄럽게 떠들던 지훈이는 묵묵히 우리 아파트 입구까지 같이 따라와 준다.
“가라!”
“어이~~ 즐거운 담(媅)!!”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깐! 그리고 나, 안 즐겁거든?”
“임마! 가끔은 힘들다고 말해도 돼.
불알친구가 좋은 게 뭐냐. 그런 거 아니냐?”
“..........나, 불알 없거든? 가라! 시끄럽다!”
현관문을 여니 어디에도 불빛이라고는 없었다.
두 분은 외출하셨나 보다.
정말...다행이다.
저녁도 먹지 않고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
몸이 무거운 건지, 마음이 무거운 건지 온통 무겁다.
이렇게 무거운 애에게 뭘 그리 즐겁다고 엄마는 즐거운 담(媅)이라 부르셨을까...
다음 날, 새벽 같이 일어나 학교 옥상 내 자리에 갔다.
놈은 반드시 올 거다.
아예 내 염장을 지르려고 작정을 한 듯하니, 분명히 나타나서 또 속을 확 뒤집겠지.
이 불량배 놈! 반드시 죄 값을 치르게 해야지.
“여어~~. 꽁초! 오늘은 일찍 왔네.”
아니나 다를까 이 불량배 놈도 일찍 왔다.
“이 봐요!! 빨리 내놔요!”
“뭐, 말이냐?”
“아니, 댁이 도둑이에요? 내 CD 내놓으라구요. 그거 국내에서 구하기 힘든 거라구요. 빨리 내놔요!!”
“아...그거?”
“아...그거라니? 빨리 내놔야지, 지금 아 그거 할 때에요? 아, 진짜 짜증나서...”
“너...그거 아냐?”
내가 열 받든 말든 이 불량배 놈은 말만 툭 던져 놓고 느긋하게 담배를 하나 꺼낸다.
근데 다음 순간, 난 내가 열 받고 있다는 것도 잊고 말았다.
이놈은 참 희한한 불량배 놈이다.
라이터가 아니라 성냥을 꺼내서 불을 붙였다.
그것도 몇 번이나 화약에 그어서야 성냥에 불이 붙었다.
그리고 자신의 담배 끝에 갖다 댄다.
치익~
성냥에 붙던 그 불의 소리가 참 듣기가 좋았다.
“저기요.”
“‘이 봐요’에서 ‘댁’에서 ‘저기’까지 간 거냐? 그래, 여기 있다 왜?”
“왜 라이터 안 써요?”
“그게 궁금해서 화가 갑자기 누그러진 거냐? 참 특이한 꽁~~초예요.”
“아~~ 진짜. 대답하기 싫으면 하지 말든가요!!”
“거~~ 꽁초! 성질머리하고는.
그냥 라이터보다는 느낌이 좋잖아.
치익 하고 붙는 소리도 좋고 여러 번 긁어야 붙는 불도 좋고, 또 성냥팔이 소녀, 아니지 성냥팔이 소년이라도 된 것 같아서 재미있기도 하고 말이야.
어렸을 때, 어른들이 성냥에 불붙이는 게 그렇게 해 보고 싶더라.
라이터는 왠지 기계 같아서 좀 싫잖아. 안 그래?“
성냥팔이 소녀?
이 불량배, 나랑 좀 코드가 비슷한 데도 있네.
“어~~! 꽁초 너 유치하다고 비웃는 거냐?”
나도 모르게 웃었나 보다.
근데 참 이상한 불량배 놈이다.
날 언제 봤다고 저렇게 자기 얘기를 막 해대고 있는 건지. 하여간 이해가 안 되는 놈이다.
“원래 그렇게 자기 얘길 막 흘리고 다녀요?
남자치고 말 참 많으시네요.”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말하는 게 좋고 처음 보는 사람한테도 이렇게 붙임성이 좋은 걸 보면, 난 참 인간성이 좋은 거지.”
“미친...거예요?”
불량배 놈이 내 말을 듣더니 기가 막힌다는 표정이다.
그리고는 담배를 한 모금 빤다.
빨자마자 바로 연기를 뿜어낸다.
그 모습이 뭔가 좀 이상하다.
얼굴은 완전히 구겨져 있다.
“담배 좋아서 피는 거 아니에요? 모르는 사람이 보면 처음 피는 거 같겠네.”
“담배 좋아서 피지. 근데 어지러워서 말이야.
내 담배는 늘 지 혼자 타들어갈 때가 많지.”
그러고 보니 아까 불을 붙여놓고 처음 입에 덴 듯하다.
정말 이상한 불량배 놈이다.
아니, 피우지도 잘 못할 거 왜 비싼 돈 들여 피우냐고...
내 얼굴을 슬쩍 보더니 먼저 말을 건넨다.
“왜? 이상하냐? 비싼 담배 혼자 타고 있어서?
왜 피냐고? 그냥, 좋아서.
성냥불을 켰는데, 어디다가는 붙여야 되겠고, 담배에 붙은 불이 타들어가는 것도 좋고,
어지럽지만, 한두 번 빨면 것도 기분이 몽롱하니 좋고, 경험도 되고...그게 내 이유다. 왜 이상하냐?”
“이상해요.”
“나 참. 그럼 신경 꺼라. 내가 좋다는 데 뭐.”
“그쪽은 왜 그렇게 자기 얘기를 많이 해요? 저 알아요?
알지도 못하면서 왜 자기 얘기를 그렇게 함부로 해요?”
“그냥...하고 싶어서. 그리고 내 이름 준이라고 가르쳐줬을 텐데.
내가 선배라고 하라고 했냐, 오빠라고 하라고 했냐?
이 선배님이 이름 불러라는데 계속 위치 지정할래?”
“위치 지정요?”
“그쪽, 이쪽, 댁...뭐 그런거...”
“시끄럽구요. 빨리 내놔요!!!”
“내가 도둑놈처럼 보이냐?”
“네.”
“너 그거 아냐? 굉장히 직설적인거?”
“제 컨셉이에요.”
놈은 나를 희한하게 쳐다보더니 CD를 하나 건넨다.
돌려주는 건가 싶어 좋아하며 받는데 이상한 누리끼리한 색깔에 영어만 한 가득 적혀 있다.
“이게 뭐예요? 내 거 줘요! 빨리!!”
“이거, 하루만 제대로 듣고 오면 줄게.”
“예?”
“니가 꽂아 논 CD 내가 들어봤는데 너 한 곡만 듣냐? 계속 한 곡만 리플레이 돼 있던데.”
“남이 뭘 듣거나 말거나지, 뭘 간섭이에요.
진짜 불량배예요? 남의 물건은 빨리 돌려줘야 될 거 아니에요?”
“돌려준다니까. 이 CD도 내가 아끼는 거니까 너나 나나 똑같잖아.
어차피 나도 이 CD 돌려받아야하니깐 걱정말라고.
근데 너 뉴에이지 좋아하냐?”
“뉴에이지는 무슨...나 그런 거 몰라요.
그냥 좋으면 듣는 거지, 가리는 것도 없고 꼴리는 대로 들어요.”
“그래? 그럼 됐고.”
“남이야 뉴에이지를 듣든 말든 무슨 상관이에요?
별걸 다 간섭하시네요. 정말 오지랖 대마왕 아니에요?”
“그게 내 컨셉이다, 됐냐?
어쨌든 니가 듣던 거랑 비슷한 부분도 있을 거다.
일단 들어보고 내일 다시 보자. 난 간다.”
“이..이 봐요!! 뭐예요? 허! 진짜 가네!! 기가 막혀서!”
내가 뭐라고 열 받아 하거나 말거나 그 불량배 놈은 가버렸다.
놈이 준 CD 표지에는 Franz Liszt Piano Concerto No. 1 in Eb major, S.124라고 적혀 있었다.
케이스를 열어보니 한글 해설서가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네.
불량배 놈이 준 것은 클래식 피아노 음반이었다.
그 놈과 정말 안 어울리는 조합이다.
프란츠 리스트의 피아노 협주곡 1번 내림 마장조라고 적혀 있었다.
원래 클래식이란 놈과 친하지를 않아서 뭐라는 건지 통 알 수가 없었다.
한 곡 안에 4가지가 들어 있다는데, 확 던지려고 하다가 문구 하나가 걸렸다.
‘일명 트라이앵글 협주곡이라고 불린다.’
그 문구가 던지려던 손을 멈추게 했다.
그래 일단 음악이니 들어나 보자.
아예 해설서를 펴 놓고 1악장씩 듣기로 했다.
어쨌든 협주곡답게 뭔가 웅장하게 시작하는 듯했다.
조화로운 것 같기도 했지만, 굉장히 조화롭지 않은 듯도 했다.
피아노의 선율이 아름답다기보다는 뭔가 빠르고 복잡하고...그리고 낯설었다.
2악장으로 넘어가니 그제서야 좀 들을 만했다.
그러나 곧 지겨워졌다.
계속 듣다가는 잠이 올 듯하다고 느끼는 그 순간 다시 소리가 크고 어둡고 빨라졌다.
그러다 3악장으로 넘어갔다.
아주 빠르게 연주하는 피아노 소리.
아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아주 경쾌하달까.
그 소리의 뒤에는 머리를 울리는 맑고 냉철한 소리.
그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대고 있었다.
아...그 불량배 놈이 말한 게 이거였나?
그 이후 4악장에서도 여전히 그 소리는 맑게 울려대고 있었다.
뭔 클래식에 트라이앵글을 쓰는 거지?
어쨌든 한 곡을 다 들었다.
마치 착한 학생처럼 그 놈이 시키는 대로 다 듣다니...
나도 뭐가 어떻게 됐는지...
다 들어도 솔직히 정신만 시끄럽다 뿐이었다.
어쨌든 마음에 드는 건 머리 뒤에서 울리던 트라이앵글 소리와 맨 마지막 마무리 부분 정도랄까.
그 외에는 그저 시끄럽고 너무 왔다 갔다 하고 조용했다가 시끄러웠다가 묵직했다가 가벼웠다고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모든 클래식의 정석인 양 마지막은 웅장하게 짠~짠~짜안~~하고 끝나는 것도 뭐 그저 그런 듯했다.
왜 이런 걸 듣지?
게다가 날 더러 왜 이런 걸 들으라고 하지?
혼자 머리를 쥐어뜯다가 무언가가 불현듯 뇌리를 스친다.
뭐야? 저 불량배 놈을 내일 또 봐야 된다는 거야?
다시는 마주칠 일이 없을 것 같았던 그 놈을 벌써 4번째 봐야 한다는 건가?
그 불량배 놈 때문에 갑자기 내 인생이 복잡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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