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과 트라이앵글/강철과 triangle

강철이 트라이앵글(Triangle)을 꿈꾸다 8

그랑블루08 2009. 6. 25. 16:25
 

8. Nicholas H. Lyue

  - 프로이드와 환자




“일주일에 한 번으로 하지요. 어떻습니까?”


“좋아요. 진행은 늘 이런 식으로 상담만 하는 건가요?”


“아닙니다. 상담하는 시간과 실제로 치료하는 시간이 병행될 겁니다.”


“근데, 정말 치료될 수 있나요?”


하진의 목소리에는 미심쩍다는 분위기가 아주 진하게 보이고 있었다.

그 부분이 Dr. Lyue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

이상하게 이 여자 승부욕을 자극한다.


“치료받고 싶은 마음은 있는 겁니까?”


의사라기보다는 꼭 도전자를 맞는 목소리다.

역시나 그 부분이 하진에게도 승부욕을 자극하고 있었다.


“당연하죠. 그러니까 왔죠. 고쳐준다는 장담만 있다면 뭘 못하겠어요.”


이 여자 봐라. 이젠 대놓고 비아냥거리네.


“아...그럼, 방금 말씀하신 건 지키시겠죠.

 고쳐만 준다면 뭐든 할 수 있다. 이것 말입니다.

 제가 하는 모든 치료에 군말 없이 들어오실 겁니까?”


왠지 이 남자의 말이 의사로서의 말은 아닌 듯해서 불안해진다.


“굉장히 도전적이시네요. 의사 선생님 맞으신가요?”


“아...믿어도 되느냐 이 말씀이시군요.

 물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쓸 겁니다.

 테라피든, 마사지든, 치료든, 상담이든, 모든 걸 제가 직접 하겠습니다.

 그래도 괜찮으시겠지요? 어차피 낫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무...물론...그렇죠. 그렇지만....”


남자의 말이 자꾸 하진을 불안하게 한다.

정소현! 이 기집애 이상한 데 소개한 거 아니야?


“뭐 불안해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아까 남자 친구 이야기를 했으니 수녀는 아닐 테고, 생물학적으로 처녀입니까?”


“네? 그런 질문은 듣기에 매우 거슬리네요.....”


“음, 발끈하기보다는 능숙하게 비켜가고 있으니, 당연히 숫처녀는 아니시고,...

 불감증은 해결해야 되고...어떤 방법을 쓰든지 간에 해결하면 좋은 거 아닙니까?

 도리어 나한테 감사해야 할 것 같은데요. 뭐 손해 볼 거 있습니까?

 만약 고쳐지지 않는다면, 상담료는 일체 받지 않겠습니다.

 어떻습니까? 해 볼만 하지 않습니까?”


“...........................”


“하기 싫으시면 그냥 나가시면 됩니다.”


“....조건이 뭐죠?”


“조건이라기보다는 난 단지 젊은 여자분의 불감증을 고쳐서 행복하게 살게 해 주고 싶다는 의사로서의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환자이기도 하지만, 나의 의사로서의 프라이드를 좀 건드리셨으니, 내가 오기가 발동된 것이고.

 그러다 보니 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해 볼까 합니다.

 물론 당신이 허락하는 한에서 말입니다.

 그리고 모든 치료는 내가 직접 합니다. 어떻습니까?”


“좋아요. 그러죠.

 대신 난 모든 진료비를 불감증이 완전히 없어졌을 때, 지불하도록 하지요.”


“아...한 가지 더. 하진씨의 불감증 치료 과정을 제 논문에 임상 실험 자료로 넣고 싶은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싫으시면 거절하셔도 됩니다.”


“........개인 신상도 밝히는 건가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국적, 나이 정도만 밝히고 하진씨의 모든 개인 신상은 전혀 공개되지 않습니다.”


“음, 좋아요. 그렇게 하세요. 논문 쓰는 고통은 저도 알고 있으니...”


“양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다음 주에 다시 뵙도록 하지요.

 그때도 상담원에게 이름을 말하고 바로 올라오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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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차 선생, 이거 한번 들어볼래?”


닥터 류는 동료 의사 차희철에게 엠피쓰리를 들이댄다.


“류 이사! 뭐냐? 진료 녹음한 거냐?”


“응. 들어봐. 재밌어.”


대수롭지 않게 듣던 차선생은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너, 뭐냐?”


“뭐가?‘”


“닉!! 너 너무 도전적인 거 아니냐?”


“내 신념은 말이야. 의사가 너무 의사스러워도 안 된다는 거야.

 특히 이렇게 꽉 막힌 한국 사회에서는 더더구나 말이야.

 의사가 의사처럼 보이는 건 도리어 마이너스야.

 어차피 정신과 자체가 기피대상이야.

 헬스클럽처럼 가볍게 올 수 있는 곳이라고 느끼게 해야 돼.”


“그래, 그건 나도 이해가 가지만, 아까 그 환자한테는 좀 심한 거 아니냐?”


“그 환자는 내가 도전적으로 나가지 않으면, 다시는 오지 않을 사람이다.”


“딱 한 번 보고 그걸 직감했다?”


“그냥...느낌이 그렇다구. 그건 몇 마디 하지 않아도 느껴지니까...”


느낌...이 녀석은 꼭 “느낌”이라는 말을 쓴다.

늘 들으면서도 차희철에게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단어다.


“느낌이라...그래 우리가 정신과 닥터기는 하지만, 그래도 말이야.

 가끔 니가 그런 말을 할 때면, 니가 의사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들어.

 뭐 좋다. 어쨌든 너의 그 잘난 느낌으로 그 환자에게는 세게 나가야 한다고 판단했다는 거지?”


“의사는 환자의 스타일에 맞게 계속 변화될 필요가 있어.

 지금부터 상담입니다 하고 시작하는 게 아니라 사소한 대화가 상담이 되어야지.

 그 여자는 대단한 승부사야.”


“그렇게 빨리 캐취하셨다?

 닉, 그거 아냐? 너도 그 여자의 도전에 걸려든 거 말이야.”


“음...그렇지. 그래서 나도 재미있겠다 싶기도 해.

 프로이드도 말했잖아. 정신과 의사와 환자의 관계가 늘 고정된 건 아니라고 말이야.

 어느 순간 둘의 사이가 역전되기도 하지.

 어쩌면, 그 환자는 나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렸는지도 모르지.

 이러다 보면, 나 자신도 치료받을 수 있겠지, 뭐.”


“니가 똘아이 기질이 있다는 걸 알긴 아네.

 하여간, 너의 그 낙천적인 승부수는 알아줘야 하니...잘 해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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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가 왔다.

여전히 경계하는 눈빛으로 방문을 열었다.


“오늘은 밝군요.”


주위를 돌아보던 그 여자는 뭔가가 이상하다는 듯이 내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던졌다.


“불편하십니까?”


“조금요.”


이 여자는 내가 아는 보통 한국 여자들과는 조금 다른 것 같기도 하다.

한국 여자들의 특징인 예의상 발언이라는 것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러니 이곳까지 찾아올 수도 있었을 것이고.


“오늘은 상담실을 좀 바꾸어서 진행할 겁니다. 괜찮으시죠?”


“상담을 이곳에서 하지 않고 다른 곳에서 하신다는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테라피와 함께 진행할 겁니다.

 이 방 바로 오른쪽 옆방으로 가셔서 옷을 갈아입으세요.

 간호사의 안내를 받으시면 됩니다.”


“네, 저...근데...”


“네? 뭐 하실 말씀이라도?”


“왜...저예요?”


“네?”


이 여자의 대화법. 역시 특이하다.

다짜고짜 자신이 던지고 싶은 핵심만 던진다. 앞뒤 정황 설명 없이.

몇 번 이야기해 본 건 아니지만, 꼭 말을 먼저 던진 후, 무엇을 말해야 할지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역시나 한참만에야 그 뒷말이 이어진다.


“..........왜, 저를 실험하시려는 거죠?”


“실험이라...혹 왜 제 박사논문의 임상실험 대상으로 잡았느냐는 말씀입니까?”


“네. 그 이유를 꼭 듣고 싶어요.”


이 여자, 앞 뒤 문맥 자르고 던지던 물음과는 달리 단호한 요구를 해 온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당신이 법적으로 처녀이기 때문이죠.”


“처녀라는 말...좀 거슬리네요. 미혼이라는 말로 해 주시죠.”


“아...미안합니다. 제가 외국에 오래 있어서 자꾸 영어식 사고를 하나 봅니다.

 virgin이라는 단어로 자꾸 사고하게 되네요.”


“그래서요? 제가 미혼인 것이 무슨 이유가 된다는 거죠?”


“네? 아, 네.

 이거까지 말씀드려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는 김에 솔직하게 터놓죠.

 제 박사논문 주제가 동북 아시아 여성, 특히 유교권의 여성의 성 인식에 대한 겁니다.

 희한한 게 한국 여성들은 결혼 전과 결혼 후가 많이 다르더군요.

 결혼 전에는 꼭꼭 숨겨뒀다가 결혼 후에는 완전히 오픈을 하는 듯해서.

 혼전 성관계를 하면서도 은근히 그걸 숨기려고 하는 의식에 대해서도 궁금하더군요.

 또 내가 알기로 혼인한 여성들의 과반수 이상이 성 생활에 만족을 전혀 못 느낀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문제도 알아보고 싶더군요.”


“그게 저랑 무슨 상관이죠?”


“상관이 있습니다. 제겐 혼전 여성의 상태를 알아 볼 수 있는 절호의 찬스죠.

 대게 혼전에 불감증 치료를 원하는 경우는 한국에선 정말로 드문 케이스지요.

 그러니 전 당신을 놓칠 수가 없는 겁니다.”


여자는 별말 없이 듣고 있다.

나를 바라보는 것도 같지만, 내 눈을 빗겨가고 있다.


어디를 보는 거지?

아니지, 무슨 생각을 하는 거냐고 묻는 게 맞겠군.

이 여자에게 대답을 하면서도 나는 이 여자의 상태를 살핀다.

순식간에 멍한 상태로 돌아간 듯도 하다.


“자. 이제 오른쪽 방으로 가셔서 옷 갈아 입으시면 됩니다.

 간호사가 있을 테니 안내하는 대로 하세요.”


여자는 내 말을 묵묵히 듣더니 몸을 돌린다.

그런데 나가던 여자가 갑자기 멈춰 섰다.


“그리고...한 가지 더...
당신은 영어식 사고를 하는 게 아니에요.”


“네?”


“영어식이라면 single이라 했겠죠.

 당신은 생물학적으로 인간을 판단하고 있다는 거죠.

 처음 말씀드린 것처럼 ‘실험의 대상’인 거죠. 그럼...”


실험 대상?

그렇게 생각한 적은 없는데...

난 의사와 환자의 관계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관계이기를 원했는데....

저 여자의 말이 뒷골을 뻐근하게 한다.


나는 나 자신을 알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