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cafe.daum.net/0114867174/BAhp/1400 (천사님 사진 펌)
그토록 많은 비가
류시화
1
그토록 많은 비가 내렸구나
밤 사이 강물은 내 키만큼이나 불어나고
전에 없던 진흙무덤들이 산 아래 생겨났구나
풀과 나무들은 더 푸르러졌구나
집 잃은 자는
새 집을 지어야 하리라
그토록 많은 비가 내려
푸르른 힘을 몰고 어디론가 흘러갔구나
몸이 아파 누워 있는 내 머리맡에선
어느새 이 꽃이 지고 저 꽃이
피어났구나
2
그토록 많은 비가 내리는 동안
나는 떡갈나무 아래 선 채로 몸이 뜨거웠었다
무엇이 이곳을 지나 더 멀리 흘러갔는가
한번은 내 삶의 저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모든 것이 변했지만
또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이 있었다
그리고 한 번은 이보다 더 큰 떡갈나무가
밤에 비를 맞으며 내 안으로 걸어들어온 적이 잇었다
그리하여 내 생각은 얼마나 더 깊어지고
떡갈나무는 얼마나 더 풍성해졌는가
3
길을 잃을 때면
달팽이의 뿔이 길을 가르쳐 주었다
때로는 빗방울이
때로는 나무 위의 낯선 새가
모두가 스승이었다
달팽이의 뿔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나는 먼 나라 인도에도 다녀오고
그곳에선 거지와 도둑과 수도승들이
또 내게 길을 가르쳐 주었다
내가 병들어 갠지스 강가에 쓰러졌을 때
뱀 부리는 마술사가 내게 독을 먹여
삶이 한 폭의 환상임을 보여 주었다
그 이후 영원히 나는 입맛을 잃었다
4
그 때 어떤 거대한 새가 날개를 펼치고
비 속을 날아갔었다
밤이었다
내가 불을 끄고 눕자
새의 날개가 내 집 지붕을 덮어 주었다
그리고 나서도 오랫동안
비가 내렸다
나는 병이 더 깊어졌다
---------------------------------------------------------------
비가 내린다.
밤새 비가 내렸는데, 동이 터오는 지금도 비가 내린다.
비 오는 날이 좋다.
감정의 바닥으로....
저 아래로.....
내 감성의 바다를 마주하는 그런 느낌......
현실의 나는.....이성적이고, 그리고 진취적이고...그러면서 달려가는 존재이지만,
나라는 인간의 저 이면에는.....
이러한 바다가 흐른다.
비가 올 때면,
흙냄새가 천지를 진동할 때면,
내 바다가 흐른다.
저 시인의 말처럼......
비가 내리고......
비 소리 사이로 라일락 향이 짙어지고....
그 사이로 감정의 뿌리가 깊어진다.
새벽.....
비내리는 새벽은 온 천지가 바다다.
바다의 색을 띄고, 바다의 냄새를 풍기고, 바다의 풍경이 흐른다.
그래서....
나는 병이 더 깊어진다.
내 바다가 또 다시 출렁인다.
또 다시....이 바다를 진정시켜야 하지만,
이 바다는....또 다시......나를 쓰고 싶게 한다.
또 한번의 마감을 끝내고.....
그리 열심히 하지 못했지만,
달팽이의 뿔이 가르쳐주는 그 길을 따라.....
내 바다의 소리를 따라......
또...그렇게 걸어가면 되는 것이니......후회는 하지 말자.
내 병은......내 바다만큼 깊다.
'나 >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평안 (0) | 2010.06.25 |
---|---|
깨어있는 정신, 臥薪嘗膽 (0) | 2010.05.25 |
죽기 전까지 노력해 봤니..... (0) | 2010.04.23 |
벚꽃 (0) | 2010.04.12 |
고질병 (0) | 2010.03.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