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나의 이야기

나는 병이 더 깊어졌다......

그랑블루08 2010. 4. 27. 05:37

 

 

 

 

 

http://cafe.daum.net/0114867174/BAhp/1400 (천사님 사진 펌)

 

 

1

 

 

              그토록 많은 비가

                                                               류시화

 

 

1

그토록 많은 비가 내렸구나

밤 사이 강물은 내 키만큼이나 불어나고

전에 없던 진흙무덤들이 산 아래 생겨났구나

 

풀과 나무들은 더 푸르러졌구나

집 잃은 자는

새 집을 지어야 하리라

그토록 많은 비가 내려

푸르른 힘을 몰고 어디론가 흘러갔구나

몸이 아파 누워 있는 내 머리맡에선

어느새 이 꽃이 지고 저 꽃이

피어났구나

 

2

그토록 많은 비가 내리는 동안

나는 떡갈나무 아래 선 채로 몸이 뜨거웠었다

무엇이 이곳을 지나 더 멀리 흘러갔는가

한번은 내 삶의 저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모든 것이 변했지만

또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이 있었다

그리고 한 번은 이보다 더 큰 떡갈나무가

밤에 비를 맞으며 내 안으로 걸어들어온 적이 잇었다

그리하여 내 생각은 얼마나 더 깊어지고

떡갈나무는 얼마나 더 풍성해졌는가

 

3

길을 잃을 때면

달팽이의 뿔이 길을 가르쳐 주었다

때로는 빗방울이

때로는 나무 위의 낯선 새가

모두가 스승이었다

달팽이의 뿔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나는 먼 나라 인도에도 다녀오고

그곳에선 거지와 도둑과 수도승들이

또 내게 길을 가르쳐 주었다

내가 병들어 갠지스 강가에 쓰러졌을 때

뱀 부리는 마술사가 내게 독을 먹여

삶이 한 폭의 환상임을 보여 주었다

그 이후 영원히 나는 입맛을 잃었다

 

4

그 때 어떤 거대한 새가 날개를 펼치고

비 속을 날아갔었다

밤이었다

내가 불을 끄고 눕자

새의 날개가 내 집 지붕을 덮어 주었다

그리고 나서도 오랫동안

비가 내렸다

나는 병이 더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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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린다.

밤새 비가 내렸는데, 동이 터오는 지금도 비가 내린다.

 

비 오는 날이 좋다.

감정의 바닥으로....

저 아래로.....

내 감성의 바다를 마주하는 그런 느낌......

 

현실의 나는.....이성적이고, 그리고 진취적이고...그러면서 달려가는 존재이지만,

나라는 인간의 저 이면에는.....

이러한 바다가 흐른다.

 

비가 올 때면,

흙냄새가 천지를 진동할 때면,

내 바다가 흐른다.

 

저 시인의 말처럼......

비가 내리고......

비 소리 사이로 라일락 향이 짙어지고....

그 사이로 감정의 뿌리가 깊어진다.

 

새벽.....

비내리는 새벽은 온 천지가 바다다.

바다의 색을 띄고, 바다의 냄새를 풍기고, 바다의 풍경이 흐른다.

 

그래서....

나는 병이 더 깊어진다.

 

내 바다가 또 다시 출렁인다.

또 다시....이 바다를 진정시켜야 하지만,

이 바다는....또 다시......나를 쓰고 싶게 한다.

 

또 한번의 마감을 끝내고.....

그리 열심히 하지 못했지만,

달팽이의 뿔이 가르쳐주는 그 길을 따라.....

내 바다의 소리를 따라......

또...그렇게 걸어가면 되는 것이니......후회는 하지 말자.

 

내 병은......내 바다만큼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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