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나의 이야기

어떻게 이 자리까지 왔는데......

그랑블루08 2012. 4. 10. 19:42

 

 

 

바뀐 일상 때문에 요즘 적응한다고 고역이다.

다른 지역에 업무를 나가야 해서, 출퇴근 기름값도 엄청 들고 있다.

로테이션 업무라서 당연하긴 하지만,

그래도 적응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원래 있던 곳과, 새로 로테이션 돼서 가야하는 곳.

두 군데를 왔다갔다 하니,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러다 보니, 자꾸 마음에 틈이 생긴다.

 

이렇게 살아본들....뭘 하겠나 싶기도 하고,

꿈이라는 걸 꾸는 것도 사치같기도 하고,

지금 추진하고 있는 일도 아무 소식이 없고,

일에 진척이 없으니, 뭘 어떻게 더 진행해야 할 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자꾸 마음에 틈이 생긴다.

 

뭘 그리 어렵게 사나 싶기도 하고,

그래서 꿈이고 뭐고, 되는 대로 살까 싶기도 하고,

이쯤에서 대충 살아도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다음에서 연재되는 <미생>이라는 웹툰을 보다 울컥하고 말았다.

 

차장까지 올라간 직장맘이 아이 때문에 끙끙대고 있는 모습.

결국에는 남편이 안 된다고 하는 바람에 직장맘이 어떻게 하지 못해 곤란해 할 때,

부하 직원이 대신 아이를 찾아주겠다는 말을 하게 되고,

이 부하 직원 둘은 차장의 아이를 찾으러 갔다.

그곳에 문을 열자마자 아직 남아 있던 종일반 아이들 모두 문 앞으로 뛰어나왔다.

혹시 엄마가 온 건가 싶어서, 남아 있던 모든 아이들이 나왔던 거다.

 

이 장면에서 울컥하고 말았다.

내가 너무 잘 아는 장면.

100일 때부터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겼던 독하디 독했던 엄마.

모정이 없는 게 아니냐며 의심도, 비난도 받았던 나였다.

어떤 마음으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야 하는지,

당해본 사람만이 안다.

직장 어디에서도 직장맘에 대한 이해는 없다.

모든 것은 남자와 똑같아야 한다.

아니 더 독하게 살아야 한다.

 

나도 그랬다.

100일만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면서 정말 피눈물을 쏟았었다.

모유를 짜서 넣어주고, 이유식도 만들어 보내고,

어린이집에는 몇 시간만 보내고, 어떻게든 친정어머니나 시어머니나, 내가 더 보려고 하고.....

그렇게 살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 점점 아이도 크고, 나도 바빠지자,

아이는 종일반 끝까지 남기 시작했다.

일 마치고 미친듯이 달려가면, 아이는 그래도 엄마가 반갑다고 활짝 웃어주고는 했다.

그렇게 오래 기다리게 했는데도, 윤이는 늘 웃어주었다.

그래서 아이를 데리러 가는 시간이 늘 가슴이 쿵쿵 뛰며, 기대가 되고는 했었다.

 

그런데...아마 윤이는 정말 힘들었을 거다.

6살이 되었을 때, 윤이가 드디어 내게 말했었다.

 

엄마, 좀 일찍 오면 안 돼?

나..너무 오래 있는 거 싫어.

 

그제서야 덜컥 했었다.

많이 힘들었을 윤이가, 참다참다 한 마디 한 거였겠지만,

아마, 3살도, 4살도, 5살도 다 힘들었을 텐데.....

그 어린 아이는 그렇게 말해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이 만화를 보고 있는데, 정말....마음이 짠해졌다.

그래서....아이에게 전화를 했다.

오늘은 늦게까지 일해야 해서, 남편이 아이를 본다.

 

윤이는 내 전화를 받고는 또 씩씩하고 즐겁게 대꾸를 한다.

이 아이가 이렇게 밝은 것이 감사하면서도 미안하다.

그리고는 물어보았다.

 

"윤아, 너 예전에 어린이집에 있을 때, 기억나?"

 

"응."

 

"근데, 그 때 엄마가 늦게 와서 안 힘들었어?"

 

"그냥...괜찮았어. 친구들이랑 놀고 있다가 엄마가 왔지."

 

"그래서 많이 힘들었어?"

 

"아니. 별로 안 힘들었어."

 

엄마를 생각해서 이렇게 대답해 주는 윤이가 참 고맙고 미안하다.

 

 

그냥.....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지.......

누구의 희생을 딛고 왔는지......

다시금 깨닫게 된다.

 

대충 하고 끝내기엔,

앞으로 추진해야 할 일을 포기해 버리기엔,

난....너무나 큰 희생을 하며 지금까지 왔다.

 

어떻게 이 자리까지 왔는지.......

잊어먹고 있었나 보다.

 

독하게, 모질게, 그렇게 쌓아왔던 시간들인데,

그걸....그렇게 쉽게 포기해 버려서는 정말....용서받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니.....지금 이렇게 포기하고 싶다는 마음을 내버려둬서는 안 된다.

 

어떻게 이 자리까지 왔는지....

그걸 잊어서는 안 된다.

 

내 아이가, 윤이가,

내 뒤를 보며 걸어올 것이다.

그러니까.....쉽게 포기해 버려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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