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석 다시부르기를 들으면,
그 시절이 생각난다.
내 생애 첫번째 실패이자, 엄청난 굴곡을 맛봐야 했던 시절.
너무나 아름답게 빛나기도 했었지만, 그만큼 또 나락을 헤매어야 했던
나의 스무 살.
나의 스무 살은 좌절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고3 때 생사를 오가셨던 아버지의 병과, 나의 방황과, 여러가지 형편.
지금 생각해보면 뭐, 그리 대단할까마는, 그 때는 참 그게 힘들었나 보다.
이 도시를 떠나고 싶었으니까.......
그러나 떠날 수 없었던, 그 모든 상황들이 나를 냉소적으로 만들었던 것 같다.
열심히 할 이유가 없었던 것 같다.
그 시절, 친구가 내게 선물을 했었다.
어쩌면, 남자 사람인 친구를 그 때 처음 만날 수 있었던 것 같다.
재수 학원.
우리 반은 거의 100명에 육박했고, 그 중 여학생은 20명도 되지 않았다.
나의 화려한 시절이자, 동시에 엄청나게 욕을 먹어야 했던 시절이기도 했다.
그 시절, 유일하게(?) 나를 여자가 아니라, 친구로 대해준 한 친구가 있었다.
생각해 보면, 그 시절, 하도 욕을 많이 먹어서,
가장 친했던 동성인 친구와, 또 남자 사람인 이 친구, 그렇게 딱 두 명이 있었던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호기심에 다가왔다가, 내게서 멀어져 가곤 했다.
아니, 내가 멀어지곤 했던 것 같다.
부담스러웠던 것 같다.
누군가를 사귀는 것 자체가 귀찮았던 시절.
그저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공원을 걷는 게 좋아서, 누구라도 상관없었다.
이러니 욕을 먹었겠지.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나는 아주 희한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남자와도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게 해 준 그 친구가
처음으로 내게 해 준 선물이, 이 김광석 다시 부르기 1,2집이었다.
그 때 나를 붙잡았던 노래가
<그날들>과 <사랑이라는 이유로>,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었다.
그 나이에, 사랑이 뭔지도 모르는 그 나이에 들었던 이 노래들이
아직도 사람을 뭉클하게 한다.
그래서 내게 김광석은 늘 나의 스무 살이다.
너무나 화려했지만, 공허했던, 빛처럼 반짝였지만, 동시에 나락으로 떨어져야만 했던
그 시절의 나이다.
그 친구가 김광석 테이프를 주면서 이런 말을 했었다.
사람은 기다리는 사람에게 돌아온다. 라고.
그 때 나는 글쎄......라고 회의적인 대답을 했었다.
그런데 아주 오랫동안 그 친구의 그 말이 떠오른다.
김광석의 노래를 들으면 어김 없이 그 친구의 말이 떠오른다.
요즘은 그 친구의 말이 맞는 것 같다.
그 관계가 연인일 수도 있겠지만, 늘 변함없는, 그 자리를 지키는 사람에게로
사람들은 가고 싶은 것 같다.
나이가 들면서, 친구든, 가족이든, 동료든, 그런 것 같다, 싶다.
생각해 보면, 이 친구와 친해진 이후로, 난 여자인 친구보다 남자인 친구들이 편했던 것 같다.
결혼하면서 거의 다 끊어졌지만, 꽤 다채로웠던 것 같다.
그러고보니, 남자들과 일하는 것도 그래서 더 익숙한 것 같다.
동료들도 남자가 많고, 같이 일한 팀도 나만 여자고 다 남자인 경우도 많다.
어쨌든 나의 스무 살, 참 아름다웠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또한 동시에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절이기도 하다.
그러나 오늘은 김광석의 노래 때문에 나의 스무 살을 떠올리게 된다.
어느 틈엔가 이렇게 나이가 들어버렸다.
내년이면 이미 20년이 되어버린 시절이다.
어느 틈에 이렇게 나이가 들었을까.
그런데 나는 여전히 스무 살의 철딱서니 없는 앤 거 같다.
나는 그대로인데, 시간만 흘러버린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