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킹투하츠와 은신상플/(은신) 당신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은신상플) 당신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15

그랑블루08 2012. 8. 8. 00:59

 

<당신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15

 

 

 

 

 

 

 

 

* 배경음악을 틀고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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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집무실에 앉아 있는 시경은 온종일 한숨만 내쉬고 있었다.

요즘 자신이 아무래도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뭘 해도 집중도 되지 않고, 머리속에선 공주님만 떠다니는 것 같다.

뭐가 그리 억울한지, 뭐가 그렇게 화낼 일인지,

내 주제에.......

감히 화낸다고 그녀가 쳐다봐주시기라도 하실는지.......

왜 애처럼 이러고 있는지,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조급할 이유도, 조급할 권리도 없건만, 자신이 이토록 불안에 떨고 있는 것을,

어떻게 마음을 진정시켜야 할 지 시경은 알 수가 없다.

 

또 다시 저 아래에서부터 깊이 나오는 한숨을 뱉어내는데 갑자기 휴대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예. 왕실 근위대 소령 은시경입니다.”

 

“와~ 전화도 은시경 씨스럽네요.”

 

밝은 여자 목소리가 들리자 시경은 의아하다.

 

“누구십니까?”

 

약간은 불쾌한 듯, 시경의 목소리는 굳어있었다.

 

“아, 미안해요. 저 혜원이에요. 박혜원!”

 

“예? 제 전화번호는 어떻게 아셨습니까?”

 

“풋~ 못 걸 때 건 거 같네요. 전하께 여쭤봤죠.”

 

“무슨, 일이신지.......”

 

“우리 잠깐 만나요.”

 

“전화로 하시면 안 되겠습니까? 요즘 일이 많아서.......”

 

“공주님, 일이에요.”

 

 

 

 

 

S 호텔 카페.

시경은 창가에 앉아서 창문 밖을 신기한 듯 바라보는 한 여자를 발견했다.

그 여자를 발견하자, 시경은 풀려 있던 자신의 수트의 단추를 다시 잠그고 그녀 앞으로 걸어갔다.

솔직히 시경은 이렇게 외부에서 만나는 것이 달갑지는 않았다.

괜히 오해만 사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공주님 일이란 그 한 마디에 거절할 수가 없었다.

자신의 아킬레스 건.

그는 공주님이라는 그 한 마디에 모든 게 무너질 수도 있는 남자였다.

 

 

 

 

 

“전하, 잠시 외부에 나갔다 와도 되겠습니까?”

 

“응? 아.....혜원이 만나러 가지?”

 

“예? 예....어떻게 아셨습니까?”

 

시경의 말에 재하는 굳이 대답할 생각이 없었다.

 

“야~~ 그러고 보니, 진짜 이거 선 보는 거 비슷한 거 아니야?

데이튼가? 그렇게 안 봤는데, 은시경~ 은근히 여자 밝히는 거 아냐?”

 

재하의 능글능글한 말에 시경은 버럭 대고 말았다.

 

“전하!!! 그런 거 아닙니다. 박혜원 씨가 공주님 일로 갑자기 만나자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나가는 겁니다.

자꾸 그런 식으로 몰고 가시면......”

 

“음....그래, 그런 식으로 몰고 가면....뭐? 그 다음은 뭔데?

니가, 감히 대한민국 국왕을 협박하는 거야? 은시경, 너 요즘 많이 컸다!”

 

“아, 아닙니다. 전하......그런 뜻이 아니라.......”

 

한숨을 쉬던 시경은 다시 단호하게 대답했다.

 

“전하, 부탁드립니다. 공주님 오해하십니다.

제발 저랑 박혜원 씨 엮지 말아 주세요.”

 

재하는 곤란해 하고 있는 시경을 묘한 눈빛으로 쳐다본다.

 

“너, 요즘.......좀 변한 거 같기도 하다.”

 

“예?”

 

자신이 변했다는 말에 시경은 놀란 듯 재하를 바라보았다.

 

“예전 하고 많이 달라.

꽤, 직설적이야.

내가 말야. 예전에 해외 토픽인가 어디서 본 게 있는데,

심장 이식 수술 하고 나서, 사람 성격이 바뀌었다던가, 어쨌다던가 그러더라고.

굉장히 온순했던 사람이, 갑자기 막 다혈질이 되기도 하고 말야.

뭐, 니가 그렇다는 건 아니고.......

어쨌든, 니가 원래 돌직구 스타일이긴 했지만, 자기 감정에 대해서 이토록 직설적인 줄은 몰랐다, 이 말이지.

아니면, 내 조언을 받아들인 건가?”

 

재하는 재신이 선 얘기를 하며 시경을 몰아붙였던 때를 떠올렸다.

 

니 마음 못 숨길 거면, 확실하게, 남자답게, 재신이한테 들이대라고!!!

비겁하게 숨지 말고!!!

 

그 말을 하면서도 재하는 확신할 수 없었다.

은시경이란 놈이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싶기도 했다.

그런데 분명 은시경은 2년 전 그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시경은 묵묵히 고개를 숙이고 있다.

재하는 그런 시경을 가만히 쳐다본다.

분명 저 놈도 알고 있을 거다. 자신이 지금 예전과 다르다는 것을.

무엇이 저토록 저 놈을 바꾸어 놓은 것일까.

어쩌면, 바뀐 게 아니라, 감추지 않게 된 건가 싶기도 하다.

재하는 그런 시경이 안쓰럽기도 하고 또 답답하기도 하다.

그만 나가보라고 하려는 찰나, 시경이 입을 뗐다.

 

“전하, 제가......많이......변했습니까?”

 

“.......................”

 

재하는 아무 대답 없이 재미있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한 마디 한 마디 가슴에서 곱씹어 보는 저 녀석의 버릇은 여전하다 싶다.

 

“절박하니까요.”

 

“뭐?”

 

“제겐, 단 한 발도 물러설 곳이 없으니까요. 전하.”

 

절박.

이 놈의 지금 심정을 가장 잘 대변하고 있는 말일지도 모른다.

하여튼.....여전히 답답한 놈이다.

 

“가보겠습니다. 전하.”

 

 

 

 

그랬다.

절박했다.

그 절박한 마음으로, 물러날 곳이 더 이상 없어서 앞으로 전진하는 것 외에는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어서

시경은 지금 혜원을 만나러 이곳에 올 수밖에 없었다.

 

 

 

 

 

2

 

 

 

 

“어, 은시경 씨, 왔어요?”

 

“예.”

 

시경은 고개를 숙여 가볍게 목례한 후, 혜원 앞에 앉았다.

저번에 후원에서 얘기했다고는 하지만, 시경에게 혜원은 불편했다.

더욱이 공주님께서 오해하실 수도 있어서, 더 불편한지도 몰랐다.

 

“무슨, 일이십니까?”

 

“뭐라도 시키구요. 참, 마음이 급하시네요.”

 

혜원의 말에 시경도 머쓱해져서 그제서야 커피를 주문했다.

혜원은 고개 숙인 채 묵묵히 앉아 있는 시경의 모습을 한참 쳐다보다가 한숨을 작게 쉰다.

 

“은시경 씨, 왠지 나, 피하는 거 같은데.......왜 피해요?

나 분명, 은시경 씨 우리 공주님 남자로 인정한다고 했는데......”

 

“공주님께서 오해하시는 게 싫습니다.”

 

“날 이용해도 괜찮을 텐데요?”

 

“그건, 제가 싫습니다.”

 

어떠한 틈도 없이 각이 잡힌 태도로 앉아 있는 시경이, 혜원은 답답하면서도 믿음이 갔다.

왜, 공주님께 이 사람이어야 했는지 알 것 같았다.

 

“공주님이 나한테 은시경 씨 어떻냐고 물어요.”

 

“예?”

 

“괜찮으면, 아직도 좋아하는 거라면 만나보지 않겠느냐구요.”

 

무릎 위에 놓여 있던 시경의 주먹에 핏줄이 선다.

시경은 주먹을 꽉 쥐며, 밖으로 새어나오려는 한숨을 겨우 참아내었다.

그런 시경을 혜원은 담담히 쳐다보고 있었다.

 

“만나 볼래요?”

 

“전.....그럴 수가 없습니다.”

 

“진짜로 그러자는 게 아니라, 날 이용하라는 거예요.

공주님이 그것 때문에 흔들리실 수도 있구요. 또......”

 

“만약에 아니면요?

보시고, 정말 아니구나 하고 실망하시면요?

다시는 안 보겠다고 하시면 어쩌죠?

전........두렵습니다.”

 

시경의 솔직한 마음이 혜원의 가슴에 와닿았다.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질 수밖에 없는 상황.

혜원이 보기에 시경은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왜, 공주님께 얘기 안 하십니까?”

 

“뭘요?”

 

“저를 좋아하신다는 거, 아니지 않습니까?”

 

“얘기했으면 좋겠어요?”

 

“예. 공주님께서 오해하시는 게 싫습니다.”

 

혜원은 시경의 솔직함이, 그리고 저토록 올곧게 공주님을 향하는 마음이, 무척이나 좋았다.

 

“그 때도 이렇게 하시지 그러셨어요?”

 

“예? 무슨 말씀이신지........”

 

“2년 전에 은시경 씨가 지금처럼 이렇게 솔직했다면, 훨씬 좋았을 텐데요.”

 

시경은 대답대신 혜원을 바라보았다.

 

“왜 얘기 안 하느냐구요?

내 나름대로는 은시경 씨를 돕고 있는 중이에요.”

 

“..................”

 

“공주님, 기억은 못하시지만, 지금 분명 흔들리고 있어요.”

 

“예?”

 

시경은 혜원의 말에 순식간에 심장이 뛴다.

그녀가 흔들린다.......내게?

 

“그래서 조금 더 두고 보려구요.

공주님 분명 평상시와는 달라요.”

 

시경은 혜원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평상시와 다름이 없다고 느꼈는데, 도리어 더 차가워지신 것 같았는데,

그래서 더 차가운 말을 자신에게 던지고 계시는데,

혜원은 분명 다르다고 한다.

 

“어쩌면, 공주님도, 지금 은시경 씨도, 나 때문에 조금은 영향을 받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데.....

아니에요?”

 

영향.

그랬다. 시경은 확실히 영향을 받고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 자신의 앞에서 담담하게 말하고 있는 이 사람의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더 이상은........힘들다.

 

“공주님 기억 있죠. 왜 잃으셨을 지, 생각해본 적 있어요?”

 

“가지고 계시기엔 너무 괴로우셨을 겁니다.”

 

“공주님만의...... 이유일까요?”

 

“예?”

 

“왜 기억이 돌아오고 있지 않을까 싶다가.....

이번에 은시경 씨를 보고 나서 마음이 바뀌었어요.

어쩌면, 은시경 씨 때문이 아닐까요?

공주님이 기억을 잃은 이유.”

 

시경은 단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자신이 죽었다는 것이, 고통이 되셨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그런 극단적인 행동까지 하셨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혜원은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나 때문이라고?

나 때문에 기억을 잃으신 거라고?

 

“난, 신이 계시다는 걸 믿어요.

공주님이 성당에 다니시는 거, 내 영향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요.

내 종교적인 신념으로 보면, 이 모든 일은, 분명 그 이유가 있을 거예요.”

 

“......................”

 

“그래요.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어요.

그냥 닥치는 일은 없어요.

그 일들은, 인간이 그걸 어떻게 겪어내느냐에 따라

내 인생을 풍요롭게도 하고, 내 인생을 나락에 빠뜨리기도 하겠죠.

그러니 공주님께서 기억을 잃으신 데도 이유가 있을 거예요, 분명.”

 

이유.......

공주님께서 기억을 잃으신 이유.

그걸,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저 닥쳤으니, 받아들였을 뿐이다.

이유에 대해 생각하기보다는, 공주님께서 어서 기억을 찾으셨으면 좋겠다고 바랐을 뿐이다.

어쩌면, 정말 나 때문인가.

그렇다면, 왜 나 때문일까.

 

“공주님은 정말 대단한 분이세요.”

 

“저도, 알고 있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난, 아니라고 보는데.......”

 

혜원이 시경의 말을 의심하듯이 재차 물어본다.

시경은 그런 혜원이 의아했다.

자신은 단 한 번도 공주님이 대단하지 않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비록 다리가 불편하시기는 했지만, 그래서 한동안 힘들어하신 것도 사실이지만,

공주님은 그 상황도 훌륭하게 이겨내셨다.

그런데 지금 혜원은 자신에게 모른다고 말하고 있다.

내가.....공주님이 얼마나 대단한 분이신지 모른다고......

 

“무슨, 말씀이십니까? 제가 모르다니요?”

 

조금은 억울한 마음에, 시경은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경직되어 있다.

 

“물론, 은시경 씨가 공주님에 대해 가지는 마음에 대해서는 인정해요.

분명 공주님의 로열티에 대해서도 믿고 있겠죠.

그러나 은시경 씨가 믿고 있다고 해도, 눈으로 확인하진 못했을 거예요.

은시경 씨가 만난, 그 공주님은, 어쩌면 정말 가장 최악인 상태였을 테니까.

공주님의 진짜 모습일 수도 있지만, 공주님의 진가를 은시경 씨는 아직 보지 못했다는 의미이기도 해요.”

 

공주님의 진가를 아직 보지 못했다, 라......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아마 그녀가 다치시기 전 시도했던 도전들은 아마 더 대단했을 것이다.

혜원은 이미 그것을 본 사람이다. 시경 자신이 보지 못했던 것들을 그녀는 공주님과 공유하고 있었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자신과 공주님이 함께 한 시간은, 정말 얼마 안 되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그것을, 기억해 내라고 이렇게 조르는 것도 우스운 일일지도 모른다.

가슴이 답답해온다.

 

“곧 알게 될 거예요.

내가 왜 이런 말을 하는지.

공주님이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은시경 씨도 직접 눈으로 확인하게 될 거예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시경의 마음이 아려왔다.

대단한 존재.

내 여자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자신의 욕심이 애써 마음 한 켠에 묻어두었던, 아닌 척 외면해온 그 말을 혜원이 하고 있다.

두려움이 스물스물 가슴 속에서 번져왔다.

 

“사실, 지금 이 얘기를 하려고 은시경 씨를 불렀어요.

은시경 씨에게 꼭 해야 할 말이 있었어요.”

 

“말씀하십시오.”

 

“내가 왜, 이렇게 악을 쓰고 공부해 온 줄 아세요?

그건 공주님 때문이에요.

공주님은 내게 공부하고 싶게 만든, 그래서 내가 더 성장하고 싶게 만든 사람이에요.”

 

“...................”

 

“사람이 언제 일하고 싶은 줄 아세요?

자신을 믿어주고 인정해주는 사람을 만났을 때예요.

특히 그 사람의 신념이 올곧아서, 이 사람의 신념을 따라가고 싶을 때, 그런데 그 사람이 나를 인정해 줄 때,

그럴 때, 그 사람을 위해서 일하고 싶어지죠.

은시경 씨도 그런 사람이 있죠? 분명히.”

 

신념. 나를 인정해 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라면, 바로 전하시다. 내게는.

 

“나는 공주님의 충신이 될 거예요.

공주님이 일하실 때, 내가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어 드릴 거예요.

그래서 공주님께서 ‘내 사람이다’라고 자랑스럽게 말하실 수 있는 사람이 될 거예요.

그런데 은시경 씨도 그럴 건가요?

당신도 공주님의 사람이 되어드릴 거예요?”

 

시경은 뒤통수를 강하게 맞은 것 같았다.

공주님의 사람......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공주님을 지키는 전담 호위 근위대원이었고, 그녀를 지켜야만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 이후에는 내 여자, 내 사람이길 바랐다.

그런데 지금 내 앞에 앉은 여자는 내게 공주님의 사람이 될 거냐고 묻는다.

그 질문은 늘 전하께만 해당되던 것이었다.

 

“어진 왕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왕은......충신이 만드는 거죠.

충신. 21세기에 그게 무슨 소리냐, 왕실은 허울뿐이다, 그럴 수도 있지만,

난 그렇게 보지 않아요.

제대로 된 왕실이라면, 세상을 바꿀 수도 있어요.

그게 왕실의 존재이유이기도 해요.

그럴 수 없다면, 왕실은 있을 필요도 없죠.”

 

이 여자는 지금 자신의 꿈을, 자신의 믿음을 말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나 또한 그러한 마음이 든 적이 있었다.

우리의 왕이라면, 전하라면, 분명 바꾸실 수 있다고, 위기에 강하시다고 그렇게 믿고 따랐었다.

그러나 공주님의 충신이 된다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아버지께서도 말씀하셨다.

분명 왕실이 스스로 존재 가치를 증명할 수 없다면, 존재할 이유가 없다고 하셨다.

그런데 혜원도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내가 지금 지키고 있는 이 왕실의 존재 가치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그런 신념을 가지고는 있는 거냐고, 지금 이 사람은 묻고 있는 듯도 했다.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지, 감히 ‘왜’라고 생각해보지는 않았다.

아버지도,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여자도, 내게 사실은 같은 질문을 하고 있었다.

 

“왕은, 충신의 눈을 보며 자신을 바로 세울 수 있다고, 난 생각해요.

전하는, 아마 은시경 씨, 당신의 눈을 보며 성장하고 있을 거예요.

당신의 존재는, 전하께 가장 무서운 존재일 거예요.

하염없이 믿는 당신이 제일 무섭겠죠.

그러니 전하껜 당신의 눈이 세상에서 가장 두려울 거예요.

그래서 더욱 자신을 채찍질하시겠죠.

충신이란 그런 거니까요.”

 

충신이란 그런 거다. 그 말이 가슴에 울림을 준다.

그랬다. 내가 충신인지는 모른다.

그러나 전하의 눈은, 너무나 송구스럽게도, 늘 나를 살피셨다.

 

“그런데요. 공주님을 바라보는 은시경 씨의 눈은.....충신의 눈이 아니었어요.

당신의 눈은 여자를 보는 눈이었어요.

그건 당당한 여자를 보는 눈이 아니라, 안타깝고, 애처로운, 약한 여자를 보는 눈이었어요.

그 눈을 보는 공주님은 무엇을 느끼시게 될까요?

자신을 보는 눈이 저토록 애처로운데, 공주님은 자신을 당당하게 여기실 수 있으실까요?

결국 그 눈은, 당신의 기대치가 아닌가요?”

 

그녀는 늘...반짝반짝 빛나셨다.

그 누구와 있더라도, 그 누구도 그 빛을 가릴 수가 없었다.

그토록 빛나는 공주님이셨고, 지금도 그렇다.

그런데 지금 혜원은 내가 그녀를 그렇게 보고 있지 않다고 말한다.

늘 내게는 빛나시기만 하는 공주님인데, 그래서 너무나 빛나서 가슴이 떨리기만 하는 공주님인데,

그런데 내 눈에서 공주님은 다른 걸 보게 되실 거라고 한다.

 

하아..........

 

시경의 한숨소리는 기어코 깊게 뱉어지고야 말았다.

 

“그래요. 은시경 씨는 지금 억울할 수도 있어요.

분명, 은시경 씨는 공주님이 완전히 바닥을 치고 있을 때도, 공주님을 공주님답게 봐주었을 테니까요.

늘 대단하다고, 반짝인다고......얘기해줬다고.......들었어요.”

 

혜원은 공주님과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공유하고 있었다.

공주님께서는 기억 못하시는 그런 이야기들도, 혜원은 도리어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단하다고 바라보는 눈도 두 가지가 있어요.

정말로 대단하다고, 그 사람을 더욱 북돋아주는, 그래서 더 성장하고 싶게 만드는 눈이 있어요.

그런데, 그 대단하다는 눈이, 자기 자신에게 향해서, 자신을 비하하게 만드는 눈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지죠.

그런 눈을 하고 있다면, 상대방은 자신이 더 성장하고 싶지 않을 거예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멀어지는 걸, 보고 싶지 않을 테니까요.

은시경 씨의 눈은 어느 쪽이죠?”

 

“..........................”

 

시경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이기도 했고, 자기 스스로를 들여다볼 용기도 나지 않았다.

내가....정말...잘못하고 있는 것인가........

그런 자괴감이 자신도 모르게 엄습하고 있었다.

 

“은시경 씨를 보면 꼭 얘기하고 싶었어요.

2년 전 당신은.......아마......후자가 아니었나요?

어쩌면 지금은 바뀌었을지도 모르니까, 그래서 더 당신을 지켜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지금...난 잘 모르겠어요.

분명, 예전 공주님께 듣던 모습과는 달라요. 훨씬 더 공주님에 대한 마음이 솔직해진 것 같기도 해요.

그런데...난....왜 걱정이 되는 걸까요?”

 

“그 땐, 제가.......하아......겁쟁이었습니다.”

 

“지금은요. 지금은 안 그럴 자신 있어요? 공주님의 대단함 때문에 물러나지 않을, 자기 비하하지 않을, 그런 자신 있냐구요.”

 

물러나지 않을 자신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물러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그 뒤의 말은......시경도 자신할 수가 없었다.

나는, 정말 나 자신을 비하하지 않을...그런 자신이 있을까.

그러나 혜원은 차가울 정도로 단호했다.

 

“사랑은 사람을 성장하게 만들어야지, 주저앉혀서는 안 되는 게 아닌가요?

당신이 못하다고 주눅드는 것도, 그것도 정말 웃기는 거죠.

결국 상대방은 당신을 놓을 수 없으니, 더 성장하고 싶지 않게 되죠.”

 

시경은 이를 꽉 깨물었다.

이마에 핏줄이 서지만, 턱이 강하게 물려지지만, 혜원의 말은.....틀린 것이 없었다.

 

“세상에서 제일 웃기고 찌질한 놈이, 그런 놈이에요.

지 스스로 움직이려 하지 않고, 노력하지 않고, 여자가 성장하는 걸 막아서, 자기 옆에 두려는, 그런 놈. 세상에서 가장 나쁜 놈이라구요.

그렇게 자기가 작으면, 죽도록 노력하면 되잖아요.

대단한 존재를 사랑했으면, 그 대단한 존재 근처에라도 가게, 미친 듯이 노력하면 되는 거죠.

충신은 그런 거 아닌가요?

난....죽도록 노력해서, 죽기 살기로 노력해서, 공주님께서 일하실 때, 그 옆에서 필요한 사람이 되어드릴 거예요.

공주님이 가지신 비전, 내가 이루어드리고 말거예요.

몸이 약해지셨다고, 마음까지 약하다고, 판단하지 마세요.

위대한 일은, 몸으로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신념으로 하는 거니까요.”

 

지금 내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혜원이 아니라 공주님 같았다.

공주님이 지금, 자신에게 호통을 치고 있는 것 같았다.

넌, 지금 나를 어떤 눈으로 보고 있느냐고.....

내 다리가 아프다고, 약하다고, 내 마음까지 우습게 보고 있느냐고.....

호통을 치고 계셨다.

 

나는...그녀를...내 보호 아래에 있다고만 생각한 게 아닌가.

나는 어쩌면, 그녀를 모르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나는, 그녀를 천상에서 끌어내려 내 곁에 주저앉히려고 했던 것은 아닌가.

 

혜원은 나와 인사하면서,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남겼다.

 

“그래서, 난 여전히, 공주님의 기억, 은시경 씨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은시경 씨가 그 이유를 찾는다면, 공주님의 기억도 돌아오지 않을까요?

아니, 어쩌면 더 이상 필요 없을지도 몰라요.”

 

그 말이 여운처럼 계속해서 시경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시경은 궁에 도착한 후, 차의 시동을 껐다. 어떻게 운전해서 돌아왔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나갈 수가 없었다.

멍청하게 계속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무슨 얘기를 들은 것일까.

지금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일까.

 

충격, 이었다.

혜원의 말은 단 하나도 틀린 것이 없었다.

어쩌면 2년 전 도망가려고 했던 나도, 지금 이렇게 조급하게 달려들고 있는 나도,

사실은 둘 다 비겁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난, 단 한 번이라도 공주님을 공주님답게 해드린 적이 있었을까.

 

 

혜원의 말은 너무나 현실적이었고, 또 그만큼 날카로웠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혜원의 말이 아프지만, 위로가 되기도 했다.

내가 그녀보다 못한 건, 당연한 게 아니냐고,

그러니 죽기 살기로 노력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자기 비하에 빠져 있을 시간에, 어떻게 하면 그녀의 곁에 설 수 있을지,

그녀의 사람이 될 수 있을지, 죽기 살기로 노력해 보라고........

그러니 정신차리라고, 자신의 뒤통수를 갈겨주기라도 한 것 같았다.

 

휴대폰이 울려서야, 시경은 그 깊은 상념에서 벗어났다.

 

“어, 왜?”

 

“근위대장님,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으십니까?

제가 여러 번 문자도 보냈는데요.”

 

동하의 목소리가 다급하다.

 

“왜? 무슨 일 있어?”

 

“그게....아까부터 공주님께서 찾으십니다.”

 

“공주님.......께서?”

 

그토록 보고 싶던 공주님께서 자신을 부르셨는데, 시경은 섣불리 공주님께 갈 수가 없었다.

이 복잡한 마음으로 뵐 수 있을까..........

이러면서도, 그토록 혜원에게 호통을 듣고도, 자신은 또다시 그녀를 자신의 여자로만 보고 싶은 그 욕망과 또한 싸우지 않을 수 없었다.

 

 

 

 

 

3

 

 

 

 

시경은 그녀의 방문 밖에서 한참을 숨을 고르고 나서야 문을 두드릴 수 있었다.

 

“공주님, 부르셨습니까?”

 

애써 담담한 척 말을 건네 보지만, 시경은 도저히 그녀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자신의 마음이 죄스럽기만 했다.

그러나 더 죄스러웠던 것은, 자신이 아무리 반성한다고 해도, 자신의 욕망은 여전히 드러나고 있었기 때문에, 아니 더 강해지면 강해졌지, 조금도 약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은시경 씨. 나한테, 화난 거 있어요?”

 

공주님은 휠체어를 밀어 자신의 바로 앞까지 와서 묻고 있었다.

 

“예?”

 

“화난 거, 아니에요?”

 

그녀가 화난 게 아니냐고 묻고 있었다.

 

화, 났었다. 어쩌면 여전히 화난 상태인지도 몰랐다.

아닙니다, 라고 조금은 단호하게 대답했지만, 여전히 시경은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고 있었다.

보고 싶었던 마음, 자신을 탓하는 마음, 그리고 억울한 마음, 그러면서도 그녀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고 싶은 마음,

그러나 자신을 거부하며 다른 이와 잘해보라고 말하는 기억이 없는 그녀.

그 앞에서 자신이 화내 본 들, 무슨 소용이 있나 싶어, 더욱더 속이 상하는 시경이었다.

 

그런 시경에게 그녀는 여전히 기억나지 않는다고, 그래서 여전히 시경에게 아무 마음이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알고 있지만, 분명 알고 있지만, 그녀는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이렇게 자신을 불러 또 얘기하시는 이유가 무엇인지,

자꾸만 답답해지기만 했다.

 

“저도........같습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방어였다. 아니, 공격이었다.

이토록 강하게 마음의 벽을 치는 그녀에게, 자신도 여전히 변함없다고, 더 커지면 커졌지, 절대로 정리될 수 없는 마음이라고,

그녀를 향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공격을 했다.

더 큰.......내 가슴을 무너뜨릴....더 큰......더 가슴 아픈 공격이 오겠거니.....생각하고 있었다.

 

이제 와서, 예전에 사랑했으니, 지금도 사랑해달라고 애걸복걸하는 너 따위는 싫다고,

정신차리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실까......

2년 전 내가 좋다고 얘기할 때, 피하기만 하고 제대로 말해보지도 못한 주제에, 왜 이제 와서 난리냐고,

넌 사랑할 자격도 없다고,

지나고 나서야, 사랑을 믿지 못했던 자신을 한탄하며 이토록 속이 다 뒤틀려질 만큼 고통스럽다고 해도,

내 눈엔 군인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고,

어디서 감히 일개 근위대원이 공주를 품을 수 있냐고,

어디서 감히 당당하게 서 있냐고,

니가 감히 뭔데 내 몸에 손대냐고........

그리, 말씀하시겠지.

 

박혜원 씨가 말했던 그 찌질한 놈이 바로 나였다.

그녀 앞에서 나는 화내거나, 아니면 이토록 자신을 비하하는, 그저 그런 찌질한 놈이었다.

 

그런데, 그녀는.........하아....그녀는................

 

“은시경 씨. 살아 돌아와줘서....정말 고마워요.”

 

“공....주님.......”

 

내가 들을 거라고 생각했던 말은.....전혀 다른 것이었다.

너 따위는, 싫다고, 가라고...내 눈 앞에서 사라지라고, 그런 말씀을 들을 줄 알았다.

전혀 기억나지 않으신다며, 몇 번이나 뜸들이며 하신 그 말씀을......내가 제대로 들은 건지 의심마저 들었다.

 

“내 인생, 완전히 바닥칠 수 있는데.......

그래도 언젠가 내 기억이 돌아왔을 때, 완전히 바닥은 치지 않게,

살아 돌아와줘서 정말 고마워요.”

 

그녀가.....고맙다고 하셨다.

내가........살아와줘서 고맙다고, 내게, 내 존재가.....고맙다고......

그렇게 말씀해주셨다.

울대가......얼얼해진다.

눈이....뜨거워진다.

그녀의 말이......나를......울컥하게 만든다.

 

“물론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거예요.

그래도, 내 마음은 그래요.

당신이 살아줘서, 이렇게 내 앞에서 있어줘서,

당신은 변함없다고 말해줘서,

그래서 내 삶이 더 이상 비참하지 않게 해줘서,

정말........고마워요. 은시경 씨.”

 

“공..공주님......”

 

나 때문에, 살아돌아온 나 때문에, 그녀의 삶이 더 이상 비참하지 않다고 해주셨다.

그녀가 내 존재 자체를 인정해주셨다.

내 마음을 적어도 인정해주셨다.

 

그녀가 휠체어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그러면서 한 걸음 천천히 내 앞으로 다가왔다.

 

“생각해봤어요.

내가, 만약에, 정말 만약에 기억을......잃어버리지 않았다면,

살아 돌아온 당신을 처음 보았을 때, 무엇을 했을까, 무엇을 말했을까.

화도 나고, 억울해도 했겠지만, 그보다도 더 당신이 살아돌아온 게,

너무너무 감사했을 것 같아요.”

 

그녀는 내 몸에 닿을 듯이 다가왔다.

내 심장이 터질듯이 뛰어댄다.

 

“너무 늦어서 미안해요.

기억하지 못해서 미안해요.

비록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한번은 꼭 이 말 하고 싶었어요.”

 

공주님, 제가 화내고 있을 때,

제가 속상해 하며, 당신에게 투정부리고 있을 때,

당신은........저를 생각해주시고 계셨습니까?

기억 못하시는 당신을 미안해하고 계셨습니까?

 

그녀의 말이......자꾸만 울컥하게 했다.

그런데, 그 순간 그녀가 두 팔로, 나를 안았다.

 

“살아온다고, 수고했어요.

참 힘들게 견뎌내었을 텐데......그 힘든 시간들 견뎌내줘서 고마워요. 은시경 씨.

포기하지 않고, 꿋꿋이 이렇게 살아나줘서, 정말...고마워요. 은시경 씨.

비록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이렇게 살아돌아와줘서,

그래서 더 이상 이재신의 인생에 불행이 없도록 만들어줘서,

더 이상 비참하지 않도록 만들어줘서, 정말......고마워요.

그리고 고맙다는 이 말......너무 늦게 해서......미안해요.”

 

그녀가, 수고했다고, 힘든 시간 견뎌줘서 고맙다고, 나를 토닥여주고 있었다.

그녀는, 나를 위해서, 2년 전 나를 사랑하던 모습으로 있어주었다.

왜 살아왔는지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나를 위해서,

아니라고, 정말 잘 살아왔다고, 고맙다고, 그렇게 진심으로 위로해주고 있었다.

 

그랬다. 그녀가 잃어버린 기억은 사실은 고통 그 자체였던 순간이었다.

내가 있다고는 해도, 나를 좋아했다고는 해도, 그 기억 속 그녀는 스스로가 말한 대로 최악이었을지 모른다.

다시는 돌이키고 싶지도, 돌아보고 싶지도 않은 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내게는 가슴 저미도록 너무나 소중하고 소중한 순간이지만, 그녀에게는 잊고 싶은, 그래서 스스로 잊어버린 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생각했다.

그녀에게 나라는 존재 자체가 고통이 아니었을까.

지금도, 그러한 게 아닐까.

내가......살아돌아와서는.....안 되는 게....아닐까.

어차피 그녀는 나를 잊었으니까, 기억도 못하시니까, 내가 없어져도,

내가 그 때 죽어버렸다고 해도, 그녀의 인생에는 아무 지장이 없었을 테니까.......

지금처럼 그녀에게 고통을 주지 않아도 되게,

그리고 나 자신도 이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게,

그 때.....죽어버려야 했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까지 들기도 했다.

 

그래서 더 아이처럼 화를 내었는지도 모르겠다.

정말...나는...살아갈...가치가 없는 것인지........

왜 내게만 이런 고통을 주는 것인지.......

정작 화내고 싶은 대상은 하늘이었는데, 그녀에게 화내고야 말았는지도 모른다.

 

하아........그런데...........그녀는........그게 아니라 한다.

너 따위가 어디 감히 나를 마음에 품냐고, 정신차리라고, 그런 말씀을 하실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초등학생 철부지 남자애가 떼쓰듯이, 그렇게 유치하게 화내고 있는 자신에게,

그녀는 도리어 이토록 따뜻하게 위로를 건넨다.

 

고맙다고, 살아주어서 고맙다고........

나 때문에 불행한 게 아니라, 나 때문에 불행이 끝이 났다고,

나 때문에 더 이상 비참하지 않게 되었다고,

살아있어줘서 고맙다고.........

그렇게 나를 다독여주고 있었다.

 

숨을 쉴 수조차 없을 정도로, 가슴이 울컥거렸다.

그녀의 허리를 꽉 껴안으면서 생각했다.

 

나는.......정말.........그녀를 놓을 수가 없다고.........

나는 정말로 그녀 없이는 살 수가 없다고.........

 

그래서, 내게 한 번 더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하늘에 감사했다.

그녀를 안고서 믿지도 않는 신께 기도했다.

이토록 눈시울을 뜨겁게 만드는, 이 사람의 위로를, 나는 죽어도 놓을 수 없다고,

그러니 나를 살게 하셨다면, 살아갈 수 있는 힘도 주시라고,

그렇게 기도했다.

 

단 한 번도 살면서 욕심이란 걸 내본 적이 없었다.

그것은 하늘도 아실 것이다.

단 한 번도 내 욕심대로 움직여 본 적이 없다.

아니, 욕심이란 게 없었다.

그렇게 하고 싶은 것도, 죽도록 갖고 싶은 것도, 없었다.

그래서 그토록 올곧다는 말을 들었을지도 모른다.

좋아하는 것도, 갖고 싶은 것도, 그 어떤 것도 없었다.

 

그런데 처음으로, 갖고 싶은 게 생겼다.

아니, 갖고 싶은 정도가 아니라, 내 곁에 없으면 내가 살 수 없는, 그런 사람이 생겼다.

그녀를 갖고 싶다고, 생애 처음으로 욕심이라는 게 생겼다.

 

세계 평화, 국가 안보........

그건 내가 군인이라서가 아니었다.

내겐 죽도록 갖고 싶은 게 없었을 뿐이었다.

나는 이제, 그 어떤 기도도 그녀일 수밖에 없다.

 

내게 그녀를 달라고.......

단 한 번도 욕심내지 않고 살지 않았느냐고.......

그러니, 나를 살리셨으면, 내가 살 수 있도록 만들어주셔야 되는 것이 아니냐고.....

나는 생떼 같은 기도를 드릴 수밖에 없었다.

 

내 품 가득 안겨 있는 그녀를........내게 제발 허락해 달라고.........

그녀 없이는 정말 살 수가 없다고.......

그녀를 허락하실 수 없다면, 이 따위 목숨 가져가 버리시라고..........

내가 엄청나게 부족한 건 알지만, 그래도 이렇게 살리셨을 때는, 이유가 있지 않느냐고........

 

그녀를 품에 껴안고, 목울대가 얼얼하도록 생떼를 쓰고 있었다.

가슴의 열기는 더욱더 차올라 오기만 했다.

 

오로지 단 한 마디만 온 몸을 울려대고 있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미친 듯이 터져나오는 내 속의 고백에 나는 또다시 지고야 만다.

 

“공주님, 지금..........기억하시는 공주님이십니까?”

 

“네?”

 

“지금 저를 위해서 기억하시는 공주님으로 잠시, 계셔 주시는 겁니까?”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 순간 그녀의 허리를 안고 다시 내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

그녀의 눈이 놀란 듯, 두려운 듯 흔들리고 있었다.

 

"저도 돌아와서 공주님께 꼭 하고 싶었던 말이 있습니다.”

 

“.................”

 

“보고 싶었습니다. 공주님.

하루 하루.......정말 미치도록 보고 싶었습니다.

2년 동안, 공주님이 저를 잊을까봐, 다른 사람을 사랑할까봐,

매일 매일을 지옥 속에서 보냈습니다.

그래서 늘......공주님 곁으로 달려오고 싶었습니다.

은시경.....이제야 공주님 곁으로 돌아왔습니다.

사랑합니다. 공주님. 나의 공주님.”

 

2년 전, 그녀를 마주하고 있었다.

그렇게 착각하고 싶었다.

오늘만, 단지 오늘만,

아니 잠시 이 순간만, 내 바람을 들어달라고........

그녀의 마음에 가여워하는 마음을 주신 하늘이라면, 조금만 더 시간을 달라고.........

그런 마음으로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숨결을 마시면서, 저 안에서부터 저릿함이 올라왔다.

 

제 욕심입니다.

그러나 제 전부입니다.

이 사람을....제게 제발.........허락해 주시길......

 

간절한 기도처럼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입술에 내 입술을 대면서, 그녀의 저 안 깊숙이 들어가서 그녀를 탐하면서도,

가슴의 저릿함은 더욱더 강해지기만 한다.

그녀의 입술은 가슴 아프도록 부드러웠다.

너무 부드러워서 가슴에 생채기가 나는 것 같았다.

지금 이 순간......

2년 전 공주님으로 있어주신다는 그 말씀에,

마치 허락이라도 받은 것처럼 이렇게 그녀의 입술을 탐하지만,

다시 허락되지 못할 순간일 수도 있는 지금 이 순간.

그래서 더 가슴 아팠다.

아름다운 그녀의 입술이, 자꾸 가슴을 서걱대게 하는 그녀의 부드러움이,

심장을 떨리게 하는 그녀의 숨결이,

손 안에 들어오는 그녀의 부드러운 허리가,

자꾸만 가슴을 떨리다 못해 아프게 한다.

 

그녀의 입술을 탐하고, 그녀의 혀와 얽혀들어도, 내 욕망은 채워지지 않고, 자꾸만 더 커지기만 한다.

섞여들고, 또 섞여들어도,

그녀의 한숨까지, 그녀의 숨결 하나까지 삼켜버리고 있지만,

그래도 모자랐다.

그녀는 내게서 자꾸만 도망가려하고, 자꾸만 물러서고 있었다.

그래서 더 애가 타기만 한다.

 

더 이상 도망가지 못하게 바들바들 떨고 있는 그녀의 어깨를 잡고, 벽 쪽으로 밀어붙였다.

 

“하아...하아.......이러지...말아요......”

 

“시작은........공주님이 하셨습니다.”

 

숨을 헐떡이는 그녀의 모습이 더 돌아버리게 만든다.

시작.

그녀가 시작한 것이라, 애써 합리화시키며, 결국 내 욕심에 나는 지고야 말았다.

놓을 수가 없었다.

2년 전, 일개 근위대장을 좋아하신다고 말씀하셨던,

그 때의 공주님이라고, 그렇게 믿고 싶었다.

내게 살아와서 고맙다고 말해주신 공주님은, 나를 마음에 품어주신 공주님이라고,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렇게 착각하고 싶었다.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은 공주님께서 허락하셨다고,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렇게 미쳐버린 나는 그녀의 입술을 놓지 못하고, 한 사내로 그녀에게 밀어붙이고 있었다.

그녀는 헐떡이는 숨소리만 낸 채, 내 모든 욕망을 받아내고 있었다.

 

 

 

 

4

 

 

 

 

“아얏!”

 

재신은 시경의 가슴을 붙잡고 부들부들 떨면서, 미친 듯이 밀어붙이는 그의 입술을 속수무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재신은 결국엔 참지 못하고, 시경의 가슴을 밀쳐버렸다.

그 바람에 시경이 한 발짝 뒤로 물러서면서, 재신은 그만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

안 그래도 아까부터 서있을 힘도 없었다.

시경의 입술 때문에, 그의 키스에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서 지탱하고 서 있기도 힘들었다.

그저 벽에 기댄 채, 자신의 허리를 받치고 있는 그의 힘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결국 시경을 밀쳐내면서, 힘이 빠져 버린 다리는 더 이상 지탱하지 못하고 주저앉아 버리고 말았다.

 

“공주님!!!”

 

재신보다도 시경이 더 놀란 눈치였다.

이 남자........이제서야 돌아온 것 같다.

놀란 듯, 미안한 듯, 애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입술을 깨물던 그는 조심스럽게 재신을 안아 침대 위에 앉혔다.

재신은 그런 그를 빤히 쳐다본다.

시경은 재신의 눈빛을 마주하다가 다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뭐가요?”

 

“예?”

 

“뭐가 죄송하다는 건데요?

방금.....나한테 키스한 거?

아니면, 내가 그만하라 그랬는데, 나보고 먼저 시작했다고 한 거?

그게 아니면, 아, 저번에 욕심은 더 컸다고 했던 거? 그러면서 죄송하진 않다고 했던 거?

또 있지. 이게 최고죠.

천둥치고 비왔던 날.....나한테 경고...한 거?”

 

“공주님.......”

 

“화, 났던 거죠?”

 

“예?”

 

“화났잖아. 나한테.......맞죠?”

 

재신을 쳐다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던 시경이 한쪽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이제 그녀의 시선이 위에, 시경은 그녀의 시선 아래에 있었다.

재신을 바라보는 시경의 눈빛이 애잔했다.

재신도 그것을 느끼고 있었다.

적어도 이 남자의 마음은......진실하다고.....

그러니 자신은 적어도 그 마음만은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이제, 안 그럴게요.”

 

“예?”

 

무언가 말하려던 시경보다도 먼저, 그녀가 입을 열었다.

 

“적어도, 혜원이랑 당신을....엮지는 않을게요.”

 

“죄송합니다. 공주님.

제가...하아....제가......정말......미쳤었나 봅니다.”

 

시경의 말을 재신은 묵묵히 듣고 있다.

마치 어떤 말이든 다 들어주겠다는 것처럼, 그러니 마음 놓고 해보라는 듯,

그녀는 시경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화, 났던 거 맞습니다.

그런데, 제 자신에게 화났던 걸......감히....공주님께......그런 식으로........하아......

죄송합니다. 공주님.”

 

“아니야. 은시경 씨, 나한테 화난 거 맞아요.

내가 자꾸.......은시경 씨 마음........생각해 주지 않고, 다른 사람이랑 잘 돼보라고 하니까

화났던 거잖아요.”

 

그가 아무 말 없이 재신을 바라본다.

그의 눈빛에서 재신은 긍정을 읽고 있다.

 

“거봐, 맞잖아.”

 

그녀가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이토록 위로가 된다.

살아 돌아와 그녀를 마주한 이후, 이러한 위로를 받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도 해 본 적이 없었다.

철없는 어린 아이처럼 투정을 부리듯, 화를 내던 내게 그녀는 다정하게 토닥여주고 있었다.

그녀는 그렇게 내가 존재할 이유를 찾아주었다.

아니, 그녀 자신이 내가 살아가야 할 이유였다.

그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있을 뿐이었다.

 

시경은 그녀의 오른손을 두 손으로 잡았다.

그러고는 그녀의 오른손에 늘 채워져 있는 핑크빛 옥돌 팔찌를 풀었다.

 

“은시경 씨!”

 

갑작스럽게 다가온 손길에 재신은 당황한 듯 손을 빼려고 했지만, 그의 손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의 손이 부드럽게 그녀의 상처부위를, 생채기가 남은 흉터를 쓸었다.

 

“공주님, 아까 키스, 죄송했지만,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자신을 놀란 듯 바라보고 있는 그녀를 향해서 시경은 가슴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를 끄집어내었다.

 

“어렸을 때,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어머니를 공원에서 잃어버렸던 적이 있었습니다.

분명, 이 근처에 계실 텐데, 분명 저쪽으로 가면 찾을 수 있을 텐데 싶어서,

공원 전체를 헤매고 다녔습니다.

처음 잃어버렸을 때는 낮이었는데, 나중에 겨우겨우 어머니를 만났을 때는 해가 다 저물 때였습니다.”

 

어머니, 그의 어머니.......

그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은실장님의 부인께선 아주 오래 전에 돌아가셨다고 들었다.

그래서 혼자서 아들을 키워오셨다고 들었다.

그런데 그가 지금 자신의 어머니 얘기를 하고 있었다.

 

“저를 겨우 찾으신 어머니는, 저를 보자마자 엉엉 우셨습니다.

어머니가 우는 모습에 놀라서 더 크게 울고 있는 제 손을 잡고 어머니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엄마를 잃어버렸을 때는, 누군가를 잃어버렸을 때는 둘 다 같이 돌아다니면 절대 찾을 수가 없다고......

그러니 저는 반드시 잃어버린 그곳에 서 있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어긋나지 않고 찾을 수 있는 방법은, 잃어버린 그곳에서 계속 가만히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저에겐 그 말이 너무나 강렬했습니다.

왜냐하면..........왜냐하면....그 날이 어머니와 저의 마지막........나들이었기 때문입니다.”

 

“...................”

 

“며칠 후, 어머니는 수술을 받으셔야 해서, 일부러 그날 저랑 같이 아픈 몸을 이끌고 공원에 나오셨던 거였습니다.

그 이후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몇 년 동안 병원에만 계셔야 했습니다.

그런데 너무 들뜬 저는 그 날을, 그 마지막 나들이를 망쳐버리고 말았던 겁니다.

어머니를 잃어버리고, 찾느라 해가 떨어지도록 돌아다니고.....그렇게 어머니를 울게 해드렸습니다.”

 

“어렸잖아요. 어려서 그랬잖아요. 그게 왜 은시경 씨 잘못이에요? 아니에요. 절대.”

 

공주님은 도리어 내 손을 위로하듯이 꼭 잡아 주신다.

그래, 그녀는 이런 사람이다.

이토록 따뜻한 사람이다.

그래서 나는 이 손을 놓지 않으려 한다.

아니, 놓을 수가 없다.

 

“그래서요. 공주님. 전, 다시는 그렇게 바보 같이 행동하지 않을 겁니다.

잃어버린 그곳에서 계속 가만히 서 있을 겁니다.

소중한 사람을 찾으려면, 움직여서도 안 되고, 흔들려서도 안 됩니다.

다른 데 가서도 안 되고, 저쪽으로 가서 찾으면 찾아질까 싶어도 가서는 안 됩니다.

그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내 소중한 사람이 언제든지 돌아올 수 있게 그곳에 있어야 합니다.

저는 그럴 겁니다. 공주님.

내가 살아갈 수 있는 내 삶의 이유인, 그 사람이 제게 돌아올 때까지,

저는 계속 그 자리에서 흔들리지 않고 있을 겁니다.”

 

그러니....공주님께서 저를 찾으러 와주세요.......

 

시경은 그 마지막 말은.......자신의 가슴 속에 묻었다.

그러나 그의 가슴의 소리를 이미 재신은 들었다.

자신을 찾으러 와달라는 그의 울림을 들어버렸다.

손에서 손으로 전해지는 온기 속에 그의 마음도 전해지고 있었다.

 

 

 

 

 

5

 

 

 

 

그녀를 보내는 날 아침.

시경은 의전차에 타는 그녀를 뒤에서 보고만 있었다.

 

잘 다녀오라며 재하는 재신의 어깨를 토닥였다.

걱정 말라며 오빠를 향해 웃어보이다가 한 걸음 뒤에 물러서 있던 시경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물러선 채로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시경에게, 재신은 작게 고개를 끄덕여준다.

그 눈빛에서 시경은 전하를 부탁하는 재신의 마음을 읽어낸다.

자신도 잘 다녀올 거라고 걱정 말라는 다짐도 읽어낸다.

그래도 시경은 마음으로 계속 자신의 바람을 전한다.

제발 무사히 잘 다녀오시길.......

부디 아무 일도 없길.......

 

의전차가 궁을 빠져나갈 때까지 시경은 그 자리에서 꿈쩍도 않고 서 있다.

 

 

“왜? 돌 되려고?”

 

“예?”

 

“너, 그러다 망부석된다.

그러니 보내줄 때 가라니까, 고집은.......”

 

그제서야 시경은 재하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를 한다.

 

“괜찮냐?”

 

“무슨 말씀이십니까?”

 

“재신이, 저거, 제주도에서 연애질 할 텐데.......

상우랑....바닷가에서......

와~ 생각만 해도 부럽다.

진짜 항아랑 내가 갔어야 했는데........”

 

어차피 항아가 임신한 상태니 지금 이동하는 건 어렵지만, 그래도 부럽긴 하다.

혼자 아깝다고 생각하다, 자신이 무슨 말을 던진 건지 순간 잊어버린 재하는, 시경의 얼굴이 굳어진 걸 보고서야, 제대로 스트라이크를 날렸다 싶다.

 

“무섭기는 한가 보네?”

 

“예?”

 

“상우 말야.

절박하다며? 절박하다면서 안 따라가는 이유는 뭐야?”

 

“그 이유, 다시 말씀드릴까요?”

 

에휴.....됐다. 으~ 지겹다. 은시경.

 

“은시경, 자료는 제대로 살펴보고 있어?

참석 인원도 확인했고?”

 

“예. 계속 검토 중입니다.

그리고 중앙아시아 쪽 루트와 연결된 쪽에서 고급 정보가 들어올 것 같습니다.”

 

“그래? 줄 거면 빨리 주지. 꼭 당일 날......

여튼 가지고 집무실로 와서 보고해.”

 

“예. 전하.”

 

 

 

 

 

6

 

 

 

 

 

“그래. 공주님 잘 모시고.

혹시 이상하게 접근하는 인물 있으면, 바로바로 컷트해.

사진, 공식 기자들 아니면 못 찍게 하고.

또, 공식 기자들도, 포토 라인 아니면 금지 시켜.

그리고 조금이라도 이상한 점 있으면 바로바로 보고 해.”

 

재하는 시경이 전화를 끊자, 또다시 비아냥거리기 시작했다.

 

“와우~ 이거 니가 더 포스 간지 나는데........”

 

“전하.......”

 

“알았다고....그래, 잘 도착했대?”

 

“예. 1시간 후에 개회식 겸 만찬회에 참석하신답니다.”

 

“뭐, 쉴 틈도 없네. 그 녀석......

참, 아까 말하던 그 정보는 뭐야? 새로운 거라도 있어?”

 

“중앙아시아 쪽 루트라고 해서 일단 저희가 가지고 있는 정보 중에서 해당자를 검색중입니다.

그런데, 내각 회의까지 시간 괜찮으시겠습니까?

준비하실 시간이......”

 

“야, 나 이재하야.”

 

재하는 자신의 머리를 손으로 가리킨다.

시경은 그런 재하의 넘치는 자신감에 살짝 미소지었다.

 

“그래서 검색했는데, 해당자 중 뭐, 걸리는 건?”

 

“봉구 죽인 인물 있지 않습니까?

Jeremih Smith라고.......”

 

“아, 그래. 그놈.

근데 그 놈 M소사이어티 놈들이 죽였다고 하지 않았나?”

 

“예. 맞습니다. 그 이후에 처리했다고 들었습니다.

근데, 이 Jeremih라는 인물이 중앙아시아 쪽 연락책이었습니다.

어머니가 키르기즈스탄 인이라고 했는데.......

러시아 계통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놈이 지 엄마 핏줄로 연계돼서 중앙 아시아 연락책으로 있었다?

그래서 주로 그 놈이 했던 일이 뭐였어?”

 

“우라늄 공급책으로 들었습니다.

그 때 들은 정보로는 카자흐스탄, 러시아, 키르기즈스탄 삼국 연맹 맺을 때, 연락책으로..........헛~!!!!”

 

순간 말을 멈춘 시경도, 그런 시경을 보던 재하도 뭔가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키르기즈스탄? 이번 그 놈도, 그쪽이지?”

 

“예. 맞습니다.”

 

“이번 테러 어쩌고 했던 놈, 키르기즈스탄 어디 출신이었다고 했지?”

 

“카라발타(Karabalta) 출신입니다. 수도 비슈케크(Bishkek)에서 서쪽으로 62Km 지점에 카자흐스탄과 국경 근처 지역입니다.

아..........”

 

시경이 갑자기 자신의 파일을 뒤집어보기 시작한다.

재하도, 시경도, 무언가 아귀가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이런 아귀는 맞아떨어지지 않는 게 더 좋았다.

 

“전하!!!!”

 

한숨처럼 시경이 재하를 불렀다.

재하는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하아.....카자흐스탄-러시아-키르기즈스탄, 우라늄 지역 개발 합작체.

키르기즈스탄이 하는 일은 카자흐스탄에서 가져온 우라늄을 정광처리하는 거였어.

그곳이...........Karabalta Mining Plant.........

카라발타야.”

 

시경 자신이 찾은 자료의 내용과 재하의 말은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었다.

시경은 입술을 깨물었다.

분명 죽은 자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 죽은 자가 관련되어 있을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

 

“도대체....어떻게........

그놈의 친척 놈이라도 되는 걸까요?”

 

“제레민가 스미슨가 하는 놈......왜 죽인 거야?

어차피 M에서도 김봉구 죽이는 거 방관한 거잖아.”

 

“우라늄을 인도 쪽으로 빼돌렸답니다.

인도가 워낙 절대적으로 우라늄이 부족하기도 했고, 국제적으로 인도에 대해 보이콧할 때라, 제레미 스미스 입장에서도 호기였습니다.”

 

“그래서 M이 막대한 손실을 입었겠군. 핵무기 핵심이 우라늄이니......

그래서 죽여버렸다?

생각해 보니, 그 때, 대주주가 KazA.Tom.PRom 이었어. 거의 반 가까이 지분을 가지고 있었지.

안 봐도 뻔하군. 뒷배가 있었군. 클럽 M이라는.”

 

 

 

“전하, 보안 팩스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갑자기 근위대원 하나가 급히 들어왔다.

그가 들고 들어온 팩스에는 모호한 숫자들만 가득했다.

 

재하가 시경에게 넘겨주자, 시경이 해독하기 시작했다.

 

“너의 부탁. 흥미. 진실

새로운 사람.

새로 태어난다.

애꾸눈 선장. 장애. 다리 철.

팩스.”

 

“무슨 말이야?”

 

“아무래도 누군가 자신을 위조한 모양입니다.

새로 태어난다.....성형을 했다는 거 같은데.....

애꾸눈 선장......장애.....

아, 한쪽 눈이 없고, 의수를 했다는 거 같습니다.

팩스로 보내주겠다고 한 것 같은데.......”

 

시경은 밖으로 나가 기밀 문서실로 뛰어갔다.

재하 역시 시경의 뒤를 따랐다.

 

Igur Mirbek(이구르 미르벡)

이라는 이름으로 한 남자의 얼굴이 팩스로 들어오고 있었다.

한 쪽 눈에는 안대를 하고, 왼쪽 팔은 의수를 하고 있었다.

아까 먼저 받은 팩스에서 말한 그 놈인 듯했다.

 

그런데 팩스가 하나 더 들어오고 있었다.

 

<Another names (다른 이름들)

Jesemih Smith OR Jeremih Mirbek (제레미 스미스 또는 제레미 미르벡)>

 

미르벡?

시경도, 재하도 숨이 턱하니 막혔다.

 

<B's f.m.>

 

팩스의 마지막 문구는 이거였다.

 

“f.m.? a fancy man? 헉........”

 

재하와 시경은 동시에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저 경악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제레미 스미스는 봉봉의 정부였다.

 

“살아.....있는 거야? 아니면, 친인척...뭐 그런 거야?”

 

재하의 목소리가 겨우 쥐어짜는 듯이 흘러나왔다.

바로 그 때였다.

 

시경의 전화가 울렸다.

발신인 연락처 제한 번호.

 

전화를 받는 시경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예. 은시경입니다.”

 

그의 목소리도 떨리고 있었다.

 

“Do you remember me?”(나 기억해?)

 

“Who. are. you!!!!”(너, 누구야?)

 

“Is the sound of water drops getting louder?”(물방울 소리가 점점 커지지?)

 

 

 

 

 

 

 

 

 

 

그 목소리를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말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시경은, 지금도 그 꿈을 꾼다.

그런데, 이 놈이 그 말을 하고 있다.

 

“How about this?(이건 어때?)

Did you sleep with her?(그녀랑 자봤어?)

HAHAHAHA I guarantee not yet.(넌 아직 못 자봤다는 데, 내가 확실히 걸 수 있다.(확신한다)

She is still pretty, huh?”(그녀는 여전히 이쁘더라, 응?)

 

 

“What the Furk!!!!”

 

 

 

 

 

 

 

 

 

그놈이다.

내 왼쪽에 서 있던 그놈......

발악하는 봉봉을 안고 나갔던 그 놈......

제레미 스미스.

 

시경의 손이 덜덜 떨린다.

 

그놈이 살아있다.

 

공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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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너무 늦어서 정말 죄송합니다.

37장의 스압으로 조금은 용서해 주시길.....

공지글에 말씀드렸듯이, 마감 끝내고, 틈만 나면 잠을 자느라, 글 쓸 시간이 없었답니다.

그리고 다시 출장을 가기로 급하게 결정하는 바람에, 그거 준비하느라 정신을 좀 못 차렸다지요.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15회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키르기즈스탄과 그 주변국, 우라늄 관련까지 자료 찾고 공부하고.....

제 머리가 뒤죽박죽이 되어 버려서 혼자 엄청 끙끙대었습니다.

결국 키르기즈스탄에 대해 역사, 전통, 문화, 주력 산업까지 모두 공부하고야 말았다는.....슬픈 전설이.....

 

15회에 나오는 키르기즈스탄 관련 이야기들은 클럽 M 부분만 제외하면 실제 이야기입니다.

우라늄 삼국 연합도, 키르기즈스탄 정공 정비 관련도 모두 실제입니다.

45%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카자톰프롬도 실제 있는 회사이구요.

그러나 M과 연관성은 모두 허구임을 알려드립니다.

 

시놉은 처음 이 글을 연재하면서부터 있었습니다.

쓰면서 작은 에피소드들은 보강하고 있지만, 큰 줄기는 계속 그대로 가고 있습니다.

처음엔 이렇게 쓸 수 있을 거라고 스케일을 넓혀 놓았다가,

제가 그걸 감당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손고자, 머리고자, 글고자라는 걸, 까맣게 잊어먹고 있었나 봅니다.

솔직히.....쓰다가 이 부분 빼버릴까 싶기도 했지만,

의외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라서.....도저히 뺄 수도 없고, 감당은 안 되고,

그래서 머리만 쥐어뜯었습니다.

꼼꼼하고 섬세하게, 철두철미하게 플롯을 짜고 싶은데...너무 엉성한 듯해서 자꾸만 자괴감이 듭니다.

그저...아마추어의 허술한 글이라고......백번 양해해 주시길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제레미 스미스는 허구의 인물입니다.

그러나 더킹에서 나왔던 인물입니다.

이것 때문에 또다시 복습하면서 인물을 탐구했다지요.

이 인물에 대해서는 다음 회에 더 자세히 나오게 될 것 같습니다.

 

다음주 화요일부터 일본 출장입니다.

그 전까지는 못 올릴 것 같습니다.

좀 짧게 해서 올려볼까 싶기도 합니다만, 제 상황이 늘 갑자기 뭔가 일이 생겨버려서

아직까지 확신을 못하겠습니다.

일본에서 쓸 수 있다면, 출장 중에 올릴 수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역시 확신할 수가 없네요.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해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중간에 블록으로 언제쯤 될 것 같다고 안내라도 드리겠습니다.

 

 

2

 

15회에서는 은시경도, 공주님도 모두 중요하지만, 제일 중요한 인물은 혜원이었습니다.

혜원이의 말은, 어쩌면,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혜원이가 이 글에 등장해야만 했던 필연적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상우도, 혜원이도, 동욱이도, 등장해야만 할 이유가 있습니다.

혜원이는 이제 그 이유를 스스로 드러낸 셈입니다.

 

은시경이......생각하신 모습과 많이 다를 수도 있으실 것 같습니다.

은시경의 모습은...사실...제가 의도한 모습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자기 스스로 그렇게 내보이기도 합니다.

처음 시놉에서는 은시경이 이렇게 나쁜 남자 스탈로 등장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써나가는 중에, 은시경이 스스로 열을 받아버리더라구요.

스스로 그렇게 흘러가는 듯해서, 글이 흘러가는 대로, 은시경이 시키는 대로 그리 두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은시경이 아니다, 하신다면, 저도 사실 뭐라고 변명은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사실 전, 은시경은 두 얼굴의 사나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엄청난 돌직구 은시경(갤에 돌직구은시경 횽이 생각난다능)과 수줍 열매 은시경......

전 솔직히, 둘 다 은시경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제가 좋아하는 건, 어떤 상황에서도 할 말은 하고 마는 돌직구 은시경을 좋아합니다.

그러니 자연적 그런 모습이 더 많이 나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부분은 개취라서......쓰는 저도, 보시는 님들께서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인 듯합니다.

 

여튼....오늘 15회에서 절박하다고 말하는 은시경.....그리고 한없이 그곳에 서 있겠다고 말하는 은시경.....

참....제 맘을 아프게 하는, 그래서 더 좋은.....은시경입니다.

역시 이 또한 개취이겠지요.

 

 

3

 

배경음악....냉정과 열정 사이는 이윤지 배우가 포털에 추천한 곡입니다.

그걸 보고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곡 사랑은~은 윤찡갤 예쁜맘 횽의 블록에서 들어보고 너무 좋아서 살짜기 가져왔습니다.

감사 감사해요.^^

 

4

 

오늘 사족이 어마어마합니다.

한 줄 요약하자면, 너무 늦어서 죄송하다, 제가 비루하다, 라는 제 변명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잊지 않으시고, 찾아와 주셔서, 읽어주시고, 또 댓글로 나누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비루한 글이라도....이 글 속에서의 은시경과 공주님 얘기를 나눌 때, 전 가장 행복한 듯합니다.

여전히 은신은신거리고 있어서 그런 듯도 합니다.

 

오늘 밤도 평안하시길......(__)

 

+) 14회 상플 댓글에 대한 답글은 내일부터 달겠습니다. 늦게라도 열심히 달고 있으니, 꼭 확인해 주세여~^^

+) 14회 상플에 답글 모두 달았습니다. 확인해주세여~

+) 참, 은신이진리님 보고 계신다면, 4회에 달아주신 댓글에 답글 달았어요. 답글 달다가 쪽수가 넘어가면서 놓쳤나 봐요. 죄송할 따름입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