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킹투하츠와 은신상플/(은신) 당신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은신상플) 당신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23

그랑블루08 2013. 3. 15. 06:05

<당신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23

 

 

 

 

silver님께서 주신 당기못 대문짤~~

 

 

디씨 그러하다 횽이 주신 당기못 대문짤~~

 

 

 

 

69

 

 

 

 

 

 

 

<배경음악>

*정엽-아무 일도 없었다.(드라마 49일 ost)

 

살며시 눈물이 무심코 흘러와

니가 씻겨 내릴까봐 수없이 훔쳐내

 

지울 수 있는데 잊을 수 있는데

너 없는 날 아무리 생각해도 눈물이

 

아무 말도 없었던 니가 떠나간 건 니가 아니길 제발

 

돌아와도 괜찮아 돌아와도 괜찮아

잠시 너와 멀어졌던 꿈일 거야

아무 일도 없었다 아무일도 없었다

이 밤이 지나 깨어나면 다시 너와

 

맘으로 되뇌여 입으로 되뇌여

너를 잃어 버릴까봐 수없이 되새겨

지울 수 있는데 잊을 수 있는데

너 없는 날 아무리 생각해도 두려워

 

아무 말도 없었던 니가 떠나간 건 니가 아니길 제발

 

돌아와도 괜찮아 돌아와도 괜찮아

잠시 너와 멀어졌던 꿈일 거야

아무 일도 없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

이 밤이 지나 깨어나면

 

돌아와도 괜찮아 돌아와도 괜찮아

사랑해 널 아직도 널 제발 제발

 

아무 일도 없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

이 밤이 지나 깨어나면 다시 너와

 

 

 

 

 

1.

 

 

 

 

“별탈 없습니다.

6개월 후에 다시 검사받으러 오시면 되겠네요.”

 

“저.......”

 

의사가 괜찮다는 말에도, 시경은 뭔가 할 말이 남은 듯 머뭇머뭇댄다.

 

“왜, 더하실 말씀이라도.......”

 

의사의 말에, 또다시 입술을 깨물던 시경이 뭔가 결심을 한 듯, 정색을 하고 입을 열었다.

 

“혹시......심장 이식 이후에.....성격이 바뀌기도 합니까?”

 

“무슨 변화라도 있으셨습니까?”

 

“그게...저.....”

 

시경은 말을 잇지 못하고 주저한다.

 

“예전에 미국에서 임상결과 성격이 바뀐 사례가 있긴 있었습니다.

굉장히 온순했던 사람이 심장이식을 받은 후에 성격이 좀 과격하게 바뀐 사례가 있죠.”

 

“과격...하게 말입니까?”

 

“아무래도 좀...그렇게 바뀌었죠.

그런데 혹시 변화를 느끼는 부분이 있으세요?”

 

의사의 얼굴이 조금은 심각해졌다.

실제 예가 있기 때문에, 심장 이식 수술 이후, 성격 변화를 살피는 것도 중요한 일이었다.

자신이 놓친 것일까.

실제 임상에서는 늘 변수와 변수의 연속이었다.

성격의 변화라.......

시경의 상황을 가지고 심장이식 학회에서 논문을 발표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 의사의 얼굴이 앞으로 기울어진다.

 

“저....그게......”

 

“말씀해보세요.

조금이라도 이상부분이 있으면 조기에 발견하는 게 치유율도 높습니다.”

 

“사실.....참는 게....잘 안 됩니다.”

 

참는다? 그렇다면, 아무래도 성격의 변화가 왔다는 것이다.

시경의 얼굴이 심각한 만큼, 의사 역시 심각해지고 있었다.

 

“어떤 면에서요? 혹시 예전과 다르다면 어떻게 다릅니까?”

 

“예전에는 참는 것에는 늘 자신 있었습니다.

자기 통제도 잘 하는 편이었고 늘 이성적으로 행동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제 머리가 생각하는 것과 행동하는 게 전혀 달라서 제 스스로가 겁이 날 때가 있습니다.”

 

“그래요?

그 정도까지 변화가 있다는 거죠?

혹시 근래에 예전 같으면 하지 않을 과격한 행동을 하신 적도 있습니까?”

 

“예.......”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을 했는지 얘기를 좀 해보시죠.”

 

“예?? 그걸 구체적으로 얘기하라는 말씀입니까?”

 

시경의 얼굴이 눈에 띠게 붉어진다.

 

“뭐 곤란하시면 누구에게 어떤 태도나 행동 정도를 했는지 간단하게라도......”

 

“그게...저......”

 

“.........?”

 

“사랑하는......사람에게.......흠흠....그게......”

 

사랑하는 사람?

이 온순한 사람이?

아니지. 그는 군인이다.

적진에 뛰어들어서 죽을 뻔하다가 살아온 사람이다.

어쩌면 살상에도 익숙할 수 있는데, 이런 사람이 폭력적으로 변한다?

정말 위험한데......

처음에는 논문 거리로만 생각하다가 이거, 사태가 점점 심각해진다고 의사는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아! 잠깐만요? 애인에게 말입니까?

물리적인 폭력 같은.....”

 

“예?

그런 건 절대! 아닙니다.

제가 어떻게 감히......제가 보호하고 지켜드려야 하는 분께......”

 

시경이 화가 난 듯 정색을 한다.

그런 말을 들은 것조차 기분이 상하고 무례하게 느끼고 있었다.

 

“아, 죄송합니다.”

 

의사는 시경이 기분 나빠하자 바로 사과를 했다.

 

“그러면 애인에게 어떻게 했다는 건지 간단하게라도 말씀을 해주셔야

우리가 MRI나 정밀 검사를 하더라도 참조가 됩니다.”

 

“그게......마음이 자꾸 행동으로.......

참으려고 해도 잘 안 되고.....

자꾸. 속에서 뭔가가 툭 끊기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듣다 보니, 이거 뭔가 이상하다.

뭔가 자신이 핀트를 잘못 맞추고 있다는 이 느낌.

뭐야? 설마 이 군인, 연애도 못해본 거야?

 

“예? 잠깐만요.

그 과격한 행동이라는 것이 혹시...스킨십 같은 뭐 그런 겁니까?”

 

“...,,,예.....”

 

의사는 갑자기 한숨을 푹 쉰다.

긴장이 풀린 것일 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답답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이것 보세요. 은시경 씨.

혹시, 연애 처음하십니까?”

 

“예? 예........뭐, 그런 셈이기도 합니다만.......”

 

서서히 붉어지는 시경의 얼굴을 보니 이 강직한 남자가 애인에게 어떻게 처신했을지 안 봐도 뻔했다.

 

나이 서른을 넘은 남자가 연애하다 마음을 참을 수가 없어서 큰일이 났다니....

이걸 그냥 놔둬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정신과 의사도 아니면서 오지랖을 발동시켰다.

사실 의사라기보다는 남자로서도 순진한 동생을 가르친다는 심정이었다.

그 상대방 여성은 오죽 답답하겠나 싶은 것도, 하나의 이유였다.

 

“이때까지 은시경 씨 남자로서의 욕망을....음... 그러니까 스킨십이든 뭐든 계속 참고 살아온 거죠?”

 

“예? 아...저....그렇다기보다 죽을 것 같이 힘든 적은, 없었습니다.”

 

“그 말은 지금은 죽을 것 같이 힘들다?”

 

“.............”

 

아무 대답이 없다.

묵묵무답은 일종의 긍정.

 

“일단 너무 참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오래 참는 것도 정상이 아닙니다.”

 

“예?

무슨 말씀이신지....”

 

정상이 아니라는 말에, 시경은 놀란 듯 되물었다.

 

“정상적인 성인 남자라면 당연히 욕구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지 않는 여자한테도 욕구가 생길 판에

사랑하는 여자라면 욕구가 없는 게 이상한 거죠.

그 여자에게 욕망이 없다면 사랑하지 않거나,

아니면 성정체성을 의심해 봐야죠?”

 

“사랑합니다!”

 

“예?”

 

갑자기 단호하게 대답하는 시경 때문에 잠시 얼떨떨해하던 의사가 픽 웃음을 터뜨린다.

 

“예. 그러면 지금 은시경씨 상태는 지극히 정상입니다.

단, 상대 여자분이 싫어하시지만 않는다면

자연스럽게 스킨십을 하는 건 정상적입니다.”

 

“............그게.....정상인 겁니까?”

 

시경의 목소리에서는 여전히 확신이 없었다.

도대체 이 남자는 이때까지 어떻게 살아온 것일까.

정말 나라의 안보만 생각하고 온 것일까.

정말 천연기념물일세.....허어..참.....

 

“그렇죠. 그게 당연한 거죠.

다른 사항은 없습니까?”

 

“예, 없습니다.”

 

“그러면 6개월 후에 다시 보도록 하죠.

혹시 그 사이에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으면, 바로바로 연락 주시면 됩니다.”

 

“예.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조금은 한시름 놓은 듯 뒤돌아 나오려는 시경에게 의사가 한 마디 더 붙인다.

 

“은시경 씨.”

 

“예?”

 

“너무 참지 마세요.”

 

“예?”

 

“병 됩니다.”

 

의사는 알 수 없는 말을 남기며 픽 웃는다.

병....이 된다라........

지금 자신의 상태가 병이 아닐까 싶은데.......

정말 미친 게 아닌가 싶은데.....

자신의 안에 전혀 다른 존재가 살고 있는 듯해서 섬뜩해지는데,

의사는 그게 아니라 한다.

 

어제.....자신은 정말 미쳤었다.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도저히 자기 스스로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내가...미친 걸까....

어떻게 공주님께.......

 

밤새도록 고민했다.

아니....아니다......

고민......맞다. 고민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내 욕망과의 싸움이었다.

어떻게 공주님께 그런 미친 짓을 할 수 있느냐는 자학과,

그럼에도 떠오르는 그녀의 아름다운 등과 부드러운 살결.......

자꾸만 생생하게 떠올라 더 미치도록 했다.

 

어떻게 그녀의 벗은 등에 입술을 댔을까.

도대체 내가 미치지 않고서야...어떻게...그런 짓을.......

 

포럼장에서, 그리고 공주님의 방에서, 자신은 정신을 놓았다.

아니 이미 그곳에는 이성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오로지 감각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녀의 야한 등과 아름답다 못해 색스러운 그녀의 흰 피부.......

손끝으로 느껴지던 부드러움은, 떠올릴 때마다 자신의 속 가장 어두운 욕망을 자극하고 있었다.

 

시경은 밤새도록 욕망을 들뜨며, 또다시 그 욕망 때문에 자학을 하며, 그렇게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래서 무작정 의사에게 찾아갔다.

다음 주가 정기 검사이기도 했지만, 도저히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의사의 말은 뜻밖이었다.

 

너무 참지 마라.........

 

내내 그 말이 가슴 한 켠에 자리 잡고 울려댄다.

 

 

 

 

 

2

 

 

 

 

 

“괜찮아요?

이상 있는 거 아니에요?”

 

“공주님.......”

 

병원에서 돌아와서 집무실로 들어와 앉자마자 휠체어를 탄 재신이 들이닥쳤다.

얼굴에는 온통 근심이 가득이다.

분명 오전에는 병원에 재활훈련 다녀오신 걸 알고 있는데, 다녀오시자마자 이곳으로 오신 듯했다.

 

나 때문에....오신 걸까....

정말....그런 걸까...

 

그 생각만으로 시경의 심장은 또다시 바람이 지나간다.

 

“내가 너무 일 시켰나봐.

그러니까 적당히 개기면서 해요.

뭘 그리 열심히 해요?”

 

말갛고 큰 눈에 걱정이 가득 담겨 있다.

어제 그런 짓을 해놓고 공주님 얼굴을 어떻게 뵙나 내내 걱정하고 있었는데 공주님은 도리어 이렇게 자신에게 다가와 주신다.

 

“괜찮은 거, 진짜.... 맞아요?”

 

“예 괜찮습니다. 이상, 없습니다.”

 

“정말요? 진짜죠?”

 

“예.”

 

“에휴.....그럼 다행이구요.”

 

그제야 겨우 안심이 된다는 듯 안도의 한숨을 쉬신다.

 

“걱정......하셨습니까?”

 

“네? 아......네.”

 

조금은 수줍은 듯, 재신의 볼이 조금씩 붉게 물이 든다.

그런 그녀 때문에 시경의 심장은 또다시 쿵쿵 대며 뛰어댄다.

 

“저를.......걱정......해 주셨습니까?”

 

그의 눈빛에서는 기대감이 스며들어 있었다.

이 남자는, 작은 눈빛 속에서도 사람을 두근대게 한다.

 

“아, 당연하죠.

사람이 갑자기 병원에 갔다는데, 어떻게 걱정을 안 해요?

당연한 거잖아요.

게다가 은시경 씨, 심장이식까지 받은 사람인데......”

 

“정기적인 검사였습니다.”

 

“괜찮은......거죠?”

 

“예. 아주, 건강하답니다.”

 

걱정된다는 듯, 미간을 좁히고 있는 그녀를 향해 시경은 미소를 지었다.

아니 미소를 짓는지도 몰랐을 수도 있다.

어제의 쑥스러움도, 짐승 같은 욕망을 들켜버린 것이 아닌가 두려웠던 마음도 사라져 버리고,

자신의 심장을 온전히 가져간 한 여인 때문에 가슴이 뛸 뿐이다.

 

그녀가 자신을 바라봐주고 있다는 것이, 걱정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생각해 주고 있다는 것이,

행복했다.

행복이라는 말을 그녀 때문에 알게 된다.

시경에게 행복이라는 단어는 그저 활자였을 뿐이었다.

그 행복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가슴을 뛰게 하는 것인지, 얼마나 사람을 설레게 하는 것인지,

그리고 또, 얼마나 두렵게 만드는 것인지,

몰랐다.

행복이라는 단어는, 두려움을 동반하고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두려움.....그랬다. 두려움이었다.

이러한 순간을 다시 갖지 못할까 겁이 나는 것.......그것이 행복이었다.

 

“괜찮으면 됐어요. 나, 가요.”

 

뭐가 바쁘신지 공주님은 휠체어를 돌려 나가시려 하신다.

아쉬운 마음에, 시경은 돌아서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어......

 

“왜...요? 할 말, 있어요?”

 

재신은 시경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한 채, 시선을 빗겨서며 물어본다.

아니 그것이 궁금한 건 아니었다.

그의 손에 잡힌 자신의 손이 부끄러웠는지도 모른다.

어제 그렇게 자신의 손을 낚아채며 찾아들었던 그의 입술이 떠올랐는지도 모른다.

또다시 재신의 얼굴이 뜨거워진다.

 

시경은 아무 말이 없다.

 

그렇게 재신의 손만 잡은 채로, 그는 우두커니 서서 그녀를 바라보기만 한다.

그것이 못내 부끄러워 재신은 도망가고 싶지만, 그의 손은 한 치의 떨어짐도 허용하지 않았다.

 

“공주님........”

 

나지막한 그의 목소리가.......재신의 가슴 저 안을 간질인다.

낮게 가라앉는 그의 목소리는......자꾸만 알 수 없는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뭔가를 자꾸만 떠올리게 만드는 목소리........

알 수 없는 저 안의 무엇을 건드리며, 울렁대게 한다.

 

“어제........”

 

시경의 입에서 어제라는 말이 나오자, 재신은 눈에 띄게 당황하고 있었다.

그 말은 하지 말자고 하고 싶은데, 아니 나 지금 바쁘니까 나가겠다고, 가야한다고 변명 아닌 변명들을 늘어놓고 싶은데,

입을 뗄 수가 없다.

마른 침만 삼킬 뿐이었다.

 

시경도 더 말을 잇지 못한다.

둘은 모두 같은 일을 떠올리고 있었다.

짜릿했던, 가슴 저 안까지 저릿했던 순간을........

그때였다.

재신의 손을 잡은 그의 손이 천천히 꿈틀대고 있었다.

 

그의 손이 재신의 손을 부드럽게 쓸어본다.

부드럽다.

 

참지 마세요. 병 됩니다.

 

의사의 말이 자꾸 시경의 속에서 메아리쳐댄다.

 

재신의 부드러운 손은, 마치 어제 자신이 입술로 범했던 그녀의 등처럼, 설레게 한다.

손가락으로 그녀의 손을 쓸어본다.

 

그래도...손까지는 괜찮지 않을까......

그녀의 손은......되지 않을까.

 

그녀의 몸을 더듬듯이, 그녀의 등을 쓸었던 그 감촉을 더듬듯이

그는 그녀의 손을 더듬어나갔다.

그의 손가락이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들어와 깍지를 끼며 그녀의 손을 잡아온다.

낯설다.

부드럽게 스쳐지나가는 그의 손가락.....

그의 엄지손가락은 그녀의 손바닥을 쓸어내고, 그녀의 손등을 자꾸만 만진다.

마치...그의 손과 그녀의 손이....서로 사랑을 나누듯이,......그의 손은......그녀의 손을 덮쳐와서 쓰다듬었다.

야했다.

이건 뭐라고 말할 수도 없는......색스러운 행위였다.

 

그의 손가락이 재신에게 엉겨올수록, 겹쳐올수록 재신은 마치 어제처럼, 저 안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오는 것 같았다.

그는, 아주 오랫동안 닫아왔던 그녀의 문을 열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단 한번도 솔직하게 열어본 적이 없던......그 감각을 열고 있었다.

감각보다는 이성을 앞세우며 살아온 대한민국의 공주로서의 재신을 허물어뜨리고, 그녀를 여자가 되게 했다.

 

연인.......

그 영화를 보면서, 이해가 되지 않았다.

둘이 손만 맞잡고 있을 뿐인데 왜 저러나 싶었다.

의심했었다.

손과 손이 만나 저러는 것이 아니라, 다른 부위를, 서로 만지고 더듬고 있었던 게 아닐까....그리 생각했었다.

아....그러나 아니었다.

정말..........그들은 손과 손을 맞잡은 거였다.

손과 손이 맞잡아, 마치 나른하고 야한 성적인 관계를 나누듯이 서로를 만지고 있었다.

지금 이 남자가 내게 하듯이........

그의 손은 내 손등 위로 올라와 또다시 깍지를 끼며, 내 감각들을 일깨운다.

 

그의 손가락은 내 손목으로 올라와 또다시 쓸어내렸다.

너무나 색스럽게 내 손목을 쓰다듬으며, 그는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는 것 같았다.

그의 손가락이 스치는 손목에서부터 간지러운 무언가가, 부끄러운 무언가가 온 몸으로 퍼져나간다.

 

재신은 입술을 깨물었다.

두려웠다.

아니, 부끄러웠다.

자신도 알 수 없는, 자신의 감각을 들키는 것이, 부끄러웠다.

입술 사이로 자꾸만 부끄럽고 야한 소리가 새어나올 것만 같아서, 마른 침을 삼키며, 그에게 잡히지 않은 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만....이라고 말해야 하는데......

그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저....손 잡은 것뿐이야.......

 

그러나.......아니다. 그저 손을 잡은 것이 아니다.

우리의 손은 어쩌면 제유(提喩)의 몸짓이었을지 모른다.

우리의 부분인 손이, 우리의 몸을 대신해서 욕망의 몸짓을 지었는지도 모른다.

 

하아...하아......

 

재신의 입술에서는 어쩔 수 없이 신음이 새어나온다.

뭔가 공기가 뜨거워지고 있었다.

아무 말이 없는 그들.....두 사람 사이로, 공기는 긴장과 색스러움으로 가득차고 있었다.

둘 다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그 손을 놓을 수 없었다.

욕망은........태초부터의 욕망은......이미 그들 앞에 있었다.

 

 

 

“야!!! 은시경!!!!!”

 

그 순간 문이 벌컥 열리며, 재하가 들어온다.

재신은 놀라서 시경의 손을 쳐냈다.

 

“어, 뭐야, 둘이? 뭐했어?”

 

재하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물어보고 있지만, 재신은 재하와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이것들....뭐지?

 

뭔가 이상했다.

공기부터가 달랐다.

썸 타는 것들의 공통점이 있다.

공기 자체가 다르다.

다른 이가 느낄 정도로 후끈했다.

재하는 분명 보았다.

시경의 눈에서 터져 나오는 남자의 욕망을.......

순간 고개를 숙였지만, 흐르는 욕망까지 감추지는 못했다.

재신의 얼굴 역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서로를 아예 쳐다보지도 못하고 있었다.

 

뭐야!! 이것들!!!!!

 

“야!!! 은시경!!!!! 대답해 봐. 너 지금 뭐한 거야? 내 동생이랑? 어?”

 

버럭 대고 있는 재하 앞에서 시경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점점 심증이 확증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만큼 재하의 속을 긁어대고 있었다.

 

“뭐하긴 뭐해? 은시경 씨......병원 갔다 왔다길래 걱정돼서 물어보러 왔지.

왜? 물어보는 것도 안 돼?”

 

그때까지 아무 말 없이 있던 재신이 재하에게 뭔가 톡 쏘는 듯이 반응하고 있었다.

 

“야~! 근데 왜, 둘 다 분위기가 이래?”

 

“분위기가 어때서?”

 

“아니, 야....이거 뭔가 이상하잖아.

뭔가 후~끈 달아올랐잖아.....이거 뭔가 이상......”

 

“작은 오빠 넌, 생각하는 게 그런 거밖에 없지?

오빠가 그러니까, 다른 사람도 다 그래 보여?

너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오면, 좋아. 나도 언니한테 다 불테니까...

뭐, 갈 때까지 가보자. 전면전이지? 오빠 니가 시작한 거야!”

 

“야, 야, 야!~~~ 내가 뭘 어쨌다고 그래?”

 

항아 얘기가 나오자마자 재하의 말투는 순식간에 처량하게 변한다.

순식간에 전세가 역전된다.

 

“아니, 재신아...난 그냥....아니라니까? 그냥....물어본 거야, 물어본 것도 안 되냐?

니가 이런 식으로 나오면 안 되지. 지금 항아 임신했어.

너, 하나뿐인 조카라고...”

 

“흥~!”

 

“야~야~~~ 이재신~!!!!!”

 

재신은 가소롭다는 듯이 콧방귀를 끼며, 휠체어를 몰아서 나가버린다.

재하는 그런 재신을 따라서 급하게 나가며, 계속 싹싹 빌고 있을 뿐이었다.

 

 

시경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본다.

방금 전까지 그의 손은......그녀의 손과 사랑을 나누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그 자신도 분명히 알고 있었다.

 

 

하아.........

 

난....이제.......어쩌지.......

나, 정말........이러다........어쩌지.......

 

 

 

 

3

 

 

 

하루 종일 재하에게 시달리느라 한밤이 되어서야 시경은 궁 안 자신의 숙소로 돌아왔다.

공주님을 만나러 가고 싶었지만, 재하는 시경을 옆에 붙여두고 감시를 하다시피 했다.

조금이라도 시경이 자리를 뜨려는 기미가 보이면, 아예 산더미 같은 일을 맡겨서는 독한 눈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시경은 묵묵히 일을 했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자신의 이 어지러운 마음을 위해서도, 또 저 안 깊숙이 숨겨둔 자신의 어두운 욕망을 위해서도

어쩌면 전하의 명을 따르는 것이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아닌 것 같은 자신을, 진정시켜야 한다고, 더 이상 공주님을 겁나게 해서는 안 된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면서, 일에 자신을 몰아넣었다.

 

 

12시가 넘어서야 들어온 숙소에서는, 여전히 시경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어제도 한 잠 못 잤는데, 오늘까지........

 

분명 몸은 부서질 듯 피곤한데, 정신은 맑아져만 갔다.

아니다. 맑아진 것이 아니었다.

한 사람으로만 가득 찼다. 자꾸만 차올라오고만 있었다.

시경은 벌떡 일어나 샤워실에 들어가서 찬물을 머리에 끼얹었다.

온 몸에 소름이 돋아온다.

머리가 얼얼해진다.

그러나 웃기게도 머리 속은 더욱 깨끗해진다.

오로지 단 한 사람으로 더욱더 가득찰 뿐이다.

 

운명.......

 

시경은 운명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시경은 자신의 이 상황을.....운명이라고밖에 다른 말로는 설명할 수가 없다.

 

하아.......

 

한숨이 깊어지고만 있는 그 시간, 휴대폰이 울렸다.

새벽 2시를 넘어가는 시간.

궁중실장님이었다.

 

혹시........

 

순간적으로 두려운 생각이 스쳐지나간다.

 

“예. 은시경입니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빨리!! 지금 당장!!!!! 공주궁으로, 빨리 오세요! 지금 당장요!!!!”

 

궁중실장님의 다급한 목소리 너머로 그녀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시경은 달렸다.

심장이 터지도록 달렸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오지만, 멈출 수 없었다.

심장이 떨린다.

 

아무 일도 없다.

아무 일도 없다.

괜찮다. 괜찮으실 거다.

괜찮다.

 

 

“아악!!!!!!!!!!”

 

 

속으로 되뇌며 뛰어 들어간 그곳에.......그녀가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공주님!!!!!!!!!”

 

시경의 심장이 그대로 멈춰버린다.

 

 

 

 

 

4

 

 

 

 

 

뭐지?

누구지?

왜 울고 있지?

 

아니야, 우는 게 아니야.

운다는 말로는 다 표현이 안 돼.

 

뭐야?

누구냐고!!!!!

 

그 순간이었다.

내 영혼이 그 여자에게 들어가 버린 것은.....

 

그 몸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심장이 쥐어짜이는 것 같았다.

차라리 죽는 게 나을 만큼, 고문을 당해도 이보다는 낫겠다는 마음이 들 만큼,

죽어버리고 싶을 만큼,

견딜 수가 없었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누군가 내 심장을 칼로 난도질 하는 것처럼,

이보다 더 잔인할 수 없었다.

인간이 어느 정도 고통까지 견딜 수 있는지 누군가 나를 시험하는 것처럼

고통은 숨을 틈조차 주지 않고 내 모두를 삼켜버렸다.

 

꺽꺽대는 울음사이로

이제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을 정도로 울고 있으면서도

눈물은.....아니다 이것은 눈물이 아니다.

통곡이 나왔다.

소리낼 수 없는 통곡이 무엇인지 알아버리고 말았다.

 

눈물은 사치스러운 것이다.

그저 잠깐의 슬픔일 뿐이다.

 

이건 차원이 달랐다.

고통이.....정말로 고통이 느껴졌다.

사람을 잡아먹을 듯한 고통이, 살 수 없게 만드는 고통이 통곡이었다.

 

손 안에 차가운 은줄이 있었다.

그가......떠났다.

그는......죽었다.

 

다시는 그를 볼 수가 없다.

 

왜 갑자기 죽은 건지......아무도 내게 얘기해주지 않는다.

그가 어디에서 어떻게 죽은 건지 그 누구도 알려주지 않는다.

 

그의 부재...........

그것은 나의 죽음이었다.

 

줄을 쥐고 있는 자신의 손이 덜덜 떨린다.

쉴 새 없이 떨어지는 눈물 때문에 군번줄에 적힌 이름을 볼 수가 없다.

아니, 무서워서 볼 수가 없다.

 

 

<소령 은시경! 본국으로 복귀를 명한다.>

 

 

뭐? 뭐라고?

 

도대체 난 지금 무슨 소리를 들은 것일까.

 

모두가 검은 옷을 입고 있다.

작은 오빠가 울고 있다.

오빠가 우는 걸 아빠가 돌아가신 이후로 본 적이 없었다.

큰오빠가 그렇게 떠났을 때도 내가 있는 앞에서는 눈물을 보이려 하지 않았다.

그랬던 오빠가 울고 있었다.

모두가 울고 있다.

 

현충원.

모두가 검은 옷을 입고 누군가를 보내고 있다.

도대체 누구를.......도대체 누구를 보내고 있단 말인가.

 

그 때였다.

 

<소령 은시경! 본국으로 복귀를 명한다.>

 

뭐? 은시경? 은시경이라고?

 

모든 게 뚜렷해지기 시작한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확연해지고 있었다.

현충원에 화려하게 놓인 꽃들 사이로 솟아 있는 묘비가 누구의 것인지 뚜렷해지고 있었다.

 

소령 은시경(생몰년 1983. 12. 26. - 2012. 5. 23.)

 

끝......

나는 세상의 종말을 보았다.

내내 보이지 않던 군번줄에 새겨진 이름이 누구였는지.......

뚜렷하게 알게 된다.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것이 누구의 군번줄이었는지,

이것이 왜 내게 돌아왔는지.......

 

세계의 종말........

내게 끝이 왔다.

그렇게 내 심장은 쥐어짜는 듯한 고통과 함께 그곳에서 멈추었다.

 

 

 

 

 

5

 

 

 

 

 

“공주님!! 공주님!!! 제발 정신 차리세요!!! 공주님!!!!!!!!”

 

무언가의 소리....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어딘가를 헤매고 있다.

여기가 어디인지,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아무 것도 모르겠다.

 

누군가의 절규가 들리고, 누군가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울음 소리.....

아니다. 통곡 소리가 들린다.

 

“공주님!!!!! 제발!!!!!!!!!!”

 

정신과 몸이 겹쳐지는 순간, 그대로 고통이 엄습했다.

 

"허억헉!!......어...어떡해.....어떡해...........아악!!!!”

 

내 입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그 처절한 소리는, 그 처절한 울음은.....나의 것이었다.

가슴을 칼로 난도질 당하고 있었다.

 

심장을 누군가가 쥐어짜는 것 같다.

제발 살려줘.......제발....날 좀 살려줘........

 

“공주님!!!!!! 공주님!!!!!! 제발.....흑......정신 차리세요.”

 

누군가 내 옆에서 흐느끼고 있지만, 내 울음이, 내 고통이 모든 것을 덮어버렸다.

목에서는 이제 소리도 나오지 않는다.

꺽꺽대는 소리만 겨우 나올 뿐이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뿌옇다.

그것이 눈물이라는 것을.....뜨겁게 흘러내리고 나서야 알게 된다.

 

“어어엉.......어...떡해.......죽었어......죽었어.......흑......”

 

“누가 말이에요? 공주님, 누가 죽어요? 아무도 안 죽어요. 공주님!!!!”

 

“그가.....흑.......그가.....죽었어......흐흐흑........그가.....정말 죽어버렸어.”

 

“아니에요. 공주님. 안 죽었어요. 아무도 안 죽었어요.

제발 공주님!!! 악몽이에요. 공주님!!!!!! 정신 좀! 차리세요!!!!!”

 

“........어떡해..........은....흑......시경.........은...시경......흐흡...........”

 

“아니에요. 공주님.....은시경 근위대장님 살아 돌아오셨어요.

공주님, 꿈이에요. 착각이에요. 일어나세요. 공주님!!!!”

 

“죽었대......죽었대.......그 사람이......죽었대.

나한테.......그 사람......군번...줄을....줬어.....죽었어.......

죽었어........은시경........은시경!!!!!!..........아아아아악...........”

 

통곡이 절규로 바뀌고, 비명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가 죽었다고, 입으로 뱉는 순간, 그 말 자체가 바로 날 선 검이 되어 내 심장을 갈라버렸다.

 

“공주님!!!!!!!!!!”

 

그 순간이었다.

익숙한 그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가 내 팔을 잡았다.

그 목소리가 내 얼굴을 향하고 있다.

 

“누가 죽습니까!!!! 저를 보세요!!! 제가, 누굽니까!!!!! 공주님!!!!!”

 

“.........은......시......경?”

 

그를 부르는 내 목소리가 떨려온다.

그는 환영일까.

나는 분명 보았다.

그의 군번줄을......

그리고 그의 묘비를.......

나는 분명히 보았다.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남자는, 내 눈을 마주보고 있는, 이 고통 속에 애끓는 이 남자는,

누구인가......

환영.........그의.....영혼인가.......

나는.........미쳐버린 걸까........

 

“공주님!!!!!!! 저를 똑바로 보세요!!!!! 제가, 누굽니까!!!!!!!!!”

 

흐릿해진 눈 사이로, 그의 얼굴이 점점 또렷이 보인다.

그다.

그 사람이다.

나를 이토록 고통 속에 빠뜨린, 그 사람이다.

 

그를 이렇게 보는 것만으로 고통스럽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이 사람이, 환영일까봐, 무섭다.

나는 이미 세상의 끝을 맞닥뜨렸는데, 그 끝을 잠시 유예한 걸까봐........

그 끝이 두려워서 내가 만들어낸 허상일까봐......무서워서 죽을 것만 같다.

 

“.....은.....시....경..........”

 

“예! 공주님. 저 은시경입니다.

누가 죽습니까!!!! 이렇게 살아서 돌아왔는데, 누가 죽었다는 겁니까!!!!!!”

 

그의 손이 내 손을 잡아 그의 심장 위에 올려놓는다.

내 손 사이로 그의 심장이 부딪쳐 온다.

살아있다고, 나 이렇게 열심히 뛰며 살아있다고, 그의 심장이 내게 전해온다.

 

“....살아....흑....있는 거........흐흐흑.......맞지....정말......맞지?”

 

“예. 공주님! 저 살아 있습니다.

저 못 죽습니다. 공주님.... 때문에, 저 절대로 못 죽습니다.

저, 이렇게 살아왔습니다. 저 이렇게 살아 있습니다.”

 

“어어어엉....은.......시경.......”

 

그가 그대로 나를 품에 안는다.

 

재신을 안고 그녀의 등을 토닥인다.

시경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리고야 만다.

 

왜 하필........이런 기억이 먼저 떠오르신 건지........

다른 기억은 모두 찾으시더라도, 이 기억만은 영원히 잃어버리시길 바랐는데.....

왜, 이 기억이 가장 먼저 떠올라서, 그녀를 이토록 고통스럽게 하는 건지.....

 

그것이 못내 애처롭고 가슴이 찢어지는 듯이 아프게 한다.

 

진정제를 맞았으나 듣지 않는다는 다급하던 궁중실장님의 말이 떠오른다.

무엇이 그토록 그녀를 패닉에 빠뜨린 것일까.

왜 하필이면 이 기억인 것일까.

왜 하필이면........하아.........

 

그녀가 울고 있다.

그녀를 품에 안고, 살아있다고 외치는 것 외에 시경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죄송합니다. 공주님......

그러나, 저, 돌아왔습니다. 분명히 살아서, 이렇게 돌아왔습니다.

그러니.......아파하지 마세요. 공주님.......”

 

울고 있는 그녀를 안고, 미안하다고, 그러나 돌아왔다고, 제발 아파하지 말라고, 그 말 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은시경......절대로.... 죽지 마.

다시는 내 곁에서 떠나지 마......제발......가지 마.......곁에 있어........

절대로....나 두고. ....먼저......흑..... 죽지 마.........”

 

“예. 공주님. 절대로 안 떠납니다.

아니, 죽어도 못 떠납니다.

공주님 저, 안 죽습니다. 그러니 걱정 마세요.”

 

“은시경.....은시경.....”

 

 

계속해서 이름을 부르는 재신.....

그런 그녀 때문에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은 시경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계속 자신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마치 예전 그 때처럼, 자신만의 공주님으로 돌아와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시경은 더 참지 못하고 그대로 재신의 입술을 덮쳐버리고 말았다.

시경은 그녀의 입술을 빼앗으며 더 가까이, 더 깊이 들어가고만 있다.

 

눈물 사이로, 뜨거운 감정들이 서로를 향해서 내달리고 있었다.

미친 듯이 서로의 입술에 처절하도록 매달렸다.

입술을 비벼대며, 그 안으로 서로의 혀가 엉켜들었다.

시경의 혀가 휘어감았는지, 재신의 혀가 그의 혀를 놓지 않으려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서로의 혀를 핥고 쓰다듬으며, 서로의 숨결을 나누며, 존재를 확인하고 있을 뿐이었다.

부드럽고 따뜻한 서로의 숨결이, 서로의 입술이, 서로의 혀가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마주치고 얽혀들고 서로에게 엉켜드는 것으로 서로를 확인하며, 매달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의 호흡이 가빠지는 걸 느낀 시경이, 억지로 자신을 제어하며 입술을 겨우 떼어내려는 순간,

재신의 팔이 시경의 목을 감싸 안았다.

재신은 멀어지는 시경의 목을 끌어안고, 방금 전까지 자신의 입술을, 자신의 혀를 핥으며 쓰다듬던 뜨거운 그의 입술로 다가갔다.

 

시경은 그녀의 입술에서 자신의 입술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아니, 자신이 떨어지려고 했다.

지금 이러면 안 된다고, 그녀가 힘들어 한다고, 자신을 억지로 떼어놓았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그녀가 다가왔다.

떨어져 있던 자신의 입술 위로 그녀의 입술이 겹쳐졌다.

그녀의 입술이 시경의 입술을 빨았다.

그 사이로 그녀의 혀가 시경의 아랫입술을 핥았다.

시경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시경이 가만히 있으니, 재신은 더욱더 애가 탈 뿐이었다.

움직이지 않는 그가, 두려웠다.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 받고 싶었다.

뜨거운 그의 입술을, 그의 혀를 확인하고 싶었다.

절실했다.

절실하고 절실한 그녀의 몸부림이었다.

재신은 놀란 듯 벌어진 그의 입술 사이로 깊이 들어갔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그의 혀를 자신의 혀로 감싸며, 그에게 감겨들었다.

따뜻하고 말캉한 그의 혀가, 저릿하게 쓰다듬는 감각이 그가 살아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아서,

매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얽혀들고 싶었다.

그와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그의 입술에, 그의 혀에 깊게 들어가 살아있는 그를 느끼고 싶었다.

그래야 자신이 살 것 같았다.

그래야 이 고통 속에서 벗어날 것 같았다.

재신의 몸짓은 그토록 절박했다.

 

살아있음을 확인받고 싶은....그녀의 몸의 절규.

시경은 처음으로 그녀의 입술을 받았다.

스스로 얽혀드는 그녀의 키스를 온전히 받았다.

툭....하고 시경의 이성은 둔탁한 소리를 내며 끊어지고 말았다.

그 순간, 시경은 그대로 돌아버리고 말았다.

 

시경은 그대로 그녀를 안은 채 침대에 눕히며, 더욱더 농밀하게 그녀의 입술 깊이 빨아 당겼다.

자신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게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더욱 자신의 품 안으로 더 들어오도록 그녀의 몸을 더 깊이 안았다.

혹여나 입술이 자신에게서 떨어져 나갈까, 누워 있는 그녀의 입술에 그대로 입술을 맞추며, 그녀가 자신을 피할 수 없도록 거칠게 파고 들었다.

혀와 혀가, 입술과 입술이, 가슴과 가슴이 맞닿고, 작은 틈조차 없이 서로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그것이 삶을 증명하는 방법이었다.

서로에게 매달려, 서로의 혀에 얽혀들며, 감각을 일깨우는 것.

그것 외에는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할 방법이 없었다.

눈물은 어느 새 멈추고, 뜨거운 신음 소리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은시경.......하아.....은시경.....

 

그녀의 입술 사이로 그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야하다.

그녀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불릴 때마다, 심장은 요동을 치고, 저릿하게 퍼져가는 감각들 때문에 검은 욕망이 자꾸만 일어선다.

 

시경은 정말로 미쳐버릴 것만 같다.

그녀 때문에, 그녀의 고통 때문에, 그리고 그녀의 아름다운 몸 때문에, 무엇보다 입술에서 터져 나오는 그녀의 색스러운 신음 소리 때문에,

처음으로 스스로 시경에게 다가오는 그녀 때문에,

정말로 미쳐버릴 것만 같다.

 

그녀 때문이었다.

그녀가 그렇게 자신의 입술로 다가오지 않았다면, 그녀의 혀가 그의 혀에 그렇게 절박하게 얽혀오지 않았다면,

그토록 그녀가 애절하게 자신의 목을 감싸 안지 않았다면,

이렇게 이성을 놓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시경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녀의 목에 입술을 묻고, 입을 맞추었다.

부드럽고 하얀 그녀의 목은 태초의 순결함 그대로 그를 유혹하고 있었다.

그의 입술이 지나가는 자리마다 붉게 피어오르고, 그녀의 입에서는 그를 자꾸만 흥분시키는 신음소리가 흘러나온다.

 

하아....하아......

 

그녀의 숨소리, 그녀의 깊은 한숨 같은 신음소리.....

그 언젠가, 생사를 오고가던 그 때 그의 무의식 속에서 만났던 그녀처럼, 그때처럼 야한 신음을 뱉고 있었다.

슬픔은 색스러운 신음으로 바뀌어서 시경을 괴롭히고만 있다.

하얀 그녀의 목덜미가, 아무도 범하지 않은 듯한 순결한 그녀의 쇄골이 미치도록 시경을 흔들어대고 있었다.

그의 입술은 그대로 그녀의 쇄골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그녀의 쇄골에 입을 맞추며 자꾸만 자신의 욕망이 드러나려는 순간.......

시경은 다시금 그녀의 입술로 올라가 뜨겁게 그녀의 혀와 입술을 가지고야 만다.

그때였다.

그의 손은 완전히 그의 이성으로부터 놓여나 그녀의 얇은 잠옷 위로 올라가서 봉긋하게 솟아오른 그녀의 가슴을 움켜쥐고야 말았다.

 

아........

 

그녀의 놀라는 소리........

그래도 시경은 멈추지 못했다.

얇은 잠옷 위로, 그의 손은 그녀의 가슴을 주무르며, 자신의 욕망을 채워나가고 있었다.

아니 시경의 욕망은 더욱 커져가고만 있었다.

한번 터져버린 욕망은 그 크기를 가늠하기도 어려웠다.

그녀의 목에 입 맞추며, 그의 손은 그녀의 가슴을 쓰다듬을 뿐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단추 사이로 손이 들어가고 브래지어로도 다 감춰지지 못하고 위로 드러난 부드럽고 말랑한 가슴에 손이 닿았다.

시경은 미쳐버렸다.

시경의 손은 브래지어 위에서 그녀의 가슴을 유린하며, 입술로는 그녀의 하얀 살결 위를 탐내고만 있었다.

 

하아.......으음.......

 

색스러운 그녀의 신음소리...

목을 핥고, 쇄골을 핥고.......풀어진 잠옷 위로, 브래지어 위로 드러난 가슴 골 사이에 입술을 묻으며 한 손으로는 그녀의 가슴을 끊임없이 주무른다.

시경은 자신의 욕망과 미친 듯이 싸우고 있었다.

욕망이란 놈은 부드러운 살결을 맛보며, 더더를 외치고 있었다.

그 욕망은 자꾸만 커져갈 뿐이었다.

브래지어를 벗겨내고, 온전히 그녀의 가슴을 취하고 싶은 자신의 욕망과 시경은 죽을 것 같이 싸우고 있을 뿐이었다.

그건 정말로 안 된다고.......

미친 듯이 자신을 다그치고 있을 뿐이었다.

 

“하아.....하아......은시경......씨.........”

 

재신이 자신을 부르자, 순간적으로 정신이 번쩍 든다.

 

미친 거냐!! 은시경!!!!!

 

시경은 그녀를 품에 꽉 안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공주님.......

 

조금씩 흥분이 잦아드는 공주님.....그러나 여전히 시경의 품을 거부하지 않고 그의 품에 꼭 안겨 있었다.

 

위험하다.

자신이 위험하다는 생각에 시경은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여 몸을 일으켰다.

 

“가지 마.....”

 

“공주님............”

 

“가지 마........가지 마요........제발......”

 

어느 틈에 그녀의 목소리는 또다시 촉촉이 젖어들고 있었다.

 

“그러면.......주무실 때까지 곁에 서 있겠습니다.”

 

“싫어.....”

 

“공주님......”

 

“같이 있어요.

나랑 같이......내 곁에 있어요.

당신 심장 뛰는 소리를 들어야.....내가 살 것 같아.

제발......곁에 있어요.”

 

“그건....공주님......”

 

“은시경 씨.....나......혼자 두지마요.

당신 심장 소리 들을 수 있게, 당신 살아 있다는 거, 내가 느낄 수 있게,

내 곁에 누워 있어줘요.

부탁이에요.”

 

“...................”

 

그녀의 간절한 목소리 앞에서 시경은 안 된다는 말을 더 이상 할 수 없었다.

시경은 자켓을 벗고, 하얀 와이셔츠 차림으로 재신의 옆에 누웠다.

재신은 기다렸다는 듯이, 시경의 품에 파고든다.

그녀의 행동에 설레면서도, 시경은 온몸이 굳어온다.

자신이...참아낼 수 있을까......

아까.......자신은 그 선을 넘어버렸다.

 

헉.....

 

그녀의 손이 시경의 왼쪽 가슴 위에 놓였다.

쿵쿵 뛰는 심장의 울림이 재신의 손에 전해진다.

그래도 재신의 마음은 불안하다.

분명 뛰고 있는데, 자신이 잠깐만이라도 손을 떼면, 아까의 악몽이 되살아날 것만 같다.

 

진통제가 이제 약효과를 내는 건지, 온 몸에 힘이 자꾸만 빠져나가는데도

재신은 안간힘을 다해 시경을 잡고 있었다.

이 남자가 살아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끼고 싶었다.

그만큼.....고통이었다. 이 남자가 없는....그 순간을...견딜 수가 없었다.

손을 대고 있어도.....모자랐다.

잘 움직여지지도 않는 손을 들어 겨우 그의 얼굴을 만져 본다.

그래도.......모자랐다.

그의 볼을 쓸고, 그의 코를 그의 다부진 턱을 만져보아도 모자랐다.

어느 새, 그의 입술을 만지며, 재신은......아직은 남아 있는 정신을 모아 그에게 말했다.

 

“은시경 씨.....”

 

“예. 공주님......”

 

“키스.......해줘요........”

 

“예?”

 

시경은 자신이 들은 말은 분명 잘못 들은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미 심장은 그녀의 말을 알아듣고 쿵쿵 거리며 빠르게 뛰고 있었다.

 

“키스......해줘......요.....”

 

재신의 눈은 이미 감겨들고 있었지만, 그녀의 입술은 여전히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시경은 재신의 입술에 또다시 뜨겁게 다가갔다.

감긴 재신의 눈 아래로, 눈물이 흘러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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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너무 많이 늦었습니다.

늘 같은 말씀밖에 못 드려서, 더 죄송합니다.

화이트데이에 올리지 못하고, 그 다음날이 되었네요.

연아의 쇼트 1위와 함께 올리게 되어, 그나마 다행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2

본문에 나오는 심장이식 수술 환자의 성격변화는 실제 있는 상황입니다.

임상 결과로 나온 경우가 있었다지요.

굉장히 온화했던 사람이 심장이식 수술 후 성격이 과격하게 바뀐 사례가 있었다고 합니다.

본문에 나온 예 역시 실제 사례입니다.

 

 

3

이번 회는......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쓰는 내내 많이 아팠습니다.

쓰면서 고통스러워서.....쓰지를 못했습니다.

출장을 가서도, 기차 안에서도, 기차역에서도, 잠이 오지 않는 밤, 침대 위에서도,

아이패드에 메모장을 열어놓고 조금씩 조금씩 써나갔어요.

고통스러운 순간을 한 번에 쓸 수가 없어서 아주 조금씩 분산시켰던 것 같아요.

그러나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려버렸습니다.

반드시 넘어야 할 산.

은시경의 죽음을 맞닥뜨리는 장면을 넣어야만 했습니다.

쓰면서......제가 느낀 고통만큼 재신의 고통을 그려내고 싶었는데,

그게 잘 안 된 듯합니다.

날이 갈수록 표현의 한계를 느끼게 되네요.

말하고 싶은 대로, 떠오르는 대로, 그 장면을 잘 표현하고 싶은데, 언어라는 도구로 잘 표현이 안 됩니다.

그래서 머리를 쥐어 뜯고, 또 고치고 또 고치고 해보지만, 역시 눈에 띠는 발전은 없는 채로 이렇게 올리고야 마네요.

그저 너그러운 마음으로 양해해 주시길...

 

 

4

친구 정리 때문에 출석을 부르고 있습니다.

2월 26일부터 3월 19일까지 3주간 출석을 부르고 있는데요.

댓글에 한 번만, 점 찍어주시거나 손 들어주심 됩니다.

주소는  http://blog.daum.net/grandblue08/8746757

입니다.

아직 손 안 드신 분이 계신다면, 위의 주소로 들어가셔서 점 찍어주시길.....

저 기간 중 이미 한 번 손 드셨다면, 다시 손 안 드셔도 됩니다.^^

 

 

5

할 말은 많은데....너무 잠이 와서, 더 이상 주저리도 다 못할 듯합니다.

하고픈 말은....잡담에서...따로 올릴까 해요.

 

 

6

다음 회는 지금보다는 조금 더 빨리 가져오겠습니다.

꽃피는 봄이, 제겐 그나마 조금 나아서......그래도 가을, 겨울 연재 때보다는 낫지 않을까 혼자 기대 중입니다.

 

 

7

금요일이네요.

주말 잘 보내시길........

 

 

 

+8

많은 분들이 궁금해 하셔서......

궁중실장님은 은시경과 공주님의 관계를 알고 있지요.

그러니 은시경이 도착하자마자 필요한 말만 하고 바로 방을 나갔답니다.

그걸 서술상에 넣으려니, 맥이 끊어져서 통과시켰어요.

은시경 성격에 누가 있는 데서...절대 그런 인물이 아니랍니다. 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