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신상플) 야누스의 달(Januarius) 8 - 소녀, 심장을 훔치다
*배경음악을 틀고 봐주세요.(원하시는 곡만 반복해서 들으셔도 됩니다.)
1. 나의 사랑 수정 / 조정석
2. Say I Love you / 포맨
3. 소녀 / 이문세
4. 처음 사랑 / 이윤지
5. 걷고 싶다 / 조용필
18
왕실 의전차량을 타고 공주님이 학교 앞에서 내리셨다.
먼저 와 있던 시경은 그 앞으로 다가가 고개를 숙였다.
“오셨습니까? 공주님.”
“어, 시경 오빠~~ 일찍 왔네요.”
반갑다는 듯 환하게 웃는 그 미소에, 시경은 마주 쳐다보지도 못하고, 눈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하얀 드레스를 입고, 도저히 이 세상 사람 같지 않은 미모를 보여주고 있었다.
부드럽게 이어지는 곡선도, 잘록한 허리도, 모두 너무나 아름다워서 시경의 가슴을 자꾸만 뛰게 했다.
아직...어리신데.....
아직...열여덟밖에 안 되셨는데.....
자신의 이 마음이 자꾸만 추악하게만 느껴져서 시경은 애써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아!!!!
재신의 팔이 시경의 오른팔을 잡아 왔다.
“공주님......”
“이것 보세요. 파트너님. 적어도 파트너면, 멋없게 혼자 가심 안 되죠.
에스코트.....안 해줄 거예요?”
그녀는 장난을 치듯이 짐짓 정색을 하고 말하다가 그의 팔에 팔짱을 꼈다.
시경은......그저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이 상황이....도저히 믿기지가 않아서, 자신이 정말 이렇게 해도 되는지 자꾸만 두려워지고만 있었다.
“시경 오빠?”
공주님이 재차 자신을 부르고서야, 시경은 공주님 쪽은 바라보지도 못한 채, 학교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재신은 이미 보고 말았다.
그의 얼굴이.....점점 붉어지고 있다는 것을.....
그가....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재신의 얼굴에 또다시 환한 미소가 걸렸다.
19
말 그대로 댄스파티였다.
강당의 큰 홀 전체가 댄스파티의 장으로 꾸며져 있었다.
육사에서도 페스티벌이다 뭐다 하면서 댄스파티니 무도회니 하며 열리고는 있었다.
그러나 그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분명 고등학교인데, 스케일은 웬만한 대학 뺨을 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력한 인사들의 자제들만 올 수 있다는 학교였다.
집안이 좋거나, 아니면 본인 스스로가 천재거나, 뭔가 내세울 게 없다면 들어오는 건 꿈도 꿀 수 없는 학교가 바로 대한민국왕실고등학교였다.
대한민국 1%만이 올 수 있는 학교.....
아니 그 1%도 오기 힘든 학교......
왕족의 학교다웠다.
재신과 시경이 함께 들어서자, 학생들의 웅성거림이 번져가기 시작했다.
공주님이 오신다는 소문은 이미 자자하게 퍼져 있었다.
사실 이 댄스파티는 파트너가 필수는 아니었다.
파트너가 있으면, 데리고 오는 것이고, 없다면 이곳에서 또 만남의 장을 열면 되는 것이었다.
일종의 상류층의 자제들이 이 순간, 서로의 짝을 찾을 수 있는 그런 장이었다.
작년에는 참여하지 않았던 재신 공주가 참여한다는 소식통에, 남학생들 대부분은 솔로로 참여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은 정말 기회였다.
작년에도 참여하지 않을까 기대했었는데, 그녀가 참여하지 않아서 학생들의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런데 올해는 공주가 참여한다니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었다.
사실 재신 공주가 참여한 데는 교장선생님의 약간의 압박이 있었다고도 한다.
전교생 모두가 참여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 겸, 교장선생님 입장에서도 공주님이 참석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시너지 효과 때문에
은근히 재신에게 말해두기도 했었다.
물론 재신은 거절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재신은 이제 뭔가 한 번 터뜨려줘야겠다 싶었다.
학교 생활 자체가 피곤해서, 좀 조용히 다니고 싶다는 그런 마음 때문에 이렇게 시경을 데리고 온 것이었다.
시경이 나타나자, 여학생들은 부러움의 시선이, 남학생들은 질투와 실망의 시선이 시경을 향해 집단 폭격이 되고 있었다.
“와...저 사람...그 때 그...육사 수석 입학생...맞지?”
“그래...완전 잘생겼더라니.....에효...그럼 그렇지.....
공주님 남자였어?”
“저 오빠 아빠가 궁에 비서실장인가 그거라며?
그러니까 잘 알겠네.”
“아, 완전 부럽다. 완전 잘생겼어.
공주님이니까, 저런 킹카를 사귀지......아...부러워.”
“야,야.....공주님이야. 솔직히 공주님한테는....저 남자 좀 약하지 않냐?”
“야, 지금이 조선시대냐? 뭐 양반 상놈 있냐?
저 정도면, 잘 생겨, 똑똑해, 흉통은...크억....죽여~~ 뭐가 빠져?”
“그건 그래...부럽다...으엉~~~”
강당 안으로 걸어 들어가는데 여학생들의 속삭임이 재신의 귀에 고스란히 들렸다.
시경도 들었나 싶어 흘낏 보니, 시경은 뭔가 긴장한 듯, 주변의 소리는 하나도 들리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객원 DJ의 음악 선곡에 맞춰서, 강당 안에는 신나는 음악들로 채워지고 있었고,
길게 늘어선 홀의 탁자 위에는 무알콜 소다와 칵테일들이 즐비하게 놓여 있었다.
하나, 둘 짝을 맞춰서 중앙홀로 나가 춤을 추어대자, 시경이 슬쩍 그쪽을 쳐다보더니, 드디어 공주님께 한 마디 건네었다.
“춤....춰야 하는 겁니까?”
“에?”
정말 한참만에 나온 그의 말이, 재신은 뭔가 황당하다는 듯, 그를 쳐다보다 풋 웃음을 터뜨렸다.
“풋~~안 춰도 돼요.
그냥 내 옆에 있으면....돼.”
그녀는 뭐가 웃긴지 자꾸만 그를 보며 쿡쿡 웃고 있었고, 시경은 자꾸만 긴장이 되고 있었다.
“뭐, 마실 거, 갖다 드릴까요?”
“응....좋아요. 소다류로 가져다 줘요.”
“예.”
바텐더에게 가서 주문을 넣고 기다리는데, 음악이 바뀌었다.
아무래도 댄스파티의 하이라이트는 뭐니뭐니 해도 블루스 타임이었다.
짝을 찾을 수 있게, 중간 중간, 블루스 타임을 넣겠다고, DJ는 모두의 바람을 담아 공표를 했고,
때는 이때다 싶은 남학생들은 제각각 마음에 드는 여학생에게 신청을 해대고 있었다.
늦네......
재신은 혼자 테이블 근처에 서서 기다리다가, 음악이 바뀌자, 이건 뭐야, 아예 짝짓기로 가자는 거야, 싶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저........”
그 때, 한 남자가 나타났다.
“네?”
“공주님.....혹시 실례가 안 되시면, 저랑 춤을.......”
자신을 부르는 남자의 얼굴을 보니, 낯이 익었다.
인사를 따로 해본 적은 없지만, 유명한 인물이었다.
현재 고3인 A기업 막내 아들.......강현욱이었다.
“아, 전....파트너가 있어서.....”
정중하게 웃으며 거절하는 재신에게 그는 의외로 진득하니 붙어 있었다.
“파트너는 다른 곳에 가신 듯한데, 잠시 저와 추셔도 될 것 같은데요?”
뭐지...이 집요함은......
약간 귀찮아지려는 찰나, 그의 손이 재신의 팔을 가볍게 잡아 왔다.
속에 짜증이 올라왔지만, 재신은 A기업이 이번에 왕실 후원 사업에 꽤 큰 액수를 기부했다는 걸 기억해냈다.
한 번....춰야 하는 걸까......
그냥 한 번 춰주고 말까......
그녀의 왼손이 그를 향해 뻗어나가는 순간, 누군가 그녀의 손을 낚아채며, 그녀의 허리를 휘감아 안았다.
어!!
돌아보니, 시경이 오른손으로 자신의 허리를 감싸고 있었다.
“어쩝니까? 공주님은 파트너가 있으신데.......”
내용은 부드러웠으나, 말투는 부드럽지 않았다.
그의 목소리는 군인처럼 딱딱하고 거칠었다.
그의 말이 마치, 당장 꺼지라는 말처럼 들렸다.
아까까지 분명 자신이 보기만 해도 얼굴을 붉히던 사람이,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그럼...다음 기회에 다시 오죠.”
“........적어도 오늘은......”
“예?”
“다음 기회란....없을 겁니다.”
시경의 단호한 말에 현욱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졌지만, 딱히 다른 말은 하지 못한 채 멀어져갔다.
재신은 이 모든 상황을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역시....군인 체질인가.....
“풋.......”
재신이 웃음을 터뜨리자, 언제 그랬냐는 듯, 시경은 또다시 당황하는 표정이 되었다.
“내...소다는요?”
“예..예? 아...그게......”
“안, 가져왔어요?”
“.....예. 죄송합니다.”
"뭐, 그런 걸로 죄송할 것까지야...풋~"
소다를 기다리는 동안, 공주님을 지켜보던 시경은, 현욱이 접근하자 점점 마음이 불편해지고 있었다.
설마...그냥 가겠지 싶었는데, 몇 마디가 오고가자, 뭔가 공주님이 갈등을 하시는 듯이 보였다.
게다가 그 놈이 공주님의 팔을 잡자, 스스로도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열이 확 올라왔다.
소다가 나왔다고 얘기하는 바텐더의 말은 듣지도 못한 채, 시경은 이미 그녀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놈을 향해 내밀어지고 있는 그녀의 손을 낚아채고, 마치 절대 빼앗기지 않겠다는 듯이, 그녀의 허리를 자신의 팔에 감아왔다.
“근데요.....시경 오빠....”
“예?”
“음...음...언제까지.....이럴 거예요?”
“예? 뭘.....아...죄송합니다.”
시경은 자신이 계속해서 그녀의 허리를 감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그녀의 부드러운 몸이 그의 팔에서 빠져나가자, 알 수 없는 상실감이 들었다.
그러는 사이, 두 번째 블루스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예 마음껏 짝짓기를 하라는 건지, 조명까지 어둡게 만들고 있었다.
“공주님.....”
“네?”
“아까...왜 손 내미신 겁니까?”
“응?”
“혹시.......춤, 추시고 싶으셨던 겁니까?”
이 남자의 물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바로 캐치가 되지 않아서, 재신은 흥미롭다는 듯 미소를 띠며 그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기대된다. 이 오빠의 다음 행동이......
미소를 머금은 채 자신을 바라보는 재신을 깊은 눈으로 마주보던 시경이 하아...하고 한숨을 내쉬더니, 그녀의 손을 잡고 홀로 나갔다.
“어....뭐예요? 아까...못 춘다고 그랬잖아요?”
“춰야 되느냐고 했지, 못 춘다고 한 적은 없습니다.”
시경의 손이 부드럽지만 강하게 재신의 허리를 감쌌다.
생각보다 강한 힘에, 설핏 놀랐지만, 이 남자 군인이지 싶어서 재신은 다시금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럼...이건?
재신은 두 팔을 들어 그의 목에 감은 후, 그에게 바짝 안겼다.
도발.....이었다.
아직 어리다 생각한 소녀의 도발.
사실 어리다는 건 시경의 머릿속 이성일 뿐, 그의 감각은 그렇게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의 까만 눈이 재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얼굴을 붉히지 않을까 했지만, 그러기엔 그의 눈이 너무나 짙었다.
오로지 빨려 들어갈 듯한 그 눈을 보고 있으려니 도리어 당황이 되는 건 재신이었다.
재신은 자신도 모르게 그의 시선을 피했다.
뭔가 가슴이 콩닥콩닥거리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했다.
그래도 그와 춤을 추는 이 시간이 좋았다.
재신이 얼굴을 시경의 가슴에 기대오자, 시경은 순간 움찔하고 말았다.
미친 듯이 뛰고 있는 심장소리가 그녀에게 들킬까봐 긴장이 되었지만,
심장은 진정시키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터질 듯이 뛰어대고 있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주변에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눈은 한결같이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시경의 눈에는 그 누구도 들어오지 않았다.
자신의 품안에 있는, 자신의 가슴에 곱게 기대어 있는 한 소녀 외에는 이 세상에 그 누구도 없었다.
블루스 타임이 끝나자, 뭔가 뻘줌한 마음에 서로의 눈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뒤로 빠져서는
소다를 마시네, 무알콜 칵테일을 마시네 하며, 서 있었다.
그 때, DJ의 음악이 끝나고 사회자가 올라왔다.
“자, 여러분, 뜨거운 밤을 보내고 계십니까?”
“네~~”
“그러면 지금부터 분위기를 바꿔서 미니 콘서트로 진행해보겠습니다.
숨겨진 가수, 나름 좀 부른다 하시는 분들 앞쪽으로 나와서 신청해주시거나 추천해주시면
콘서트로 꾸며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때였다.
학생들이 갑자기 입을 모아 공주님을 부르기 시작했다.
“공주님! 공주님!!”
모두들 공주님을 부르자, 재신은 당황하며 곤란하다는 듯 얼굴을 찌푸렸다.
재신은 사회자를 향해서 고개를 흔들었지만, 사회자는 본 체 만 체 하며, 학생들의 연호를 더욱더 부축였다.
“공주님이라구요?”
“예~~~~”
“왜요?”
“공주님 가수보다 더 노래 잘 하세요!!!”
다들 어디서 어떻게 들었는지 재신의 노래를 청하고 있었다.
공주님이 축제 댄스파티에 이렇게 참석했다는 것 자체도 놀라운 일인데, 이렇게 공주님의 노래를 듣는다는 건,
평생에 한 번 올까 말까한 일이었다.
“괜찮으십니까?”
얼굴을 찌푸리고 있는 재신에게 시경이 낮게 물었다.
“으으응.....큰일이네.”
“왜, 그러십니까?”
“나, 목 아파서 지금 노래 못해요. 어쩌죠?”
시경은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잠시만 다녀오겠다며, 사회자 쪽으로 걸어갔다.
그 사이에도 학생들은 모두가 공주님을 외치고 있었다.
시경이 사회자에게 몇 마디 건네자 사회자가 좌중을 향해 또다시 말을 던졌다.
“어쩝니까? 공주님께서 목이 많이 아프신 관계로.....안 되시겠다는데....네? 뭐라구요?”
사회자가 공주님은 아쉽게도 안 되겠다고 말하는 동안, 앞에 서 있던 몇몇의 여학생들이 뭐라고 소리를 질렀다.
“흑기사!! 흑기사!!!”
“네? 흑기사요? 흑기사 누구?”
“은시경!! 은시경!!!”
“네? 은시경요?”
“네~~~~~”
은시경이라고 외치는 말에 시경은 공주님께 돌아오는 와중에 그만 멈칫 서서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자, 그럼 은시경 흑기사님을 모셔볼까요?
우리 학교 설명회에 오셔서 엄청난 팬클럽을 형성하셨죠?
육사 개교 이래 최고의 엘리트 훈남이자 배우 뺨치는 외모의 은시경 씨......가능하시겠습니까?
이거, 공주님이 안 되시니, 흑기사가 해주셔야 되는데요.”
한숨을 쉬던 시경이 몸을 돌려 다시 무대 쪽으로 향하자 학생들이 자지러질 듯 소리를 질러댔다.
“여러분, 은시경 씹니다. 박수로 환영해주시죠.”
사회자는 은시경이 무대 위로 올라오자 바로 마이크를 넘겼다.
“흠흠......”
마이크에 대고 목을 가다듬자, 여학생들은 이미 쓰러진다며 난리도 아니었다.
재신은 여학생들의 반응에 자신이 더 놀라고 있었다.
그렇게...저 남자가...멋진건가.....
뭐, 저 정도면 수준급이긴 하지만......
“충성!! 육사 생도 55기 은시경입니다.”
그가 군인처럼 경례를 해오자, 정말로 좌중은 자지러질 듯이 난리를 쳤다.
재신의 눈에도 뭔가 멋있어 보였다.
그가 밴드를 향해서 뭔가 말하자, 밴드가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소녀....에게......바치는 노랩니다.”
그는 누군가에게 말하는 듯이 읊조리자, 정말 자신들에게 보내는 노래인양, 여학생들은 쓰러질 듯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더킹투하츠와 은신상플 > (은신) 야누스의 달'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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