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신상플) 야누스의 달(Januarius) 7 - 심장이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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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석 - 나의 사랑 수정
바라보지 말아야지
하루종일 생각했지만
그 예쁜 두 눈을 바라보면
다른 생각은 할 수가 없어
생각하지 말아야지
하루종일 생각했지만
그 웃음 소리를 생각하면
다른 생각은 할 수가 없어
책을 펼치면 떠오르는 하얀 얼굴
길을 걸으면 온통 그 뒷모습
눈을 감으면 보이는 환한 미소
눈을 떠보면 어느새 사라져
조금만 더 기다릴까
잠시후면 지나갈텐데
난 그냥 우연히 지나다가
그냥 우연히 서있는 거야
하염없이 기다리다
우연인척 그녀를 만나
해맑은 그 미소 눈이 부셔
나의 사랑 수정
책을 펼치면 떠오르는 하얀얼굴
길을 걸으면 온통 그 뒷모습
눈을 감으면 보이는 환한 미소
눈을 떠보면 어느새 사라져
조금만 더 기다릴까
잠시후면 지나갈텐데
난 그냥 우연히 지나다가
그냥 우연히 서있는 거야
하염없이 기다리다
우연인척 그녀를 만나
해맑은 그 미소 눈이 부셔
나의 사랑.......수정
14
대한민국왕립고등학교, 직업 및 대학 설명회가 열렸다.
다양한 직업군에서, 또 다양한 대학생들이 나름 내로라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드림팀이 왕립 고등학교를 내방했다.
사실 누구나 이 왕립고등학교 직업 설명회에는 참여하고 싶어했다.
또한 아무나 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 직업 가운데에서도 1인자이거나 저명한 인사로 구성되어 있었다.
또 대학생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총장이 추천하는 가장 뛰어난 인물만이 이곳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 이유는 오로지 대한민국왕립고등학교였기 때문이었다.
개인적인 욕심들이라면, 아무래도 대한민국 공주가 이 학교를 다니기 때문이기도 했다.
재강과 재하 역시 이 학교를 나왔기 때문에, 그들이 다니는 동안은 정말 난리도 아니었다.
재강은 처음부터 황태자였기 때문에 황태자의 학교로 불리며, 대한민국 모든 여자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물론.....재강의 평생의 반려자도, 왕립고등학교 출신이었으니, 신데렐라 콤플렉스를 가진 수많은 여학생들이 이곳을 꿈꾸고 있었다.
재하가 다닐 때는 그 여성 편력 때문에 엄청난 파란이 일기도 했다.
많은 여자들이 재하 때문에 울고 웃었다.
그렇게 여자들의 선망의 대상이던 이 학교가, 재신이 들어오면서부터는 이제 부마 학교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잘만 하면 부마가 될 수 있다는 그런 엄청난 어드벤티지도 있었겠지만,
더 굉장했던 건, 이재신이라는 여자 그 자체였다.
전 세계 미모의 공주를 뽑는 랭킹에서, 이미 10대의 나이로 1위를 한 전력이 있었으며,
나이가 들수록 그 아름다움이 너무나 커져서,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기도 했다.
미스코리아든, 뛰어난 여배우든, 각종 랭킹에서, 이재신 공주가 단연 1위였다.
미모를....따라갈 수가 없었다.
너무나 아름다웠지만, 그 이상으로 기품이 있었다.
10대의 소녀에게서, 우아한 기품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그것이......수많은 대한민국의 청년들을 들끓게 하고 있었다.
최고 중에 최고만이 온다는 이 드림팀의 인물들은 단연 최고였다.
지적인 능력뿐만 아니라, 그들의 외모도 너무나 출중했다.
그리고 그 중, 최고의 인기는, 육사 개교 이래 최고의 엘리트라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육사 생도 은시경이었다.
팜플렛에 적혀 있는 바로는 육사 전체 수석에, 입학 당시 전국 등수 5위,
현재 육사 3년생으로 육사 전체 부학생회장을 맡고 있다고 했다.
시경이 강연대에 서자, 강당 전체가 술렁대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건 뭐, 연예인인가 싶을 정도였으니.....
여학생들의 환호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그가 설명을 이어가는 동안, 군데군데 탄성들이 터져나오고 있었다.
재신 역시 그의 설명을 흥미롭게 보고 있었다.
은시경......
분명...은규태 비서실장님 외동아들이 틀림없었다.
어렸을 때 분명 봤을 텐데....기억은 나지 않았다.
그런데.....저런 인물이었나......
그의 설명이 끝나고 나서도 좌중은 정리되지 못하고, 계속해서 뭔가 탄성과 잡음들이 터져나오고 있었다.
교무주임 선생님이 나와서 조용하라고 몇 번이나 주의를 주고서야 겨우 다음 진행을 이어갈 수 있었다.
뒤에서 여학생들은 선생님들의 눈을 피해서 계속해서 소곤대고 있었다.
그 소리가 재신에게까지 고스란히 들렸다.
“은시경! 정말 완전 죽인다.”
“그지 그지? 나 완전 찜했어. 저 오빠.....
들었어? 저 오빠가 왕실 비서실장 아들이래.”
“그래?”
“뼈대있는 집안이래. 왕실 비서실장님이 원래 대법원 판사 출신이잖아.
머리는 타고났다던데?
육사 수석이래.”
“야, 다 필요 없고! 일단....흉통 봐라! 이미 게임 오버야!!
은시경 앞에서는 다른 남자들은 다 멸치야, 멸치.....아...진짜.....너~~무 멋있어!!”
그러고보니 재신의 눈에도, 유독 시경이 달라보였다.
다른 남자들 속에서 확연히 그는 튀고 있었다.
꼭 연예인이 일반인 코스프레 하는 것처럼......
재신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15
나오는 길......
함께 설명회를 한 인물들이 다같이 강당을 빠져나왔다.
교장 선생님 주최로 대학생 신분으로 참여한 인물들과 간단히 만찬회를 하신다고 해서, 다들 그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강당에서 교문까지 가는 동안, 다들 들떠서 야단도 아니었다.
주제는 단연, 공주님이었다.
“이 학교 학생들 진짜 부럽네요.
잘만 하면, 부마되는 거잖아요?”
“그렇죠. 오늘...공주님 보셨어요?”
“그럼요. 안 볼 수가 없던데요.
혼자서 정말 주변에 조명 받으시는 것처럼, 빛이 장난이 아니더라구요.”
“왜, 공주님이 미모 1위신지, 저도 오늘 새삼 깨달았어요.”
아는 사이가 아니더라도, 지금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리고 공주님을 직접 봤다는 흥분에, 모두가 같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시경은 조용히 그들의 대화를 듣기만 하고 있었다.
공주님.......
엉어어어엉.....
넘어져서 울고 있던 7살 여자아이.......
시경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 순간...다들 술렁대기 시작했다.
“공주님이다!!!!”
“어디 어디?”
“저기 저기, 우리쪽으로 걸어오시는데?”
시경은, 자신도 모르게 그들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눈을 돌렸다.
쿵.......
자신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심장이.....저 아래로 쿵하고 떨어졌다.
열여덟 살의 소녀가 나비처럼 다가오고 있었다.
“어어어!!!”
다들 탄성이 절로 나오는 그 순간......
소녀가 점점 그들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설마..설마....
소녀가 가까워질수록 시경의 심장은 터져나올 듯이 뛰어대고 있었다.
아니다...은시경...정신차려.....
한 발...한 발......
그녀가 점점 내게로 걸어온다.
아니, 착각이다.
아닐 거다....내가 아니라.....다른 사람을 찾아오시는 거다.
열 걸음 남은 거리.....
그녀의 눈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아홉 걸음......
그 역시 내 착각일지도 모른다.
여덟 걸음.....
정말 나일까......내게 오시는 걸까......
일곱 걸음....
심장이 내려앉는 듯이 뛰어댄다.
여섯 걸음.....
이젠 정말로 눈이 마주쳤다.
의심하려야 할 수 없을 정도로 그녀의 눈은 나를 보고 있었다.
다섯 걸음......
그녀의 입술에 미소가 걸리는 것도 같다.
네 걸음.....
입술이 바짝바짝 마른다.
세 걸음.....
심장이...터져버릴 듯이 뛰어댄다.
두 걸음......
주먹을 쥐었다.
그러나 떨림까지는 감출 수가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한 걸음......
바로 앞, 한 걸음을 두고, 그녀가 멈춰 섰다.
“시경...오빠?”
그 순간........저 아래로....쿵....하고 내 심장이 떨어지는 소리를.....온 몸으로 들었다.
모든 이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내 눈에는 그 누구도 들어오지 않았다.
오직 내 앞에, 빛처럼 환하게 비치는....아름다운 소녀만이 서 있었다.
사람의 심장을 저릿하게 만드는, 그녀의 환한 미소 앞에서.......
세상이.
멈추었다.
16
재신과 시경, 그리고 은규태 실장이 한 차를 타고 궁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운전석 옆에는 은실장이, 그리고 공주님의 옆자리에는 시경이 앉아 있었다.
“공주님, 제 아들놈, 알고 계셨습니까?”
“이름은 당연히 알고 있었죠.”
재신이 방긋 웃으며, 옆에 앉아 있는 시경을 보자, 시경은 그녀를 바라보다 들켰다는 듯 얼굴을 붉히며 다시 얼굴을 정면으로 돌렸다.
그런 모습을 보며 재신은 더 맑게 웃고 있었다.
은시경이 왕립고등학교에 설명자 자격으로 온다는 얘기를 듣고,
재강이 은실장에게 부탁해서 같이 식사를 하자고 청했다.
은실장은 직접 두 사람을 데리러 왔다가, 교문 근처에 서 있는 두 사람을 보고, 곁으로 다가갔다.
“공주님....”
“어, 은실장님. 여긴 어쩐 일이세요?”
“전하께서 오늘 제 아늘놈과 식사를 하자고 하셔서, 제가 왔습니다.”
“어, 그래요? 잘 됐네.
같이 가요. 시경 오빠.”
시경은 전혀 생각도 하지 못하다가 얼떨떨한 기분으로 두 사람을 따라 의전차량에 탔다.
그 사이 함께 설명회에 참가했던 대학생들과 왕립고등학교 학생들은 대형원을 그리며, 그들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뭔가 유명인사가 된 듯한 느낌......
공주님은 익숙해보이셨지만, 자신은 익숙하려야 할 수가 없었다.
불편하지만.......뭔가 자꾸만 설렜다.
그건......지금...옆에 앉아 계신......소녀 때문일지도 모른다.
“전하, 미천한 제 아늘놈입니다.”
“아아...드디어 왔군요. 반갑습니다.”
재강은 시경을 보자, 얼굴에 만면의 웃음을 띠며 그를 맞이했다.
“충성!
육사 생도 55기 은시경, 전하께 인사드립니다.”
“충성! 역시 육사 생도라 다르군요.
자, 일단 앉아서 밥부터 먹읍시다.
다들 시장하신데 이렇게 서있게만 해서야.......”
재하는 군복무 중이라 빠졌을 뿐, 재강과 현주, 대비인 영선까지 왕실의 온 가족이 모여 있었다.
재강과 영선은 은시경의 됨됨이를 보며, 몇 번이나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반듯한 자세도, 성실해 보이는 인상도, 그리고 잘생긴 외모까지, 칭찬하지 않을 게 없었다.
“은실장님, 정말 든든하시겠어요. 저렇게 잘 생기고, 성실한 아들이 있으셔서요.”
“과찬이십니다. 대비마마. 아직...많이 부족합니다.”
“아니에요. 저렇게 듬직한데.....
근데 어쩜 이렇게 잘생겼을까. 얘 새애기야,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어머, 어머님, 당연하죠. 저 완전 놀랐어요.
풋~. 배우 들어오는 줄 알았다니까요.”
“여보....그렇다고 넘어가는 건 곤란해.”
재강이 은근히 현주에게 질투의 시선을 보내자, 현주가 재밌다는 듯, 재강의 팔을 툭 친다.
자신을 칭찬하는 이야기들이 흐르고 있지만, 정작 은시경은 그 안에서 그 어떤 말도 못한 채, 묵묵히 밥만 먹고 있었다.
사실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알 수도 없었다.
긴장의 연속이었다.
이렇게 대한민국의 국왕내외와 대비마마...그리고 공주님까지,
대한민국 왕족들과 같이 식사를 한다는 것이 시경에게는 엄청난 부담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자신을 긴장시키는 존재는......자신의 옆에 앉아서 연신 미소를 지으며, 밥을 먹고 있는 공주님....이었다.
자꾸만....눈이 갔다.
마치......인형이 앉아 있는 것만 같았다.
길게 굽이치는 갈색 머리가 새하얀 얼굴을 더 돋보이게 해주고 있었다.
눈은....어찌 저리도 크신지......
오물오물 먹고 있는 입술은.......사람을 두근거리게 할 정도로 빨갛고 투명했다.
“우리 재신이, 직접 보니까, 어때요?”
그 순간 재강이 시경에게 질문을 던졌다.
“예..예?”
놀라서 무슨 말씀이신지 전혀 인지도 못하는 시경을, 전하는 재미있다는 듯이 보며 웃고 계셨다.
“우리 재신이, 어떤가 해서.....또래들 눈에는.....어떻게 보이나 해서 물어본 겁니다.”
“큰오빠!! 무슨 이상한 질문을 하고 그래?
실례야, 실례. 오늘따라 오빠, 작은 오빠 코스프레하는 거야?”
시경이 민망해 하는 듯해서, 재신이 나서서 재강의 말을 막았다.
“어, 너무 단도직입적이었나? 이것 참......”
“그러니까 자꾸....국왕이 동생바보라는 말을 듣는 거야. 여튼.....큰오빠도 참......”
“........예쁘십니다......”
순간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묵묵히 밥을 먹으며, 그 어떤 말에도 끼이지 않던 시경이.......문득 던진 한 마디에 모두의 시선이 시경에게로 쏠렸다.
시선이 부담스러운지 시경의 얼굴이 또다시 붉어졌다.
“예쁜 건, 당연한 건데......”
“오빠 좀~~ 그만해. 오빠 때문에 내가 다 부끄러워.”
“..........사진이나 방송에서 뵐 때도 예쁘시다고 생각은 했지만, 직접 뵌 모습은....그것과는 ...비교도 안 되시게,
정말.....예쁘십니다. 공주님은......”
묵묵히 낮게 말해오는 음성에 또다시 모두의 시선이 시경에게로 쏠렸다.
뭐 그렇게 특별한 말은 아니었으나,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특별해 보였다.
재신의 입술에 미소가 걸렸다.
재강 역시 뭔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분위기가 이상해질 것 같아서, 재신은 자신이 나서기로 했다.
“어머, 고마워요. 시경 오빠. 풋~ 보는 눈 있으시네.”
재신의 그 말에도 시경은 아무 말도 못한 채, 귀까지 붉히고 앉아 있었다.
그런 시경을 보니, 재신도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아무 말이나 막 던졌다.
“그래서 큰일이야. 오빠......나 요즘 애들 때문에 힘들어.”
“무슨 일 있었니?”
아까까지 분명 장난스럽던 재강의 목소리가 금세 걱정스러움으로 바뀌어 있었다.
화제를 잘못 선택했군.....싶었지만, 이미 뱉은 말을 어쩔 수는 없었다.
“남자애들이 자꾸 괴롭히는 거야? 아니면 자꾸 귀찮게 한다거나?”
“뭐, 그렇지 뭐. 내가 신기하겠지. 공주니까 한번 꼬셔보자 싶지 않겠어?”
“재신아, 그게 아니라니까. 공주기도 하지만, 니가 너무 이뻐서 그래.
이걸 어쩐다.......”
이미 재강은 걱정모드로 전환되어서 혼자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럼...그냥, 남자친구 있다고 해버릴까?”
“그래도...그건.....스캔들인데....재신아, 너 이제 겨우 열여덟 살이야.
오빠는, 너 그런 루머 있는 건, 싫구나.”
“네네...오라버니...자꾸 저러니까, 언론에서 자꾸 동생 바보라는 말을 듣는 거야.”
“그래도.......”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시경은, 남자친구라는 말에 자신도 모르게 긴장하고 있었다.
혼자서 걱정을 했다가, 안심을 했다가 하며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는 자신이 너무나 낯설었다.
“참, 은시경 생도는 지금 부학생회장이라고 그랬지요?”
“예. 전하. 그런데 이번 여름에 임기가 끝이 납니다.”
“그래? 그러면 다시 학생회장 선거에 나갈 건가요?”
“아닙니다. 9월부터 미국에 교환학생으로 1년동안 가기로 되어 있어서, 8월에는 미국으로 갈 것 같습니다.”
“아, 그래요. 아쉽네. 자주 부르려고 했더니.....
그러면 다녀와서 자주 궁에 들려요.”
“예? 아...예....감사합니다. 전하.”
시경이 얼떨떨하게 대답하는 사이, 규태가 끼어들었다.
“전하. 아직 육사 3학년생입니다.
아직 미흡하고 모자란 아인데.......안 그러셔도 됩니다.”
“실장님, 제가 좋아서 그럽니다.”
식사를 하는 건지, 어디로 들어가는 건지, 등으로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너무나 긴장이 되는 와중에도,
시경은 자꾸 옆쪽으로 시선이 가는 자신을 막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시경이 집으로 돌아갈 즈음, 재강이 마지막으로 시경에게 입을 뗐다.
“은시경 생도 같은 사람이 육사 생도라 정말 든든합니다.”
“전하. 과찬이십니다.”
“아닙니다. 은시경 생도가 나중에 졸업하고 나면, 대한민국과 우리 왕실을 지켜줄 거라고 굳게 믿습니다.
부탁합니다. 대한민국과 우리의 왕실......그리고.....우리, 재신이........”
전하께서 겨우 육사 3학년인 자신에게 대한민국과 왕실을 부탁하신다고 하셨다.
그보다도 더 놀라웠던 것은, 내게 공주님을....부탁하신다니......
무슨 의미이신 건지 시경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답, 안 해줄 겁니까?”
재강이 재차 묻고 나서야, 시경은 정신을 차렸다.
“아, 죄송합니다. 전하.
예. 제 목숨을 다 바쳐서 반드시 지켜내겠습니다.
충성!”
그렇게 시경은 돌아갔다.
그런 시경을 재강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지켜보았다.
뭔가 흐뭇하게 바라보는 재강을, 현주가 왜 그러느냐며 슬쩍 팔을 잡았더니
재강은 여전히 시경이 밖으로 걸어나가는 것을 창으로 보며 말을 이었다.
“둘이, 이쁘지?”
“아유, 여보...너무 넘겨짚지 말아요.”
“그래도.....탐나....은시경......”
아까 재강은 보고 있었다.
시경이 자꾸만 재신을 바라보던 것을......
그러다 재신이 바라보면, 순간 고개를 숙이던 것을.....
그러나 그 붉어지던 얼굴은 감출 수가 없었다는 것을......
그리고는 또다시 자석처럼 재신이를 바라보던 시경을 지켜봤다.
“풋......아마 밥도 제대로 못 먹었겠지.
그래도...우리 재신이가 아깝지.”
“그걸 말이라고 하세요?
난....우리 아가씨 아무한테나 못 줘요. 확실하게 괜찮은 남자여야지.”
“그렇지? 은시경이 탐나기는 해도, 우리 재신이 짝으로는 어림없지.”
“이보세요. 전하. 우리 아가씨 겨우 고등학교 2학년이에요.
제발.....이렇게 티 좀 내지 마요.”
“그래도....우리 재신이.....아까워 죽겠어. 저렇게 이쁜데........”
“그러니까요. 우리 아가씨......너무 이뻐서....걱정이에요. 진짜.....”
“그러니까 다들 그러겠지. 국왕부부가 재신이를 워낙 이뻐하니까,
우리가 낳은 딸 아니냐고 그러잖아.”
“그러게...맞아요. 내 딸 같아.....풋......너무 이쁘잖아. 다 이뻐, 외모도 너무 이쁘지만, 뭐 하나 안 이쁜 데가 없어요.
마음 씀씀이도 이쁘지, 행동도 이쁘지.......
나중에 내가 딸을 낳아도, 아가씨만큼 이쁠지 걱정이라니까요.”
“그럴 리가? 똑같이 이뻐할 거야.”
재강이 현주의 허리를 감싸며 품에 안았다.
행복한 일상이었다.
17
그렇게 조용히 학교를 다니던 재신이 5월 말의 어느 날, 재강의 집무실로 들이닥쳤다.
“큰오빠~~~~~”
애교 섞인 재신의 목소리에 이미 재강의 얼굴에는 동생바보답게 함박 웃음이 가득 담겼다.
“왜, 우리 이쁜 아가씨가, 오늘 웬일로 오빠방에 왔니?”
“오빠, 나 아무래도 이번 학교 축제 댄스파티엔 가야겠어.”
“뭐? 너, 너희 학교 축제 안 나갔잖아?”
“그게...좀 그래. 나가야 될 거 같아.
이거 뭐. 귀찮고, 피곤해서......더는 안 되겠어.
가짜로라도 남자친구 만들어서 데려갈래.
그래야 조용해지지.
애들 좀 조용히 만들 수 있는, 믿을 수 있는 인물이 필요해.
나가서 기도 퐉 죽이고, 더 이상 나한테 귀찮게 안 할 인물이 필요하다구.”
“그래서?”
“파트너가 필요하다는 거지. 학교 축제, 댄스파티 파.트.너.”
“그런데?”
재강은 뭔가 안다는 듯이, 의미심장하게 재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재신도 그걸 느끼고 있었지만, 이왕 온 거 확실하게 밀어붙이기로 했다.
대충 자신이 얘기하면, 오빠가 거들어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큰오빠는 이럴 때 보면 은근 이재하와 닮은 구석이 있었다.
은근 능구렁이야.
내 입으로 꼭 말하게 만든단 말이야.
“알았어. 알았다고.
내가 얘기할게.
단도직입적으로, 시경 오빠 불러줘.”
“왜? 은시경이야?”
“왜는 무슨 왜야? 은실장님 아들이고, 저번에 보니, 모범 그자체더만.....
게다가 우리 학교애들 다 알기 때문에, 덜 시끄러울 거야.
확실하게 커버도 되고, 은실장님 아들이니 믿을 수도 있고, 말날 거 걱정 안 해도 되고.......”
“그래. 좋아.”
“오빠, 근데.....”
“응?”
“괜히 명령처럼 하지 말고, 의중만 물어봐주면 안 돼?
바쁘거나 싫을 수 있잖아. 고등학교 축제 파티 따위 대학생들이 보면 같잖을 수도 있잖아.
그러니까 혹시 되면 가고, 아니어도 괜찮다고 꼭 좀 말해줘.
그냥 물어보는 거라고만 하고.......”
“걱정 마라. 그 정도는 오빠가 알아서 하니까.......”
시경은 한창 전공 프로젝트 발표 준비에 매진하고 있었다.
게다가 곧 다음 주부터 시험이 시작되기 때문에,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학생회 일도 마무리하고 가야 해서 학기 마무리를 위해서 밤을 새가며 일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때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왔다.
“예. 아버지.”
“요즘 많이 바쁘냐?”
“뭐...늘 그렇습니다.”
“곧 기말시험이지?”
“예.”
“정신, 없겠구나.”
“늘 그렇죠. 뭐. 아시잖아요. 육사가 좀 빡세게 하는 거.....
뭐, 하실 말씀 있으세요?”
“너, 혹시 고등학교 축제에 갈 수 있겠냐?”
“무슨...말씀이세요?”
고등학교라는 말에 갑자기 자신도 모르게 심장이 뛰고 있었다.
아니겠지만....자꾸만 혹시...싶었다.
“시간이 안 되면, 굳이 그러실 필요가 없다시는데......
섭외할 다른 사람도 많다고 하시니, 굳이 니가 아니어도 된다고는 하셨다.
그냥 편하게 니 상황대로 하면 된다.”
“혹시....그 고등학교가, 왕립 고등학교 말씀하시는 거세요?”
“그래.......”
아까부터 두근대던 심장이 터져버릴 듯이 뛰고 있었다.
기대감이 한껏 몰려왔다.
“축제에서....제가 뭘 하는 건가요? 아버지?”
“공주님의 파트너다.”
정말로 쿵하고 심장이 내려앉았다.
“바쁘면, 굳이 안 가도 된다. 공주님도 굳이 억지로 하실 필요 없다고 몇 번이나 말씀하셨다더라.
바쁜 사람 귀찮게 하는 거 아니냐고, 몇 번이나 미안해도 하셨고,
니가 안 되더라도, 다른 사람한테......”
“제가!!!!”
“뭐?”
“제가 가겠습니다. 아버지.”
“뭐? 니가, 거기 가겠다고?
너, 지금 정신없이 바쁜 거 아니냐? 육사가 워낙 할 게 많은 곳이니까......”
“아닙니다. 제가 갈 수 있습니다.
공주님께 제가 간다고, 꼭 좀 말씀드려주세요.”
시경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이 녀석이 왜 이러는 거지....싶은 마음에 은규태는 뭔가 이상한 생각이 들었지만, 설마 하며, 전화를 끊었다.
공주님의 파트너......
심장이 자꾸만 두근두근대서 숨을 쉬기도 힘들었다.
그녀를 만난다.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아서, 시경은 자신의 심장을 오른손으로 꾹 누르고 있었다.
그래도........심장은........터질 듯이 뛰어대기만 한다.
열여덟의 소녀 때문에
스물두 해 동안 단 한 번도 뛴 적이 없었던......
심장이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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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장이네요.
야누스는 이렇게 가면 안 되는데...이러면서도 주절주절 말 많이 하며 늘어져버릴까봐 걱정입니다.
두 사람의 첫만남이었습니다.
7회와 8회 모두 두 사람의 첫만남이 그려질 듯하네요.
나름 특별한 첫만남인데......제 비루한 손가락 때문에 이 꼬라지가.....
다음 편은 더 빨리 오겠슴돠~~~
이 허접한 글 변함없이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신 댓글에.......용기 많이 얻고 있습니다.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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