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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신상플) 야누스의 달(Januarius) 11 - 살아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전체버전)

그랑블루08 2013. 7. 9. 04:10

(은신상플) 야누스의 달(Januarius) 11 - 살아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92

 


아무일도 없었다 - 정엽

살며시 눈물이 무심코 흘러와
니가 씻겨 내릴까봐 수없이 훔쳐내

지울 수 있는데 잊을 수 있는데
너없는날 아무리 생각해도 눈물이

아무말도 없었던 니가 떠나간건 니가 아니길 제발

돌아와도 괜찮아 돌아와도 괜찮아
잠시 너와 멀어졌던 꿈일거야
아무일도 없었다 아무일도 없었다
이밤이 지나 깨어나면 다시 너와

맘으로 되뇌여 입으로 되뇌여
너를 잃어 버릴까봐 수없이 되새겨
지울 수 있는데 잊을 수 있는데
너 없는날 아무리 생각해도 두려워

아무말도 없었던 니가 떠나간건 니가 아니길 제발

돌아와도 괜찮아 돌아와도 괜찮아
잠시 너와 멀어졌던 꿈일거야
아무일도 없었다 아무일도 없었다
이밤이 지나 깨어나면

돌아와도 괜찮아 돌아와도 괜찮아
사랑해 널 아직도 널 제발 제발

아무일도 없었다 아무일도 없었다
이밤이 지나 깨어나면 다시너와



가사 출처 : Daum뮤직

 

 

 

 

 

 

 

 

29

 

 

 

 

 

“공주님, 이제 나가셔야 됩니다.”

 

새벽녘...여전히 어둠이 가득한데, 그가 재신을 깨웠다.

그는 언제 일어나서 씻었는지, 머리가 젖어 있었다.

 

“갈아입으실 옷은 욕실 안에 뒀습니다.

씻고 나오세요.”

 

두근대는 마음으로, 조금은 두려운 마음으로 씻고 나와보니, 그는 이미 채비를 다 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나를 거울 앞에 앉히더니, 머리를 말려준다.

젖은 머리카락 사이로 그의 손길이 느껴지자, 지금 이 상황과는 상관없이 나른함이 밀려왔다.

 

웃기지 않은가.....

 

이 모든 상황들만 제거해놓고 본다면, 그와 나는 연인, 아니 마치 방금 결혼한 신혼 부부 같은 모습이었다.

 

풋.......

 

“왜, 그러십니까?”

 

나도 모르게 웃음을 짓자, 그가 의아한 듯 물어왔다.

 

“그냥요. 나도 참.....태평한가 봐요.”

 

“예?”

 

“그냥......은시경 씨는 나중에 진짜 좋은.....남편이 될 거 같아요.

누군지 몰라도, 와이프 좋겠어요.”

 

순간 그의 손이 멈췄다.

그의 손이 멈추면서 드라이어도 멈췄다.

 

하아......

 

그의 한숨소리만이 방안을 가득 채웠다.

 

내가.....실수한 걸까.......

 

“아, 미안해요. 기분 나쁘게 하려는 건 아니었는데.......

정말....좋은 남편 될 거 같아서......

진짜 놀리려는 거 아니었어요...진짠데.......”

 

거울 속에 보이는 그의 눈은 슬픈 듯도 하고, 안타까운 듯도 하고, 자꾸만 가라앉는 듯했다.

 

 

“공주님은........”

 

“네?”

 

“.......꿈을.....꾸게 하십니다.”

 

“무슨.....말이에요?”

 

“이루어질 수 없는.......꿈을......자꾸.......꾸고 싶게 하십니다.”

 

“은시경 씨.......그거....이루어질 수 없는 꿈, 아니에요.”

 

그의 눈이 놀란 듯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재신은 자신의 어깨에 놓인 그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살포시 얹었다.

순간 파르르 떨리던 그의 손을 그녀는 느끼고 말았다.

 

“당신은....반드시......좋은 남편이 될 거예요.

정말 아름답고 멋진 아내와 귀여운 아이들과 함께 아름다운 가정을 이룰 거예요.

그러니까 절대로 이루어질 수 없다는 말, 하지 말아요.”

 

거울 속, 그의 짙은 눈썹이 파르르 떨리는 듯했다.

시경의 손이 거울 앞 의자에 앉아 있던 그녀의 얼굴을 자신에게로 들어올렸다.

의아한 듯 바라보며 그에게 미소 짓는 그녀를 향해서, 시경은 달려들어 또다시 입을 맞추었다.

그의 입술이 뜨겁게 다가와 재신의 안 깊이 얽혀 들었다.

순간 재신은 이곳이 어딘지, 지금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든 것을 놓고, 그의 입술에 매달렸다.

그의 목을 감싸 안고, 그의 거친 숨을 자신의 안으로 받아들이며, 폭풍 같이 휘몰아치는 그의 키스를 오롯이 받아주었다.

 

 

 

어두운 복도를 걸어가며, 조금은 떨고 있는 그녀의 손을 잡아주며, 시경은 걱정말라는 듯, 재신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뒷문으로 향하는 길인 듯, 들어올 때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지나가는 동안, 의외로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일부러 그렇게 한 것인지, 지시가 떨어진 것인지, 그저 재신은 이곳을 빨리 빠져나가길 바라며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이윽고 미로 같은 길이 끝나고 밖으로 향하는 문이 나왔다.

문 옆 창으로 차 두 대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문을 열려다 말고, 그가 재신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왜요? 왜 그래요?”

 

불안한 마음으로 묻는 재신을 시경은 가만히 안아 주었다.

 

“은시경 씨.......”

 

“공주님, 이곳을 나가시면 궁의 근위대원들을 만나기 전까지 꽤 오래 이동하셔야 할 겁니다.

그리고......”

 

“네?”

 

“......공주님....하아.......”

 

그의 한숨이 깊었다.

그래서 순간 두려웠다.

재신의 어깨가 바르르 떨리자 시경은 더욱 강하게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각오....하셔야 할 겁니다.”

 

각오.......

두려움의 정체였다.

그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또한 내가 견뎌내어야 하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나오는 각오라는 말은, 자꾸만 재신을 흔들리게 만들고 있었다.

 

 

 

 

 

30

 

 

 

 

 

“그리고........

동영상 함부로 유포하지 마십시오.”

 

“내가 왜, 그래야 하지?

기껏 찍어놓고......

게다가 윤곽도 뚜렷하지 않은데, 루머라도 만들어야 될 거 아니야.”

 

“그러니까요. 루머만으로 충분합니다.”

 

“무슨 소리야?”

 

“함부로 유포되면, 진실 여부에만 초점이 모일 겁니다.

가장 두려운 건, 알 수 없는 거죠.”

 

훗......

 

수장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서?”

 

“가장 유효한 협상카드가 될 겁니다.”

 

“협상카드라.......”

 

“패가...좋지 못하면, 좋은 패인 척은 해야죠.

도박판에서도 제일 좋은 패를 가진 놈이 아니라, 제일 그럴 듯하게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는 놈이 이깁니다.”

 

“지금...니가 흐릿하게 찍어 놓고, 감언이설로 날 속이는 거야?”

 

“마음대로 생각하시죠.”

 

“뭐, 생각해 보지.”

 

 

 

 

 

 

31

 

 

 

 

 

시경의 품 안에서 재신의 몸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

 

“동영상....퍼질지도 모릅니다.

각오....하셔야 할 겁니다. 공주님.......”

 

냉정하지만 그것이 현실이다.

방금 전까지는, 놀이였다.

현실을 망각하게 하는 놀이.....

이곳에 있는 동안이 차라리 나았는지도 모른다.

이곳을 나가는 순간, 현실은 마치 한겨울의 서릿발처럼 날을 세우고 있을 것이다.

안다. 재신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는 것과 그것을 실제로 맞닥뜨려야 한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재신의 어깨가 조금씩 흔들렸다.

시경은 그저 재신을 더욱더 가슴에 안을 뿐이었다.

 

재신은 다짐했다.

이번뿐이라고, 이번만 울 거라고.......

그 따위 현실, 당당하게 맞설 거라고......

그러나....지금은.....조금만 울 거라고......

조금만 아파할 거라고.....

그렇게 자신을 따뜻하고 강하게 안아 주는 그의 품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공주님......함부로 유포되지는 않을 겁니다.

그래도 어떤 식으로든 사용될 겁니다.”

 

재신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다.

최악의 상황 역시 각오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명예는......”

 

“............”

 

“쉽게 무너지는 듯이 보이지만, 사실.....함부로 무너지지 않습니다.”

 

겨우 겨우 그쳐가던 눈물이 그 말에 다시 터져버렸다.

 

“공주님께서 걸어오신 그 발자취가 만들어낸 명예는, 함부로, 없어지지도, 무너지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잠시만 견디세요.

무너지는 듯 보였던 그 명예가 사실은 전혀 무너지지 않는다는 걸,

공주님의 삶은 그 어떤 순간에도 여전히 반짝이고 있다는 걸,

아시게 될 겁니다.”

 

그의 품에서 울었다.

더 이상 반짝이지 않을까봐, 이제 내 삶은, 내 인생은 무너진 게 아닐까 두려워하는 내게 그는 계속해서 반짝일 거라고,

함부로 무너지지 않는다고,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울었다.

더 이상 울지 않으리라, 더 이상 약해지지 않으리라, 그의 품에서 눈물을 흘리며 다짐했다.

더 이상은, 함부로 무너지지 않으리라.......

큰오빠의 이름을 걸고......그러리라......다짐했다.

 

 

그들은 그와 나 모두에게 안대를 씌웠다.

그리고는 뒷좌석에 태워 어디론가를 향해 계속해서 달렸다.

불안해졌다.

이렇게 보내준다고 해놓고, 어딘가로 데려가 죽이는 게 아닐까.....

차사고로 위장해서 죽여버리는 것이 아닐까......

죽음은....그래, 아직도 죽음은 두렵다.

죽어야 한다면, 명예롭게 죽어야 한다고, 그렇게 배우고 또 배웠지만,

막상 닥친 죽음은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눈이 가려져 있으니, 패닉이 올 것처럼 두렵기만 했다.

그 때였다.

그의 손이 내 손을 잡았다.

 

아.......

 

그래, 이 사람이 있었다. 내 곁에........

그의 손이 말하고 있었다.

따뜻하고 강하게 내 손을 잡으며 말을 건네오고 있었다.

괜찮다고, 자신이 곁에 있다고, 무사히 데려다주겠다고.......

그의 손이 말하고 있었다.

그의 손이 내 손을 쓰다듬었다.

그 순간 또다시 감각이 되살아났다.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게 해주겠다던 그의 말이 떠올랐다.

그는 그랬다.

그의 곁에서 나는 이 남자 외에, 그 어떤 것도 떠올릴 수 없었다.

그는 그렇게 오롯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의 손이 내 손을 놓고, 내 등을 지나 어깨로 올라갔다.

내 볼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천천히 자신의 어깨에 기대게 했다.

단단한 그의 어깨에, 그의 가슴에 머리를 기대고, 그의 품에 안겨들었다.

그의 손은 내 어깨를 강하게 안으며, 나를 토닥여왔다.

나를 위로하는 그의 손길에 여전히 반짝인다는 그의 말을 떠올렸다.

그의 품에서, 평안이라는 위로를 받았다.

 

 

 

 

 

32

 

 

 

 

 

얼마나 달렸을까.

그의 어깨에 기대어 깜빡 잠이 든 것도 같았다.

이 상황에서 잠을 자다니.....

참 대단한 신경이다 싶지만, 그래도 다행이다 싶었다.

이렇게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잠이라도 잤으니 망정이지 아니면, 패닉에라도 빠졌을지도 모른다.

멀쩡해 보여도 내 심신은 약해질 대로 약해져 있었다.

 

잠에서 일어나서도 한참을 더 달린 후에야 비로소 우리를 어딘가에 내려주었다.

탈탈거리는 시끄러운 헬기 소리가 들리고, 우리는 또다시 헬기에 태워졌다.

그 순간에도 그는 내 손을 잡고 있었다.

그의 손만이 내게 유일한 구원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간 이후, 또다시 어딘가에서 내리게 하더니, 우리를 차 뒷자리에 태웠다.

그런데 그 이후 아무 소식이 없었다.

그 때 그가 내 눈의 안대를 벗겼다.

 

아......

 

갑자기 밝아진 세상에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그런 나를 그가 자신의 품에 가만히 안았다.

 

“이제 공주님과 저, 둘밖에 없습니다.”

 

“응?”

 

그의 품에서 조금씩 주위가 적응되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제가 운전해서 약속장소까지 갈 겁니다.

괜찮으십니까? 공주님?”

 

“응....괜찮아요.

근데 한참 가야 돼요?”

 

“아닙니다. 정확한 좌표는 문자로 받아야 봐야 알지만, 여기서 대충 30분 정도만 가면 될 겁니다.“

 

재신이 고개를 끄덕이자 시경은 뒷좌석의 문을 열고 나가서 재신을 앞자리에 태우고 자신도 운전석에 앉았다.

 

동이 터야 하는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여전히 하늘은 어두웠다.

하늘에는 온통 먹구름이 가득했다.

 

“우리 나온 지 얼마나 됐어요?”

 

“아마....세 시간 가량 된 것 같습니다.”

 

3시가 좀 넘어서 나온 것 같은데, 그러면 6시가 넘은 시간이다.

해가 떠야 할 시간이지만, 온통 어두워서 마치 밤길을 달리는 것 같았다.

그 때 그의 폰으로 위치 좌표가 문자로 도착했다.

 

그녀를 옆에 태우고 시경은 달리기 시작했다.

운전을 하는 동안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흘낏 본 그의 표정은 뭔가 단단하고, 심각해 보였다.

다시 30분 가량을 달리는 동안, 중간에 계속해서 문자가 왔다.

계속 좌표가 바뀌는 듯했다.

몇 번의 수정 끝에 그가 어떤 지점에 차를 세웠다.

 

그가 내리더니 재신 쪽 문을 열었다.

 

“헬기가 있는 장소로 이동해야 합니다. 곧 도착할 겁니다.”

 

그의 손을 잡고 그를 따라 숲길을 걸었다.

이런 곳에 헬기가 착륙할 수 있나 걱정이 되는 찰나, 공터처럼 훤한 들판이 나타났다.

시계를 보던 시경이 이제 다 되었다며,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드디어 가는 건가....궁으로.....

 

그렇게 서서 하늘을 바라보지만, 먹구름이 가득 낀 어두운 하늘에는 그 어떤 헬기도 보이지 않았다.

이상했다.

그의 표정도 뭔가 심각해 보였다.

 

“왜, 안 와요?”

 

“약속시간은 이제 5분 남기는 했는데......”

 

“그런데요?”

 

“하늘이......심상치가 않습니다.”

 

그의 눈을 따라 저 먼 곳을 바라보니, 이미 그곳에는 검은 구름이 벌판으로 아예 내려와 검은 줄기를 이루고 있었다.

이미 그 지역은 폭우가 내리는 듯했다.

 

 

그 순간 그의 폰으로 전화가 왔다.

 

“예. 은시경입니다.”

 

“예.....예....알겠습니다.

출발 전에 바로 연락 주십시오.”

 

그의 전화 내용으로 봐서는 출발을 못하고 있는 듯했다.

 

“무슨 일이래요? 아직 출발, 못했대요?”

 

“예. 헬기가 있는 지역에 폭우가 쏟아져서 아예 못 뜨고 있답니다.

출발 예상시간이 1시간 정도 후라는데, 그것도 확신을 할 수 없답니다.

출발 전에 연락을 주기로 했으니, 저희도 일단 차 안에서 기다리는 게 안전할 것 같습니다.”

 

그랬다.

이쪽 하늘도 뭔가 한바탕 쏟아질 분위기였다.

시경이 그녀의 손을 잡고 몇 걸음 옮기는 그 순간,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빗방울이 굵었다.

단순한 소나기라면 좋겠지만, 먹구름이 너무나 짙었다.

정신없이 달려서 차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두 사람 모두 비에 젖어 있었다.

재신을 운전석 옆자리에 태우고 시경은 차 트렁크를 열어 이곳저곳 살피더니 수건 하나를 챙겨서 가지고 왔다.

 

“어, 수건 있었네요?”

 

그는 다 젖은 자신의 자켓을 벗고는, 수건으로 젖어있는 재신의 머리와 옷을 닦아주었다.

그의 머리도 완전히 젖어 계속 물이 흐르고 있었다.

 

“잠깐만요. 은시경 씨도 좀 닦아요.”

 

재신이 수건을 빼앗아 시경의 머리를 닦아주자, 시경의 얼굴이 점점 붉어졌다.

 

“전, 괜찮습니다. 셔츠는 거의 안 젖었습니다.”

 

“괜찮긴 뭐가 괜찮아요. 잠깐만 있어봐요.”

 

재신이 고집을 부리며 더 닦아주려고 하자, 시경이 얼굴을 돌리고 헛기침을 했다.

 

“흠흠....공주님....저......”

 

“네? 왜요?”

 

“수건으로......좀......덮고 계시는 게.......”

 

재신은 그 말에 무슨 소린가 싶어서 자신의 몸을 바라보다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얇은 원피스 하나만 입고 있었더니, 비에 젖어 속살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게다가 급하게 뛰어들어오면서 윗단추가 떨어져 나갔는지 가슴골까지 깊게 드러나 있었다.

재신은 후다닥 수건으로 상체를 덮고는 자신도 시경처럼 창밖으로 시선을 황급히 옮겼다.

 

어색한 정적만이 흐르는 차 안에서 둘은 차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1시간이 될 지, 아니면 더 기다려야 할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와 단 둘이 정적 속에 앉아 있다는 것이 몹시 불편했다.

흘낏 쳐다본 그는 앞만 뚫어질 듯 보고 있었다.

1시간의 유예.......

이 남자와 이렇게 단 둘이 있을 수 있는, 1시간의 유예인 셈인가.......

 

그래서 재신은 문득 물어보고 싶었다.

자신은 이곳에서 야누스라는 인물로 있다고, 자신을 믿지 말라는 이 남자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은시경 씨.......”

 

“예. 공주님.”

 

내가 부르자 그는 놀란 듯했지만, 언제나처럼 단단하게 대답했다.

 

“힘들지, 않아요?”

 

“뭐가....말씀입니까?”

 

“이곳에서 힘들지 않냐구요.”

 

“그럭저럭 견딜 만합니다.”

 

“그래도......힘들잖아요.

멀리 떨어져서 혼자 있어야 하니까.......

당신 말대로 당신이 그들과 한 편이라고 해도......

마음대로 다닐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하아........

 

그가 뱉어내는 한숨이 깊었다.

 

“제일......힘든 게 뭐예요?

수장? 겁나지 않아요?”

 

“겁나지.......않습니다.”

 

“와...은시경 씨 강심장이네요.

난....솔직히...겁나요.”

 

솔직히 무서웠다.

그 막강한 힘이, 한 나라의 왕실을 이토록 풍비박산으로 만들 수 있는 그의 자본이, 정말 무서웠다.

 

“사실은......저도......겁납니다.”

 

“어? 은시경 씨도?”

 

그도 수장이 겁이 났던 건가......

 

“수장이 아니라.......다른 게......겁이 납니다.”

 

“뭐가요?”

 

화가 난 것처럼 앞만 뚫어질 듯 보던 시경이 아무 말 없이 재신을 바라본다.

그의 눈이 너무 깊어서 재신이 도리어 떨리는 듯했다.

 

“전, 사랑하는.....사람을......볼 수 없다는 게......

가장......겁이 납니다. 공주님......”

 

그 말을 듣는 순간, 재신의 심장이 쿵...소리를 내며 내려앉았다.

그의 눈이 나를 아프게 바라보고 있었다.

심장이 갑자기 쿵쿵 소리를 내며 뛰기 시작했다.

 

아니야, 이재신.....아니야.......착각하지마......

 

“견딜 수.......없을까봐......

견디지 못할까봐......

그게 가장......겁이 납니다.”

 

그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저 나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데도, 자꾸만 그의 말이 들리는 것만 같았다.

 

착각이야. 이재신......

 

아무리 다짐하고 또 다짐을 해도,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의 아픔이.......느껴졌다.

그의 고통이.......전해져오고 있었다.

 

머리 위에서 미처 닦아내지 못한 물방울이 그녀의 볼 위로 떨어졌다.

그의 손이 그녀의 볼을 쓰다듬으며, 그 물방울을 닦아내었다.

그렇게 갈 줄만 알았던 그의 손은 자꾸만 그녀의 부드러운 볼을 쓰다듬고만 있었다.

그의 눈이 자꾸만 깊어지고, 재신은 자꾸만 가슴이 아파왔다.

 

1시간 후면....그와 헤어지는구나.......

 

그 말만이 아프게 가슴을 울려대고 있었다.

그를 계속 바라볼 수가 없었다.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의 손이 다시 자신의 쪽으로 재신의 얼굴을 돌렸다.

그의 입술이 어느 틈에 재신의 바로 입술 앞까지 다가왔다.

 

“공주님...........”

 

그가 부르는 내가....이상하게 아팠다.

그의 목소리가 고통스러웠다.

다른 어떤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나를 불렀을 뿐인데, 가슴이 저리도록 그의 마음을 듣고 있는 것만 같았다.

밀려들어오는 그의 입술은 여전히 부드러웠지만,.....가슴은 자꾸만 아프고 고통스러웠다.

그의 혀가 부드럽게 내 혀를 감싸안고 얽혀들고 있었다.

단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그의 혀는 내 입술 안을 온통 헤집고 있었다.

끊임없이 쓰다듬고 얽혀들면서, 자꾸만 새된 신음 소리를 뱉게 했다.

자꾸만 밀려오는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그 순간, 그가 내 시트를 확 밀어 내리고, 아래쪽 레버를 당겨 의자를 뒤로 끝까지 밀어버렸다.

 

아........

 

놀라서 단발의 소리를 내는 순간, 그가 내 위로 올라왔다.

이미 그의 눈은 타들어가고 있었다.

두려울 만큼, 그의 눈은 검고 깊었다.

저 어두운 하늘만큼, 그의 눈은 검고 짙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그 눈에서 욕망을, 남자의 욕망을 보고야 말았다. 

 

 

(생략)

 

 

아아...........

 

(삭제)

 

뭔가 알 수 없는 감각들이 머리끝까지, 발끝까지 헤집으며 다니고, 한번도 느껴보지 못한 열기가 속에서 자꾸만 올라오고 있었다.

감당을 할 수가 없었다.

끊임없이 야한 신음만을 뱉을 수밖에 없었다.

 

(삭제)

 

아악.........

 

어쩔 수 없이 비명이 새어나왔다.

급하고 강한 그의 몸짓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아픈데, 분명 너무나 아픈데, 또 미치도록 짜릿했다.

그와 나누었던 그 어떤 순간보다도, 온 몸의 감각들이 저릿하게 흘러다니고 있었다.

그는 내가 알던 그 사람이 아니었다.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 오로지 욕망으로 들끓는 짐승이었다.

 

(삭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그가 주는 강한 힘과 그의 몸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미칠 듯한 전율이 흘렀다.

 

(삭제)

 

그리고 나는.....단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감각의 향연을 맛보았다.

내 전신의 힘이 다 빠져나가고, 모든 감각이 단 한 곳으로 몰려가서 바들바들 떨려오는 그 태초의 감각을,

태어나 처음으로, 이 남자 때문에, 맛보았다.

견딜 수 없는 흐느낌이 입에서 새어나왔다.

(삭제)

다시는 잊지 못하게, 다시는 내 삶에서 이 남자를 지우지 못하게,

은시경이라는 이 남자를, 내 속에 너무나 강하게 새겨 넣었다.

 

비가 억수같이 뿌리던 그 날, 우리는 그 빗속에서 서로를 오롯이 서로의 몸속에 다시는 지워지지 못할 문신처럼 새겨넣었다.

 

그리고 그렇게 또 한 번, 그는 (삭제) 또 다시 다가왔다.

미칠 것 같은 절정의 끝자락에서, 무아지경의 정신을 잃을 것 같은 그 저릿함 속에서 나는 또 한 번 그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그는 내게 남자가 되었다.

세상에서 유일한.....남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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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을 끝내놓고, 마감 끝낸 기념으로 또 한 편 가져옵니다.

생각보다 길어져서 오늘도 17장....ㅠㅠㅠㅠㅠㅠ

 

야누스 이제 1/3 정도 온 것 같네요.

곧 끝나지 않을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으신데요.

<야누스의 달>은 <당기못>만큼은 안 돼도, 꽤 긴 글입니다.

그러니.....아직 좀 더 남았습니다.

그래서 큰일입니다. 의외로 더 길어질까 걱정인.....

그래서 좀 뒷부분은 쳐낼까 생각 중입니다.

 

야누스의 달 처음 기획의도도 곧 올리도록 할게요.

이젠 올려도 되지 않을까 싶어요.

사실 좀 더 뒤에 올리는 게 맞지만, 나름 1부가 끝난 것이니, 올려도 될 것 같기도 합니다.

 

<야누스의 달>은 사실 제 도피였습니다.

<당기못>과 <신우이야기>를 피해서 도망갔다지요.

<신우>는 이제 올렸으니, <당.기.못>이 남았는데.....

이 놈은...이상하게 전혀 풀리지가 않네요.

머릿속에서 아우성대는 <야누스>를 좀 풀어내야, 당기못도 되지 않을까 싶어요.

저 역시 어쩔 수가 없네요.

기다리시는 건 알지만, 글이 풀리지 않으면, 단 한 자도 쓸 수가 없어서요.

에피소드 별로 어느 정도 천천히 써오고 있었지만, 여전히 답보 상태라, 진도가 나가지 않습니다.

당기못은 써지질 않고, 은시경과 공주님의 사랑은 쓰고 싶고, 머릿속에서는 야누스가 난리를 치고 있고.....

장면 장면 이 꼴이니...제 머리가 얼마나 시끄러운지요.

쓰고 나면, 그 장면들이 사라져서 당분간은 살만 하거든요.

 

이번 회는 좀 야한 듯합니다.

아예 대놓고 야하게 쓰려고 했습니다.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사랑하는,

세상에 단 하루만 남은 듯이 사랑하는,

몸으로 이야기하는 한 남자와 한 여자입니다.

그래서 전.....이상하게 이 장면이 참 저릿합니다.

야하게만은 보이지 않는, 그런 저릿하고 절박한 그런 부분이 있는 듯합니다.

여튼...내일 시간될 때, 기획의도(?)도 올려볼게요.

솔직히 이런 허접한 글에 뭔놈의 기획의도? 하실 듯해서 부끄부끄하고 창피합니다만.....

그래도.....조금은 이해를 도울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오늘 하루도 무사히, 그리고 평안히 지내시길.......

 

* 너무 늦게 자서 다들 넘 걱정하시는데요.

오늘 마감쳐서 전 내일 늦게 출근해도 됩니다. 그러니 지금 이렇게 편안하게 쓰고 있다능요.

늘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__)

 

* 사담을 하나 더 한다면,

은시경이 공주님께 한 저 말,

"명예는 쉽게 무너지는 듯이 보이지만, 사실.....함부로 무너지지 않습니다.”

처음 야누스 시놉을 짜면서 이 글을 적어놓고, 혼자 울컥했었습니다.

제게 참 필요한 말이라서요.

이 말은......아주 오래 전부터, 8년 여간 저를 붙들어주는 말이기도 합니다.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말이기도 하고요.

쉽게 무너지는 듯 보이지만, 함부로 무너지지 않는다고,

8년 동안 제 삶으로 증명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래서 또 여전히 울컥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