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우 이야기> 40. 말은 눈으로 볼 수 없었던 것을 실체가 되게 한다.
1
꿈일까......
이게 현실일까......
그의 품에, 그의 입술에 이렇게 잠겨들 수 있는 거.......
지금...내가......내가 맞는 걸까.......
먼 훗날....반드시....오늘을 기억하겠지.
절대로....잊지 못하겠지.
갑자기 온 몸에 소름이 돋는다.
긴장이 풀렸나보다.
점점 오한이 든다.
내가 떨고 있는 게 느껴졌는지 신우 형은 내 입술을 놓아주고는 걱정스레 나를 보고 있다.
입술이 얼얼하다.
그래도....그의 입술에서 놓이는 게 싫다.
웃긴다. 정말.......
언제 이렇게 되어버린 거지......
도대체 내가 언제, 이 사람이 없으면 안 되게....
이렇게 변해버린 거지?
“괜...찮아?”
그의 목이 쉬어 있다.
거친 숨소리와 함께 그의 잠긴 듯한 목소리가 들린다.
나....정말....왜 이러는 걸까.......
내가....정말 이상해진 것 같다.
그의 잠긴 듯한 목소리가.......내 심장을 뛰게 한다.
그의 손이 내 이마를 짚었다.
그와 동시에 눈에 띄게 내 몸이 떨려온다.
“추운 거니?”
걱정스레 그가 나를 보고 있는데, 추워서 떨리는 건지, 이 사람 때문에 떨리는 건지 나도 알 수가 없다.
“미녀야, 얼굴에.....열나는 거 같아.”
“아......괜찮아요. 그냥......”
“아무래도....너....이러다 감기 들겠다.
많이.....놀라고.....울고 해서......그런가 봐.
온통 젖었어. 따뜻한 물에라도 들어가 있으면 나을 것 같은데....씻을래?”
그가 뭐라고 하든...난...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정신이 들고나니....그와 함께 그것도 단 둘이 호텔방에 있다는 것이.....너무나 부끄러웠다.
눈을 어디다 둬야 할지 손은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뭘 어떻게 해야 할지.....죽을 만큼.....쑥스러웠다.
내가 어리버리하게 서 있는 동안, 그는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며, 욕조에 따뜻한 물도 받고, 옷도 챙기고, 그러고 있었다.
이럴 때 보면, 그는...참 냉정한 것 같다.
난....이렇게 모자란 여자처럼 안절부절 못하는데, 어떻게 이 사람은 이리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행동할 수 있을까.
그리고 왜..난...저렇게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 저 사람이.....자꾸....야속해지는 걸까......
처음 겪는 일들 앞에서 난 이렇게 속수무책인데, 저 사람은 모든 게 너무나 익숙해 보여서....그게 도리어 섭섭해진다.
“미녀야.....이제 들어가도 돼.”
“예?”
“물 받아 놨어. 들어가. 아....그리고 옷은....내 셔츠 갖다 놨어. 좀 크더라도 잠시 입고 있으면, 호텔에 세탁실 있으니까 세탁해서 갖다 줄게.”
고개만 끄덕이고 얼른 욕실로 들어왔지만, 심장은 미친듯이 뛰다 못해 이젠 막 튀어나올 것 같다.
그의 곁을 스치며 욕실로 들어가는데도, 이러다 내 심장 소리를 그가 들을까....너무나 신경이 쓰였다.
욕조 안에는 따뜻한 물속에 아로마 향이 번지고 있었다.
옷을 벗고 물속에 들어가니 천천히 거품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가 거품목욕제도 풀어놓았나보다.
물이 따뜻해서 점점 몸이 녹고 있는 것 같았다.
몸이 녹는 만큼 마음도 편안해지면 좋으련만,
정신이 또렷해질수록 점점 더 이 상황이 부끄럽게 느껴진다.
그와 나, 잘 하고 있는 걸까........
아니, 나.......잘 하고 있는 거겠지?
물 속에서 차분히 생각해 보니, 내 모습이 정말 이상해 보였을 것 같다.
혼자 뛰어와서는 울며불며 난리난리 치고, 그러다 당신은 내꺼라고 소리질렀으니.....
내가 미친 여자처럼 보이진 않았을지.......쓸데없는 걱정들이 자꾸만 머리 속을 어지럽히고 있다.
그러다 문득......그의 눈빛이 떠오르자 다시금 내 가슴에 파문이 인다.
작은 물결처럼 서서히 번져가던 그 파문은 심장에서 내 온 몸 구석구석까지 메아리를 외쳐대며 간질이고 있다.
나를 보던, 간절하고 고통스러웠던 눈빛........
속으로 속으로 몇 번이나 자신의 감정을 삼키려던 그의 눈빛이 생각나,
내 가슴을 다시 저리게 한다.
내..............남........자.........
이 사람은...........내......꺼다....
내 말, 내 눈빛, 내 표정 하나에도 반응하는......내 남자다.
2
겨우 목욕을 끝내고 그의 셔츠를 입었다.
거울 속에는 온통 얼굴이 빨갛게 물든 여자가 하얀 셔츠를 입고 서 있었다.
이렇게 나가도 되는 걸까.
머리는 젖은 채 흘러내리고, 셔츠는 허벅지를 겨우 덮고 있다.
정말.....이대로 나가도 괜찮은 걸까.
욕실 안이 온통 내 심장 소리로 울려대고 있다.
욕실 문을 잡고 몇 번이나 심호흡을 하지만, 내 심장은 전혀 진정될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그때 노크 소리가 난다.
“네? 네?”
“미녀야......괜찮아?”
“예?”
“아....난....너무 오래 안 나와서....혹시 쓰러졌나 싶어서.....”
“아....괜찮아요. 지금 나가려고 했어요.”
그의 말에 난 황급히 욕실문을 열었다.
욕실문 앞에는 그가 근심어린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다.
그의 눈빛은 내 눈 앞에서 서서히 변해가고 있다.
걱정스러웠던 표정은 놀란 듯한 표정으로 변해간다.
그의 눈이 나를 뚫어지게 보며,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다.
마치......갑자기 시간이 정지된 것처럼, 그는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낯선......그의 시선.......
그 시선이...자꾸 나를 부끄럽게 한다.
얼굴이 점점 뜨거워져서 그의 눈을 마주하질 못하고 시선을 빗겨 선다.
“저....신우...형.....”
“아...난.....걱정 돼서..........”
그는 내 말에 뭔가 당황한 듯 황급히 시선을 거두더니 그도 고개를 숙인다.
그의 볼이 조금은 붉어진 것 같기도 하다.
아니......그의 귀는 이미 마치 불에라도 덴 듯 빨갛게 달아올라 있다.
갑자기 그가 내 손을 잡아끈다.
“신..,,우 형?”
“머리...... 말리자. 계속 이렇게 서 있으면 감기 들어.”
그는 내 손을 잡고는 화장대 앞으로 데려가 앉혔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둘은 서로의 시선을 마주하지 못하고 자꾸 피하고 있다.
그는 드라이어로 내 머리를 말려준다.
마치 데자뷰처럼 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것 같다.
예전....햇살이 밝았던 어느 날....
그때도 내 머리를 말려주었었다.
그러나 그 때는 그의 존재만으로 이렇게 긴장하고, 심장이 떨리지는 않았었다.
지금은......나도 모르게 오른손으로 심장을 누르고 있다.
심장병이라도 걸린 것처럼, 심장이 뛰어대어서 이러다 튀어나올까봐 심장을 손으로 꾹 누르고만 있다.
내 머리카락 사이로 그의 손길이 스칠 때마다 가슴에 바람이 이는 것 같다.
나른하면서도 간지러운 바람이 자꾸만 내 가슴에 불어댄다.
어느 덧 다 되었는지 그가 드라이어를 끈다.
그리고는 흐트러진 내 머리를 빗으로 빗어 준다.
“머리가....많이 길었네.”
“아.....그런가요? 전.....워낙 더디게 기는 거 같아서......”
“예전에 말려줄 땐, 머리가 정말 짧았었는데, 지금은...어깨를 넘기잖아.
많이 긴 거지.”
“그런가...요?”
용기를 내어 바라본 그의 얼굴......그의 입가에 아주 연하게 미소가 진다.
아.....근데......저건 뭐지?
입가에 뭔가 불그스름하게 부어 있는 것 같다.
“어!! 잠깐만요. 신우형!!”
난 의자에서 일어나서 그의 입술을 살폈다.
그의 입술 가가 터진 듯 붉게 부풀어 있었다.
볼도 뭔가 멍이 든 것처럼 보였다.
아까는 하나도 몰랐는데, 그의 얼굴은 상처투성이었다.
갑자기 속이 상한다.
뭔가 알싸해지는 마음에 나는 그의 입가 상처 부분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이거.....뭐예요?”
“아...아무 것도 아니야. 신경 쓰지 마.”
“혹시.....맞은 거예요?”
“아니야...그런 거.....미녀야....안 아프니까 신경 쓰지 마.”
“거짓말!!!”
안 아프다니...거짓말이다.
내 손이 상처에 스치자 그의 미간이 찌푸려지는데, 뭐가 안 아프다는 건지.......
그의 얼굴에 상처가 난 게.....왜 이리 속상한지.....
나는 자꾸만 그의 얼굴을 쓰다듬고 있다.
“고...미녀!”
갑자기 그가 내 이름을 부른다.
왜 그러나 싶어 그의 눈을 바라보다가 또 한 번 숨이 턱하니 막힌다.
아.....나 어떡하지...어떡하면 좋지?
나....정말 어떡해.....
그가 나를 바라보는 그 눈빛 때문에 숨이 막히고, 가슴이 떨린다.
나......이 사람 없으면 안 될 거 같은데.......나...정말 어떡하지......
아무리 심장이 떨려도, 아무리 미친 듯이 긴장이 돼도,
그래도.....이 사람을 바라보고 있으면, 죽을 만큼 좋다.
그에게....그의 눈 속에...나밖에 없는 게......미치도록 행복하다.
그의 눈빛은....너무나 따뜻하고, 너무나 설렌다.
나만 바라보고, 나만 지켜주고, 나 때문에 떨리는 그의 눈빛이 너무나 좋다.
그의 눈이 마치 자석처럼 나만 바라보는 것이 너무 좋다.
그의 눈은....전혀 이성적이지 않다.
오로지......감정의 폭발과 그것을 제어하려는, 어떻게든 참아보려는 그의 노력이
그대로......그의 눈에 담겨 있다.
그래서......그의 눈은...늘.....감정의 바다를 그대로 깊이 드러내준다.
내 눈을 마주하면서도, 나와 마주치면 떨리는 그의 눈빛이........
그러면서도 내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그가......내 가슴을 간질인다.
나는 그런 그의 눈을 즐기며, 그에게 다가갔다.
그의 부풀어 있는 상처난 입술을 손으로 만지며 그 입술 위에 내 입술을 가만히 놓았다.
어서 낫기를 바라며, 내 마음을 담아 그의 입술가에 내 입술을 놓았다.
그의 입술이 미세하게 떨리는 것이 느껴진다.
그 떨림 사이로 그의 부드러움이 내 입술로 전해져온다.
그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얼어붙어 버린다.
“하아.........”
그가 눈을 감으며 한숨을 쉰다.
그러더니 한참을 그러고 있다.
“신우...형?”
그가 눈을 뜬다.
그러나...그의 시선은 나를 빗겨 있다.
“미녀야, 이제 좀 진정된 거 같으니까......
숙소로 가자. 내가....데려다 줄게.”
“데려다....준다구요?
같이.....숙소에 가는 게 아니구요?”
“난.....난.....당분간 여기에 있어야 할 거 같아.”
“왜요? 왜....신우 형은 숙소로 안 돌아가신다는 거예요?”
“.................”
그는 입을 다문 채 아무 말이 없다.
침묵하는 이 사람 때문에.....또다시 심장이 불규칙하게 뛴다.
불안하다.
왜......이러는 거지.....
“혹시.....아버지 때문이에요?”
“그냥......잠시 여기 있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그래.”
“잠시 여기 있는다구요?
설마......신우 형....이러다 정말 떠나버리려는 건.....아니죠?”
신우 형을 다그쳐보지만, 그의 눈은 여전히 내 눈을 피한다.
“.......숙소로 데려다줄게.”
“나......안 갈 거예요.”
“뭐?”
“................”
“미녀야!! 너!
너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지금 알고 이러는 거니?
내가......지금 니 말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는지, 알고 이래?”
“......알아요.
나......아까 했던 말 취소할래요."
“뭐?”
충격을 받은 듯이 그가 숨을 멈춘다.
“신우 형! 신우 형에게 사랑은.....뭐예요?”
“어?”
“당신에게 사랑은.....뭐냐구요.”
처음에는 의아해 하던 그의 눈빛이 점점 단호하게 변해 간다.
“고미녀!”
“네?”
“고미녀...라고.....”
“!!!!!!!”
“내게.....사랑은......고미녀야.
다른.....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가 없어.
처음부터 끝까지.......하나의 존재야.
사랑이라는 개념....그런 건....나도 몰라.
그저 내게.....사랑이라는 말을 정의내려야 하고, 그것을 설명해야 한다고 말한다면,
그건...........‘고미녀’라는 존재외에는 그 어떤 것으로도 대답할 수가 없어.
내 머리부터, 내 발끝까지....내 영혼 깊은 저 속까지........
너여야 한다고, 너뿐이라고, 너만이 내 삶의 의미가 된다고.......
그래서.......내 온 몸을, 내 영혼을 송두리째 흔들어대는 존재라고......
그렇게 내 존재 자체가 말해.
사랑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이.....너라는 존재가 되어서....내게는 실체가 되었어.
사랑이라는 말을 써야 한다면, 그건.....그저 너야.
내게 사랑은 곧 너니까........
‘사랑’이라는 용어가 실제로 존재하는 실체라는 걸........널 통해 배웠으니까.....
‘사랑’을......너 이외에 다른 말로는 정의내릴 수가 없어.”
“신우...형......”
“사랑해. 미녀야.
그거 아니?
난.....하루에도 수천 번도 더 이 말을 하고 싶어.
지금도......널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어서.....죽을 것만 같아.
이 놈의 ‘사랑’이라는 게...실체가 되고 나니까......너무나 무서워.
이 ‘사랑’이라는 녀석이 어디까지 커질지....너무 두려워.
널 사랑한다고..사랑한다고....너무나 사랑한다고......
수천 번도 더 얘기하고 싶어.”
그랬나......그가......내게 그렇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었나.......
난.....도리어......그가 날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닐까....불안했었는데.......
그는 지금 내게 수천 번도 더 사랑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니.......
그러나 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의 불타는 눈만 바라볼 뿐이다.
“니가........아까처럼.........가지 않겠다고, 내 곁에 있겠다고 하면,
널.....안고 싶어서 미칠 것만 같아.
널........내 품에 안고 싶고.......
니 입술에....키스하고 싶고.......
널....나만의 것으로 가두어 두고 싶어.
널 아무도 못 보게, 널 아무도 욕심내지 못하게,
나만 볼 수 있고, 나만 안을 수 있고, 나에게만 웃을 수 있게.....
그렇게 하고 싶어.
그러면.....널 잃을까봐.....심장이 터질듯이 두려운 이 마음도....조금은...사그라 들겠지.
그거 아니? 미녀야....
내 감정을 다 드러낼 수 없는 게....그게 바로 사랑이야.
내 감정이 폭발해서.....널 다치게 할까봐.....그래서 더 주저하고, 감정을 꾹꾹 참아 넣어두는 게....
그게 바로 내게는 사랑이야.
최소 열 번은 참고 너에게 손내밀고, 몇 번은 주먹을 쥐며, 나를 다독이며 널 안아야 하고 너에게 키스할 수 있는 게.....
바로 내게는 사랑이야.”
“당신이 말한 게.....사랑이라면.....
나도....그 사랑이라는 거....알아요.
당신 눈빛 앞에서는...늘 떨리고, 두렵고...그러면서도 그 눈빛이 너무 좋아서 같이 있고 싶고
당신의 품이 너무 좋아서 당신 품에 안기고 싶지만,
혹시나 당신이 날......싫어하고 질려 할까봐...쉽게 그러지도 못하고.....
당신의 입술이 너무나 좋지만, 함부로 다가갈 수가 없는.........
늘 당신 곁에 있고 싶고, 당신이 곁에 있어야 안심이 되고......
온 우주 속에서, 그 어떤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내 눈엔.....당신밖엔...안 보이는 게........
당신이 너무 아름다워서.......내가 너무 작게 느껴지는.....
그런 게 사랑이라면.....
나도....당신을 사랑해요.
그걸...사랑이라고 표현해야 한다면, 난......당신을 사랑한다고.....매일매일...하루에도 수천번씩....말하고 있어요.
당신을 사랑해요.
너무 사랑해요.
당신이 없어질까봐.....나를 떠나버릴까봐.......
너무 두려워서.......자고 일어나서...당신이 있는지, 당신의 발소리가 들리는지...당신의 목소리가 들리는지...
그것부터 제일 먼저 확인하는 것이 사랑이라면....
난......당신을...사랑해요.”
어쩌면 부끄러운 고백을......난.....이 사람 앞에서 하고야 만다.
그러나.......말하고 싶었다.
그의 고백 앞에서, 나의 고백도 하고 싶었다.
나도.....당신처럼 그렇다고.......
그것이 사랑이라면, 정말......난............당신을 너무나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런데......사랑한다고 말하고 나니...내 가슴 저 아래에서부터 울컥 하고 뭔가가 솟구쳐 오른다.
“사랑한다”라는 말은.....그 말을 뱉는 그 순간 엄청난 감동을 주는 것 같다.
그 말을 듣는 사람에게도, 그 말을 하는 사람에게도......
세상 그 무엇에게도 느끼지 못했던 울컥하는 감정을 느끼게 해 준다.
감정이......소리가 되고 그것이 실제 모습이 되는 것을....난...지금....몸소 체험하고 있다.
“미녀야....”
그의 목이 잠겨 있다.
날 향한..........그의 마음도.........보인다.
“나도......당신을 잃을까봐....당신을 빼앗길까봐....
너무 두려워요.
당신을 빼앗기고는...당신을 잃어버리고는....
난...이제 살 수가 없어요.
난....당신 없이는......숨도 쉴 수 없어요.
당신은....내 거예요.
당신을.....그 누구에게도......빼앗기고 싶지 않아요.”
그가 서서히 내게 다가온다.
그의 입술이 바로 내 입술 앞에 있다.
그의 숨결이 바로 앞에서 느껴진다.
“너 때문에 정말...심장 터지겠다.
너...왜 이렇게...날...설레게 하는 거야?
날.....왜 이렇게...너무 행복해서.....두려워질 만큼....그렇게 만드는 거야.
너....나한테....이러고...나 떠나면..나.....죽어.
그럼...너무 잔인한 거야.
이렇게 날 들뜨게, 행복하게 해 놓고......너......없으면......난....더 이상...살 수가 없어.”
그의 입술이 내 입술에 닿았다.
왜 그의 입술은 이렇게 가져도 가져도 더 애가 타는 걸까.
왜.....그의 입술을 가지면 가질수록 내 속 깊이는 뭔가 더 원하게 되는 걸까.
“내가...너......가져도.......되는 거니?
정말......그래도 돼?”
여전히 내 입술을 놓아주지 않은 채로 그는 내게 속삭였다.
“.........당신은.....내 거예요. 평생....안 놓아줄 거예요.”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의 입술이 내 입술을 훔쳐버렸다.
너무 깊어서 숨조차 쉴 수가 없다.
“시...신우....”
내 목소리는 또다시 그의 입술 속으로 삼켜진다.
그 순간 갑자기 그의 입술이 내게서 떨어진다.
의아해할 틈도 없이 그는 나를 안아 올려 침대 위에 놓았다.
“신우 형!!!”
그는 아무 말이 없다.
그저 그의 눈빛은 뜨거울 뿐이다.
도저히 마주할 수 없을 정도로 그의 눈은 불타고 있었다.
“미녀, 니가 허락한 거야.”
“시.....!!”
그는 또다시 내 입술로 깊이 들어왔다.
그의 부드러운 혀가 내 혀를 감고 놓아주지를 않는다.
숨도 쉬지 못하고, 그의 입술을, 그의 혀를 그저 받아내고 있을 뿐이었다.
그의 손은 이미 내 셔츠를 풀고 있었다.
(중략)
“잠깐....만......신우.......”
그의 손길이 닿자, 온 몸이 떨린다.
(중략)
그의 손이 스칠 때마다 전기가 통하듯이 간지러운 무언가가 내 몸을 기어다닌다.
분명 멈추게 해야 하는데, 머리는 분명 그렇게 말하고 있는데,
내 몸은 그 어떤 저항도 없이 그의 손에 나 자신을 맡겨두고 있다.
그의 입술이 내 목 근처에 머물더니 곧 내려가기 시작한다.
아........
(중략)
내 몸은 아까보다 더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바르르 떨린다.
이 낯선 느낌을 어찌해야 할지.....
이토록 부끄러우면서도, 그의 입술을 피할 수가 없다.
아니.......피하고 싶지가 않다.
발끝까지 저릿했다.
“아...........”
내 목소리인지 알 수 없는......야릇한 소리가 들린다.
너무나 묘한, 너무나 야한......여자의 신음소리........
(중략)
“신우 형!!!!”
“...하아.....미녀야.......아프게......하진.....않을 거야...
조금만.....조금만.....더....가게 해 줘.”
(중략)
여자가 무엇인지......이제서야 알게 된 것 같았다.
뭐라고 말할 수 없는.......감각이 용솟음치듯이 솟아올라 내 몸을 솟구치게 한다.
허리를 뒤틀며 신음소리를 뱉아내는 거 외에는....그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무기력하게 (중략) 미친 듯이 헐떡거리며 신음하며 갈망하고 있을 뿐이었다.
2
순간 한기가 들었다.
눈을 떠보니 낯선 방에 누워 있다.
한참을 두리번거리고 나서야, 내가 있는 곳이 어딘지 서서히 각인되기 시작한다.
그 사람은!!!!
옆 자리를 돌아보지만, 아무도 없다.
조금은 흐트러진 베개와 구겨진 시트가 그가 있었다는 걸 증명하고 있다.
그 속에 누워 있는 나 자신을 낯설게 바라봤다.
하얀 시트가 맨살에 그대로 닿아 차갑게 느껴진다.
나...지금...뭐하고 있는 거지......
아주 천천히......내가 무엇을 했는지 떠오르면서 그가 없는 것이 더 다행이다 싶기도 하다.
이 방 안에 나 혼자밖에 없는 걸 알지만, 그래도.......선뜻 일어날 수가 없다.
자꾸만 얼굴이 뜨거워진다.
화장대 의자에는 어제 내가 입었던 하얀 셔츠와 내 옷가지들이 가지런히 개어져 있다.
저까지 어떻게 가나...하는 막연한 생각이 든다.
아무도 없는 걸 너무나 당연히 알면서도 난 침대 시트로 내 몸을 감싸고는 의자 위에 올려져 있는 옷들을 겨우 가지고 왔다.
그래, 그가 없는 게 더 다행이야.
식탁에는 화려한 쟁반에 빵이며 샐러드며 우유며 잔뜩 차려져 있다.
그가 룸서비스를 시켜둔 듯하다.
그리고 그 옆에 메모 한 장이 놓여 있다.
「잠깐 다녀올 데가 있어서 나갔다 올게.
갔다 와서 맛있는 거 사줄 테니까....일단 이거 먹고 있어.
미녀야, 사랑해. - 신우」
그가 남긴 메모를 보며, 두근대고 있는 내 모습이....낯설다.
글자로 보는 “신우”가 자꾸 날 설레게 한다.
왜 이 사람은 이름조차 이렇게 멋진 걸까......
이런 거 하나에 가슴 떨려 하는 나 자신이 우습다.
그와 연관된 모든 것들이 나를 자꾸만 두근거리게 한다.
그리고 그 두근거림이 강해지는 만큼,
사랑한다는 그의 말이 설레게 하는 만큼,
그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진다.
고미녀, 너 정말 왜 이러니.......
3
아이가 내 곁에서 잠들어 있다.
아니....아이는 이제 아이가 아니다.
여인의 진한 향기를 내뿜으며, 내 정신을 혼미하게 한다.
내 품에 안겨 작은 숨소리를 내며 잠들어 있는 이 사람이 정말 고미녀가 맞는지, 자꾸만 확인하게 된다.
혹시나 꿈일까봐, 잠조차 잘 수가 없다.
아이는 이런 내 마음을 알까.
내 곁에 있고 싶다고....
나 하나 욕심내면 안 되냐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심장은 그 순간에 터져버렸다.
지금도 그 순간을 떠올리기만 해도, 심장은 또 다시 터질 듯이 뛰어댄다.
내가 들은 말이 정말 맞는지, 내가 또 혼자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닌지,
아이를 깨워서 물어보고 싶다.
정말.......아이가 한 말이 맞는지........
정말.......아이의 마음이 그런지.......
자꾸만 확인하고 싶다.
지금 이런 내 마음을 알면, 아이는 뭐라고 말할까.
지독한 집착......이라고 할까.....
사랑은 집착이 아니라는 걸.......
내 평생을 두고 알고 있지만,
난 지금 불가항력적으로 아이에게 집착하고 있다.
이젠 너무 멀리 와 버려서 돌아갈 수도 없다.
이미 터져버린 마음을 막을 수가 없다.
이런 내 마음을 알면, 아이는 부담스러워할 지도 모른다.
두려워할 지도 모른다.
그걸 뻔히 알면서도, 마음은 이미 저 앞으로 내달려버려서 되돌아 올 수가 없다.
아이가 뒤척이더니 내 몸에 바짝 붙어온다.
아이의 무게.......
그 무게는.......내게 행복의 무게였다.
내가 가져서는 안 되는, 내가 가질 수 없는.....그런 무게였다.
그런데......그 무게를 난......온몸으로 받고 있다.
내 심장 소리에 아이가 깰 것만 같다.
아이의 부드러운 살결이 내 온몸의 감각을 곤두세워놓고 있다.
내 손 끝에 느껴지는 아이의 볼은, 아이의 입술은 이성을 자꾸만 놓게 만든다.
이러면 안 되는 걸 아는데, 이성은 이미 내가 잡을 수 없는 곳으로 떠나버리고, 오로지 감각만이 남아서 나를 미치게 한다.
아이가 깰 지도 모르는데, 나는 또다시 아이에게 자꾸만 다가가게 된다.
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아이의 부드러운 입술에 내 입술을 놓았다.
잠시만 맛볼 거라 생각했지만, 그건 나의 오산이었다.
아이의 입술은 너무나 달콤해서 쉽게 놓아줄 수가 없었다.
또다시 나는 아이의 입술을 탐하며 한숨을 쉬는 아이의 입술 사이로 깊이 들어갔다.
아이는 조금 움찔하는가 싶더니 천천히 나를 맞이하며 내 혀를 따라 움직인다.
내게도.....새벽이 올 수 있다는 걸.......
아침이라는 것이 올 수 있다는 걸.......
상상해 본 적이 없다.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태양이 내게도 비춰질 수도 있다는 걸.......
단 한 번도 꿈꿔본 적이 없어서,
지금 이 현실이 믿겨지지 않는다.
새벽......
전화가 울려댄다.
아이가 깰까 싶어서 확인도 못하고 바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신우야!! 큰일 났다.”
“네?”
“큰일이야. 태경이가 사라졌어. 이거 어떡하냐!!!”
“태경이가 사라지다뇨!! 아...잠깐만요. 마실장님.”
나도 모르게 언성을 높였다가 아이가 깰까봐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대충 유카타를 걸치고는 복도로 나갔다.
“무슨 말씀이세요? 마실장님!
황태경, 어젯밤에 한국으로 돌아간 거 아닌가요?”
“아니야!! 그러니 내가 미치지.”
“예?”
“어젯밤에 공항으로 나갔는데, 애가 안 나오더라구.
보딩 확인해 보니까 아예 비행기도 안 탔어.
어떡하냐. 이 녀석 전화도 안 받아.
지금 일본에 계속 있는 거 같은데, 어디 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어.
미녀한테는 아무리 전화해도 전화기가 꺼져 있고.....
미녀는 어디 있는지 아니? 혹시....태경이랑 둘이...같이....”
“그건! 아니에요.”
“어? 그걸.....어떻게 알아?”
미녀 얘기에 난 바로 흥분하고 말았다.
마실장님의 촉이 보통이 아닌데, 들켰을까봐 등골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다.
“그건 확실히 아니에요.
제가.......어제 태경이랑 통화......했어요.
혼자였어요.”
“잠깐만. 그래도 너랑 전화 끊고 미녀랑 같이 있을 수도 있잖아.
둘이....사실....연인 사인데....
이러다 스캔들이라도 나면....”
“아니라니까요! 마실장님.”
나도 모르게 거칠게 말이 나와 버렸다.
“미녀, 사실 태경이와 헤어졌어요.
미녀가 태경이에게 헤어지자고 했어요.”
“뭐? 뭐!! 그럴 리가.....세상에.....”
“그러니까 확실히 아니에요.”
“그럼 어떡하냐.....
충격받아서 잠적한 거야?
아무리 백방으로 찾아도 없고, 한국 스케줄은 장난이 아니고....
어떡하냐 신우야!!!
지금 회사는 난리 났어.”
“제가.....찾아볼게요.
찾게 되면 연락드릴 테니까.....일단.....흥분하지 마시고 계세요.”
“그래...신우야! 너밖에 없다. 부탁한다!!”
전화를 끊고나서야, 어제 상황이 떠오른다.
황태경이....이곳으로 오기로 했었는데........
그러고보니 오지 않았다.
오지 않은 건지....아니면 왔다가 간 건지....알 수가 없다.
만약 왔다면........
하아........
답이 없다.
그 순간 갑자기 전화가 울렸다.
황.태.경.
황태경이었다.
“황태경! 너 어디야?”
“.............”
“태경아!!!”
“.....호텔 앞이다. 당장 나와!!”
황태경은 그 말만 하고 끊어버린다.
호텔 앞........
황태경이 등을 돌리고 서 있다.
구겨진 옷이며, 흐트러진 머리는.......황태경답지 않다.
그런 황태경의 모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런 황태경에게 나는 한 발 한 발 무거운 발걸음을 떼어 걸어간다.
내 발자국 소리에 황태경이 돌아봤다.
붉게 충혈된 눈........
그런 황태경의 모습에서.....
예전....내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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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늦어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도 죄송합니다.
어제 워낙 큰 행사를 치러서.....계속 기운이 없네요.
40회를 원래대로 쓴다면, 아직 더 에피를 써야 하지만, 여기에서 이번 회는 끝내야 할 것 같습니다.
더 쓰려니 도저히 여력도 없고, 너무 오래 기다리시게 하는 것도 아닌 것 같아서
일단 이렇게 올립니다.
그리고 수위조절하느라 이렇게 저렇게 머리 터지게 고쳤으나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래저래...죄송하고 감사합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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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문제 때문에 40회를 친구 공개로 돌렸는데, 전체 버전 올려둡니다.
전체 버전으로 보셔도 내용 전개에는 아무 무리가 없으실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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