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나의 이야기

코발트 블루의 카페테라스

그랑블루08 2013. 10. 31. 00:21

 

 

 

 

The Cafe Terrace on the Place du Forum, Arles, at Night (Vincent van Gogh, 1888)

 

미술, 그림, 이런 걸 잘 모른다.

예전 서울에 온 <오르셰 미술관 전>이 열릴 때, 멋지다 정도.....

그런 느낌으로 원작에는 아우라가 있구나, 하는 정도를 느끼는,

아주 평범하고 무지한 감상자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림이 좋은 것은 자기의 기억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엄마는 모네를 좋아하신다.

모네, 특히 장미가 흐드러지게 펴 있는 그림을 좋아하신다.

두 모녀가 장미 사이를 거니는 그림도, 또 집 한 채 앞으로 장미가 흐드러지게 펴 있는 그림도, 그리고 수련도

모두 좋아하신다.

아마 아주 어릴 적, 우리 집에 폈던 장미가 엄마의 마음에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게 아닌가 싶다.

꽃을 좋아하시는 엄마의 취향이 들어가 있는 게 아닐까 싶다.

개인적으로 모네의 그림은, 그 원작의 아우라에 놀랐었다.

같은 흰색이지만, 그의 유화에서의 흰색은 완전히 달랐다.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정말 눈처럼 느껴지는 그 활동하며 생동하는 듯한 색감에

모네를 다시 보게 됐었다.

그래서 원작의 아우라라는 것이 정말 있다는 것을 내 눈으로 확인한 계기가 되었다.

 

원작을 보고 나서, 혹은 원작을 보지 않았어도,

그 모든 그림을 다 통틀어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고흐의 <밤의 카페테라스>

 

가장 아름다운 색으로 하늘을 표현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 공간인 카페도, 그 밝은 기운이 좋아서가 아닐까 싶다.

코발트 블루의 하늘엔 별이 빛나고,

밤의 거리에는 밝은 노란 불빛 사이로 노상 카페에 앉아 커피를 한 잔 하는 그 분위기가

내게는 좋았다.

오래된 건물의 거리와 작은 광장처럼 사람이 모일 수 있는 소박함과

그리고 코발트 블루의 하늘을 닮은 건물들과

그 코발트 블루 안에서 반짝이는 별들은,

어쩌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들로만 이루어진 그림이 아닌가 싶었다.

고흐가 검정을 쓰지 않고, 파란색과 초록색만으로 밤을 완성했다는,

그리고 노란색으로 빛나는 카페를 완성했다는

그 그림이다.

 

 

그리고 그것은 내 경험과 연관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22살......

잠깐 영어를 배우러 캐나다에 간 적이 있었다.

어쩌다 보니 그곳은 퀘백주였고, 학교에서는 영어를 하지만, 주변 풍경은 유럽스러웠다.

고풍스러운 거리와 좁은 골목, 그러나 조금은 여유 있는 삶의 풍경들.

그 사이로 거리 연주자들이 음악을 들려주고,

사람들은 커피 한 잔에 여유를 즐기고 있었던 시간들.

 

카페테라스는 바로 그 때, 그 시간, 그 장소 그대로 담겨 있다.

놀랍게도, 카페테라스에 나오는 바로 그 그림의 장소 같은 곳에서,

그날, 그 저녁 그곳에서 밥을 먹고 커피를 마셨다.

노상에 놓여 있는 테이블에 앉아,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을 바라보며,

코를 은은하게 자극하는 커피향을 마시며,

그렇게 코발트 블루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 날의 한 순간.

마치 내 인생, 가장 아름다웠던, 단 한 장면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그림이

바로 이 그림이 아닌가 싶다.

 

스물둘...어쩌면 가장 건방지고, 가장 아름답고, 가장 패기에 가득찼던 시절.....

처음으로 누려봤던 외국의 생활과,

이국적인 향기와, 이국적인 짙게 푸른 하늘.....

그 사이로 떨어질 듯 반짝이던 별들이

그 날을 추억하게 한다.

 

그래서 이 그림을 사고 싶었다.

꽤 괜찮은 걸로 사야지...하고 생각만 하고 있었다.

 

요즘 남편의 취미가 인테리어다.

짐이 너무 많은(내 직업적인 상황이 개입되어) 우리집을, 뭔가 인테리어로 돌파구를 찾으려는

엔지니어틱한 남편의 취미들 때문에

요즘 매일 택배가 날아오고 있다.

 

계속 뭔가 인테리어가 바뀌고, 배치를 바꾸고 있는 남편에게

그림 사고 싶다고, 툭 한 마디를 던졌다.

카페테라스.....너무 좋다고.....

 

그게 문제였다.

남편은.......스트레스 받으면 뭔가를 산다.

이번에도 뭔가 바쁘고 스트레스 받으니, 한 개씩 사고 있다.

그 가운데, 내 말이 불씨가 되어,

바로 주문했다는 문자를 받게 되는 이 불상사.......

게다가 마누라라도 말려줘야 하는데,

내 성격상, 그래? 사지 뭐....이러니, 우리집에 돈이 모일 수가 없다.

남편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자기는 원래 뭔가를 사고 싶어하지만, 나라도 말려줘야 한다고,

그런데 늘 내가 오케이를 날려서 더 소비를 하는 것 같다고.....

어쩌겠는가....

유유상종으로 만난 것을.....

 

 

여튼 내가 뭐 사고 싶다고 말하면 바로 사버리는 남편 때문에 겁나는 적도 많지만,

그래도 행동력 짱인 남편 덕분에 늘 생각만 하던 그림을 내 손으로 만지게 됐다.

식탁 앞에 일단 세워뒀는데,

문제는 벽지가 포인트 벽지라 안 어울리는 것이 문제.....

 

 

 

 

 

급하게 맞춘 이 포인트 벽지가 애물단지가 될 줄은 몰랐다.

너무 바빠서 대충 정했었는데,

4년이 지나니......역시...너무 튀나 싶다.

 

여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그림을 앞에 두고 보니,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싶다.

식탁 앞에 세워두고,

카페 테라스의 코발트 블루의 하늘과

빛나는 카페에 앉아

코스타리카를 진하게 내려 한 잔 하고 싶다.

 

지금은 일하는 중.

이 시간에 핸드 드립으로 내린 코스타리카 한 잔을 마시며, 이 글을 쓴다.

그림 하나가 주는 한 잔의 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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