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나의 이야기

나는 여전히 아마추어

그랑블루08 2013. 12. 15. 04:38

오늘 아니 어제다.

토요일 사실 직장에 나가 일해야 했으나, 피곤하다는 이유로 계속 집에서 뒹굴었다.

일요일까지 쳐야 하는 마감.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월요일 오전 출근 전까지 끝내야 하는 마감 두 가지가 있어서

열심히 달려도 모자를 판에,

토요일 아침 하얗게 쌓인 눈을 보며, 나가는 걸 포기했다.

금요일 저녁도 늦게까지 했어야 했으나,

딸내미 감기로 집에 일찍 오고...

결국 일은 한 가지만 하고 있었다.

문제는 하지 못하고 있는 나머지 한 가지 일.

둘 다 중요한 일이기는 하지만, 계속 했던 첫번째 일보다 하지 못하고 있던 두번째 일이

나 자신을 위해서는 더 중요한 일이다.

그런데 두번째 일은 걱정만 할 뿐, 하지 못하고,

두번째 일을 걱정하면서 나는 계속 첫번째 일만 해대고 있었다.

일해야 할 것들을 산더미처럼 들고 집에 와서는 이렇게 무게중심도 맞지 않게 이러고 있었다.

 

두번째 일은, 사실 내 깜냥을 벗어나는 일.

뭔가 한계에 부닥친 상태에서, 내 자신에게 실망하고 있는 상황.

이보다 더 낫게 만들 수 없다는 실망과

이게 내 한계라는 주저앉고 싶은 마음.

그런 것들이 혼합된 상태에서,

상대적으로 빼빠만 치면 되는, 조금만 신경을 쓰면 되는, 아니면 조금 귀찮지만, 꼼꼼히 정비만 하면 되는

첫번째 일만 마치 도피처럼 계속 해대고 있었다.

 

그리고 토요일.

뭔 잠이 그렇게 쏟아지는지 계속 잠만 잤다.

이래저래 좀 피곤한 건 맞았지만, 그래도 오늘은 정말 죽도록 잠만 잤다.

자도 자도 더 잠이 와서 또 자고 또 자고 하면서도,

무한도전과 응사와 인간의 조건까지 다 봤다.

웃기게도 응사는 요즘 안 보고 있었는데, 꽃보다 누나만 보고 있었는데,

오늘은 얼마나 일이 하기 싫었는지, 응사까지 봤다.

완전 TV 데이 였다.

이렇게 TV를 많이 본 건, 아마 올 해 들어 처음인 듯하다.

여튼 연짱으로 TV를 보다가, <인간의 조건>을 보면서, 내 불안의 정체를 발견하게 되었다.

 

스트레스 특집 중인 요즘 <인간의 조건>

언제나처럼 해피투게더 녹화를 빙자해서 허경환은 유재석을 찾아왔다.

스트레스에 대해 묻는 허경환에게 유재석은

왜 그가 아마추어가 아니라 프로인지 보여주었다.

 

스트레스.....

"신인 때는 늘 스트레스에 쌓인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해야 할 일은 안 하고 미래 고민만 해서 그렇다. 녹화를 앞두고서도 연습은 안 하고 고민만 한다."

 

라고 그는 신인들의 문제를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짚어냈다.

 

신인들의 문제는 해야 할 것은 하지 않고 앉아서 고민만, 걱정만 한다는 것.

고민하고 스트레스만 받다가 눈앞의 기회를 놓치는 오류.

 

그야말로 명쾌한 그의 지적이었다.

늘 보면. 고민만 한다. 걱정만 하다. 불안하다 말만 한다.

언제나 그렇다.

 

사실 얼마 전까지.....나는 내 주변만을 보고 있었다.

왜 저럴까.....왜 저렇게 부정적일까...

왜 저렇게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움직이지 않으면서 저토록 부정적인 말만 해댈까.

해야 된다고 말하면, 온갖 이유를 대서 자신이 지금 하지 않는 것을 정당화하고,

열심히 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어리석다고 하며,

그래 본들 결국 하지 않는 자신이나 하는 사람이나 결론은 똑같다는 염세적인 발언으로,

결국 열심히 하는 사람조차 진 빠지게 만드는....그런 사람들.....

부정적인 것, 비판을 위한 비판, 불평.....자조.....

이것들은 사실은 바이러스다.

한 사람이 그것을 내뱉는 순간, 급속도로 퍼져나가, 그 조직에 전염병처럼 퍼지게 만든다.

왜 조직에 충성하느냐, 어리석다......라고 말하는 그들은 정작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분명 비판은 필요하다.

특히 이런 도시에 살고 있는 나는, 더욱더 염세에 빠지지 않으려 노력한다.

내 자리에서 내가, 다음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고민해보고자 한다.

적어도 이 도시에 사는 노년층....(어쩌면 나이가 중요한 게 아니다. 이 도시의 20대에게서도 나는 노년층을 발견하고는 한다.)

처럼 살아서는 안 된다고, 내 자신을 독려해 보고자 한다.

그런데 내 자리에 앉아,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서 불평만 해대는 것은,

마치 그것이 자신 혼자 볼 수 있는 것인 양,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는 양,

열심히 하는 사람들은 어리석은 자들일 뿐인 양, 

그렇게 비아냥거리며,

열심히 하는 자는 욕심에 사로잡힌, 출세욕만으로 설명해 버리고,

도리어 자신은 마음을 비운 도인처럼 말하는 것을 볼 때,

솔직히 불편해진다. 심지어 힘이 빠지기도 한다.

 

비판은 사실 누구나 할 수 있다.

우리는 나면서부터 비판만을 교육받아 왔다.

웃기게도, 인간의 심리는 비판을 하는 그 순간 자신으로부터 배격해 버린다.

괜찮다, 좋다고 느끼게 되면, 순식간에 자신의 무의식이 받아들인다. 그것이 표절이 되어버리면 문제가 되지만....

여튼......비판은 내게서 배움을 앗아간다.

나의 무의식이 그것을 내치도록 작동하기 때문이다.

 

분명한 비판, 대안이 있는 비판, 행동을 요하는 비판은 분명 중요하다.

작금의 시대에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이 도시에 살고 있는 나로서, 내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그 비판을 행동화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그런데 자신의 삶이 엉망이라면, 자신의 삶에 충성하고 있지 못하다면,

그 비판은 이미 행동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이 비판을 위한 비판과 체념의 바이러스가 내게도 스물스물 들어오고 있었다는 것이다.

듣고 있는 내내 불편했다.

그 불편한 마음을 없애보려 해도, 이미 작동된 바이러스는 너무나 깊게 나를 무력화시켰다.

 

꽤 오랜 시간 침잠해 있다가 어느새 그 논리에 설득을 당해버린 것인지,

나는 무언가 좌절감을 맛보고 있었다.

결국.....그 사람들의 말대로, 결과는 똑같은 게 아닌가...하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그들이나, 열심히 하는 사람이나,

어쩌면 결과는 이 모양이라는.....동일한 결론을 내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리 열심히 하는 척하고 있는 나라는 인간도,

사실은 열심히 한 것도 아니었고, 그리 대단한 인물도 못 되고, 능력도 없다라는....

최종 결론에 도달하고서는

나 자신에게 좌절해서 나는 아무리 해도 안 되는 것인가...라는 말도 안 되는 자가연민에 빠져

잠만 퍼지르게 잤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 유재석은 "渾身"의 힘을 가르쳤다.

 

"내가 생각했던 범위 안에서 최선을 다 하면 안 된다. 그 이상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보통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더이상 할 수 없다고 한다.

어쩌면 나는 그 지점에 와 있었던 것 같다.

최선을 다해 발버둥쳤고,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다고,

그러나 이곳이 나의 한계라, 말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는 그것이 아니라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가 생각하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으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

내가 나를 뛰어넘어, 그 이상으로....

내가 생각하는 그 이상으로.....

여기가 한계라고 생각할 때, 더 달려야 한다는 것....

늘 나라는 벽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것......

그런 것이었다.

 

누구보다도 나는 나의 한계를 잘 알고 있다.

 

남편이 며칠 전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너처럼 부지런했으면, 뭐라도 됐을 거다."

 

그 말에 놀란 건 나 자신이었다.

남편은 늘....내게 대단하다고 말해준다.

늘 과분하다고, 대단하다고......

자신이 성장할 수 있는 크기보다, 내가 성장할 크기가 더 크다고.....

자기는 작은 물에서 놀지만, 나는 큰 물에서 놀 거라고.....

그렇게 대단하다고 추켜세워준다.

그래서 자신이 잘 받쳐주겠다고도 해준다.

내게 중요한 일이 생길 때면, 우선 순위는 늘.....내 일로 생각해준다.

남편은 언제나 자신의 앞서 내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내 친정 오빠와는 정반대다.

친정 오빠 역시 열심히 일하고, 발전하는 것에 대해서 늘 호의적이고 적극 지지해준다.

내가 이만큼 내 자신의 발전을 이상으로 삼게 된 데는, 오빠의 지지 역시 무시할 수 없다.

그 점에 있어서는 고마워한다.

그러나....오빠 같은 사람과는 절대로 결혼할 수 없다고 생각했었다.

오빠는 스스로의 이상이 큰 사람이다.

자신의 이상이 크기 때문에 결국엔 가족의 배려와 희생이 동반될 수밖에 없다.

오빠 역시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있는 면이 크다.

가족을 위하는 마음이나, 그 와중에 가족들을 위해 자신의 시간을 반드시 나누는 것들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전국을 다니고, 해외를 다녀야 하는 상황에서, 새언니의 직장을 배려해 그곳에 터를 잡았다.

본인은 전국에 출장을 다녀야 해도, 해외를 밥먹듯이 나가야 해도,

어떻게든 집으로 들어가, 어떻게든 언니를 돕는 걸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언니의 희생이 만만치 않다고 생각한다.

 

결국 이상이 큰 사람 곁에서 누군가는 자신을 양보해야만 한다.

오빠네는 결국 언니가 양보하고 배려하는 것 같다.

아무리 오빠가 초인적인 힘으로 버텨내고 있다고 해도, 큰 그림에서 본다면, 언니의 적극적인 양보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집은 반대다.

내 이상을 위해서, 남편이 적극적으로 양보하고 배려하고 있다.

어쩌면 오빠나 나나 같은 성향의 인물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솔직히......난....남편이 생각하는 것만큼 대단한 인물이 못 된다.

남편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부지런하지 못하다.

 

남편의 말에, 난 부지런하지 않다고 했더니, 남편이 비웃는다.

니가 부지런하지 않으면, 누가 부지런하냐?

라고 말이다.

 

원래 자신만이 아는 법이다.

나에 대한 평가는...너무 과대포장되어 있다.

실제 나 자신보다 훨씬 더 부지런한 것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사실 나는 게으르다.

자신은 안다.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또 내가 얼마나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지.......

 

그러나 그 안에서 나는, 나 자신을  합리화시키며 이것이 내 한계다 라고 말해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유재석이 말한, "혼신"이라는 말은....그것이 얼마나 아마추어 같은 생각인지 여실히 보여줬다.

고민하다가, 스트레스 받고, 결국 그렇게 시간만 헛되게 보내 실제로 연습할 시간을 버려버린....어리석은 행동들.

그것은 나였다.

불평과 불만의 바이러스를 뿜는다며, 내가 불편해 했던 사람들이나,

나는, 사실 똑같았다.

나 역시, 내 한계를 넘을 수 없다, 여기가 내 한계다, 난 원래 요정도 그릇밖에 안 된다, 라고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부터 모든 이는 한계다.

각자의 한계와 마주하고 있다.

결국 차이는 이것이다.

그 한계 안에 머무를 것인가, 아니면 그 한계를 뛰어넘을 것인가.

그 한계 안에 머물면서 노력을 중지할 것인가, 아니면 그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혹은 넘지 못한다 하더라도 끝까지 노력할 것인가,

그 차이였다.

그 차이가 아마추어와 프로페셔널을 결정짓는 기준이 된다.

 

걱정하고 스트레스 받는 시간에 나는 그 한계를 넘기 위해서 계속해서 연습하고 노력하고 움직이고 있었어야 했다.

체념하고 걱정하고 내 한계구나 하며 한숨쉬며 잠 속으로 들어가버린 것은 나약한 자의 도피였을 뿐이다.

 

혼신이라는 말에서,

내 한계를 넘어서서 온 우주의 힘을 끌어모으는 그 힘으로

나는......또 그 한계를 뛰어넘고자 한다.

 

오늘.....큰 배움을 얻었다.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머리로 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었으나, 내 몸은 움직이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내 몸이 움직이고 있었다면, 내 머리는 할 수 없다고 말하지 않고, 이 다음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고민했을 것이다.

 

집에서 달려보는 수밖에......다른 방도가 없다.

고민하는 시간에 열심히 행동하는 수밖에 진짜 다른 방도는 없다.

 

2013년 마무리하는 이 마지막 시간에 큰 배움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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