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과 삶/마흔에 읽는 논어

제1편 學而 5장 - 말보다 앞서는 힘

그랑블루08 2013. 11. 8. 18:11

 

<정선 - 程門立雪, 국립중앙박물관>

 

 

 

學而 第一

 

5장

 

子曰 道千乘之國호되 敬事而信하며 節用而愛人하며 使民以時니라

(공자가 말하기를 천승의 나라를 다스리되,

 일을 공경하고

 믿음으로 하며,

 쓰는 것을 절약하고(절도있게 하고)

 사람을 사랑하며

 때에 따라(때에 맞게) 백성을 부려야 한다.)

 

*천승의 나라 - 천 대의 병거(兵車)라는 뜻으로, 그 정도의 힘을 가진 나라의 제후를 이르는 말.

 

5장은 나라를 다스리는 일에 대한 조언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제후가 가져야 할 5가지 다스리는 규칙.

이것을 오늘날에 적용해 본다면, '정치'에 해당한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사실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라면, 아니 사람이 모여있는 곳이라면,

꼭 따라야 할 조언이 아닌가 한다.

 

특히 敬事而信이라는 말을 깊이 있게 들여다 봐야 한다.

 

- 楊氏曰

  上不敬則下慢이요 不信則下疑니  

  양씨(楊時)가 말하길,

  윗사람이 (일을) 공경하지 않으면, 아랫사람이 게을러지고, 위가 믿을 만하지 못하면, 아래가 의심하게 되니,

 

  下慢而疑면 事不立矣니

  아래가 게으르고 의심하게 되면 일은 성립하지 못한다.

 

  敬事而信은 以身先之也니라

  그러니 일을 공경하고 믿음으로 하는 것(믿을 수 있게 하는 것)은 몸으로 먼저 일하는 것이다.

 

여기에 나오는 楊氏는 程子의 제자였던 인물인 '楊時'를 말한다.

이 양시에 대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그것이 바로 저 위에 올려둔 정선의 그림이다.

제목은 程門立雪

 

여기엔 얽힌 이야기가 있다.

송나라 학자였던 양시와 유초라는 인물의 스승이 정자(程子)였다.

정자는 중국 ()나라 유학자 정호(), 정이() 형제 대한 존칭으로 사용되는데,

원래 양시와 유초는 정호의 제자였다.

이후 정호가 세상을 떠나자, 역시 학식이 높았던 정이를 스승으로 섬기게 되었다.

 

양시와 유초가 스승이 되어달라고 청하기 위해 정이를 찾아갔다는 설도 있고,

양시와 유초가 묻고자 하는 바가 있어서 정이에게 가서 학문을 물으려 했다는 설도 있다.

어쨌든 둘 다 공통되는 것은 정이를 스승으로 모시고 있는 것.

 

그런데 두 사람이 정이의 집에 도착했을 때, 정이는 잠이 들어있었다.

정선의 그림에서는 앉아서 명상을 하는 것으로 그려져 있는데,

잠이 들었다는 설, 명상을 하고 있었다는 설....

무엇이든 상관이 없다.

어쨌든 두 사람은 스승을 방해하지 않고자, 밖에서 가만히 서서 기다렸다.

마침 눈이 내렸는데, 그 눈이 엄청나서, 두 다리를 덮을 정도로 내렸다.

그래도 두 사람은 조용히 기다렸으며,

한참 후, 눈을 뜬 정이가 이를 보고 놀랐다는 고사성어.

그것이 程門立雪이다.

 

정이(정자)의 집 문 앞에서 눈 속에 서 있다.

그림에서도 보면, 그들의 다리가 없다. 눈이 다리까지 쌓여 있을 때까지 그들은 조용히 기다렸다.

 

스승을 향한 존경과 기다림을 나타내는 말이라 한다.

혹은 학문을 향한, 배움을 향한 자세를 말하기도 한다.

 

어쨌든 이 5장의 주에 이 고사성어의 주인공 양시의 말이 나온다.

 

그의 말은 5장을 이해하는 데, 혹은 5장을 넘어서서 무언가를 가르쳐주는,

그것도 직장생활을 하는 이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는 말인 것 같다.

 

일을 공경하고 믿음으로 하라.

사람을 공경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지금 여기에서 강조하는 것은 일에 대한 공경심이다.

계속해서 나오는 말.

<작은 일에 충성하라>

이 말이 자꾸만 깊게 깊게 자리 잡게 된다.

 

니가 하는 일을 하찮다, 우습게 보지 말라는,

그 일을 하는 걸, 짜증내지 말라는 말인 것 같다.

심지어, 일을 공경하라 한다.

최선을 다해서, 공경하고, 그 일에 충성하라는 말일 것이다.

거기에 더 해서 믿음 있게, 믿음을 다하여, 또 믿을 수 있게 하라고 한다.

그 일을 맡았다면, 확실하게, 분명히 하라는 말이다.

뒤돌아볼 필요 없이, 다시 손 댈 필요가 없이,

만약 내가 일한다면, 그 누구더라도 믿을 수 있게, 그렇게 일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다음 말이 중요하다.

윗사람이 일을 공경하지 않으면, 즉 일에 충성하지 않으면,

아랫사람이 그 일을 게을리 할 거라는 것이다.

또 위에서 믿을 만하게 하지 못하면, 혹은 믿음을 갖고 일하지 않으면,

아래에서 의심하게 될 거라는 것이다.

특히 믿음과 연관된 부분은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을 것 같다.

믿을 수 있게 일하라로 볼 수도 있지만, 믿음을 가지고 하는 거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윗 사람이 믿음을 가지고 일을 하지 않는다면,

아랫사람은, 이 일이 정말 맞는지, 의심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의심하게 된다면, 당연히 그 일에 최선을 다하지 못할 것은 당연하다.

결국 게으르고 의심하면, 그 일이 성사될 수 없다.

최선을 다해서  충성해도 잘 되지 않을 판에, 제대로 하지 않고, 확신도 없이 일한다면, 당연히 성사될 수가 없을것이다.

그리고 한 마디로 끝을 맺는다.

 

일을 공경하고 믿음으로 하는 것, 믿을 수 있게 하는 것의

가장 큰 원리.

그것은 몸으로 먼저 일하는 것이다.

내가, 내 스스로, 먼저 몸으로 일하는 것.

그것이 가장 큰 원리라 한다.

 

그러니 돌아보게 된다.

 

나는 일을 공경하고 있는지,

나는 그것에 믿음을 가지고, 믿을 수 있게 행하고 있는지,

내 스스로 먼저 그 일을 하고 있는지.

 

아랫 사람을 탓하기 전에, 자신을 돌아보라는 말인 것 같다.

너의 말을, 몸으로 보이라는 것 같다.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그 일에 충성하는 모습을,

일을 함에 믿음을 보여주는 모습을,

그래서 믿을 만한 모습을,

그것을 직접, 몸으로 보여주라는 말인 것 같다.

 

말보다 앞서는 힘.

그것은 내 몸으로 직접 행하는 것이다.

일에 최선을 다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일에 게으르지 말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부지런히 하는 것이다.

믿음을 가지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믿음을 가지는 것이다.

그 어떤 것도 마음을 다한 행동을 앞지를 수 없다.

 

이것은 아이를 가르칠 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열심히 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열심히 해야 하는 것이고,

믿음을 가지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믿음을 가질 것.

 

어쩌면, 사람도 아이도 모두 내 문제일지 모른다.

왜 저렇게 믿음을 줄 수 없느냐고 불평하는 게 아니라,

내가, 믿음을 가지지 않아서가 아닌지,

왜 저렇게 게으르고, 제대로 안 하느냐고 비판하는 게 아니라,

내가 그 부지런함을, 일을 공경하는 모습을, 충성하는 모습을 가지지 않아서가 아닌지.....

 

 

 

 

오늘의 가르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