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상플) 94년 어느 날, 어쩌면 2 : 원본 글 : http://gall.dcinside.com/board/view/?id=reply1988&no=887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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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사랑 그놈
늘 혼자 외면하고 혼자 후회하고
늘 휘청거리면서 아닌 척을 하고
사랑이란 놈 그 놈 앞에서
언제나 난 늘 웃음거릴 뿐
∙∙∙
늘 기억 때문에 살고 추억에 울어도
늘 너를 잊었다고 거짓말을 해도
숨을 삼키며 맘을 삼키고
그저 웃으며 손을 흔든다
「사랑 그놈」 가사 中 -
1
택의 방문을 나서는 순간, 덕선은, 이전까지의 느긋함은 사라지고, 마치 누가 쫓아오는 듯 집 밖으로 뛰어나왔다.
제대로 신지도 못한 신발은 대충 구겨 신은 채, 덕선은 대문 밖에 나와서야, 크게 숨을 내쉬었다.
“미!친!!!!!!!!”
입술 밖으로 튀어나온 거친 말 사이로, 덕선의 눈은 자꾸만 뭉글뭉글한 무언가가 올라와서는 시야를 가리기만 한다.
“남친이랑 같이 봐? 미친 성덕선. 니가 미쳐도, 하....진짜.........”
미친 거다, 정말. 성덕선. 미쳐도 한참 미친 거다.
앉아 있는 것도 고역이었다. 온 몸의 세포가 단 한 사람만을 향하고 있었다. 눈을 마주칠 용기는 없었지만, 그 애가 뭘 하는지, 무슨 행동을 하는지, 보지 않아도 보였다.
“쫌~~!!! 이제 좀~~ 그만하자!!! 성덕선!!!”
화가 났다. 이 미련한 마음이란 것에 화가 났다.
시간이 묻어나면, 시간 속에 묵혀 두면, 좀 옅어지기라도 하면 좋으련만, 도리어 시간 속에 묵히면서 깊어지고만 있는 이놈의 감정이란 것에 화가 난다.
최...택...
누가 들을까 작게 소리 내어 본 그 말이 또다시 귓가로 돌아와 가슴으로 내려 앉는다.
삐삐삐삐.......
누가 볼새라 눈물을 닦고 삐삐를 확인하던 덕선은 아주 조금은 나아진 표정이다.
삐삐에 적힌 번호 “1004”
진짜 이 남자는 내가 불쌍해서 하늘이 내려준 천사일지도 모른다.
그랬으면 좋겠다. 정말......
2
많이 마시지도 않은 동룡이 의외로 인사불성이 되자, 군인 체력인 정환이가 동룡이를 데려다준다며 끌고 나갔다. 택의 집에서 자도 되지만, 어제까지 대국을 치른 택이가 그나마 좀 편히 쉬라는 오랜 친구의 배려였다.
선우도 본가로 건너가기 전에 택이의 방에서 뒹굴고 있는 술잔을 치우며, 택이의 눈치를 살폈다.
아무 감정도 없는 듯, 상을 치우고, 아까 동룡이가 엎은 술을 닦아내는 일에 여념이 없는 택이를 보고 있자니, 선우는 그저 저 아래에서부터 답답한 무언가가 치솟아 올라오는 것만 같았다.
“넌, 괜찮냐?”
참다 참다 나온 말에 택은 픽 하고 웃는다.
“나 생각보다 술 세잖아. 담배도, 술도, 니들보다 훨씬 셀 걸?”
자랑처럼 말하는 택의 말에 선우의 한숨은 더 깊어진다.
“그거 묻는 거 아니잖아. 택아.”
“어?”
말간 눈으로 바라보는 택을 보며 선우는 말문이 막혔다.
저놈 눈은 19살 때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다.
술을 들이 붓고, 담배를 펴대도, 변함 없는 소년 택이가 저 눈 속에 살고 있었다.
“......나, 너 보고 있었어. 택아.”
무슨 말이냐며 그저 눈을 깜박이는 택이에게 선우는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뱉어내 버렸다.
“너, 한참동안 잔, 들고만 있더라.”
미소를 머금은 듯하던 택이의 입가가 싸늘하게 식어갔다
“.......아.....뭐 생각하느라.......”
“생각?”
“어...기원에서.....일이 좀......”
“최택!!! 내가 너, 몇 년 본 지 아냐?”
“.....................”
택은 더 이상 선우의 눈을 보지 못했다.
“너.....아직도....인 거냐?
설마....아직도.......?”
설마 설마하면서 선우는 긴장한 채로 물었다. 어쩌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아니다, 라고 대답해주길 바라며, 그렇게 기다렸다. 한참 후 돌아온 택의 대답은 이거였다.
“...아니야.......”
택의 눈은, 아니 택의 얼굴은 선우를 빗겨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아니 그 빗겨 있는 택의 눈을 보던 선우의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았다. 그 빗겨 있는 눈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아는 까닭이었다.
하아.........
“너나 나나 정말 병신 같다.”
병신들......
감정 하나 다스리지 못하는......병신......
도망가지도 못하고, 올가미처럼 얽혀 들어서, 심장만 파먹히고 있는 병신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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