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나의 이야기

삶과 죽음

그랑블루08 2021. 12. 30. 14:20

 

마지막 글을 올렸던 것이 작년 7월 13일.

아버님 수술에 대한 이야기였다. 

코로나 때문에 정신 없었던 작년, 그리고 아버님의 수술, 엄마와 어머님의 노환.

그 사이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이 직장으로 온 지 이제 만 4년. 정신 없이 달려오기에도 버거웠던 시간들이었다. 

그 시간 동안 부모님들은 조금씩 조금씩 시들어가고 계셨나 보다.

 

11월 12일 금요일.

열심히 버텨 주셨던 아버님께서 소천하셨다. 

그날 오전 나는 내 꿈을 위한 이직을 준비하며 서류를 제출했고, 

그 다음 주 목요일은 수능이었다.

나도, 윤이도 꿈을 위해 정신 없었던 시간.

2021년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을 만큼, 아이와 나는 삶을 쥐어 짜고 있었다.

 

윤이의 1년은 곁에서 보는 나까지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바닥까지 긁어 모아 시간을 끌어내던 아이 앞에서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을까, 나라면 못할 것 같은 열심을 내는 아이 앞에서 

나도 숨을 죽이며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하루에 15시간 이상을 공부해내는 아이를 보며,

죽어도 재수는 못하겠다고, 올해 모든 걸 끝내겠다고 그래서 지금 이렇게 달릴 수밖에 없다는 아이를 보며,

곁에서 오로지 기도밖에 할 수 없는 시간이었다.

나 역시 내 이직을 위해 달리며, 아이와 나는 올 한 해 우리의 삶을 쥐어 짜냈다.

 

그리고 11월 12일. 

잠시 멈추었다. 

우리가 달려오던 모든 경주를 멈추고, 잠시 달리던 말에서 내려와 주저 앉았다.

4일장을 치르며, 아이는 꼭 쥐고 있던 손을 놓았다. 

10년 더 사시도록 열심히 기도하던 아이는, 마지막에 자신이 합격한 소식만 전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하지만 아버님은 긴 투병기간 동안 힘드셨는지, 호스피스 병원으로 옮긴 지 2주 만에 하늘로 돌아가셨다.

 

장례식에서 가장 많이 울었던 건, 아이와 나였던 것 같다.

윤이가 물었다.

엄마는 며느리면서, 왜 다른 가족들보다 더 우느냐고.

그래서 대답해주었다.

"엄마한테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없었잖아.

윤이 태어날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까, 19년 동안 엄마의 아버지는 할아버지셨어."

시집 와서 1년 좀 넘어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내가 아버님은 참 가여우셨던 것 같다.

그래서 우리 아버지 대신 내 아버지가 되어주셨던 것 같다.

 

언제나 내 직장은 어떤지, 또 내 꿈을 위해 어떻게 진행하고 있는지,

언제나 물으셨다.

돌아가시기 전, 여름에 식중독에 걸려 고생한 나에게, 당신의 아픔 앞에서도 괜찮으냐고 걱정하시며 나에게, 또 남편에게 매일 연락하셨다. 

그렇게 정이 많으셨고, 정을 내셨던 분이셨다. 

 

11월. 

윤이도 나도, 정신 없이 달리고 있던 시간들.

그 속에서 아버님은 죽음으로 우리에게 쉼이라는 것을 주셨다.

윤이도, 나도 그래서 쉴 수 있었다. 

손에 꽉 잡고 있던 것을 놓고, 윤이도 나도 어쩌면 "흐르는 대로" 손을 폈던 것 같다.

 

수시 시험을 2주간 치고, 또 수능 성적을 받고, 수시 마감까지 모두 지나, 이제 정시를 향해서 간다.

그 사이 나는 이직에 실패했고, 아이도 수시에 모두 떨어졌다. 

힘겨웠던 1년간, 이보다 더 열심히 살 수 없다고 느낄 만큼, 영혼의 바닥까지 긁어가며 살아왔던 시간이

조금은 배신감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러나 노력한다고 그대로 결과가 나올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해서도 안 될 것이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몸과 마음을 추스려서 다시 그 노력을 시작해보려 한다.

아이도 나도....

결과는 우리의 몫이 아니므로, 

과정만이 우리의 몫이므로,

최선을 다해서 좌절하지 않으려 한다.

 

그리하여

오늘,

우리가 달려야 할 그 길 위에 다시 서 있다.

 

이렇게 달려 또 다시 실패한다고 해도,

결과는 내 몫이 아니므로,

과정만이 내 몫이므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절하지 않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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